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다시 생각에 빠졌들었다, 그는 자신이 있을 공간을 정했다, 그는 법정을 벗어나 아들이 재로 가라앉은 바다를 열었다, 자신의 운명을 정하는 판결을 앞둔 때에 아버지는 아들이게 가 있는 것이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들로 부터 격리되었다, 그는 아버지였다, 나도 한 사람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자유의 몸으로 오래도록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나는 박재호의 옆에서 피할 수 없는 아버지를 마주 보게 됐다, 아버지 돌아가신 아버지,,

 

(중략)

 

퇴근하면 가방만 내려놓고 안방에 들렀다, 아버지는 저녁이 되면 안방에 펼쳐둔 전기장판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항상 괜찮다고 대답했다, 나는 항상 오늘은 좀 어떠냐고 물었다, 가을부터 둥지속 새끼 새처럼 전기장판을 못 벗어나던 아버지는 끝내 그 위에서 눈을 감았다, 나는 잠결에 형의 절규를 듣고 알았다, 내가 달려갔을 때 형은 남겨진 육신을 끌어안고 악을 쓰고 있었다, 아버지가 거둔 고양이. 그것이 창틀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누으로 죽음을 내려봤다,

전기장판은 코드가 뽑혀 있었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영안실에 들른 조문객들에게 형은 전기장판 코드가 뽑혔다고 말하고 또 울었다, 나는 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건 형탓도 전기장판 탓도 아니야 형은 날 와락 부둥ㅇ켜안고 목을 놓았다, 거기에 이모가 가세해 우리 둘을 껴안고 곡을 했다, 5년 넘게 연락 한 번 없던 여자였다, 난 흐느끼는 소리를 냈지만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내진 못했다, 눈물이 안 나왔다,

 

아버지는 어머니 옆에 묻혔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누렇게 뜬 전기장판을 내버렸다, 형은 말이 없었다, 두세시간 눈을 붙였다, 잠에서 깬 뒤 집을 나와 택시를 잡았고 청량리역에서 속초행 기차를 탔고 속초에서 울릉도로 떠나는 배에 올랐다, 누구와도 연락없이 섬에서 이틀을 보냈다, 성인봉에서 내려다 본 동족 바다는 사막처럼 건조했다,

 

(중략)

 

그때가 스물 여덟이었다, 겨울이 그 해 절정에 도달한 밤 나는 전기장판 위에 누워 뜬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면서 오래도록 내 아빠를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그 사람도 전기장판 위에 누워 있었다, 거기서 그의 시간은 죽을 날을 향해 달렸다, 나는 물 한 컵 달라고 부탁하는 시든 목소리를 떠올렸고 무덤속에서 살점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을 마른 몸을 상상했다, 어느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례식까지 흐르지 않던 눈물이. 멈출 수가 없었다, 가슴으로부터 올라오는 통증 영원히 끝나지 않을 밤 나를 덮친 그 밤을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시대와 이전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은 겪는 것처럼 나는 아버지를 잃었을 뿐이었다,

그런 모두가 이런 아픔을 간직한 채 태연하게 세상을 살아왔던가 그렇다면 세상 위모든 사람들을 존경하며 살아가리라. 통증은 더 심해졌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싫은 사람이라는 말은 아버지와 같았던 적이 있었다,

내 아버지는 내게 아무런 잘못을 한 적이 없었다,

먹이고 입히고 성인이 되도록 뒤를 보아주었고 모든 책임을 졌고 어떤 책망도 한 적이 없는데

그래서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개천용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무지한 부모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공부를 잘했고 공부로 성공했다

그리고 책임감 강한 아비 없는 장남답게 가족을 형제를 책임졌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당신 가족이 우선이었다,

내 어머니 내 누이들 그들이 우선이었다

엄마와 우리 남매는 늘 그 다음이었다,

그건 아버지가 직접 입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도 행동으로 몸짓으로 일찌기 터득했다,

이유는 그게 유일했지만 그건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컸다,

다른 형제와는 그 문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내 언니가 내 동생이 아버지의 그런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사촌이나 친척들과 친하질 못했다,

늘 서먹했고 적대적이었지만 세련되게 감출 줄 았았던 것 뿐이었다,

우리는 친척들 사이의 섬이었다,

모두가 아버지를 숙주로 생각하고 기생해서 모든 걸 뜯어가면서 그건 당연하다고 느끼는 충들 이었고 우리는 그들을 아닌 척 증오했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럽게 그 관계를 인정하는 아버지에게 모두 돌렸다,

언제나 산인줄 알고 화수분처럼 퍼낼 줄 알았던 아버지가 쓰러졌지만

그때는 모두 모른 척 했다,

무지하게 대놓고 모른 척 한 건 아니라서 더 분했다,

걱정하는 척  미안한 척 안쓰러운 척 하면서 혹시나 내게까지 책임이 올까 전전긍긍하는 것인 ㅡ껴졌다, 어쩌면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믿는게 편했다,

아버지는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젠 남은 처와 자식이 자기를 책임지리라 믿었다,

나도 남부럽지 않게 아버지에게 받았으면서도 늘 남에게 준 것과 내가 받은 것을 비교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미워했다,

결혼을 하지 말든가. 자식을 낳지 말든가

그의 책임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비니까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고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고 그 동생들마저 한 가족의 가장이 된 이후에도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가 가엾다기 보다 한심했다,

거대한 산은 점점 깍여 갔다,

그리고 마음이 흔들렸다,

곰곰히 생각을 해도 아버지는 잘못한게 없었다,

그는 늘 좋은 아들이고 좋은 형이고 좋은 오빠였고 좋은 사회인이었는데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에서는 걸렸다, 늘 걸렸다,

과연 좋은 아버지란 어떤 아버지인가,,,

교과서적인 대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 자꾸 걸렸다,

많이 편찮으셔도 늘 그 상태로라로 계실거라고 생각하고 미운 마음을 거두었다는 것만으로 다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미워하지 않고 안쓰러워진것 만으로 나는 충분한 도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 앞에서는 나는 여전히 철부지였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딱서니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언젠가 썼듯이 나는 울음이 안 나올까봐 걱정했다,

보여지는 나에 대해서 걱정했다,

삼일장이 지나고 하관을 하고 모든 절차가 끝나고서 깊고 긴 잠을 잤다,

나에게도 지켜야할 가족이 있고 아버지보다 더 챙겨야 할 어린 자식이 있었다,

나이 먹었고 병 들었고 이미 예상을 했던 일이고... 그렇게 넘겼다,

그런데 어떤 모퉁이마다 어떤 갈피마다 자꾸 아버지가 걸렸다,

아버지 살아 생전 이렇게 그를 많이 생각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그의 뒷모습이 걸리고 그의 말이 걸리고 그의 행동들이 그때 그 눈빛이 자꾸 걸렸다,

아버지가 걸릴 수록 나는 나쁜년이 되어갔다,

울 수도 없었다,

영화속 인물에서 책속의 누군가에게서 그리고 어떤 낯선이의 뒷모습에서 자꾸 아버지가 걸리면서 아무때나 울컥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나도 나이 먹어서... 라고 넘기고 싶었다,

무언가 정리가 필요했다,

글을 쓰고 그를 기억해보고 자꾸자꾸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점점 더 무거운 나쁜 년이 되었다,

아버지가 이해될수록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배움이 길다고 똑똑해 지는 건 아니었다,

아는 게 많다고 똑똑하고 실수를 하지 않고 선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살아있기만 한 헛똑똑이였다,

일곱살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은  늙은 아이였다,

자꾸 자책감이 들었다,

기억할수록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고 지금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이젠 정리되어 간다고  내가 조금은 덜 나쁜년이라고 정리하고 있었다,

 

이 책을 팟케스트로 들었다,

용산 이야기라는 게 딱 듣는 순간 떠올랐다,

제법 긴 방송을 순간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윤계상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고 마음이 먹먹했다,

그때도 법정에서 선 아버지 박재호를 보며 늘 그렇듯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영화도 마음에 들어 책을 읽기로 했다,

영화의 흐름 그대로 책은 넘어갔다,

아 대석역을 유해진이 하는게 아니었어... 하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주민역할이 빠진게 아쉽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모든 법정공방이 끝나고 마지막 주인공의 아버지 이야기에서 또 걸렸다,

울지 않았다는  부분과 나중에 알았다는 이야기에서 턱 걸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끌어야 하나

애도는 마감시간이 없다고 한다,

슬퍼하는 이가 그 슬픔이 깊이 잠기고 그리고 다시 솟아 오를때까지 언제든 애도의 시간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내 경우는 애도가 아니란 생각을 한다

나는 죄책감이었고 미안함이었고 이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뿐이다,

이건 애도가 아니다,

그저 나만의 만족 혹은 감정과잉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 뿐이다,

처음엔 긴 애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함께 드는 건 불순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으며 그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지 않고 딴 생각에 자꾸 빠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소수의견'이란 책을 썼을 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텐데

자꾸 그는 자기 아버지의 이야기를 긴 법정 공방뒤에 숨겨놓았다고 믿고 싶었다,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나는 자꾸 그것만 보였던 거다,

이건 너무 질질 끌고 있고 산뜻하지 못한 애도다,

아니 애도도 아닌 미련이다

 

책은 영화와 달리 지리멸렬하게 끝이 난다,

어떤 영웅적인 사건도 언젠가는 잊혀지거나 더 큰 사건으로 덮어진다,

살아보니 정의가 늘 반짝반짝한것도 아니었다,

나중엔 지루해지고 녹슬어서 잊혀지기거나  그땐 정의인줄 알아던 것들이  지루한 일상만도 못하다고 여겨질때도 많다,

이 책이 영화보다 더 사실적인 건 그거다,

박재호는 잊혀질거고 그 많은 사건은 계속 터질거고

홍재덕은 로펌에서 떼돈을 벌거고

주민은 어쩌면 정치에 발을 담궜다가 박경철 의원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한순간 정의가 이겼다고 모두가 정의를 위해겠다고 와 .. 나섰다가 다시 와 흩어지는 게 현실이다, 씁쓸하지만 그래왔고 그럴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다,

자꾸 자꾸 기억하게 만드는 일

잊고 있던 그때 그 함성을 떠올리게 하는 일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게 만드는 일

그런 별볼일없지만 있어야 할 일을 위해 소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 글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 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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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관둔 건 어쩔 수 없이 사악해지는 것과 안그래도 되는데 사악해지는 것 사이의 차이를 누군가 진작에 일께워줬다는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

                                                                    p 304

 

 

오베는 자기가 언제부터 말을 안하고 살았는지 정확히 몰랐다, 그는 언제나 과묵하긴 했지만 이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어쩌면 그는 자기 머릿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는 미쳐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마치 다름 사람들이 자기에게 말을 걸지 않길 바라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이 떠드는 목소리가 그녀의소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낼까봐 두려워하는 것같았다,

                                                p 392

 

 

오베와 루데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않아야 하는지 안다는 자부심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라는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p 37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책장을 덮으면서 이 시가 떠올랐다,

까칠하고 세상살이가 서툰 이 나이든 사내가 그렇다

자세히 보고 오래왜 들여다 보아야  비로소 사랑스럽다

그건 오베 이 사내의 입장에서 바라본 모든 이웃에게도 해당된다,

누구든 어떤 대상이든 아주 쉽게 결정이 된다,

좋은 사람 까칠한 사람 어리숙한 사람 똑똑한 사람  매력있는 사람 이용해먹기 좋은 사람

가까이 하면 안되는 사람

모든 것이 빠르게 그리고 단단하게 결정된다,

오베라는 사내에게 이웃은 모두 얼떨어지고 어리숙하며 몸으로 하는 모든 일에는 서투른 주제에 돈을 쓰고 입으로 지시하고 남에게 시키는 일 이외엔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소비에는 기가 막히게 능력을 보이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웃에게 오베란,,,, 까칠하고 까다로운 노인네다,

아내 소냐를 보내고  6개월 후

이제 책임감을 가지고 나가야하는 직장도 없어진 오베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그래서 당연하게 소냐를 따라가려고 한다,

그런데,,

덜떨어진 이웃이 이사를 와서 자기를 괴롭히고 길고양이는 자꾸 눈에 밟히고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난다,

결코 이웃일에 간섭하거나 도와주려고 내 계획을 멈춘것이 아니다,

단지 성격상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제대로 정리하고 죽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죽음이 미루어진다,

그의 말대로 꼭 오늘 죽지 않아도 된다,

내일도 죽기엔 괜찮은 날일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미뤄지면서 오베에게 작은 기적이 생긴다,

그리고 오베를 알고 있는 모두에게 기적이 함께 생긴다,

 

말없고 몸으로 하는 일에 익숙했던 오베가 그나마 사회속에서 사람과 어울리게 만든 건 죽은 아내 소냐였다,

함께 삶을 나누어 가진 관계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오베와 소냐는 보여준다,

자세히 들여다 보고 오래 바라보고 온 부부라는 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표본같은 관계였다

말없이 우직했던 과거의 오베가 어쩌다 이렇게 까칠하고 싸움꾼에 욕쟁이이며  강박증에 갇힌 사람이 되었나는 자분자분 이어지는 과거의 사건으로 드러난다,

말없고 우직한 사내는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심 이후

모든 일에서 싸움닭이 되었다,

무엇이든 그대로 묵과하지 않고 생각하고 말하고 떠들고 나대면서 세상과 부딪친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별로 없어도 멈추지 않는다,

내 반쪽이  무시를 당하거나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불의와 싸우고 세상과 싸웠다, 몸으로 하는 모든 기술에 능하듯이 그는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였고 그것에 더 능했다

어쩌면 21세기 디지털세상에 어울리지 않은 아날로그적 인간이어서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보이고 모든 사람이 도둑놈처럼 여겨지지만 (아이패드를 사러간 그의 행동을 보면 드러나듯이)

그래서 세상에 꼭 필요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까탈스러우 노인네고 이제는 좀 편하게 살게 은퇴하고 비켜나야할 세대였다,

그의 눈에 비친 이웃도 그렇다,

대출을 받아 저당잡힌 채 외제차를 몰고 이상한 옷을 입고 조깅을 하고 자기 집 수리따위는 전혀 하지 못하면서 전등하나를 가는데도 누군가를 돈을 주고 불러야 하는 인종들

너무 뚱뚱하거나 호모이거나 직업도 없이 자전거를 훔칠것만 같은 놈들이다

그들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을 사는 타인들이다,

그런데,, 어찌어찌 일어나는 아둔한 이웃덕에 서로 연결이 되고 서로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리고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마주보고 소리 지르고 싸움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오래 들여다 보고  자세히 보면서 서로 부대끼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타인을 안다는 것은 그렇게 무언가가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 되는 것이다,

첫인상으로 , 내가 살아본 기준으로, 세상이 말하는 잣대로 쓱~ 보고 판단되는 타인은 없다,

그건 내 틀에 맞춰 정해지는 선입관이다,

뭉뚱겨려서 늙은이들이란,,,, 젊은이들은.... 저런 것들은.... 우리랑 달라,,,

물론 어떤 세대 어떤 집단이 가지는 표본적인 특성이나 성격이 있지만

하나하나를 자세히 알아가면 모두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오베와 이웃은 서로 부딪치고 폐를 끼쳐가며 서로에게 다가간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게 나와 다른 이웃에게 다가가고 부딪치며 알아간다,

사실 아직도 세상에 통용되는 법칙은 모두가 아날로그적인게 아닐까

내가 찍어 맛을 보고 내가 만나서 겪어보고 그리고 판단해야하는 것들이다,

미리 분류되고 특징지어지고 나뉘어진 어떤 집단이란 이름으로 손끝에서 바로 머리속으로 인지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딪치고 실수하고 쪽팔리고  켜켜이 쌓여서 알아가는 것이 진짜가 아닐까

오베는 아직 몸으로 그걸 기억한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시대는 바뀌었고 새로운 관습과 질서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오베의 눈에 괴상하게 보이는 이웃들이 그들이다,

그들도 틀린 건 아니다, 다른 것이다,

세상엔 틀린 것도 많지만 다른 것도 많지 않은가

우리가 보지 못한  오베들이 세상엔 존재할진데....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오베일지도....

 

 

 

그러니 한 개인개인을 들여다 보고 이해하자고... 글을 맺고 싶으데

자꾸 걸리는 게 있다,

하나하나는 소박하지만  예쁜 들꽃이라고 치자

그런데 왜 그것들이 뭉쳐있으면 시월   가로수길가에서 밣히고 터지며 풍기는 은행냄새가 나는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오베도 그의 분노를 어쨌든 정당한 곳에 썼을 뿐

그 분노를 스스로 정당하다고 믿는 어떤 곳에 썼다면 은행냄새와 다를게 있을까

문득 드는 생각이

뭉쳐진 덩어리 집단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결국은 편견이라고 하지만

그 편견을 생산해 내는 쪽에는 문제가 없을까?

한두놈의 미꾸라지가 물을 흐린다고 하지만 그 미꾸라지들이 물을 흐리고  난장질을 할 동안 다른 미꾸라지들을 무얼했을까

그러고 나중에 나는 그 미꾸라지들과 달라,,

한데 묶어 보지마.,. 하면?

책을 보며 내 주변의 어른들을 다시 봐야겠다 생각을 하지만

지하철에서 유독 젊은 여자들앞에서만 큰소리로 봉변을 주고 주먹질까지 하는 노인이나

함께 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는 연합을 꾸린 노인들이나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았는데 저희들끼리 어머니연합이라고 조끼입고 부끄러운 짓을 하는 분들이나...  그들도 하나하나는 오베이고 들꽃일까?

세상엔 오래도록 들여다 보아도  똥은 똥이고 구리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것들도 많다

편견없이 살고 싶지만 그 편견이 더 굳어지게 해주는 대상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세사은 다양해서 들꽃도 똥도 함께 존재한다는게  사실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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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를 훔쳐보는 기분

  사실 저렇게 자기 영업의 비밀을 풀어준들.. 무지한 자들에겐 그저 쇠귀에 경 읽기 일 수도..

사실 도데체 어떻게 쓰는지 알아내고야 말겠어!! 하는   결의와 약간의 관음증이 더해져서 책을 집었는데 의외로 다른 소득이 있다,

어떻게 쓰는가? 보다 어떻게 세상을 사람을 보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더 생각하게 한다

혹 그것이 저자의 의도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또 나는 한권의 책으로 계속 헛짓을 한 셈이고

그저 내가 빠진 작은 우물 속에서  보이는 하늘만 본 것일 뿐이고.

그나저나 작가들의 뒷 이야기가 꽤 재미있고

                                       나도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고 그 중 몇 권은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알라딘에서 서재를 하면서 이 분을 모르면 간첩? 아닐까

나도 뭐하시는 분인지 모를 때 참 재미있게 쓰네 하면서 자자주 방문햇었고 티비에 나오는 걸 보고 실물을 알았고 아하,,, 하면서 꼭 잘 아는 사람처럼 친근해졌다

물론 나 혼자....

작가들의 글쓰기 책을 열심히 읽었지만 결국은 내가 펜을 들고 쓰지 않으면 그 책들이 다 소용없는 거란 걸 알면서 이제 글쓰기 책은 그만!!이라고 하는 중

이 책을 만났다.

책을 보니 이미 많은 저서를 낸 작가였지만

나의 무지로 작가가 아니니까 ,,, 블로그에서 쓴 글을 봐도 책 내용과 자신 그리고 책 내용과 이 사회에 대해 정말 절묘하게 그러면서 재미있게 술술 쓰는 그 영업비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펼쳤다,

작가가 아니니 실용적인 도움을 줄거야,, 하는 거대한 착각을 하면서

그런데 결국,,,,

이 분도 열심히 쓰는 거 말고는 길이 없단다

오래오래 읽고 써보고 싪패하고 그러면서 글이 늘었다고 하니,,

모든 노력이나 고난을 가뿐하게 넘어가게 할 비법은 정녕 없는 모양이다

쉬운 길로 가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기타를 배워도 내 손가락 끝이 벗겨지고 물집이 생기는 과정이 필요하고

외국어를 배워도 나는 돌머리구나 하는 자괴감을 넘어야 하는 것이고

운동이든 뭐든 쉽게 되는 건 없다

그것이 유일하게 삶의 공평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쉽지 않게 익힌건 절대 날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 책으로 건진건 저자가 블로거 이전에 이미 작가였다는 것과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책 역시 재미있다는 것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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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대상을 향해 전달되는 상방향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일방적으로 한 쪽이 말하고 한쪽이 듣는 것이라도 상대가 있어야 완성된다,

비오는 날 중 염불하듯 혼자 중얼거리는 것은 의사소통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대상이 원하는 것 알고 싶어하는 것 관심있어하는 걸 생각해야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괜찮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보아야 내 말이 허투루게 사라지지 않고 상대에게 가서 닿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 학부모를 상대로 짧은 이야기를 한다

학부모는 2.3학년 학부모들이고 잠깐 학교에 봉사하러 온 학부모를 상대로 감사 인사와 함께 학교 소식을 알려주는 아주 간단한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교사는 1학년의 자유학기제에 대한 이야기. 학교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이야기

그 다양한 활동들이 생기부에 어떻게 반영되며 그것이 어떻게 특목고를 가는 스펙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학부모 중엔 형제자매가 있거나 입학 예정자가 있어 1학년의 활동이 궁금할 수도 있고

아직 2학년이면 특목고를 가기 위한 준비에 관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한 학년의 절반이상이 지난 2학기 중간에  2. 3 학년 학부모에게는 별 관계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특목고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이미  준비가 끝난 것이고 일반고를 가는 학생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말들이다,

차라리  고입에 대해 아직 정보가 없을 수 있는 학부모에게 일반고 설명회가 있을 거라는 말이나

남은 학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거라든가 하는 걸 말했더라면 좋았을텐데 .. 란 생각을 한다

교사 입장에서는 우수한 아이들을 이야기하면 저절로 우수한 학교가 된다고 믿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한 학교에서 특목고를 쓰는 아이는  소수다,

10%정도가 될까 많아야 15%?

대부분 평범하게 일반고를 가고 평범하게 대학걱정하는  대책없이 해맑고 건강한 아이들인데

간혹 교사들은 특목고를 위해 얼마나 학교가 노력하는가에 목청을 높이고 얼마나 많은 진학율을 가졌는지를 강조한다,

집단에서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거나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를 위해 다수가 소외되는 기막힌 상황이다,

교사는 대상인 학부모가 듣고 싶은 말보다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게 더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고  자랑스러운 이야기이다,

물론 학교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대상을 잘못 골랐다,

시기를 잘못 골랐다,

입학식에 모인 신입생 부모에게는 충분히 어필되겠지만

이미 아이를 학교에 보낸후 막바지에 달하고  내새끼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고 학교에 대해서도 어떻게 하는지 눈치 빤한 학부모 앞에서 특목고를 위한 준비나 비전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대상이 듣고 싶은 걸 말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일방적으로 하달하는 것

이건 의사소통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우수해서 특목고정도는 쉽게 가는 자식을 두지 않아서 꼬아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 이것저것 맘에 안드는게 많아서  지적질만 늘어나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 그 자리에서 교장 선생님의 짧은 말은 영 아니다,

대상도 잘못 골랐고 시기도 잘못 골랐다,

적어도 누군가를 모아놓고 한마디쯤 해야할  경우가 많은  사람은

내가 말을 해야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그들이 듣고 싶은게 뭘까? 알고 싶은 게 뭘까를 잠깐이라도 고민하면 좋겠다,

학부모를 모아놓고 잠깐 감사인사겸 하는 말에서도 그렇게 배려가 없는데

1등부터 꼴찌까지 다양하고 많은 아이들에게는 과연 배려가 있을까 싶은

꼬인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머리를 싸매면서 시험지를 풀어내려는 녀석이나  받자마자 쓱~ 훓어보고 이름만 쓰고 잠드는 녀석이나 다들 귀한 자식이고 귀한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도 대부분은 소외되고 말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괜히 혼자 불쾌한 하루였다,

난, 너무 지적질만 하는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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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왕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사도세자가 뒤주에  들어가 결국 죽는다는 대단한 스포를 알면서도 보러가게 되는 이야기

그 영화를 보았다.

역사적인 어떤 사실 혹은 세대간의 문제 뭐 이런저런 평이 많지만

내가 본 영화  '사도'는 중년 가장의 비애였다,

 

잠시 딴 소리 하자면

송강호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아버지는 늘 짠하고 찌질하다,

효자동 이발사

우아한 세계

관상

변호인....

기억나는 이런 작품에서 어떤 사회적 배경이나 문제들을 빼버리고 그냥 한 가정의 가장이고 어떤 아이의 아비로서의 송강호는 늘 고군분투한다,

고지식하게 남의 머리를 깍아주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위해 건달짓을 하고

아들 하나 지키겠다고 하다가 결국은 권력암투에 말려들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려고 세상과 맞장뜨기로 하는

그런 늘 애쓰는 아비였는데 늘 그 아비의 마음이 아들에게 (혹은  딸에게 ) 가 닿지 않거나

너무 늦게 닿거나 그냥 허공에서 허지부지 사라진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랬다,

아들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는데 그래서 정말 애쓰고 애쓰는데 그 마음은 허공에서 스르르 없어진다,

아비는 아들과 통하려고 노력한다,. 잘되라고 잔소리도 하고 매도 들고  모른 척도 하고 모든 걸 하지만  아들에게 닿는건 아비의 마음이 아니라 행동들이고 말들이다,

아비는 열심히 달을 가르키는데 아들은 정작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

근데 아비는 모른다

자기가 달을 보라고 가르키는데 사실 그 굵고 투박한 손가락이 달을 가리고 있다는 걸...

손가락과 달이 보는 위치에 따라서 가려지기도 하고 가리키기도 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내가 보는 장소에서 내가 보는 것이 전부이고 그걸 아들의 자리에서도 그대로 보일거라고 굳게 믿을 뿐이다, 왜냐하면 아비는 그렇게 자기 아비에게 배웠으니까...

세상 아비들은 스스로 자식과 소통이 잘 되는 멋진 아빠라고 믿는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자식들은 내 아비가 잔소리가 많고 자기이야기만 하는 꼬장꼬장한 인간이라고 판단할 뿐이다.

영화도 그렇다,

아비는 밤새 자식을 위해 책을 쓴다,

그런데 자식은 놀기 바쁘고 개나 그리기 바빠서 아비가 만든 책은 저만치 혼자 펼쳐져 있다,

아비는 속이 상한다,

우라질 노무 새끼....

그래도 참는다. 아니 참는다고 믿는다,

나는 많이 참는다,

나는 나랏일때문에 가족을 챙길 수 없다. 한 나라의 왕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면 집안일을 좀 알아서 잘 챙기고 잘 하면 어때서 

나중에 보면 나만 빼고 저희들끼리 꽁꽁 단합해서 나만 소외시킨다, 나만 잘못했다고 한다

모두 내 잘못이라고 만 하고 저누무 자식을 감싸고 또 감싼다

저래서 자식이 망가지는 걸 모르니 내가 나설 수 밖에..

 

영화에는 또 다른 아비가 있다,

그는 나중에 사도세자라고 불린다,

그에게는 아비와의 갈등이 가장 큰 과제이다,

아내는 그저 세손만 끼고 세손 세손... 세손이 우선이다,

나도 가족이다,

나도 힘들고 괴로운데 나만 참으면 된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된건 다 아부지 때문인데 나더러 참으라고 한다,

이게 가족이냐...

도리만 이야기하고 세손을 생각하라고 하고..

나도 내 새끼 귀한 줄 알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야 내 새끼도 있는게 아닌가

자식을 위해 희생만 하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내 자식이 내 바짓가랭이를 붙든다

내가 그 아이를 싫어하는게 아니다,

그가 테어난 기쁨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그에게 줄 부채로 만들었다.

나는 그런 아비다, 그런데 나를....

 

두 아비는 참 외롭다, 괴롭다,

아무도 나만 이해해 주지 않는다,

저희들끼리는 이해하고 이해받고 서로 꿍짝이 잘 맞는데 나만 외톨이다,

이건 다.. 저누무 자식때문에... 저누무 노인네 때문에...

아비가 말했다

"왕이라고 언제나 칼의 손잡이를 잡는 경우는 없다 칼 끝을 잡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한다"

아들이 중얼거렸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짧은 한마디가 각각의 마음이다,

서로 통할 수 없는 마음이다,

결국 영조가 외친다,

이건 집안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적 비극은 시작된다,

왕가의 막장드라마가 펼쳐진다,

아들을 죽인 아비

아비를 죽게 한 자식

왜 죽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이걸 고독한 가장의 외로움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하고 싶다. 소통하지 못하는 가장의 비극이라고 하고 싶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이고 보는 사람의 관점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읽는 이의 해석이 덧붙여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많은 다른 스토리를 가진다,

역사는 그것이  늘 올바른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시각으로  정의롭기도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하다

역사와 역사 소설이 다르듯 역사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다르다

사실 이준익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여간 당파싸움으로 인한 사도세자의 죽음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무언가를 그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고

역사 속의 어떤 사실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 영화가 되거나 소설이 되면서 무언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을 보거나 읽은 누군가에 의해 또다른 의미가 발견되기도 한다

나는 그냥 이 영화 내내  한 가정의 가장이 생각났고 그 가장의 비루하고 처절한 견디어냄이 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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