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디자인 02: 시각문화의 내밀한 연대기
박해천 외 지음 / 디플Biz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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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은 내부의 질서를 조율해 줄 그 무엇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필요에 조응해 등장하는 것이 바로 텔레비전이다. 일단 텔레비전은 편재적으로 존재하는 공중파의 신호를 자신의 브라운관에 집결시킴으로써, 발코니 창이 아파트 주변 환경의 여건상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던 외부 세계로의 조망을 제공한다.바로 이런 이유로 텔레비전은 거실 공간에 자리한 점유자들의 시선을 유인하는 기능을 지닌다. 텔레비전은 꺼져 있을 때 블랙 박스에 불과하지만, 전원이 들어오고 브라운관에서 빛 입자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면(145) 거실의 시선은 이 움직임을 외면하기 힘들다.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은 놀라운 흡입력을 발휘하여, 주사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에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것이다.-145,146쪽

안방에서 거실로 이동한 텔레비정은 바로 이러한 흡입력을 바탕으로 사물의 배치를 위한 기본 구문법을 완성해 나간다.그 구문법이란 극장의 원리다. 극장의 한편에 스크린이 있다면,다른 한편에는 관람객의 좌석이 있다.그와 마찬가지로 거실 한편에 텔레비전이 있다면,그 맞은편에는 소파가 있다.이러한 텔레비전과 소파의 대응성은 소실점을 대신해 사물 배치의 원리를 창출하고,거기에 시각적 일관성을 부여한다. 여기에서 텔레비전은 더 이상 다리가 넷 달린 '목제 기구'의 형태를 흉내내기를 그만두고, 좀 더 현대적인 분위기의 단순한 플라스틱 박스 형태로 진화하기 시작한다.-146쪽

김현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아파트가 거주공간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즉, 중산층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146쪽

올림픽이 국가 단위의 나르시시즘적 상상계를 완성하는 데 그쳤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특히 88올림픽의 예고편처럼 1984년 한여름의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뜨겁게 달궜던 LA올림픽은 당시의 소년소녀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욕망을 학습할 기회를 제공했다.일단,자연스러운 몸짓을 펼쳐 보이며 개막식의 무대를 블록버스터 버라이어티쇼로 승화시킨 팔등신의 육체들이 그 시작이었다.<월간팝송>을 구독해 보던 몇몇은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라이오넬 리치가 어설픈 브레이크댄스를 배경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기계체조식의 매스게임에 익숙해져 있던 이들에게 이 육체의 향연은 임계점을 넘어선 흥분을 안겨주었다. / 이상 박해천, 1980년대,아파트,올림픽,나이키,공전하는 파편들 - 80년대 시각문화에 대한 몇 가지 기억 중에서 -150쪽

김희선,1989년>대우 요요 AHS-202K,위안의 정서를 만나다 중 / 모든 기억 가운데 가장 달콤한 것은 '믹스테이프'와 관련된 것이다.공테이프에 곱게 녹음된 노래들은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노동량과 인내심을 수반한 '우정의 증표'와도 같았다. 기본적으로 워크맨의 녹음 기능은 그 음원-주로 라디오-을 놓치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다. 어느 날 밤, 라디오 진행을 맡고 있던 신해철의 다음과 같은 멘트 다음에 일제히 '녹음'버튼을 눌렀을 전국의 그 수많은 손가락들을 상상해 보는 일은 지금도 흐뭇한 웃음을 자아낸다."저희 방송이 무슨 뉴트롤즈 팬클럽도 아니고, <아다지오>가 신청곡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노래 시작 전후에 확실한 공백을 두고,노래 중간에 멘트를 치고 들어가는 일도 절대 없이 <아다지오>를 틀어드릴 테니, 모두 녹음 준비하십시오.그리고 다시는 신청곡 보내지 마십시오."-240쪽

김윤구,1997년 보체디비나 소프라노 스피커,오디오는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중 / 오디오는 음악만을 들려주는 기기가 아니다. 오디오는 집에서 가구의 역할도 하고 인테리어 역할도 한다.배치에 신경을 쓰다보면 오디오는 공간을 구획하는 역할도 하게 되며,때문에 사람과 공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방에 놓인 오디오와 거실에 놓인 오디오는 많은 의미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그래서 오디오는 일반적인 가전제품과는 다르며 개인 휴대용 전자기기와는 완전히 다른 상품이다. 어떤 오디오를 고르라는 것인가와 가장 비슷한 질문은 어떤 소파를 살 것인가가 될 것 같다.-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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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발터 벤야민 선집 2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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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은 손으로 이루어진 복제에 대해서는 이것을 위조픔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완전하게 유지할 수 있지만 기술적 복제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기술적 복제는 원작에 대해서 수공적 복제보다 더 큰 독자성을 가진다. 예컨대 기술적 복제는 사진에(45),서는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렌즈로는 포착되지만 인간의 육안에는 미치지 못하는 원작의 모습들을 강조해서 보여줄 수도 있고, 또 확대나 고속촬영술과 같은 기계적 조작의 도움을 받아 자연적 시각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이미지들을 포착할 수 있다. 이것이 첫째 이유이다.둘째,기술적 복제는 원작이 도달할 수 없는 상황에 원작의 모사를 가져다놓을 수 있다. 기술적 복제는 원작으로 하여금 사진이나 음반의 형태로 수용자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해준다.사원은 제자리를 떠나 예술 애호가의 작업실에서 수용되고,음악당이나 노천에서 연주된 합창곡은 방 안에서 들을 수 있게 된다. -45,46쪽

복제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에서 떼낸다. 복제기술은 복제를 대량화함으로써 복제 대상이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대신 대량으로 나타나게 한다.또한 복제기술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을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그 복제품을 현재화한다.-47쪽

사물을 자신에게 보다 더 "가까이 끌어 오려고"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이 지닌 열렬한 관심사이며,모든 주어진 것의 일회성을 그것의 복제를 수용함으로써 극복하려고 하는 경향이 바로 그 관심을 나타낸다.대중이 바로 자기 옆에 가까이 있는 대상을 상속에, 아니 모사 속에,복제를 통하여 전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나날이 제어할 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중략)상에서는 일회성과 지속성이 밀접하게 서로 엉켜있는 데 반해, 복제물에서는 일시성과 반복성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50쪽

복제된 예술작품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복제를 겨냥해서 제작되는 예술작품의 복제품이 되어가고 있다. -52쪽

영화의 경우 기계적 복사는 문학이나 회화의 경우와는 달리 대중 보급을 위해서 외부에서 부과된 조건이 아니다. 영화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바로 영화작품의 기술 속에 내재되어 있다.영화의 이러한 기술은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영화작품의 대량 보급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대량보급을 그야말로 강요하는 것이다.영화의 기술이 대량 보급을 강요하는 이유는,영화의 제작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한 폭의 그림을 살 수 있었던 개인이 이제는 더 이상 영화를 살 수 없기 때(52)문이다.-52,53쪽

제의가치 자체는 예술작품을 은밀한 곳에 숨겨두기를 요구한다.예를 들면 어떤 신상들은 밀실에서 승려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되고 있고,어떤 성모상은 거의 일 년 내내 베일 속에 가려져 있으며 또 중세 사원의 어떤 조각들은 지면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여러 예술 활동이 제각기 의식의 모태에서 해방됨에 따라 예술 활동의 산물들이 전시될 기회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시가치의 문제.-54쪽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피카소와 같은 회화에 대해서 가졌던 가장 낙후된 태도가 채플린과 같은 영화에 대해 갖는 가장 진보적 태도로 바뀐 것이다.여기서 진보적 태도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라보고(80)체험하는 데 대한 즐거움이 전문적인 비평가의 태도와 직접적이고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80,81쪽

영화가 펼쳐지는 영사막과 그림이 놓여 있는 캔버스를 한번 비교해보자. 영사막 위의 영상은 변하지만, 캔버스 위의 그림은 변하지 않는다.캔버스 위의 그림은 보는 사람을 관조의 세계로 초대한다.그는 그 앞에서 자신을 연상의 흐름에 내맡길 수 있다. 그러나 영사막 앞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영화의 장면은 눈에 들어오자마자 곧 다른 장면으로 바뀌어버린다. 그것은 고정될 수 없는 것이다.영화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의 연상의 흐름은 그 장면의 변화로 인해 이내 중단되고 만다. 영화의 충격효과는 바로 이러한 데에 그 근거를 두며,또 이러한 충격효과는 다른 충격효과가 모두 그러한 것처럼 단단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상태(Geistesgegenwart)에서만 받아낼 수 있다.-89쪽

사람들이 영화에서 개탄하는 것은,예술 애호가가 예술작품에 정신집중의 태도로 접근하는 데 반해 대중은 예술작품에서 정신분산(오락)을 찾는다는 점이다.대중에게는 예술작품이 오락의 한 계기이고,예술 애호가에게는 경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이 문제는 보다 자세히 살펴봐야 할 문제이다. 정신분산(Zerstreuung,distraction)과 정신집중(Sammlung,concentration)은 서로 상반된 개념이다.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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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과 미학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윤종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품절


서론 중 - 한편, 종말론적 지식인들은 문화 상품 자체와 이것들이 실(50)질적으로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연구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종말론적 지식인들은 문화 상품의 소비자들을 대중이라는 획일적인 물신화된 개념으로 격하시킬 뿐만 아니라,대중들이 모든 귀중한 예술작품들을 단순한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고 비난하지만,동시에 자기 스스로도 대중적인 문화 상품들을 물신화된 개념으로 격하시킨다.이들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대중적 상품들을 분석하기보다,이에 대한 구조적인 특징만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대중문화 상품 전체를 통째로 부정한다.따라서 이에 대해 분석하게 되는 경우에 이들은 자신의 기이한 감정적인 성향들을 은연중에 드러내어 애증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기를 나타낸다.따라서 대중적 상품의 최초이자 최고의 희생자는 비평가 자신이 아닌가라는 일종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50쪽

1장 고급,중급,저급 중 - <대중문화가 존재하는 것이 좋은가?나쁜가?>하는 식의 문제 제기는 잘못된 것이다.(게다가 이러한 질문은 민중들의 지위 향상에 대한 적대감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으며,기술적인 진보와 보통 선거권,하층민에까지 확산된 교육권 등에 대하여 의혹을 제기한다)그렇다면 오히려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올바른 문제 제기가 될 것이다.<산업화된 사회의 현실이 매스 미디어의 총체로 알려진 이러한 유형의 의사소통 관계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이상,매스 미디어가 문화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문화적 행동이 필요한가?>-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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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하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21세기총서 3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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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문화적 선의- 중간 계급 중 : 문화적 실천과 의견에 대한 앙케트 조사들이 일종의 학교시험의 형태를 띤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시험에서 조사대상자들은 언제나 규범에 비추어 판정된다고 스스로 느끼며, 자신들의 학력 면에서의 공인정도에 따라 위계화된 응답을 얻게 되고 내용과 양태 면에서 그들의 학력자격에 언제나 밀접히 대응하는 선호를 나타낸다.-600쪽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 어떤 종류의 '브랜드'나 상점이 의미하는 '질의 보증'을 신용함으로써 그 제품의 질에 대해 안심하는 것처럼 정통적 투자감각은 출판사,영화감독, 극장이나 음악당의 이름같이 많은 경우 외부적 지표로 무장되는데 이 투자감각은 '선발된'문화소비를 발견하게 해준다.-601쪽

문화의 대량축적의 원리인 축적하려는 격심한 욕구는 극단으로 즉 부조리로 치닫는 재즈나 영화 애호자의 도착perverson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러한 도착은 교양화된 응시의 정통적 정의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도착은 작품의 소비를(영화의 제작진과 타이틀,오케스트라의 편성,녹음날짜 등과 같은)작품에 대한 부대 지식의 소비로 대체한다.혹은 이러한 축적에의 욕구는 사회적으로 미미한 주제들에 대해 고갈되지 않은 지식을 수집하는 모든 이들의 획득하려는 집념에서도 볼 수 있다.-604쪽

(고전작품과 문학상 수상작처럼)확실히 보증된 생산물 -606쪽

상승이동의 요청에 따라 전적으로 정의되는 이 순수하고 공허한 문화적 선의는 도덕의 차원에서도 그 등가물을 가지고 있다. 상승하는 분파의 금욕적 엄격주의rigorisme ascetique가 그것이다. 하강하는 분파의 억압적 엄격주의rigorisme repressif는 그 집단이 사회적으로 퇴행하는 것으로부터 생긴 한의 감정을 행동원리로 하는데,그것은 오직 과거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미래를 가진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을 비난하는데서 오는 만족감을 주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갖고 있는 것같지 않다.-640쪽

신흥 쁘띠 브르주아지는 거의 모든 점에서 쇠퇴하는 쁘띠브르주아지의 억압적 도덕성에 대립하는데,쇠퇴하는 쁘띠 부르주아지의 종교적 또는 정치적 보수주의는 종종 도덕적 무질서 특히 성도덕의 문란에 대한 도덕적 분노에 모아진다. 예)포르노크라시(Pornocratie: 구별짓기에서는 성도덕의 문란을 상징하며 퇴폐적인 사회상황을 비난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됨)-665쪽

제7장 필요한 것의 선택:민중계급 중 - 생활양식의 차원 혹은 '생활의 양식화'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의 원리는 세계에 대한,즉 물질적 구속과 시간적 절박성에 대한 주관적,객관적인 거리상의 변이에 있다.세계나 타인에 대해 거리를 두거나,초연하거나 되는 대로 식의 성향,객관적으로 내면화되기 때문에 주관적이라고 부를 수 없는 성향은,그것의 일면인 미학적 성향처럼,절박성에서 상대적으로 해방된 생활조건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필요성에 대한 종속은 형식상의 탐구와 모든 형태의 예술을 위한 예술이 지닌 무상함과 무의미를 거부하면서 민중계급 사람들로 하여금 실용적이고 기능주의적인 '미학'에 경도되게 하는데, 필요성에의 종속은 일상생활의 모든 선택의 원리이며,본래적 의미에서의 미적인 의도를 '미친 짓거리folies'라고 배제하게 하는 생활기술의 원리이기도 하다. -685쪽

여기서 '필요한 것'이란 기술적으로 필요한 것, 즉 실용적이거나 이른바 기능적인 의미의 필요성인데 이것은 '더 이상도 아니고 딱 알맞는 것'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의미인 동시에,'단순하고','검소한'사람들에게 '단순하고','검소한'취향을 강요하는 사회적,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부과되는 것으로서의 의미이다.(중략)따라서,집단의 모든 물건을 미학적 선택의 기회로 만들거나,엄밀하게 그 기능에 의해 정의되는 공간인 욕실이나 부엌에까지 조화나 미의 의도를 확대하고,특히 냄비나 찬장의 선택에 미학적 기준을 적용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적 발상만큼 민중계급의 여성들에게 낯선 것도 없다.-6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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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사전
크리스 바커 지음, 이경숙 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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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Experience 문화연구 안에서 경험이라는 관념은 다소 역설적으로 보인다. 한편에서 이 관념은 체험된 의미 있는 경험이라는 말로 포착될 때,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언어의 틀짓기 작업 없이는 경험을 하거나 그 경험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하여 경험은 구체적인 하나의 범주로서 담론과 언어의 범주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첫 번째 사례에서 우리는 이먼드 윌리엄스에게로 가볼 수 있는데, 그에게 문화는 '총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방식'으로 가장 해된다. 문화는 '살아 있는 경험'에 관여함을 강(71)조하고 그는 특히 노동계급과 그들의 적극적인 화 구성에 관심을 가졌다. 윌리엄스에게 문화 분석의 목적은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기록된 문화를한 문화의 경험과 '정서구조'를 재구성하기 위해 탐구하고 분석하는 것이다-11,12쪽

(중략)구성주의는 경험은 담론적 구성물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방법에서라기보다 하나의 언어를 생산함으로써 '여성의 경험'을 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경험은 그 것에 대해서 우리가 말하는 방식의 외부에서도 접근될 수도 없으며 ,따라서 경험은 말하는 방식 그 외부에 존재하지도 않는다.그리하여 우리가 경험을 알거나 그것이 의미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은 오직 담론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담론이 우리의 경험을 구성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경험기보다 경험에 대한 담론이다. 뿐만 아니라 성찰성은 '경험에 대한 담론'으로 이해될 수 있기에 성적이라는 것은 한편으로 담론과 관계에 대해 그 이상의 담론을 구성하면서 일련의 담론과 관계에 여하는 것이다. -12 쪽

구성주의 Constructionism 의미 있는 범주와 현상을 문화적이자 역사적으로 특정하게 생성하는 것을 강조하는 반본질주의 이론에 주어진 일반적인 명칭이다. 이는 대상과 사건을 보편적이고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이론과는 대조적이다. 예를 들면, 흔히 단순한 자연의 생물학적 소여로 여겨지는 육체가 구성주의에 의해 문화적 힘의 작용에 의한 결과물로도 이해된다. 예를 들면 '감정emotions)'의 기능은 다양한 문화나 사회적 상황 속에서 다양한 반응을 나타내는 증거들을 보여준고 (26)한다. 마찬가지로 정체성은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닌 담론적 구성이라고한다. 즉, 정체성은 보편적인 실체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특수한 담론적 구성물이다. (중략)구성주는 언어에 대한 반재현주의의 입장에 토대를 두고 있다. 즉 언어는 독립적인 대상 세계를 반영할 있는 거울로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으로이해된다. 언어는 '발견하기'보다 오히려 '생산해 내고', 재현은 세계를 '모사'하기보다 오히려 그을 구성한다.-25,26쪽

여기서 언어의 한계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지적 이해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인데, 언어 안에서 그리고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우리의 문화 배양은 우리의 가치, 의미 그리고 지식을 구성하기 때문
이다. 그리하여 구성주의는 인간이라고 불리는 존재에게 문화적으로 초월적이거나 비역사적인 요소들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구성주의의 측면에서 개성의 요소를 형성하는 자원은 언어와 특정한 시
간과 장소의 문화적 실천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한 관념 그 자체가 문화적 변인이다.(중략) 간략히 우리는 문화적으로 공유된 물질을 사용하는 사회적 과정 속에서 개인으로서 형성되고,의미는 사회적 관계,(26)언술 실천과 대화가 결합된 행위 속에서 형성된다. 결과적으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도와 구성 개념은 단순히 개인적 해석의 문제가 결코 아니며, 오히려 각 문화의 구성이 사용할 수 있는 담론적 설명,자원,그리고 의미의 광범위한 문화적 레퍼토리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심지어 태도,감정, 그리고 내적 마음과 같은 기본적인 심리학적 관념도 공유된 언어의 탐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26,27쪽

담론분석 Discourse analysis 담론분석은 텍스트의 작업에 대해 조사하는 언어적 탐구의 한 형식이다. 여기서 담론의 개념은 푸코가 개발한 방식으로 반드시 사용되지만은 않으며,종종 문장의 단위보다 더 큰 언어의 공간이라는 일상적인 의미로 쓰인다. 기술적으로 말해서,이러한 맥락에서 담론은 언어적 요소를 결합시켜서 부분의 합보다 더 큰 의미의 구조를 형성하는 것에 관여한다. 담론분석은 문서이든 발화이든 간에 텍스트에 대한 세밀한 조사에 기초하기 때문에,텍스트적 은유가 발화 주체에 대한 분석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그리하여 담론 분석은 특정한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의사소통하는 언어 사용자에 의해 완성되는 사회적 행위에 관계하게 될 수 있다.-65쪽

담론분석가는 규칙지배적인 활동의 결과로서 의미 생성에 관심을 갖는데,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미시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탐구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하여 담론분석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언어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66쪽

문화변용 Acculturation 어느 한 문화로 '여행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모방과 실천 그리(120)고 실험을 통해 언어와 가치,그리고 규범을 학습하고 습득하는 것이 요구된다. 문화변용이란 개념은 우리가 한 문화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사회적 과정을 일컫는다. 문화변용이 일어나는 주요 장소와 행위자에는 가족,동료집단,학교,노동조합,그리고 매체가 포함될 수 있다.문화변용의 과정은 소위 '자연 대 양육(Nature vs Nurture)'논쟁에서 양육의 측면을 의미하는데, 문화 이론가는 문화변용의 과정이 행위자에게 삶의 방식과 보는 방식을 습득할 토대를 제공한다고 여기고 있다. 문화연구의 핵심 주장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문화변용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의 특질은 상황 구속적이며 문화적인 특정한 생산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이러한 생산에서 사람은 '언제나'사회적이며 문화적임을 의미한다.-120,121쪽

본질주의 Essentialism 본질주의의 개념은 동반자인 반본질주의와 함께 독립적인 객관세계(실재)와 관련하여 언어가 기능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그 의미가 유래한다.그리하여 본질주의는 기호는 그들의 실재에서와 마찬가지로 안정된 지시체로부터 끌어올 수 있는 안정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이러한 방식으로 단어는 그들이 반영한다고 여겨지는 대상이나 범주의 본질을 지시한다.-155쪽

사회적 Social 사회적인 것의 개념은 공통적으로 '사회의 혹은 그 안에'를 의미한다고 간주되며,여기서 사회는 규칙에 의해 지배받는 인간관계와 상호작용의 조직화에 의해 구성된 활동의 자율적 공간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많은 문화연구 이론가는 '사회적인 것'은 지시 대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론가들에게 사회적인 것은 대상이 아니라 자아와 타자에 대한 다양한 묘사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담론적으로 구성된 논쟁의 영역이다.-166쪽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 어떤 차원에서 상호텍스트성의 관념은 확장된 문화적 자의식의 표현으로서 한 텍스트에서 다른 텍스트를 의식적으로 인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상호텍스트적인 역사적 경계흐리기는 포스트모더니즘 안에서 조우하는데,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에 대한 재현이 의미의 새로운 약호를 생산하기 위해 전에는 연결되지 않았던 기호를 병치시키는 하나의 브리콜라주 안에서 함께 펼쳐진다.-179쪽

수행성 Performativity '수행문'은 그것이 지적한 관계를 효과로 끌어들이는(존재하게 하(192) 는)언어학적 진술이다. (중략)수행성은 단발성 행위가 아니라 항상 현존하는 규범과 관습을 인용하고 반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형법상 판사들은 법이나 재판의 권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참조하고 의존해야 할 관습을 인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권위의 기원이나 보편적인 토대는 없다. 나아가 바로 그러한 실천과 인용이 권위를 만들고, 그 법을 재구축한다. 법의 유지는 이미 작용하고 있는 일련과 관습의 재작동의 문제이며, 이는 반복과 인용 가능성을 포함한다.-192쪽

문화의 순환 Circuit of culture '문화의 순환'이라는 관념은 문화유물론 그리고 구체적으로 경제와 문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발전되었다.문화의 순환이라는 비유는 물질적이고 문화적인 생산과 소비를 연계시켜 설명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토대와 상부구조'모델에 내재한 결정주의와 환원주의로부터 이탈하려는 시도이다. 이 모델은 서로 접합되거나 상호 연계되는 복잡한 구조나 규칙성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서 사회구성체(1970년대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전개되었다)를 기술하는 것으로부터 파생되었다.-127쪽

'문화의 순환'이라는 은유는 1980년대 초기 맹아적 형태로 출현했으며, 1990년대에 더욱 성숙한 단계로 발전했는데, 이 은유는 실천 수준의 접합이라는 기초적인 관념을 경제와 문화의 문제에 접목시켰다.여기서 문화적 의미는 생산-재현-정체성 소비-규제라는 순환의 각 수준에서 생산되고 그 안에 각인되어 있기에, 각 수준에서 일어나는 의미 생산은 바로 그 수준에서 생산될 의미를 결정하지 않은 채 그 다음 단계와 접합한다. 그리하여 문화는 하나의 전체를 이루기 위해 자율적이지만 다른 실천과 접합한다.(중략) 즉, 우리는 '경제적인 것'이 문화적으로 형성되는 방법을 파악하고자 한다.-127쪽

문화의 순환이라는 은유가 지닌 장점은 순환의 각 단계의 구체적인 특징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 사이의 관계를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모델은 투박한 토대와 상부구조 모델보다 좀 더 유연하고,보다 유용하며,보다 세련되었다. 그러나 이 모델에서 '수준' 혹은 '단계'는 단지 발견적인 장치일 뿐이고, '삶의 모든 방식'을 조직하는 분리할 수 없는 구성적인 측면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할 위험을 안고 있다.-128쪽

소비 Consumption 소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사용하거나 양분을 몸속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적 소비의 과정은 시장에서 순환하는 상품이 사용되는 것과 관련된다. 특히 문화연구의 맥락에서 소비는 소비 과정에서의 의미 생성에 중점을 둔다. 당대 서구 문화가 보여주는 소비 실천에 대한 비평은 자본주의와 상품화 양자에 대한 분석과 긴밀히 연계된다. 즉,(1850년대 마르크스,1940년대 아도르노,그리고 1970년대 알튀세의 주장처럼)상품은 자본주의의 이해에 봉사하는 상품에 각인된 이데올로기적 의-187쪽

미를 수반한고,이는 바로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소비자에 의해 실행된다고 한다.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 행해지는 소비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두 가지 노선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첫째, 상품이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지지하는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수반하는 것은 필연적이지 않으며, 상품 자체가 일탈과 저항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둘째,경험적 연구에 근거하여 소비자는 능동적 생산자라는 주장이다. 즉 소비자는 비평가가 상품 '내부'에 있다고 감정했던 그러한 의미를 단순하게 취하지 않고, 오히려 상품과 소비자의 문화적 능력이 상호작용함으로써 그들 고유의 의미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8쪽

소비지향적인 문화연구는 음악,영화,텔레비전,그리고 패션의 생산이 초국가 자본가 기업의 손에 달려 있지만, 의미는 소비의 수준에서 생산,병형, 그리고 관리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피스크는 대중문화는 텍스트 안에서 파악할 수 있는 의미보다 사람들이 구성하는 의미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가 기업이 대부분의 대중문화를 생산한다는 데 있어 명확한 입장이지만, 그는 이들 기업 세력을 회피하거나 저항하는 전략에 더 관심이 많다. 피스크는 문화산업이 우리로 하여금 대중문화를 소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주 열심히 일해야만 하며, 소비자는 수동적인 멍청이가 아니라 예리한 능동적 의미 생산자라고 주장한다.-188쪽

시민권 Citizenship 시민권은 정치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는 정치적 정체성의 한 형태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시민권의 의미는 그것이 실행되는 언어 게임과 문화적 맥락에 따라 변화한다.예를 들어 시민권에 대해 고전적 자유주의의 개념화는 개인의 권리와 의무에 초점을 두며, 거주,이주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선거권 같은 이슈를 포함시킨다. 시민권이라는 용어를 사회 민주주의적으로 사용하면, 이러한 이슈 외에도 복지국가와 관련된 집합적 권리를 포함시키는데, 교육의 권리, 가난의 구제,의료 서비스 등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202쪽

오늘날 우리는 또한 시민권 주장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 정체성 집단의 문화적 권리에 대해서도 듣고 있다. 그리하여 시민권에 따르는 시민권의 범위, 습관, 그리고 일상의 일이 시대를 걸쳐 점차적으로 형성되었고 보편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늘어나는 다수의 사람을 포함시켜 다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민권 범위의 확대와 시민권과 관련된 권리의 확대는 흔히 사회적 정치적 투쟁의 초점이 되어 왔다. 시민권의 개념은 어원으로 볼 때, 타인과 살아가는 적절한 방법으로서 교양(civility)이라는 관념과 연결되었고, 그리고 협조적인 삶의 습관과 일과로서 문명화(civilization)와도 연결되어 왔다. 이처럼,시민권은 역사적으로 문명화되었다고 여겨지는 자들에게만 제한되었으며, 예를 들어 노예와 같은 그 외 사람의 시민권은 부정되었다. -202쪽

비록, 시민권의 개념이 처음에는 도시의 탄생과 연계되었더라도 이 용어를 현대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민국가의 기능으로 부터 파생되었고 이러한 국민국가 안에서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획득(202)하게 되었다. 특히,시민권에 대한 근대적 담론은 시민권을 가지면 평등을 성취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든 법적 테두리 안에서 시민권을 제1계급의 시민권자와 제2계급의 시민권자로 분리할 수는 없는데,그 이유는 시민권은 보편적이며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시민권이라는 언어는 국민국가의 영역 안에서 더 많은 자유와 인정을 누리고자 하는 피지배 집단의 문화정치에 유용하게 되었다. (중략) 시민권 개념은 재현과 정체성의 미시 정치를 제도적이며 문화적인 권리라는 공식적인 거시 정치와 연결시키는 메커니즘이다.-202,203쪽

신사회 운동 New Social Movements 신사회운동은 시민의 권리투쟁,페미니즘,생태정치,평화운동,청(소)년운동,문화 정체성의 정치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신사회운동은 종종 정체성의 정치라는 '새로운'사회 정치 운동(1960년대 발생하여 그때부터 급격히 증식하고 성장한)이 되어왔으며, 이러한 운동은 문화연구의 지지자들을 공급해 왔다. (중략)신사회 운동이 계급 정치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일 수 있지만, 1960년대 이후 갈등은 노동자와 관리자 간의 대립의 문제에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개발의 방향을 통제하기 위한 보다 광범위한 투쟁으로 대체되어 왔다. 특히 신사회 운동의 갈등의 축은 정체성,자아실현,'탈물질주의적'인 가치 등의 문제로 이동해 왔다. (중략)신사회 운동은 공통적으로 엉성하고 민주적이며 행위지향적인 그들의 조직 형태와 함께, 반권위적, 반관료적 심지어는 반산업적 관점을 지향하는 것으로 흔히 특징된다. 결과적으로 가치지향성, 특-205쪽

수한 목표, 서로 겹쳐 있어서 유연하게 이동하는 '구성원'의 중첩 현상으로 인해 특정한 운동 사이의 경계는 종종 희미해진다. 신사회운동은 종종 '직접적인 행동'에 관여하지만, 이 행위가 정통적인 대의정치 당국과 담당자(예를 들면 의회나 국회의 구성원)가 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주요한 상징적 저항은 기업,연구 기관, 군사시설, 정유 회사, 도로 건설 프로젝트 등등 같은 시민사회의 행위자나 기관들을 둘러싸고 이루어진다. -206쪽

NSMs의 정치는 상징적인 사건과 환기적인 언어를 통해 제도화된 권력 관계의 문화적 코드에 도전하는데, 이러한 행동은 그들에게 하나의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일관된 모습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신사회 운동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그들 행위의 핵심이며 그 운동의 형식과 내용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또한 NSMs의 많은 행위는 그들 자신을 대중적으로 소구하기 위해 기획된 미디어 사건이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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