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한 부여 답사 1 ~ 장하리에서 대조사까지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한 부여 답사 2~무량사에서 성주사지까지

궁남지에서 찍었던 단체 사진을 창비 블로그에서 찾았어요~~~
http://blog.naver.com/mydapsagi/100129484676  

2호차 우수반 범생이라고나 할까요~~  ^^ 

 
자~ 이제 부여 답사 페이퍼 3탄, 답사 후기의 종결자 되겠습니다~~~~
장황하게 주절거린 페이퍼 읽느라 고생하셨지만, 마지막이니까 애정의 끈을 놓지 말고 읽어주세용!^^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부여 답사에서 유홍준 선생님은 문화재를 설명하면서 누차 '인생도처유상수'라 말씀하셨다.
미처 책을 못 읽고 간 막내는 '인생도처유상수'란 말이 무슨 뜻인가 궁금해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의 부제이기도 한 '인생도처유상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면 절로 이해된다.^^ 

"답사에 연륜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문득 떠오른 경구는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였다.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상수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를 밝혀낸 이들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 상수들이었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필부 또한 인생의 상수들이었다. 내가 인생도처유상수라고 느낀 문화유산의 과거와 현재를 액면 그대로 전하면서 답사기를 엮어가면, 굳이 조미료를 치며 요리하거나 멋지게 디자인하지 않아도 현명한 독자들은 알아서 헤아리게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권, 책을 펴내며 5~6쪽)

성주사지를 돌아보고 유홍준 선생님의 마을인 외산면 반교리로 향했다. 선생님은 입주할 당시 환갑이 안되어 마을 청년회원이 되었는데, 5년이 지난 올해 청년회를 졸업하는 것인가 물었더니 이장님은
"아뉴, 올부턴 청년회 나이를 65세로 늘렸시유, 너무 염려 마유."
대답했다며, 선생
님은 아직도 당당한 반교리 청년회원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우리네 전통적인 마을은 옹기종기 모인 집과 흐르는 개울이 있고, 개울 건너엔 방아간이 있었다고 한다, 방아간은 시끄럽기 때문에 개울 건너에 있었다는 설명은 새로운 발견이다. 반교리에선 선생님이 들어와 살면서 동네가 유명해졌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고.....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반교마을 돌담길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선생님은 답사길에 발견한 아름다운 돌담길을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청장 재임시 전국에 있는 아름다운 돌담길 18곳을 문화재로 등록시켰다고 한다. 반교리는 돌담길보존회가 있어 마을 밭에서 나온 둥그스름한 호박돌을 전통방식대로 낮게 쌓아 운치있는 돌담길을 만들고, 기념비까지 세웠는데 '옛'자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옜'이 되었다는...ㅋㅋ

 

 

반교리 돌담길은 올해 전장 2킬로미터의 복원사업이 마무리 된다는데, 아래 오른쪽 집의 하얀 벽 때문에 돌담길이 끊어지게 되자 그 위에 돌을 붙여서 돌담길을 이었다. 하하~ 센스쟁이 반교리!!^^
 
 
 

도로에서 30센티를 들여 돌담을 쌓고 꽃밭을 만들었으며, 자투리 땅엔 꽃과 나무를 심어 마을 자체가 커다란 꽃밭이었다. 

 

드디어 선생님의 집 휴휴당(休休堂)이다~~~~~ 외산면과 내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티고개를 넘어서면 아미산 아래 다소곳이 들어 앉은 마을로 집 앞에 시냇물이 흐르는 그림같은 곳이었다. 이렇게 멋진 곳으로 변신하기 위해 얼마나 일을 많이 했던지, 사모님은 "젠장, 쉬러 왔다고 휴휴당이라고 하더니, 이건 쉬는 걸 쉬는 집이구만." 하셨다는~~~ ^^   

앙증맞은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면~

 

방 하나, 부엌 하나의 8평짜리 세 칸 기와집~ 아담한 크기에 툇마루까지 있어 더욱 반가웠다.

   

반교리는 땅 밑이 모두 돌이라, 집터를 고르면서 나온 돌로 집을 짓고 돌담을 쌓았다고 한다.

   

집 주인의 정서가 엿보이는 당호와 방문 앞에 걸어 놓은... 

 

내소사에 걸린 추사의 글을 똑같이 복제하여 집 옆에 붙였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에 내소사가 나온 후 방문객이 많아 입장료 수입이 엄청 늘어난 내소사에서 선물로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짝 공개하면, 주지스님이 돌아가시면서 유홍준 문화재청장께 꼭 '인사'를 드리라는 유언을 남기셨고, 후임인 주지스님은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는지 몰라 현금을 싸들고 찾아왔고... 현금을 받을 수 없다 정중히 거절했더니... 주지스님 유언이라 꼭 인사를 해야 한다며 갖고 싶은 걸 말하라고 해서 추사의 글을 받았다고.... 후일 검찰청에서 강연할 때 이야기를 했더니, 검찰총장이 그런 돈은 받아도 된다고 했다나, 그렇다고 오래전에 돌려 보낸 돈을 다시 갖고 오라 할 수는 없었다고 해서 우리 모두 웃었다.ㅋㅋ) 

 

꾸미지 않은 듯, 방치된 쓰레기 봉지와 쌓인 장작더미와 툇마루 앞에서 꽃피운 포피도 예쁘다~

 

그 옆으론 헛간과 뒷간을 붙인 4평짜리 기와집이 있고...

어디든 눈을 돌리면 꽃과 나무들이 들어와 안기는 정원~~~~ 우와~~~~~~ 무지 무지 부러웠다.




추사고택에서 만났던 '석년(石年)을 휴휴당에서도 만났다. 전국 문화재를 답사한 선생님은 좋은 것을 당신의 정원에 모아 놓은 욕심쟁이~ 우후훗! (추사 고택의 석년을 보시려면 여기로~ http://blog.aladin.co.kr/714960143/4716593 

 



왼쪽의 백당나무와 오른쪽의 불두화는 꽃이 좀 다르다~ 

집 앞으로 흐르는 개울엔 통나무 다리가 얹혀 있고...

반교리 청년회원 유홍준 선생님은 부여 생활 5년에 풀만 보면 자동으로 풀 뽑기의 달인이 되어 충청도 버전으로~
"아~ 이노무 풀들은 잠도 안 자고 쑥쑥 커유~~~~!"
'아니, 왜 그노무 풀들은 잠도 안자고 커서 선생님을 괴롭힌대유~~~~~ 'ㅋㅋㅋ 

 
 


 

차가 드나드는 곳은 제주 정낭으로 대문을 대신했고...

  

이제 선생님 집 구경을 마치고 나와 사립문을 닫았다. 집 뒤는 마을 도로~~ 

마을에서 만난 반교리 할머니들~ 
돌담을 구경하는 내게, 맘에 들면 돌을 가져가도 된다고 하셨지만...
난 돌을 가져오지 않았다. 반교리의 돌은 반교리에 있어야 빛나니까~ ^^

 

보라꽃 핀 건 보라감자, 파보나 마나 보라 감자~~

 
 
 

혹시 반교리에 가서 5도2촌의 생활을 하고 싶은 분, 폐가 하나 나왔다니까 알아보셔용~~~~ ^^ 

자, 이제 반교리 마을 구경도 다 했으니 부여답사의 종결자,
부여 문화재의 진수를 보여 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5번지 정림사터로 고고~~~~~  

 

 

말로만 듣던 정림사 5층탑~~~~ 우아~~~~~~

 

백제탑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선생님도 탑과 한 몸을 이룬 듯...

 

또 다시 등장한 우리 모녀와 마노아님과 마노아님의 야곱~ 우리도 정림사 탑을 보았노라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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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 5층 탑 뒤에는 고려때 만들었다는 아주 심하게 마모된 석불 좌상이 있었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황급히 돌아섰던 정림사 5층 석탑에 한 번 더 눈맞추고...

 

친절한 창비 황과장님의 배려로 승용차를 타고 부여 터미널까지 오다 만난 계백장군 동상~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쉼없이 문화재의 멋과 가치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신 유홍준 선생님
빛고을 광주에서 올라온 순오기에게 깜짝선물을 주신 최**씨, 영업부 김차장님, 문학인문팀 황과장님, 인문사회팀 황팀장님...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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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6/13  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라 회원들 책까지 반양장본을 구입했는데,
광주와 인연이 있는 최**씨에게 양장본을 선물받았다.^ ^ 

정조의 문체반정의 희생양이었던 이옥과 김려의 우정,
시대를 초월한 살아있는 글, 진정한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 헤아려보는 즐거운 독서였다.   

지나치게 많은 사진과 지극히 사적인 주절거림까지 쓸데없이 길었던 답사 후기 3탄까지 읽고 추천과 댓글을 무수히 남겨주신 알라딘 서재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1 막내가 답사를 다녀와서 책을 읽고 빛고을 독서마라톤에 남긴 소감으로 부여답사 후기를 마무리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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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 엄마와 함께 부여문화유산답사를 갔는데, 그 때 해설해주신 분이 유홍준씨였다. 이 책 출간기념으로 출판사가 진행한 이벤트였는데, 정작 갈 때는 책을 못 보고 가서 돌아오고 나서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보고 온 것들을 책을 보면서 다시 되살리고, 그 때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어 좋았다. 답사는 정말 재미있었다. '서동요'로 알려진 백제무왕의 궁남지를 시작으로 장하리 3층석탑, 무량사, 성주사지, 정림사지 5층석탑, 유홍준씨의 집인 '휴휴당'까지. 내가 다녀온 곳들을 책을 읽으며 되새길 수 있어 좋았다. 어려서 엄마가 유적답사에 데려갔을 땐, 그냥 돌은 돌이고 탑은 탑일 뿐인데 왜 일부러 이런 델 데려오는지 귀찮고 짜증났는데, 조금 커서 답사에 나서니까 느낌이 달랐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것들이 몇 백년, 몇 천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하고, 이 옆으로 그 당시의 사람들이 숨쉬고 생활했을 걸 생각하니 가슴 가득 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유홍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생도처유상수라는 말도 책을 읽으니 이해되었다. 요즘과 다른 옛 것의 멋이 하나하나 와닿았다. 이번엔 부여권만 가봤지만, 다음에는 꼭 이 책에 나온 다른 답사지까지 가 볼 예정이다.  

 

해마다 4,5월과 9,10월 네째 토요일에 부여문화원에서 '명사 유홍준과 함께하는 부여 답사'를 진행한다.
인터넷 신청 선착순 마감이라 부지런을 떨어야 참가할 수 있을 듯...   

http://buyeo.cult21.or.kr/0011_buyeo/index.jsp 

고등학교 독서회와 마을어머니독서회원들과 가을에 부여답사를 갈까 생각중이다.
오늘 고등학교 독서회는 좋다 했고, 마을 어머니독서회는 월욜에 모이니까 의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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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6-1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흑 정말 부럽습니다.

순오기 2011-06-10 23:49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은 당연히 뽑힐 줄 알았는데...

글샘 2011-06-1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정말 쉬는 걸 쉬고 계신 순오기님의 열정에 존경을 바칩니다. ^^

순오기 2011-06-10 23:50   좋아요 0 | URL
쉬는 걸 쉬고 있다니요~ ㅋㅋ
주 2회 수업하고 만날 빈둥거리며 놀아요!

잘잘라 2011-06-10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오늘 페이퍼는, 저도 다녀온 곳이라서... ㅎㅎ^^

맨 위에 단체사진, 표정들이 다 살아있네요. 행복해보여요.
그중에서도 제일 환하게 웃고계시는 순오기님의 밝은 기운, 단연 돋보입니다. ^__________^
(입이 귀에 걸린다는 표현이 실감나요.^^)

잘잘라 2011-06-10 16:48   좋아요 0 | URL
쉬는 걸 쉬는 데, 휴휴당
보라꽃 피는 감자는 파보나마나 보라감자~
잠도 안 자고 쑥쑥 크는 이눔의 풀~
ㅋㅋㅋ
재미있어요. 특히 선생님 부인은 센스쟁이~~^^

순오기 2011-06-10 23:51   좋아요 0 | URL
잠도 안자고 쑥쑥 크는 니눔의 풀은 반교리 할머니들이 하신 말씀이라네요.^^
노는 걸 즐기는 순오기니까~~

소나무집 2011-06-10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홍준 샘의 집구경까지 정말 훌륭한 답사의 종결입니다.

순오기 2011-06-10 23:52   좋아요 0 | URL
소나무집님 아이들은 역사 좋아하니까 가족이 함께 가도 좋을 거 같아요.

프레이야 2011-06-1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휴당, 이름 재밌네요.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어요.
반교리의 돌담과 야생꽃들 정겹네요.
다음에 꼭 가보고 싶어요.~~

순오기 2011-06-10 23:52   좋아요 0 | URL
휴휴당~~ 좋죠?^^
우린 쉬는 걸 즐기고 있지만...

꿈꾸는섬 2011-06-1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멋진 여행이네요.
부여의 반교리 마을 너무 예쁘겠어요. 저도 다음에 꼭 가보고 싶어요.

순오기 2011-06-10 23:53   좋아요 0 | URL
즐거운 답사였어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꼭 가보셔요!^^

마노아 2011-06-1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부러운 휴휴당이에요. 날이 꾸리꾸리한데 여기서 꽃을 보니 눈과 마음이 같이 정화된 기분이에요.
정성들인 후기 잘 읽었어요. 순오기님의 수고한 팔에도 박수를~!!

순오기 2011-06-10 23:54   좋아요 0 | URL
풀꽃을 보면 언제나 정화되는 느낌이죠.
쓰잘데없이 주절거리느라 너무 기~~~~~~~~ㄹ었지요.ㅋㅋ

비로그인 2011-06-1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윽 반교마을 너무 이뻐요. 닳아버린 석불 좌상도요.. 소박하게 이쁜 것들은 왜 이리 흥겨운지요.
저도 올해 안에 꼭 부여에 가보겠어요!!

순오기 2011-06-10 23:55   좋아요 0 | URL
반교마을, 닳아버린 석불좌상~~~ 소박한 것들에 마음이 가지요.
올해는 부여에 가는 걸 목표로 삼는 알라디너가 많을 듯해요.^^

수퍼남매맘 2011-06-12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닮아 따님도 글발이 장난 아니네요. 유홍준씨 집까지 가셨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이렇게 정성 가득 후기를 올려 주시니 알라딘에서 순오기님을 안 좋아할래야 안 좋아할 수가 없겠고,
다른 알라디너들도 자극을 팍팍 받습니다.

순오기 2011-06-10 23:56   좋아요 0 | URL
후기는 마노아님 후기가 정말 좋아요~~~~
이제 기억력이 부실한 나이라 그냥 자세히 기록했더니 과유불급이 되었지요.ㅜㅜ

BRINY 2011-06-11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세한 후기, 잘 보고 갑니다.
통일신라 석탑을 좋아하지만, 백제 석탑도 좋네요~

순오기 2011-06-12 10:19   좋아요 0 | URL
^^

玄月 2011-06-1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반갑습니다:) 그날 만났던 부산 아가씨예요ㅎ 페이퍼 읽으면서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좋았답니다^^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한 부여 답사 1 ~ 장하리에서 대조사까지

 "소비자가 문화를 만든다"  

정림사지 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해 부여문화원 팀과 강남구청 팀 버스에 차례로 탔던 유홍준 선생님이, 대조사 답사 후에 다시 2호차에 타서 하신 말씀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이 아직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지 못하는 이유는 강남구 사람들이 책을 안 사기 때문이란다. 강남구청 팀에서 책을 사서 읽은 사람은 딱 둘, 선생님의 대학 선배 부부 뿐이었다고. 선생님의 설명에 끄덕이고 호응하며 소통과 교감이 활발했던 우리 2호차는 졸지에 우수반으로 명명되고, 선생님은 답사 내내 주로 2호차를 티고 이동하셨다.^^ 

문화재는 생산자가 만드는게 아니라 소비자가 만든다는 일례로, 우리 조상들이 훌륭한 도예 문화를 남겼어도 좋은 도자기를 사는 사람이 없으면 발전하지 못한다고 했다. 있는 사람들이 플라스틱 그릇을 쓰지 말고 고급의 한국 도자기를 소비해야 한다며, 덴마크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예를 들었다. 여왕이 한국에 와서 800여명을 초대했는데, 모두 '로얄 코페하겐' 식기로 대접했단다. 어떻게 그릇을 준비했는가 물었더니, 여왕이 한국에 올때 아예 싣고 왔다고. 자기나라의 식문화를 알리기 위해 접시까지 완벽하게 준비하는 걸 보고 감동했다고....   

<한국인 전용복>서 일본 메구로가조엔 식당을 리모델링 하면서 옻칠의 장인 전용복을 초청해 3년에 걸쳐 완벽하게 재현하는 걸 보고 놀랐다. '소비자가 문화를 만든다'는 말이 실감나는 현장이었다. 훌륭한 전시회를 열어도 찾아와서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독서편식을 지양하고 좋은 책을 사서 읽어야 인문학이 발전한다고 역설하셨다. 그 도시의 문화는 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는 박물관이 부족한 게 아니라 박물관을 찾아가는 문화가 부족하다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답사팀은 좋은 문화를 만드는 소비자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듯하다.  

점심을 먹고 막간을 이용해, 창비에서 공수해 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현장 구매한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셨다. 아마도 강남구청 사람들은 거의 다 구입하지 않았을까 짐작되듯 사인 받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는.... 

 


선생님은 무량사가 있는 만수산을 뒤뜰 정원 쯤으로 생각하고 가까운 거리인 반교리에 집을 구했다고 하셨으니, 선생님의 정원을 산책하는 마음으로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만수산 무량사로 올라가 보자.^^ 

무량사는 부여가 내세우는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여섯 개의 보물이 있다. 산중 넓은 분지에 세운 무량사는 일년 내내 만수산의  풍경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세속을 털어버리고 들어서는 일주문 기둥은 원목을 생긴 그대로 세웠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다리를 건너 올라가니 저만치 무량사 천왕문이 보인다. 천왕문의 사각 프레임에서 석탑과 석등, 극락전까지 일직선인 무량사의 가람배치를 담으라는 팁을 알려주셨다. 

 

천왕문 안으로 들어서니 보물 제 185호인 오층석탑, 보물 제 233호인 석등, 보물 제 356호인 극락전과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인다.   

 

선생님의 추천 뷰 포인트 느티나무 앞에서 좀 더 가까이 찍은 일직선 가람배치의 석등, 석탑과 극락전이다. 위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의 큰 느티나무 가지가 하늘을 가렸지만, 사찰에선 보기 드문 2층의 극락전은 규모는 작지만 왕궁을 보는 것 같았다. 

  

거대한 느티나무와 돌판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면 가장 멋지다는 포토포인트 안내판이다.

 

무량사 선방인 우화궁(雨花宮)- 불교에서 전하기를 석가모니가 영산회에서 설법할 때 하늘에서 천년에 한번 핀다는 만다라꽃이 비오듯 내리고 천녀가 주악을 연주하며 공양을 했다고 한다.(419쪽)

 

우화궁의 기둥마다 달려 있는 주련 중에 진묵대사의 가장 큰 스케일의 시를 들어보자. 위 사진에 보이는 주련이다.

하늘은 이불, 땅은 요, 산은 베개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독
크게 취해 거연히 춤을 추고 싶어지는데
장삼자락이 곤륜산(히말라야)에 걸릴까 걱정이 되네. 

아~ 하늘을 이불로 덮고 땅을 요로 삼아 산으로 베개를 한다니, 정말 통 큰 분이시다.^^
위에 보이는 주련 중에 세 개만 찍었다.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무량사의 간판스타'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보물 제 1497호)을 모신 영산전이다.

 

영산전 위쪽에 또 하나의 전각과 내부 모습~


극락전 뒤편 개울가에 위치한 청한당은 선방으로도 쓰고 손님방으로도 사용하는데, 선생님 집인 휴휴당과 같은 세 칸의 아담한 집이다. 김시습의 호가 본래 청한자인데 슬쩍 바꾸어서 청한당이라 이름 붙였고, 한가할 한(閒)자를 뒤집어 써서 한가한 경지를 넘어 드러누운 형상으로 쓴 것으로 서예가의 유머가 넘친다.(420쪽)고 써 있다.

 

청한당 간판 위에 발이 걸려 있다.

 

  

만수산 계곡 물이 청한당 앞으로 흐른다. 영산전 앞의 산딸나무는 아직 옮겨 심은 몸살을 앓는 중이다. 대조사에서 보았던 네 장의 흰색 꽃받침이 연두색이고 꽃받침 위의 꽃이 열매처럼 보인다.

 

무량사 극락전 앞의 작약과 불두화 



 

 

무량사 극락전으로 다시 돌아 나와 김시습 사리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학생들을 데리고 답사 다닐 땐,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고 사잇길을 즐겨 이용했지만, 우리는 다시 정문으로 나와 입구에서 장사하는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역경제를 위해 특산물을 사는 건 필수였고, 인증샷은 1편에 올렸다.^^  

 

오세 김시습~ 왜 오세라 하는지 청한당 앞에서 선생님이 설명했고, 책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세종 17년(1435년)에 태어난 김시습은 세살부터 시를 지었고 천재라고 소문이 났다. 세종은 정말 신동인지 알아보라고 승지를 보냈고, 다섯 살 김시습을 무릎에 앉히고 "네 이름을 넣어 시구를 지을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김시습이 답하기를 

"올 때는 강보에 싸인 김시습이지요(來時襁褓金時習)"

라고 하였다. 세종대왕은 이 대답을 전해 듣고 역시 천재라며, 직접 보고 싶으나 군주가 어린아이를 직접 시험한 예가 없다며, "재주를 함부로 드러나게 하지 말고 정성껏 키우라. 성장한 뒤 크게 쓰리라" 하
며 비단도포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오세(五歲 )라는 별호를 얻었다.(422쪽) 자기 자식은 다 천재로 착각하는 오늘의 부모들은, 재주를 드러내지 말고 정성껏 키우라 일렀던 세종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될 것 같다.

사리탑 뒤에 소나무가 운치 있었고, 사리탑 앞에 오세 김시습의 묘라고 비석이 세워져 있다.

 

 

율곡은 <김시습전>에서 그를 평하길, "김시습은 호걸스럽고 재질이 영특하였으며 대범하고 솔직하였다. 또한 강직하여 남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했고 세태에 분개한 나머지 울분과 불평을 참지 못하여 세상과 어울려 살 수 없음을 스스로 알고 불가에 의탁하고 방랑을 일삼은 것"이라고 했다.(424쪽)  김시습의 일대기는 율곡 이이가 선조의 명을 받아 쓴 <김시습전>, 이문구의 소설 <매월당 김시습>. 심경호 교수의 <김시습 평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추천했다. 더불어 금오신화 읽기도~~~~

 

 

 

 

 

 

김시습 사리탑 곁의 야생화들~ 엉겅퀴, 애기똥풀, 달맞이꽃....



 

다음은 화려한 폐사지 성주사터로 이동했다. 여기는 부여군이 아니라 보령시 미산면 성주리 73번지다.  
위 사진은 임시저장했다 올려서 그런지 사진을 크게 보기가 안되지만, 여기부터 사진을 클릭하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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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사지 전면에서 바라본 뒷산 모습~

최치원이 왜 최고의 문장가인가를 잘 보여주는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국보 제 8호). 
무염(태종무열왕의 8대손)은 신라 최고의 지성 중 한 분으로 그의 선법에 따른 제자가 2천명에 이르고, 문성왕, 헌안왕, 경문왕, 헌강왕, 전강왕, 진성여왕까지 여섯 왕이 법문을 들었다고 한다. 그가 죽자 진성여왕은 시호를 대낭혜, 사리탑을 백월보광이라 내리며 최치원에게 "그대를 국사로(國士)로 예우했으니 마땅히 국사(國師)의 비문을 지으라."고 명해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최치원이 글을 짓고 사촌동생 최인곤이 썼다고 한다.



겉은 까만 대리석이지만 속은 흰빛이라 가는 정을 대고 글자를 새기면 글자가 하얗게 보인다. 비석을 이고 있는 돌거북~

 

 5층 석탑(보물 제 19호)


 

세 쌍둥이 석탑인데, 두개는 보물로 지정되고 하나는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동탑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중앙 3층 석탑(보물 제 20호), 서3층 석탑(보물 제 47호) 동 3층 석탑(도유형문화재 제 26호),  
내가 찍었지만 어떤 게 중앙이고 동.서 석탑인지 구별하지 못하겠다.^^

  

1층 몸돌에 강한 돋을새김으로 굳게 닫힌 대문을 장식했는데, 석탑의 몸돌이 하나의 집이며 이 공간에 사리를 장치하고 굳게 대문을 닫아 걸었다는 의미를 새긴 것이라 한다. (434쪽) 

석등(도유형문화재 제 33호)  

     

석계단(문화재자료 제140호),
석축 위 강당 가운데 계단의 소맷돌, 3단의 아래위는 좁고 가운뎃단은 넓게 하여 측면의 예쁜 곡선이 멋스럽다.



성주사터 뒤쪽에서 바라본 앞산 모습~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 신앙 때문에 코가 완전히 닳아진 석불입상(문화재자료 제 373호) 시멘트로 얼굴과 몸통을 성형해 놓았는데, 황량한 벌판에 외로이 서 있는 석불입상을 보니 절로 마음이 짠하다.

  

성주사터를 지키고 있는 나무와 토끼풀과 소리쟁이~ 



이제 선생님 집이 있는 반교마을부터 정림사 5층석탑은 페이퍼 3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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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한 부여 답사 3~ 반교마을에서 정림사지까지
    from 엄마는 독서중 2011-06-10 09:37 
    궁남지에서 찍었던 단체 사진을 창비 블로그에서 찾았어요~~~ http://blog.naver.com/mydapsagi/1001294846762호차 우수반 범생이라고나 할까요~~ ^^자~ 이제 부여 답사 페이퍼 3탄, 답사 후기의 종결자 되겠습니다~~~~장황하게 주절거린 페이퍼 읽느라 고생하셨지만, 마지막이니까애정의 끈을 놓지 말고읽어주세용!^^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부여 답사에서 유홍준 선생님은 문화재를 설명하면서누차 '인생도처유상수'라 말씀하셨다
 
 
에피파니 2011-06-07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량사 초여름 풍경을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오래 전 겨울에 들렀기에 지금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지요. 炭이 나던 지역이 가까워서 그런지 그 겨울에는 먹빛이 난무했습니다. 돌베개 출판사의 김시습 평전 저자는 심경호 선생입니다. 눈에 띄어 일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1-06-07 21:37   좋아요 0 | URL
무량사를 겨울에 다녀왔군요. 탄이 나던 지역이라면 보령을 말하는 거죠?
'심'을 '김'으로 쳐버렸군요.^^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샘 2011-06-07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저 계단이 사인 12도 계단이죠. ^^
6권에 나온 계단은 사인 72도 계단이라니깐요. ㅋㅋ

순오기 2011-06-07 21:41   좋아요 0 | URL
사인 12도? 사인 코사인을 말하는 건가요?
6권에 나온 계단은 사인 72도~ 이것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먹어요.ㅜㅜ
글샘님, 친절한 설명 부탁해요~~~
토욜에 부산갔을 때 00님이 문자 날렸는데 차가 필요하면 연락하랬다죠?
그 차가 Car를 말한 건지 Tea or coffee를 말한 건지...^^

순오기 2011-06-0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페이퍼가 장황해서 과유불급이지만~~~ 그래도 수고한 걸 생각해서 추천과 댓글 좀 남겨주시지요!^^
부여답사 3탄까지 마치면 6/4 부산 리포트 올리려고요.

프레이야 2011-06-08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역시 너무너무 알찬 페이퍼에요.
김시습은 정말 유머러스하네요. 뒤집어 쓴 '한가함' ㅎㅎ
벌렁 누워 한껏 여유 부리는 사람 같이 보여요.
부여 무량사,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어요.

순오기 2011-06-08 08:59   좋아요 0 | URL
쓰잘데 없이 장황해서 알찬(?)~ ㅋㅋ
예나 지금이나 천재는 세상 살아나가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요.ㅠㅠ
부여문화원에서 매해 4,5월과 9,10월에 유홍준과 함깨 하는 부여 답사 신청 받아요.
선착순 마감이니까 9월이나 10월에 일찍 신청해봐요~ 아자아자!!

세실 2011-06-0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부신 연두빛과 어우러진 무량사 풍경이 참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답네요~~~
순오기님은 여행작가가 되면 대박일거예요^*^

석불입상 슬프다......

순오기 2011-06-08 09:02   좋아요 0 | URL
오~ 여행작가라니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석불입상은 진짜 불쌍해보이죠.ㅜㅜ

쎄실님, 오늘 써니 보면서 7공주에 감정이입이 되려나?
학창시절 범생이는 공감 안될지도~~~ 오공주가 더 멋지지!ㅋㅋ
나는 이제 도서관 갈 시간이라 나갑니다~~~~~~

라로 2011-06-0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과 추천 부탁도 다 하시고,,,ㅎㅎㅎ
이렇게 알찬 글에 댓글과 추천이 부족해서는 안돼죠!!
정말 정말 언니는 여행작가의 길을 가시면 대박일것 같아요!!
진로를 그리 정하시길,,아자아자 화이팅~~~^^

순오기 2011-06-08 22:22   좋아요 0 | URL
여행작가~~~~ 그냥 말만 들어도 좋아요.^^

blanca 2011-06-08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 페이퍼로 예습하고 가 봐야 겠어요...

순오기 2011-06-08 22:23   좋아요 0 | URL
제 페이퍼에 개인 감상은 부족해도 자료적 가치는 좀 있지요.^^

마노아 2011-06-08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시저장글은 에러가 있나봐요? 공들여 썼는데 사진이 커지지 않아서 아쉬워요.
무려 3탄까지, 이 정도면 헌신이라고 봐요. 덕분에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어요.^^

순오기 2011-06-08 22:24   좋아요 0 | URL
아~ 맞다, 헌신!!ㅋㅋ
이거 쓴다고 구청에서 평생학습 동아리 전국대화 사례발표 신청하라는 거 패쓰했어요.
그래서 머리 아픈 일 하나 덜었어요.ㅋㅋ

비로그인 2011-06-08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한당의 간판에 여유와 해학이 넘쳐요.. 성주사지도 참 좋군요. 저도 가봐야지 하면서도 아직이네요.
언니는 남들이 무심히 넘기는 꽃까지 쳐다봐주고 사진을 찍으시니 보람도 두 배겠어요~

순오기 2011-06-08 22:25   좋아요 0 | URL
청한당~ 정말 재밌는 글자에 기분이 좋아져요.^^
제가 시골 출신이라 고향에서 보던 풀꽃을 만나면 그냥 못 지나쳐요. 내 친구 같아서~ㅋㅋㅋ

2011-06-08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6-08 22:26   좋아요 0 | URL
계절이 계절이니만치 싱그런 초록이 눈을 즐겁게 하죠.
충청도 사랑해주세요~ ^^

2011-06-08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6-08 22:27   좋아요 0 | URL
청한당~~~~^^
알찬 페이퍼가 고문이라니~~~ 죄송해라!
나중에 구경갈 때 요 페이퍼를 참고하셔용!^^

소나무집 2011-06-0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모두 다녀오셨군요. 잘 구경했어요.

순오기 2011-06-08 22:28   좋아요 0 | URL
그냘 답사는 거의 강행군이었지만 룰루랄라 신났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0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주기도 하고 찾아가 주기도 해야 한다는 말이 와닿네요.

순오기 2011-06-08 22:28   좋아요 0 | URL
예~ 사주고 찾아다녀서 우리 문화를 살려야 해요.^^

꿈꾸는섬 2011-06-10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량사 예전에 가보았는데 감회가 새롭네요.^^
와, 너무 멋져요. 저도 여행가고 싶어요.^^

순오기 2011-06-10 21:15   좋아요 0 | URL
아~ 무량사를 가보셨군요.
여행은 언제나 즐거움을 주죠~ ^^

pjy 2011-06-1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눈으로 가는 여행도 즐겁지만, 꼭 발로 가서 직접 보는것도 남다른 감동이겠습니다^^ 여름지나면 갈래요~~너무 더워요ㅋ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 한 부여 답사

'유홍준 선생과 함께하는 부여 답사'에 당첨되고 바로 책을 주문해 '당일배송'으로 받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까 예습은 필수, 일단 답사지인 부여 문화권만 읽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흥미로웠지만, 내고향 충청도 말의 오리지날 버전이 곳곳에 나와 깔깔 대며 읽었다. 충청도 사람이 느린 것은 동작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어리숙해 보이는 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기질을 모르는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이다. 유홍준 선생님은 부여 정착 5년 만에, 충청도 사람들의 말투와 기질을 제대로 이해한 듯하다.^^  

뒤에서 빵빵거리는 운전자에게 다가가
"그러케 바쁘믄 어저께 오지 그랬시유!" (384쪽)
라는 대사는 정말 압권이다.ㅋㅋㅋ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매력을 알려주는 유홍준 선생님의 달변을 듣는 책읽기는 즐거웠고, 시리즈를 모두 소장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는 내겐 교과서이고 참고서이다. 독서회 문학기행을 준비하거나 테마여행에 앞서 꼭꼭 챙겨보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5월 28일 토요일, 광주에서 서울 현대백화점 주차장까지 가려면 새벽 2시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 3시 버스를 타면 시간이 딱 맞는데, 유감스럽게 새벽 2시 이후 4시까지는 운행되는 게 없었다. 더구나 광주에서 부여로 바로 가는 건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이용할 수 없었다. 새벽 1시 30분 집을 나서는데, 거나하게 취한 남편은 그 시간에 귀가하면서 지금 가는 거냐고... 나 같으면 안 간다는 멘트를 날려주셨다. 하아~ 새벽 3시에 독도 체험학습도 갔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라는 막내의 호응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드디어 집합 장소에 도착해 창비 스탭들을 찾다가 마노아님을 만났다. 신새벽에 마노아님과 동행인 '야곱'까지 알현하는 행운은 여행길의 즐거움을 더했다. 6시 50분 우리를 찾아 온 창비 스탭을 따라 버스에 오르니 다른 분들은 이미 탑승해 있었다. 운 좋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전석 뒤 세번째 자리가 비어 있었다. 10여년의 독서회 문학기행과 답사에서 얻은 결론은 세번째 자리가 최고의 명당이라는 것. 왜냐면 주최측에서 마이크 잡고 안내할 때 파편이 튈 위험도 없고, 눈 맞추고 교감하기에도 딱 좋은 자리다. 안내 중에 유홍준 선생님도 다년간의 답사에서 앞자리부터 '춘하추동'으로 구분해 참가비를 다르게 받았다고 하셨으니 증명된 셈이다.^^   

내 인생 최고의 답사를 선사 할 유홍준 선생님은 갈색 신사로 차에 오르셨다. 와우~ 사진으로 친숙한 선생님은 생각보다 마르고 웃으면 다정다감해 보였다. 스텝들을 소개하고 곧바로 줄줄 풀어내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참여정부 인사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정경유착 극복,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한 점을 높게 평가하셨다. 현재 5도 2촌(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시골에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노대통령은 될수록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나 섬으로 가면 더 좋겠다고 하셨다지만... 명사들이 지방에 정착해야 지역발전에 일조한다는 건, 유홍준 선생님이나 감성마을의 이외수 작가 경우를 봐도 맞는 거 같다.

우리를 편안하게 데려다 준 승산고속버스. 2호차 노란 이름표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을 꽂아 둔 센스라니!^^ 
유홍준 선생님 20년 답사의 동반자인 마기사님도 살짝 흐릿하게나마 보인다.  

    

우리가 돌아보게 될 부여에 대한 안내와 20년 답사의 에피소드 보따리를 푼 선생님의 달변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흘러, 20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첨된 알라딘과 교보에서 온 동행자들을 소개할 시간이 없었다. 대표로 가장 멀리 선 온 부산아가씨와 광주댁 순오기만, 이벤트 당첨의 행운을 가져온 구구절절한 사연과 더불어 본인 소개를 잠시 했었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마음대로 상상하시길~^^    

  


선생님 손에 든 CD는 손수 선곡한 답사 음악으로 12집까지 만들었다는데, 유독 즐겨 들었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에 젋은 동행자들이 진저리를 쳤단다. 답사 경력 10년 20년이 지나 그들의 나이가 마흔이 되었을 때에야, 정말 좋은 노래라는 걸 알아주었다던가~^^ 음악도 감성이 통하고 공감할 나이가 돼야 그 심오한 맛을 아는 법이다.

부여에 도착할 때까지 성악과 오케스트라 연주 및 팝과 가요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아름다운 음악에 취했다. 특히 선생님이 제일 좋아한다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마이클 볼튼이, 보스니아 어린이를 위한 자선음악회에서 부른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실황녹음은 전율이 일 정도로 황홀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잠시 백제 별궁 연못인 궁남지에 들렀다.  선화공주와의 사랑을 노래한 서동요 전설이 깃든 곳으로, 삼국사기에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 이십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 섬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단다. 부여군수가 유홍준 선생님의 휴휴당을 반짝 들어다 궁남지에 놓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바로 그 궁남지다.

 

 

 

 
때가 일러 연꽃은 안 피고 수련만 간간이 피어 있었다. 우리 모녀는 유홍준 선생님 설명을 안 듣고 자유롭게 궁남지를 돌아보다가 단체촬영 하늘 걸 뒤늦게 발견, 소리치며 달려가 인증샷을 남겼다. 사진 찍은 분이 어디에 올려둔다고 했는데, 창비나 부여문화원 사이트를 가봐도 사진이 없다. 으흐윽~ 내 카메라에도 담았어야 했는데... ㅜㅜ 

정림사지 주차장에 도착해 다른 차에 탑승하기 전, 선생님께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광주로 돌아갈 때 논산까지 가는 길을 여쭈었더니, 부산아가씨와 광주는 일행 중에 같은 방향 분이 있으면 연계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하셨다.

  

부여 정림사지 주차장에서 부여문화원 답사팀과 강남구청 답사팀을 만나, 선생님은 다른 차에 탑승하셨다. 우리 2호차는 유홍준 선생님 답사 모임에서 20년째 말뚝총무라는 눌와의 김효형 대표님이 마이크를 잡았는데, 유홍준 선생님이 한국답사 1인자라면, 당신은 2인자로 청춘을 버스에서 보냈단다. 유홍준 선생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출판사 눌와(낮은 오두막)를 시작했지만, '유홍준의 서양 미술사'를 출판하고 역시 선생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단다.^^   

눌와의 대표도서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박상진 <궁궐의 우리나무>
승효상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문화재청<한국의 문화유산>

 

 

 

  

 


유홍준 선생님은 답사를 다녀도 크고 번듯한 식당보다는 작은 식당에 가고, 원조집보다는 그 옆집을 이용한다고.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때문에 유명해진 작은 마을에 쑥 들어간 곳에 00식당이 있었는데, 돈을 많이 벌었는지 중심가로 나와 식당을 크게 연 후에는 그 곳에 가지 않고 또 다시 작은 식당을 찾아서 다녔단다. 작은 식당은 소박한 밥상이지만 정성을 다해 준비해 좋다고... 사전답사를 다니면서 말뚝 총무가 식당을 예약하고 먼저 친했지면, 나중에 간 유홍준 선생님이 자신보다 더 친하고 먼저 아는 것처럼 하신다는 고발은 애교스러웠다.^^ 

 
첫 목적지는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3층 석탑, 정겨운 고향 같은 풍경이 먼저 반긴다. 일행들 앞 왼쪽에 탑이 작게 보인다.

  

보물 제 184호 장하리 3층 석탑. 해발 25m의 야트막한 구릉이 동.북.남의 3면을 둘렀고, 탑은 트여진 서쪽을 향해 있다.
고려시대에 정림사 5층석탑을 본받아 세운 아주 앙증맞게 귀여운 석탑이다. 3층 몸돌의 가운데를 반만 깎은 것이 더욱 멋있어 보이게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389쪽)    

넓지 않은 지대석과 기단석 위에 모서리 기둥석과 면석을 각각 따로 갖춘 가구식 구조라고 한다.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본받았다는 양식적 동질성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맥없이 베낀 것이 아니라 은근히 미적 변주를 가해 자기만의 독특한 미감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결코 재탕이 아니라 경쾌한 변주이고 익살조차 느껴지는 일종의 패러디라는 생각이 들게 하며 이것이야말로 백제의 여운이라는 느낌을 준다." (38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림사지 탑을 먼저 보면 압도당해 장하리 탑의 매력과 가치가 시시해보이기 때문에 정림사지 탑보다 먼저 봐야 한단다.^^ 

해설하기 전, 일행이 당도할 때까지 개별 사진을 찍었는데, 선생님은 광주, 부산, 대구~ 먼데서 온 사람부터 우선권을 줬다.^^ 

  

마노아님과 마노아님의 '나의 야곱' 그리고 순오기와 막내의 이쁜척 인증샷~^^

 

장하리 탑 옆과 앞마을 풍경~ 집앞의 불두화: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불두화라고 부른다고. 불두화와 백당나무는 구별하겠는데, 솔직히 수국과 불두화는 뭐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장하리 탑을 보고 돌아 나오는 길, 도시인들의 눈을 반짝 뜨게 했던 이앙기로 모내는 풍경~ 하하, 대부분의 도시 촌사람들은 장하리 3층 탑보다 더 몰입하더라는... 우리 막내도 모내기 처음 봤다며 연신 핸드폰으로 찍어댔다. 어쩜 좋아~ 도시 촌넘(?^^)을!  
 

  

 
두번째 답사지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대조사로 가는 길,  마을 풍경이 예뻐 저기에 친정이 있다면 좋겠다, 잠시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대조사는 파라솔 관음상과 꽃사슴 해탈이와 산딸나무로 기억된다. 5월 산하의 푸르른 신록은 안구정화에 좋았고, 산딸나무의 산뜻한 흰 꽃은 눈부심이 더했다. 넉 장의 하얀 꽃받침이 꽃처럼 피어난 산딸나무는 우리 동네에서도 종종 보는 나무라 더 반가웠다. 서양인들은 이 나무를 개나무(Dogwood)라고 부른다니 너무 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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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사에 오르기 전 우리는 유홍준 선생님의 해설에 집중했다. 창비에서 찍은 사진인데, 유홍준 선생님과 펼쳐 든 자료집 사이에 녹색옷 순오기가 보인다. 절묘한 위치에 있었군.ㅋㅋ(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대조사는 전설에 의하면, 고려때 한 노승이 바위 아래에서 수도하던 중 어느날 큰 새 한 마리가 바위 위에 앉은 것을 보고 깜박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어느새 바위가 석불로 변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 이름이 대조사(大鳥寺)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석조관음상은 정통 불상이 아니라 어딘지 토속적인 장승 같은 이미지에서 발전했다는 인상을 준다."(395쪽)  
대조사 원통보전 뒤로 보이는 석불~

  

대조사 용화보전 옆으로 보이는 석불, 용화보전 안에 들어가 앉으면 앞 창으로 석불이 보인다기에 신을 벗고 들어갔다.

 

유홍준 선생님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좋게 앞문을 활짝 열기 위해 무등을 탔었다.^^ 앞 창으로 보이는 석불~

 
  
 
"석조보살상 옆 바위틈에서 자란 늠름한 소나무가 마치 파라솔처럼 머리 위로 뻗어 있다. 파라솔의 솔은 태양을 의미하는 솔(sol)과 소나무의 솔(松)의 의미까지 합쳐졌단다. 세월의 때를 입혀가며 자연과 인공을 결합시키는 마음은 이 땅의 문화가 만들어낸 가장 큰 미덕이다."(398쪽) 우리 문화에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문장이라 밑줄 좌악~ 그었다.^^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많이 닮았다는데, 높이가 10미터나 되는 바위 머리 위에 네모난 관을 쓰고 있는 보살상이다. 머리 위의 관은 이어 붙인 듯. 미륵은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불이고,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다.

  
  

와~ 해탈이다!!
대조사의 명물, 귀염둥이 꽃사슴 해탈이~ 마을에서 새끼 사슴이 태어나자 절에 시주해서, 스님이 우유병에 분유를 타서 키운 사슴이다. 세살이던 진돗개 복실이는 제집을 내어주고 밖에서 자며 지켜주었다고 한다. 주지스님 말씀에 의하면 된장을 좋아하는 녀석이 마을에 내려가 여러 집 장독대를 깨서 묶었다는데, 멀리서 온 팬들을 위해 풀어주었다. 모두들 해탈이의 출현이 반가워 연신 셔터를 눌렀는데, 녀석은 신경도 안 쓰고 저 하고픈 대로 다 하더라. 미끈한 몸매에 카리스마도 짱!!^^  

해탈이와 주지스님은 너무 잘 어울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산딸나무 잎을 따 먹고 근처의 풀도 뜯어 먹었다.

 
   

책에는 해탈이의 출산이 오늘내일 한다고 써 있었는데, 새끼를 낳았다면 아기 사슴은 엄마랑 함께 살지 않는지... 엄마가 절집에 사니까 아기 사슴은 마을에서 아빠 사슴이랑 사는 걸까?  엄마랑 떨어져 산다면 엄마처럼 젖병에 탄 분유를 먹으며 사는지도 궁금하다. 그저 사람이든 짐승이든 제 부모 밑에서 크는 것이 최선의 길인데... 아, 복실이도 보고 싶었는데 못봤다.

   

잠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이 아쉬워 다시 뒤돌아 보게 되더라. 석불 앞에서 내려다 본 풍경~
   

 


점심 먹으러 가기 전 일정에 없던 보너스 답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녹간마을의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은행나무는 500년이 넘으면 측정하기가 어렵다는데, 이 은행나무는 천년 이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침 운 좋게도 은행나무 가지가 뻗어 장독대까지 늘어졌던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수복(82세) 할아버지가 오셔서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할아버지는 은행나무가 군노거수로 지정되고 천연기념물(320호)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수고를 하신 분이었다. 은행나무 아래 아무 곳이나 방석을 깔고 앉으면 하루 종일 그늘이 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람한 나무였다는데, 죽은 가지를 많이 잘라냈고 제 몸들 지탱하기도 어려워 받침대를 세워 보존하고 있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전국의 오래된 나무들이 죽었다고, 인간의 잘못을 질타하셨다. 이 나무도 죽어가는 것을 3년간 공들여서 살려냈다고 한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쌀 한 말씩 걷어서 은행나무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은 군에서 제사를 주관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뒤늦게 전 문화재청장을 알아보고 두분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러니까 은행나무를 보호수로 지정받기 위해 유홍준 청장 이전에 문화재청에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면서 모든 일을 마무리 짓는데 20년이 걸렸다고 하셨다.ㅜㅜ  

 

우리 막내가 만지는 가지는 지금은 잘렸지만, 옛날에는 더 많이 뻗어나간 자리에 할아버지 집이 있었다고...

 

은행나무 보러 가는 길과 은행나무 곁에서 만났던 풀꽃들~
양파꽃도 처음 보는 우리 막내, 하얀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감자, 보랏빛 꽃이 예쁘다고 극찬한 자주달개비, 여고생 교복을 더 하얗게 표백한다는 설에 헹굴때 꽃즙을 짜넣었던 추억의 꽃! ^^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김수영의 시를 읊조리고 싶었던 풀밭. 민들레 홀씨를 후후~ 불고 싶었고, 거대한 은행나무 밑에 지천으로 떨어진 은행을 주워가는 아이들이 없다는 게 서러웠다.

  
  
  


금강산도 식후경~~~~ 신새벽부터 길었던 하루가 이제 점심시간이다. 
유홍준 선생님 답사회 20년 단골집이고, 주말에 내려가면 아침밥을 대놓고 드셨다는 삼호식당이 아니고, 맞은편 은혜식당에서 진수성찬의 밥상을 받았다. 아~ 부침개를 비롯한 이름도 알 수 없는 산나물과 쫄깃쫄깃한 묵은 입맛을 북돋았고, 비빔밥에 청국장도 훌륭했다.   

 
 

서양요리에는 샐러드만 있고 우리나라처럼 데치고 삶아서 무쳐 먹는 나물은 없단다. 오호~ 나물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니 몰랐다. 서양에서 독초로 분류하는 것도 삶아서 독을 빼내고 나물로 무쳐 먹은 조상들의 지혜는 정말 대단하다!!



 

맛나 보이나요?
자~ 이제 점심도 먹었으니, 잠시 쉬었다 무량사에서 정림사지까지 안내하렵니다!! ^^  

2탄 무량사에서 성주사까지 

3탄 반교마을에서 정림사지까지

 

아~ 지역경제를 위해 부여에서 사온 다래나물과 묵, 그리고 기름에 튀기지 않고 전통방법으로 구워낸 알곡(오곡)~~~~ 
도토리 묵이 아니고 뭐라고 했는데, 못 알아 들었다~ 강원도에서는 올갱이라고도 하는 논에서 나는 마름 비슷한 게 아닐까 짐작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여튼 표고가 흔한 고장이라 묵에 표고버섯도 잘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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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선생님이 무량사 앞에다 나물박물관을 세워 나물의 종류와 가치를 가르쳐주면서, 외산장에 내다파는 할머니들의 나물을 봄철 내내 사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부인에게 의기양양 얘기했더니... 

"그러다 산나물 씨가 마르면 당신이 책임질 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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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한 부여 답사 2~무량사에서 성주사지까지
    from 엄마는 독서중 2011-06-07 12:26 
    "소비자가 문화를 만든다"정림사지 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해 부여문화원 팀과 강남구청 팀 버스에 차례로 탔던 유홍준 선생님이, 대조사 답사 후에 다시 2호차에 타서하신 말씀이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이 아직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지 못하는 이유는 강남구 사람들이 책을 안 사기 때문이란다. 강남구청 팀에서 책을 사서 읽은 사람은 딱 둘, 선생님의 대학 선배 부부 뿐이었다고. 선생님의 설명에 끄덕이고 호응하며 소통과 교감이 활발했던 우리 2호차는 졸지에 우수반으
  2.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한 부여 답사 3~ 반교마을에서 정림사지까지
    from 엄마는 독서중 2011-06-10 15:21 
    궁남지에서 찍었던 단체 사진을 창비 블로그에서 찾았어요~~~ http://blog.naver.com/mydapsagi/1001294846762호차 우수반 범생이라고나 할까요~~ ^^자~ 이제 부여 답사 페이퍼 3탄, 답사 후기의 종결자 되겠습니다~~~~장황하게 주절거린 페이퍼 읽느라 고생하셨지만, 마지막이니까애정의 끈을 놓지 말고읽어주세용!^^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부여 답사에서 유홍준 선생님은 문화재를 설명하면서누차 '인생도처유상수'라 말씀하셨다
 
 
양철나무꾼 2011-06-0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좀 마르셨네요~
유홍준 님은 글도 글이지만, 구수한 입담이 백미죠.

순오기님도 되게 오랫만에 뵙는거네요.
반가워라, 와락~^^

순오기 2011-06-03 18:19   좋아요 0 | URL
많이 마르셨더군요. 옷이 큰지 어깨도 헐렁했고...
정말 입담이 대단했어요, 쉬지 않고 계속~~~~~ㅋㅋㅋ

양철댁도 어머님 병간호 하느라 힘들었지요?
알라딘 마실 다니는 걸 보니 퇴원하셨나 봐요.

pjy 2011-06-0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좋아~ 도시촌놈들^^; 계속 작성 기둘리는중입니다..

순오기 2011-06-03 18:20   좋아요 0 | URL
흐흐흐~ 도시 촌놈에겐 신선한 풍경이지요.ㅋㅋ
종일 일보면서 들락날락 추가하는 중인데, 진전이 느리네요.ㅜㅜ

잘잘라 2011-06-0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년 전 선생님도 마르긴 마르셨는데
세월을 숨길 수 없는 건 역시 머리에 내린 서리입니다.
제 머리도 한 번 쓰다듬게 되요.

대전에서 업으로 인테리어 공사할 때 느꼈던 그.. 느림..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던 그.. 느림..
실제로는 2~3년 살았는데, 한 십 년 세월로 느껴져요. ㅎㅎ

그런데 엄... 순오기님은 왜 날이 갈수록 더 젊어지시나요?
비결 좀 알려주삼~

순오기 2011-06-03 18:22   좋아요 0 | URL
재작년에 회갑 지냈다는데 생각보다 연세가 들어보였어요. 마르셔서 그런지...

충청도의 느림을 체감하셨군요.ㅋㅋ
저도 가까이 보면 제 나이 다 보입니다~ 이젠 숨길 수 없어 긴머리로 위장하고 삽니다.^^

hnine 2011-06-03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진 건 별로 없으면서도 부럽다는 소리 잘 안하는 타입인데, 오랜만에 그 소리가 나옵니다. 부러워요. 문화유산 답사기 읽고서 우리 문화유산 보다 어딘지 개구장이 같은 구석을 가진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에게 할 소리가 아니지만)저자에게 더 관심을 잔뜩 품었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으로써...ㅠㅠ
따님, 아유, 예뻐요. 마노아님과 야곱님까지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이거 댓글만 써도 한 페이퍼 감이 되겠어요.
불두화가 수국보다 키가 좀 크지 않나요? 꽃은 수국이 좀 더 크고 색깔도 불두화는 그 고유의 미색. 저도 더 정확히 알아봐야겠어요.

순오기 2011-06-04 00:49   좋아요 0 | URL
오호~ 유홍준 선생님에게 관심이 많았었군요.ㅋㅋ
수국과 불두화의 차이는 아래 글샘님이 설명해주셨네요~ ^^

글샘 2011-06-03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은 잎사귀가 깻잎처럼 동그랗구요,
불두화는 꽃은 비스무레하지만 잎사귀가 공룡발톱처럼 세갈래로 갈라져 있답니다.
꽃은 정말 비슷해서 구분하기 어렵지요. ㅎㅎ

음... 저는 부산서 못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용자도 있군요. ㅎㅎ
이렇게 마노아님과 순오기님 덕택에 뭐, 안가도 구경 잘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순오기 2011-06-04 00:51   좋아요 0 | URL
아하~ 수국과 불두화가 꽃은 비슷하지만 잎사귀 모양이 다르군요.
확실한 구별법을 알았으니, 이제 꽃이 아닌 잎사귀로 구별할게요.^^

부산에서 온 27살 아가씨는 전날 심야에 무궁화를 타고 왔다는군요.
저는 날새면 부산가는데, 부산 가서 글샘님께 콜~ 할지도 몰라요.^^

blanca 2011-06-03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 불꽃 튀겨 가며 정독했어요. 그만큼 너무 멋진 답사 페이퍼입니다. 빨리 다음 편을 올려주세요^^

순오기 2011-06-04 00:53   좋아요 0 | URL
불꽃 튀겨 가며 정독하셨다니, 시간을 많이 들여 쓴 보람이 있네요.^^
날새면 부산으로 날라야돼서 아무래도 2탄은 부산 갔다 와서 일욜에나 쓰게 될...

마노아 2011-06-0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곡, 제 사진이 있군요! 조만간 순오기님 찍은 사진 메일로 보내드릴게요.^^ㅎㅎㅎ
대조사 법당 안에서 찍은 사진 부러워요. 안에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어요.ㅜ.ㅜ
다음 편 어여 이어 쓰여요!!

순오기 2011-06-04 00:55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이 우리를 찍은 것도 있군요. 기대할게요~~~
대조사 법당 안에 들어간 건, 내가 유홍준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주지스님께 양해를 구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곁에 있었던 사람들만 들어갔지요~~~^^

소나무집 2011-06-0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홍준님의 입담만큼이나 순오기님의 글담도 훌륭합니다.
이 긴 글을 한숨도 쉬지 않고 읽었다니까요.
요즘 알라딘에 무심했더니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거도 몰랐어요.
알았다면 한번 신청이나 해볼껄.

순오기 2011-06-06 00:07   좋아요 0 | URL
워낙 달변인 유홍준 선생님 말씀이라 옮기기만 해도 좋은 글이 됐을까요?^^
알라딘 이벤트는 일부러 클릭하지 않으면 알 수 없지요, 좋은 기회였는데...

프레이야 2011-06-0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여기도 때죽나무 꽃이 올망졸망 피어있네요.
아래에서 위로 눈맞춤 해야 볼 수 있는 꽃^^
꽃들과 함께 더더 알찬 오기언니의 페이퍼 정말 맛나요.
민경이도 보이고 마노아님도 보이고.^^
오늘은 좀 쉬세요. 아니다, 어제도 제일 생생하셨더랬죠.ㅎㅎ

순오기 2011-06-06 00:08   좋아요 0 | URL
이젠 때죽나무 잊지 않을거에요.^^
돌아오는 버스에서 잠을 자지 못해서 오늘은 낮잠도 자고 종일 뒹굴모드로 지냈어요.ㅋㅋ
아~ 이기대의 산책코스가 만만찮아서 그런지 다리 근육이 땡겨요.ㅜㅜ

수퍼남매맘 2011-06-06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부럽습니다. 저도 신청했는데 떨어졌어요.

순오기 2011-06-06 22:48   좋아요 0 | URL
경쟁울이 20대 1이었답니다.^^

세실 2011-06-0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때죽나무 님 덕분에 알았지요^*^
우리 다음엔 부여 궁남지 가도 좋겠다~~~~ 연꽃 필 8월에요.

순오기 2011-06-08 09:06   좋아요 0 | URL
아마 때죽나무는 안 잊어버릴거에요.^^
궁남지 연꽃 피면 멋질거에요. 무안엔 백련지가 있어요~

비로그인 2011-06-08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이 페이퍼는 추천 한 개로는 모자라요!! 언니의 후기는 정말 그 느낌이 생생히 살아있어요. ^^

순오기 2011-06-08 22:31   좋아요 0 | URL
하하~ 장거리 출타에 교통비도 많이 드니까 알찬 페이퍼라도 남겨야지요.^^
추천은 한개지만 10개로 생각할게요.ㅋㅋ

희망찬샘 2011-06-09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부산도 오셨네요. 이기대까지 다녀 오셨군요. 프레이야님을 만나신거네요. 어제는 회동수원지명품산책길이라는 곳을 걸었는데, 제 느낌엔 이기대 공원, 누리마루와 그 느낌이 다 비슷비슷 하더라구요.(제가 좀 무딘 관계로 어떤 차이 같은 것을 잘 모르거든요.)결론, 순오기님은 좋은 곳을 다녀오셨구나!!! 입니다. 알라딘 놀이터 속의 순오기님은 언제나 행복해 보이세요.

순오기 2011-06-09 08:19   좋아요 0 | URL
예~ 부산은 언제 어디를 가도 행복해지는 곳이에요.
이기대는 태종대나 누리마루보다 더 드라마틱했다고나 할까~ 함께 한 이들과 너무 즐거워서 그렇게 느꼈으수도 있고요.^^ 알라딘 속의 순오기 뿐 아니라 현실의 순오기도 나름 행복합니다!!^^

꿈꾸는섬 2011-06-10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여, 페이퍼 열심히 읽고 공부해서 다녀와야겠어요.ㅎㅎ
너무 좋으네요.^^

순오기 2011-06-10 15:24   좋아요 0 | URL
과유불급 페이퍼에요~^^
 
예산 추사 백송을 찾아서~
예산, 추사 김정희 고택

우리가 어느새 저마다 귀밑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갑자가 날아든 초등학교 동창회 초대장이 우리를 고향으로 불렀다. 배운 자도 되고 못 배운 자도 되고, 가진 자도 되고 못 가진 자도 되고, 짓밟기도 하고 짓밟히기도 하는 사이에 속절없이 흘려보낸 세월을 무슨 사나운 꿈처럼이나 여기며 우리는 거기서 퍼뜩 깨어난 듯 고향으로 달려갔다. 어느새 쉰을 바라보게 된 나이도 허세 같은 여유를 주어 더 많은 우리를 모이게 했다. (아가 10쪽)  

이문열의 <아가>에서는 반편이 '당편이'를 추억하는 고교 동창들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그려진다. 하지만 우리들의 초등 동창회는 마을 반편이가 아닌, 우리를 주인공으로 한 희미한 옛(첫)사랑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그애가 있으면 변소에도 못갔다는 친구, 축구한다는 핑계로 그애를 보러 뻔질나게 드나들었다는 친구, 중간놀이 시간 손잡기 싫다고 막대기를 내미는 그애의 손을 확 잡고 싶었다는 친구, 변소에 낙서를 끄적여서 자기 마음을 열어보였던 친구~~~ 우리들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밤새도록 흔들리는 등불처럼 춤을 추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0년 귀밑머리가 희끗해질 무렵에 시작한 우리 동창회는, 같은 하늘 아래 꼭꼭 숨은 친구들을 찾아 무시로 추억여행을 떠났다.  
  

 

날이 차오.
혹 쌩떽스의 글을 생각해본 적 있소? 우리를 무참히 죽여가는 것은 암울한 계절의 어두운 강에 다리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던 사람. 그 다리의 이름음 휴머니즘이라고. 소등한 밤에 마지막 문을 닫고, 내 구두 소리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낭하를 걸어나갈 때 춥고 검은 우수를 한 번씩은 경험하곤 하오...... 밤이 되어 설렁한 냉기가 휘감아오면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곤 하오. (중략) 다른 한 사람은, 어떤 여자요. 그는 지금 늘 친숙하던 영등포의 조그마한 아파트가 아닌 보다 따뜻할 남쪽에 가 있소. (중략)  미경이 서울을 떠난 후 나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몹시 무뚝뚝하오. 밤이 되고 설렁할 때, 혼자 있을 때, 문득 다가오는 사람. 가만 생각해보니, 어두운 강에 다리를 지녔음직한 내 육친은 사실은 오램난에 한 번씩 떠오르는 셈인 것 같으로. 영등포로부터 남쪽으로 자리를 비켜 앉은 그 여인에에 비하면. (화가 병종이 소설가 정미경에게 보낸 편지, 일부 발췌-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24쪽)

   

사랑한다거나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없어도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있는 화가 김병종의 러브레터처럼, 문학적이거나 세련되지는 않아도 어설픈 첫사랑의 고백을 담은 편지는 빛바랜 추억의 증표로 남아 있다. 중학교 2학년이던 1974년 봄, 인천으로 전학한 내게 붓펜으로 꾹꾹 눌러 쓴 K군의 편지와 P군의 편지...등 보물창고에 가득한 편지, 엽서, 카드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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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군의 초대로 지난 9일 예산에 갔었다. 공식적인 모임이 아니어서 몇몇 친구만 초대 받았는데, 모임에 가서야 전현직 동창회장과 자기가 러브레터를 보냈던 여자 친구만 초대했다는 걸 알았다. 헐~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여자 친구들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합류하지 못했고, 결국 나혼자 1:3의 데이트를 즐겼다는 흐뭇한 이야기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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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군이 근무했던 예당저수지, 물부족 국가인 우리나라는 농업용수와 식수를 저장하기 위해 예당저수지보다 더 큰 규모의 저수지가 필요해 현재의 위치보다 더 아래쪽을 막거나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저수지는 호수가 아닌 바다를 연상시킬만큼 엄청난 양의 물을 저장하고 있었고, 곧 시작될 논농사를 위해 저수량을 최대로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예당저수지를 둘러보고 우린 수덕사로 향했다. 초등 6학년 때 현충사와 수덕사로 수학여행 갈 예정이었는데, 수학여행 버스사고가 있어 우린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고 졸업했다. 현충사는 5~6년 전에 둘러봤는데 수덕사는 못 가봐서 이번에 '꼭' 가야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안내했다.  
  

오대산에서부터 뻗어내려온 차령산맥 줄기가 서해바다에 가다오면서 그 맥을 주춤거리다 방향을 아래쪽으로 틀면서 마지막 용틀임을 하듯 북쪽을 향해 치솟은 땅이 가야산이다. 차령산맥 위쪽 가야산을 둘러싼 예산, 서산, 홍성, 태안, 당진, 아산에는 비산비야의 넓은 들판이 생겼다. 옛날에는 여기를 내포라 했고 지금도 이 일대를 내포평야라고 부른다. 이 고장 사람들은 사는 행정구역이 서로 달라도 마치 옆마을 사람처럼 느끼는 친근한 동향의식을 갖고 있다. (94~95쪽)

내포땅은 기암절벽이 이루는 절경은 없어도 낮은 구릉이 굽이치는 평화로운 전경은 일상과 평범 속의 아름다움이라 할 만하다. 이 평온 속에 살아온 사람들의 정서와 마음씨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다. 부드럽고, 여유있고, 친근하고.... 그러나 무슨 연유에서일까, 내포땅이 배출한 인재들은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라 기골이 강해서 시쳇말로 '깡'이 센 사람들이다. 최영 장군부터 시작해서 사육신의 성상문, 임진왜란의 이순신, 9년 유배객 추사 김정희, 자결한 구만함릐 의병방 면암 최익현, 김대건 신부,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개화당의 김옥균, 상록수의 심훈, 남로당의 박헌영, 만해 한용운, 화가 고암 이응로... 모두 쉽지 않은 분들이고, 제 명을 못다할망정 의를 다한 분들이다. 이것은 필시 내포땅의 '논두렁 정기'가 아니라 가야산의 정기와 관련있을 것이다.  

내포땅 가야산의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는 수덕사이다. 가야산 남쪽 덕숭산 중턱에 널찍이 자리잡은 수덕사는 백제 때부터 내려오는 유서깊은 고찰이다. 수덕사는 시인 김일엽 스님이 있던 곳으로 유명해졌다.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건립된 것으로, 현재까지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다. 나무로 만든 집이 700여년 동안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차라리 숙연한 마음이 일어난다. 철근을 사용하면서도 길어봤자 100년도 못 가서 헐어버릴 집을 짓고 있는 이 시대의 짧은 눈과 경박한 시대정서에 대한 무언의 꾸짖음이 여기 있다. (96~98쪽) 


수덕사는 두 가지의 창건 설화가 있다. 수덕사 홈페이지에서~http://www.sudeoksa.com/int/?sdir=history&tfile=list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수덕사는 일주문부터 대웅전까지 단청하지 않아 오히려 운치 있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대부분 사찰 본전은 팔작지붕인데 보기 드물게 맞배지붕이었다. 위에 일주문도 여늬 사찰과 다르게 우람한 배흘림 기둥이었고 대웅전의 배흘림기둥도 보기 좋았다. 배흘림 기둥은 아래에서 위로 곧바로 뻗어올라간 것이 아니라 가운데가 슬쩍 부풀어 탱탱한 팽창감을 느끼게 해주고 윗부분을 좁게 마무리한 기둥이다.
 
 
  


전통 한옥의 지붕 모양에는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 세 가지의 기본형이 있다. 맞배지붕은 지붕의 앞면과 뒷면을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배를 맞댄 모양이고, 우진각지붕은 맞배지붕의 양측면을 다시 삼각형 모양으로 끌어내려 추녀가 고르게 만들어져 흔히 우리가 함석지붕에서 보는 형식이다. 팔작지붕은 우진각지붕의 세모꼴 측면에 다시 여덟 팔(八)자의 모양을 덧붙여 마치 부챗살이 퍼지는 듯한 형상이 되었다. 경복궁 근정전을 비로한 조선시대 대부분의 건축과 부잣집 기와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었다. 화려한 집을 지을 때면 팔작지붕이 어울리지만 거기에는 경건한 기품이 없다. 단순한 것 같지만 맞배지붕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살아난다. 팔작지붕이 한창 유행한 조선시대에도 종실의 제사장인 종묘, 공자님 사당인 대성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처럼 고려풍이 남아 있는 초기 사찰 등은 모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100~101쪽)
 

 
절마당과 관음전 안에는 중생들의 소원을 적은 연등이 즐비했고, 대웅전 뒷산엔 아름드리 고목이 장관이었다.

    
  

  
내가 수덕사에 가보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바로 이 책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때문이었다. 예산에 도착해 제일 먼저 추사 고택을 들렀고, '도시락 폭탄'을 던졌던 윤봉길 의사의 사적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 백제 부흥 운동의 중심지였던 임존성 등은 못 가도 일엽 스님의 수덕사 견성암과 고암 이응로 화백이 머물렀던 수덕여관은 꼭 가보고 싶었다.    

시인이자 수필가였던 그녀는 출가한 뒤에는 "글 또한 망상의 근원이 된다"며 절필했다. 그러다가 1962년 <청춘을 불사르고>를 출간했는데, 그것은 견성암을 짓는 불사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였다. 서른 해 세월을 산문 밖 출입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엽의 이름은 원주다. 일엽은 춘원 이광수가 지어준 필명이다. 김원주는 1896년 6월, 평남 용강군 삼화면 덕동리에서 아버지 김용겸 목사와 어머니 이마대 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진취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 딸만은 바리바리 싣고 가서 종 노릇 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5대 독자의 맏딸인 김원주를 교육시켰다. 덕분에 가난한 살림에도 이화학당을 다녔다. 그러나 열두 살 때 어린 동생의 죽음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연이어 세 동생을 잃고 중학 졸업 무렵에는 아버지마저 여의게 되니, 그녀의 표현대로 그림자 동무 하나만 남게 되었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들이 김일엽이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을 듯... 어린 나이에 직면한 삶과 죽음의 문제는 생과 사의 문제에 천착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223쪽)     

일엽스님은 세상에서 유명했던 사람이지만, 자비하고 인자하며 솔직해서 속에 담아 두는 것이 없었고, 산문 밖 출입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삼십 년을 입승-선방에서 죽비를 잡는 스님-으로 법력과 덕이 있으며, 공부 경력과 대중에 대한 지도력이 있어 공부가 어느 정도 됐는지 가늠도 해 주어야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엽스님이 머물렀던 '견성암'에는 정작 가보지 못했다. 수덕사 대웅전을 나와 경사진 비탈길을 오르면 되는데, 한 친구는 점심을 제대로 안 먹어서 배고프다고 난리고 한 친구는 전날의 음주로 다리가 풀려서 더 이상 못 간다고 엄살을 떨어 내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5분 거리니까 나혼자 갔다 와도 됐는데 아쉽다.ㅜㅜ 

 

수덕여관은 나혜석이 김일엽을 찾아왔다가 묵은 곳이다. 나혜석과 김일엽은 이십대에 서울에서 <신여자>를 함께 발간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던 친구이자 동지였다. 그녀들이 이곳에서 만났을 때는 세상의 뜨거운 관심에서 벗어나 수행자와 예술가로 새로운 삶을 열어가던 시점이었다. 같은 해에 태어나 도쿄와 서울에서 공부하고 활동했던 시대를 앞서간 그녀들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이응로 화백은 나혜석이 수덕여관에 머물던 시절 자주 찾아와 친하게 지냈고, 1944년 나혜석이 이곳을 떠날 무렵 이 여관을 사서 부인 박귀희 여사와 함께 운영하다가 파리로 떠났다. 박귀희 여사는 혼자 수덕여관을 경영하며 지내다가, 전남편이 동백림 사건으로 잡혀가자 옥바라지를 하고 이 곳에서 요양까지 시켰다. 몸을 추스린 이응로 화백은 다시 파리로 떠났다. 이응로 화백이 파리로 떠날 때 이미 박귀희 여사와 이혼한 사이였고, 박귀희 여사가 죽고 수덕여관은 주인이 바뀌었고. 이응로 화백이 묵었던 방은 표찰이 붙어 있다. 고암 선생이 쓰시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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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4-30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견성암(여승당), 여당당이 시작된 곳인가요?
^^
열정 순오기님, 좋은데 다녀오셔서 그런가요 상큼이 순오기님으로 대변신,
^ ^ 변신 기념 클릭 클릭, 클릭, 하고 갑니당~ 쿨럭 클릭 클릭~

순오기 2011-05-02 18:45   좋아요 0 | URL
견성암은 다음에 기회가 오면 가 봐야지요~~
상큼한 변신에 클릭 클릭으로 답하셨군요.ㅋㅋ

마녀고양이 2011-05-0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행 못 가고
언니가 대신 눈구경 시켜주시네요. 무지하게 부러워요.
저는 지독한 목감기가 또(!) 걸려서 지금 끙끙 앓는 중이거든요. 널려진 일은 또 왜이리 많은지!

아........ 여행가고 싶다. 저렇게 조용한 장소로 훌쩍 떠나고 싶다 라고 중얼중얼.

그런데, 옛 편지 좋은데여? 1:3 데이트라니, 언니, 억만번 부럽고,
아름다운 인용구에 추천 억만번............ ^^

순오기 2011-05-02 18:46   좋아요 0 | URL
너무 피곤하면 감기가 동무하자고 놀러오지요~~ 휴식도 취하면서 공부하세요.^^
1대 3이었다가 밤에는 한 친구가 더 와서 1대 4의 데이트였어요.ㅋㅋ
 
예산 추사 백송을 찾아서~

한승원의 소설 <추사>를 읽지 못했지만, 4월 9일, 예산 추사고택을 다녀왔다. 
우리가 익히 아는 추사에 대해 알아보면...

추사 김정희는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부친 김노경씨와 모친 기계유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에게 입양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박제가의 눈에 띄어 학예로 대성할 것을 예언, 수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24세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819년 34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충청우도 암행어사, 예조참의, 성균과 대사성, 병조참판을 지내다가, 1840년 55세에 당쟁에 몰려 9년간 제주도에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44년 59세에 당시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국보 제 180호)는 세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추사 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이며,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께서 1700년대 중반에 건립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으로, 추사가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다.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영조가 하사한 저택으로 53칸이었으나 현재는 49칸 정도 된다고 한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문간채와 사랑채, 바로 뒤에 안채와 사당채가 있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ㄱ자형 사랑채가 나온다.  사랑채 댓돌 앞에 세워진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 용도로 쓰였고, 石年이라는 글씨는 추사의 아들인 상우가 추사체로 쓴 것을 새겼다고 한다. 돌기둥 옆에 모란이 있었지만 아직 꽃을 피우기엔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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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에서 본 전경, 사랑채와 안채가 보이고~~~ 저분은 해설사님이다.^^

  

아래는 사랑채 뒷모습, 굴뚝과 툇마루가 보인다.

조선시대는 사랑채와 안채가 엄격히 구분되었는데, 추사 고택은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지 않아 친근감을 주었다. 사랑채나 안채 기둥에 추사의 글씨를 하얀 판에 써 놓아서 고택의 운치를 망가뜨리긴 하는데, 추사의 글씨와 깊은 뜻을 헤아려 보는 것은 좋았다.  

사랑채에 걸린 세한도 

  

사랑채 바로 뒤에 붙은 안채는 6칸의 대청과 2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안방 및 건넌방의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충 ㅁ자형 집이다.  마당이 그리 넓지 않아서 전체를 다 담기엔 무리였다.

   

아래 사진은 뒤에서 본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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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의 모임이라니,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될 말씀이다.

     

무량수(無量壽)는 '한 없는 수명'이란 뜻으로 불교의 윤회설에 입각하여 쓴 글이다. 부처님의 법신은 삼세 고금을 통하여 항상 존재하여 멸하지 않으므로, 그 수명이 실로 무량하여 한이 없기 때문에 무량수라 하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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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문으로 내려와서 맨 앞의 사랑채부터 ㅁ자형 안채와 그 뒤의 사당채까지 나란히 나란히~

 

담장 아래 제비꽃과 올망졸망한 꽃망울도 정겹다.

 
 
 

솟을 대문의 장식~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번개불에 콩 볶듯 후다닥~~ㅜㅜ
고택 옆에 추사기념관도 있고 둘러볼 게 많은데... 많이 아쉽다. 천천히 여유있게 돌아보려면 한 번 더 가야 될.... 

추사 김정희 묘와 주변의 월성위 묘와 화순옹주 정려문, 백송공원 사진은 다음 페이퍼를 기약하고~~~  
보너스를 하나 추가하자면~~~~^^  


추사고택 안채에 붙은 무량수(無量壽)와 같은 서체를 해남 대흥사에 가도 볼 수 있다. 본래 대흥사 본전에는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이란 현판을 걸었는데,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가면서 그것도 글씨냐고 책망하며 그걸 떼어내고 자신이 쓴 <무량수각> 현판을 걸게 했단다. 그리고 9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다시 대흥사에 들러 

 


"옛날 내가 귀양길에 떼내라고 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이 지금 어디 있나? 있거든 내 글씨를 떼고 그것을 다시 달아주게.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89쪽) 

라고 했다니, 귀양살이 9년의 세월에 겸손함을 배운게 아닐까?
벼와 사람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의 의미가 아닐런지... ^^ 

그래서 대흥사에 '대웅보전' 현판이 걸리고, 추사가 쓴 '무량수각'은 그 옆 전각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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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from 엄마는 독서중 2011-04-30 09:05 
    우리가 어느새 저마다 귀밑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갑자가 날아든 초등학교동창회 초대장이 우리를 고향으로 불렀다. 배운 자도 되고 못 배운 자도 되고, 가진 자도 되고 못 가진 자도 되고, 짓밟기도 하고 짓밟히기도 하는 사이에 속절없이 흘려보낸 세월을 무슨 사나운 꿈처럼이나 여기며 우리는 거기서 퍼뜩 깨어난 듯 고향으로 달려갔다. 어느새 쉰을 바라보게 된 나이도 허세 같은 여유를 주어 더 많은 우리를 모이게 했다. (아가 10쪽)이문열의
 
 
2011-04-13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4-14 00:24   좋아요 0 | URL
잘 하셨어요~ ^^

pjy 2011-04-1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사선생님도 나이먹고 철드신거였구나^^; 헤헤헤 나이먹어서라도 철이들면 다행입니다요~

순오기 2011-04-14 00:25   좋아요 0 | URL
모두 나이 들어서라도 철들면 좋은데~~~ ^^

잘잘라 2011-04-13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공매화주일산, 제철이네요.
일장수죽반상서, 더 바랄것 없구요.

대팽두부과강채, 흐믓합니다. 생강은 좀 의외지만..
고회부처아녀손, 담아갑니다. 마음에..

순오기 2011-04-14 00:25   좋아요 0 | URL
참 좋은 말씀이죠~~ 대팽두부과강채에서 생강을 빼시려고?ㅋㅋ

마노아 2011-04-1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택과 꽃구경, 그리고 추사의 겸손까지 더불어 배웁니다. 의미있는 봄날의 나들이였어요.^^

순오기 2011-04-14 00:26   좋아요 0 | URL
봄나들이는 어디라도 좋겠지요.^^

무스탕 2011-04-14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량수의 무(無)자를 참 기묘하게 쓰셨네요. 천(天)자로 읽어서 하늘의 수명이라 해석해도 좋겠어요.
저 대흥사에 갔었는데 왜 저 현판을 본 기억이 없을까요? ㅡ.ㅜ 다음에 가게되면 꼭 눈여겨 볼게요 ^^

순오기 2011-04-15 00:36   좋아요 0 | URL
없을 무자의 약자를 추사체로는 그렇게 쓰나 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거 아닐까요?ㅋㅋ
대흥사 가기 전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그 부분을 다시 읽었으니 살펴 봤지요.^^

양철나무꾼 2011-04-1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세한도의 지혜를 님의 글에서도 엿보게 되는걸요~

봄은 무르익고, 봄꽃은 만발하고...저도 봄나들이 가고 싶어요~^^

순오기 2011-04-15 00:37   좋아요 0 | URL
세한도의 지혜라 하심은~~~~~ 과찬이네요.
어디로든 봄나들이 다녀오세요.^^

찌찌 2011-04-15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본 세한도는 국립 제주박물관에 있죠? 유정이 입학기념으로 제주 여행때 본 것 같아요. 제주에는 별다른(?)유물이 없어서 더 기억에 남긴한데 요즘 저의 기억력도 불혹을 넘은지라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을때가 많답니다.ㅠㅠ

순오기 2011-04-16 01:56   좋아요 0 | URL
세한본 진본은 제주박물관에 있군요~~~~ 입학기념 제주여행이라니 멋지네요!
나이 들수록 자기 기억력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죠.ㅋㅋ

꿈꾸는섬 2011-04-2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눈이 호강했어요.^^

순오기 2011-04-24 18:39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