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홈 이삭의 집에서 살고 있는 영재는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

나이가 들어 나갈 때가 된 것

그러나 영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종교단체에서 장학금을 노리며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엄마는 아빠대신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고 집을 나가버렸다

동생은 아직 어리고  아버지는 언제든 기회를 봐서 동생도 영재가 있는 곳으로 보내려고 한다

영재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이삭의 집이 마냥 편한 것도 아니다,

영재는 이미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 알고 누구에게 잘 대해줘야 하는 지를 알고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를 알고

누구나 생각하듯 착한 소년이 아니라 구호품을 팔아넘기기도 하고

누구에게든 무릎 꿇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영화 속에는 그리 악한 사람이 존재 하지 않는다

영재의 아버지는 제외하고

자식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언제든 누구에게든 자식을 떠넘기고 싶어하는 그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 짐승도 아직 어린 제 새끼는 돌보는데,,,

영재가 있는 그룹홈 부모들은 글쎄 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계속 불편했다,

그들에게 아이를 돌보는 일은 사명감이나 깊은 애정이 아니다,

9 to 5의 직업생활같다,

아이들이 있으니 의무감으로 돌보고 이쁜 짓을 하면 이뻐하고 미운 짓을 하면   그대로 미워한다,

나갈 때가 된 아이들에게는 무심코 부담을 주고

그들에게 아이들을 맡은 일은 그냥 맡은 의무일 뿐이고 아무런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

성당의 젊은 신부도 그렇다,

선하고 여려보이는 인상으로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영재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하고 돌봐주려고 하지만 그건 종교인으로서 갖는 의무감같다,

신의 사랑과 자비를 배풀어주는 것으로서의 의무이지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예의나 애정은 아니다, (너무 심했다면 미안하다)

엄마조차 일하지 않고 게으른 남편 대신 애쓰다 허리까지 다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다고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은 전혀 없다,

누군가를 향해  너  나빠!!! 하고 말하고 싶지만 그 구체적인 대상은 모호하다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은데 딱 누군가를 꼬집을 수 없다,

그들은 제각각 최선을 다하는데 그게 너무 무섭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거든 너를 위해 희생하고 있거든...

하며 두눈 똑바로 뜨고 억양없이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보는 나도 이렇게 숨이 막히고 힘든데 그들과 살아야 하는 영재는 오죽할까

돌아갈 곳이 없고 어쨌든 살아남아야 하는 영재는

스스로 제 몸을 부풀린다,

황소개구리처럼

계속 몸을  부풀리며 커져간다,

성당에서는 착하고 신앙심 깊은 소년이 되어야 하고

이삭의 집에서는 언제든 무를 굽히고 걸레질을 하고 비위를 맞춘다,

가족은 남보다 미운 존재이고 그룹홈과 성당생활은 그냥 살아가야할 필요한 공간이다

그렇게 영재는 거인이 된다, 원치 않게,,,,

영재도 좋은 소년은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물건을 훔치고 친구들은 그 물건을 팔아주는 대상일 뿐이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누구든 배신할 수 있고 가족도 보지 않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잘못하지 않은 그들을 미워하고 싶은 만큼 이쁜 짓을 하지 않은 영재를 미워할 수 없다.

그냥 괜찮다고 괜찮다고

숨을 쉬라고 편하고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너의 숨을 쉬어보라고 해주고 싶었다,

원치않게 어른이 되어가고 거인이 되어버린 소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가끔 아이들이 얼른 철이 들기를 바란다,

얼른 어른의 말을 잘 알아듣고 한마디를 하면 열마디를 이해하고

모범적인 태도와 학구열로 진도도 선행으로 쭉쭉 뽑아 놓고

나를 이해해주고 위안해주길 바란다,

아이가 나를 넘은 거인이 되길 바라면서 그 거인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는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속에서 거인들이 얼마나 외로울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거인의 몸집에 힘에 감탄 할 뿐이다,

 

가족은 누구보다 짐이고 불행일 수도 있다는 것

공감받지 못한 아이는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고 저 혼자 제멋대로 자라버린다는 것

자란다는 것이 이보다 슬플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영재가 잘 클거라도 믿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센척 하거나 비굴해 질 수 있는 영재지만

누구보다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를 챙길줄 알거라 믿는다,

마지막에 그룹홈 아빠의 무심하고 무정한 한마디

"너 자신을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세상엔 너보다 더 불쌍한 사람도 많다"

무심하지만 아프지만 사실이다,

영재는 마지막 떠나며 자기의 옷가지를 동생에게 준다,

줄 게 그것밖에 없고 더 해줄 수도 없다,

 

요한은 영리하고 계산적이지만 영재는 한없이 여리다

절실하게 요한으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저 영재일 뿐이다,

그 소년의 여린 표정이 자꾸 마음에 걸리지만 내가 할 일은 건투를 빌 뿐이다,

 

최우식이라는 배우를 처음 본 건 옥탑방 왕세자에서 박유천을 따라온 내시역이었다,

야리야리한 몸매와 눈웃음으로 극의 감초역활이었고 꽤 귀여웠다,

그냥 그것 뿐이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그 눈꼬리를 계속 우울하게 내리고 있다,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한없이 순해보이는 그 눈꼬리가 자꾸 걸려서 계속 보게 된다,

다음 작도 기대되는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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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판도라의 상자를 정말 매혹적이다,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쉽게 열어볼 수도 없다

열어보자니  알아야 하는 고통을 알게 될 것이요 모른 척 하자니 무지해지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

양날의 검이다,

 

완벽한 주부이자 엄마로 일상을 살아가는 여자 세실리아는 다락에서 발견한 남편의 낡은 편지를 앞에 두고 고민한다, 열어 볼것인가 말것이간

남편과 사촌과 함께 사업을 하는 테스는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남편과 사촌이 사랑에 빠졌다

안젤라는 20년도 전에 딸이 살해를 당했고 그 이후 살아도 산것 같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세 사람의 제각각의 판도라는 열렸고 그래서 고통스럽다

알지 못해도 그만인 것을 알아버렸을 때 느껴지는 절망감

그 속에서 세 사람의 인연을 이어지고 꼬인다,

 

어찌어찌 사건이 이어지고 세실리아와 남편 존 폴의 딸 폴리에게 사고가 일어나면서 결말된다.

이것이 결국 악연의 꼬리를 문 정당한 댓가라고 하기엔 또 너무 참혹하고  아프다.

어느 순간 모든 비밀과 비밀들이 정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사건이 터져버린다,

비밀을 털어버리면 홀가분하기만 한건 아닌 모양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자유가 흘러들었다고 해서 독일이 행복해진 건 아닌것처럼 말이다

어떤 장벽은 깨지면서 더 큰  상처를 만들기도 하고

모든 것이 풀렸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판도라의 상자는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알아서 좋은 것

몰라서 다행인건 세상에 수 없이 존재한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

어쩌면 무지해서 행복할 수도 있겠고 꼭 누군가에게 고백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든다

 

세실리아는 위기의 주부에 나오는 브리를 연상시킨다,

완벽한 가정 아름다운 딸들과 자상한 남편 그리고 사회적인 성공과 사교성을 모두 갖춘 여자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면서 가지는 고통이 참  거시기하다.

테스는 남편과 사촌의 배신에 치를 떨며 친정으로 돌오지만 스스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비밀을 가지게 된다, 다시 남편과 결합하지만 그녀의 비밀은 그대로 판도라의 상자다

안젤라는 고통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그 진실을 마주하고 이제 털어낼 때가 되었음을 안다, 다만 더불어 자신이 고통속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누군가 나를 보며 고통받고 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대단히 통속적이고  유쾌히지 않은 결말이지만  그게 현실아닐까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다 남같지 않다

누구를 미워하며 괴로워하고 무언가를 알고 싶어 갈등하고  깔끔하고 쿨하게 떨치고 싶은데 자꾸 발목을 잡고 싶은 찌질함이 공존하는 것

그게 삶이라서 일거다.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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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내 유년시절은 4번의 전학으로 기억된다,

대구에서 서울로 다시 대구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서울로 유학하고 직장을 다니고....

어린시절 대구라는 지역적 특성에 물들기도 전에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 잔뜩 주눅이 들었었다

나름 잘 살았다고 믿었는데 서울은 별천지였고 아이들은 너나 할거 없이 예뻤고 말투도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거랑 똑같았다, 나는 지방에서 온 아이가 아닌척 하고 잘 묻어서 다녔지만 늘 한구석에 들킬까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내 촌티를 그들이 알아차릴까봐 전전긍긍했던 거 같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사교적인 것도 아닌 나는 다가오는 친구들이랑 친했고 다가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고 늘 그저 그런 아이였다,

그리고 다시 대구로 돌아갔지만 그땐 서울에서 온 낯선 아이가 되어 그 무리에 끼질 못하고 잠까 있다가 부산으로 갔다,

부산은 대구와 같은 경상도지만 많이 달랐던거 같다,

조금 더 억쎄고 솔직하고 남의 바운더리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었다,

그 곳에서 나는 조금은 당당한 척 하고 살았지만 그래도 늘 타향같은 느낌이었다,

바다도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았다,

여름방학때 친척들이 놀러와 함꼐 놀던 바다는 그냥 휴가지같아서 그들이 떠날 땐 나도 함께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늘 나는 남겨졌다,

그래도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도 거칠어지고 많이 닮아갔다고 느끼는 순간 서울로 유학갔다,

서울은 익숙한 곳도 있지만 낯설었다,

일단 부산이나 대구에는 없던 눈이 내렸고 내 생일 있는 3월도 욕이 나오게 추웠고 눈까지 내렸다, 서울에서 처음 맞는 내 생일에 눈이 내렸던 게 기억난다,

그 광경이 너무 낯설어서 혼자 오래오래 눈을 보면서 망연자실했었다,

그 이후 나는 눈이 싫었다,

차고 미끄럽고 지저분해지는 눈이 좋아질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낭만도 없고 애교도 없는 무뚝뚝하고 어떤 지역색도 가지지 못한 여자어른이 되어갔다,

 

이후 취직하고 결혼하고 서울살이를 하다가 신도시로 이사왔다,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서로 폐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교양이라고 여기던 (적어도 나에게는) 서울에서 옮겨온 신도시는 처음 부산을 내려갔을 때만큼 낯설었다,

서울이랑 멀지도 않은 이곳 사람들은 억척스러워보였다,

누구나 혼자 다니는 사람이 안보였고  정보도 곧잘 풀어주고 물음에 대답도 시원시원하고 무리에도 잘 끼워주었지만 이상하게 곁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함께 있어도 이방인이었다,

아이들도 솔직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똑 부러졌다,

신도시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고 특유으 문화가 있다고 했다,

주변인이라는 것 뿌리째 이식되어진 식물처럼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미 20년이 된 신도시지만 그런 척박한 땅에 삭막한 아파트가 삐죽 올라올때 부터 익혀왔던 날 서고 날것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 역시 뿌리채 다시 심어져야할 상황에서 모든 것이 낯설고 어지러웠다, 그들은 이미 다시 심기가 끝난 상태였으므로...

 

이 책은 그 신도시의 시작부터 살아왔던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논밭뿐인 곳에  엉뚱한 바벨탑처럼 아파트가 솟아나기 시작했을 무렵 파주에서 신도시로 통학을 하던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디로든 옮겨심기가 되지 않고 그자리에 뿌리를 내린 친구들의 이야기는 부러웠다,

읽는 동안 작가가 쓴 발랄한 문체와 대화들 그리고 인물들의 톡톡 튀는 개성에 빠져서 부럽다 부럽다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들이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느끼고 배신감을 느끼고 아픔을 겪으며 함께 성장한다는 것

서로 데면데면해질 때도 있지만 결국은 함께 나이를 먹고 변화하는 모습을 함께 보고 시간을 나누어 가졌다는 것이 몹시 부러웠다,

어릴 적 잦은 전학으로 어떤 유년의 친구도 없고 중고등 동창도 만나는 이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그렇게 오래 함께 할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웠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모였다, 각자 그런 일도 일어난다는 것을 통감하고 나서야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엣친구들이 제격인 걸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다,

(중략)

위는 그렇게 모여서 함께 망가지고 고장나고 그러다 한 사람씩 사라질 것을 예감했으나 이른 포기의 달콤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어서 그리 무겁지 않았다, 열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하나씩 운이 좋으면 길게 머물거고 아니라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담담하게 치킨을 먹고 생일 파티를 하고 경조사를 챙겼다,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살아졌다,

그 사이에 다시 가가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할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새로운 그룹을 형성하고 먼 도시에서 살 것이었다, 영운히 쿨한 갱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해도 어쟀건 나는 거기 소속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친굳릉 만나는게 어째서인지 편안했다,

서로의 결점에 대해 너그러워졌다, 민웅이의 무기력에 대해 찬겸이의 엘리뜨 주의에 대해 주연이의 쓰디쓴 부분에 대해 송이의 방랑벽에 대해 아마 친구들도 나의 어떤 부분을 참아주고 있을 것이다, 일단 애도장애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그 시기를 참아준 것만 해도 고맙다, 변화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지도 직억을 하지도 않았다, 서로의 얕은 수와 비굴한 계산까지도 웃음으로 넘겼다, 못나면 못난 대로 살아 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 껏 멀어졌다가 다시 가깝게 되고 나서 우리는 늘 서로의 안위를 걱정했다,

늘 함께 하지 않더라고 무슨 일이 있을 떠오를 수 있는 얼굴이 있다는 건 든든한 빽과 같은 것이다, 이들은 함께 아픔을 겪었고 그래서 서로 마주하기 힘든 일도 있지만 여전히 이렇게 저렇게 함께였다,

한 때 누군가가 우스개 소리처럼 말했던 게 있다,

모임이 오래 지속되려면 구성원 모두의 비굴함과 누군가 한명의 적당한 카리스마만  있으면 된다고 모두가 정의로워서 모난돌이 되어 흩어지지 않고 모두가 카리스마나 지도력을 가지려고 다툼 하지 않고 그렇다고 모두가 무책임하고 비굴해서 모임조차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이끌기만 하면 함께 하고 그냥 적당히 눈감기도 하고 맞추고 다투고도 다시 마주 보는 정도의 정이 있으면 가장 좋은 모임이 오래 유지 된단다,

이들 역시 오랫동안 보아온 정이 있고 아픔을 눈감을 수도 있고 적당히 모른 척 해줄 수도 있는  적당한 거리감을 익힌 사이였다,

주인공은 그 친구들을  동영상으로 열심히 찍었다, 어떤 의미도 없고 의도도 없는 장면들 말들 그리고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하나하나는 의미가 없지만 그것들은 그들의 시간의 기록이다,

함께한 시간들 그리고 그 두께만큼의   애증들이 나는 진심으로 부럽다,

낯선 신도시 근처에서 뿌리를 내리려고 그들도 애쓰고 있었구나

뿌리채 뽑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오래된 가로수들을 이질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들은 오래도 한 곳에 지긋지긋하게 뿌리를 내리며 서로 엉켜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몹시 부럽다,

늘 어디론가 실려가서 뿌리를 내려야 하거나 그것조차 포기했던 내가 못했던 일이어서...

이만큼 가까이...

그 거리만큼 그들은 여전히 함께 한다,

 

 

정이현의 작품 "안녕 내 모든 것"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 친구들은 함께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고 시간을 나누었다,

그러나 한 순간 하나의 사건을 함께 넘고 뿔뿔히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까 언젠가

그만큼 가깝게? 그들이 엉뚱하게 몹시 궁금해진다,

 

문득 나만큼 많은 전학을 다녔던 언니가 궁금했다,

그렇게 전학을 다녔는데 언니는 나와 달리 각 학교마다의 친구들을 아직도 만난다,

같은 경험인데 다른 결과다,

언니가 유난히 사교적인 성격은 아닌데 나는 없는 유년기의 친구와  어떻게 아직 이어지고 있지?

내가 문젠가?

한번 언니를 만나면 그 이유를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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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메르세데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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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이 늙었나보다,

아님 잘 모르는 it 분야나 컴퓨터에 대한 걸 쓰느라 힘드셨나?

추리소설이 범인을 잡는 다는 큰 목적보다 자잘한 사회적인 관심과 문제를 드러내야하는 것으로 변해가고 거기에 길들여졌나보다

범인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고 이미 범인이 나왔고 그를 쫓는 전직형사도 있고

이 둘을 번갈아 보여주는 심리전이 주된 내용이지만

사실 범인은 너무 충동적이고 찌질하고

그렇게 은퇴해서 무료해진 형사를 들쑤시면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길뿐 자살의 유혹은 없어진다는걸 정말 몰랐을까?

죄의식이 가득했던 벤츠 주인공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걸 간파하지 못했다는게 범인의 최초이자 최고의 실수

잡히고 싶은 욕구가 더 컸던 걸까?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유년시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결국 브레디를 집요한 사이코로 만들었나보다

나약한 엄마 장애를 가진 동생 함께 공모한 범죄 그리고 아버지를 대신하는 아들

다시금 엄마의 육아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늘 심리학 서적이 말하는- 양육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문제가정에 문제아가 나온다는 거

가만 보면 치밀하지도 못하고 충동적이고 나약하고 소심해서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저보다 약한 사람들에게나 주먹을 날라고 욕설을 하는 그가 그런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고 잡히지 않았다는게 큰 의문이다,

너무 무계획해서 오히려 치밀한 범죄수사망에서 쏙쏙 빠졌나보다 싶다,

 

책을 잡고 단숨에 읽긴 했지만 ... 그냥 그렇다,

지난 월욜 나름 기대를 가지고 본 영화 '그놈이다'랑 같다

뭔가 마구 벌어지고 주이공은 미친듯이 뛰고 맞고 난리를 치고 피범벅이 나오고 과거사가 나오지만 그래서 어쩌라구~~~~ 싶은 기분

호지스는 뚱뚱한 몸매와 낡은 수첩으로 열심히 뛰고 로맨스도 하시고

브레디는 피를 뿌려대지만... 그래서 뭐!!!

그렇다,

그냥 그런 추리물이다,

킹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만 인간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벤츠는 좋은 차구나,.. 하는 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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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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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는 이 결론이 마음에 든다,

무언가를 닮았네 비 현실적이네 하는 말들도 많지만

어쩌란 말인가

최소한 이야기속에서라도  이렇게 후련함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소설같은 세상 거짓말같은 세상에서  버티고 사는동안 책속 주인공이라도 후련하게 살아주었으면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가정폭력의 트라우마를 가진 나오미와 남편의 폭력에 자존감이 떨어져 버린 가나코의 발랄하고 처절한 남편제거 계획은 마지막 선택이었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리고 도움을 기대조차 할 수 없다면 결국 내가 미친 년이 되거나 괴물이 되는 수 밖에 없다,

아무도 도와 주지 않고 나는 살아야 겠다는 절박함 앞에서 괴물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우아하고 교양있게 살고 싶고 살 수 있는데

자꾸 나를 건드리고 밟아대는 존재가 있다면 '

머리에 꽃을 꽂고 미친년이 되든지  얼굴을 바꾸고 괴물이 되는 수밖에

괴물이 되고 미친년이 되어야  괴물을 잡고 버러지같은 놈을 잡는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나쁜 놈은 어떻게든 제거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가지지 못한다면

허구에서라도 가져야 겠다

나는 나오미와 가나코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행동에 돌을 던지진 않을 것이다,

세상엔 돌을 맞아야 할 것들이 더 많이 있으므로,,,

 

 

훅하고 다 읽어버렸다,

별 거 아닌 이야기같은데 중간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을 접는 순간 나오미와 가나코가 어떻게 될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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