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에 24번의 죽음 - 로라 멀비의 영화사 100년에 대한 성찰, Hyunmun Theoria 1
로라 멀비 지음, 이기형.이찬욱 옮김 / 현실문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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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움직임과 정지 사이에서 발견되는 시간의 재현 中 - 1970년대 초반에 내가 영화에 관한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1초에 24(또는 대략 그쯤) 프레임으로 영사되는 영화는 언제나 어두운 방에서만 볼 수 있었다. 오직 전문가인 감독과 편집자만이 편집 테이블에 쉽게 접근하여 '자연스런'움직임의 환영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속도를 멈출 수 있었다. 20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양해졌고,속도의 조절 방식도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중략)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영화 미학은 역사적인 본류 전반에 걸쳐 직면하고 있는 뉴미디어 테크놀로지들과 그것이 생산해내는 새로운 관람 방식들에 훨씬 더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본다.-9쪽

내 출발점은 명확한 일상의 리얼리티이다.말하자면, 비디오와 디지털 미디어는 오래된 영화를 보는 새로운 방법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테크놀로지와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예측할 수 없는 조우는 영화 학자에서 영화 팬에 이르기까지 모두 비슷하다.(중략) 영화를 통한 과거로의 회귀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사용,특유한 필름 조각을 되돌리고 반복하는 가능성과 함께 발전해온 관객성에 의해 역설적으로 촉진되었다. 되돌리고 반복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영화의 진행을 지연시키고 흐름을 방해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 속에서 영화와 시간의 복잡한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10쪽

1.흐르는 시간 中 -기계와 화학 기술이 점차 전자 기술로 향하고 보다 극적으로 디지털로 나아감에 따라 나이를 먹어가는 영화에 대한 애수 어린 반추는, 훨씬 직접적으로 영화의 실페가 물질적인 객관으로 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중략)비디오의 발달이 영화를 위해 점점 중요해졌을지라도,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형식들은 이제 시대의 말미에 더욱 정밀하게 단일 시스템 부호들을 사용한 이진수 코드로 번역 가능케 되었다.상호 텍스트적이고 크로스 미디어적인 그 밖의 관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특이성, 즉 그것의 물질적인 기초와 시적인 것 사이의 관계는 융합된다.-22쪽

사진과 영화를 향한 테크놀로지의 충동, 순식간에 지나가는 불안정한 리얼리티와 시간의 흐름을 고정된 이미지로 저정하고자 하는 열망은 항상 생명을 불어넣었다.빛을 집중시켜서 어떻게 이미지들을 붙잡을 것인가. 그것들의 리얼리티는 인덱스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어떻게 새겨 넣을 것인가가 항상 문제되었을 것이다.인간의 상상력은 항상 이런 종류의 기계적인 재생산의 마술적인 측면에 사로잡혀왔다.-23쪽

(중략) 새로운 삶(영화는 새로운 소비 양식들을 부활시키고 회복시켰다)은 또한 오래된 영화의 소비 방식을 변화시킨다.옛날 옛적에,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움직임의 환영을 창조하기 위해 적정 속도로 영사되고 주어진 이야기 시퀀스를 따라가는 영화 안에서만 한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이제 영사되는 영화가 가장 잘 지켜왔던 비밀인 영화의 정지성은 단순한 버튼 조작만으로도 쉽게 드러난다.또한 그것은 정지된 프레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사진의 정지성을 드러내도록 해준다. 한편으로 영화 이전의 정지성은 사진의 자리에 위치한다. (중략) 영화 이후의 정지성은 물질적인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영화와 달리 디지털에 위치하지만, 기계적이고 셀룰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움직이는 이미지를 멀티미디어의 미래속으로 가져간다.그러나 영화 이후의 매체는 영화 이전의 매체를 불러냈다.-27쪽

영화의 속도를 조작하기 위해 처음으로 힘을 발휘한 것은 1970년대 후반에 도착하고 1980년대에 기반을 잡은 비디오였다. 비록 전자 이미지의 불안정성이 이러한 경험이 가져온 흥분을 감소시킬지라도,비디오가 지배하게 된 지난 몇 십 년간의 축적된 경험은 디지털 시대로 전달되어질 수 있다.그러나 현재의 정황은 이 새로운 상호 작용적인 관객성의 중요성을 더욱 강화시켜왔다.-28쪽

새로운 모습들은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유사-박물관과 같은 상태로 이동하면서 과거 영화에 대한 이해를 또한 강화한다. 과거의 특별한 영화광,영화팬,영화 애호가를 넘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는 반면, 영화 체험은 1초에 24프레임의 질서가 주어진 속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 전통적인 영화 관객의 체험으로부터는 멀리 이동하게 된다. -34쪽

일단 영화를 소비하는 과정이 몰입된 관람이라는 절대 고립(어둠 속에서 1초에 24프레임으로,외부의 침해 없이 서사적인 질서 속에 있는)으로부터 분리되자 서사의 결합력은 외부 담론으로부터 오는 압력 아래 놓이게 된다. 그것은 제작 배경, 뒷이야기, 역사와 같은(34)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관객성은 또한 서사 내부의 패턴에도 영향을 준다. 특 특권화된 위계들을 뒤엎고,원인과 결과가 투여된 의미의 사슬을 대체하는 예상치 못한 연결들을 만들면서 시퀀스들은 쉽게 건너뛰거나 반복될 수 있다. 이러한 상호 작용적인 관객성은 텍스트 본래의 결합력을 공격하면서 이해와 예상치 못한 감정으로 열려지는 텍스트 분석 과정 속에서 즐거운 회상을 함께 가져온다.-34,35쪽

만일 영화를 디지털로 보는 것이 서사 붕괴의 감각에 공헌해왔다면, 디지털 편집 시스템은 영화를 보다 쉽게 인용되고 참조되게 만들었다. -37쪽

2.불확실성 : 주술 그리고 속임수의 예술 中 영화 기술이 일상 속으로 완전히 들어와서 그것의 작동들이 더 이상 신비롭지 않게 됨에 따라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들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퇴출되었듯이 홈 비디오나 테크놀로지가 보여주는 평범한 리얼리티에 의해 추월당했다. -46쪽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폭발적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대중적인 믿음이 증가됨에 따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환영 생산 과정의 신비와 맹신의 가면은 벗겨지게 된다. -55쪽

<시각적인 쾌락과 서사 영화>를 쓴 이후 언젠가부터 나는 대안적인 관객을 발전시키려고 애썼는데, 그러한 관객이란 페미니즘과 아방가르드라는 새로운 영화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관객들로서 그들은 관음증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크린을 판독하려는 호기심과 욕망에 의해서 추동되는 관객들이었다. 호기심, 보고 알려는 충동은 시각 문화를 요구하는 정치적인 것을 위한 유토피아적인 공간에 여전히 주의를 기울였으며,또한 판독 과정 중의 하나는 퍼즐과 수수께끼를 푸는 인간의 오랜 흥미와 쾌락에 대해 대답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호기심이 강한 관객은 사색적인 관객의 선조이다. -252쪽

그리고 지연의 영화는 엘리트뿐만 아니라 소비의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접근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독의 쾌락을 풀어준다. 특별히 흥미로운 점은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 사이의 관계인데, 즉 지금 나이를 먹어온 영화에 대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효과이다. -252쪽

동일한 좋아하는 영화, 동일한 특정 시퀀스, 동일한 특정 순간으로 되돌아가려는 사색적인 관객의 충동 속에는 모두 어떠한 반복(253) 강박의 측면이 있다.-253,254쪽

옮긴이의 말 중 - 멀비가 말하는 '정지'와 '지연'은 어떤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다. 우리들이 흔히 집에서 영화를 보며 리모컨 버튼을 사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나 근사한 이미지,옛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또는 '옥에 티', 화면에서 자신만이 발견한 '겨우 존재하는 이미지',이해하기 힘든 부분 등을 다시 보기 위해 움직이는 이미지를 계속하여 정지시키거나 되돌려보는 일상적인 관람 행위를 말한다. 이를 멀미는 이 책에서 편의상 이미지를 소유하려는 페티시적인 관객과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움직임과 연결들이 만들어내는 영화 안팎의 사건들(컨텍스트)을 사색하려는 관객으로 나누고 있다. -260쪽

9. 소유적인 관객 中 - 영화적인 체험은 매우 덧없는 곳이기 때문에 앞선 순간들,이미지들, 특히 우상들을 붙잡는 데 항상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영화 산업은 팬 문화가 형성되던 최초의 순간부터, 그러한 영화 자체를 보완해줄 수 있는 일련의 방어물, 즉 스틸 이미지들을 생산했다. 그것은 바로 제작 과정에 대한 사건들, 포스터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핀업이라 부르는 미남 미녀의 사진들이었다. 이러한 모든 2차적인 이미지들은 영화 팬들에게 소유의 환영을 갖게 하도록 디자인되며, 그 이미지들을 통해 팬들은 되돌려볼 수 없는 영화의 스펙터클과 각 개인들이 상상하는 것 사이를 연결하게 된다. 만일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 팬들은 빠져나가버리는 이미지를 소유하고 붙잡고 싶은 욕망 때문에 영화관으로 되돌아가서 같은 영화를 계속해서 보는 식의 반복적인 관람 행위를 하게 된다. (중략) 전자적인 또는 디지털적인 보기와 함께 영화적인 반복 강박의 속성은 변화한다. 영화는 지연되고 이처럼 선형적인 서사로부터 좋아하는 순간이나 장면으로 파편화되기 때문에 관객은 예전에는 붙잡기 어려웠던 이미지를 붙잡거나 소유할 수 있다.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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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체계
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 / 백의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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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적 체계:수집 중. 모든 사물은 소유, 즉 이 열정적인 추상화와 같다. 거기에서는 단 하나의 사물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언제나 일련의 사물들,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물의 실현된 계획인 완전한 일련의 사물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의 소유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늘 매우 만족시키는 동시에 매우 실망시킨다. 즉 모든 일련의 사물들은 소유를 연장시키고 불안하게 한다.-135쪽

사물의 특수성, 즉 사물의 교환가치는 사회적,문화적 영역에 속한다. 그와 반대로 사물의 완전한 특이성은 내가 그것을 소유하는데서 비롯된다.-141쪽

퇴행적 방식 끝에,사물에 대한 정열은 순수한 질투 속에서 완성된다. 따라서 소유는 사물이 다른 것들에 비해 가질 수 있는 가치로,그리고 다른 것들에게서 사물을 빼앗는 것으로 가장 깊이 만족한다. -152쪽

일련의 것 속에서의 차이는,실제의 흥미를 대신하는 형식적 흥미를 유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구매 동기에서 작용하는 것은 연상에 의한 순전한 구속이다. (중략)거꾸로,수집의 방향을 상실한 수집가는 가까스로 수집을 해나간다. 그는 그에게 실제의 흥미를 표현하는 책의 제목을 보고서 책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161쪽

수집가가 자기 자신의 명백한 담론을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사회적 담론-사회적 담론의 규칙들은 그에게서 벗어난다-속에서 소외되고 사라져버림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열린 객관적 불연속을 닫힌 주관적 불연속으로 무조건적으로 옮겨 놓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 그가 사용하는 언어 자체는 일반적인 가치 전부를 상실한다. 따라서 사물들에 의한 총계는 늘 고독을 나타낸다. 그것은 의사소통을 무시하는 것이고 의사소통도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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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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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공개 - 수집에 관한 한 강연 중 . 나는 여러분들에게 어떤 수집가가 그의 장서에 대해 갖는 관계,그러니까 어떤 수집의 내용보다는 수집하는 일 자체가 어떠한가를 한 번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수집하는 일을 책을 구입하는 여러(30)가지 종류의 방법이라는 문제와 결부시켜 고찰한다면 그것은 전혀 자의적인 것이 될 터인데,왜냐하면 수집하는 일을 책을 구입하는 이런저런 방법이라는 식으로 파악하는 것은,자신이 소유한 장서를 바라볼 때 밀려드는 모든 수집가에 공통된 기옥의 밀물을 막아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30,31쪽

시대,지역,손재주,전 소유주-사물의 이러한 배경들은 서로 합쳐져서 수집가에게는 하나의 마력적 백과사전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마력적 백과사전의 핵심이 바로 수집가가 소유하는(31) 대상물의 운명이다.-31,32쪽

여러분들은 아마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어떻게 수집가의 특성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33쪽

내가 부르는 값으로는 그 책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에 나는 아예 값을 부르지 않았다. 나는 애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내가 기대해 마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아무도 그 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값도 부르지 않은 채 옆으로 밀쳐졌다. 나는 며칠 동안의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였고,그래서 일주일이 경과한 어느날 그 책을 고서점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경우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책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경우라고 할 수 있다.-37쪽

다시 말해 이러한 수집가에 있어서는 사물이 그의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그 사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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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0-05-0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터 벤야민까지 참조하시나요? 아아, 충분히 그렇겠네요.^^ 벤야민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아렌트의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서 나왔던 벤야민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문지에서 나왔던 책인데, 제법 오래된 책이라 서고 깊숙한 곳에 있을 거예요. 시간이 나시면 한 번 집어들어보세요. 자살과 연관지어 읽으면 미묘한 울림이 있더군요.

얼그레이효과 2010-05-02 14:54   좋아요 0 | URL
오. 좋은 추천 고맙습니다.^^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 사회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31
노명우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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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학적 탐색의 목표는 미디어의 역사를 '단절'을 중시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계보학은 발전의 연속성 대신 역사에서 발견되는 단절과 불연속에 주목한다. 역사 일반처럼 미디어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단절과 불연속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의 역사는 매우 특이하다. 미디어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단절은 근절적 계승이 아니라,병렬적 동시성의 특성을 지닌다.책이라는 미디어와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 사이에는 분명 단절이 있지만,책 이후에 등장한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가 사회를 지배해도 이전의 미디어인 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이렇듯 미디어의 역사에는 중요한 단절이 기록되어 있지만,단절 이후 모든 시기의 미디어는 동시에 공존한다. -46쪽

미디어의 계보학을 파악하기 위해 나는 두 가지 갠며을 구별하고자 한다. 미디어는 분명 도구의 성격을 지닌다.도구의 성격을 지니는 미디어를 지칭할 때 나는 '도구-미디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한다. 도구-미디어는 특정 미디어가 도구적 성격만을 지니고 있으며 문화적 형식을 갖추지 못했음을 의미한다.인류의 역사에서 무수히 많은 미디어가 출현했지만,모든 도구-미디어가 살아남지는 못했다.-47쪽

도구-미디어가 문화적 형식을 획득하면 한 시대를 특징짓는 중요 기준이 된다. 이렇게 단순 도구-미디어에서 벗어나 문화적 형식을 획득한 미디어를 '환경-미디어'라 부른다. 도구-미디어는 개별 인간이 개인적 선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지만, 환경-미디어는 마치 공기처럼 개별 인간이 선택할 수 없다. 만약 공기라는 환경을 인간이 거부하면 생명체로 살아갈 수 없듯,환경-미디어화된 도구-미디어는 개인이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되도록 만드는 힘ㅇ늘 지녔다. 환경-미디어는 에피스테메적 미디어이기도 하다. 환경-미디어는 단순한 기술적 불연속뿐만 아니라 인식론적 단절 또한 불러일으킨다.-48쪽

텔레비전과 영화의 결정적 차이는 텔레비전은 방송이라는 제도를 통해 현실화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영화관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관객들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텔레비전은 말 그대로 방사된다. 영화는 영사기가 쏘는 빛을 인식할 수 있는 어두운 특정 공간 안에서만 유효하지만,텔레비전의 유효거리는 무한하다. 방송이라는 시스템과 결합한 텔레비전은 '양'이라는 개념을 일상화한다.-97쪽

파노폴리 : 파노폴리는 선물세트처럼 개별 상품이지만 특정한 맥락을 형성하는 상품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파노폴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상품을 단품으로 구매하게 되면, 그 상품과 파노폴리라는 맥락 위에 놓인 또 다른 상품을 구입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나기도 한다.-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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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화 1 위대한 영화 1
로저 에버트 지음, 최보은.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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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은 1994년 9월 토론토영화제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고, 몇 주 후에 개봉되었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박스오피스에서는 실패하였다. 개봉 초기 벌어들인 18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은 제작비도 감당하지 못하였다. 작품상을 포함한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후에도 1000만 달러의 수입을 추가로 올렸을 뿐이다. -276쪽

흥행에 득이 될 만한 요소는 별로 없었다. 제목은 끔찍했고,여성들이 좋아하지 않는 '감옥 드라마'였으며, 액션 장면도 없었다.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그들은 스타가 아니었다. 게다가 러닝타임이 142분에 달하였다. <쇼생크탈출>은 관객들의 좋은 입 소문에 의지해야 하는 영화라는 것이 확실하였다. 실제로 극장에서 간판을 내렸을 때까지만 해도 흥행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 간판을 걸고 있었으면 이후 몇 달간은 스크린에 걸려 있었을 테지만, 대형 사고는 치지 못했을 것이다.-276쪽

대신 홈비디오 역사상 가장 주목할 사건이 터졌다. <쇼생크 탈출>은 비디오테이프와 DVD,tv 방영을 통해 대규모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5년간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 된 <쇼생크 탈출>은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가장 많이 대여된 영화가 되었다.<쇼생크 탈출>을 추앙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자신들이 발견해낸 영화라 생각하였다.-276쪽

(중략)인기투표와 대여순위는 영화의 대중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쇼생크 탈출>이 가치 있는 영화라고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떠들어대는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 <쇼생크 탈출>은 한 편의 영화수준을 뛰어 넘는, 영적인 경험과 비슷한(276)것이 아닌가 싶다.-276,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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