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한 부여 답사 1 ~ 장하리에서 대조사까지
"소비자가 문화를 만든다"
정림사지 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해 부여문화원 팀과 강남구청 팀 버스에 차례로 탔던 유홍준 선생님이, 대조사 답사 후에 다시 2호차에 타서 하신 말씀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이 아직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지 못하는 이유는 강남구 사람들이 책을 안 사기 때문이란다. 강남구청 팀에서 책을 사서 읽은 사람은 딱 둘, 선생님의 대학 선배 부부 뿐이었다고. 선생님의 설명에 끄덕이고 호응하며 소통과 교감이 활발했던 우리 2호차는 졸지에 우수반으로 명명되고, 선생님은 답사 내내 주로 2호차를 티고 이동하셨다.^^
문화재는 생산자가 만드는게 아니라 소비자가 만든다는 일례로, 우리 조상들이 훌륭한 도예 문화를 남겼어도 좋은 도자기를 사는 사람이 없으면 발전하지 못한다고 했다. 있는 사람들이 플라스틱 그릇을 쓰지 말고 고급의 한국 도자기를 소비해야 한다며, 덴마크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예를 들었다. 여왕이 한국에 와서 800여명을 초대했는데, 모두 '로얄 코페하겐' 식기로 대접했단다. 어떻게 그릇을 준비했는가 물었더니, 여왕이 한국에 올때 아예 싣고 왔다고. 자기나라의 식문화를 알리기 위해 접시까지 완벽하게 준비하는 걸 보고 감동했다고....
<한국인 전용복>에서 일본 메구로가조엔 식당을 리모델링 하면서 옻칠의 장인 전용복을 초청해 3년에 걸쳐 완벽하게 재현하는 걸 보고 놀랐다. '소비자가 문화를 만든다'는 말이 실감나는 현장이었다. 훌륭한 전시회를 열어도 찾아와서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독서편식을 지양하고 좋은 책을 사서 읽어야 인문학이 발전한다고 역설하셨다. 그 도시의 문화는 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는 박물관이 부족한 게 아니라 박물관을 찾아가는 문화가 부족하다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답사팀은 좋은 문화를 만드는 소비자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듯하다.
점심을 먹고 막간을 이용해, 창비에서 공수해 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현장 구매한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셨다. 아마도 강남구청 사람들은 거의 다 구입하지 않았을까 짐작되듯 사인 받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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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무량사가 있는 만수산을 뒤뜰 정원 쯤으로 생각하고 가까운 거리인 반교리에 집을 구했다고 하셨으니, 선생님의 정원을 산책하는 마음으로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만수산 무량사로 올라가 보자.^^
무량사는 부여가 내세우는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여섯 개의 보물이 있다. 산중 넓은 분지에 세운 무량사는 일년 내내 만수산의 풍경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세속을 털어버리고 들어서는 일주문 기둥은 원목을 생긴 그대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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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다리를 건너 올라가니 저만치 무량사 천왕문이 보인다. 천왕문의 사각 프레임에서 석탑과 석등, 극락전까지 일직선인 무량사의 가람배치를 담으라는 팁을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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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안으로 들어서니 보물 제 185호인 오층석탑, 보물 제 233호인 석등, 보물 제 356호인 극락전과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인다.
선생님의 추천 뷰 포인트 느티나무 앞에서 좀 더 가까이 찍은 일직선 가람배치의 석등, 석탑과 극락전이다. 위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의 큰 느티나무 가지가 하늘을 가렸지만, 사찰에선 보기 드문 2층의 극락전은 규모는 작지만 왕궁을 보는 것 같았다.
거대한 느티나무와 돌판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면 가장 멋지다는 포토포인트 안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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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선방인 우화궁(雨花宮)- 불교에서 전하기를 석가모니가 영산회에서 설법할 때 하늘에서 천년에 한번 핀다는 만다라꽃이 비오듯 내리고 천녀가 주악을 연주하며 공양을 했다고 한다.(419쪽)
우화궁의 기둥마다 달려 있는 주련 중에 진묵대사의 가장 큰 스케일의 시를 들어보자. 위 사진에 보이는 주련이다.
하늘은 이불, 땅은 요, 산은 베개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독
크게 취해 거연히 춤을 추고 싶어지는데
장삼자락이 곤륜산(히말라야)에 걸릴까 걱정이 되네.
아~ 하늘을 이불로 덮고 땅을 요로 삼아 산으로 베개를 한다니, 정말 통 큰 분이시다.^^
위에 보이는 주련 중에 세 개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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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무량사의 간판스타'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보물 제 1497호)을 모신 영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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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위쪽에 또 하나의 전각과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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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뒤편 개울가에 위치한 청한당은 선방으로도 쓰고 손님방으로도 사용하는데, 선생님 집인 휴휴당과 같은 세 칸의 아담한 집이다. 김시습의 호가 본래 청한자인데 슬쩍 바꾸어서 청한당이라 이름 붙였고, 한가할 한(閒)자를 뒤집어 써서 한가한 경지를 넘어 드러누운 형상으로 쓴 것으로 서예가의 유머가 넘친다.(420쪽)고 써 있다.
청한당 간판 위에 발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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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산 계곡 물이 청한당 앞으로 흐른다. 영산전 앞의 산딸나무는 아직 옮겨 심은 몸살을 앓는 중이다. 대조사에서 보았던 네 장의 흰색 꽃받침이 연두색이고 꽃받침 위의 꽃이 열매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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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극락전 앞의 작약과 불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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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극락전으로 다시 돌아 나와 김시습 사리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학생들을 데리고 답사 다닐 땐,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고 사잇길을 즐겨 이용했지만, 우리는 다시 정문으로 나와 입구에서 장사하는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역경제를 위해 특산물을 사는 건 필수였고, 인증샷은 1편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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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 김시습~ 왜 오세라 하는지 청한당 앞에서 선생님이 설명했고, 책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세종 17년(1435년)에 태어난 김시습은 세살부터 시를 지었고 천재라고 소문이 났다. 세종은 정말 신동인지 알아보라고 승지를 보냈고, 다섯 살 김시습을 무릎에 앉히고 "네 이름을 넣어 시구를 지을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김시습이 답하기를
"올 때는 강보에 싸인 김시습이지요(來時襁褓金時習)"
라고 하였다. 세종대왕은 이 대답을 전해 듣고 역시 천재라며, 직접 보고 싶으나 군주가 어린아이를 직접 시험한 예가 없다며, "재주를 함부로 드러나게 하지 말고 정성껏 키우라. 성장한 뒤 크게 쓰리라" 하며 비단도포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오세(五歲 )라는 별호를 얻었다.(422쪽) 자기 자식은 다 천재로 착각하는 오늘의 부모들은, 재주를 드러내지 말고 정성껏 키우라 일렀던 세종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될 것 같다.
사리탑 뒤에 소나무가 운치 있었고, 사리탑 앞에 오세 김시습의 묘라고 비석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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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은 <김시습전>에서 그를 평하길, "김시습은 호걸스럽고 재질이 영특하였으며 대범하고 솔직하였다. 또한 강직하여 남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했고 세태에 분개한 나머지 울분과 불평을 참지 못하여 세상과 어울려 살 수 없음을 스스로 알고 불가에 의탁하고 방랑을 일삼은 것"이라고 했다.(424쪽) 김시습의 일대기는 율곡 이이가 선조의 명을 받아 쓴 <김시습전>, 이문구의 소설 <매월당 김시습>. 심경호 교수의 <김시습 평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추천했다. 더불어 금오신화 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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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사리탑 곁의 야생화들~ 엉겅퀴, 애기똥풀, 달맞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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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화려한 폐사지 성주사터로 이동했다. 여기는 부여군이 아니라 보령시 미산면 성주리 73번지다.
위 사진은 임시저장했다 올려서 그런지 사진을 크게 보기가 안되지만, 여기부터 사진을 클릭하면 커집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성주사지 전면에서 바라본 뒷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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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왜 최고의 문장가인가를 잘 보여주는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국보 제 8호).
무염(태종무열왕의 8대손)은 신라 최고의 지성 중 한 분으로 그의 선법에 따른 제자가 2천명에 이르고, 문성왕, 헌안왕, 경문왕, 헌강왕, 전강왕, 진성여왕까지 여섯 왕이 법문을 들었다고 한다. 그가 죽자 진성여왕은 시호를 대낭혜, 사리탑을 백월보광이라 내리며 최치원에게 "그대를 국사로(國士)로 예우했으니 마땅히 국사(國師)의 비문을 지으라."고 명해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최치원이 글을 짓고 사촌동생 최인곤이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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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까만 대리석이지만 속은 흰빛이라 가는 정을 대고 글자를 새기면 글자가 하얗게 보인다. 비석을 이고 있는 돌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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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석탑(보물 제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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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쌍둥이 석탑인데, 두개는 보물로 지정되고 하나는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동탑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중앙 3층 석탑(보물 제 20호), 서3층 석탑(보물 제 47호) 동 3층 석탑(도유형문화재 제 26호),
내가 찍었지만 어떤 게 중앙이고 동.서 석탑인지 구별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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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몸돌에 강한 돋을새김으로 굳게 닫힌 대문을 장식했는데, 석탑의 몸돌이 하나의 집이며 이 공간에 사리를 장치하고 굳게 대문을 닫아 걸었다는 의미를 새긴 것이라 한다. (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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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도유형문화재 제 33호)
석계단(문화재자료 제140호),
석축 위 강당 가운데 계단의 소맷돌, 3단의 아래위는 좁고 가운뎃단은 넓게 하여 측면의 예쁜 곡선이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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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터 뒤쪽에서 바라본 앞산 모습~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 신앙 때문에 코가 완전히 닳아진 석불입상(문화재자료 제 373호) 시멘트로 얼굴과 몸통을 성형해 놓았는데, 황량한 벌판에 외로이 서 있는 석불입상을 보니 절로 마음이 짠하다.
성주사터를 지키고 있는 나무와 토끼풀과 소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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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선생님 집이 있는 반교마을부터 정림사 5층석탑은 페이퍼 3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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