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은 내부의 질서를 조율해 줄 그 무엇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필요에 조응해 등장하는 것이 바로 텔레비전이다. 일단 텔레비전은 편재적으로 존재하는 공중파의 신호를 자신의 브라운관에 집결시킴으로써, 발코니 창이 아파트 주변 환경의 여건상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던 외부 세계로의 조망을 제공한다.바로 이런 이유로 텔레비전은 거실 공간에 자리한 점유자들의 시선을 유인하는 기능을 지닌다. 텔레비전은 꺼져 있을 때 블랙 박스에 불과하지만, 전원이 들어오고 브라운관에서 빛 입자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면(145) 거실의 시선은 이 움직임을 외면하기 힘들다.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은 놀라운 흡입력을 발휘하여, 주사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에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것이다.-145,146쪽
안방에서 거실로 이동한 텔레비정은 바로 이러한 흡입력을 바탕으로 사물의 배치를 위한 기본 구문법을 완성해 나간다.그 구문법이란 극장의 원리다. 극장의 한편에 스크린이 있다면,다른 한편에는 관람객의 좌석이 있다.그와 마찬가지로 거실 한편에 텔레비전이 있다면,그 맞은편에는 소파가 있다.이러한 텔레비전과 소파의 대응성은 소실점을 대신해 사물 배치의 원리를 창출하고,거기에 시각적 일관성을 부여한다. 여기에서 텔레비전은 더 이상 다리가 넷 달린 '목제 기구'의 형태를 흉내내기를 그만두고, 좀 더 현대적인 분위기의 단순한 플라스틱 박스 형태로 진화하기 시작한다.-146쪽
김현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아파트가 거주공간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즉, 중산층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146쪽
올림픽이 국가 단위의 나르시시즘적 상상계를 완성하는 데 그쳤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특히 88올림픽의 예고편처럼 1984년 한여름의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뜨겁게 달궜던 LA올림픽은 당시의 소년소녀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욕망을 학습할 기회를 제공했다.일단,자연스러운 몸짓을 펼쳐 보이며 개막식의 무대를 블록버스터 버라이어티쇼로 승화시킨 팔등신의 육체들이 그 시작이었다.<월간팝송>을 구독해 보던 몇몇은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라이오넬 리치가 어설픈 브레이크댄스를 배경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기계체조식의 매스게임에 익숙해져 있던 이들에게 이 육체의 향연은 임계점을 넘어선 흥분을 안겨주었다. / 이상 박해천, 1980년대,아파트,올림픽,나이키,공전하는 파편들 - 80년대 시각문화에 대한 몇 가지 기억 중에서 -150쪽
김희선,1989년>대우 요요 AHS-202K,위안의 정서를 만나다 중 / 모든 기억 가운데 가장 달콤한 것은 '믹스테이프'와 관련된 것이다.공테이프에 곱게 녹음된 노래들은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노동량과 인내심을 수반한 '우정의 증표'와도 같았다. 기본적으로 워크맨의 녹음 기능은 그 음원-주로 라디오-을 놓치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다. 어느 날 밤, 라디오 진행을 맡고 있던 신해철의 다음과 같은 멘트 다음에 일제히 '녹음'버튼을 눌렀을 전국의 그 수많은 손가락들을 상상해 보는 일은 지금도 흐뭇한 웃음을 자아낸다."저희 방송이 무슨 뉴트롤즈 팬클럽도 아니고, <아다지오>가 신청곡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노래 시작 전후에 확실한 공백을 두고,노래 중간에 멘트를 치고 들어가는 일도 절대 없이 <아다지오>를 틀어드릴 테니, 모두 녹음 준비하십시오.그리고 다시는 신청곡 보내지 마십시오."-240쪽
김윤구,1997년 보체디비나 소프라노 스피커,오디오는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중 / 오디오는 음악만을 들려주는 기기가 아니다. 오디오는 집에서 가구의 역할도 하고 인테리어 역할도 한다.배치에 신경을 쓰다보면 오디오는 공간을 구획하는 역할도 하게 되며,때문에 사람과 공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방에 놓인 오디오와 거실에 놓인 오디오는 많은 의미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그래서 오디오는 일반적인 가전제품과는 다르며 개인 휴대용 전자기기와는 완전히 다른 상품이다. 어떤 오디오를 고르라는 것인가와 가장 비슷한 질문은 어떤 소파를 살 것인가가 될 것 같다.-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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