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일상생활 - 사랑, 결혼, 그리고 페미니즘 현대의 지성 119
크리스토퍼 래쉬 지음, 엘리자베스 래쉬 퀸 엮음, 오정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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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쉬가 묘사해놓은 현대의 초상에서 보여지는 대부분의 현대의 삶은, 모든 활동 영역이 엄격한 검열 과정을 거쳐야 하며, 과학과 합리성이 인간의 경험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고, 훈련된 전문가들만이 인간 존재의 일상적인 행위들을 지도해줄 수 있다는 전제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러한 합리화 원칙에 의해 재구조화된 생활은 권력을 확장하기 위한 법인형 자본주의와 현대 자(12)유국가주의의 물결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것은 관료 구조와 온정주의적 윤리를 수단으로 이룩해낸 것이었다. 국가를 대신해 활동하는 서비스 직업은 개인적인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와,일상의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 습관과 관습 대신 비교적인 기술을 쓰도록 하는 데 일조하였고, 민주주의와는 상치되게 지식층들에게 의존하는 상황을 불러들이게 되었다.-12,13쪽

감시와 조사 궁극적으로 외부 전문가들에 의한 조작에 모든 생활이 종속됨에 따라 인간 경험의 풍부한 국면을 보여주는 일상생활,특히 래쉬에게는 민주주의 시민의 목표이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일상생활은 강등되어졌다. -13쪽

래쉬는 20세기에는 사실상 낭만적 사랑에 대한 반감 현상이 나타났으며,이는 정열적 사랑과 결혼이 공존한다는 생각의 소멸을 의미하고,다시 에로스를 위험한 존재로서 두려워하는 것으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우리 시대는 정열적인 끌림에 기초하여 평생을 함께 보내야 하는 관계보다는 안전하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다고 구속적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우정에 더 의지하고 있다.장식적으로 표현된 성욕보다는 사실에 입각한,감정이 절제된 이해심을 더 원하는 세대인 것이다.성욕에 관한 과학적인 해석과는 달리 성욕에 관한 문학적,예술적 묘사는 종종 신비스러움과 충동이 행복하고 견고한 결혼의 기반임을 인정한다.-16쪽

19세기 중엽에는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을 비롯한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편의상 여성과 남성이 근본적으로 지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정성 예찬을 믿는 사람들(많은 역사가들에게는 반동으로 몰렸다)은 상류 사회 풍습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을 증가시켜 좀더 자유로운 여성성의 개념을 창조하였다. 여성은 결과적으로 도덕적 질서의 필연적 수호자들로 여겨졌으며,모성의 영향력은 가정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치유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18쪽

19세기 가정의 이상화는 가부장적 관계를 재생산한 것이 아니라 그 대신에,래쉬가 논쟁하는 바,여성에게는 여전히 똑같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신부성주의neopaternalism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였다.많은 여성들은 권위를 주장하는 방법으로서 가정성 예찬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그 과정에서 그들은 가족 문제에 대한 조언을 남발하는 이들과 의사들을 종종 그들의 편으로 받아들였다.아이러니컬하게도 여성들이 이렇게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을 수용한 것은 전문가와 치료적 사고방식에는 헤게모니의 발판을 마련해주고,여성들 자신의 권위는 상실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18,19쪽

역설적으로 래쉬의 해석에서는 가족의 사생활 중심주의로의 경향이 가족에 대한 완전한 침입을 수반하게 되어 자유적인 민족국가를 뒷받침해주는 치유 정신의 승리를 불러왔다.개인주의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가족의 사생활 중심주의는 과다한 감정적 요구를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에 위치시켰고 이러한 긴장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치료를 위한 조직이 개입하였다.노골적인 힘의 과시가 아닌 감시와 잠입을 통해 자신의 힘을 지탱하였던 자유 국가는 이러한 가정의 위기로부터 이득을 보았다.이렇게 '비강합적,비권위적이고 교묘히 농간을 부리는 지배'는 원래는 가부장적 지배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의 효과에 대해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듦으로써 새로운 국(24)가 권위를 형성하였다. 외부 전문가들의 침입,전문 인력들에 의한 개인 생활과 가족 생활에 대한 책임 인수,그리고 삶에 대한 거시적 합리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차원을 넘어서 더 숭고한 목적에 공헌함으로써 얻게 되는 의지와 자존감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24,25쪽

가정 예찬을 껴안은 여성들과,의사들과 동맹을 맺은 많은 여성들은 일시적으로는 가족에서의 그들의 위치에 힘을 얻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외부인들에게 새로운 힘을 이양하는 꼴이 되었다.후기 참정권론자들이 진보파의 공평무사한 과학적 전문 지식에 대한 무한한 신봉과 개혁파들의 섹슈얼리티 제어를 지지했던 것은,모든 인간 행동을 과학적 관찰과 통제에 종속시키려는 거시적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25쪽

이와 같이 구시대의 전통인 가부장제가 자유주의 국가라는 새로운 헤게모니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대국적인 그림이다.래쉬에게는 이 두 가지 견해 모두 탐탁치 않게 여겨졌지만 분명한 것은 래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과학만이 유일한 방법이 되지 않는 그런 삶이라는 것이다.(하버마스가 말하듯)"삶에 있어 식민화는"존재하지 않는다. 가정은 가부장적이(25)지 않으며 과도하게 사유화되거나 전문가들에 의해 침해받지 않은 곳이다.대신 그것은 밖을 내다보고 구성원의 감성적 필요만이 아닌 그 이상을 성취해주며 개인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고 공동체적으로 인간적인 삶을 형성하는 자발성과 관습의 통합체인 일상생활의 기초를 만들어낸다. 즉 평등성 또는 민주주의라는 의미 있는 개념의 기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이상 책머리에 중 일부-25쪽

18세기 여성주의자들은 처음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이 교육에 의해 변화 가능한 사회적 관습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반면,여성에 관한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인간이 성 역할에 맞춰서 성장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그들에게는 현재 여성의 모습-여자들이 그렇게 되도록 운명지어진 모습-이외에 여자들이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 또는 어떤 존재가 되야 하는지는 상상도 못 했던 문제였다. 그들은 미덕을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행동으로 정의하였는데 이 지위에는 사회적 계급과 젠더도 포함되(38)어 있었다.여성성의 장단점에 대해 토의했던 이들은 태생적으로 한 성이 다른 한 성보다 더 우월하게 만들어졌는지 아닌지의 추상적 문제는 상관하지 않았다.그러한 질문은 중세 또는 초기 근대적 사고에서는 전적으로 무의미하게 여겨졌을 것이다.-38,39쪽

17~18세기에 출현하기 시작한 가정생활에 대한 새로운 개념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 현대 페미니즘은 결혼과 남녀 평등을 화해시키려 노력하였다. 세속적인 견해에서 보자면 이것은 유토피아적인 시도였다. 결혼에 대한 비판론은 수도원 생활에 대한 가톨릭의 비판론과 닮아 있다.그것은 그 제도가 공격을 받아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부패하고 음탕한 수도승들을 다른 개신교도들처럼 신랄하게 비난하면서도 수도원 생활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시하지 않는 에라스무스와 라블레 같은 작가들처럼,결혼의 비판자들-종종 똑같은 작가들이었다-도 결혼이 항상 사랑하는 이들의 결합이기보다는 혈통과 재산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임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57쪽

결혼뿐만 아니라 낭만적 사랑 자체도 인기가 없어졌다.첫눈에 빠진 사랑은 결혼을 위한 든든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우리는 듣고 또 들어왔다.같은 취미와 취향,서로 타협하려는 마음,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이런 것들이 사랑이 식었을 때 더 오래갈 것이다.연인들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그들 중 하나가 상대방을 벗어나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정절이나 영구불변,영원한 애정을 기대하는 것은 실망을(70)자초하는 것이다.우리에게는 동성간의 우정이든 이성간의 유형이든,우정이 사랑보다 바라는 것이 적고 덜 강렬하기 때문에 더 믿을 만해 보인다.우정은 성과(오늘날 적어도 안전한 성과)쉽게 공존하지만,예술과 사상에 의해 성적 충동을 장식한 것인 에로스와는 공존하지 않는다.우리는 우리의 성적 충동이 장식되지 않은 것을 좋아하며,삶의 현실 가운데 자기 자리에 안전하게 놓여 있는 것을 좋아한다.-70,71쪽

성의 즐거움조차 이제는 에이즈에 의해 그늘이 졌다.성욕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위험하고 어둡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는 인식-그것이 장식되어 있는 형태에 있어서는 더욱더 그러한데-이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돌아왔다.그렇게 혼란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 지속적인 관계로 이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에로스가 문명화시키는 영향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에로스가 안정시키는 영향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엄청난 신비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71쪽

중매 결혼이 사랑에 기초한 결혼에 자리를 내주면서,결혼의 근대화가 젊은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증가시켜주었다고 일반적으로 가정된다. 만약 그렇다면,영국과 대부분의 서구 유럽에서 '근대화'의 시작은 16세기로 연대가 추정되어야만 한다. 그 이후부터 그리고 아마도 훨씬 이전부터,영국에서 결혼은 상당히 늦은 나이에 이루어졌고,게다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이들의 비율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보다 훨씬 더 높았다.이 두 사실은 결혼이 거의 예외 없이 중매되고 따라서 이른 나이에 결혼이 보(96)편적인 경우에서보다 개인의 자유로운 동의에 훨씬 더 많이 의지했음을 보여준다.-96,97쪽

그러나 바로 이 자유는 결혼의 근대적 개념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에 점점 더 많은 공격 아래 놓이게 되었다.초기 단계에 근대화는 물론 강요된 결혼에 대한 공격의 형태를 띠었지만,또한 부모 동의의 중요성,신중함과 주의의 필요성-그리고 또한 주목되어야 하는 것은,결혼 결합의 분해 불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강조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특히 이는 결혼 예약과 비밀 결혼에 대한 오랜 투쟁의 형태를 띠었는데,이는 부르주아 개혁가들에게는 개인적 도덕의 새로운 기준과 노동 훈육의 새로운 양식을 부과하고 옛 관습에 완고하게 집착하는 대중에게 근검의 미덕과 즉각적 만족의 거부 및 식견을 주입하려는 일반적 캠페인의 한 부분이었다.-97쪽

세상은 개혁의 필요성을 절규했고,여성의 가정적 재능은 결코 이들이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그것은 가정적인 미덕에 사회 전반에 대한 봉사라는 의무를 부여했다.어떠한 경우에도 가족은 외적인 영향력-알코올 중독,매매춘,투자광,부를 향한 광란의 아귀다춤-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을 수 없었다.이러한 악이 가족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의식 있는 주부라면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악에 대항하는 공적 운동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논의가 가능했다.일찍이 1820년대와 30년대에 여성들은 가족 생활에 위해가 되는 요소를 없애려는 도덕적 개혁 모임을 조직하기 시작했다.-114쪽

새로 나타난 행정과 전문직 엘리트들은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자본주의 최악의 오용을 완하하였다고는 하지만,그만큼 특화된 훈련과 전문성에 대한 파괴적인 숭배에 의존하였다.점점 더 정교해지는 사회 봉사 체계-복지 국가의 기반-를 통해 시장을 제어하고자 하는 노력은 자멸적인 것이었다.그것은 일상의 신뢰(122)능력을 침식했고 가족을 관료의 침입에 노출시켰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믿음에 대한 광범위한 천착은 가사와 관련된 어떠한 행동이든,심지어 가장 내밀한 문제에 대해서조차도 점차 전문적인 조력을 존중하여 결정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많은 여성들은 그들의 권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가족 밖의 전문가들과 연대하였다.-122,123쪽

노동 세계와 가정 생활의 극단적인 분리를 전제로 하는 현대의 가정은 19세기의 창조물이다.가내 수공업의 쇠락과 급여 노동의 발달은 가족을,점차 비인격적인 시장 체제에 지배당하는 공적 세계로부터 떨어진 사적인 휴식처로 인식하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혹은 필요하게-만들었다.비정한 세상에 존재하는 안식처로서의 가족상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산업적 질서에 의해 야기된 양가적인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128쪽

사회적 가사 social housekeeping의 시대-130쪽

청소년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도록 요구받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에 일어난 새로운 일이며,근대 민족 국가의 발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정규 교육은 청소년기를 연장해주며,동시에 성인 세계와의 감독되지 않고 교육학적으로 중재되지 않은 접촉을 가로막는다.다행히도,학교들은 결코 완전히 자기 충족적이지는 않다.세상의 지식을 열망하는 청소년들은 주로 허가받지 않은 독서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교육학적 감독을 어떻게든 피해 다니고 어른들의 방식에 대한 대리 경험을 얻는다.-168쪽

9장 치료국가에서의 생활 / 국가별로 존재하는 사소한 차이를 제외하고는 가족 형태는 서구 전역에 걸쳐 나타난 유사한 패턴을 따라 발달해왔다.19세기에 이르면 젊은이들은 부모의 직접적 관여를 최소화한 채 결혼할 권리를 획득했다.결혼은 두 가계의 결합이라기보다는 두 개인의 결합이 되었다.또한 아동의 취약성과 순수함을 새로이 강조함으로써 육아,특히 아이의 발달에 어머니가 끼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아이들 각자에게 이제는 그들이 당연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되기 시작한 권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부모들은 자녀의 수를 의도적으로 제한하게 되었다.대가족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부부(199)중심적인 가족 형태에 자리를 내어주었다.(성별에 따른 영역이라는 원칙에 의해 합리화된)가정성 예찬과 성별에 따른 역할의 엄격한 분업은 여성을 일터로부터 배제시켰지만 가족 자체에는 여자들이 더 큰 통제권을 가지도록 만들었다.생산 기능을 잃어버린 가족은 이제 자녀 양육과 감정 위안이라는 측면에서 특화되었고,시장이라는 비인간적 원칙을 중심으로 조직된 세계에서 필요성이 커진 피난처를 제공하게 되었다.-199,200쪽

가정성 예찬은 여성을 가정 내에만 예속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족뿐 아니라 가족의 이해에 관계된 모든 사항에 대한 도덕적 결정권자로 위치시키기도 했던 것이다.-201쪽

가족 생활의 감정적 측면이 강화되면서(데글러와 다른 많은 학자들은 이 새로이 등장한 친밀함에 너무나도 감탄하면서 큰 주의를 기울였다)가족간의 협동이 증대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내와 남편,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이러한 갈등은 부모 자식 간의 성적 매력,그리고 이것이 훗날 성인 남녀간의 관계에 초래하게 되는 복잡한 문제들을 그대로 드러나도록 만들었다.-207쪽

성적,사회적 통제에 대한 예방 과학 preventive science-208쪽

푸코에 의하면 19세기의 성에 대한 태도를 특징짓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다변이었다.즉 감정을 담화로 번역해냈던 것이다.성욕에 대한 지각을 억압하기는커녕,의학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풍부한 묘사로 성에 대해 충분히 말하도록 장려했다.-210쪽

참고 - 치료 국가는 필립 리에프philip rieff,니콜라스 키트리nicholas kittrie 등이 호칭함. -211쪽

부르주아의 가정성에 대한 예찬은,한편으로는 귀족주의적 방탕함에 반대하고,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적 부도덕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 정의하였다.-214쪽

돈젤로는 제휴 체계의 파괴가 빈민의 가정화와 동시에 일어났음을 밝혔다.19세기 초,의사와 공무원들은 빈민간의 불규칙적인 결합,사생,근친상간,그리고 다른 여러 형태의 성적 부도덕이 이들을 만성적 비도덕화의 상태에 두고 근면한 노동자가 되는 길을 막아서 결국 공적인 자선에 의존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가정화를 위한 규칙적 습관들을 장려함으로써,개혁가들은 이들을 근엄하고 자립적인 사람들로 만들기를 희망했다.여기서 다시 한 번,이들은 남편에게 맞서서 주부들을 조종하려 했고,여자들을 가정 내 도덕의 중재자로 만들려 했다.돈젤로의 공식에 의하면,이들은 가족들의 정부를 가족을 통한 정부로 대체한 것이다.-215쪽

이러한 개혁은 세대간의 자율적인 결속을 허용하는 대중적 영토를 침식해 들어갔다.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는 학교,사회 운(215)동 단체,그리고 청소년 법원 들에 의해 수행되는 국가의 감독 하에 놓이게 되었다.감독 기관은 데글러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가족 구성원 간에 불신을 조장하는 동시에 아동과 법원간의 적대적 관계를 불식하고,이로써 가족의 권리가 법을 강제하는 도구에 얼마나 협력하느냐에 달려 있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215,216쪽

청소년 법원은 처벌을 예방으로 대체했으며,판결을 감시로 대체했다.법원에서는 청소년의 범죄를 건강하지 못한 가정 환경의 징후로 다루었고,이는 '인간 관계를 다루는 기술자들'이 가족의 도덕성을 심문하고 필요하다면 아이를 집으로부터 격리시키고,가족들에게 새로운 사회적 위생의 원칙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정당화시켜주었다.-216쪽

가족은 이론상으로는 언제나 정당하지만,실제로는 언제나 의심받고 있다.-218쪽

현재 상황에 대한 나의 인식은 여기에서부터 돈젤로의 생각과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는 프(220)로이트와 케인즈를 자유주의 질서의 위대한 안정자로 보았다.프로이트와 후견적 기관을 너무 가까이 일치시켰다는 점을 제쳐두더라도,돈젤로는 케인즈와 정신의학적 조정법 양쪽 모두에 존재하는 불안정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케인즈 식의 경제학은 자유 자본주의의 만성적 문제 중 일부는 통제가 가능하도록 했지만,우리가 오늘날 너무도 명백히 본 바와 같이 장기적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치료학적 방식의 사회 통제에 대해서도 같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220,221쪽

이러한 통제는 사회적 의존 형태를 만들어내고,정치적 참여를 방해한다.그럼으로써 사회적 훈육이 지닌 문제 중 일부는 단순화할 수 있었겠지만,동시에 필요가 있을 때 정치 지도자들이 정책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는 일도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221쪽

유권자들의 냉당함,대중의 무관심과 냉소주의,지도자들이 우리의 주의를 끌고자 하는 국가적 질병, 이 모두는 대중이 참여하는 옛 기제가 침식되고 시민이 전문 지식의 소비자로 전락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수동적이고 의심에 가득 찬 비정치적인 유권자는 더 이상 국가적 단결이라는 명분으로 고무되지 않는다.이러한 유권자에게 희생을 부르짖는 지도자는 힘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공식적으로는 민주적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사람들은 오로지 그것을 만들어내는 데 관계한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서만 희생을 감수할 것이다. 그러나 치료적 통제의 새로운 기제는 사람들이 정치적 생활에,혹은 자기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여타의 의사 결정에 활발하게 참려하는 것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치료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전에는 반항적이었던 군중을 어느 정도 진정시켰지만,이제는 자신감의 위기에 전면적으로 맞닥뜨리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221쪽

가족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은 돈젤로의 지도를 잘 따라 가족에 대한 국가적 정책을 공식적으로 찾는 일과 아무런 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은 관료들을 그들의 자리에 가만있게 하는 관료들에 대한 정책이다.-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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