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잠의 종말
조너선 크레리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 이 책을 트렌디한 학술서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책의 참신성을 부정해야 한다(이는 이 책을 다룬 국내 언론의 서평 기사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이 책은 발터 벤야민의 '꿈과 각성': 변증법적 이미지 프로젝트의 리메이크이며, 편곡은 조르조 아감벤의 '장치론'이다. 그리고 샘플링은 수전 벅 모스의 「파사젠베르크」분석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자가 주장하는 이 책의 '공상론'은 그가 오랫동안 집착해온 연구 테마다. 고로 이 책은 시각문화연구에서 꽤 이름을 알린 연구자가 벌인 뜬금없는 변화의 지점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1. 꿈 없는 잠, 잠 없는 꿈


꿈 없는 잠은 이해가 가지만, 잠 없는 꿈은 과연 가능한가. 후자를 문학적인 방식으로 탐구한 사람이 카프카다. 카프카의 꿈에 대한 기록을 읽어보면, 잠에 들어 꿈을 꾼다는 순차적 과정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꿈은 꿈 자체로서 가상/ 현실의 구분선을 지우며, 인간 앞에 선다. 문학적인 방식으로 '잠 없는 꿈'을 다룬 카프카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몸소 체험한 이가 발터 벤야민이며(그의 『1900년경 베를린 유년시절』을 보라), 사색과 이론으로 성장하고 무장해간 벤야민은 '잠 없는 꿈'의 상태에서 자본주의 질서를 논리적으로 읽어내는 시도를 벌인다.


벤야민에게 근대성이란 곧 '꿈나라'였다. 부르주아는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고 쌓아가면서 꿈을 실현시켰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안녕을 위해 질서의 변화를 꾀할 여지가 있는 꿈을 은폐해버린다. 그리하여 벤야민은 자본주의체제를 간파하고자, 상품에 담긴 꿈의 이미지를 불러내 글로 보여주었다. 이는 곧 꿈의 이미지를 각성 상태로 끌어오는 것이었다. 깨어난 인간은 이로써 부르주아가 어떤 꿈을 은폐하려 했는지 알게 되며, 자본주의적 사물 속에 은폐된 꿈을 소생시켜 혁명을 꿈꾼다. 이것이 곧 자본주의적 꿈, 상품화가 된 꿈을 '꿈의 이미지'로 드러냄과 동시에, 자본주의에 복속되지 않을 역사적 시간의 꿈을 소망한 벤야민의 '꿈의 이중 이론'(수전 벅 모스)이었다. 


변증법이 가미된 벤야민의 꿈에 대한 이론은 조너선 크래리가 『24/7 잠의 종말』에서 깔아놓고 있는 큰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크래리는 이 책에서 잠과 꿈의 식민화를 우려하면서 아직 복속되지 않은, 침범받지 않은 '꿈의 시/공간'을 모색하는데, 이는 신자유주의체제가 꿈의 자유를 상품화시켜, 권력의 기술로 쓰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장치가 되어버린 꿈  


크래리가 신자유주의체제의 권력술을 분석하기 위해 논법의 전개상 조르조 아감벤의 '장치'에 대한 분석을 끌어오려는 것은, 인간과 접속되어 있는 장치들을 체제 안에서 올바르게 사용해보자는 헛된 희망과 결별하려는 시도(아감벤이 그대로 말했던)이면서, '주체화'를 실현하는 장치의 속성이 오늘날 사회 속에서 어떻게 '배치'되고 있는지 입체적으로 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다만, 크래리가 푸코가 권력의 자유/통제를 바라보던 관점, 들뢰즈가 권력의 자유/통제를 바라보던 관점을 비교해가면서, 권력이 마냥 유연하지만 않다고 보는 부분까지 도달하는 내용은 논리적으로 튄다. 즉, 아감벤의 장치론을 통해 신자유주의가 정신의 병리화를 꾀하고, 꿈마저 장치로 만들어버리는 시대를 기술하면서, 아울러 신자유주의체제의 권력술을 조망하는 근래 논의들에 대한 비판도 가미가 되는데, 후자는 그리 설득력 있게 제시되진 못한다(그는 권력의 유연한 제스처에 심취한 비판이론가들을 비판하고 싶어, 권력의 억압적 속성을 다시 역설하는데, 사뭇 감시와 통제에 관한 교훈적인 도덕극으로 오늘날의 권력술을 스케치하는 데 그치고 만다). 


3. 유령에 관한 이론: 잠과 꿈의 상호성은 가능한가


저자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신자유주의적 시간, 24/7 시간과 단절하기 위해, 잠과 꿈의 복원을 꾀하는데, 무엇보다 꿈을 통한 '공상'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것은 고도의 자본주의가 뻗치고 있는 꿈의 세계에 잡히지 않고, 근대의 유령들을 불러모으는 실험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유령들이란 근대화가 전개되면서 인간들이 구상했던 꿈이 '강력한 신화'가 되어 체제에 복속되는 것을 막는, 공상의 구현물로 해석된다. 한편으로 이 유령은 애초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밝힌 '유령에 관한 이론'과도 접속한다고 보는데(본 책에 직접 언급되진 않는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유령을 죽은 자 / 산 자의 구분을 없앤 채, 역사를 추방하는 권력에 대항할 개념으로 보았다. 


허나 역사를 앗아간 채, 자신의 영원성을 주장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체제의 권력술로부터 꿈과 잠이라는 개인 영역이 어떻게 변화의 계기로 쓰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크래리는 꿈의 상호적인 기능을 뜬금없이 내어놓는데, 여기서 크래리의 논리적인 명석함은 미학적이며 문학적인 찬가로 봉합된다. 아니. 사실 미학적이며 문학적인 관점이 어떻겠냐마는 실망스러운 점은 크래리가 고수하는 꿈 더 나아가 공상의 상호성이 '시각문화 연구자'들이 겪는 정치적 실천에 대한 사유, 그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 때문이다. 


시각문화 연구자들  특유의 '심미적' 해석에서 발견되는,  한 작품을 통해 사회를 조망하고자 할 때, 즉 '작품 해석의 심미적 특성'과 그 해석을 발판 삼아 내놓는 사회비평의 메시지를 놓고 볼 때, 후자의 경우 시각문화 연구자는 '커뮤니케이션 윤리학' '미디어 윤리학'류의 사회비평으로 빠지고 마는데(매체를 사유하는 정치철학자들이 기본 수준으로 언급하는 매체의 지배에 대한 윤리적 비판), 크래리도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과 꿈의 상호성을 강조함으로써 외려 크래리는 자신의 정치적 실천에 대한 강박을 책 말미에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말았는데, 고로 잠과 꿈의 개인 영역을 공동체적 협력, 사회적 유대로 이어가보려는 시도는 잠과 꿈을 잠식해버리는 신자유주의체제의 권력술에 대한 괜찮은 해부를 상쇄시킨다.


*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 사회", 즉 "절전 대기 상태"에 있는 24/7사회 속에서 저자는 잠과 꿈을 일상의 과한 자극을 제어하는 장치로 낮춰보지 말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유지를 위해 끝없는 낭비와 동원령을 발휘하는 자본주의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공상의 가능성을 여러 번 강조한다. 물론 저자가 후반부에 보여준 정치적 실천에 대한 강박을 꼬집어, 대안의 부재 등으로 쉽사리 비하하는 건 외려 이 책의 깊은 이해를 가로막는 것이라 본다. 다만, 우리는 앞에서 말했듯 벤야민이 시도했던 꿈과 각성의 기획을 통해 어떻게 은밀히 쌓여가는 자본주의의 신화를 '중단'할 수 있을 것인지, 단순히 방법이 아닌, '작동방식'과 '배치'의 효과를 성실하고 섬세하게 간파하는 그 길을 이 책을 통해 한 걸음 이제 밟아보았을 뿐이다. 저자가 한 걸음 내딛은 우리에게 주는 힌트는, 잠의 종말은 곧 '깨어남(각성)'의 종말이라는 역설이다. 



덧붙임) 

1) 이 책을 소위  '피로사회'류로 접근해서만 본다면, 얻어가는 게 생각보다 없다. 조너선 크래리가 시각문화연구자였던 맥락을 존중해, 관련된 텍스트를 두텁게 붙여 읽어나가면, 우리는 잠-꿈-각성의 오랜 비판이론 기획을 이 책이 편집해놓았구나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여기서 편집은 이 책의 주장에 대한 참신성 여부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2) 이 맥락에서, 나는 폴 비릴리오의 '운동학' '리듬학'을 통한 속도의 문제,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광학적 미디어』에서 밝힌 매직랜턴 에피소드를 권한다. 후자가 특히 흥미로운데, 키틀러는 귀족과 종교계가 쓰던 야간조명이 어떻게 부르주아에게 내려와, 야간조명의 일상화가 일어났는지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변화는 어스름함을 만들어내고, 권력에 대항할 비밀결사체가 과연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지 아리송하게 만들었지만, 역사는 이러한 야간조명의 일상화를 통해 부르주아가 자본주의의 장사꾼으로 가버렸음을 키틀러는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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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로야 2015-01-2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덕분에 흥미로운 책을 알게 되었네요. 더듬더듬 읽겠지만 제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