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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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의 대표작가였던 박완서 작가의 타계 소식은 책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에게 너무도 슬픈 소식이었다. 그 시절, 작가의 책 <아주 오래된 농담>은 아직 읽혀지지 않은 책 책장에 꽂혀있었는데 타계 소식을 접한 뒤 서둘러 읽은 것은 박완서 작가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예의였던 거 같다. 저자의 작품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녀가 풀어놓는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쉽기만 했다. 헌데 너무도 반갑게도 그 아쉬움을 달래 줄 작가의 신작 <<세상에 예쁜 것>>이 출간되었다.

박완서 작가의 책상 서랍에서 어떤 산문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글을 잘 정리하여 모아놓은 묶음이 딸에 의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늙은이를 너무 부려먹는다니까" 하며 짜증을 내시다가도 글을 쓸 때에는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엄격성을 잃지 않았고 시대를 살아온 어른으로서 세상에 좋은 기운을 남겨주시려고 애썼던 노력과 사랑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본문 278p) 딸 호원숙님의 말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한 편 한 편 읽다보면 아직도 글에 대한 열정으로 글을 쓰시고 계실 것만 같은 여운이 느껴진다. 그러나 문득 느껴지는 커다란 공백에 가슴 한 켠이 시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예쁜 것>>은 작가가 살아온 날들의 에피소드를 그녀만의 감수성을 풀어낸 작품이다. [나는 왜 소설가인가]에서는 작가일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가정환경과 역사를 되돌아 보았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고, 전쟁으로 인해 빨갱이로 몰렸다가 반동으로 몰렸다가 하면서 온갖 수모와 박해를 당할 때는 언젠가는 저자들을 등장시켜 이 상황을 소설로 쓸 것 같은 예감, 마음에 섬광처럼 번득이는 게 있었기에 지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시골 출신이었던 자신이 서울의 비싼 학교에 다니면서 적응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수록했는데, 몇 해전 처음주니어에서 출간된 동화책 <나 어릴적에>를 통해 자신의 어린시절을 풀어내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설화가 풍부한 고장에서 태어나서 옛날이야기를 잘하는 가족과 이야기책을 많은 읽고 심심할 때마다 그것을 풀어내기를 즐긴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이야기가 지닌 위안과 치유의 능력에 대해 (본문 21p) 알게 되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여성문학의 대표작가가 되었고, <환각의 나비>처럼 여자들이 받아야했던 상처와 설움을 치유해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시간은 신이었을까]는 작가의 일상 속의 깨달음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남편이 세상을 뜨고 혼자된 슬픔을 잘 극복하지 못했던 자신이 시간에 의해서 고통이 순하게 치유된 것을 느끼게 되면서,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야말로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본문 80p)

표제작인 '세상에 예쁜 것'은 고통스럽던 병자의 얼굴이 잠든 아기의 발바닥을 보면서 은은한 미소를 띄우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기의 생명력은 임종의 자리에도 희망을 불어넣는(본문 84p) 형용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지갑이 없어 남영역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면서 지금 잃은 건 지갑도, 길도 아니라, 명함만한 주민증이나 카드에 불과한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누구일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하게 된 일이나, 묵은 사진첩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내 기억의 창고' 등에 관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나 스스로 자문하게 되었다. 일상 속에서 자아성찰을 이끌어내고 독자로 하여금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 저자가 그동안 우리에게 기꺼이 보여주었던 선물은 아니었나 싶다.

 

[세상을 지탱하는 힘]에서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외국에 비해 형편없는 우리의 기부 문화에 대해, 심한 흉년이나 수탈이 극에 달했던 식민지 말기, 6.25 등 극심하게 식량이 부족했을 때도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웃이 십시일반으로 가난한 이를 돌보았던 쌀 문화 덕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밥주걱을 쥔 여자들로부터 우러난 기부였음을 일깨운다. 목적이 봉사인지 권력인지 의심하게 되는 기관들에 대한 씁쓸한 환멸에 대한 뼈아픈 한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전원생활은 고요한가]는 지나친 과소비나 무분별한 개발 등을 접할 때마다 하늘 무서운 생각이 든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만한 내용일 게다.

만일 자연의 조화를 관장하는 어떤 큰 힘이 있어 인간의 독주와 오만에 분노하여 인간을 멸하고자 한다면, 인간의 지혜를 앞지르는 극미소한 세균을 퍼뜨리면 인간 세상은 간단하게 멸할 수 있지 않을까. (본문 158p)

고양이로 인해 평화롭기만한 건 아닌 전원생활의 푸념이 귀엽게(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느껴졌는데,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도 살짝 엿보았던 작가의 전원 생활의 이야기에서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함이 따뜻하게 전해졌다. 특히 K시인과 꽃이름때문에 옥신각신한 후에 신문 기사에서 그 꽃에 대해 써놓은 것을 보고 속이 다 시원하였다는 글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예전에도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적이 있지만 정말 귀여우신 부분이 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는 저자가 피천득, 박경리 선생님이나 손자 등 그리운 사람들에게 써 내려간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글 속에 그들을 그리워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뿍 담겨져있는데, 작가를 꿈꾸는 누군가는 박완서 작가를 그리워하면 이런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글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오롯히 작가였던 박완서님에 대한 독자의 그리움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총 5장으로 나뉘어진 <<세상에 예쁜 것>>은 편지, 질문에 대한 답, 독자와의 대담과 강연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위안이 되고, 좌절한 사람에게는 현재의 곤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절망한 사람에게는 꿈을, 심심한 사람에게는 남은 어떻게 사나 엿보는 재미를 주었으면 하는 게 작가의 바람(본문 69p)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그녀의 작품은 우리에게 늘 그러했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런지.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띄울 수 있었던 것은 아기의 생명력이었다는 앞선 이야기처럼 박완서 작가의 빈자리에 그녀의 신작 <<세상에 예쁜 것>>은 그 생명력은 아닐까.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그러기에 한 없이 반가우면서도 그녀의 빈자리가 더 한 없이 안타까워지는 <<세상에 예쁜 것>>이었다.

 

선생님의 천국 또한 그러하리라 믿는다. (본문 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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