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는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내가 답사를 다니기 시작한지 30년이 되도록 한해도 거르지 않고 다녀온 남도답사의 필수처다. 그러나 선암사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딱 집어 말하기는 참으로 힘들다. 따지고 보면 미술사적 유적으로 뛰어난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관이 빼어난 것도 아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나고, 가면 마음이 마냥 편해지는 절집이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 6, 147~148쪽)
유홍준 선생님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일편단심 선암사, 그 사랑과 매력을 쏟아놓았지만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도 해마다 선암사에는 꼭 간다고 하셨다. 나는 광주살이 20년이 넘도록 선암사엔 가보지 못했는데, 올 가을엔 뭔 복인지 세 번이나 가게 생겼다. 이미 10월 22일에 한 번 다녀왔고, 11월 13일과 19일에 또 가야 한다. 내가 소속된 독서회의 가을 여행을 모두 선암사를 잡았기 때문이다. 10월과 11월 토론도서는 당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이다.
우리 아이들 셋 모두 졸업한 중학교, 하지만 엄마는 독서회를 졸업하지 않아 가을 여행에 동행했다.
답사를 주관하지 않아도 되는 부담없는 일정이라 더욱 좋았다. ^^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손꼽히는 선암사 진입로~~~~ 주말 산행에 나선 사람들은 공기의 다름을 느끼며 느긋하게 올랐다.
간밤에 내린 가을비로 땅은 적당한 습기를 머금어 걷기에도 좋았다.
붉은 단풍이 산사를 휘감지는 않았지만, 계곡의 푸름 속에 혼자 얼굴 붉힌 단풍이 반가웠다.
우리 답사 자료집 내용을 살짝 옮기면...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佛閣)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주요문화재로는 보물 제395호인 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대웅전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선암사는 태고종 유일의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써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종합수도도량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클릭하면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다.
선암사에서 해설사님의 안내를 받았다. 순천군청에 미리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을 읽으면 선암사에 대해 알 수 있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 책에 나오지 않은 것도 알게 된다.
선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게 '뒷간'인데, 왜 뒷간이 유명하게 되었는지 그 내력을 설명해주셨다.
오래전에 옛이야기 책에서 읽은 내용을 해설사님의 설명으로 들으니 더욱 실감이 났다.
전국의 스님들이 모여 거짓말대회를 했는데, 제일 대단한 거짓말을 한 순서대로 1.2.3 순위를 매겼단다.
예산 수덕사 스님은 신도가 많아 법회가 어찌나 많은지 지금도 열리는 중이고...
구례 화엄사 스님은 솥단지가 엄청나게 커서 지금도 밥을 푸고 있는 중이고...
순천 선암사 스님은 뒷간이 바닥이 깊어서 아침에 눈 똥 떨어지는 소리가 여태 들리지 않는대나~~ ㅋㅋㅋ
그새 일주일이 지났다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날 열심히 메모하던 회원에게 전화로 알아봐서 수정했다.^^
선암사 오르는 길에 우뚝 솟은 나무~
선암사 진입로 돌기둥에 8.15 해방 후 조선불교 초대 교정을 지낸 박한영 스님이 지은 게송 댓구를 새겨 놓았다.
유홍준 선생님의 해설에 의하면 이런 뜻이다.
放出曹磎 一派淸 방출조계 일파청 조계(육조혜능)스님이 나타나자 온 물결이 맑게 되었고
劈開南岳 千峰秀 벽개남악 천봉수 남악(회양)스님이 등장하자 일천 봉우리가 빼어나게 되었네. (189쪽)
위 글은 돌기둥 뒷면 사찰 쪽에서 보이는 글이고, 아래는 돌기둥 앞면 진입로 쪽에서 보이는 글귀로 사찰의 이름이다.
선암사로 들어서면 널직하게 자리한 승탑밭이 나온다. 선암사에서 첫번째로 만나는 문화재다.
우리가 흔히 부도라고 부르던 것, 지금은 학계에서 용어를 승탑으로 통일해 가고 있다고...
승탑이란 고승의 사리탑이다. 이 절에 주석했던 스님이 열반에 들면 다비를 하고 수습한 사리를 모신 것으로, 승탑은 산라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말여초의 승탑은 대부분 팔각당 형식으로 경내 뒤쪽에 사당처럼 모셔져 있다. 선암사에도 고려시대에 제작된 팔각당 승탑으로 무우전 승탑, 대각암 승탑, 선조암터 승탑 등 모두 3기가 있다. (180쪽)
해설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앞 줄 왼쪽에서 세번째 비스듬히 세워진 승탑은 선암사를 위해 평생을 바친 상월(?)스님이 죽어서도 선암사를 지키겠다며 거처했던 대승암을 바라보게 하라 유언해서 그렇게 세웠다고 한다.
세번째 승탑은 다른 각도로 세워진 게 확연히 보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에 실린 사진은 내가 찍은 것과 반대쪽에서 찍은 듯하다.
선암사의 제1경이라 불리는 승선교의 무지개 다리와 그 너머로 보이는 강선루까지~
유홍준 선생님은 승선교 위로 사람들이 많이 다녀야 튼튼한 승선교를 보존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밟고 다녀야 흙이 다져져서 해빙기에도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던가... 하지만 계곡 옆으로 넓은 길을 내서 굳이 승선교를 건너야 했던 ㄷ자 길이 유명무실해져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선암사 가시는 분들~ 꼭 승선교로 걸어가세요!!
무지개 다리 중심부엔 멋지게 조각한 용머리가 있어 중심추 역할을 해서 다리의 균형이 잘 맞는다고 한다.
보성 벌교의 무지개 다리도 선암사 스님들이 놓았다고 한다.
승선교에는 전설이 있는데, 숙종 24년(1698년) 호암대사가관음보살 뵙기를 기원하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였다.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홀연듯 자신을 구해준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승선교라고....
책에 나온 사진처럼 승선교 너머로 강선루가 보이게 찍고 싶었지만, 계곡으로 내려가야 가능한 일이라 그냥 강선루만 찍었다.
그래도 강선루 돌기둥 하나가 계곡에 빠져 있는 것은 잘 보인다.^^
강선루를 들어서는 앞모습과 강선루를 지나쳐서 찍은 뒷모습~~
강선루를 지나면 삼인당이 나온다. 선암사 동쪽 기슭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울물을 모아 채우는 연못으로, 여름 장마철에 큰물이 오면 일단 여기에 가두었다 계곡으로 흘려보내 홍수를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데, 가운데 섬이 있어 연못이 더 커보인다고...
삼인당을 지나면 송광사와 선암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길이 송광사 길인데 여기서 걸으면 약 4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19일 일정은 송광사까지 가볼 예정이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 오르막을 오르면 바로 선암사가 나온다.
우리 중학생들이 관심을 보였던 고목, 다들 핸드폰을 치켜들고 인증샷을 남기는 모습~
드디어 선암사 일주문이다. 보통 일반적인 사찰 일주문과 달리 두 줄로 써 있다.
조계산 선암사
또 다른 특징은,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의 호위를 받기 때문에 불법의 수호신 사천왕이 모셔진 천왕문도 없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범종루가 나온다.
누각 아래에는 기념품 판매대가 있어 좀 심란스럽고, 위에는 범종과 법고, 운판과 목어가 있다.
불사중이라 조용한 산사의 맛을 느끼기엔 아쉬움이 많다.
대웅전 현판에는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세도정치의 극치를 확인할 수 있다.
보이나요? 순조의 장인이었던 안동김씨 김조순의 이름이~~~~ ㅠㅠ
대웅전 옆에 지장전이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10왕과 더불어 애쓴다고....
무릎 위 장부에 뭔가를 기록하는 이가 염라대왕이다.
선암사는 선암매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수령 600년이 넘는 토종 홍매화를 비롯 청매와 백매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선암사를 보려면 봄에 가봐야 되겠다.
무우전 담장길엔 홍매가 피고, 그 뒤편엔 백매가 핀다던가...-
전각이 많아 다 돌아보지 못했고, 뭘 봤는지도 헷갈린다. 가기 전에 답사기를 한 번 더 꼼꼼히 짚었으면, 달마전과 칠전선원의 4단 석조를 봤을텐데~~~ 다녀와서 책을 다시 읽고 안내도를 확인하니 비로소 동선이 파악되고 다음에는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감이 잡힌다.
무우전 툇마루에 가만히 앉아 선암사를 감싸고 있는 조계산의 느릿한 능선을 넋놓고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선암사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196쪽)
유홍준 선생님은 답사기에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무우전에 스님의 허락을 얻고 들어갔다고 자랑(^^)하셨지만, 나는 유홍준 선생님이 부럽고 배아프지 않다.
왜냐면 나도 13일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무우전에 들어가 보는 것을 물론이고, 안내와 해설까지 받게 됐으니까!
어떻게???? 궁금하면 접힌 부분을 클릭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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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에서 점심공양 할 때, 마침 내 옆자리에 스님이 앉으셨다.
붙임성 좋은 순오기, 이런 절호의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ㅋㅋ
조심스럽게 유홍준 선생님 답사기 이야기를 하면서, 혹시 13일에 또 오는데 무우전에 들어가 볼 수 있는지 여쭈었더니....
13일에 몇 명이 오는지 물으셨고, 엄마들과 선생님으로 15~20명 정도라고 했더니 그 정도면 안내해줄 수 있다고 했다.
운 좋게도 스님은 무우전에 기거하는 교무스님이었다. 그날 종무소에 와서 교무스님인 *해 스님을 찾으라고 하셨다.
광주 *광고 학부모독서회라고 했더니, 선암사 주지스님이 우리학교의 재단이사라면서 특별히 잘해줘야겠다고 하셨다.
야호~~ 난, 정말 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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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후사가 없어 선암사 눌암대사에게 100일 기도를 부탁하여 순조를 얻었다고 한다.
100일 기도를 드렸던 산신각, 그 정면에 안치된 불화는 하체가 물고기라고 했던가, 가물거린다.ㅜㅜ
후에 순조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대복전이란 친필 현판을 하사하였다.
대복전 현판, 큰 대 자 위에 어필(御筆)라고 써 있다.
정호승 시인이 노래한 선암사, 해우소와 소나무를 돌아보기 전에 시를 읊어보는 건 기본!^^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수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해우소 앞의 소나무~
한 줄기에서 뻗어나와 한가지는 하늘로 솟아 부처님을 떠받드는 연꽃처럼 다섯가지를 벌리고 서 있고,
한가지는 땅과 나란히 누워 몸을 낮추는 하심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어, 와송으로도 불린다.
학생들은 코를 찌르는 냄새에도 코를 싸잡고 문제의 해우소에 들어갔는데, 정말 냄새가 장난 아니었다.
선암사에서 제일 유명한 해우소와 소나무 앞에서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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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운이 좋았던 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영산재-석가모니 부처님때 영취산에서 행산 설법회상인 영산회상을 재현하는 법회이며,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를 볼 수 있었다. 대웅전 앞에 탱화를 걸고, 전날 비가 내렸기 때문인지 진행중인 불사 때문인지 휘장을 쳐 놓아서 사진은 별로지만, 스님들의 바라춤도 보기 힘든 영산재를 온전히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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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에 실린 사진처럼 대웅전과 삼층석탑이 나오도록 전면에서 찍을 수는 없어서
요렇게 삼층석탑을 따로 따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선암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마주보는 자리에 만세루가 있고, 그 앞이 대웅전이다.
만세루 뒤편 위쪽에 장중한 예서체의 '육조고사' 현판은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의 글씨로, 그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다.
영산재를 지켜보다 12시가 되어 점심공양을 하러 갔다.
스님들 먼저 드시고 일반인은 12시부터 먹을 수 있는데, 선암사에 온 누구라도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40명이나 되는 단체라 사전에 연락을 드리고, 식재료비를 생각해 1인당 3천원씩 셈했다.
길게 늘어선 줄, 벗어 놓은 신발만 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암사의 점심공양에 동참하는지 짐작이 된다.
배식 차례를 기다리면서 주방에 계신 스님께 여쭈었더니, 평일은 200명 주말엔 4~500명 분량의 음식을 준비한다고 했다.
사진엔 영산재 음식을 준비하는 보살님이 찍혔지만, 스님 네 분이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죽어난다'고 하셨다.
감사의 마음으로 한 알의 밥알도 남기지 않고 먹은 후엔, 각자 식판을 들고 나가 깨끗이 씻어 마른 수건으로 닦았다.
학생들은 줄서서 기다렸다 식판을 씻은 일이 신선한 충격이었는지, 돌아오는 버스에서 후기에 설거지 얘기를 많이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라서 그랬는지 얌체라서 그랬는지 물 속에 식판을 담가두고 간 사람도 꽤 있었다.
스님들이 음식 준비만으로도 벅찬데, 설거지까지 하게 하다니~~ 점심 공양하신 분들은 꼭 설거지까지 끝내시길...
점심공양까지 끝내고 돌아 나오는 길~~~
선암사에 가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600원
단체 30인 이상이면 어른 1,3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500원이고, 순천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11월 13일과 19일에는 못 봤던 곳을 꼭 챙겨서 보고 '늦가을, 선암사' 페이퍼를 써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