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은지 오래 지난 후 영화를 봤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영화였고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이었고 추리물이었고,,,, 안 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책은 읽었지만 시간이 흘러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다,

두꺼운 책 세권을 영화 전후편으로 압축하다보니  많은 인물이 줄어둘었고 내용도 큰 흐름을 해치지 않은 범위에서 많이 바뀌었다,

영화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책 말미에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모교로 돌아오는 이는 노다 켄이치인데 영화에서는 후리노 료코로 바뀌었다, 주인공이니까,,,  영화니까 인물을 압축하는 의미에서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책과 너무나 다르 일이다,

별거 아니라고.. 그 당시 재판을 했던 누구라도 시간이 흘러 그 때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일이고 누구든 모교의 교사가 되어도 어색할 일이 없지만 그래도 내게는 료코보다는 켄이치였다,

주인공이 아니었고 늘 소심하고 눈에 띄이지 않은 아이였고 어쩌면 무서운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순간을 겪었고 그리고 주인공은 아니었으니 스스로 재판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간바라를 도와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마주하고 그리고 변한 인물이다,

극적이지 않고 잊히기 쉬운 인물이지만 그래서 그 아이가 나중에 교사가 되어 그 때를 당당하게 회상하고 참 좋은 경험이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음을 기억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영화도 책과 다르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눈내린 교정에 동급생이 죽었다.,그걸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노다 켄이치였는데 책에서는 료코와 함께로 나온다,. 죽은 가시와기는 등교거부를 하는 중이었고 그래서 경찰조사 결과 자살로 마무리 지었지만 그 것으로 아이들에게는 그림자가 일렁인다,

그렇게 지나가던 사고가 고발장으로 사건이 되고 불량학생 오이데 슌이치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사람들은 술렁인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고발장을 쓴 사람이 누구냐로 관심이 모이고 누군가가 떠오르지만 학교는 덮기에 급급하다. 학교나 경찰의 의견은 누구도 다치는 학생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거였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실은 계속 스스로 몸집을 불려나가고 더구나 좋은 취재감이라고 냄새를 맡은 언론에서 덤벼들면서 학교도 학생도 상처를 입고 서로 믿지 못하고 소문이 덩달아 몸을 흔든다,

그리고 또 학생이 죽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재판을 열어 사건이 어떤 것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영화속의 아이들도 제각각 아픔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기위해 진실과 마주하기로 하고 사건을 풀어나간다, 두려워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사건속으로 들어가서 마침내 진실의 얼굴을 마주한다,

어른들은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사실을 덮어버린다, 그냥 넘어가자

어른의 입장이고 생각이다,

누구 하나하나가 아니라 뭉뚱거려진 아이들 학생들이 다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건 내 눈에 상처가 보이는 건 싫다는 거고 두려움을 회피하는 일이었다,

그저 내 눈에 내 앞에서 보이지 않고 무탈하다면 그만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해야할 말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말이 목을 통해 나오는 순간 누군가는 다친다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두려움이었지만

그말을 꿀꺽 삼킨 아이들에게 그 말들은 괴물처럼 커져가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그 무게가 재판을 하면서 하나하나 내려진다, 그건 등에 지고 있는 것 보다 더 두려운 일이지만 아이들은 그걸 해냈다,

그리고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는 것

영화는 그렇게 마무리 된다,

 

다시 소설을 읽었다, 한 번 읽은 것이라 꼼꼼하게 읽는대신 인물의 대사를 읽고 설명이나 묘사는 그냥 휙휙 지나쳤다,

사실 소설이 이렇게 두꺼운 세권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처럼 사건을 압축하고 인물을 줄여서 사건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더 가독성을 높이고 몰입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작가는 ... 어쩌면 작가는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이 있고 소문이 있고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어른들에게 맞서면서 아이들이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 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거 같았다,

 

주리는 오이데 슌지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짓말을 고집해서 가즈히코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다,

왜? 왜 그러는 거지?

미움받던 미야케 주리를 그는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3중학교에서 그녀와 나란히 앉았던 그 누구도 아닌 가즈히코가 그녀를 이해했다, 같은 반의 그 누구도 진심으로 헤아려주지 않았던 그녀의 속마음을 그만이 헤아려 주었다,

이 법정에서 가즈히코는 오이데 슌지가 교내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괴롭히고 폭력행위를 저질렀는지 실상을 폭로했다, 3중학교의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 보고도 못 본 척 했던 것을 슌지에게 직접 말로 들이대며 비난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 고발장을 써서 피고인을 함정에 빠뜨린 게 누구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고발자가 누구든 이상하지 않다. 피고인은 그럴 만한 행동을 해왔으니까

그 마음이 주리에게 통했다, 그래서 그때 주리는 정신을 잃은 것이다, 간바라 변호인의 마음을 알아챘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위해 피고인에게 그런 신문을 했는지 알아챘기 때문에

너는 나쁘지 않다, 가즈히코는 신문에서 오이데 슌지를 호되게 비난하며 주리에게 그렇게 전한 것이었다, 너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너는 나쁘지 않다, 너는 그저 막다른 궁지에서 빠져나오려고 한 것 뿐이다, 그러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너는 나쁘지 않다, 옳은 행동은 아니었지만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간바라 가즈히코가 유일하게 그런 말을 해주었다, 겉치레가 아니다, 그때뿐인 위로도 아니다 오이데 슌지를 비난함으로써 ㄱㅏ즈히코는 주리에게 그런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이해한다고

미야케 주리의 거짓말에는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 영혼의 생사가 걸렸던 이유가 있었다, 주리는 슌지에게 괴롭힙을 당했고 괴물이라고 멸시 당했다, 학교라는 감옥안에서는 그녀가 도망칠 곳이 없었다,

주리의 증언은 거짓이지만 그 안에는 진실이 있다, 오이데가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었다고 해ㅆ다. 그것은 분명 주리가 눈으로 본 광경이고 귀로 들었던 소리다, 그날 밤 어둠에 휩싸인 옥상에서 가시와기 다큐야에게 던진 조소와 폭력이 ㅇ니라 미야케 주리가 이 학교에서 보낸 세월 속에서 수도 없이 겪어온 것이었다,

도망칠 수도 저항할 수도 업소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미야케 주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었다, 스스로 사라지건 오이데 슌지의 존재를 지워버리거나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주리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반격에 나섰다, 그것이 그 고발장이었다, 게데가 미야케 주리에게 그 기회를 준 것은 간바라 가즈히코였다, 가시와기 다쿠야가 죽은 직후 그가 바로 진실을 밝혔다면 주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궁지에 몰려 주위의 미움을 받을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는 없어도 거짓말장이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시잉 마쓰코를 그 거지스로 끌어들여 결국 잃고 마는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p   613-614

 

 

간바라가 주리의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미미 여사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마음을 읽어 주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야기가 늘어지고 조금 중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야기속의 아이들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누구나 그것을 누군가 들어주기를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로쿄도 주리도 노다뿐이 아니다, 휙 지나가는 인물 모두는 제각각 자기의 아름을 가지고 있다, 하나하나 몇장면 나오지 않아도 이름이 있고 스스로 빛나는 존재이고 해야할 말이 있고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걸 미미 여사는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조금 더 압축하고 불필요한 인물을 뺀다면 영화처럼 집중해서 사건에 몰입하겠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

로쿄도 간바라도 그 나이 또래의 얼굴을 불쑥불쑥 드러내고 있었고 검사 조수도 변호인의 조수도 주인공 못지 않은 기지와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누군가가 과거에 받은 왕따의 아픔도 있고 폭력을 당하고도 후환이 두려워 어서 결론 지은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비겁함이 남아있었다,

아이들은 제각각 자기가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마음을  간바라가 주리에게 해 준것 처럼 후지노가 노다에게 해준 것처럼 별거 아닐지라도 니 마음을 알아.. 하고 그 아픔에 귀를 기울이면 아이들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깊이 간직한 그 말이 나에게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고 세상을 마주할 힘을 얻는다, 오이데 역시 그저 불량학생 폭력학생이라는 가면뒤에 숨은 약하고 겁이 많은 얼굴을 드러낸 것도 누군가 그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것이 힘이 되었다,

 

누구도 이길 수 없고 상처만 될거라는 재판은 어른들의 우려대로 상처를 남겼지만 대신 진실을 찾아내는 일 마주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도 함께 얻었다,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을 알고 우리의 말을 하고 우리의 말을 들여주는 것.. 그것이 공감이다,

아이들은 그걸 배운 것이고 어른들은  머쓱하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며 예전에 봤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크리스마스가 되고 겨울방학이 되면서 모두가 돌아간 학교 기숙사에 남은 몇명의 학생들 사이의 긴장감 그리고 사고로 학교로 들어온 의사 그리고 시작되는 게임

괴물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좋은 학교의 똑똑한 아이들은 스스로를 믿으며  수수께끼를 풀어가지만 그들은 그저 문제 풀이에 급급했다 누구도 진심으로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거 같다. 모두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그걸 드러낸다는 건 더 무서웠다, 아닌 척 괜찮은 척 하면서 아이들은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과연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만들어진것인지 자문할 겨를도 없이  이미 괴물이 어른의 손에 조종당하면서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좋은 결말은 아니었던 거 같다.

아마 시작이 눈이 쌓인 학교 그리고 그 눈속에 묻힌 시체라는  비슷한 모티브때문에 떠오른 건지 모르겠다만,,,,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들어주는 것

그리고 하나 더 욕심을 내 본다면,,,,,

그건 니가 잘못한거야, 그러면 안되는거야

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

그리고 행동하거나 행동을 말리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저 아이들 나이에 저런 걸 알았다면,, 난 아마 대단한 어른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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