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몫 - 모더니티총서 10
조르주 바타유 지음, 조한경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절판


소모의 개념 중 일부 / 유용하다라는 말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토론은 인간의 사회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 토론에선 토론의 주체가 누구이건 제기되는 의견들이 어떤 것들이건, 결국 근본적인 질문은 회피되고 토론 자체를 그르치게 되는 경우를 종종 확인할 수가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개념들은 얼마나 다양한지,인간들에게 유용한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사람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유용성과 쾌락을 넘어서는,다시 말해 전혀 입증할 수도 없는 원칙들-예컨대 명예와 의무,신과 정신-을 찾아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특히 그 문제가 어려운 것임을 잘 반증(29)하는 한 예이다.그러나 명예와 의무가 금전적 이익을 위한 위선적 수단이라면, 신과 정신은 닫힌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지적 혼란을 숨기기 위해 사용하는 가면이 아니던가.-29,30쪽

전체적으로 볼 때 사회적 활동과 개인의 모든 노력이 가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근본적으로 생산과 보존의 필요성으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예술에 관계된 것이든 허용된 방탕이나 도박에 관계된 것이든 쾌락은 오늘날의 지적 판도로 볼 때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오락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된다.-30쪽

인간의 행위가 생산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철저히 환원될 수는 없지만 소비는 명확히 둘로 구분된다.첫째,소비는 일정한 사회의 개인들이 생명을 보존하고 생산활동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으로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생산활동에 필요한 기본적 조건으로서의 소비이다.둘째,또하나의 소비는 원시사회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활동들로서 궁극적인 생산 목적 또는 생식 목적과는 상관없는 사치,장례,전쟁,종교 예식,기념물,도박,공연,예술 등에 바쳐지는 소비이다. 두번째 부분의 소비들은 생산의 중간 수단으로 이용되는 소비와는 다르기 때문에 순수한 비생산적 소비의 형태를 지칭하는 용어가 필요한데, 나는 그런 소비를 '소모'라고 부르겠다.-32쪽

인간이 아무리 비참한 지경에 이른다 해도, 생산을 목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보존에 대한 배려가 비생산적인 소모에 대한 배려를 장악할 만큼 인간의 불행이 사회보다 우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단 확보된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은 소비계급에 의해 행사되었으며,가난은 모든 사회적 활동으로부터 배척받았다.그래서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권력의 권내에 진입하려면 피를 흘리는 혁명에 의한 파괴,다시 말해 한계를 모르는 사회적 소모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소모에 비하면 생산과 획득은 부차적인 것으로서, 생산과 획득의 부차적 특성은 교환이,양도된 물건들의 사치스러운 파괴로 다루어지던 원시 경제 속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다.교환은 표면적으로는 획득의 과정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모의 과정으로 제시된다.-36쪽

포틀래치는 어떤 흥정도 배제하며,일반적으로 경쟁자를 모욕하거나,경쟁자에게 도전하거나,또는 그 경쟁자를 복종시킬 목적으로 상당한 부를 공공연히 과시하면서 거저 주는 것으로 이루어진다.선물의 교환가치는 선물을 받은 자가 선물을 수락할 당시 발생한 의무,즉 후일 자기가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겠다고 한 약속을,도전에 응하는 방식으로 모욕을 떨치고 이행할 때 얻어진다.그러나 증여가 포틀래치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다. 포틀래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의 파괴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이 두번째 형태를 통해 포틀래치는 종교적 제의와 결합된다.-37쪽

부유한 사람이 권력을 얻으면 부는(38)획득으로 보인다. 그러나 손실의 능력이 다름아닌 권력이라면 부는 전적으로 상실의 방향을 향해야 한다. 영광, 명예가 권력과 한몸이 되는 것은 오로지 전적인 상실에 의해서이다.-38쪽

부와 함께 기능적 소비의 의무를 수락했던 근대 부르주아지-부를 소(41)유한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는 의무를 거역함으로써 스스로 정한 원칙을 부정하고 만다.부르주아지는 오직 자신을 위해서 내부적으로만,다시 말해서 가능한 한 다른 계급의 눈에 띄지 않게 소비한다는 점에서 귀족과는 구분된다. 이 특별한 형태의 계급은 처음에는 그보다 더 강한 귀족 계급의 보호 아래에서 부를 발전시켜나갈 수밖에 없었다.제한적 소비라는 이 굴욕적인 개념들에,17세기 이후 소비가 발전시킨 합리적인 개념들이 화답한다. 단어의 통속적인 의미에서 볼 때 그리고 부르주아적 의미에서 볼 때 합리적인 개념들이란 엄밀히 경제적인 세계의 표현이라는 의미 외에 또다른 의미는 갖지 않는다. 소비에 대한 혐오감은 부르주아지의 존재 이유이자 합리화이다.소비에 대한 혐오감은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끔찍스러운 위선의 원칙이기도 하다.부르주아지는 낭비를 봉건사회의 근본적인 도탄의 원인으로 보았다.-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