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들은 매일 죽어. 돌로레스 음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어떤 남편이 죽어가고 있을걸

우리가 여기에 앉아서 얘기를 하는 동안에 말이야 남편들은 죽으면서 아내한테 돈을 남겨주지

사고가 가끔은 불행한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지

법이란 좋은 거야 돌로레스 못된 남자가 나쁜 사고를 당하는 것 역시 때로는 좋은 일이 도리 수 있지...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 가끔은 여자가 자기를 지탱하기 위해서 못된 년이 되는 수 밖에 없어

 

 뭐 원래 쉬울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 내 나이 지금 예순다섯인데 그 중 적어도 50년동안은 줄 돈은 딱딱 쥐 가면서 자기 의지로 선책하며 사는 게 인간다운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 내가 선택한 것 중에는 정말 고약한 것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중간에 그만두고 나갈 수는 없는 노롯이지 특히 부양가족이 딸려 있어서 그 애들이 스스로 하지 못하는 걸 대신 해줘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 그래 그럴 때는 가능한 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대가를 치르는 수밖에 내가 치른 대가라면 밤에 잠을 자다가 악몽때문에 식은 땀을 흘리면서 깨어난 게 한두번이 아니라는 거지 아예 잠을 못 잔 날은 더 많고 게다가 돌이 그 인간얼굴에 부딪히면서 머리뼈가 부서지고 틀니가 부 서질 때 난 소리 벽돌로 만든 벽난로에 접시가 떨어진 것같은 그 소리도 내가 치른 대가였어, 그 소리를 30년동안 듣고 살았으니까 그 소리때문에 잠에서 깰 때도 있고 그 소리때문에 아예 잠을 못 잘 때도 있고 그 소리 때문에 대낮인데도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해 집에서 현관을 청소할 때나 베라네 집에서 은식기를 닦을 때나 테레비로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면서 점심을 먹을 때 갑자기  그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 소리 아니면 그 인간이 우물 바닥에 떨어질 때 그 쿵 소리 그것도 아니면 우물에서 그 인간이 나를 부르던 그 소리 덜로오오리이이스..........

베라가 방구석에 전선이 있다거나 침대 밑에 먼지 덩어리가 있다면서 비명을 지를 때 실제로 뭘 보고 그러는지는 몰라도아마 내가 듣는 그런 소리하고 별로 다를 게 없을 거야. 가끔 특히 그 여편네가 쇠약해지기 시작한 후부터 내가 그 여편네 침대로 기어 들어가 여편네를 안고 그 돌멩이 소리를 생각하다가 눈을 감으면 접시가 벽돌로 된 벽난로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게 보였어 그런 게 보이면 나도 그 여편네가 언니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나 자신이라도 한 것처럼 여편네를 끌어 앉았지 우리는 각자 그렇게 겁에 질려서 침대에 누워 있다가 함께 깜빡 잠이 들곤 했어 나는 그 여편네가 먼지 덩어리를 보지 않게 해주고 그 여편네는 내가 그 접시 깨지는 소리를 드지 않게 해주면서 가끔 잠들기 전에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 '그래 이런거다 나쁜 년이 된 대가가 이런 거야 나편 년이 되지 안핬다면 이런 대가를 안치러도 됐을 거라고 말해 봤자 아무 소용없어 가끔은 세상이 여자를 나쁜 년으로 만드니까 바깥이 온통 어두운데 안에서 불을 켜서 그걸 지킬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내가 나쁜 년이 되는 수밖에 하지만 그 대가라니.. 너무 끔찍해

 

 

 

첫문장을 읽었을 때 생각했다,

이렇게 긴 장편을 이런 주인공의 말투로 계속 끌고 가는 건 지루하지 않을까?

게다가 킹은 남자인데.. 돌로레스라는 나이든 여자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게 과연 가능할까..

결국... 가능하더라

무지하고 욕잘하고 배운게 없고 억척스러운 우리 돌로레스 여사는 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펼쳐내며 앞에서 언뜻언뜻 박어두었던 관게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들을 나중에 하나하나 확실하게 건저 올리며 이건 몰랐지 하고 우리를 놀라게 했다,

왜 베라의 치매를 그렇게 길게 묘사하는지 그녀와의 똥전쟁을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먼지 귀신은 뭔지..그건 결국 그녀가 깔아놓은 밑밥이었고 그건 알차게 수거되었다.

흔히 여성을 상징하는 달이 해를 가리는 개기 일식에 벌어지는 여성의  행동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 날이 개기 일식인 것 학대받은 여자 돌로레스가 결국 일을 벌이는 것

남자 작가인 킹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래도 좀 더 심하게 후벼파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버무려 버린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면 딱 맞는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쁜 년이 되어야 한다는 것

베라도 돌로레스도 결국 제 손에 피를 묻히고 나쁜년이 되어야 했다는 게 슬펐다

어쩌면 가족을 위해서라기 보다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서 라는 것이 가장 이해받지 못할 이유이면서 동시에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나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하는 것 그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있을까

돌로레스는 딸 셀리나에게 가한 남편의 폭력과 아이들과 살아갈 돈을 이유르 대지만

그 이전에 자기의 허리를 몽둥이로 치고도 지나간 개를 친것 보다 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남편의 태도에  절망한다. 나는 누구인가...

우물 아래서 조가 괴롭게 불러대던 그 이름 도올로오오리스..... 그걸 되찾고 싶었던 거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영화  "도희야"가 생각났다

좀 뜬금 없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결국 괴물이 되어야 했던 도희가 돌로레스랑 겹쳐진다,

거기서 배두나가 분한 경찰은 베라처럼 도희를 사주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어떤 암시를 주었던 건지도 모른다, 행복에 대한 잠깐의 경험과 나를 걱정해주는 눈빛 그런 것들이 도희안에 잠든 괴물을 깨우게 되고 결국 나를  지키는 힘으로 쓰였다,

베라는 아무 말도 한게 없다,

세상의 남편들은 언제나 늘 죽는다는 것  나쁜 년이 되어야 할때가 있다는 것 그걸 슬쩍 흘렸을 뿐인데 돌로레스는 그걸 자기것으로 받아 들였다,

지금 이순간 나쁜 년이 필요한 시점이구나... 라고

그리고 그녀들은 결국 남은 생을 먼지 귀신과 접시 깨지는 소리로 악몽에 시달린다,

묵묵히 견딘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따른다,

어떤 것을 얻기위해서는 댓가가 필요하다,

돌로레스도 베라도 당연하게 그걸 받아들인다

외로워지는 것  두려워지는 것 그건 두렵지 않다. 견딜 뿐이다.

둘이 함께 공모하진 않아도 함꼐 견딘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

도희도 그 경찰과 그렇게 될 것이다,

서로 지긋지긋하게 의지하며 그렇게 나의 댓가를 견디며 살아갈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사연이 있고 많은 경우의 수 가 있는데 제도는 법은 그 모든 것을 다 일일이 헤아려 주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법전은 세상에서 가장 두꺼워서 아무도 펼칠 수 없는 책이 되어버릴 것이고

제도는 만들어도 만들어도 끝이 없어진다,

결국 뭉뚱거리고 이렇게 저렇게 나누고 분류헤서 사회를 유지하는 제도가 생기고 법이 생긴다

그 제도 법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는 늘 존재한다,

돌로레스처럼

도희처럼

그럴 때 나쁜 년이 되어야 하고 괴물이 되어야 하는 것 그것이 슬프다,

 

가끔 스스로 잘 알면서도 못된 년이 되어야 하는게 아직은 여자들의 삶이다,

뭐라고 뭐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악해지는 것 결국 스스로 망가지겠다는 다짐이고 스스로 댓가를 치루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누가 그녀들에게 돌을 던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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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9-30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남성 작가가 무슨 1인칭 여성 목소리냐.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 근데 그게 킹의 힘이더군요.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에세는 아예 어린 여자아이가 등장합니다. 숲에서 길을 잃은 소녀.... 이걸로 과연 300페이지 쓸 수 있겠어, 하다가 무리없이 끌고 가는 솜씨에 두순두발 다들었습니다.

푸른희망 2015-09-30 21:2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전 잠시 킹이 여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될 때 쓴건가 싶었네요..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도 읽어봐야겠군요
킹이 사실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어요. 그저 호러나 환상적인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무지하게 알고 있었거든요... 올 가을 킹과 만나야겠습니다
또 좋은 거 있음 추천 부탁드려요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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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라는 사내가 있었다.

학창시절 중거리 달리기 선수였다가 아킬레스건에 상처를 입고 운동을 그만 둔후 운동용품을 만드는 회사에 취직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대단한 감정기복을 겪은 것 같지 않다,

해왔던 운동을 포기해야할 때 느껴야 할 좌절감이라거나 패배감 혹은 새로운 삶을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도 눈에 띄지 않는다,

회사의 영업사원이 되어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며 예전 내가 했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영업을 하고 성실하게 그들의 요구를 듣고 제품에 반영하는 일

작지만 성실하게 일하자는  사훈을 가진 창립자의 직원답게 그렇게 성실하다,

아내와의 사이를 의심하지 못한 어느 날 순간 뒤통수를 맞는다,

아내가 가장 친한 동료와 바람이 났고 그 장면을 목격했음에도 기노는 그냥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집을 나와버린다, 그리고 끝

이모의 집을 빌려 작은 바를 열고 늘 그렇듯이 조용하고 고요하게 손님을 만나고 가게를 영업하며 살아간다,

고양이가 찾아오고 이제 단골도 제법 생기고.. 그리고 뱀이 나타나고 기노는 길을 떠난다,

자의가 아니다, 누군가의 조언 거절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오는 조언에 무작정 길을 떠난다,

그리고 낯선 도시 낯선 밤에서 이제 오롯이 자기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는다,

삶의 어떤 모퉁이에서도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던 기노는 낯선 장소 낯선 시간에서 자기에게 무엇이 결핍되었는지 알아간다,

그건...... 감정이다,

 

이상하게 헤어진 아내나 그녀와 동침한 엣 동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일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제대로 뭔가를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졌지만 이윽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이런 날을 맛닥뜨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도데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렷하게 와 닿지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듯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로 맥없이 떠내려 가지 않도록 단단하게 묶어 둘 장소를 마련하는 정도였다, '기노'라고 하는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이 그 구체적인 장소가 되었다.

                                                                                p 227

 

 

 

상처받았지 조금은?

아내는 그에게 물었다,

나도 인간이니까 상처받을 일에는 상처받아

기노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반은 거짓말이다,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놀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맛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뱀들은 그 장소를 손에 넣고 차갑게 박동하는 그들의 심장을 거기에 감춰두려고 하고 있다.

                         p 265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에게서 멀어져 있던 것이었다, 그래 나는 상처받았다, 그것도 몹시 깊이 기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어둡고 조용한 방안에서

그동안에도 비는 끊임없이, 싸늘하게 세상을 적셨다,

 

                                            p  271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건 워터파크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며 나와 핸드폰을 확인한 후였다,  아직 머리에는 물기가 다 마르지 않았고  오래 놀고난 후라 아이들과 나는 배가 고팠고피곤한 상태였다,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열개 가까이 찍혀 있었고 언니의 짧은 메세지가 있었다,

 

"오늘 12시 경 아버지 돌아가셨다, 준비하고 부산에서 보자"

 

아침에 워터파크 안에 들어가기전 아버지께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문자를 넣었다,

애들 방학이라 놀러왔다고... 아버지는 더운데 어떻게 지내시냐고.. 힘들어도 운동도 하고 집안에서라도 많이 움직이시라고... 그렇게 넣은 걸 아빠는 보고 가셨을까?

정신없이 짐을 싸서 내려가는 내내 내가 붙들린 생각은 한가지였다,

"울음이 안나오면 어떡하지?"

나는 상주인데.. 울음이 안나오면 어떡하지?

내려가는 기차안에서 내내 그 걱정만 하고 있었다,

다행이 눈물을 적당한 순간 적당하게 잘 나왔고 의외로 상가라는 곳이 울음만 존재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상주는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손님을 맞아야 하고 준비를 해야하고 사무적인 처리도 필요하고... 그리고 간간히 웃음도 있었다, 삶이라는 것이 늘 한가지 감정만 한가지 상황만 차례차례 순서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나고 아버지 유산 정리와 금전적인 정리를 위해 서류를 보내야 할 일이 있었다,  등본이며 인감을 끊어서 우편으로 보내면서 왠지 그렇게 보내는 건 너무 박정하다는 생각에 우체국  대기 의자에 앉아 급하게 노트를 찢어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그때.. 엉뚱하게 울음이 터졌다,

엄마에게 그때 뭐라고 썼을까?

그냥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여기 서재에도 몇번 썼던 기억이 있던 내가 알게 된 아버지 모습

어쩌면 아빠는 무뚝뚝하고 가족에 대해 무감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아빠는 아주 많이 수줍은 사람이었을 거라는 것

아빠는 잘난 척 하느라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틈으로 섞이는 것이 어려워서 책속으로 숨었을 거라는 것

그걸 그때는 몰랐다고...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빠를 닮은 것도 어쩌면 우리는 비슷하게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것이 어렵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했고 감정을 토해내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 균형을 맞추고 하는 일에 너무 에너지를 빼앗기는 존재들이라는 것 그래서 표정은 무뚝뚝해지고 말이 없고 그저 책속에 눈을 숨길거라는 걸...

왜 그런 편지를 엉뚱하고 뜬금없이 썼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빠를 생각하며 나를 생각했고 그렇게 닮아서 그렇게 미웠다는 걸 그 때 그 우체국 낡은 의자에서 알아버렸던 거 같다,

아빠가 돌아가셔도 오해받는게 싫다는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오해가 어쩌면 오롯이 내가 받고 있는 오해일지 모른다는 무의식속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사람들 틈에서 울기가 쉬웠다, 의외로,,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내야할 우편물과 택배에 더 정신이 팔려서 구석에서 누가 울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편지를 엉망이 된 채 서류들과 엄마에게 보냈다,

나중에 엄마가 그 편지를 읽고 한참을 울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땐 담담하게 들었다,

 

모두가 함께 영화를 보러갔다,

다들 울었다, 충분히 슬픈 상황이었고 내용이었다,

나도 슬픔은 느꼈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가가 뻑뻑해왔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왈칵 하고 느끼는 순간 내 속의 또 다른 내가 나를 막았다,

그만.... 우는 거 아니지,,

그리고 눈물은 쑥 들어갔고 나 혼자 손수건도 휴지도 필요없었고 영화관에 불이 들어왔을 때 혼자 얼굴이 멀쩡했다,

그게 또 부끄러웠다,

나도 감정을 느꼈는데,,, 나도 똑같았는데 나는 울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울고 싶은 나와 동시에 브레이크를 거는 내가 있다,

감정은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건 못난 짓이고 부끄러운 것이었고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이다,

그렇게 서서히 감정을 잊었다,

머리속으로 이성적으로 감정을 알고 분류하는 일은 쉬웠다,

그러나 그걸 느끼고 표현하는 일은 두렵고 어려웠다,

통제하고 절제하는 일이 너무 쉬웠고 그게 편했다,

이성적이라는 것이 더 멋있고 쿨하다는 표현이 더 우위를 지녔다,

찌질하고 감정을 흘리고 다니고 구질구질하게 구는 건 필요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냉정해졌고 말투가 딱딱해지면서 그걸 즐기기 시작했다,

 

한번도 니가 감정이 격해지거나 가라앉는 걸 본 적이 없어, 늘 한결같고 늘 그랬던 거 같아

 

오래 알고 지낸 선배의 말이었다, '나도 화를 내고 울고 웃는데 왜 그럴까?

어느새 나는 늘 어느 선에서 기복이 없는 감정을 가졌던 거같다,

그리고 감정을 절제하는 건 엄마라는 이름으로는 참 부적절한 것이었다,

그걸 아이가 다 크고 나서 알았다,

내가 키운 내 아이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의젓하고 착하다

그런데 대신 남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을 불편해한다,

이제 나이먹은 나는 머리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이들입장에서는 어려웠다,

여자아이들 사이에 삐지는 일 토라지는 일 징징거리고 매달리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도 여자면서,.. 저도 저렇게 느끼면서...

그걸 설명하기 힘들었다,

감정도 느낌도 .... 표현하고 배워야 하는 거였다,

 

나는 언제부터 감정을 눌렀는지 돌이켜 보았지만 기억나질 않는다,

기억을 해집어도 감정적인 내 모습은 별로 없다,

 

기노는 언제부터 이렇게 딱딱하고 무미건조해졌을까?

기노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내의 불륜장면 그 이전 운동을 그만 둔 장면에서 담담하게 행동했던 그가 쉽게 이해된 내가 두려웠다,

상처받고 있다고 아프다고 느끼지만 실상 그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된 기노의 막막함

그건 비가 올듯 말듯한 불안하고 습한 날씨 처럼 불쾌하고  안정감이 없다,

처음 이 단편을 읽을 때 가장 편했다, 기노의 삶이 그리고 나중의 변화가 무리없이 이어지고 이런 삶이 부럽네 하는 생각마저 했었는데

다시 읽으며 이렇게 무언가를 잃고 놓치고 살면서 모르고 산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기노에게는 가미타가 조언을 하고 뱀들이 암시를 한다

나에게 가미타와 뱀들은 무엇일까....

기노는 자기를 찾을까?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어려운 길은 자기를 찾아 들어가는 길이 아닐까.

기노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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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지 오래 지난 후 영화를 봤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영화였고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이었고 추리물이었고,,,, 안 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책은 읽었지만 시간이 흘러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다,

두꺼운 책 세권을 영화 전후편으로 압축하다보니  많은 인물이 줄어둘었고 내용도 큰 흐름을 해치지 않은 범위에서 많이 바뀌었다,

영화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책 말미에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모교로 돌아오는 이는 노다 켄이치인데 영화에서는 후리노 료코로 바뀌었다, 주인공이니까,,,  영화니까 인물을 압축하는 의미에서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책과 너무나 다르 일이다,

별거 아니라고.. 그 당시 재판을 했던 누구라도 시간이 흘러 그 때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일이고 누구든 모교의 교사가 되어도 어색할 일이 없지만 그래도 내게는 료코보다는 켄이치였다,

주인공이 아니었고 늘 소심하고 눈에 띄이지 않은 아이였고 어쩌면 무서운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순간을 겪었고 그리고 주인공은 아니었으니 스스로 재판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간바라를 도와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마주하고 그리고 변한 인물이다,

극적이지 않고 잊히기 쉬운 인물이지만 그래서 그 아이가 나중에 교사가 되어 그 때를 당당하게 회상하고 참 좋은 경험이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음을 기억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영화도 책과 다르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눈내린 교정에 동급생이 죽었다.,그걸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노다 켄이치였는데 책에서는 료코와 함께로 나온다,. 죽은 가시와기는 등교거부를 하는 중이었고 그래서 경찰조사 결과 자살로 마무리 지었지만 그 것으로 아이들에게는 그림자가 일렁인다,

그렇게 지나가던 사고가 고발장으로 사건이 되고 불량학생 오이데 슌이치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사람들은 술렁인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고발장을 쓴 사람이 누구냐로 관심이 모이고 누군가가 떠오르지만 학교는 덮기에 급급하다. 학교나 경찰의 의견은 누구도 다치는 학생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거였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실은 계속 스스로 몸집을 불려나가고 더구나 좋은 취재감이라고 냄새를 맡은 언론에서 덤벼들면서 학교도 학생도 상처를 입고 서로 믿지 못하고 소문이 덩달아 몸을 흔든다,

그리고 또 학생이 죽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재판을 열어 사건이 어떤 것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영화속의 아이들도 제각각 아픔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기위해 진실과 마주하기로 하고 사건을 풀어나간다, 두려워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사건속으로 들어가서 마침내 진실의 얼굴을 마주한다,

어른들은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사실을 덮어버린다, 그냥 넘어가자

어른의 입장이고 생각이다,

누구 하나하나가 아니라 뭉뚱거려진 아이들 학생들이 다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건 내 눈에 상처가 보이는 건 싫다는 거고 두려움을 회피하는 일이었다,

그저 내 눈에 내 앞에서 보이지 않고 무탈하다면 그만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해야할 말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말이 목을 통해 나오는 순간 누군가는 다친다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두려움이었지만

그말을 꿀꺽 삼킨 아이들에게 그 말들은 괴물처럼 커져가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그 무게가 재판을 하면서 하나하나 내려진다, 그건 등에 지고 있는 것 보다 더 두려운 일이지만 아이들은 그걸 해냈다,

그리고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는 것

영화는 그렇게 마무리 된다,

 

다시 소설을 읽었다, 한 번 읽은 것이라 꼼꼼하게 읽는대신 인물의 대사를 읽고 설명이나 묘사는 그냥 휙휙 지나쳤다,

사실 소설이 이렇게 두꺼운 세권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처럼 사건을 압축하고 인물을 줄여서 사건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더 가독성을 높이고 몰입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작가는 ... 어쩌면 작가는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이 있고 소문이 있고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어른들에게 맞서면서 아이들이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 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거 같았다,

 

주리는 오이데 슌지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짓말을 고집해서 가즈히코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다,

왜? 왜 그러는 거지?

미움받던 미야케 주리를 그는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3중학교에서 그녀와 나란히 앉았던 그 누구도 아닌 가즈히코가 그녀를 이해했다, 같은 반의 그 누구도 진심으로 헤아려주지 않았던 그녀의 속마음을 그만이 헤아려 주었다,

이 법정에서 가즈히코는 오이데 슌지가 교내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괴롭히고 폭력행위를 저질렀는지 실상을 폭로했다, 3중학교의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 보고도 못 본 척 했던 것을 슌지에게 직접 말로 들이대며 비난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 고발장을 써서 피고인을 함정에 빠뜨린 게 누구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고발자가 누구든 이상하지 않다. 피고인은 그럴 만한 행동을 해왔으니까

그 마음이 주리에게 통했다, 그래서 그때 주리는 정신을 잃은 것이다, 간바라 변호인의 마음을 알아챘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위해 피고인에게 그런 신문을 했는지 알아챘기 때문에

너는 나쁘지 않다, 가즈히코는 신문에서 오이데 슌지를 호되게 비난하며 주리에게 그렇게 전한 것이었다, 너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너는 나쁘지 않다, 너는 그저 막다른 궁지에서 빠져나오려고 한 것 뿐이다, 그러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너는 나쁘지 않다, 옳은 행동은 아니었지만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간바라 가즈히코가 유일하게 그런 말을 해주었다, 겉치레가 아니다, 그때뿐인 위로도 아니다 오이데 슌지를 비난함으로써 ㄱㅏ즈히코는 주리에게 그런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이해한다고

미야케 주리의 거짓말에는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 영혼의 생사가 걸렸던 이유가 있었다, 주리는 슌지에게 괴롭힙을 당했고 괴물이라고 멸시 당했다, 학교라는 감옥안에서는 그녀가 도망칠 곳이 없었다,

주리의 증언은 거짓이지만 그 안에는 진실이 있다, 오이데가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었다고 해ㅆ다. 그것은 분명 주리가 눈으로 본 광경이고 귀로 들었던 소리다, 그날 밤 어둠에 휩싸인 옥상에서 가시와기 다큐야에게 던진 조소와 폭력이 ㅇ니라 미야케 주리가 이 학교에서 보낸 세월 속에서 수도 없이 겪어온 것이었다,

도망칠 수도 저항할 수도 업소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미야케 주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었다, 스스로 사라지건 오이데 슌지의 존재를 지워버리거나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주리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반격에 나섰다, 그것이 그 고발장이었다, 게데가 미야케 주리에게 그 기회를 준 것은 간바라 가즈히코였다, 가시와기 다쿠야가 죽은 직후 그가 바로 진실을 밝혔다면 주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궁지에 몰려 주위의 미움을 받을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는 없어도 거짓말장이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시잉 마쓰코를 그 거지스로 끌어들여 결국 잃고 마는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p   613-614

 

 

간바라가 주리의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미미 여사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마음을 읽어 주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야기가 늘어지고 조금 중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야기속의 아이들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누구나 그것을 누군가 들어주기를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로쿄도 주리도 노다뿐이 아니다, 휙 지나가는 인물 모두는 제각각 자기의 아름을 가지고 있다, 하나하나 몇장면 나오지 않아도 이름이 있고 스스로 빛나는 존재이고 해야할 말이 있고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걸 미미 여사는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조금 더 압축하고 불필요한 인물을 뺀다면 영화처럼 집중해서 사건에 몰입하겠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

로쿄도 간바라도 그 나이 또래의 얼굴을 불쑥불쑥 드러내고 있었고 검사 조수도 변호인의 조수도 주인공 못지 않은 기지와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누군가가 과거에 받은 왕따의 아픔도 있고 폭력을 당하고도 후환이 두려워 어서 결론 지은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비겁함이 남아있었다,

아이들은 제각각 자기가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마음을  간바라가 주리에게 해 준것 처럼 후지노가 노다에게 해준 것처럼 별거 아닐지라도 니 마음을 알아.. 하고 그 아픔에 귀를 기울이면 아이들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깊이 간직한 그 말이 나에게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고 세상을 마주할 힘을 얻는다, 오이데 역시 그저 불량학생 폭력학생이라는 가면뒤에 숨은 약하고 겁이 많은 얼굴을 드러낸 것도 누군가 그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것이 힘이 되었다,

 

누구도 이길 수 없고 상처만 될거라는 재판은 어른들의 우려대로 상처를 남겼지만 대신 진실을 찾아내는 일 마주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도 함께 얻었다,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을 알고 우리의 말을 하고 우리의 말을 들여주는 것.. 그것이 공감이다,

아이들은 그걸 배운 것이고 어른들은  머쓱하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며 예전에 봤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크리스마스가 되고 겨울방학이 되면서 모두가 돌아간 학교 기숙사에 남은 몇명의 학생들 사이의 긴장감 그리고 사고로 학교로 들어온 의사 그리고 시작되는 게임

괴물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좋은 학교의 똑똑한 아이들은 스스로를 믿으며  수수께끼를 풀어가지만 그들은 그저 문제 풀이에 급급했다 누구도 진심으로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거 같다. 모두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그걸 드러낸다는 건 더 무서웠다, 아닌 척 괜찮은 척 하면서 아이들은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과연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만들어진것인지 자문할 겨를도 없이  이미 괴물이 어른의 손에 조종당하면서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좋은 결말은 아니었던 거 같다.

아마 시작이 눈이 쌓인 학교 그리고 그 눈속에 묻힌 시체라는  비슷한 모티브때문에 떠오른 건지 모르겠다만,,,,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들어주는 것

그리고 하나 더 욕심을 내 본다면,,,,,

그건 니가 잘못한거야, 그러면 안되는거야

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

그리고 행동하거나 행동을 말리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저 아이들 나이에 저런 걸 알았다면,, 난 아마 대단한 어른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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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 김중미를 좋아한다,

그 작가의 사고도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함께 생활하고 함께 살아온 그의 삶도 존경한다,

누구나 생각은 하고 글로 쓰고 말로 외칠 수는 있어도 몸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내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줄 것이냐는 질문도 감내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한 일은 대단하다,

그저 내가 할 일이라고는 그의 작품을 읽고 내 아이들에게 읽히는 일뿐이다,

직접 경험하는 건 엄두도 나지 않고 사실 매우 속물적인 사람이 나인지라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부유하길 바라는 사람인지라 머리따로 몸따로라는 자괴감이 들때가 많지만 그래도 그의 책을 읽고 권하고 감동하고 반성하고 내 주변이라도 돌아보자하는 것이 전부이다, 부끄럽지만,,,

 

      

    

 

 

 

 

 

 

 

 

 

 

두 작품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그저 내가 느끼는 건 아프다는 것이었다,

글로 읽고 말로 듣고 화면으로 본 것이 전부인 내게 이야기를 통해 내게온 아이들의 이야기는 생생했고 그저 뉴스이상의 울림을 주었지만.... 그 후 나는 뭔가 한 건 없다,

누군가는 너무 아픈 이야기라서 내 아이에게 차마 읽히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반발을 느꼈지만 나 역시 그 누군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읽히는 것일 뿐이다,

이런 세상도 있단다.. 알고 있어라.. 너희는 행복한 줄 알아라.. 이 이상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읽히지 않은 그와 읽힌 내가 다를게 없다,

 

 

 

 

 

 

 

 

 

 

 

 

 

역시 아프고 힘든 아이지만 그래도 가까운 주변 아이들 이야기였다,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는 많았고 담담하게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 작가가 많이 둥글어졌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팟케스트에 나온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천에서 강화로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 새로운 작품 이야기 권하는 소설 "나는 태양"이야기

그리고 공동체 아이들 이야기 강화 아이들 이야기

어짜피 대학을 가고 소위 말하는 세속적인 성공을 할 수 없을 아이들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해준다는 말 너희들의 한계는 여기까지야 라고  사실대로 말한다는 것

그리고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밀양으로  쌍용자동차 현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이야기   아이들의 미래가 공동체 이모 삼촌의 모습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부끄럽지 않다는 이야기등등.. 담담하게 툭툭 뱉어내는 그의 말투에서 단단함을 보았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그게 현실인데,,,,

그렇다고 그 아이들이 꿈이 없는 건 아니지 않는가?

꿈을 존중하되 현실도 함께 보여주는 이야기에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그리고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그가 나온 팟방을 다운 받아서 여러번 들었다.

그저 내 아이에게 무얼 이야기 해야하나? 나는 잘 살고 있나 싶을 때 들으면서 그의 씩씩한 말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황정은 작가의 담담한 말투에서 나도 모르게 위안을 받았다,

사는 게 별건가? 하는  근거 없는 용기도 생겼다,

 

그리고 아이 도서관에서 아침 대출반납 봉사를 하면서 이 책을 보았다,

그때 방송에서 말한 강화의 이야기였다,

인천에서 12여년을 지내고 난 후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나올 수 있었고 강화에서도 그만큼의 삶을 지낸 후 드디어 나온 강화의 이야기였다. 깜언...

작은 아이 친구가 반납한 책이었다,

제 언니랄 달리 유난히 책을 싫어하고  안 읽는 아이와 비교하면서  이걸 내 아이가 읽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약간의 절망감과 학부모 다운 시기도 빌려와서 일단 내가 읽는다,

도시 근교 농촌의 생활 도시와 가까워서 느끼는 열등감  에프티에이 이후  농촌의 문제들

이 모든 배경을 세세하게 그리면서 중3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짜피 인문계를 가서 농어촌으로 아무 대학이나 가도 졸업을 못하는 게 태반이고 한다하더라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힘든 상황들  혹은 공부를 잘 해서 대학을 잘 가더라도 논팔고 소팔아 모든 미래가 아이에게 저당잡힌 가족의 이야기들... 이건 사실 그 곳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농사가 무너지면 결국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다, 안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도시도 뾰족한 수 없다. 사교육에 뭐에 아이 대학을 보내느라 허리가 휘고 그저 대학을 보내도 그 앞날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고개 한 넘으면 또 고개 또 고개 하나 넘고 또 고개

무슨 떡광주리 이고 고개를 넘으며 호랑이를 만나는 오누이 엄마도 아니고...

이야기가 쉽게 읽히지 않았다,

농촌의 막막한 현실도 아이들의 이야기도 그럼에도 너무나 순수한 아이들이 너무 위선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문화 선천적 장애  막막한 현실....

이걸 초등학생이 읽었다구?

난 너무  비겁하게 내 아이가 못읽는 것이 아니 안읽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중미 작가는 현실을 너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소설이라는 것이 얼마든지 은유적으로 표현 가능한 것임에도 어떤 미사여구나  필터 없이 그대로 내민다.

굉장히 쓴 약이다,

무론 안 봐도 그만이고 안 보여줘도 그만이지만... 자꾸 한번씩 뒤돌아보게 하는

뒤통수를 당기는 힘이 그 속에 있다,

괜히 봤어....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작품이 나오면 아마 또 볼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괜히 봤어...

그건... 여전히 내가 머리만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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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북클럽
박현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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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들과 꿈꾸는 북클럽이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어떤 숙제도 없고 어떤 의무도 없이 단 하나 책은 읽어야 한다.

단 한가지 조금 더 숨통을 튀어주자면 각자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 함께 읽는 것이고

책을 다 읽지 못하더라도 참석은 꼭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고

읽지 않은 책이라도 휘리릭 넘겨보다가 마음이 닿는 곳 혹은 눈이 닿는 곳에 밑줄을 그어

모두 앞에서 읽어주는 것만 해줘도 좋은..

그런 북클럽을 해 보고 싶다.

 

함께 책을 읽고 책 이야기는 눈꼽만큼 나누고 자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더 좋겠다,

여기 모인 아이들처럼 참으로 모범적으로 잘 진행되진 않겠지만

각자 은밀하게 감춘 아픔을 조금씩 드러내주면 정말 고맙고

타인의 말에 귀기울여 경청하고 이해하진 못해도 받아주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모임이면 좋겠다,

별 건 아니지만 우리끼리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고

제대로 모든 책을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모임이 끝나면 내가 적어도 이런 책은 읽은 사람이고 이런 책을 아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마음을 열지는 못할 것이다,

무얼 먹든가 손을 움직여 단순한 동작으로 무얼 만들면서 무심코 수다처럼 터져 나오는 이야기 속에 내가 있고 내 고민이 있고 내속에 숨은 어린 아이가 나오고 그리고 남들도 나만큼 아프구나 하고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정색해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들이 서로 시선을 묘하게 비껴가면서 그러면서 슬쩍 슬쩍 훔쳐보면서 내 속을 드러내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그때 책도 좋은 매개일것이다,

책이야기를 하면서 책 속의 인물을 흉보고 옹호하면서 슬며시 내가 나오는 것이다,

모임을 통해 책을 통해 무언가 결과물이 나오고  보람있다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고

그저 속이 시원하거나 나혼자 아니구나라거나 적어도 나정도면 괜찮구나 하는 정도를 얻고 가는 것이면 좋겠다,

 

몰락한 일진짱과 부상당한 축구 천재  외모콤플렉스 소심이 만년 전교이등의 무공감장이들이 모여 서로의 공통분모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 모임이 몹시 부럽다,

학교에서 혹은 자기가 있는 어딘가 집단에서 혼자만 외톨이라고.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각각의 섬들이 서로 이어지는 건 책이고 책을 매개로 한 시간이다,

바로 이 수상한 수북클럽이다,

이런 수상하고도 수상한 북클럽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이전에 읽은 여고생 미지의빨간약처럼.... 그리고 이 수상한 북클럽처럼

책이 누구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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