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화학을 만들어라
강한섭 지음 / 삼우반 / 2004년 12월
품절


멀티플렉스 극장과 덤핑 :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비디오 시장은 쪼그라들고 극장은 호황을 누렸던 것일까? 우선 다수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교통과 상업의 요지에 새로 들어서 하나의 스크린을 가진 기존의 단일 대형 극장이 몰락한 극장 환경의(211)급격한 변화를 들 수 있겠다.1998년 4월,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 CGV 강변 11이 개관하면서 시작된 멀티플렉스 시대는 한국의 영화문화와 산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의 역할을 담당했다. 우선 영화 스크린 수는 1999년 588개에서 2001년 818개, 2002년 977개, 그리고 2003년 1,200개를 돌파하는 등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212)-211,212쪽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각종 편의시설과 최첨단 장비 그리고 문화오락 공간 등을 갖추면서 영화 관람을 단순한 구경에서 토털 엔터테인먼트 활동으로 변화시켰다. (중략)멀티플렉스는 원래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24시간 어디서도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100%상품화 전략을 가지고 출범했다.그러므로 멀티플렉스 극장은 영화 관람의 행위를 하나의 의식에서 소비로 변화시킨다.-212쪽

공급이 증가하면 수요가 따라서 늘어나듯이 멀티플렉스가 도입되면 극장 관객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비디오 시장이 단기간에 몰락하는 경우는 없다.(중략)비디오 시장의 주된 몰락 이유는 우선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으로 청년층이 비디오 볼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중략)그러나 청년들의 인터넷 사용 시간은 이미 인터넷 중독이라 부를 만큼 지나치게 증가하여 2002년부터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디오 시장의 몰락의 더욱 중요하고 심각한 이유는 극장 요금의 덤핑에서 찾아야 한다.(213) 제2부 한국영화 붐이라는 신화, 05 한국 영화 붐 연구 중에서 --213쪽

모바일과 네트의 미래 : 모니터 인간들은 극장 인간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신조어를 만들거나 기존의 단어를 새롭게 해석하는 언어 전략을 구사한다. 우선 그들은 한 편의 영화를 작품이라 부르기보다는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로 생각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로서의 영화를 뉴스,스포츠,게임 등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정보로 생각한다. (중략) 그들은 극장보다 모니터에서 영화를 더욱 값싸고 빠르게, 그리고 편하게 볼 수 있다면 사람(237)들이 구태여 극장에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가 극장을 떠나 모니터에 정착하게 되면, 영화의 형식과 내용은 모니터 환경에 맞추어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237,238쪽

이런 주장을 펴는 모니터 인간들을 보면 극장 인간들은 정나미가 떨어진다. 극장 인간들에게 영화는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영화는 우선 그 자체로 완전하고 자율적이며,그래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예술 작품'이다. 작은 점 하나라도 창작자가 아니라 제3자에 의해 더해지거나 삭제된다면, 그것은 예술 작품의 자격을 상실한다. 또 예술 작품은 창작자가 처음 계획한 전시 공간에서 감상되어야 한다. 미술관과 극장은 단순한 물리적 전시 공간이 아니라 특별한 역사와 사회적 기능을 가진,그래서 그 자체로 특수한 의미를 가지는 상징적 공간이다.그래서 극장 인간들은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디오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그저 긴 예고편일 뿐이며,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영화를 방영하는 행위는 영화예술에 대한 배신을 넘어 절단과 살상 행위이다. 극장 인간들에게 영화는 이렇게 잡다한 정보가 아니라 인간의 고귀한 정신과 진실한 마음이 빚어 낸 예술이며 문화다.-238쪽

영화 종말론의 오래된 역사 : 텔레비전이 컬러화 되고 채널 수도 다양해진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영화는 또 다시 풍전등화의 위치에 서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영화 천재가 나타나 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름하여 sfx와 키덜트 무비 시대. 영화의 제작비와 규모는 더욱 비대해지고, 이에 따라 관객수는 증가하여 영화는 더욱 거대한 산업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영화 시대의 종언을 예견하는 시나리오는 계속되었다. 비디오의 시대가 열렸던 1980년대도 그랬고, 인터넷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환상이 지배했던(240)1990년대 말에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모바일 영화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 또 극장이냐,아니면 모니터냐의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영화 시대의 종언과 그에 대한 반박의 역사는 영화의 탄생 직후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상 기록과 상영 방식에 혁신적인 테크놀로지가 도입될 때마다 그 논쟁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극장 인간들의 승리로 끝났다.-240,241쪽

무엇보다도 영화산업에 결정적인 변화는 극장용 영화의 전자적 배급이나 위성 텔레비전이나 기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영화의 가정적 배급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중에서 극장을 통한 영화의 전자적 배급은 이미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필름 프린트를 대량으로 복사하여 극장으로 수송하는 현재의 배급 시스템은 19세기 말 영화의 발명기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그 높은 비용과 관리의 복잡함으로 영화의 전자적 배급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 앞에서 급속하게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필름 영사의 종언에 불과할 것이지만, 영화의 가정 배급은 극장 붕괴는 물론, 자칫 영화산업 그 (242)자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242,24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를 생각하다
수잔 리앙드라 기그 지음, 김영모 옮김 / 동문선 / 2005년 12월
장바구니담기


영화는 문제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영화가 하나의 복합물이었기 때문이다. 즉,영화는 어느 면에서는 예술에 속하고, 어느 면에서는 기술에 속하고, 또 어느 면에서는 학문에 속하기 때문이다.-15쪽

'시네마'(이미 축약된 단어)란 단어는 영화를 의미하는 '시네(cine)'또는 시노슈(cinoche)'란 좀더 축약되고 대중적인 해석, 즉 '막을 펼치다',막을 만들다'로 대체되는 '영화관에 가다'라는 표현을 탄생시켰다. - 2. 영화란 무엇인가? 중에서 -22쪽

위대한 여행가 세르주 다네는 영화를 '지도에 추가된 나라'로 정의한다. "시네마를 지도에 추가된 또 다른 나라와 동일시한 인물은 다름 아닌 고다르이다. 나 또한 이러한 사고를 무척 좋아했으며 반복하며 되풀이했다. 시네마(영화)는 나의 지리부도에 나오지 않는 나라이다. 지금 사람들은 시네마가 한 제국인지, 한 나라인지, 아니면 한 지방에 관계되는 것인지 자문한다."-24쪽

1960년대 초에 수십 명의 관객들이 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광적이고 맹목적인 열정을 갖고 살았다. 울름 가의 영화 박물관에서,좀더 나중에는 샤이오 궁의 영화 박물관에서, 전문화된 영화 클럽에서(니켈 오데옹이나 시네쿠아 농),더욱이 벨기에의 브뤼셀 영화관의 원정을 통하여(파리에서 볼 수 없는 z시리즈 주말 영화로 하루에 7-8편의 영화 감상), 우리에게 유달리 눈에 띄는 몇몇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두세 가지 일을 공유한다. 즉 미국 영화에 대한 광적인 사랑(공식 비평,좋은 취미), 일부 연출가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탄(개개인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출가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과 특히 똑같은 공간의 향유.예컨대 영화관의 3-5열의 좌석은 우리들의 좌석이다.(..)분위기는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진 조직의 분위기였다.-사람들이 채(236)플(예배당)이라고 불렀다-그래서 이 예배당의 학생들은 일에 대한 정열적인 욕망을 갖고 있었다. -루이스 스코렉키,1978년 <카이에 뒤 시네마>293호, 42 영화 팬들은 존재하는가?-236-237쪽

에릭 드 쿠퍼는 1933년 영화 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일이 분명하지 않았던 시대에 일부의 문화, 즉 학식과 영화의 기쁨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였다. 종종 접근하기가 아주 어려운 이러한 약간의 보물들을 독차지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지'인 호기심이 필요했다. 이러한 '진정한 의지'를 채플(예배당), 즉신,성자,예언가 목회자, 종교 재판관이 되어 버린 영화 애호와 혼동(239)해서는 안 된다. 2001년에 영화 팬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 단어는 이제부터 새로운 의미를 갖는가? 다른 목적,다른 행동 양식을 가진 영화 애호의 또 다른 형태가 존재하는가? -42.영화 팬은 존재하는가?--239~240쪽

텔레비전의 스크린에서 상연된 영화를 안다는 것은 반역인가?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고다르의 지적을 되풀이하면서 많은 말을 했다.실제로 우리는 복제 영화만을 보고, 그 차이는 그림과 그림엽서의 복사품의 차이가 동일한 것처럼 오리지널 영화 자체와 복제품이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조나단 로젠바움(1998)은 다른 고려를 제시했다."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비평가들, 교수님들,학생들 모두는 비디오로 영화를 본 다음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쓴다. 마치 자신들 모두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해 있는 전이기의 결과 중의 하나이며,이것은 종종 일종의 부정확,게다가(271)일종의 이 영화들에 대한 우리들의 개인적 관계에 연관되는 속임수를 내포하기도 한다.-271,272쪽

실제로 우리가 영화가 무엇인지를 말할 때, 또는 영화를 기술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영화를 조건과는 무관한 대상으로 고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조건에서 우리들은 영화를 보고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인다. 반면에 이러한 상황들은 종종 대상으로서 우리들의 영화 인식에서 결정적이다."고다르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영화관에서 사람들은 두 눈을 스크린으로 올려뜬다. 반면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은 아래쪽으로 눈을 뜬다. 영화관에서는 우리들보다 이미지가 훨씬 더 크지만, 텔레비전에서는 훨씬 더 작다. - 49.작은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합당한가?-272쪽

영화와 우리들은(영화관,페스티벌,텔레비전,영화 도서관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에게 좌우되지만,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프로그램 '카드'를 만들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 물론 제한해서. (274) 영화를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고독한 즐거움이 되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것은 하나의 일거리이다(단절의 의미, 홀의 개봉에서 선험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이것이 초현실주의자들이 다른 것을 보려고 다른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영화를 떠났을 때,이들이 했던 바로 그것이다. 비디오에 의해 제공된 편리함은 바로 다른 영화를 보게끔 부추겼다. 아울러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비디오는 영화 대상과의 관계를 바꾸었으며,dvd의 출현은 이것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49.작은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합당한가?-274,27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디어소비 - 경기변동과 미디어 사용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서
김영주 지음 / 한국언론재단 / 2009년 11월
장바구니담기


여가시간에만 미디어를 이용한다는 종래의 관념은 이동시간에도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23쪽

미디어 기기 보유 여부는 미디어에의 접근성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미디어 이용을 위해서는 가구 또는 개인이 미디어 기기를 보유하고 있거나 적정한 가격대의 손쉬운 대여가 가능해야 한다.-25쪽

초기 미디어 효과 연구에서는 '미디어'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나,미디어가 사람들에게게 무엇을 하나?라는 시각에서 수용자를 파악하였다. 즉 전지전능한 미디어와 표적 대상으로서의 수용자를 상정하였기 때문에 수용자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익명적이고 고립된, 무기력한 존재로서의 수동적 수용자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등장한 이용과 충족 이론에서는 '미디어 수용자가 미디어로 무엇을 하나?'라는 관점으로 전환하여 미디어를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취급하는 참여자이자 능동적인 존재로서의 수용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능동적 수용자는 자신의 사회적,심리적 욕구에 의해 미디어를 이용하고 그로부터 충족에 대한 기대를 설정하며,실제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능동적인 존재,개인주의적,영향을 받지 않는,이성적,주관적 사고,행동,선택하는 존재로 파악된다.-45쪽

미디어 연구에서 전통적으로 수용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대중 수용자의 대중이라는 말에는 균질화,획일화,수동적,몰개성적 집단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대중사회론에서는 수용자를 비이성적이고,미디어가 내보내는 메시지를 기계적으로 수용하며,미디어에 의해 쉽게 조작되고 조종되는 존재로 바라본다. 규모면에서 크고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으며 서로 간에 알지 못하는 익명적인 존재이며 자기정체성이 부족하다.-46쪽

미디어 효과론의 이용과 충족 이론이 수용자의 능동성을 개인적 미디어 이용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 문화주의적인 대안적 수용자 관점에서는 수용자들이 동일한 메시지를 해석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개입을 하게 된다.따라서 그로부터 창출되는 메시지의 이미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의미창출 과정의 적극성을 강조한다.-47쪽

문화연구에서는 미디어의 내용물에 대한 지칭도 메시지보다는 텍스트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메시지란 표현은 미디어에 의해 획일화된 객관적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반면 텍스트는 의미란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으며 수용자와 미디어 콘텐츠의 만남을 통해 의미가 새로이 생산된다는 입장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47쪽

경기 침체와 미디어 소비 감소 -115쪽

1998년 외환위기 시,2008년 경기 침체 시 교양,오락비, 미디어 소비 지출 비용의 감소세 뚜렷 : 소득의 변화에 따라 소비지출도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대표적으로 1998년 외환위기는 근로자 가구의 소득 감소를 야기하였으며,이에 따라 소비지출 또한 감소하였다.1991년부터 1995년까지 교양,오락비는 소득,소비증가율보다 높은 비율로 증가하였다.이 시기는 소득,소비 측면에서 모두 호황을 누리던 시기로 소비심리 역시 활성화되었고,교양,오락에 투(145)자되는 비용도 아울러 증가하였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1998년의 경우,교양,오락비는 소득의 감소,소비지출비의 감소보다 더 많은 폭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대의 전년대비 소득은 6.7%,소비지출은 10.7%감소하였다.그런데 교양,오락비는 전년대비 22.6%감소하여 소득감소율의 3배,소비감소율의 2배나 더 큰 폭으로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교양,오락비의 경우 생활필수재가 아니기 때문에 소득 감소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감소 폭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교양,오락 지출비용은 소득에 대한 탄력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14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사소통행위이론 2 -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을 위하여 나남신서 533
위르겐 하버마스 지음, 장춘익 옮김 / 나남출판 / 2006년 2월
장바구니담기


파슨스는 해석학을,즉 사회과학의 객관영역에 대한 의미이해적 접근방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320쪽

목적론적 행위모델은 주어진 상황에서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적절한 것으로 보이는 수단을 선택하며 적용하는 한 행위자를 설정한다.통상적으로 그렇듯이 파슨스는 '목적'을 행위자가 산출하고자 하는 미래의 상태로 정의한다.한편 '상황'은 행위자의 관점에서 통제되거나 혹은 통제를 벗어나는 구성요소들로,즉 '수단들'혹은 '조건들'로 구성된다.선택 가능한 수단들 사이에서의 결정은 준칙에 따르며,목적설정에서는 가치와 규범이 기준이 된다. 이 두 가지를 묶어서 파슨스는 일단 '규범적 기준'이라고 칭한다.이제 어떤 행위상황에서 행위자에게 귀속되는 행위태도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행위에 대한 기초적 수준에서의 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322쪽

이런 행위이론적 틀은 파슨스에게 중요한 일련의 개념적 함축을 갖는다.우선 이 모델은 행위자가 인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목적설정과 수단선택의 차원에서 규범에 따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전제한다.(322) 일단 그는 규범적인 것의 차원을 한 행위 주체가 의무를 부과하는 명령을 준수하거나 혹은 위반할 수 있는(324)태도로 특정짓는 것에 만족하고 만다.(325)-322,324쪽

중기 초반부의 행위이론 중 일부 / 파슨스는 행위체계를 구성할 때 문화의 개념으로부터 시작한다.사회라는 행위체계는 문화적 유형이 제도적으로 구현된 것으로 그리고 인성이라는 행위체계는 문화적 유형이 동기에 닻을 내린 것으로 설명한다. 기본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더 이상 단위행위가 아니라,문화적 유형 혹은 상징적 의미들이다.이것들이 결합되어 어떤 구도를,다시 말해 전승가능한 문화적 가치체계와 해석체계를 이룬다.문화적 전승 가운데 행위체계의 구성에 직접적으로 의미를 갖는 부분은 가치유형이다.가치유형은 의무를 부과하는 행동기대나 혹은 상호주관적으로 타당한 규범으로 제도화하는 식으로,또 개인의 동기나 혹은 성격을 형성하는 행위성향으로 내면화되는 식으로 가공되는 원자재를 이룬다.-339쪽

한 문화의 틀 안에서 행위한다는 것은 상호작용 참여자들이 문화적으로 확보되고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된 비축지식으로부터 해석을 취하여 그들의 상황에 대해 서로 이해를 도모하고 이것을 토대로 각자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해지향적 행위를 중심개념으로 놓고 볼 때,문화에 의한 행위의 규정은 행위자가 전승된 문화내용을 해석하면서 전유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가치에 따르는 태도를 대상들에 따르는 태도로 파악하기 때문에,파슨스는 이런 분석의 길을 막아버리고 만다.-344쪽

의사소통행위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세계가 묶어주지 않는다면,문화,사회,인성은 서로 떨어져나가버린다.그리고 바로 이것이 파슨스로 하여금 세 질서를 매개되지 않은 채 서로 영향을 미치고 서로에게 부분적으로 침투하는 체계들로 자립화시키도록 만든다.파슨스는 문화적 가치가 사회와 개인에 제도화와 내면화라는 통로를 통해서 병합된다는 생각을 행위이론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를 단념한다. 그 대신 분석적으로 분리된 체계들 사이의 상호침투라는 모델이 전면에 자리하게 된다.-354쪽

특히 복잡한 사회는 일관성 요구와 기능적 명령 사이에 나타나는 지속적 갈등을 흡수하고,무해하게 만들며,논란거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파슨스는 여러 가지 흡수메커니즘을 든다.가령 제도화 내지 내면화의 정도가 행위영역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서로 갈등하는 가치유형이 지배하는 행위영역들을 분리하는 것이다.-360쪽

파슨스는 정신분석학에서 발달한 모델인 충돌갈등의 무의식적,징후형성적 처리라는 모델을 사용한다.그러나 그러한 사회병리현상 내지 인성의 병리현상에서 행위체계의 이원적 구성의 취약성이 드러난다.한편으로 파슨스가 갈등처리의 병리적 형태들에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이론구성 방식 덕택인데,다른 한편 그가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자신의 이론구성 안에서 위치시킬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361쪽

파슨스에 따르면 타당성 주장의 사실성은 제도화되거나 내면화된 가치와 결부된 외적,내적 제재 덕택이다.그러나 그럴 경우 역기능적이 되고 갈등을 산출하는 가치복합체가,환경에 의해 위협에 처한 체계로부터 나오는 존립유지 명령의 압력 아래에서,왜 좀더 기능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제재와 결부된 가치복합체에 의해 흡수,대체돼서는 안 되는지를 알 수 없다.달라진 체계 환경의 관계에 의해 유발되는 가치변화에 대해 파슨스는 어떤 내부적 차단장치를 거론할 수 있을까?만일 유형변수들이라는 것이,문화의 차이를 단지 동일한 결정유형들의 상이한 조합방식으로 파악하는 요소주의적 의미를 갖는다면,그리고 그것들이 또한 이런 결정유형들의 변화에 내적 제한을 가하는 어떤 구조를 보이지 않는다면,파슨스는 기능적 명령에 맞서 고유논리를 갖는 문화적 유형들이 보이는 저항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도구를 보유하지 못하는 셈이다.-363쪽

파슨스는 이제 기능을 비교적 추상적인 차원에서 적응,목표달성,통합,그리고 구조유형의 유지로 정의한다.-380쪽

파슨스는 문화적 가치의 타당성을 자기조절적 체계에서 기준치에 부여되는 인공두뇌학적 의미에서의 통제기능으로 해석한다.문화적 가치들 사이의 의미론적 관계는 암묵적으로 통제변수들 사이의 경험적 관계로 재해석된다.-388쪽

파슨스는 서구에서 일어난 근대화의 현상들을 우선 구조적 분화의 관점에서 정리한다. 이때 그는 통합기능을 하는 하부체계를 준거점으로 삼는데,이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이런 구성의 결정이 도덕 및 법의 발달을 진화의 핵심변수로 만들고,반면에 생활세계의 물질적 재생산의 역학 그리고 그와 함께 계급구조와 지배질서로부터 생겨나는 갈등은 배경으로 밀려난다.-443쪽

이미 1960년대 말에 파슨스가 사용하는 용어에는 생물학적 진화이론으로부터 빌려온 것임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문화적 발달을그는 유전적 코드의 변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긴다.세계상 속에 들어 있는 인지적 잠재력을 사회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문화적 변종들의 영역으로부터의 선택에 해당하고,반면에 국가에 따라 상이한 근대사회의 발달경로는 구조형성적 혁신들이 가장 잘 안정화될수 있었던 환경들에 대한 지표를 제공한다.(중략)파슨스는 진화론에 입각해서 선택메커니즘과 안정화메커니즘 그리고-문화적 코드의 차원으로 자리가 옮겨진-변이메커니즘 사이의 협동작용부터 설명한다.동시에 파슨스는 사회진화이론을 체계이론과 겹치게 해서,베버가 사회합리화과정으로 생각한 근대화 과정을 체계복잡성의 증가로,그것도 사회가 경제와 국가행정이라는 하부체계들을 특수한 조절매체들을 통해서 분화시킬 때 등장하는 복잡성 증가로 소급한다.-44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프라 윈프리의 시대 - 대통령을 만든 미디어 권력
제니스 펙 지음, 박언주.박지우 옮김 / 황소자리 / 2009년 2월
절판


테라피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이 해방의 약속 이면에 사회통제,즉 "표준화"라는 세련된 전략이 자리한다고 주장한다.이것은 심리학이 의사,정신의학 전문가,형법체계,교육기관 등의 수단을 통해 어떻게 "표준화된 주체"를 양산해내는지에 대한 미셸 푸코의 비판적 토대이기도 하다. 니콜라스 로즈는(44)푸코의 시각을 빌려 19세기 후반부터 소위 '정신수양'의 '이론적,실질적 기술'이 돼온 심리학은 '인격의 형태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정치권력의 행사 방식에도 변화'를 몰고왔다고 주장한다. 심리적 정신수양은 '주관적 해석의 관행을 정착시키는 데도 근본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1998,11,13).-44쪽

'심리학적 수양'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과학적 합리성을 현실 문제에 적용한다는 진보적 계몽주의 관점 안에서 그 틀을 형성한 뒤, 개인을 사회 구성의 한 요소로 보는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에 힘을 입었다. 따라서 심리학적 수양이란,사회질서 유지와 진보라는 과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개인들의 문제에 과학적 지식을 적용시키려는노력에 다름 아니었다.다시 말해 심리학적 수양의 역사는 개인과 사회질서의 관계를 명확하게 표명하기 위한 시도의 연속이었다.-46쪽

이 관계는 주로 단선적 인과관계로 표현하곤 하는데, 추상적이면서 독자적인 과정이(예를 들면 '근대화','문명화','합리화'와 같은 과정)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그 과정에 개인이 순종하고 종국에는적응한다고 보는 경우와 사회를 개인의 특성과 행동의 집합체로 이해하는 경우 두 가지가 있다. 두 경우 모두에게 모든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주체는 개인이 되고 만다. 즉 모든 사회적 문제는 개인이 자신과 무관한 자연스럽고(또는)불가피한 역사적 과정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했거나 이들의 심리적 결함이 합쳐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역사적 진보를 위협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그래서 테라피 이론과 실천강령들은 개인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조종하려는 데 초점을 맞춘다.이렇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쳐 변화를 이끌어내면 사회적 문제들이 개선될 것이라는 가정이 밑밭침되는 것이다.-46쪽

회복,레이거니즘 그리고 가족의 위기 : 동반의존 진단은 남녀 갈등을 개인 심리 및 개인 간의 관계에만 한정함으로써 이 갈등을 탈정치화시켰다.그 결과 여성에게 독립성과 능력이 결핍된것은 불평등한 정치경제적 질서의 결과가 아닌 가족병의 결과로 인식된다.회복 패러다임과 레이건 이데올로기가 만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회복운동이 레이건 정부 시절 폭발적으로 유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회복모델의 골자인 '문제가족'과 상처받은 자아가 레이거니즘 이데올로기의 핵심 논점인 '가족가치의 붕괴'및 '무책임한'또는 '비도덕적'자아와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162쪽

회복운동이나 레이거니즘의 입장에서 볼 때 가정의 비정상적 문제는 모든 질병의 온상이다.따라서 그 치유책은 가족이라는 제도를 소생시키는 데 있었다.즉 가족의 가치를 부활시키고 그 가치가 다시 '문제를 개선하고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만드는 것이다.(중략)그 결과 알코올 중독,약물 남용,각종 중독,이혼,가정폭력, 아동학대, 범죄 심지어 빈곤의 문제까지도 소위 이 문제 가족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간주되었다.-16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