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일상생활 - 사랑, 결혼, 그리고 페미니즘 현대의 지성 119
크리스토퍼 래쉬 지음, 엘리자베스 래쉬 퀸 엮음, 오정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장바구니담기


래쉬가 묘사해놓은 현대의 초상에서 보여지는 대부분의 현대의 삶은, 모든 활동 영역이 엄격한 검열 과정을 거쳐야 하며, 과학과 합리성이 인간의 경험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고, 훈련된 전문가들만이 인간 존재의 일상적인 행위들을 지도해줄 수 있다는 전제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러한 합리화 원칙에 의해 재구조화된 생활은 권력을 확장하기 위한 법인형 자본주의와 현대 자(12)유국가주의의 물결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것은 관료 구조와 온정주의적 윤리를 수단으로 이룩해낸 것이었다. 국가를 대신해 활동하는 서비스 직업은 개인적인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와,일상의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 습관과 관습 대신 비교적인 기술을 쓰도록 하는 데 일조하였고, 민주주의와는 상치되게 지식층들에게 의존하는 상황을 불러들이게 되었다.-12,13쪽

감시와 조사 궁극적으로 외부 전문가들에 의한 조작에 모든 생활이 종속됨에 따라 인간 경험의 풍부한 국면을 보여주는 일상생활,특히 래쉬에게는 민주주의 시민의 목표이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일상생활은 강등되어졌다. -13쪽

래쉬는 20세기에는 사실상 낭만적 사랑에 대한 반감 현상이 나타났으며,이는 정열적 사랑과 결혼이 공존한다는 생각의 소멸을 의미하고,다시 에로스를 위험한 존재로서 두려워하는 것으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우리 시대는 정열적인 끌림에 기초하여 평생을 함께 보내야 하는 관계보다는 안전하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다고 구속적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우정에 더 의지하고 있다.장식적으로 표현된 성욕보다는 사실에 입각한,감정이 절제된 이해심을 더 원하는 세대인 것이다.성욕에 관한 과학적인 해석과는 달리 성욕에 관한 문학적,예술적 묘사는 종종 신비스러움과 충동이 행복하고 견고한 결혼의 기반임을 인정한다.-16쪽

19세기 중엽에는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을 비롯한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편의상 여성과 남성이 근본적으로 지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정성 예찬을 믿는 사람들(많은 역사가들에게는 반동으로 몰렸다)은 상류 사회 풍습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을 증가시켜 좀더 자유로운 여성성의 개념을 창조하였다. 여성은 결과적으로 도덕적 질서의 필연적 수호자들로 여겨졌으며,모성의 영향력은 가정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치유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18쪽

19세기 가정의 이상화는 가부장적 관계를 재생산한 것이 아니라 그 대신에,래쉬가 논쟁하는 바,여성에게는 여전히 똑같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신부성주의neopaternalism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였다.많은 여성들은 권위를 주장하는 방법으로서 가정성 예찬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그 과정에서 그들은 가족 문제에 대한 조언을 남발하는 이들과 의사들을 종종 그들의 편으로 받아들였다.아이러니컬하게도 여성들이 이렇게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을 수용한 것은 전문가와 치료적 사고방식에는 헤게모니의 발판을 마련해주고,여성들 자신의 권위는 상실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18,19쪽

역설적으로 래쉬의 해석에서는 가족의 사생활 중심주의로의 경향이 가족에 대한 완전한 침입을 수반하게 되어 자유적인 민족국가를 뒷받침해주는 치유 정신의 승리를 불러왔다.개인주의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가족의 사생활 중심주의는 과다한 감정적 요구를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에 위치시켰고 이러한 긴장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치료를 위한 조직이 개입하였다.노골적인 힘의 과시가 아닌 감시와 잠입을 통해 자신의 힘을 지탱하였던 자유 국가는 이러한 가정의 위기로부터 이득을 보았다.이렇게 '비강합적,비권위적이고 교묘히 농간을 부리는 지배'는 원래는 가부장적 지배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의 효과에 대해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듦으로써 새로운 국(24)가 권위를 형성하였다. 외부 전문가들의 침입,전문 인력들에 의한 개인 생활과 가족 생활에 대한 책임 인수,그리고 삶에 대한 거시적 합리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차원을 넘어서 더 숭고한 목적에 공헌함으로써 얻게 되는 의지와 자존감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24,25쪽

가정 예찬을 껴안은 여성들과,의사들과 동맹을 맺은 많은 여성들은 일시적으로는 가족에서의 그들의 위치에 힘을 얻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외부인들에게 새로운 힘을 이양하는 꼴이 되었다.후기 참정권론자들이 진보파의 공평무사한 과학적 전문 지식에 대한 무한한 신봉과 개혁파들의 섹슈얼리티 제어를 지지했던 것은,모든 인간 행동을 과학적 관찰과 통제에 종속시키려는 거시적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25쪽

이와 같이 구시대의 전통인 가부장제가 자유주의 국가라는 새로운 헤게모니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대국적인 그림이다.래쉬에게는 이 두 가지 견해 모두 탐탁치 않게 여겨졌지만 분명한 것은 래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과학만이 유일한 방법이 되지 않는 그런 삶이라는 것이다.(하버마스가 말하듯)"삶에 있어 식민화는"존재하지 않는다. 가정은 가부장적이(25)지 않으며 과도하게 사유화되거나 전문가들에 의해 침해받지 않은 곳이다.대신 그것은 밖을 내다보고 구성원의 감성적 필요만이 아닌 그 이상을 성취해주며 개인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고 공동체적으로 인간적인 삶을 형성하는 자발성과 관습의 통합체인 일상생활의 기초를 만들어낸다. 즉 평등성 또는 민주주의라는 의미 있는 개념의 기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이상 책머리에 중 일부-25쪽

18세기 여성주의자들은 처음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이 교육에 의해 변화 가능한 사회적 관습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반면,여성에 관한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인간이 성 역할에 맞춰서 성장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그들에게는 현재 여성의 모습-여자들이 그렇게 되도록 운명지어진 모습-이외에 여자들이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 또는 어떤 존재가 되야 하는지는 상상도 못 했던 문제였다. 그들은 미덕을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행동으로 정의하였는데 이 지위에는 사회적 계급과 젠더도 포함되(38)어 있었다.여성성의 장단점에 대해 토의했던 이들은 태생적으로 한 성이 다른 한 성보다 더 우월하게 만들어졌는지 아닌지의 추상적 문제는 상관하지 않았다.그러한 질문은 중세 또는 초기 근대적 사고에서는 전적으로 무의미하게 여겨졌을 것이다.-38,39쪽

17~18세기에 출현하기 시작한 가정생활에 대한 새로운 개념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 현대 페미니즘은 결혼과 남녀 평등을 화해시키려 노력하였다. 세속적인 견해에서 보자면 이것은 유토피아적인 시도였다. 결혼에 대한 비판론은 수도원 생활에 대한 가톨릭의 비판론과 닮아 있다.그것은 그 제도가 공격을 받아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부패하고 음탕한 수도승들을 다른 개신교도들처럼 신랄하게 비난하면서도 수도원 생활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시하지 않는 에라스무스와 라블레 같은 작가들처럼,결혼의 비판자들-종종 똑같은 작가들이었다-도 결혼이 항상 사랑하는 이들의 결합이기보다는 혈통과 재산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임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57쪽

결혼뿐만 아니라 낭만적 사랑 자체도 인기가 없어졌다.첫눈에 빠진 사랑은 결혼을 위한 든든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우리는 듣고 또 들어왔다.같은 취미와 취향,서로 타협하려는 마음,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이런 것들이 사랑이 식었을 때 더 오래갈 것이다.연인들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그들 중 하나가 상대방을 벗어나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정절이나 영구불변,영원한 애정을 기대하는 것은 실망을(70)자초하는 것이다.우리에게는 동성간의 우정이든 이성간의 유형이든,우정이 사랑보다 바라는 것이 적고 덜 강렬하기 때문에 더 믿을 만해 보인다.우정은 성과(오늘날 적어도 안전한 성과)쉽게 공존하지만,예술과 사상에 의해 성적 충동을 장식한 것인 에로스와는 공존하지 않는다.우리는 우리의 성적 충동이 장식되지 않은 것을 좋아하며,삶의 현실 가운데 자기 자리에 안전하게 놓여 있는 것을 좋아한다.-70,71쪽

성의 즐거움조차 이제는 에이즈에 의해 그늘이 졌다.성욕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위험하고 어둡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는 인식-그것이 장식되어 있는 형태에 있어서는 더욱더 그러한데-이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돌아왔다.그렇게 혼란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 지속적인 관계로 이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에로스가 문명화시키는 영향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에로스가 안정시키는 영향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엄청난 신비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71쪽

중매 결혼이 사랑에 기초한 결혼에 자리를 내주면서,결혼의 근대화가 젊은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증가시켜주었다고 일반적으로 가정된다. 만약 그렇다면,영국과 대부분의 서구 유럽에서 '근대화'의 시작은 16세기로 연대가 추정되어야만 한다. 그 이후부터 그리고 아마도 훨씬 이전부터,영국에서 결혼은 상당히 늦은 나이에 이루어졌고,게다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이들의 비율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보다 훨씬 더 높았다.이 두 사실은 결혼이 거의 예외 없이 중매되고 따라서 이른 나이에 결혼이 보(96)편적인 경우에서보다 개인의 자유로운 동의에 훨씬 더 많이 의지했음을 보여준다.-96,97쪽

그러나 바로 이 자유는 결혼의 근대적 개념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에 점점 더 많은 공격 아래 놓이게 되었다.초기 단계에 근대화는 물론 강요된 결혼에 대한 공격의 형태를 띠었지만,또한 부모 동의의 중요성,신중함과 주의의 필요성-그리고 또한 주목되어야 하는 것은,결혼 결합의 분해 불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강조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특히 이는 결혼 예약과 비밀 결혼에 대한 오랜 투쟁의 형태를 띠었는데,이는 부르주아 개혁가들에게는 개인적 도덕의 새로운 기준과 노동 훈육의 새로운 양식을 부과하고 옛 관습에 완고하게 집착하는 대중에게 근검의 미덕과 즉각적 만족의 거부 및 식견을 주입하려는 일반적 캠페인의 한 부분이었다.-97쪽

세상은 개혁의 필요성을 절규했고,여성의 가정적 재능은 결코 이들이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그것은 가정적인 미덕에 사회 전반에 대한 봉사라는 의무를 부여했다.어떠한 경우에도 가족은 외적인 영향력-알코올 중독,매매춘,투자광,부를 향한 광란의 아귀다춤-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을 수 없었다.이러한 악이 가족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의식 있는 주부라면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악에 대항하는 공적 운동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논의가 가능했다.일찍이 1820년대와 30년대에 여성들은 가족 생활에 위해가 되는 요소를 없애려는 도덕적 개혁 모임을 조직하기 시작했다.-114쪽

새로 나타난 행정과 전문직 엘리트들은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자본주의 최악의 오용을 완하하였다고는 하지만,그만큼 특화된 훈련과 전문성에 대한 파괴적인 숭배에 의존하였다.점점 더 정교해지는 사회 봉사 체계-복지 국가의 기반-를 통해 시장을 제어하고자 하는 노력은 자멸적인 것이었다.그것은 일상의 신뢰(122)능력을 침식했고 가족을 관료의 침입에 노출시켰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믿음에 대한 광범위한 천착은 가사와 관련된 어떠한 행동이든,심지어 가장 내밀한 문제에 대해서조차도 점차 전문적인 조력을 존중하여 결정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많은 여성들은 그들의 권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가족 밖의 전문가들과 연대하였다.-122,123쪽

노동 세계와 가정 생활의 극단적인 분리를 전제로 하는 현대의 가정은 19세기의 창조물이다.가내 수공업의 쇠락과 급여 노동의 발달은 가족을,점차 비인격적인 시장 체제에 지배당하는 공적 세계로부터 떨어진 사적인 휴식처로 인식하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혹은 필요하게-만들었다.비정한 세상에 존재하는 안식처로서의 가족상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산업적 질서에 의해 야기된 양가적인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128쪽

사회적 가사 social housekeeping의 시대-130쪽

청소년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도록 요구받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에 일어난 새로운 일이며,근대 민족 국가의 발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정규 교육은 청소년기를 연장해주며,동시에 성인 세계와의 감독되지 않고 교육학적으로 중재되지 않은 접촉을 가로막는다.다행히도,학교들은 결코 완전히 자기 충족적이지는 않다.세상의 지식을 열망하는 청소년들은 주로 허가받지 않은 독서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교육학적 감독을 어떻게든 피해 다니고 어른들의 방식에 대한 대리 경험을 얻는다.-168쪽

9장 치료국가에서의 생활 / 국가별로 존재하는 사소한 차이를 제외하고는 가족 형태는 서구 전역에 걸쳐 나타난 유사한 패턴을 따라 발달해왔다.19세기에 이르면 젊은이들은 부모의 직접적 관여를 최소화한 채 결혼할 권리를 획득했다.결혼은 두 가계의 결합이라기보다는 두 개인의 결합이 되었다.또한 아동의 취약성과 순수함을 새로이 강조함으로써 육아,특히 아이의 발달에 어머니가 끼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아이들 각자에게 이제는 그들이 당연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되기 시작한 권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부모들은 자녀의 수를 의도적으로 제한하게 되었다.대가족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부부(199)중심적인 가족 형태에 자리를 내어주었다.(성별에 따른 영역이라는 원칙에 의해 합리화된)가정성 예찬과 성별에 따른 역할의 엄격한 분업은 여성을 일터로부터 배제시켰지만 가족 자체에는 여자들이 더 큰 통제권을 가지도록 만들었다.생산 기능을 잃어버린 가족은 이제 자녀 양육과 감정 위안이라는 측면에서 특화되었고,시장이라는 비인간적 원칙을 중심으로 조직된 세계에서 필요성이 커진 피난처를 제공하게 되었다.-199,200쪽

가정성 예찬은 여성을 가정 내에만 예속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족뿐 아니라 가족의 이해에 관계된 모든 사항에 대한 도덕적 결정권자로 위치시키기도 했던 것이다.-201쪽

가족 생활의 감정적 측면이 강화되면서(데글러와 다른 많은 학자들은 이 새로이 등장한 친밀함에 너무나도 감탄하면서 큰 주의를 기울였다)가족간의 협동이 증대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내와 남편,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이러한 갈등은 부모 자식 간의 성적 매력,그리고 이것이 훗날 성인 남녀간의 관계에 초래하게 되는 복잡한 문제들을 그대로 드러나도록 만들었다.-207쪽

성적,사회적 통제에 대한 예방 과학 preventive science-208쪽

푸코에 의하면 19세기의 성에 대한 태도를 특징짓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다변이었다.즉 감정을 담화로 번역해냈던 것이다.성욕에 대한 지각을 억압하기는커녕,의학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풍부한 묘사로 성에 대해 충분히 말하도록 장려했다.-210쪽

참고 - 치료 국가는 필립 리에프philip rieff,니콜라스 키트리nicholas kittrie 등이 호칭함. -211쪽

부르주아의 가정성에 대한 예찬은,한편으로는 귀족주의적 방탕함에 반대하고,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적 부도덕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 정의하였다.-214쪽

돈젤로는 제휴 체계의 파괴가 빈민의 가정화와 동시에 일어났음을 밝혔다.19세기 초,의사와 공무원들은 빈민간의 불규칙적인 결합,사생,근친상간,그리고 다른 여러 형태의 성적 부도덕이 이들을 만성적 비도덕화의 상태에 두고 근면한 노동자가 되는 길을 막아서 결국 공적인 자선에 의존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가정화를 위한 규칙적 습관들을 장려함으로써,개혁가들은 이들을 근엄하고 자립적인 사람들로 만들기를 희망했다.여기서 다시 한 번,이들은 남편에게 맞서서 주부들을 조종하려 했고,여자들을 가정 내 도덕의 중재자로 만들려 했다.돈젤로의 공식에 의하면,이들은 가족들의 정부를 가족을 통한 정부로 대체한 것이다.-215쪽

이러한 개혁은 세대간의 자율적인 결속을 허용하는 대중적 영토를 침식해 들어갔다.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는 학교,사회 운(215)동 단체,그리고 청소년 법원 들에 의해 수행되는 국가의 감독 하에 놓이게 되었다.감독 기관은 데글러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가족 구성원 간에 불신을 조장하는 동시에 아동과 법원간의 적대적 관계를 불식하고,이로써 가족의 권리가 법을 강제하는 도구에 얼마나 협력하느냐에 달려 있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215,216쪽

청소년 법원은 처벌을 예방으로 대체했으며,판결을 감시로 대체했다.법원에서는 청소년의 범죄를 건강하지 못한 가정 환경의 징후로 다루었고,이는 '인간 관계를 다루는 기술자들'이 가족의 도덕성을 심문하고 필요하다면 아이를 집으로부터 격리시키고,가족들에게 새로운 사회적 위생의 원칙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정당화시켜주었다.-216쪽

가족은 이론상으로는 언제나 정당하지만,실제로는 언제나 의심받고 있다.-218쪽

현재 상황에 대한 나의 인식은 여기에서부터 돈젤로의 생각과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는 프(220)로이트와 케인즈를 자유주의 질서의 위대한 안정자로 보았다.프로이트와 후견적 기관을 너무 가까이 일치시켰다는 점을 제쳐두더라도,돈젤로는 케인즈와 정신의학적 조정법 양쪽 모두에 존재하는 불안정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케인즈 식의 경제학은 자유 자본주의의 만성적 문제 중 일부는 통제가 가능하도록 했지만,우리가 오늘날 너무도 명백히 본 바와 같이 장기적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치료학적 방식의 사회 통제에 대해서도 같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220,221쪽

이러한 통제는 사회적 의존 형태를 만들어내고,정치적 참여를 방해한다.그럼으로써 사회적 훈육이 지닌 문제 중 일부는 단순화할 수 있었겠지만,동시에 필요가 있을 때 정치 지도자들이 정책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는 일도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221쪽

유권자들의 냉당함,대중의 무관심과 냉소주의,지도자들이 우리의 주의를 끌고자 하는 국가적 질병, 이 모두는 대중이 참여하는 옛 기제가 침식되고 시민이 전문 지식의 소비자로 전락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수동적이고 의심에 가득 찬 비정치적인 유권자는 더 이상 국가적 단결이라는 명분으로 고무되지 않는다.이러한 유권자에게 희생을 부르짖는 지도자는 힘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공식적으로는 민주적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사람들은 오로지 그것을 만들어내는 데 관계한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서만 희생을 감수할 것이다. 그러나 치료적 통제의 새로운 기제는 사람들이 정치적 생활에,혹은 자기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여타의 의사 결정에 활발하게 참려하는 것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치료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전에는 반항적이었던 군중을 어느 정도 진정시켰지만,이제는 자신감의 위기에 전면적으로 맞닥뜨리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221쪽

가족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은 돈젤로의 지도를 잘 따라 가족에 대한 국가적 정책을 공식적으로 찾는 일과 아무런 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은 관료들을 그들의 자리에 가만있게 하는 관료들에 대한 정책이다.-22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주의 몫 - 모더니티총서 10
조르주 바타유 지음, 조한경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절판


소모의 개념 중 일부 / 유용하다라는 말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토론은 인간의 사회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 토론에선 토론의 주체가 누구이건 제기되는 의견들이 어떤 것들이건, 결국 근본적인 질문은 회피되고 토론 자체를 그르치게 되는 경우를 종종 확인할 수가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개념들은 얼마나 다양한지,인간들에게 유용한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사람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유용성과 쾌락을 넘어서는,다시 말해 전혀 입증할 수도 없는 원칙들-예컨대 명예와 의무,신과 정신-을 찾아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특히 그 문제가 어려운 것임을 잘 반증(29)하는 한 예이다.그러나 명예와 의무가 금전적 이익을 위한 위선적 수단이라면, 신과 정신은 닫힌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지적 혼란을 숨기기 위해 사용하는 가면이 아니던가.-29,30쪽

전체적으로 볼 때 사회적 활동과 개인의 모든 노력이 가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근본적으로 생산과 보존의 필요성으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예술에 관계된 것이든 허용된 방탕이나 도박에 관계된 것이든 쾌락은 오늘날의 지적 판도로 볼 때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오락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된다.-30쪽

인간의 행위가 생산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철저히 환원될 수는 없지만 소비는 명확히 둘로 구분된다.첫째,소비는 일정한 사회의 개인들이 생명을 보존하고 생산활동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으로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생산활동에 필요한 기본적 조건으로서의 소비이다.둘째,또하나의 소비는 원시사회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활동들로서 궁극적인 생산 목적 또는 생식 목적과는 상관없는 사치,장례,전쟁,종교 예식,기념물,도박,공연,예술 등에 바쳐지는 소비이다. 두번째 부분의 소비들은 생산의 중간 수단으로 이용되는 소비와는 다르기 때문에 순수한 비생산적 소비의 형태를 지칭하는 용어가 필요한데, 나는 그런 소비를 '소모'라고 부르겠다.-32쪽

인간이 아무리 비참한 지경에 이른다 해도, 생산을 목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보존에 대한 배려가 비생산적인 소모에 대한 배려를 장악할 만큼 인간의 불행이 사회보다 우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단 확보된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은 소비계급에 의해 행사되었으며,가난은 모든 사회적 활동으로부터 배척받았다.그래서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권력의 권내에 진입하려면 피를 흘리는 혁명에 의한 파괴,다시 말해 한계를 모르는 사회적 소모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소모에 비하면 생산과 획득은 부차적인 것으로서, 생산과 획득의 부차적 특성은 교환이,양도된 물건들의 사치스러운 파괴로 다루어지던 원시 경제 속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다.교환은 표면적으로는 획득의 과정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모의 과정으로 제시된다.-36쪽

포틀래치는 어떤 흥정도 배제하며,일반적으로 경쟁자를 모욕하거나,경쟁자에게 도전하거나,또는 그 경쟁자를 복종시킬 목적으로 상당한 부를 공공연히 과시하면서 거저 주는 것으로 이루어진다.선물의 교환가치는 선물을 받은 자가 선물을 수락할 당시 발생한 의무,즉 후일 자기가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겠다고 한 약속을,도전에 응하는 방식으로 모욕을 떨치고 이행할 때 얻어진다.그러나 증여가 포틀래치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다. 포틀래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의 파괴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이 두번째 형태를 통해 포틀래치는 종교적 제의와 결합된다.-37쪽

부유한 사람이 권력을 얻으면 부는(38)획득으로 보인다. 그러나 손실의 능력이 다름아닌 권력이라면 부는 전적으로 상실의 방향을 향해야 한다. 영광, 명예가 권력과 한몸이 되는 것은 오로지 전적인 상실에 의해서이다.-38쪽

부와 함께 기능적 소비의 의무를 수락했던 근대 부르주아지-부를 소(41)유한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는 의무를 거역함으로써 스스로 정한 원칙을 부정하고 만다.부르주아지는 오직 자신을 위해서 내부적으로만,다시 말해서 가능한 한 다른 계급의 눈에 띄지 않게 소비한다는 점에서 귀족과는 구분된다. 이 특별한 형태의 계급은 처음에는 그보다 더 강한 귀족 계급의 보호 아래에서 부를 발전시켜나갈 수밖에 없었다.제한적 소비라는 이 굴욕적인 개념들에,17세기 이후 소비가 발전시킨 합리적인 개념들이 화답한다. 단어의 통속적인 의미에서 볼 때 그리고 부르주아적 의미에서 볼 때 합리적인 개념들이란 엄밀히 경제적인 세계의 표현이라는 의미 외에 또다른 의미는 갖지 않는다. 소비에 대한 혐오감은 부르주아지의 존재 이유이자 합리화이다.소비에 대한 혐오감은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끔찍스러운 위선의 원칙이기도 하다.부르주아지는 낭비를 봉건사회의 근본적인 도탄의 원인으로 보았다.-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화와 소비
그랜트 매크래켄 / 문예출판사 / 1996년 12월
절판


브로델의 지도와 메켄드릭의 예를 따라서 역사학 공동체는 서양의 "대변형"이 "산업혁명"만이 아니라, "소비혁명"도 포함한다는 것을 인정해왔다. 이 공동체는 이제는 이 소비혁명이 단지 취향,선호,구매습관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근대 초기 및 근대 세계의 문화에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나타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는 소비혁명이 서양의 시간,공간,사회,개인,가족,국가 등의 개념들을 바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29쪽

"소비"란 여기서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와 마찬가지로)소비재와 서비스가 만들어지고,구입되고 이용되는 과정을 가리킨다.이러한 정의는 전통적인 견해를 확대하고 있다.그것은 구매행위에 대한 전통적인 강조에다가,구매에 선행해야 하는 제품개발 및 구매 뒤에 일어나야 하는 제품이용을 더하는 것이다.-29쪽

유행은 18세기가 되어서야 본격화하였다는 메켄드릭의 주장은 아마도 틀린 것이겠지만, 이 시대가 되어서 유행이 보다 더 많은 사회집단과 보다 더 많은 제품에 영향을 주었으며 한결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유행은 시종일관 현대의 취향과 선호를 변형시키기 때문에, 그것이 전폭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경제를 상상하기 어렵다.또한 유행이 서양 소비자의 생활과 기대 속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받아들이게 했는지를 평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다.유행의 성장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사고습관화 행동방식이 성장하였다.미와 스타일에 대한 고려가 공리에 대한 고려보다 점점 더 우선시되었다.(중략)이 발전은 유용성에 대한 스타일의 승리,기능에 대한 미의 승리를 나타낸다.-61쪽

더욱 중요하게는 그 발전은 지위 관념과 또 지위를 표현하기 위한 재화의 이용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를 나타낸다.재화가 전에는 그 "고색"을 통해서 지위 메시지를 전달했다면,이제는 그 색다름을 통해서 지위 메세지를 전달하였다.-61쪽

엘리트주의의 소비 스타일은 문화적 의미를 형성하고 전달하기 위해 재화를 사용하는 보다 명백한 제스처이다. 이 엘리트 스타일의 개척은 인격에 대한 새로운 정의, 이 인격과 그가 속해 있는 보다 큰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정의, 사회적 행위를 일정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일련의 개념과 가치 등을 명시한 단 하나의 총괄적인 문화 개념 만들어내기 위해서 새로 나타나고 있는 재화언어를 사용하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재화언어가 여기서는 일단의 사회적 발명,즉 사회생활의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행하기 위해서 매우 신중하게 또 능숙하게 사용되고 있었다.이러한 종류의 혁신은 그 이전에는 불가능하였다. 전통 사회가 이러한 실험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새로운 개념의 사회생활의 등장에 필요한 재고와 발명을 허용하는 담론체계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72쪽

박람회,백화점,영화가 소비의 미학에 기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구매과정에의 기여였을 것이다. 우선 먼저 그 세가지 모두는 설득과 정보의 자극이 즉각적인 구매를 초래한다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그래도 소비자를 이 설득과 홍보의 자극에 접하게 하려는 노력을 나타낸다.-74쪽

고색은 우선 먼저 물질문화의 물리적 속성이다.그것은 사물의 표면 위에 누적되어 있는 햇수의 작은 기호들이다.(중략)고색은 훨씬 더 중요한 상징의 짐, 즉 현재의 지위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짐을 갖고 있다. 그것의 기능은 지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위가 진짜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고색은 일종의 시각적인 지위증거 역할을 한다.-85쪽

지위표현에 의지하는 사회는 모두 이러한 종류의 사칭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이동이 심해지고 익명성이 증대하면서 서양사회는 특히 이러한 문제에 시달렸다. 불가피하게 이들 사회는 사칭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일련의 상징교정책을 만들어냈다.-88쪽

이 집의 인격-사물 관계는 부분적으로는 강력하며 일관성이 있는 패턴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이 패턴을 "큐레이터적 소비"라고 불렀으며,그것을 개인이 자신의 소유품을 강력한 기억가치를 지닌 것으로 취급하면서 보존,전시,안전한 양도를 필요로 하는 소유품에 책임감을 느끼는 소비 패턴으로 정의하였다.-123쪽

문화범주는 의미의 기본적인 좌표축이다. 그것은 문화가 현상세계를 분할하는 기본적인 구별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각각의 문화는 시간의 문화범주를 특정화한다. 우리의 문화에서는 이 범주들은 "초"처럼 정밀한 단위도 "천년기"처럼 방대한 단위도 구별할 수 있는 정교한 체계를 포함하고 있다. 이보다는 덜 엄밀하지만 그래도 역시 중요한 것은 여가시간과 노동시간, 성스러운 시간과 세속적인 시간 등등에 대해 가해진 구별이다. 각각의 문화는 공간의 문화범주들도 특정화한다.우리 문화에서는 이것들은 측정의 범주와 "경우"의 범주를 포함하고 있다. 식물상,동물상,자연과 초자연 세계의 풍경도 또한 문화에 의해서 일련의 범주로 세분되어 있다. 아마도 문화범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공동체를 계급,지위,젠더,나이,직업에 따라 구별된 부분들로 세분하는 것일 것이다.-165쪽

문화는 세계에 그 자신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세계를 '구성한다'.이렇게 구성된 세계로부터 소비재에 충당되는 의미가 끌어내어진다.-166쪽

문화범주라는 것이 문화가 세계를 별개의 구획들로 세분한 결과라면,문화원리는 그것에 의해서 이 세분화가 행해지는 관념이다. 문화원리는 모든 문화현상이 구별되고 분류되며 상호연관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관념이다. 그것은 사고 및 행동에 방향을 제시하는 관념으로서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표현되며, 특히 그 중에서도 재화에서 표현된다.-171쪽

"전이된 의미"전략에 의지하는 문화는 그 이상을 위한 장소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여기에는 많은 대안이 있다. 이상은 시간과 공간의 연속체상의 거의 무수한 위치로 옮겨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간의 연속체는 종종 "황금시대"라는 위치를 만들어낸다. 추측컨대,이 황금시대는 언제나 기록과 증거가 확신을 줄 정도로 풍부하게 존재하는 역사상의 한 시기이다. 사실 이 시기는 사회생활이 문화적인 이상과 완전히 일치하였다고 상상되는 상당히 허구적인 시대이다. -227쪽

과거에서 만족할 만한 위치를 찾을 수 없는 개인에게는 미래가 더 융통성있는 것이 된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미래는 특정화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제약이 없다. 어떤 종류의 미래가 이상에 만족스러운 위치를 증명하는가는 종종 인습에 의해 특정화되고 있다.인습적인 위치에는 "내가 결혼하면..","내가 마침내 학위를 받으면..","갑자기 기회가 오면..."등이 포함된다. 이 바람직한 미래는 집단의 발명품이며 유행에 따라 변화하기 쉽다.-232쪽

회복의 문제는 미묘한 문제이다. 의미전이의 과정은 우선 먼저 이념에의 일종의 인식론적 면역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시도된다. 이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시도가 행해질 때, 이 면역성이 위태롭게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회복은 전이된 의미가 완전한 거주의 책임 모두를 떠맡을 필요 없이 '지금 여기로'가져와지는 식으로 달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전이된 의미가 그 시간적 또는 공간적 위치에서 회복될 때, 그것은 반증의 가능성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다리 말하면,전이작업을 망치게 하는 접근은 허용해선 안 된다.-234쪽

개인은 전이된 의미로의 가교로서 취득된 사물을 간단히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고,이 역할을 자신이 아직 소유하지 못한 사물로 이전한다. 소비자는 마침내 성취되고,만족된 충만한 생활을 기대한다.그러나 이 구입이 이루어지자마자 소비자는 기대를 또 하나의 사물로 이전한다.오랫동안 추구되어온 것은 순식간에 가치를 잃으며,개인은 또 하나의 가교로 이동하기 때문에,전이된 의미는 전이된 채로 있을 수 있다. (중략)거실은 가족이 '가장 단정한 행동을 하는'장소라고 말해져 왔다. 거실은 가족이 보다 엄격한 이상에 따라서 보다 높은 수준에서 생활하는 장소이다. 거실에 이 전이된 의미를 부여한 가족은 꽤 까다롭게도 그것을 기피한다. -239쪽

디드로의 곤혹스러운 관찰은 어떤 보완물이건 간에 소비재는 어떤 공통성이나 통일성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데 도움이 된다.디드로의 관찰은 이 사물들이 일종의 조화나 일관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서로 어울린다"고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일관성을 지닌 사물들을 '제품보완물'이라고,또한 그 관찰자를 기념해서 '디드로 통일체'라고 부를 것이다.-254쪽

소비재의 문화적 일관성은 (1)사물에 들어 있는 의미의 성질,(2) 이 의미가 사물 속에 들어가 있는 방법,(3) 사물의 의미가 "사물 코드"에 의해 전해지는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255쪽

디드로 효과는 새로운 위험한 관념으로 가정경제를 감염시킬 수 있는 맹독의 도래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그것은 몰래 교활하게 통제하려고 하는 치안방해적인 의미를 우리의 생활 속에 집어넣는 '트로이 목마'선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만일 개인의 생활에서 어떤 사물이 그 생활을 그 자체로 돌려보내며 되돌아가게 하는 데 끊임없이 도움을 준다면,그때에는 그렇게 할 수 있게끔,즉 우리의 소유품에서는 가장 순수하며 가장 깨끗한(256)시그널만이 나오게끔 개인의 생활을 유지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 디드로 효과이다.-265,266쪽

급진적인 집단들은 그들의 사회가 기초로 삼고 있는 정치적,사회적 원리를 논박하는 데 성공할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가장 확실하며 아마도 보다 설득력이 있는 것 같은 장소,즉 물질세게의 물리적 사물에서 옛 관념을 뿌리째 뽑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281쪽

물질문화는 문화를 물질적인 것으로 만든다. 물질문화는 문화를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하고,현전하게 하며 도처에 있게 한다. -281쪽

재화는 기존의 문화적 의미의 선택적인 이용,새로운 조합 및 미리 생각한 혁신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개념을 만들어내는 기회로서 쓰인다. 이 경우 재화는 기존의 문화의미의 실험을 통해 발명이 일어날 수 있는 창조적인 매체이다.또 하나의 능력으로는,재화는 변화가 숙고되고 논의되며 게다가 알려지는 내적 및 외적 대화에 집단이 참가하는 기회로 쓰인다. 첫번째 경우에서는 재화는 창조성과 실험의 기회로 이용된다.두번째 경우에서는 창조과정을 형성하고 정식화하는 것을 돕는 내적 및 외적인 성찰과 폭로의 수단으로 쓰인다.-287쪽

변화의 수단으로서의 두번째 능력으로는 소비재는 혁신집단 안에서도 또 혁신집단과 큰 사회 사이에서도 담론을 위한 기회로 쓰인다. 혁신집단은 있을 수 있는 그 이상의 혁신과 현재의 합의를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재화를 이용한다. 이러한 용법으로는 재화는 일종의 게시판 역할을 한다. 그 클럽의 구성원들은 계속해서 통고를 받고 있다.그들은 메시지를 서로에게 알리며,그 집단도 또 이 메시지도 계속 변한다.점차 합의가 확립되면,메시지는 점점 적어지고 덜 논쟁적이 된다.재화가 보다 큰 사회를 향해서 이용되면,우리는 그것을 게시판이 아니라 일종의 광고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집단은 기존의 인습에 대한 불만을 훨씬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며 또한 자신들이 옹호하려고 하는 이념과 가치로 바로 번갈아가며 나타내는 재화의 언어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중략)재화는 내부 메시지용의 게시판이며 외부 메시지용의 광고판인 두 가지 커뮤니케이션 매체이다.-290쪽

역설적으로 사물 코드는 사회가 변화를 촉진시키기도 하고 인내하기도 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그것은 사회집단이 기존의 문화정의 밖에 있고 또 그것과 대립하는 그들 자신을 보는 다른 방법들을 확립하는 것을 돕는다. 그렇지만 또한 그것은 한 사회가 이러한 변화들을 기존의 문화적인 틀 속에 통합하는 것을 도와주며, 아울러 그 변화들의 불안정하게 하는 잠재력을 퍼뜨리는 역할도 한다. 사물 코드는 반대의 두 방향을 향하고 있다.-29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쇼쇼 -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이성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6월
품절


90년대 들어 성 문제에 관한 문제제기의 앞머리는 언제나,우리가 얼마나 성적 억압을 받아왔는가 혹은 성에 관한 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억압적인가에 대한 성토와 폭로였다. 그래서 이 성토와 폭로는 다시 말해 지배적 성 이데올로기의 내면화라는 내부적인 것과 지배적 성윤리를 정립하고 존속시키는 외부적 사회장치에의 반란과 해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셈이었다.(중략)푸코는 프로이트의 억압가설을 반박하면서 근대사회는 나름대로 성에 대한 지식,정보,윤리,유통,확산,실천의 메커니즘을 발명,존속시켜 왔다고 주장했다.-83쪽

80년대 의식화 학습과정에는 전형적인 커리큘럼이 있었다. '시각교정'용으로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등이 선택되었고 혹은 광민사에서 발생한 '노동의 역사'나 '노동의 철학'등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좀 더 나중인 80년대 중반에는 '철학에세이'에서 시작하여 소비에트 철학 교과서로 넘어갔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가 거친 성 학습의 이력에도 일종의 자생적인 '커리큘럼'이 있었던 듯 싶다. 백과사전에서 시직하여 다음 단계는 여성지로 나아가는 것이 일반이다.-90쪽

tv에서든 성이 어떤 형태로든 거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이 기억난다. 60년대 말 쯤의 tv에는 어린이 시청불가 프로그램이 종종 있었다. 명화극장 같은, 대개 밤늦은 시간대의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먼저 조그만 병아리 그림이 나오면서 아이들에게 해로울지 모르니 아이들은 어서 재우고 시청하라는 권고였다. 말하자면 이즈음 '음란비디오는 마마나 호환보다 무섭다'고 경고하는 것의 60년대 판본인 셈(95)이었다. -95,96쪽

만화방은 영화와 더불어 성에 관한 중요한 학습소였다. 아이들 만화야 그렇지만 70년대 초 나오기 시작한 성인만화는 참으로 별경이었다.-96쪽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의 비판 문화'잉태 : '검열'이라는 강박관념으로 나타난 퇴폐문화(1960~1970) 대중문화는 어쨌든 대중과 가장 친한 문화이다.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또 자연스럽게 대중문화 텍스트에 자신을 동일화시키는 현상은 그 공과를 떠나 대중문화의 일상적 위력을 충분히 일러주고도 남는다. 그래서 지배블럭은 언제나 대중문화에 대해 두 가지 전략을 취하게 마련이다. 하나는 대중문화를 지배 이데올로기의 숙주로 삼기 위해 대중문화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고자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검열이다. 물론 후자는 전자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기도 하다. 대중문화에 대한 전통적인 비판은 이런 측면에 대한 비판이었던 셈이다. 한국에서 근대적 대중문화가 출발한 이래 그것은 일본 식민지 통제 전략,그리고 해방 후 독재정권의 장악 및 활용의도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음은 우리 모두의 체험으로 확인된 바이다.-133쪽

80년대의 대중문화는 오히려 독재정권의 고전적인 3s정책에 의해 외면적인 활황을 맞이하는 듯하였지만 80년대가 한국전쟁 이후 가장 격렬한 대립과 투쟁의 연대였다는 점을 상기해 볼 경우 검열의 논리가 정치적 측면에서 얼마나 강력하고 치밀하게 시행되었는가는 따로 확인해 보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짐작되는 바이다.-137쪽

진보 표방하는 한 피할 수 없었던,모순 해결을 위한 문화:'계급'이라는 강박관념으로 나타난 민중문화(1980) 광주민중항쟁으로 문을 연 80년대.그 항쟁의 경험은 80년대 문화예술분야에도 획기적인 변동을 야기했다. 이른바 문화예술과 계급투쟁의 동일화라는 목표의 설정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광주'가 80년대 전체의 머리 위에 세례한 것은 소위 사회주의 사상으로 요약되는 계급 이데올로기의 복원이었다. 기실 문화예술과 계급 혹은 사회주의 사상과의 관계는 카프의 사례가 일러주듯이 한때 문화예술의 주류적 흐름이기도 했다.-137쪽

문화예술의 계급적 실천이 보다 더 중요한 화두로 자리하면서 당대의 문화운동은 보편적 운동 및 과제에 포괄되는 특수한 운동 및 과제라고 정리되었다. 보편과 특수의 구분이 말해주듯이 예의 정리 속에서는 문화 예술이 보편적 과제 다시말해 계급문제의 해결 과정에 문화예술적 직능으로 복무하는 활동으로,다시말해 중심에 의해 관리,통제되는 활동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138쪽

생각해 보면 80년대는 계급문제의 첨예함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측면에서도 한국전쟁 이후 사회적 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격동한 연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따라서 근대적 미의식의 핵심이랄 수 있는 미적,예술적 고유함이 80년대에는 미처 주장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그런 사정이 곧 문화예술에 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사고보다 문화예술 활동가를 곧바로 '문선대'로 간주하는 무의식을 자아내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그런 측면은 문화예술에 한정해서 볼 경우 일단의 상처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급 문제와 문화예술의 관계를 가장 진지하고 직정적으로 사고했던 80년대의 경험은 근대적 미의식의 또다른 성질인 문화예술의 정치성을 유례없이 실험해 보고 체험해 본 과정이 아닐 수 없다.-140쪽

무반성적인 소비가 부른 극한적 부산물 :'소비'라는 강박관념으로 나타난 거품문화(1990) 80년대 말의 이른바 3저 호황은 우리나라도 문화의 소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예시해 주었다. 근대화의 최대 과제를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오랜 가난의 극복에서 찾고자 했던 우리의 현대사는 드디어 문화예술도 소비의 영역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60년대에 시작된 개발독재가 가속을 걸기 이전까지 최소한의 의식주에 허덕이던 시대만 해도 문화예술의 향유와 소비는 팔자 좋은 나라에서나 가능한 아주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런 상황이 급변하여 사회적 관심과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의식주가 아니라 어떤 의식주가인가 하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가 아니라 사람들의 표현 욕망과 현시욕을 충족시켜주는 특별한 의식주가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기 시작한 셈이다.-141쪽

문화산업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90년대는 대중들의 일상전체가 심미적 대상으로 등장하게 된다.요컨대 일상의 심미화가 현저한 특징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상의 심미화는 일상을 심미적으로 꾸미는 요소와 계기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 심미적 효과의 생산을 위해서 대중은 다양한 문화예술적 용재들을 사들이고 소비할 수밖에 없다.심미성을 필요로 하는 곳은 다양했다. 주거 공간도 그러하고 노동의 공간 휴식의 공간도 그러하거니와 자신의 몸 그 자체도 심미적으로 디스플레이해야 할 공간이었다.-142쪽

일상의 심미성은 몸을 비롯해 현대생활 전부를 장악하는 일련의 메커니즘으로 자리하면서 이른바 미학적 대중주의를 낳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말하자면 대중들의 평범한 일상적 차원에서도 심미성에서의 욕망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해지면서 미학성에의 추구와 안착은 말 그대로 대중적,대량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14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근현대 가족의 재조명 한국 사회사 연구회 논문집 39
한국사회사연구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12월
품절


한국 사회는 핵가족화하고 있는가-장현섭 중 일부 / 한국에서 근대화 운동이 가속화되었던 197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가족 생활의 일반적 흐름에 변화가 오고 있다. 이 변화는 기존의 연구가들이 주장하던 바와 같은 핵가족화는 아니다. 우선 이념형 자체가 75년부터 갑자기 떨어져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한다. 그 원인은 직계 가족형의 이념형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핵가족형의 이념형 또한 똑같은 비율로 낮아졌다.-68쪽

증가한 것은 이념형도 아니고 과도형도 아니고 비이념형이다.(중략)비이념형은 75년부터 괄목하게 증가하여 꾸준히 그 상(68)태를 유지하고 있다. 곧 기존의 가족 생활이나 원리에 관한 일반적 합의가 상당히 깨어졌다고 본다. 한국 사회는 기존 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핵가족화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거기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최근 들어 젊은층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는 이혼율,공장 지역이나 대학가를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는 동거 생활,미혼 단독 가구 등은 핵가족형 사회도,직계 가족형 사회도 아닌 '사회의 방향성 상실'을 나타내는 증거일 것이다.아니면 새로운 가치관이 생기고 있는 초기 단계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68쪽

일,가족,그리고 성역할의 의미 - 한국의 산업화와 신중산층의 가족 이념 김은희 중 일부 /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문화는 서구적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적 자본주의의 발전의 주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집단주의적 일의 의미이며 이것은 개인간의 정서적인 유대 관계보다 가족 전체의 계층 상승을 우선하는 가족주의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다. "집은 쉬는 곳"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직장에서의 계약적 인간관계와 대립되는 정서적 안식처로서의 가정보다는 일을 위해 재충전하는 곳으로서의 집의 기능을 관념화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핵가족화와 "가정은 휴식처"라는 새로운 문화적 개념의 대두가 우리 사회가 서구화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서구 산업 사회의 문화에서 보이는 남자의 '개인주의적'이고 '도구적 역할'과 여자의 '공동체적'이고 '정서적'역할의 분리는 한국 자본주의 문화에서의 성역할의 분리와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118쪽

한국 가족 문제의 특징 -기능주의 가족 문제론 비판 김흥주 일부 / 산업화에 따른 가족의 변화와 이에 수반되는 가족 문제를 이해하는 데 지나치게 개별 가족 차원에서 가족원 개개인의 도덕성에 기반한 가족 통합만을 강조할 경우에는 '변화'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족 변화는 산업화라는 외부의 충격 과저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위기적 상황 때문에,그리고 이에 대해 가족 차원의 대응 과정에서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공장 주변에서 적지 않게 발견되는 독신과 동거의 형태,많은 주부의 취업으로 인한 육아와 가서 노동의 공백 문제 등은 가족의 생존을 위한 가족 전략 차원에서 피할 수 없이 일어나는 가족 변화의 모습이며, 가족 부양 체제의 약화도 가족원의 도덕성이 결핍되어 나타나는 경우보다 가족의 물질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가족 변화의 모습인 경우가 많다.-174쪽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가족의 변화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여기에서 보여지는 정형에서 벗어난 가족 생활의 모습을 사(174)회 통합에 저해가 되는 골칫덩어리의 문제로만 파악하는 것은 문제 자체와 발생의 본질적인 메커니즘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따라서 가족의 변화가 계급,성,연령에 따라 다르게 경험된다는 사실을 주목하여,변화 과정에서 파생되는 가족 문제는 우리 사회의 중첩된 모순 구조가 가족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가족 생활의 불안정 때문에 전체 사회의 재생산의 위기 현상이 심화되어지는 현상, 그리고 개별 가족 차원에서 가족원들이 고통과 억압을 당하는 현실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174쪽

기능론은 가족과 다른 사회의 제도들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의 한 부분에서의 변화가 가족에 영향을 주는 방식을 파악하고 가족이 수행하는 기능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즉 가족은 역사와 사회에 따라 그 크기와 형태, 가족 구조 및 사회적 기능의 변화를(176)경험하며, 가족이 수행하는기능은 전체로서의 사회에 대한 형평과 균형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 모아진다는 것이다.-176,177쪽

기능론적 가족 이론의 입장에서 볼 때, 가족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 또는 기능의 약화는 전체 사회 체계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가족의 통제력이 약화되어 가족내의 역할과 의무가 제대로 수행될 수 없는 상황이 가족 문제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177)은 가족의 기능 약화가 가족의 정형에서 벗어난 가족 변화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예컨대, 1960년대 이후 서구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개인주의적 가치의 가족에의 침투를 가져와 이혼율이 증가하고 독신과 동거, 미혼 상태의 부모됨, 동성의 짝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 유형이 증가하게 되었고 여성이 전형적인 표출적 역할을 방기하고 생산 영역에 취업함에 따라 모성에 기반한 출산과 양육이 불가능하게 되고 가사 노동에 공백이 생김에 따라 가족이 다양한 문제를 가지게 되었고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177,178쪽

가족 문제는 전체 사회의 차원에서 일탈 및 범죄의 상황과 관련되어 사회 전체의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족 문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대처 방식은 복지 정책을 통해 가족의 기능을 강화하는 데로 모아지며, 정치적으로는 'pro-family'운동을 통해 도덕적인 가족을 우선시하는 이데올로기적 강화로 모아진다.-178쪽

'pro-family'운동은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그리고 정해진 규칙이 아니라 상호 협상에 근거한 약속에 의해 규정된 가족 생활을 신념으로 하여 이혼,동거,동성 연애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합법화하려는 반 가족 운동에 대항하여 가족의 와해 위기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도덕성에 근거한 전형적인 가족의 형태를 강조하는 정치 운동이다.-179쪽

이와 같이 문제의 원인을 가족 체계의 기능 약화와 구성원의 일탈적인 행위에서 찾아가는 기능론은 문제가 야기되는 구조적인 메커니즘과 더불어 문제로 인해 가족 구성원이 고통과 억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간과될 수 있다. 이는 가족을 '사적인 영역'으로 규정하여 문제의 사회적 요인을 은폐하고 개인들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문제 해결의 책임을 개별 가족에게 떠맡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가족 문제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개별적인 가족 생활의 문제와 사회 구조와의 관련을 중시하는 것, 즉 어떠한 사회 구조의 모순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구성원의 고통과 이를 치유하는 방식과 해결 주체는 무엇인가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179쪽

가족 문제에 대한 계급론적 접근과 페미니즘의 접근은 우리 사회의 산업화에 따른 가족의 변화와 이에 수반되는 가족 문제를 이해하는 데 기능론에 편향되어 있을 경우에는 변화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또한 가족의 변화는 계급,성,연령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며,이에 따라 가족 문제에의 접근도 계급별 차이와 가족내의 구성원별 차별성이 부각되어야 한다는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즉,가족 문제는 가족간의 관계에 있어 국가와 자본의 가족 지배라는 계급 모순과 가족 내의 구성원간의 성과 연령 간에 기반한 모순이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갈등과 고통을 경험하는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족 문제 연구의 전반적인 경향은 전체 사회의 통합 차원에서 가족 기능이 약화되는 현상만을 문제로 규정하며,이의 발생 기제로는 산업화로 인한 사회 질서의 변동만을 상정하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188쪽

산업화,도시화와 관련하여 한국 가족의 변화를 분석할 때, 기능론의 핵가족론에 기반하여 전통적인 확대 가족이 감소하고 핵가족이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주장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가족 유형의 변화를 세밀히 살펴보면, 핵가족의 형태가 산업화의 정도만큼이나 일방적으로 증가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 20여년 사이에 전체 가구에 대한 핵가족 유형의 구성비는 약4.8%정도 증가하였으나,확대 가족 구성비는 약 10.9%감소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할 만한 점은 이 기간 동안 일인 가구와 기타 유형의 가족 구성비가 높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안병철,1989)이는 확대 가족의 감소가 이들의 증가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산업화에 따른 핵가족 유형의 증가는 상당히 완만하여,오히려 일인 가구 등의 비표준형 가족의 증가를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191쪽

우리의 가족 변화에서 보여지는 또 다른 특징은 사회 심리적 내지 문화적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가족에 대한 전통과 현대적 가치관의 혼합화 현상은 가족 내의 성모순과 계급별 가족 문제의 차별성을 구성하는 또 다른 배경이 된다. 자본주의화에 따른 근대성의 증가는 가족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가져오는데,이는 '자본제의 정착과 영역의 분리'라는 기능론의 가정에 기반하여 남성의 도구적 역할과 여성의 표출적 역할의 수행, 그리고 가족의 정서적 안정 및 사회화의 기본 단위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194)인식이 널리 확산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이에 따라 아동 양육과 자녀교육이라는 가족의 사회화 기능이 무엇보다도 강조되는 방향으로,그리고 여성의 전업 주부로서의 역할이 가족 전체의 부양 체제를 유지하는 기반이라는 통념이 정착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진다.(중략)그러나 이러한 근대적인 가족 개념의 확산과는 달리 가족 변화의 현실은 계급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194,195쪽

우리의 경우는 근대적인 가족 개념의 확산과 더불어 전통적(195)가족 가치도 국가와 가족 옹호pro-family집단의 집중적인 이데올로기적 공세로 가족 관계나 사회 관계를 규제하는 중요한 지배적인 원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가족 변화의 특징이다 즉 오늘의 한국 가족은 가족 구성의 근대성 원리와 전통성의 원리가 복잡하게 교차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회적 도덕성의 유지 차원에서 전통적인 가족 규범을 어기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규범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가족내의 물적 기반이 붕괴되었을 때 나타난다. 가족 관계의 도구적 측면이 약화된 오늘날의 경우 가족 부양 체계의 작동, 특히 노인 부양은 자발적으로 형성된 순수한 친애감과 도덕성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족원 대다수가 생산 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경우에는 아무리 도덕성이 강하다 해도 현실적으로 부양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195,196쪽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고집하여 가족부양 체제를 국가의 정책 차원에서 강요하는 것은 복지 자체가 실종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이의 결과는 피부양자나 부양의 책임자 모두에게 고통만을 가중시킬 뿐이다.이와 더불어 국가가 공적인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전통적 가족 가치는 기본적으로 가부장적 질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족내의 그리고 사회 관계의 성 불평등이 제도적 차원에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96쪽

가족을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보편적인 단위로 보는 기존의 기능론적 시각은 모든 가족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가족의 문제를 강조하고, 이를 전체주의 관점에서 사회 통합의 걸림돌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상에서 우리가 살펴본 결과는 가족 자체가 계급,성,연령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는 사회적 구성물이며,이에 따라 가족 문제도 사회 구조의 모순이 반영되어 가족들과 가족원간에 차별화되어 나타나는 '관계에서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20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