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독성에 대하여 

김: 《다소 곤란한 감정》을 쓸 때, 당신은 왜 명사 뒤에 온점을 찍었습니까?


샥샥: 제 책의 형식을 빌려 말하자면 '제동을 걸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점 매대를 장식해온 그 매끄럽기 그지없는 감정의 경구 모음집에 나름 저항하고 싶었습니다. '경구에 대항하는 경구'라고 할까요.






2. 경구에 대항하는 경구 

김: 경구에 대항하는 경구란 표현은 어디서 착안하신 겁니까?


샥샥: 이갑수 작가의 소설집 『편협의 완성』을 읽다가 생각했습니다.



3. 장거리 달리기

김: 외양은 비유하자면 단거리를 주파하는 용도의 책 같습니다. 


샥샥: 단상斷想을 썼지만, 짧은 시간 내에 독파하길 바라는 용으로 쓰진 않았습니다. 저는 단상의 사전적 의미 중 '생각을 끊음'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매끄럽게 생각되다가 뚝 끊겨 잠시 이전 자리로 돌아가 다시금 곱씹고 나아가야 할 자리로 이어가는 시선 처리를 상상하며 썼습니다. 




4. 문체에 대하여

김: 이번 책이 당신 고유의 문체를 소개하는 첫 자리입니까?


샥샥: 아니요. 두 번째 책을 읽으시면 이 사람 언제 이렇게 또 변했지? 하실 겁니다. 책의 성격에 따라 저는 글쓰기 스타일을 달리합니다. 



5. 당신은 누구입니까

김: 당신은 비평가입니까? 작가입니까?


샥샥: 문화평론가라는 그 뻘쭘한 직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일할 땐 작가라고 하지만, 저는 에세이를 쓰는 비평가입니다.






6. 당신의 고민

김: 당신은 사회학도로서 어떤 고민을 갖고 있습니까


샥샥: '작가로서의 사회학자'라는 모델을 자주 생각합니다. 정수복 선생의 『응답하는 사회학』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하지만 정수복 선생이 주목한다고 거론한 작가로서의 사회학자에 드는 예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7.기대하는 책

김: 근래 기대하는 도서가 있습니까


샥샥: 레거시 러셀의 『글리치 페미니즘』을 기대 중입니다. 미술잡지 《프리즈》를 보다가

온라인 환경과 예술 담론의 확장성 속에서 결함이 아닌 페미니즘적 확장과 도약의 지점으로 인식될 사회 현상의 언급이 인상깊었습니다.








8. 마무리

김: 이런 자문자답 인터뷰가 혹시 당신의 멘탈이 흔들린단 의미로 해석되진 않을까요?


샥샥: 그런 반응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지금은 단 하나의 생각뿐입니다. "그저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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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나누기 여러모로 다소 곤란한 상황이지만,

실은 제 첫 개인 저서가 나왔습니다.


일상 속 55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제가 익혀온

감정사회학적 맥락에서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감정, 마음, 심리를 조망해보았습니다.

단상이라는 형식으로요. 


개인적으로 '심정3부작'이라는 출간 프로젝트를 세우고

사회 곳곳에 스민 심정을 탐문하는 작업 이어왔는데,  <다소 곤란한 감정>은 그 첫걸음입니다.


추천사로 이 책의 시선을 지지해주신 시인 김소연 님

사회학자 엄기호 님께 감사드립니다. 


표지사진으로 함께해준 사진작가 이옥토 님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각자가 세운 지적인 영토 가운데 때론 위로로 때론 자극과 동기부여로

제 삶 속 소중한 인연 이루었던 데에는 

알라딘 서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그간 서재 통해 근황 물어봐주시고, 서재로 맺은 인연 아래 독려해주셨던 벗들 곁들 감사드립니다).


힘겨운 시기이지만 무너지지 않도록 이 세상을 지탱하는

당신(들)의 작은 마음과 세심한 의지를 지지합니다.


고맙습니다. 


얼그레이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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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훼손하는 그림, <배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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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스포일러 유) 근래 본 국내 상업영화 중엔 <배심원들>(2018, 홍승완)에 조금 눈길이 갔다. 그 이유는 <12명의 성난 사람들>이나 <12명의 마음 약한 일본인>처럼 배심원제를 통해 다종다양한 '인간 군상'을 곱씹을 수 있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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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속 대사와 촬영의 특색에서 강조되는 시각적 요소, 시각적인 것이 비유로 나타나는 요소가 계속 생각났다. 2008년 한국에서의 첫 국민참여재판을 모티프 삼은 본 작품에서 법원장(권해효)은 담당판사 김준겸(문소리)에게 거듭 부탁한다. 이 재판, '그림이 되어야 한다'고(이 대사는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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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용상 18년째 재판을 맡아온 베테랑 김준겸에게 법원장이 무슨 의도로 그림이라는 비유를 쓰는지 파악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릴 필요가 없다. 김준겸은 첫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법조계가 원한 그림을 그리는 판결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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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나 영화는 8번 배심원 권남우(박형식)의 주도로 법조계가 원하는 속도와 상이 담긴 그림(판결)을 내놓지 않는 설정을 걸어두고, 영화는 무죄와 유죄라는 분명한 그림 대신, 그런 그림을 얼른 그리자고 꼬드기는 때에 "싫어요"라는 선명한 응답을 내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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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법조계가 원하는 그림의 완성은 점점 유예되고, 페이스는 배심원들로 향한다. 배심원들은 법조계가 언론을 통해 법조계와 언론계의 구미에 맞는 그림을 그리려 할 때마다 느릿느릿한 숙고와 숙의로 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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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판사를 위시한 법조계-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그리는 법의 그림(배심원들의 숙의)에 마음을 열게 된다(공교롭게도 배심원 중 유일하게 법 전문성과 친숙한 법대생인 1번 배심원의 이름은 윤그림이다. 윤그림은 시기상 법전문성을 충분히 숙지할 수 없는 애매한 전문가로서 다른 배심원들과 법 전문가 사이에서 그려볼 그림을 위한 절충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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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화의 첫 장면. 법원 바깥이 뿌옇게 처리되다 사진기자들의 무수한 플래시 세례가 나오고, 정작 기자들의 의도와 달리 그 세례를 비껴나간 김준겸 판사의 모습은, 영화 말미 국민참여재판을 기념하고자 법원 내에 걸린 배심원들의 단체사진 중 유일하게 눈을 감은 권남우의 모습과 맞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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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권력과 권위가 부여된 공적 기관이 인민people의 일상엔 아랑곳하지 않는 그림을 신속히 그리려 할 때, 인민은 그렇게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기관의 속보이는 의도에 부응하지 않는다.
아울러 김준겸 판사와 배심원 권남우는 첫 국민참여재판의 결과와 그 의의가 언론을 통해 괜찮은 그림이 될 뻔한 순간, 취재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그림을 훼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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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배심원들>은 사법부를 비롯한 파워엘리트들이 꾀하는 민주주의와 정치적 실천이 정작 우리네 인민과 멀어져온 그림을 주시하면서, 그러한 그림을 훼손하는 그림을 선보인다. 이것은 영화가 당신에게 제시할 수 있는 괜찮은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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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 코넬이 죽었다고 했을 때 많은 이가 시애틀 그런지의 중추 4인방(너바나, 펄잼, 앨리스인체인스, 사운드가든/알다시피 코넬은 사운드가든의 간판보컬이었다)을 애도했다. 이는 단명했지만 짙은 인상을 남긴 90년대 하위문화 '슬래커slacker'에 대한 애도이기도 했다.


2. 우리가 이후 '너드nerd'라고 부르는 테크노 괴짜가 주목받고, 너드가 테크노 여피가 되어 실리콘 밸리에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자유주의와 기술결정론이 결합된 문화정치)를 꾀하기까지.


3. 돌아보면 슬래커는 보보스처럼 세계를 누비며 명망높은 글로벌한 문화적 보헤미안이 되지도 못했고, 《WIRED》가 주목하는 '어벙한 듯 생겼지만 머린 좋은 하이테크 일인창업가'의 삶도 누리지 못했다. (소수만이 두 경로를 택했다.)


4. 슬래커는 영화 매체의 역사에서 가장 기대를 많이 받았지만, 시장의 관점에선 일찍 생을 마감한 비디오의 운명과도 닮았다.


5.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낀 세대'였던 슬래커는 아날로그적 정서를 부여잡으려는 90년대식 낭만주의였고, 이를 따르는 젊은이들은 예민함을 신경쓰는 우회의 화법 대신 서로의 감각과 감정을 타격하는 직설과 헛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6. '슬래커 컬처'의 신봉자였던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슬래커>로, 케빈 스미스는 제이 앤 사일런트 밥 콤비로 대표되는 <점원들>로 90년대 미국 청년들의 루저덤(loserdom)을 지지했다. 마이크 마이어스의 <웨인즈 월드> , 빌과 테드로 대표되는 엑셀런트 어드벤처, 위노나 라이더와 벤 스틸러, 에단 호크가 남긴 소품인 <청춘 스케치>는 슬래커가 남긴 유산이 되었다.


7. 이 시기를 문화적 연원점으로 두고 있는 주드 애파토우 사단이 슬래커의 복원을 21세기식으로 이뤄냈지만, 사람들에겐 영화의 스타일로 다가올 뿐, 우리네 일상과 연계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했다.


8. 예전에 대중음악웹진 <weiv>에 쓴 '라나 델 레이: 우울의 리더십과 명성문화'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오늘날 이 사회는 인디라고 하는 특질이 어떻게 제도권에 포섭될지 가장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감각을 내장한 개인들이 살고 있다.
아울러 나보다 뛰어나게 우울을 표하는 이를 보며 우울이 독창적이거나 주관적인 것이 아닌, '스펙으로서의 우울' '격차로서의 우울'이 되었음에 또 한 번 좌절하게 되었다.


9. 어찌 보면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정념과 우울과 직설을 표출했던 슬래커의 짧은 삶은 돈 없고 빽 없지만 '우울'만큼으로는 서로 평등할 수 있었다는 희망과 기대가 사라졌음을 일찍이 예견한 사례였는지 모른다.


10. 이젠 아무도 하위문화를 연구하지 않는다.

슬래커이자 슬래커의 우상이었던 뮤지션 크리스 코넬을 이렇게 보낸다.

아쉽지만.


크리스 코넬 196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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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커세대 2019-05-20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90년대 슬랙커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 문화를 추구했던 젊은 시절을 보낸 엑스세대로서 정말 잘 정리된 글이라 생각합니다. 서구의 청춘스케치와 아시아의 중경삼림은 그 대표격인 영화들이었죠...

얼그레이효과 2020-02-28 16:20   좋아요 0 | URL
댓글 달아주셨는데, 서재 관리를 도통 못해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정오의 낯선 물체

1. 박솔뫼의 《머리부터 천천히》를 읽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 <정오의 낯선 물체>가 떠올랐다. 어떤 톤이. 
그 다큐는 한 소년과 여교사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데, 그 이야기는 주민들에 의해 B란 이야기로 변하고, C란 이야기로 변하다가, 끝난다. 실은 그러다가 꼬맹이들의 공 차는 장면이 건조하게 나오면서 끝나는데, 그 건조함에서 드럼세탁기에서 빨래하면 나는 어떤 냄새가 느껴진다.


2. 떠올랐다는 게 어떤 시너지의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박솔뫼의 소설과 위라세타쿤의 영화엔 묘하게 친할머니보단 외할머니 냄새가 나는 듯하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외할머니 냄새가 좋고, 그래서 두 사람의 작품에서 매력을 느낀다.


3. 박솔뫼는 지도와 약도에 관심이 있고, 주전공은 여름이며, 도미와 다미라는 이름을 좋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커피와 맥주를 자주 언급하지만, <수영장>의 다미처럼 보리차에도 관심이 있으며, 얼음이 녹는 소리를 '꺅꺄'라고 표현하는 귀가 예민한 사람이다.


4. 《귀신, 간첩, 할머니》에 실린 위라세타쿤의 영화노트는 박솔뫼의 기운과 닮았는데, 나는 박솔뫼의 소설에서 '분미'들이 숨어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고, 그녀는 부산이나 오키나와나 사쿠라이 다이조 같은 인형을 실은 뽑을 줄 알지만, 뽑아서 자기 쪽으로 가져가다 말아서 인상적이다.


5. <정오의 낯선 물체>엔 몸속에 구슬을 지녔다 몸밖으로 뱉는 이의 설화가 나오는데, 박솔뫼의 인물들도 그래서 다들 구슬이 있을 것 같고, 구슬을 지녔다는 것 혹은 구슬을 뱉는다는 것에 속으론 신경쓰지만, 그 결론이 무심해서 좋다.


6. 당신이 에어컨을 옵션으로 한 원룸에 산다면, 밤 10시쯤 에어컨 실외기쪽 창과 방 입구를 열고 선선한 바람의 통로를 만들자. 다행히 박솔뫼는 커피와 맥주를 글자에 많이 심어두었고, 아핏차퐁은 조금 습하지만 우리를 어떤 숲속으로 데리고 간다. 물론 돌아오는 길은 모른다. 그저 맡길 뿐이다. 오늘은 그러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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