1. 여러분도 나처럼 그런 경험이 있나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경험. 아니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보다 남들이 더 잘난 것 같고, 나보다 남들이 더 행복한 것 같고, 나보다 남들이 더 운이 좋은 것 같은 느낌. 그런 남들의 뒤꽁무니에 붙어 따라가며 살고 있다는 느낌이 한 번씩 드는 것.

 

 

누군가는 말하겠지. 그럴 땐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라고.

 

 

그런데 나, 싫은데 어쩌나. 아래 말고 위를 보고 싶은데.

 

 

 

 

 

 

 

2. 얼마 전, 병문안을 갔다. 사촌 여동생이 유방암에 걸려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간 것이다. 고모의 딸로 두 남매를 둔 사십 대 동생이다. 나에게는 고모가 되는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서 내가 평소에 대견하다고 여기고 있는 동생이다. 초기에 암을 발견해서 다행이라지만 치료 부작용으로 식욕이 없어 밥을 먹기 힘들고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한단다. 그런 동생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걱정하면서 갔다. 동생의 집에 도착하니 환자는 없고 고모와 애들만 있다. 은행에 볼 일이 있어 잠깐 외출했다고 한다. 나는 ‘환자가 은행에 가도 되는 건가?’ 하고 놀랐는데, 이웃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한단다. 잠시 뒤 모자를 쓴 동생이 들어오는데 미소 짓는 환한 얼굴이다.

 

 

“언니 왔어?”

 

 

환한 얼굴로 던진 이 한마디에 나의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환자로서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면 병을 이겨내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3. 사촌 동생의 집에서 돌아오며 생각한 게 ‘감사하자.’였다. 사촌 동생처럼 암과 투병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TV에서 통풍이란 병의 고통에 대해서 소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이름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아픈 병이라고 한다. 얼마나 아프면 그런 표현을 할까.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다.

 

 

나, 병에 걸리지 않음에 매우 감사하게 되네. 겸허해지네.

 

 

 

 

 

 

 

4. 또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책광인 것. 

 

 

집에 책이 많다. 책 관리에 있어서 내 나름대로 원칙이 있는데, 새로 구입한 책은 다 읽어야만 책장에 꽂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사 놓고 읽지 못한 책이 책상 위에도 책상 밑에도 가득하다.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을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생긴 일이다. 예를 들면 사고 싶은 책은 한 달에 다섯 권이 넘는데 읽은 책은 한 달에 고작 두세 권이다. 도대체 사고 싶은 신간은 왜 그렇게 많은 건가. 매달 한 번쯤은 ‘쌓여 있는 책을 두고 신간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로 갈등한다.

 

 

어쩌면 나는 독서광이 아니라 책광이 아닐까 생각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다. 어떤 때는 책이 참 잘 생겼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내게 가장 즐거운 쇼핑은 책 쇼핑이다. 만약 내가 책 쇼핑만큼이나 옷 쇼핑을 좋아했다면 멋쟁이가 되어 있으리라. 멋쟁이는 못 되었지만 옷보다 책을 좋아하는 것에 만족한다. 책이 주는 행복이 달콤하기 때문이다.

 

 

내가 책광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5. 또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글쟁이인 것.

 

 

글을 써야지, 하면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말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그 시간을 지켜 글을 써야 한다는 점과, 그 시간이 닥치면 어떤 변명도 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87쪽)” <작가 수업>의 저자 ‘도러시아 브랜디’의 말이다. 어느 시간에 글을 쓰기로 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간에 글을 쓰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변경하여 다른 시간에도 글을 써 보라고 한다. 단, 한번 시간을 정했으면 무조건 그 시간에 글을 쓰라는 것. 한마디로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는 게 습관이듯이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겠다.

 

 

하루 중 언제 글을 쓰는 게 좋을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매일 일어나는 시간에서 30분만 일찍 일어난다면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30분 동안 글을 쓰는 게 가능할 것이다. 또는 아침을 먹고 나서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 나의 경우엔 이 시간이라면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다. 내가 아침에 해야 할 일(예를 들면 식구들의 아침 식사 준비 등)을 끝내 놓고 아침을 먹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게 습관이 되면 30분에서 점점 시간을 늘리면 된다. 

 

 

그런데 우리 알라디너처럼 매달 글을 꾸준히 올리는 사람들은 이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겠다. 이미 글을 쓰는 습관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그거다. 내가 습관처럼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내가 글쟁이가 되어 버렸다는 것. 글쓰기로 행복하다는 것.

 

 

내가 글쟁이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 글쟁이는 국어사전에 따르면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내게 부적절한 말일 수 있고(내겐 직업이 아니니까), 남에겐 실례가 되는 말일 수 있으나(낮잡아 이르는 말이니까) 나는 ‘글쟁이’라는 말이 좋아 애용한다. 

 

 

 

 

 

 

 

6.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나보다 남들이 더 잘난 것 같고, 나보다 남들이 더 행복한 것 같고, 나보다 남들이 더 운이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도 불평불만을 품지 않기로 했다. 감사하기로 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후기>................................

 

 

- 생각해 보니 내가 글쟁이가 되도록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것은 ‘알라딘’이다. ‘알라딘’이 없었더라면 이 서재에 올린 284편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마이리뷰 23편, 마이페이퍼 261편을 썼다.) 그래서 난 ‘알라딘’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또 생각해 보니 내가 글쟁이가 되도록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존재가 또 있다. 바로 방문자들이다. 방문자들이 없었다면 이 서재에 올린 284편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읽어 주지 않는데 글을 꾸준히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래서 난 방문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 내가 감사할 것에 대해 노트에 써 본다면 백 가지 이상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도 감사할 일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불평불만을 없애는 시간이 되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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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4-09-29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쟁이인 것에 감사드리죠 글이 아니었다면 방송에 나오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저 역시 알라딘이 제 글쓰기 아카데미였어요. 그래서 제가 알라딘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있는 거구요. 글쓰기는 여전히 제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만,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글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부담이 되고 있긴 합니다 글쓰기의 즐거움도 조금은 줄어들었구요. 뭐든지 의무로 하면 덜 즐거운 듯해요 글구 유방암은 정말 무서운 병이죠. ㅠㅠ 쾌유를 빌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4-09-29 08: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동생 꼭 쾌유할 거예요.
의무로 쓰는 글, 덜 행복하겠는데요. 아무래도 자유로운 글쓰기가 최고죠.
알라딘에 대해 님도 저랑 동지군요. 반갑습니다.
비가 옵니다. 비 오는 날의 좋은 분위기를 만끽하며 보내시길...

단발머리 2014-09-2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오는 꿀꿀한 아침에 페크님 글을 읽고 힘을 얻습니다. 투병중에도 씩씩하신 여동생분 꼭 털고 일어나실 거예요.

페크님, 질문이 있어요.

저같은 경우는 책을 읽은 후에라야 글을 쓰게 되거든요. 제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은 후에 감상이나 감동에 의지해서 글을 쓰게 되는데요. 읽은 책의 양이 적을 때, 글을 쓰기로 정한 시간이 되었다면, 어떻게 글쓰기를 이어가면 좋을까요? 쓰고는 싶지만, 무얼 쓸지 모르는 경우에요. 아~~ 쓸게 없다, 이러면 안 될 것 같구요. 글쟁이님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는 알라디너입니다.^^

페크pek0501 2014-09-29 10:48   좋아요 0 | URL

하하~~ 제가 그런 질문에 답변할 자격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님은 이미 잘 쓰고 계시는 걸요.
하지만... 주제넘게 답변을 하자면...

1.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창밖의 풍경을 묘사해도 좋겠고요. 그것을 본 자신의 기분, 정서 등을 표현해도 좋을 것 같고요.
어제 또는 며칠 전에 있었던 일 하나를 잡고 쓰기 - 제가 병문안 간 일을 쓴 것처럼요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나열해 쓰기, 고민에 대해 쓰기
내 인생에서 불평불만인 것, 또는 바라는 것, 미래 계획을 쓰기
뉴스의 사건 사고를 접하고 느낀 점 쓰기
드라마 또는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말을 옮겨 적고 느낌을 쓰기, 또는 변형해 쓰기
인상 깊었던 책 구절 쓰고 느낌을 쓰기 또는 변형해 쓰기
계절에 대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에 대해 쓰기
속상한 일에 대해 쓰기, 기뻤던 일에 대해 쓰기

이렇게 쓰다 보면 문장력도 키우게 되고 이 중에서 좋은 글감 하나 건질 수 있을 듯해요.
이상으로 주제넘은 답변을 마칩니다.

2. 이런 뻔한 답변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거고요.
실은 저도 뭘 써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고 있는 1인입니다.

3. 참고로 제가 2014-07-02에 올린 글을 봐 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조언의 글입니다.

4. 저의 경우엔 이웃 서재에 댓글을 쓰다가 글감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끄집에낸다는 점에서 댓글 쓰기가 좋은 방법 같아요.
한 가지의 주제로 길게 쓰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요...

5. 다시 말씀 드리는 거지만 저도 뭘 써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고 있는 1인입니다.
과거에도 헤맸고 현재에도 헤매고 미래에도 헤맬 것 같은 1인입니다.
쓸 게 없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페크pek0501 2014-09-29 10:50   좋아요 0 | URL
제가 2014-07-02에 올린 글입니다. 미셸 투르니에의 조언입니다

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 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125쪽.

단발머리 2014-10-06 08:38   좋아요 0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꼼꼼히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글을 읽고 문득 깨달은 게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글을 쓸 때 `리뷰`로 한정지어서 생각하다 보니, 경험이나 느낌을 제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왜냐하면 글을 쓴 후에 알라딘서재에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 개인적인 것들은 올리기가 어려웠거든요. 사실, 제 개인적인 일상을 누가 궁금해하겠습니까??? ㅋㅎㅎ

그런데, 페크님 말씀을 읽어보면서 깨달은 건, 모든 글을 알라딘서재에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네요. (이런 무슨.....)

물론, 저는 많이 속상할 때도 글을 쓰기는 하지만, 그런 글쓰기도 글쓰기라는 건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계절에 대해, 속상한 일에 대해, 기뻤던 일에 대해, 감사한것, 내 인생에서 불평불만인 것에 대해서도 글을 쓸 수 있겠더라구요. 그렇게 쓰면 일정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글쓰기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도 편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세요~~~~~~~~~~~ ㅎㅎ

페크pek0501 2014-10-07 20:2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몸둘 바를 모르죠. 하하~~
제 경험에서 하나 가져오면 이렇습니다.
행복에 대해서, 불행에 대해서, 건강에 대해서, 우정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등등, 각각 쓰는 파일이 있고 그것을 모아 놓은 폴더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글을 쓸 때 관련된 게 있으면 그 파일에서 몇 문장을 가져온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정에 대해서` 몇 줄 쓰는 게 저축인 것이고 결국 글 잘 쓰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흐흐 기대만... 합니다. ^^

stella.K 2014-09-29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참 좋습니다.
어제 예전에 제가 주일학교 교사로 있을 때 알았던 제자 녀석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초기라고 해서 다행이긴 한데 녀석이 얼마나 심난할까 싶더군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10년 전에도 초기 암으로 수술을 받았었다는군요.
아파 본 사람이 더 담대해지나 봅니다.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라
걱정하는 내가 더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전 뭐 했나 싶더군요. 10년 전이나 그 10년 후나 나의 건강에
얼만큼 감사했는지...

문득 일상이 지루하긴 한데 또 그것이 주는 안온함은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요.
놀랄 일이나 걱정할 일이 없다는 거니까.
일상을 떠나 보면 알아요. 하지만 또 자칫 퇴보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것이기도 하죠. 아, 정말 인간이란...ㅠ

페크pek0501 2014-10-01 12:13   좋아요 0 | URL
발전이야 퇴보냐, 만족이냐 불만족이냐... 만족하면 행복한 대신 발전이 없고, 불만족이면 행복하지 않는 대신 발전이 있을 수 있고... 어렵습니다.
정답이 없는 것, 그것은 인생입니다.

잠시 활동을 쉬시는 줄 알았어요. 자주 봅시다. 댓글을 반갑게 접수합니다. ^^

세실 2014-09-2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참 솔직하신 페크님^^ 위를 보고 사세요~~~~ ㅎㅎ 그래야 발전도 있을듯요^^
2. 전 가끔 10년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제 멘토 선배님이 생각납니다. 참 의욕적으로 일 하셔서 존경하던 유일한 선배님이었는데......지금도 눈물이 글썽글썽. ㅜㅜ
3. 저도 독서광이 아닌 책광입니다. 책을 사놓고는 못 찾아서 또 사고.....도서관책은 류별로 분류하면서 집에 있는 책은 아무렇게나 꽂아두었거든요.
4. 요즘 글쟁이에 한계를 느껴요. 과연 나는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재주가 있는걸까요? ㅜ

페크pek0501 2014-10-01 12:17   좋아요 0 | URL
1. 위를 보고 살까요?
2. 아는 누군가가 떠날 때마다 우린 힘들겠지요?
3. 그래서 제가 알라딘 한 군데에서만 책을 삽니다. 제가 또 산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기능이 있잖아요. 저도 책광...
4. 한계를 자주 느끼는 접니다. 만약 글쓰기에 자신이 있다면 직업을 아예 글쓰기로 택하는 건데... 그건 아닌 것 같아 아직도 직업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세실 님, 가을입니다. 어젯밤 두꺼운 이불을 꺼내 덮었네요. 좋은 가을 보내요 우리... ^^

노이에자이트 2014-09-2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을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같은 연배에 비해 고학력이고, 글도 잘 쓰고, 명절날 시댁식구와 잘 지내고...

페크pek0501 2014-10-01 12:18   좋아요 0 | URL
하하하~~~ 웃겨요. 님의 유머는 아니겠지만 유머로 읽게 됩니다.
자기 삶에 감사하려 들면 백 가지가 넘을 것 같고, 또 불평을 하려 들면 그 역시 백 가지가 넘을 것 같아요.
이왕이면 감사하는 쪽으로 삶을 봐야겠지요?
행복한 가을이 되시길...
 

 


 

최근에 일을 하나 추가했더니 바쁘다. 글을 써서 올릴 마음의 여유도 없고 이웃 서재의 글을 읽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지냈다. 이렇게 바쁜 건 싫지만 일을 끝내고 나면 속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건 바쁨의 장점이다. 어쩌면 그 맛에 바쁨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바쁜 일을 끝내고 나서 느끼는 휴식의 달콤함이 나는 좋다. 무지 좋다. 마치 어떤 날 샤워하긴 귀찮지만 샤워를 끝내고 나서 느껴지는 상쾌함이 좋은 것처럼.

 

 

바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글씨가 빼곡히 찬 노트에서 어쩌다 만난 빈 페이지처럼 별다른 일이 없는 빈 시간이다. 물론 빈 시간이 늘 이어진다면 이런 시간이 좋을 리 없다. 바쁜 자만이 빈 시간의 매력을 아는 법이다.

 

 

모처럼 만난 빈 시간에 이 글을 쓴다.

 

 

 


1.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나니 밀란 쿤데라는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무가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만약 당신이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밀란 쿤데라와 같은 편에 설 수 있으리라.

 

 

<무의미의 축제>는 이야기가 쭉 이어지지 않고 툭 툭 끊어지는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게 읽혀진다. 이야기가 주는 흥미는 없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건 이 소설의 강점이다.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으로 다음의 글을 뽑는다.

 

 

....................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96쪽.
....................

 

 

명절 스트레스로 추석 뒤에 이혼 상담이 부쩍 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명절에 촉발된 부부간 불화는 실제 파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명절이 있는 달의 이혼신청 건수는 전달에 비해 평균 11.5% 높았다”(경향신문, 2014. 09. 18.)고 한다.

 

 

명절에 촉발된 부부간 불화, 이것은 명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면 명절에 대해 진지하지 않게 생각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우리가 어떤 불행한 상황에 직면한다고 해도 그 상황에 대해 진지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게 도움이 될 경우에 진지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병도 알고 보면 진지한 태도 때문에 생긴다. ‘명절 스트레스’라는 것도 알고 보면 명절을 진지한 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긴다.

 

 

나의 경우, 한가롭게 생활하는 중에 명절이 다가올 때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고, 바쁘게 생활하는 중에 명절이 다가올 때 스트레스를 적게 느낀다. 바쁠 땐 그만큼 명절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그것에 마음이 좌지우지하는 정도도 약할 수밖에. 

 

 

커피로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책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면 맛을 제대로 느껴 보지도 못한 채 커피를 다 마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책에 마음을 빼앗겨서 커피를 음미할 마음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쁜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명절을 음미할 마음이 남지 않아서 명절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명절을 싫어하듯이 사실 나도 명절이 싫다. 예전엔 남편이 운전하는 차로 대구를 갔다 왔는데 차가 밀려서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에 도착하곤 했다. 아이들이 커서 이젠 KTX 열차를 타고 다닌다. 좌석표를 구하는 건 하늘에 별따기이고 입석표도 간신히 구해 타는데, 열차 안에서 두 시간 가까이 서 있어야 하는 명절이 즐거울 리 없다. 어디 그뿐이랴. 시집에 도착하자마자 일을 시작해서 집에 갈 때까지 일을 한다. 2박 3일 동안 이렇게 보내야 하는 명절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며느리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시집 식구들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내 몸이 고단하다고 해서 누굴 탓하겠는가. (며느리인 내가 일을 해야지 누가 한단 말인가? 81세이신 시어머니만 일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 시집에 가서 며느리 역할을 해야 하는 시누이가 일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부엌일에 서툰 남편이 일을 해야 하는가?) 어쨌든 시집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시어머니다. 시누이들도 자기 시집의 일을 끝내고 친정에 오면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럼 남편은?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느라 돈벌이로 매일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이런 남편을 명절까지 부려먹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며느리로서 명절 음식을 만드느라 고생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음식을 결국 내가 싸가지고 온다. 싸온 음식으로 며칠 동안 반찬 걱정 없이 산다. 그러니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시집에서 만들었을 뿐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우리 집에서 음식 만들며 보낼 시간을 시집에서 보낸 것뿐이니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불만이 있다면 이 나라의 명절 문화에 불만이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명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명절이 다가올 즈음 바쁘게 살며 딴 생각에 몰두하기. 그래서 명절을 보낼 때 마치 소나기 한 차례 맞듯 가볍게 지나치기. 이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이다.

 

 

내가 놓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으로 다음의 글을 뽑는다.

 

 

....................
“(…) 네 성(性)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133쪽.
....................

 

 

중요한 것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네.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내 얼굴의 생김새가 어떠한지, 내가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 태어나는지, 어떤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는지 등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네. 이런 중요한 것들이 아닌 사소한 것들에 주목해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들이네.

 

 

다음의 글도 주목해 볼 만하다.

 

 

....................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런데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밥벌이를 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82쪽.
....................

 

 

우리는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자신에게 어떤 직업이 적합한지 알 수 없다. 뭐든 직접 해 봐야 아는 것인데 세상에 있는 그 많은 일들을, 그 많은 직업들을 어떻게 경험해 볼 수 있겠는가.

 

 

다음의 글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잘 표현한 대목으로 뽑는다.

 

 

....................
역사 속 서로 다른 지점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사람들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한다고 라몽이 자기 이론을 피력했을 때, 알랭은 즉각 자기 여자 친구를 떠올렸는데, 정말 사랑하는 연인들이라 해도 서로 태어난 날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들의 대화란 서로의 독백이 대부분 이해되지 못한 채 그저 뒤얽힌 것일 뿐임을 여자 친구 덕분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81쪽.
....................

 

 

서로의 독백이 대부분 이해되지 못한 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네.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였다고.

 

 

....................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인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33쪽.
....................

 

 

 

 

 


 

 

 

 

 

 

 

 

 

 

 

 

 

 

 

 

 

 

2.
오래전 마르셀 프루스트 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한 권의 책으로 읽었다. 물론 완역본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살펴보니 민음사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전 4권으로 나와 있고, 국일미디어에선 전 11권으로 나와 있다. 프루스트를 알기 위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도 좋겠지만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흥미를 느끼면 그때 프루스트의 저작을 읽어도 될 테니까.
 

 

 

  

  

 

 

 

 

 

 

 

 

 

 

 

 

 

 

3.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은 프루스트의 작품과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전해 주는 책이다. 프루스트의 글을 분석적으로 해설해 놓은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1)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2) 나를 위해서 읽는 방법 3) 시간 여유를 가지는 방법 4)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 5)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등의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라서 이런 제목들에 끌려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 두 작가의 렌즈를 통해서 ‘인간’을 보게 된다. 프루스트의 렌즈를 통해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렌즈를 통해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재밌어서다. 재미가 없다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엔 재밌는 게 많이 있는데 왜 하필 책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 책은 ‘유익함을 얻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만 있고 ‘유익함을 얻는 즐거움’이 없다면 그 재미에 언젠가는 싫증나고 시시해져서 책 읽기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책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이 있는데 그중 지혜를 얻는 것을 으뜸으로 치겠다.

 

 

지혜를 얻는 방법에 대해 말한 글이 있다.

 

 

....................

프루스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생님을 통해서 고통 없이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그는 고통스러운 쪽의 지혜가 훨씬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93쪽. 

....................

 

 

나는 이것을 변형해 이렇게 써 본다.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책을 통해서 고통 없이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물론 고통스럽게 얻는 지혜가 훨씬 더 우월하다.’ 책을 통해 간접 경험으로 얻는 지혜보다 삶을 통해 직접 경험으로 얻는 지혜가 더 낫다는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도 역시 아픔을 직접 경험함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말이다.

 

 

....................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여자, 그리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여자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천재적인 남자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심오하고 더 필수적인 감정의 전 영역을 우리로부터 끌어낸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95쪽. 

....................

 

 

이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천재가 할 수 없는 일을 연인은 할 수 있다는 것. 호의적인 천재에게서 얻는 지혜보다 호의적이지 않은 연인에게서 얻는 지혜가 더 깊다는 것. 호의적이지 않은 연인은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게 아니라 고통을 주게 되는데, 그 고통이 성숙하게 해 준다는 것.

 

 

다음의 글은 우정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

 

 

....................
프루스트는 “우정을 비웃는 사람들은……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어쩌면 그런 우정을 비웃는 사람들이야말로 보다 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그 유대에 접근하기 때문이리라.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183쪽. 
....................

 

 

다음의 글은 사랑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

 

 

....................
Q :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A : 간통이다. 물론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위협 말이다. 프루스트가 보기에, 질투의 개입은 습관에 의해 망가지는 상황에서 관계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치명적인 동거의 단계를 이미 밟은 누군가를 위한 조언은 다음과 같다.

 

한 여자와 살게 되면, 당신은 애초에 그녀를 사랑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든지 바라보기를 금세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분리된 원소가 질투에 의해서 재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235~236쪽.
....................

 

 

이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상대가 권태 없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면 질투를 이용하라.’가 되겠다. 무엇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상황이 되면 그 무엇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이니까.  

 

 

 

 

 


 

 

 

 

 

 

 

 

 

 

 

 

 

 

 

 

 

 

4.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읽으면 프루스트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음을 확인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도 밀란 쿤데라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본다. 내가 이들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들의 저작을 즐겨 읽는 이유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왜 필요할까?

 

 

‘행복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출범한 세종시. 그런데 신문에서 세종시 공무원들의 정신 건강에 비상이 걸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도 힘든데 변변한 편의점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문화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 살다 보니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생겼고 더러 자살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알고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방송되었던 김수현 극본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새엄마와 어린 의붓딸과의 관계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충돌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는 자신이 친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 왜 새엄마를 불쾌하게 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새엄마 역시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심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둘 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다 보니 상대가 미울 수밖에 없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살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이 있다면 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대답하리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다.’라는 깨달음을 많이 얻을수록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타인을 이해하게 되면 최소한 오해 또는 오판으로 생기는 문제가 적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어떤 정책을 세울 때도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같다. 세상이란 바로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이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장식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앙드레 모루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인간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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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9-2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미의 축제>를 읽어보고 싶어요.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들이네요. 저는 민음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중인데 이게 천천히 두 권씩 나오다 보니 앞에 줄거리를 항상 거의 다 잊어먹을 때쯤 다음 권을 읽게 되는 것이 큰 애로네요. 차라리 전권이 다 나왔을 때 제대로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마지막 페크님의 이야기, 기억해 두어야 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4-09-22 21:25   좋아요 0 | URL
멋집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그 긴 글의 여행을 시작하셨군요.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고 나면 큰 일을 하나 한 것처럼 뿌듯하지요.
저도 마음속에서 읽으려고 정해 놓은 책이 있는데 전 3권짜리예요. 그 이상은 자신이 없고 3권까지만 읽을 수 있어요.

세상에서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눈다면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있는 사람`과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님 덕분에 무플을 면했어요. 구세주되시겠습니다.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9-2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누이도 시댁에 가서 며느리 노릇을 해야 하니 내가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페크님은 살아있는 부처님이군요.

페크pek0501 2014-09-23 20:17   좋아요 0 | URL
제가 부처라고요? 헐... 입니다.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9-24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은 노처녀 시누이는 없나봐요.모두 시댁에 가서 일하는 시누이만 있으니...

페크pek0501 2014-09-26 11:45   좋아요 0 | URL
예, 그래요. 시누이는 누나만 두 분인데 다 결혼하셨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시누이들은 손아래 올케를 예뻐하고 손위 올케는 잘 봐 주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남동생의 아내는 예뻐하고 오빠의 아내는 잘 봐 주지 않는다는 뜻.
우리 누나(형님)들은 저와 동서를 무지 예뻐하는 것 같아요. 그게 느껴져요.
내 동생과 잘 살아줘서 고맙다, 하는 표정이거든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9-26 17:13   좋아요 0 | URL
페크 님은 시누이를 비롯하여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군요.안 그런 사람들도 많은데...

페크pek0501 2014-09-28 23:04   좋아요 0 | URL
ㅋㅋ 시댁 식구들이 워낙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세실 2014-09-24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미의 축제 사놓기만 했는데 당장 읽어야겠어요^^
저도 단순하게 덜 진지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덜 받는 편이죠.

페크pek0501 2014-09-26 11:47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이 책상 밑에 가득해요. 읽어야 책장에 꽂을 텐데...
그래도 사고 싶은 신간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독서광이 아니라 책광이라고 할 만해요. 독서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것 같거든요.

세실 님은 지혜롭게 자기 관리를 잘해 나갈 스타일 같아요.
님 같은 사람 보면 부럽죠...
 

 


......................................

멀어져 가는 쥘리의 엉덩이가 라몽의 머릿속에 삼 초간 다시 나타나면서 머리 위로 다시 한 번 서글픈 구름 한 조각이 스쳐갔다. 그는 빠르게 잔을 비우고 내려놓은 다음 또 한 잔(네 번째 잔)을 들고 부르짖었다. “친구야, 딱 한 가지가 나한테 없다, 좋은 기분!”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98쪽.

.......................................

 

 

 

행복한 삶을 위해서,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 필요한 건 딱 한 가지라는 걸 알았네.

 

 

그것은 좋은 기분.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살 만큼 큰 부자라고 해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권력과 명예를 가졌다고 해도 이것 하나 없으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네.

 

 

좋은 기분.

 

 

지금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딱 하나다.

 

 

좋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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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7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추석을 보내기 위해 2박 3일의 일정으로 시집에 갔다 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듯이, 시집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내 마음이 다르다. 들어갈 땐 ‘명절 음식을 만들기 위해 고단하겠구나.’ 하는 마음이고, 나올 땐 ‘시집 식구들과 헤어지기가 섭섭하구나.’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번엔 미리, 2박 3일 뒤에 헤어질 때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로 했다. 시집에 들어갈 때 ‘시집 식구들과 헤어질 땐 섭섭하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마음가짐에 따라서 기분이 얼마나 다른지...

 

 

 

 

 

 

2.
2박 3일은 시집에서, 어제 하루는 친정에서 보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딸 노릇하랴, 며느리 노릇하랴 바빴다. 명절이 일 년에 두 번밖에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두 번이니까 할 만한 거지. 어제로 추석 연휴가 끝났다. 힘든 숙제 하나 끝낸 기분이랄까.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 행복하다. 행복해 죽겠다.

 

 

 

 

 

 

3.
어울리지 않게 내가 맏며느리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딱 철없는 막내며느리가 어울리는데... 내가 맏며느리라고 하면 친구들이 웃는다. 그 웃음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아랫동서가 시집온 그해, 부엌일에 서툴러 내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이렇다.

 

“형님, 저는 뭐 할까요?”

 

만약 동서가 미웠다면 “안 가르쳐 줘.”라고 내가 답했겠지만 심성이 고운 예쁜 동서라서 친절히 답해 줬다.

 

“자넨 나물이나 다듬고 있어.”

 

그런데 말이다. “형님, 저는 뭐 할까요?”라는 대사를 내가 읊어야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랫동서 자리가 나는 부럽다.

 

나는 맏며느리보단 막내며느리가 좋고, 대장보단 졸병이 좋고, 회장보단 비서가 좋은 사람이다. 재력가 회장은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 휴식 시간에도 머리가 복잡하지만, 유능한 비서는 회장이 시킨 일만 하면 되니까 머리가 복잡할 리 없다. 재력가 회장은 회사가 망하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기도 하지만, 유능한 비서는 회사가 망하면 다른 데 취직해 버리면 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의 책임을 져야 하는 윗자리보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랫자리가 좋다. 부담 없는 자리, 안전한 자리가 좋다. 그게 내게 맞는다. 옛날 왕의 가족으로 예를 들면 나는 왕이 되기보단 왕의 형이나 동생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다. 뭐하러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야 하는 왕의 자리를 탐내나, 하는 생각이다. 왕의 형이나 동생으로 살면서 술이나 마시고 시나 읊으며 사는 게 좋지, 하는 생각이다. 권력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것을 가지기 위해 흘려야 하는 피땀이 싫다.

 

 

 

 

 

 

4.
추석 전날, 남자 셋이 당구를 친다. 한 남자가 먼저 집에 가야겠다고 말한다.


남자 1 : 미안한데 나 먼저 가 봐야겠다. 마누라는 집에서 일만 하는데 늦게 들어가면 화내지 싶다. 그리고 자형들이 와 있대.


남자 2 : 니는 마누라도 있노? (남자 2는 이혼했음.)


남자 3 : 니는 자형도 있노? (남자 3의 누나는 이혼했음.)


남자 2 : 먼저 갈 거면 마누라도 있고 자형도 있는 행복한 놈이 돈 내고 가라.


남자 1 : 하하~~ 알았다.

 

여기서 ‘남자 1’이 내 남편이다. 남편이 집에 들어와 들려준 이 얘기에 우리 시집 식구들 모두 웃었다. (근데 이거 웃어도 되는 일인가?)

 

 

 

 

 

 

5.
이번 늦여름은 유난히 길다.
낮엔 덥고 아침저녁으론 선선한 늦여름. 
낮의 더움이 저녁엔 물러나는 이 계절이 나는 좋다.
곧 ‘기다리고 섰는 가을’이 ‘아직 남아 있는 여름’을 완전히 밀어내리라.
‘아직 남아 있는 여름’이 꼼짝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는 늦여름과 작별해야 한다.
아마 작별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어느새 우린 가을 속에 있겠다.
곧 그런 날이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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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9-1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가족끼리도 유대감을 갖기 바랍니다. 이런 바람은 자신의 아들은 누구의 사위가 됨을, 자신의 딸은 누구의 며느리가 됨을 이성적으로 알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죠. '시누이 가족이 곧 도착하니, 만나고 가라는 ...'

페크pek0501 2014-09-10 16:44   좋아요 0 | URL
하하~~ 딸이 온다며 며느리를 잡아 둔다... 그 며느리도 친정에선 딸인데 말이죠.
사위가 집안일을 하면 흐뭇하고 아들이 집안일을 하면 속상한 어머니들의 심리도 재밌지 않습니까?

hnine 2014-09-1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전날 음식 만드느라 앉지도 못하고 있는데 남편이 와서 묻더라고요. "나는 뭘 하면 되나?"
남편 얼굴 쳐다보지도 않고 목소리 깔고 대답했지요. "찾아서 해" ㅋㅋ
숙제를 마친 기분이라는 말, 딱 그 기분이예요. 전 힘들고 길 막힌다고 친정에도 안갔어요. 다음주 일요일에 간답니다. 이해해주시는 친정 부모님이 고맙지요.
저도 막내며느리가 되고 싶었던 맏며느리랍니다 ^^

페크pek0501 2014-09-11 11:22   좋아요 0 | URL
아, 남편 님이 참 좋은 남편이시네요.
숙제를 마친 기분... 님도 공감하시는군요. 속이 다 시원해지더라고요.ㅋㅋ
아마 우리 시어머니도 그러실 거예요. 며느리들보다 더 힘든 사람이 시어머니들일 것 같아요. 며느리가 오기 전까지 장을 다 봐 놓고 웬만한 것은 다 손질해 놓으시니까 명절 때마다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정말 어깨가 가벼운 막내며느리이고 싶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4-09-1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남과 맏며느리는 아무래도 권리보단 책임이 더 무겁죠.사장이나 왕은 책임보다 권리가 더 많고요.그래서 맏며느리 하겠다고 경쟁이 치열하진 않지만 사장이나 왕은 서로 하려고 박터지게 싸우지 않습니까.

페크pek0501 2014-09-11 11:25   좋아요 0 | URL
하하~~ 재밌게 쓰셨습니다. 맞는 말씀 같네요.
맏며느리들은 어깨가 무겁답니다. 그래서 맏며느리가 아닌 사람을 부러워하죠.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으로 일하고 왔습니다.^^
저는 맏며느리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세실 2014-09-1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남이 싫어 둘째랑 결혼했는데 시댁 옆집에 사는 덕분에 장남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신랑이 집에 고장난거 고쳐드리기, 벌초할때 진두지휘하기. 저는 일주일에 한번 찾아 뵙기, 명절에 수시로 들락거리기....
다행히 아직은 두분 건강하셔서 제가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긴 합니다.
시골 도서관장은.....좋은걸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4-09-12 15:05   좋아요 0 | URL
으음~ 세실 님은 착한 며느님일 듯...
저랑 반대네요. 님은 둘째면서 맏며느리처럼 사시고
저는 맏며느리인데 둘째처럼 살고... 동서와 나는 서울에 살기 때문에 지방에 사시는 어머님을 자주 찾아 뵙지 못해요. 어머님과 가까이 사는 두 누나들이 어머님을 보살피고 있는 형편이죠.
병원에 갈 일이 있을 때도 누나들이 수고를 한답니다. 그래서 미안하죠.

도서관장님 자리는 제가 보기에도 좋아 보여요. 오너는 아니니까 망할 염려가 없고 권위와 명예는 님의 손에 쥐고 있는 것 같고... ㅋㅋ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제가 회장직보단 비서직을 좋아하지만 비서보단 회장과 친하게 지내길 좋아한답니다. 큭큭 ...

오늘 꼭 참석하라는 세미나가 있어서 아침부터 서둘러 갔다 왔는데 어찌나 멀던지 올 땐 화가 났어요.
그런데 집에 와 씻고 나니 상쾌해지네요. 세실 님을 보니 더욱... ^^

마태우스 2014-09-1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랫사람으로 사는 게 좋아요 윗사람의 자질이 제겐 없더라고요. 시댁식구와 헤어지는 게 서운할 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전 남자라서 그런 걸 완전히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댁은 힘든 거 아닌가요. 음식 안하고 같이 있기만 해도 피곤한... 제가 너무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걸까요. 암튼 힘 내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화이팅.

페크pek0501 2014-09-17 10:32   좋아요 0 | URL
으음~~ 언제부턴가 제가 친구들을 만나면 쫄병이 되어 있더라고요.
뭐든 하자는 대로 하고요, 좀처럼 의견을 잘 내지 않아요. 분명히 예전엔 안 그랬는데 말이죠.
저는 시댁 식구들을 좋아하는 편에 속해요. 며느리들을 잘 배려해 주는 시댁인데, 그것에 비해 며느리 역할을 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아, 님은 여자 세계를 많이 아시는 것 같아염...
저도 파이팅!!!!!!!!!!
 

 

 

오늘 아침, 침대에 앉아 티브이를 보다가 침대 옆에 있는 책상 위로 손을 뻗어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펼치니까 이런 글이 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네.

 

 

....................

“ (…) 어떤 여자가 맞은편에서 오는데 마치 세상에 저 혼자인 것처럼 왼쪽도 오른쪽도 안 보고 그대로 전진하는 거야. 둘이 부딪쳐. 자, 이제 진실의 순간이야. 상대방한테 욕을 퍼부을 사람이 누구고, 미안하다고 할 사람이 누굴까? 전형적인 상황이야. 사실 둘 다 서로에게 부딪힌 사람이면서 동시에 서로 부딪친 사람이지. 그런데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부딪쳤다고, 그러니까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가 하면 또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상대에게 부딪힌 거라고, 그러니까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면서 대뜸 상대방을 비난하고 응징하려드는 사람들도 있지. 이런 경우 너라면 사과할 것 같아 아니면 비난할 것 같아?”


“나라면 분명 사과하겠지.”


“아이고, 이 친구야, 너도 사과쟁이 부대에 속한다는 거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래, 그렇지.”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57~58쪽.

....................

 

 

 

사과를 하는 건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고 밝히는 것이고,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자기한테 욕을 퍼붓게 만드는 것이란다.

 

 

이 글을 읽으니 말에 담긴 속뜻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상대의 말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알아챌 수 있는 어떤 뜻이 담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어 본다. 오랜만에 만난 두 남자. 이런 대화가 오간다.

 

 

A : 오랜만이야. 언제 만나 소주나 한잔 하지.
B:너는 아직도 소주냐? (웃으며) 우리 나이가 몇인데...

 

 

B가 별 뜻 없이 한 말처럼 말했지만 A는 기분이 상한다. 그 말에서 속뜻이 저절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도 소주냐? 우리 나이가 몇인데... 이젠 몸을 생각해서 양주 같은 고급 술을 마셔야지.”라는 말로 A는 들었다. 그것은 B가 소주를 먹는 사람들을 자기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구분하고 자기는 그런 부류보다 경제적 수준이 높음을 나타낸 것 같았다. 그리고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 같았다. 그 말 한마디로 B가 평소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말 한마디로 그가 사람들의 등급을 매기는 사람으로 보였다.

 

 

다른 예.

 

 

“당신이 좋아지면 어떡하죠? 그러니 그만 만나는 게 좋겠어요.”

 

 

이 말엔 상대가 좋아지고 있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상대가 좋아지지 않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생각을 못한다.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앞으로 당신이 싫어지면 어떡하죠?”

 

 

이 말엔 상대가 싫어지고 있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상대가 싫어지지 않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생각을 못한다.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이 글은 좋네요.”

 

 

이 말은 이 글만 좋고 그동안 써 온 글은 좋지 않다는 뜻.

 

 

“이 글도 좋네요.”

 

 

이 말은 이 글도 좋고 그동안 써 온 글도 좋다는 뜻.

 

 

내가 어느 댓글에서 “오늘 비가 와서 참 좋아요.”라고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실언을 한 것 같았다. 이 말은 내가 비 피해로 인해 생기는 수재민에 대한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나타낸 듯싶어서다. 그래서 비가 와서 좋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

 

 

아, 어려운 말말말!

 

 

이런 것 저런 것 따지면 말을 하기도 글을 쓰기도 어렵다는 걸 느낀다.

 

 

 

 

 

 

 


(후기)......................................

 

- 우연히 책을 펼쳐 밀란 쿤데라의 글을 본 오늘, 그 글로 인해 글 하나 올리네.
- 난 사과쟁이가 아닌 사람보다 사과쟁이인 사람을 좋아하고, 또 나도 사과쟁이로 살고 싶네.
- 매일 새벽 1시 넘어 자고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야 하는 생활로 잠이 부족하네.
- 몸은 잠을 자고 싶다는데 몸이 바라는 대로 하지 않고 정신이 이끄는 대로 글을 썼네. 졸음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셨네.
- 난 눈 오는 풍경보다 비 오는 풍경이 더 좋네. 앞의 글에서 비가 와서 좋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해 놓고... 그래도 이 말을 해야겠네. ‘오늘 비 한번 참 품격 있게 와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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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9-0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 비교적 사회문화적인 것에 의해 결정되겠지요. 영어 잘 못하는 한국인이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That's too bad.' 대신 'I am sorry.'라고 하였다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법판결을 받은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어 선생님의 말씀, 사실 여부는 모르겠고.) 비슷한 경우로 의료 분쟁의 경우 의사의 사과는 100%, 의사 책임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도의적 사과까지 하지 못했죠. (지금은 조금 바뀌었지만.)

서양보다 동양, 우리나라에서 암시적인 언어를 많이 쓰니, 공감능력이 없는 남자는 여자들에게 핀잔을 받게 마련입니다.

페크pek0501 2014-09-04 13:42   좋아요 0 | URL
좋은 예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걸 알았더라면 좀 영양가 있는 글이 되는 건데 하는 생각... 이 듭니다. ㅋ

그래서 자동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나면 서로 큰 소리부터 치고 보는 겁니다. 목소리가 작으면 자신의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요. 그러니 매너 좋은 운전자가 되긴 틀린 거죠. 이런 문화권에선...

공감 능력이 없는 남자... 남자가 여자에 비해 센스가 부족한 건 사실 같아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9-0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말조심하지 않으면 큰 다툼이 일어나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명절!

페크pek0501 2014-09-04 13:43   좋아요 0 | URL
촌철살인이에요. 하하~~
저도 조심해야 돼요. 시댁에서 3일간...

마립간 2014-09-04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소드 한 가지가 더 생각나는군요. 미국의 한국동포 직장맘이었는데, 직장일을 끝나고 돌아와보니, 아이가 사고로 죽어있었습니다. 직장일을 하느라고 아이를 돌보지 못한 죄책감에 ; '내가 아이를 죽였어'라고 혼잣말을 하였는데, 이 혼잣말이 나중에 재판에서 살인의 유죄 증거가 되었죠. (아이를 혼자 놔두는 것은 아동학대죄이지만, 살인죄는 아닌데.) 한국 동포들이 한국인의 언어습관과 함께 탄원서를 보냈지만 인정되지 않았죠.

페크pek0501 2014-09-04 13:46   좋아요 0 | URL
안타까운 일이군요. 언어습관이 인생을 망칠 수도 있군요.
저도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는지, 말을 하고 나서 '아, 그건 실언이었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글은 수정하면 되지만 한번 뱉은 말은 수정하기 어려우니
신중해야 하는데... 어렵습니다.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맑음이에요. 좋은 하루 되세요.^^

다크아이즈 2014-09-04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 보니까 생각나요. 몸을 이기고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그 내공이 부럽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정신이 아닌 몸으로 글을 쓴다는 걸 느꼈어요.
꼭 써야 할 글이 있어서 붙들고 있으면 정신이 몸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 필히 횡설수설하게 되더라구요. 그럴 땐 미련없이 관두고 쓰러져야 합니다. 몸이 글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허약하기 그지 없는 제 정신력을 탓하곤 하지요.

말도 조심, 몸 언어도 조심... (나쁜) 말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않는 게 아니며,(좋은) 말 한다고 다 칭찬하는 게 아님을 공기 중에 흐르는 분위기로 알 수 있지요. 그럴수록 몸과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어요.^^*

페크pek0501 2014-09-04 13:52   좋아요 0 | URL
1. 몸과 마음은 하나다, 이런 말이 책에 많이 나오는데 저는 그 둘이 각각 따로 놀 때가 많다는 걸 느낍니다. 팜 님도 그러시군요...
가령 오늘 같은 날, 몸은 사우나를 하고 싶은데 마음은 귀찮아서 사우나하러 가지 않거든요. 어떤 날은 몸은 잠을 자고 싶은데 그래서 졸리운데 마음은 할일이 많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졸음을 깨거든요. 어떤 때는 몸이 이기고 어떤 때는 마음이 이깁니다.

맑은 하늘이 아름다운 날에 기분이 맑은 하루가 되시길...

마태우스 2014-09-1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소홀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글구 저는 "이 글은 좋네!"라는 말이 "이 글도 좋네"보다 좋아요. 그 글만 유독 잘썼다는 말 같아서요. 막상 들으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그나저나 넌 아직도 소주냐,는 사람이 있다면 저도 같이 안놀 거에요. 소주가 얼마나 좋은 술인데

페크pek0501 2014-09-17 10:28   좋아요 0 | URL
저도 님의 서재에 소홀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도 잘하겠습니다.
이 글은 좋네, 라는 말이 좋으시다니 님의 겸손을 발견하게 되는 대목이군요.

ㅋㅋㅋ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혹시 양주만 마시는 교수님이 아니신지... 호호~~

마태우스 2014-09-17 11:37   좋아요 0 | URL
아니어용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다고 저 정말 소주 좋아해요

페크pek0501 2014-09-21 21:05   좋아요 0 | URL
아, 성함이... 알고 있음...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