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선생님과 함께 한 부여 답사
'유홍준 선생과 함께하는 부여 답사'에 당첨되고 바로 책을 주문해 '당일배송'으로 받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까 예습은 필수, 일단 답사지인 부여 문화권만 읽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흥미로웠지만, 내고향 충청도 말의 오리지날 버전이 곳곳에 나와 깔깔 대며 읽었다. 충청도 사람이 느린 것은 동작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어리숙해 보이는 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기질을 모르는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이다. 유홍준 선생님은 부여 정착 5년 만에, 충청도 사람들의 말투와 기질을 제대로 이해한 듯하다.^^
뒤에서 빵빵거리는 운전자에게 다가가
"그러케 바쁘믄 어저께 오지 그랬시유!" (384쪽)
라는 대사는 정말 압권이다.ㅋㅋㅋ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매력을 알려주는 유홍준 선생님의 달변을 듣는 책읽기는 즐거웠고, 시리즈를 모두 소장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는 내겐 교과서이고 참고서이다. 독서회 문학기행을 준비하거나 테마여행에 앞서 꼭꼭 챙겨보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5월 28일 토요일, 광주에서 서울 현대백화점 주차장까지 가려면 새벽 2시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 3시 버스를 타면 시간이 딱 맞는데, 유감스럽게 새벽 2시 이후 4시까지는 운행되는 게 없었다. 더구나 광주에서 부여로 바로 가는 건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이용할 수 없었다. 새벽 1시 30분 집을 나서는데, 거나하게 취한 남편은 그 시간에 귀가하면서 지금 가는 거냐고... 나 같으면 안 간다는 멘트를 날려주셨다. 하아~ 새벽 3시에 독도 체험학습도 갔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라는 막내의 호응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드디어 집합 장소에 도착해 창비 스탭들을 찾다가 마노아님을 만났다. 신새벽에 마노아님과 동행인 '야곱'까지 알현하는 행운은 여행길의 즐거움을 더했다. 6시 50분 우리를 찾아 온 창비 스탭을 따라 버스에 오르니 다른 분들은 이미 탑승해 있었다. 운 좋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전석 뒤 세번째 자리가 비어 있었다. 10여년의 독서회 문학기행과 답사에서 얻은 결론은 세번째 자리가 최고의 명당이라는 것. 왜냐면 주최측에서 마이크 잡고 안내할 때 파편이 튈 위험도 없고, 눈 맞추고 교감하기에도 딱 좋은 자리다. 안내 중에 유홍준 선생님도 다년간의 답사에서 앞자리부터 '춘하추동'으로 구분해 참가비를 다르게 받았다고 하셨으니 증명된 셈이다.^^
내 인생 최고의 답사를 선사 할 유홍준 선생님은 갈색 신사로 차에 오르셨다. 와우~ 사진으로 친숙한 선생님은 생각보다 마르고 웃으면 다정다감해 보였다. 스텝들을 소개하고 곧바로 줄줄 풀어내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참여정부 인사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정경유착 극복,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한 점을 높게 평가하셨다. 현재 5도 2촌(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시골에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노대통령은 될수록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나 섬으로 가면 더 좋겠다고 하셨다지만... 명사들이 지방에 정착해야 지역발전에 일조한다는 건, 유홍준 선생님이나 감성마을의 이외수 작가 경우를 봐도 맞는 거 같다.
우리를 편안하게 데려다 준 승산고속버스. 2호차 노란 이름표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을 꽂아 둔 센스라니!^^
유홍준 선생님 20년 답사의 동반자인 마기사님도 살짝 흐릿하게나마 보인다.
우리가 돌아보게 될 부여에 대한 안내와 20년 답사의 에피소드 보따리를 푼 선생님의 달변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흘러, 20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첨된 알라딘과 교보에서 온 동행자들을 소개할 시간이 없었다. 대표로 가장 멀리 선 온 부산아가씨와 광주댁 순오기만, 이벤트 당첨의 행운을 가져온 구구절절한 사연과 더불어 본인 소개를 잠시 했었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마음대로 상상하시길~^^
선생님 손에 든 CD는 손수 선곡한 답사 음악으로 12집까지 만들었다는데, 유독 즐겨 들었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에 젋은 동행자들이 진저리를 쳤단다. 답사 경력 10년 20년이 지나 그들의 나이가 마흔이 되었을 때에야, 정말 좋은 노래라는 걸 알아주었다던가~^^ 음악도 감성이 통하고 공감할 나이가 돼야 그 심오한 맛을 아는 법이다.
부여에 도착할 때까지 성악과 오케스트라 연주 및 팝과 가요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아름다운 음악에 취했다. 특히 선생님이 제일 좋아한다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마이클 볼튼이, 보스니아 어린이를 위한 자선음악회에서 부른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실황녹음은 전율이 일 정도로 황홀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잠시 백제 별궁 연못인 궁남지에 들렀다. 선화공주와의 사랑을 노래한 서동요 전설이 깃든 곳으로, 삼국사기에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 이십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 섬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단다. 부여군수가 유홍준 선생님의 휴휴당을 반짝 들어다 궁남지에 놓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바로 그 궁남지다.
때가 일러 연꽃은 안 피고 수련만 간간이 피어 있었다. 우리 모녀는 유홍준 선생님 설명을 안 듣고 자유롭게 궁남지를 돌아보다가 단체촬영 하늘 걸 뒤늦게 발견, 소리치며 달려가 인증샷을 남겼다. 사진 찍은 분이 어디에 올려둔다고 했는데, 창비나 부여문화원 사이트를 가봐도 사진이 없다. 으흐윽~ 내 카메라에도 담았어야 했는데... ㅜㅜ
정림사지 주차장에 도착해 다른 차에 탑승하기 전, 선생님께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광주로 돌아갈 때 논산까지 가는 길을 여쭈었더니, 부산아가씨와 광주는 일행 중에 같은 방향 분이 있으면 연계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하셨다.
부여 정림사지 주차장에서 부여문화원 답사팀과 강남구청 답사팀을 만나, 선생님은 다른 차에 탑승하셨다. 우리 2호차는 유홍준 선생님 답사 모임에서 20년째 말뚝총무라는 눌와의 김효형 대표님이 마이크를 잡았는데, 유홍준 선생님이 한국답사 1인자라면, 당신은 2인자로 청춘을 버스에서 보냈단다. 유홍준 선생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출판사 눌와(낮은 오두막)를 시작했지만, '유홍준의 서양 미술사'를 출판하고 역시 선생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단다.^^
눌와의 대표도서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박상진 <궁궐의 우리나무>
승효상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문화재청<한국의 문화유산>
유홍준 선생님은 답사를 다녀도 크고 번듯한 식당보다는 작은 식당에 가고, 원조집보다는 그 옆집을 이용한다고.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때문에 유명해진 작은 마을에 쑥 들어간 곳에 00식당이 있었는데, 돈을 많이 벌었는지 중심가로 나와 식당을 크게 연 후에는 그 곳에 가지 않고 또 다시 작은 식당을 찾아서 다녔단다. 작은 식당은 소박한 밥상이지만 정성을 다해 준비해 좋다고... 사전답사를 다니면서 말뚝 총무가 식당을 예약하고 먼저 친했지면, 나중에 간 유홍준 선생님이 자신보다 더 친하고 먼저 아는 것처럼 하신다는 고발은 애교스러웠다.^^
첫 목적지는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3층 석탑, 정겨운 고향 같은 풍경이 먼저 반긴다. 일행들 앞 왼쪽에 탑이 작게 보인다.
보물 제 184호 장하리 3층 석탑. 해발 25m의 야트막한 구릉이 동.북.남의 3면을 둘렀고, 탑은 트여진 서쪽을 향해 있다.
고려시대에 정림사 5층석탑을 본받아 세운 아주 앙증맞게 귀여운 석탑이다. 3층 몸돌의 가운데를 반만 깎은 것이 더욱 멋있어 보이게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 389쪽)
넓지 않은 지대석과 기단석 위에 모서리 기둥석과 면석을 각각 따로 갖춘 가구식 구조라고 한다.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본받았다는 양식적 동질성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맥없이 베낀 것이 아니라 은근히 미적 변주를 가해 자기만의 독특한 미감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결코 재탕이 아니라 경쾌한 변주이고 익살조차 느껴지는 일종의 패러디라는 생각이 들게 하며 이것이야말로 백제의 여운이라는 느낌을 준다." (38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림사지 탑을 먼저 보면 압도당해 장하리 탑의 매력과 가치가 시시해보이기 때문에 정림사지 탑보다 먼저 봐야 한단다.^^
해설하기 전, 일행이 당도할 때까지 개별 사진을 찍었는데, 선생님은 광주, 부산, 대구~ 먼데서 온 사람부터 우선권을 줬다.^^
마노아님과 마노아님의 '나의 야곱' 그리고 순오기와 막내의 이쁜척 인증샷~^^
장하리 탑 옆과 앞마을 풍경~ 집앞의 불두화: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불두화라고 부른다고. 불두화와 백당나무는 구별하겠는데, 솔직히 수국과 불두화는 뭐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장하리 탑을 보고 돌아 나오는 길, 도시인들의 눈을 반짝 뜨게 했던 이앙기로 모내는 풍경~ 하하, 대부분의 도시 촌사람들은 장하리 3층 탑보다 더 몰입하더라는... 우리 막내도 모내기 처음 봤다며 연신 핸드폰으로 찍어댔다. 어쩜 좋아~ 도시 촌넘(?^^)을!
두번째 답사지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대조사로 가는 길, 마을 풍경이 예뻐 저기에 친정이 있다면 좋겠다, 잠시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대조사는 파라솔 관음상과 꽃사슴 해탈이와 산딸나무로 기억된다. 5월 산하의 푸르른 신록은 안구정화에 좋았고, 산딸나무의 산뜻한 흰 꽃은 눈부심이 더했다. 넉 장의 하얀 꽃받침이 꽃처럼 피어난 산딸나무는 우리 동네에서도 종종 보는 나무라 더 반가웠다. 서양인들은 이 나무를 개나무(Dogwood)라고 부른다니 너무 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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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사에 오르기 전 우리는 유홍준 선생님의 해설에 집중했다. 창비에서 찍은 사진인데, 유홍준 선생님과 펼쳐 든 자료집 사이에 녹색옷 순오기가 보인다. 절묘한 위치에 있었군.ㅋㅋ(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대조사는 전설에 의하면, 고려때 한 노승이 바위 아래에서 수도하던 중 어느날 큰 새 한 마리가 바위 위에 앉은 것을 보고 깜박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어느새 바위가 석불로 변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 이름이 대조사(大鳥寺)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석조관음상은 정통 불상이 아니라 어딘지 토속적인 장승 같은 이미지에서 발전했다는 인상을 준다."(395쪽)
대조사 원통보전 뒤로 보이는 석불~
대조사 용화보전 옆으로 보이는 석불, 용화보전 안에 들어가 앉으면 앞 창으로 석불이 보인다기에 신을 벗고 들어갔다.
유홍준 선생님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좋게 앞문을 활짝 열기 위해 무등을 탔었다.^^ 앞 창으로 보이는 석불~
"석조보살상 옆 바위틈에서 자란 늠름한 소나무가 마치 파라솔처럼 머리 위로 뻗어 있다. 파라솔의 솔은 태양을 의미하는 솔(sol)과 소나무의 솔(松)의 의미까지 합쳐졌단다. 세월의 때를 입혀가며 자연과 인공을 결합시키는 마음은 이 땅의 문화가 만들어낸 가장 큰 미덕이다."(398쪽) 우리 문화에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문장이라 밑줄 좌악~ 그었다.^^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많이 닮았다는데, 높이가 10미터나 되는 바위 머리 위에 네모난 관을 쓰고 있는 보살상이다. 머리 위의 관은 이어 붙인 듯. 미륵은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불이고,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다.
와~ 해탈이다!!
대조사의 명물, 귀염둥이 꽃사슴 해탈이~ 마을에서 새끼 사슴이 태어나자 절에 시주해서, 스님이 우유병에 분유를 타서 키운 사슴이다. 세살이던 진돗개 복실이는 제집을 내어주고 밖에서 자며 지켜주었다고 한다. 주지스님 말씀에 의하면 된장을 좋아하는 녀석이 마을에 내려가 여러 집 장독대를 깨서 묶었다는데, 멀리서 온 팬들을 위해 풀어주었다. 모두들 해탈이의 출현이 반가워 연신 셔터를 눌렀는데, 녀석은 신경도 안 쓰고 저 하고픈 대로 다 하더라. 미끈한 몸매에 카리스마도 짱!!^^
해탈이와 주지스님은 너무 잘 어울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산딸나무 잎을 따 먹고 근처의 풀도 뜯어 먹었다.
책에는 해탈이의 출산이 오늘내일 한다고 써 있었는데, 새끼를 낳았다면 아기 사슴은 엄마랑 함께 살지 않는지... 엄마가 절집에 사니까 아기 사슴은 마을에서 아빠 사슴이랑 사는 걸까? 엄마랑 떨어져 산다면 엄마처럼 젖병에 탄 분유를 먹으며 사는지도 궁금하다. 그저 사람이든 짐승이든 제 부모 밑에서 크는 것이 최선의 길인데... 아, 복실이도 보고 싶었는데 못봤다.
잠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이 아쉬워 다시 뒤돌아 보게 되더라. 석불 앞에서 내려다 본 풍경~
점심 먹으러 가기 전 일정에 없던 보너스 답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녹간마을의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은행나무는 500년이 넘으면 측정하기가 어렵다는데, 이 은행나무는 천년 이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침 운 좋게도 은행나무 가지가 뻗어 장독대까지 늘어졌던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수복(82세) 할아버지가 오셔서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할아버지는 은행나무가 군노거수로 지정되고 천연기념물(320호)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수고를 하신 분이었다. 은행나무 아래 아무 곳이나 방석을 깔고 앉으면 하루 종일 그늘이 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람한 나무였다는데, 죽은 가지를 많이 잘라냈고 제 몸들 지탱하기도 어려워 받침대를 세워 보존하고 있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전국의 오래된 나무들이 죽었다고, 인간의 잘못을 질타하셨다. 이 나무도 죽어가는 것을 3년간 공들여서 살려냈다고 한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쌀 한 말씩 걷어서 은행나무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은 군에서 제사를 주관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뒤늦게 전 문화재청장을 알아보고 두분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러니까 은행나무를 보호수로 지정받기 위해 유홍준 청장 이전에 문화재청에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면서 모든 일을 마무리 짓는데 20년이 걸렸다고 하셨다.ㅜㅜ
우리 막내가 만지는 가지는 지금은 잘렸지만, 옛날에는 더 많이 뻗어나간 자리에 할아버지 집이 있었다고...
은행나무 보러 가는 길과 은행나무 곁에서 만났던 풀꽃들~
양파꽃도 처음 보는 우리 막내, 하얀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감자, 보랏빛 꽃이 예쁘다고 극찬한 자주달개비, 여고생 교복을 더 하얗게 표백한다는 설에 헹굴때 꽃즙을 짜넣었던 추억의 꽃! ^^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김수영의 시를 읊조리고 싶었던 풀밭. 민들레 홀씨를 후후~ 불고 싶었고, 거대한 은행나무 밑에 지천으로 떨어진 은행을 주워가는 아이들이 없다는 게 서러웠다.
금강산도 식후경~~~~ 신새벽부터 길었던 하루가 이제 점심시간이다.
유홍준 선생님 답사회 20년 단골집이고, 주말에 내려가면 아침밥을 대놓고 드셨다는 삼호식당이 아니고, 맞은편 은혜식당에서 진수성찬의 밥상을 받았다. 아~ 부침개를 비롯한 이름도 알 수 없는 산나물과 쫄깃쫄깃한 묵은 입맛을 북돋았고, 비빔밥에 청국장도 훌륭했다.
서양요리에는 샐러드만 있고 우리나라처럼 데치고 삶아서 무쳐 먹는 나물은 없단다. 오호~ 나물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니 몰랐다. 서양에서 독초로 분류하는 것도 삶아서 독을 빼내고 나물로 무쳐 먹은 조상들의 지혜는 정말 대단하다!!
맛나 보이나요?
자~ 이제 점심도 먹었으니, 잠시 쉬었다 무량사에서 정림사지까지 안내하렵니다!! ^^
2탄 무량사에서 성주사까지
3탄 반교마을에서 정림사지까지
아~ 지역경제를 위해 부여에서 사온 다래나물과 묵, 그리고 기름에 튀기지 않고 전통방법으로 구워낸 알곡(오곡)~~~~
도토리 묵이 아니고 뭐라고 했는데, 못 알아 들었다~ 강원도에서는 올갱이라고도 하는 논에서 나는 마름 비슷한 게 아닐까 짐작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여튼 표고가 흔한 고장이라 묵에 표고버섯도 잘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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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선생님이 무량사 앞에다 나물박물관을 세워 나물의 종류와 가치를 가르쳐주면서, 외산장에 내다파는 할머니들의 나물을 봄철 내내 사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부인에게 의기양양 얘기했더니...
"그러다 산나물 씨가 마르면 당신이 책임질 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