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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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라는 사내가 있었다.

학창시절 중거리 달리기 선수였다가 아킬레스건에 상처를 입고 운동을 그만 둔후 운동용품을 만드는 회사에 취직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대단한 감정기복을 겪은 것 같지 않다,

해왔던 운동을 포기해야할 때 느껴야 할 좌절감이라거나 패배감 혹은 새로운 삶을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도 눈에 띄지 않는다,

회사의 영업사원이 되어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며 예전 내가 했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영업을 하고 성실하게 그들의 요구를 듣고 제품에 반영하는 일

작지만 성실하게 일하자는  사훈을 가진 창립자의 직원답게 그렇게 성실하다,

아내와의 사이를 의심하지 못한 어느 날 순간 뒤통수를 맞는다,

아내가 가장 친한 동료와 바람이 났고 그 장면을 목격했음에도 기노는 그냥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집을 나와버린다, 그리고 끝

이모의 집을 빌려 작은 바를 열고 늘 그렇듯이 조용하고 고요하게 손님을 만나고 가게를 영업하며 살아간다,

고양이가 찾아오고 이제 단골도 제법 생기고.. 그리고 뱀이 나타나고 기노는 길을 떠난다,

자의가 아니다, 누군가의 조언 거절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오는 조언에 무작정 길을 떠난다,

그리고 낯선 도시 낯선 밤에서 이제 오롯이 자기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는다,

삶의 어떤 모퉁이에서도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던 기노는 낯선 장소 낯선 시간에서 자기에게 무엇이 결핍되었는지 알아간다,

그건...... 감정이다,

 

이상하게 헤어진 아내나 그녀와 동침한 엣 동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일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제대로 뭔가를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졌지만 이윽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이런 날을 맛닥뜨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도데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렷하게 와 닿지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듯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로 맥없이 떠내려 가지 않도록 단단하게 묶어 둘 장소를 마련하는 정도였다, '기노'라고 하는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이 그 구체적인 장소가 되었다.

                                                                                p 227

 

 

 

상처받았지 조금은?

아내는 그에게 물었다,

나도 인간이니까 상처받을 일에는 상처받아

기노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반은 거짓말이다,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놀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맛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뱀들은 그 장소를 손에 넣고 차갑게 박동하는 그들의 심장을 거기에 감춰두려고 하고 있다.

                         p 265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에게서 멀어져 있던 것이었다, 그래 나는 상처받았다, 그것도 몹시 깊이 기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어둡고 조용한 방안에서

그동안에도 비는 끊임없이, 싸늘하게 세상을 적셨다,

 

                                            p  271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건 워터파크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며 나와 핸드폰을 확인한 후였다,  아직 머리에는 물기가 다 마르지 않았고  오래 놀고난 후라 아이들과 나는 배가 고팠고피곤한 상태였다,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열개 가까이 찍혀 있었고 언니의 짧은 메세지가 있었다,

 

"오늘 12시 경 아버지 돌아가셨다, 준비하고 부산에서 보자"

 

아침에 워터파크 안에 들어가기전 아버지께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문자를 넣었다,

애들 방학이라 놀러왔다고... 아버지는 더운데 어떻게 지내시냐고.. 힘들어도 운동도 하고 집안에서라도 많이 움직이시라고... 그렇게 넣은 걸 아빠는 보고 가셨을까?

정신없이 짐을 싸서 내려가는 내내 내가 붙들린 생각은 한가지였다,

"울음이 안나오면 어떡하지?"

나는 상주인데.. 울음이 안나오면 어떡하지?

내려가는 기차안에서 내내 그 걱정만 하고 있었다,

다행이 눈물을 적당한 순간 적당하게 잘 나왔고 의외로 상가라는 곳이 울음만 존재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상주는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손님을 맞아야 하고 준비를 해야하고 사무적인 처리도 필요하고... 그리고 간간히 웃음도 있었다, 삶이라는 것이 늘 한가지 감정만 한가지 상황만 차례차례 순서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나고 아버지 유산 정리와 금전적인 정리를 위해 서류를 보내야 할 일이 있었다,  등본이며 인감을 끊어서 우편으로 보내면서 왠지 그렇게 보내는 건 너무 박정하다는 생각에 우체국  대기 의자에 앉아 급하게 노트를 찢어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그때.. 엉뚱하게 울음이 터졌다,

엄마에게 그때 뭐라고 썼을까?

그냥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여기 서재에도 몇번 썼던 기억이 있던 내가 알게 된 아버지 모습

어쩌면 아빠는 무뚝뚝하고 가족에 대해 무감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아빠는 아주 많이 수줍은 사람이었을 거라는 것

아빠는 잘난 척 하느라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틈으로 섞이는 것이 어려워서 책속으로 숨었을 거라는 것

그걸 그때는 몰랐다고...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빠를 닮은 것도 어쩌면 우리는 비슷하게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것이 어렵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했고 감정을 토해내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 균형을 맞추고 하는 일에 너무 에너지를 빼앗기는 존재들이라는 것 그래서 표정은 무뚝뚝해지고 말이 없고 그저 책속에 눈을 숨길거라는 걸...

왜 그런 편지를 엉뚱하고 뜬금없이 썼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빠를 생각하며 나를 생각했고 그렇게 닮아서 그렇게 미웠다는 걸 그 때 그 우체국 낡은 의자에서 알아버렸던 거 같다,

아빠가 돌아가셔도 오해받는게 싫다는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오해가 어쩌면 오롯이 내가 받고 있는 오해일지 모른다는 무의식속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사람들 틈에서 울기가 쉬웠다, 의외로,,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내야할 우편물과 택배에 더 정신이 팔려서 구석에서 누가 울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편지를 엉망이 된 채 서류들과 엄마에게 보냈다,

나중에 엄마가 그 편지를 읽고 한참을 울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땐 담담하게 들었다,

 

모두가 함께 영화를 보러갔다,

다들 울었다, 충분히 슬픈 상황이었고 내용이었다,

나도 슬픔은 느꼈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가가 뻑뻑해왔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왈칵 하고 느끼는 순간 내 속의 또 다른 내가 나를 막았다,

그만.... 우는 거 아니지,,

그리고 눈물은 쑥 들어갔고 나 혼자 손수건도 휴지도 필요없었고 영화관에 불이 들어왔을 때 혼자 얼굴이 멀쩡했다,

그게 또 부끄러웠다,

나도 감정을 느꼈는데,,, 나도 똑같았는데 나는 울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울고 싶은 나와 동시에 브레이크를 거는 내가 있다,

감정은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건 못난 짓이고 부끄러운 것이었고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이다,

그렇게 서서히 감정을 잊었다,

머리속으로 이성적으로 감정을 알고 분류하는 일은 쉬웠다,

그러나 그걸 느끼고 표현하는 일은 두렵고 어려웠다,

통제하고 절제하는 일이 너무 쉬웠고 그게 편했다,

이성적이라는 것이 더 멋있고 쿨하다는 표현이 더 우위를 지녔다,

찌질하고 감정을 흘리고 다니고 구질구질하게 구는 건 필요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냉정해졌고 말투가 딱딱해지면서 그걸 즐기기 시작했다,

 

한번도 니가 감정이 격해지거나 가라앉는 걸 본 적이 없어, 늘 한결같고 늘 그랬던 거 같아

 

오래 알고 지낸 선배의 말이었다, '나도 화를 내고 울고 웃는데 왜 그럴까?

어느새 나는 늘 어느 선에서 기복이 없는 감정을 가졌던 거같다,

그리고 감정을 절제하는 건 엄마라는 이름으로는 참 부적절한 것이었다,

그걸 아이가 다 크고 나서 알았다,

내가 키운 내 아이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의젓하고 착하다

그런데 대신 남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을 불편해한다,

이제 나이먹은 나는 머리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이들입장에서는 어려웠다,

여자아이들 사이에 삐지는 일 토라지는 일 징징거리고 매달리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도 여자면서,.. 저도 저렇게 느끼면서...

그걸 설명하기 힘들었다,

감정도 느낌도 .... 표현하고 배워야 하는 거였다,

 

나는 언제부터 감정을 눌렀는지 돌이켜 보았지만 기억나질 않는다,

기억을 해집어도 감정적인 내 모습은 별로 없다,

 

기노는 언제부터 이렇게 딱딱하고 무미건조해졌을까?

기노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내의 불륜장면 그 이전 운동을 그만 둔 장면에서 담담하게 행동했던 그가 쉽게 이해된 내가 두려웠다,

상처받고 있다고 아프다고 느끼지만 실상 그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된 기노의 막막함

그건 비가 올듯 말듯한 불안하고 습한 날씨 처럼 불쾌하고  안정감이 없다,

처음 이 단편을 읽을 때 가장 편했다, 기노의 삶이 그리고 나중의 변화가 무리없이 이어지고 이런 삶이 부럽네 하는 생각마저 했었는데

다시 읽으며 이렇게 무언가를 잃고 놓치고 살면서 모르고 산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기노에게는 가미타가 조언을 하고 뱀들이 암시를 한다

나에게 가미타와 뱀들은 무엇일까....

기노는 자기를 찾을까?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어려운 길은 자기를 찾아 들어가는 길이 아닐까.

기노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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