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어제 작업할 게 있어서 늦게까지 자판을 두드렸다. 와이티엔 밤 뉴스를 틀어놨는데 책 소개 코너에서 찰스 디킨즈의 저서 소개가 있었다. 찰스 디킨즈야 워낙 유명한 소설가이니, 아직 번역이 안된 작품을 누가 번역서를 낸들 뭐가 이슈가 되겠냐마는..(소설광이 아니라 이런 생각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뉴스의 요지는 찰스 디킨즈가 역사책도 썼다는 거였다. 발굴이 돼서 이제야 번역이 됐다니, 전혀 의외라서 귀가 쫑긋 세워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사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는데, 이 역사책이 당시 영국 초등학교 교과서로 사용되었다니 정말 놀라웠다. 소설가가 쓴 역사 교과서라...정말 놀라운 뉴스다!

 

 

둘.

 

날씨가 너무 추워졌다. 12월 초부터 날씨가 미쳤나부다. 강추위, 비, 눈, 강추위의 순환이 계속되는 듯. 중간에 따뜻하고 괜찮은 날씨가 있었는데, 그땐 하필 중요한 뭔가가 발목을 잡았다.

수트 입고 착장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그럴 결심을 하면..그때마다 비가오거나 눈이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춥다. 젠장이다~ 착장 샷을 올린다고 괜히 약속했나부다. 날씨가 좀 풀리면 입고 나가서 찍어야 겠다.

 

 

셋.

 

  최근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보다가 한 책에 필이 꽂혀버렸다. 매달 십 여권을 빌려보는데, 책을 슥슥 넘겨보다가 보석같은 책을 발견했다. 집중해서 몇 페이지를 읽어보니 반드시 소장하고 싶어졌다. 그제 빌려서 빠른 속도로 완독했고, 오늘 아침에 알라딘 중고서점들을 뒤졌다. 있었다!! 그것두 강남점과 신촌점에 있는게 아닌가.  

  아침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점심 시간이 되기 전에 강남전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다시 검색을 했는데, 아뿔싸 벌써 팔렸다! 할 수 없이 신촌점으로 빽했다. 10분 단위로 검색해가며 도착해서 책을 손에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알라딘에서 급하게 이 책을 손에 넣고 싶었던 건 가격이 반값도 안되는 아주 새책이었기 때문. 신촌점에서 건지지 못했다면 일주일 내에 알라딘에서 새 책으로 구입했었을 거다.

  책을 소장하고 싶었던 건 다름이 아니라 책의 내용과 만듦새가 정말 탁월했기 때문이다. 남성 복식사를, 그것도 근대 100년의 역사를 도판과 함께 압축적으로 개괄할 수 있는 책은 이책이 유일했다. 여러 도서관에서 복식사 분야를 자주 기웃거려 봤지만 이 책만큼 남성 복식의 핵심을 짚어주는 책은 보질 못했다. 대부분의 남성 복식사는 여성 복식사의 따라지마냥 또는 부차적으로만 언급될 뿐인데, 이 책은 과감히 그런 입장을 뒤집는다. 근대 복식사에서 여성 복식이 남성 스타일을 얼마나 많이 차용했는지, 남성복의 여러 스타일 화보에 따라 그 특징을 간결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책 구매는 화려한 화보(끝내주는 도판과 화보가 패션잡지를 방불케 한다.)보다는 저자의 서문에 있었다. 단 2페이지로 남성 복식사를 정리해주고 있는데, 이런 포스의 글은 스타일을 다룬 어떤 책에서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복장사 학위를 갖고 있는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미술사 학위도 갖고 있다) 도판을 해설한 간결하고 압축적인 글은 이 책 구매를 부채질 했다. 두고두고 볼 책인 것을 직감하고 구매하게 되었다.

  정말 우리나라 스타일 전문가란 사람들이 낸 책을 이 책과 비교해 보면 초등학생들의 장난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수준은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문화사 분야의 중요 자료집으로도 손색이 없다.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보면 아주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겠다. 자기가 현재 입고 있는 옷의 근원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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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12-17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가 쓴 역사책이 교과서로 채택되었다니,
그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역사적 상상력을 많이 키웠으려나요?

남성 복식사도 흥미롭네요.

yamoo 2014-12-17 19:50   좋아요 0 | URL
뉴스로 듣는데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서점에 가서 들춰보고 괜찮으면 구매를 할까 생각 중이에요. 그때 그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 중 유명인물들이 된 사람이 디킨즈의 책이 유용했다고 하는 내용을 알려주는 책이 어딘가엔 있겠죠~ㅎㅎ

저, 복식사 책...끝내줍니다. 도서관에서나 서점에서 시간 있으실 때 넘겨보세요...도판 편집과 글들이 정말 좋습니다!

세실 2014-12-1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책을 사기 위한 님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니 다행입니다. 실시간 검색도 가능하군요.
저도 요즘 2주에 한번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갑니다. 책 사는 재미가 쏠쏠해요.
단 2페이지로 남성 복식사를 정리해주다니....대단하네요.

yamoo 2014-12-21 12:12   좋아요 0 | URL
네..알라딘 중고서점의 장점은 실시간 검색이 가능하다는 거에요^^
인기있는 책은 금방 품절되거든요~
예를 들어 한길그레이트북스나 대우고전총서 같은 경우는 새로들어온 코너에 진열되자 마자 팔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검색보고 가도 허탕칠때가 많아요..ㅎ

그래서, 저자의 내공에 반해서 책을 사게 되었답니다.^^
언제, 세실님이 운영하시는 도서관에 가보고 싶어요. 진짜! 센스만점의 도서관장님~
 

한 때 쇼펜하우어의 빠였다. 학부 시절 열렬히 추종해 마지 않던 3명의 철인이 있었으니, 비트겐슈타인, 키에르케고 그리고 쇼펜하우어였다. 영문과 전공 영어 수업시간에 독일 출신의 미국인 담당 교수가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난 쇼펜하우어라고 답했다. 하하, 그 정도였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쇼펜하우어는 내게 점점 잊혀져가는 철학자가 되었다. 아마도 내 저자 리스트 중에서 강준만 정도의 위치를 차지했던 거 같다. 시간이 가면서 강준만 저서들은 더이상 읽지 않았으니.

 

하지만 내가 쇼펜하우어 저서들에 흥미가 떨어져서 그런건 전혀 아니었다. 당시 쇼펜하우어 저서의 번역본은 극소수였다. 대체로 <쇼펜하우어 행복론>이 무수한 출판사들에 의해 중복 번역된게 쇼펜하우어 저서의 대부분이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는 번역도 안 된 상태였다.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집문당 판본과 곽복록 씨가 번역한 을유문화사 판본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곽복록 씨 번역본을 집어들어 몇 페이지 읽다가 집어던져 버린 후 쇼펜하우어의 주저는 읽을 염두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문당 판본도 대체로 곽 씨 번역과 대동소이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축소 편집본이!) 그래서 제대로 된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읽는 것을 유보했다. 그리고 점점 잊혀져 간 듯하다.

 

그러던 것이 2008년 동서문화사에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번역본이 나오고 2009년 을유문화사에서 역자를 달리하여 출간되었다. 2012년에 김미영 역자에 의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와 <충족이유율의 네겹의 뿌리에 관하여>(나남, 2010)가 나온 것을 본 후, 다시 쇼펜하우어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난 베르그송 철학의 위대함에 빠져있었기에 쇼펜하우어의 주저를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지 김미영 역자의 번역이 매우 빼어나서 나중에 번역본을 사서 읽어봐야 겠다는 다짐만 했더랬다.

 

 

 

 

 

 

 

 

 

 

 

 

 

 

 

근데, 며칠 전 알라딘 신림점에서 을유문화사에서 새로 번역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홍성광, 2009)를 입수한 것을 계기로 읽을 당위가 발동했다. 구매한 그날 집에 와서 서문과 함께 5장까지 스트레이트로 읽어나갔다. (그래봤자 64페이지밖에 안 되는 분량이다.)

 

매우 매끄럽게 번역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어색한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난 이 쇼펜하우어의 주저 번역본들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어떤 번역본이 그나마 가장 읽을만 한 책인지.

 

나는 동서문화사본과 을유문화사본을 가지고 있기에 도서관에서 지만지고본을 빌렸다. 이게 현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번역본 전부다(집문당본 포함). 발췌된 곳을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가장 좋은 번역본을 나름대로 선정해 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떤 번역본이 잘 된 번역본인지 그 정보가 현재 인터넷 상에서 전무했기에. 여러 번역본이 있다는 건 언제나 선택의 어려움이 따른다. 경험상 가격이 비싼 책이 번역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선택을 위한 최소한의 유용한 정보가 없으니 그걸 내가 하기로 했다. 그냥 최소한의 지침이다. 엄한 선택으로 불량 번연본을 사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사람을 정말 열받게 하는 일이기에.

 

비교 판본은 3권으로 했다. 을유본, 동서문화사본 그리고 지만지고본. 곽복록 씨 번역과 집문당본은 옛날에 읽다가 던져버렸기에 제외했다. 너무도 많은 비문들과 번역투의 문장으로 읽는 이를 짜증나게 하는 번역본들이다. 알라딘에 누가 곽복록 씨 번역본이 그립다고 했는데, 전혀 아니다. 완전 그지 발쌔기다.

 

 

 

 

 

 

 

 

 

 

 

 

 

 

번역의 질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은 1장~2장 중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부분을 택했다. 기준본은 동서문화사본으로 하고 지만지고본을 통해 비교한 다음 홍성광 씨 을유본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동서문화사본이 처음 읽을 때 술술 읽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완역된 책으로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팔리고 있는 책이기도 했기에. 을유문화사본인 홍성광 씨 번연도 술술 읽혔는데 비교해 보니 전자가 쪼금 이상한 부분들이 많은 거 같았다. 그래서 다시 철저히 읽어 보니 동서문화사본은 문제점이 매우 심각했다. 그래서 동서본을 기준으로 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인용된 부분을 통해 어떤 판본이 읽을 만한지 판단하면 되시겠다. 분량의 압박이 좀 있지만....그래도 시작하겠다. 하나, 둘...

 

 

1장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이것은 살아서 인식하고 있는 모든 존재에 해당하는 진리다. 그러나 이 진리를 반성하고 추상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며, 인간이 실제로 그렇게 인식할 때에 인간의 철학적인 사유가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태양을 알고 대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태양을 보는 눈이 있고, 대지를 느끼는 손이 있음에 불과하다.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는 자기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인 인간이라고 하는 표상자와 관계함으로써만 존재한다. <동서판>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이것은 살아있으면서 인식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진리다. 그러나 인간만이 이러한 진리를 반성적으로, 추상적으로 의식할 수 있는데, 인간이 진정 그렇게 의식한다고 하면 그는 철학적인 신중함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 태양과 땅을 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보는 눈 그리고 땅을 느끼는 손을 아는 것이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단지 표상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 세계가 오로지 완전히 다른 존재, 즉 인간 자신이 표상하는 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만지고본, p31>

 

책을 처음 펼쳐 읽으면 이 번역이 이상한 줄 눈치채기 쉽지 않다. 하지만 지만지고본을 보면 어떤 부분을 이상하게 번역했는지 대번 나타난다. 줄친 부분을 비교해 보면 지만지고본이 훨씬 매끄럽게 번역된 것을 알 수 있다. 동서판의 줄친 부분은 호응이 잘못된 문장이다. 동서판의 마지막 문장도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한 문장이다. 하지만 지만지고본을 통해 보면 무슨 내용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이 말은 살아 있어 인식하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다. 그렇지만 인간만이 이 진리를 반성적이고 추상적으로 의식할 수 있으며, 인간이 정말로 이를 의식할 때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된다. 그럴 경우에 인간은 태양이며 대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보는 눈과 대지를 느끼는 손을 지니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 즉 세계는 다른 존재인 인간이라는 표상하는 자와 관계함으로써만 존재한다는 것이 그에게 분명하고 확실해 진다.   <을유본, p39>

 

을유본은 확실히 지만지고본만큼 명확하지는 않지만 동서판보다는 그래도 의미파악이 수월하다.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 본다.

 

이와 반대로 이 근본 진리는 인도의 현자들이 이미 신식했던 것으로, 비야사(Vyasa, 인도의 전설적 성자)의 설이라고 하는 베단타(Vedanta) 철학(우파니샤드에 근거하여 일원론을 주장하는 철학)의 근본원리로서 나타나 있다. 윌리엄 존스는 이 사실을 그의 마지막 논문 <아시아 연구 : 아시아인들의 철학에 대하여)>, 4권 164쪽에 다음과 같이 입증하고 있다.

 

베단티학파의 근본 교리는 물질의 존재, 즉 그 고체성·불가입성·연장의 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관한 일반의 관념을 바로 잡는 데 있고, 물질이란 것이 마음의 지각에 의존하지 않는 본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피지각과는 교환할 수 있는 명사라는 것을 주장하는 데 있다.

 

이 말은 경험적 실제성과 선험적 관념성과의 양립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동서본>

 

 

이에 반해서 앞서 이러한 근본적인 진리가 베다의 지혜에 의해서 인식되었듯이―이 지혜는 브야사에 의해서 쓰인 베다 철학의 기본명제로서 나타나 있는데―윌리엄 존스는 자신의 논문인 <아시아 철학에 관하여>(4권 164쪽)의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확신하고 있다. "베단타 학파의 근본적인 교리는 고체성, 불침투성, 연장으로 이루어진 물질을 부정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인데―물질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을 바로잡고 물질은 마음의 지각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본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즉 존재와 지각 가능성은 서로 호환 가능한 용어라는 점에 있다." 이 말은 경험적인 실재성이 선험적인 관념성과 함께 있다는 것을 좀 더 장황하게 설명한 것이다.

<지만지고본, p33> 

 

이 부분은 정말 심각하다. 동서본의 줄친 부분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후반부의 내용을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지만지고본을 읽으면 쇼펜하우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그런데 지만지고본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확실히 동서본이 내용을 오해하고 번역하지 않았는가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미심쩍어 을유본을 열어봤다. 

 

반면에 이러한 근본 진리는 비아사가 주창한 것으로 간주되는 베단타 철학의 근본 명제로 등장하면서 인도의 현자들이 일찍이 이를 인식했다. 윌리엄 존스는 자신의 마지막 논문 <아시아인들의 철학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베단타 학파의 근본 교리는 물질의 존재, 즉 고체성, 불가입성, 전충성(물체가 공간을 메우는 성질)을 부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걸 부정하는 것은 미친짓이겠지만), 물질에 대한 일반의 개념을 바로잡아 그것이 인간의 지각과 무관한 어떠한 본질도 갖고 있지 않으며, 존재와 지각할 수 있는 성질은 동의어임을 강력히 주장하는 데 있다." 이러한 말은 경험적 실재성과 선천적 관념성의 양립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을유본, p41>

 

베단타 학파의 근본 교리 중 마지막에 언급되는 교리를 을유본은 '전충성'으로 옮겼다. 동서본과 지만지고본은 이 마지막 교리를 각각 '연장'과 '연장으로 이루어진 물질'로 번역했는데, 이 부분은 을유본이 더 나은 거 같다. 그리고 을유본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 내용이 동서본과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원문을 대조해 보기 어려워 확신을 할 수 없지만 흐름상 '양립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는 번역이 더 잘 이해된다. 확실히 가독성은 을유본이 좋다. 

 

 

2장

 

그런데 다른 측면인 주관은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관은 표상작용을 하는 모든 존재 속에 전체로서 분리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일지라도 현존하는 수백만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객관과 더불어 표상으로서 이 세계를 보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단 하나라도 소멸해 버리면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면은 사상에 있어서도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도 그럴것이 이 두 가지 면의 어떤 쪽도 다른 한쪽으로 말미암아서만, 또 다른 한 쪽에 대해서만 의미와 존재를 갖고 있으며, 그것과 생멸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 경계가 서로 공존한다는 것은, 모든 객관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형식들인 시간, 공간, 인과성은 객관 그 자체에 대한 인식 없이도 주관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되고 또 완전히 인식될 수 있다는 것, 즉 선험적으로 우리 의식에 존재한다는 칸트의 말을 생각해 보면 더욱 분명해 진다.    <동서본>

 

 

다른 하나의 측면은 주관인데, 이것은 공간과 시간 속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관은 전체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모든 표상하는 존재 속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표상하는 존재 중의 유일한 존재는 현존하는 수많은 존재들처럼 객관과 함께 완전히 세계를 표상으로서 채워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일한 존재가 사라진다면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객관과 주관은 사유를 위해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지만지고본, p37>

경계의 공통점은 모든 객관의 본질적이며 보편적인 형식들―이것은 시간, 공간 그리고 인과율인데―은 객관 자체의 인식 없이도 주관에 의해서 시작되거나 발견되며 완전히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 즉 칸트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형식들이 우리의 의식 속에 선험적으로 놓여 있다는 사실에 있다. <지만지고본, p38>

 

3판본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주관과 객관 그리고 표상과의 관계를 기술한 2~3번째 문장이다. 특히 3번째 문장은 5번 연속으로 읽어보아도 그 뜻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다. 지만지고본은 비교적 의미있게 번역해 놓았지만 역시 동서본의 3번째 문장 부분과 비교해 보아도 좀처럼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을유본의 번역은 이렇다.

 

그런데 다른 측면인 주관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주관은 표상하는 모든 존재에 나누어지지 않은 채 온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들 중의 단 한 사람이라도 현존하는 수백만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객관과 더불어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보완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한사람이라도 사라져버리면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두 측면은 사상에 있어서조차도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략)

이러한 경계가 서로 접한다는 사실은, 모든 객관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형식들인 시간, 공간 및 인과성은 객관 그 자체를 인식하지 않고도 주관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되고 완전히 인식될 수 있다는 데서, 즉 칸트의 말을 빌면 우리의 의식 속에 선천적으로 존재한다는 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을유본, pp43-44>

 

을유본은 동서본의 번역과 거의 똑같다. 서술어 호응이 맞지 않는 것까지!(서로 대조해 읽어 보면 난해한 부분은 번역된 문장들이 서로 비슷하다. 추정하는 바이지만 홍성광 씨도 동서본을 참조하면서 번역한 듯하다. 그렇지 않고는 호응이 맞지 않는 부분까지 잘못된 문장을 쓸리가 없을 거다.) 이 부분은 여전히 쇼펜하우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확히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다. 이런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젠장!

그런데 문제가 더 심각한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 동서본과 을유본은 처음 읽으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문장의 호응도 전혀 맞지 않는다. 2-3번 읽어야지 겨우 의미파악을 할 수 있는 정도다. 문장이 매우 길기 때문에 번역자가 짧게 끊어 번역하면 명확성을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지만지고본은 줄표를 사용하여 전체 문장의 뜻이 어떤 것이었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게 번역했다. 물론 지만지고본 번역이 좋다는 건 아니다. 최소한 독자로 하여금 의미파악을 가능하게 해 주는 수준이다.

 

많은 부분을 점검해 본 것은 아니지만 경험상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내가 번역본을 고를 시 사용하는 방법이다. 번역본에서 이상하게 의미파악이 안되게 끔 번역된 곳을 찾아 다른 번역본은 어떻게 번역했는지 비교해 보면 얼추 읽을 만한 번역본을 선택할 수 있다. 내용 파악을 전혀 할 수 없는 부분을 다른 번역본이 그래도 이해할 수 있겠끔 번역했다면 후자본을 택하는 것이 유익했다. 많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2-3부분의 몇 문장들만 비교해 보면 된다.

 

같은 방법으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번역본 3개를 확인해 봤다. 완역된 본은 1권이 16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지만지고본은 이중 4장(4절)까지만 번역돼 있어 그 부분만 확인했다. 전체적으로 동서본에서 이해 되지 않은 많은 부분을 지만지고본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 지만지고본은 동서본의 해석판이었다. ㅋㅋ 하지만 지만지고본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좋지 않은) 문장들이 곳곳에 있다. 잦은 줄표의 사용과 긴 호흡의 문장들 역시 짜증을 유발한다. 매 순간 집중해서 읽어야 하기에. 뭐, 그래도 동서본이나 을유본보다는 훨씬 낫다. 발췌본이라 완역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을유본을 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결론적으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을유문화사본으로 보는 게, 현재로서는 차선의 대안이다. 이상한 부분을 건너 뛰면서 읽는다면 슥슥 읽히는 가독성 하나는 장점이니까. 3권째에 이르면 아주 읽을만 하다. (뒷부분을 간간히 들춰봤다.) 김미영 역자의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을유문화사본으로 어느 정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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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12-15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펜하우어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니체와 보르헤스 등 수많은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잡은 책으로 워낙 유명한 줄로 알고 있는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은 모국어인 독일어와 스페인어로 쓰여진 책들을 읽었기 때문에 `번역`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던 `무척 행복한` 독자들이 아니었나 싶네요.

저는 권기철 님이 번역한 동서문화사판으로 읽었는데, 어려운 대목들을 만나면 같은 문장을 여러 번씩 읽으며 이해하려 애쓴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번역`이 문제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답니다.(예전에 yamoo 님께서 대우고전총서에서 나온 베르그송의『창조적 진화』에 대해서 `번역 문제`를 짚어 주셨을 때에도 저는 그 책의 번역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한 채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번역`에 무척 둔감한 지도 모르겠다 싶네요.)

어쨌든 쇼펜하우어 자신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해 `한 번 읽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 거듭 경고하면서 `여러 번` 다시 읽어 볼 것을 권할 정도였고, 저 또한 그 책을 거듭 읽고 난 뒤에,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와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까지 찾아 읽어 보고 나서야 겨우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 들더군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인식론이나 존재론뿐만 아니라 미학을 비롯한 예술철학과 종교철학 등에 이르기까지 매혹적이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지만, 저는 특히 그의 생각이 후대에 찰스 다윈이 쓴『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 앙리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까지 깊숙히 스며들어 있는 걸 발견하는 재미가 여간 크지 않더군요.

이 글을 통해 yamoo 님께서 학창시절에 쇼펜하우어를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로 꼽았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문득 보르헤스가 이 철학자를 두고 했던 말도 떠오릅니다.

* * *

······ 나는 스위스에서 머물던 시절 쇼펜하우어를 읽기 시작했다. 만일 나에게 한 명의 철학자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없이 그를 택할 것이다. 만일 우주의 수수께끼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언어가 그의 책 속에 쓰여져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의 책을 독일어로 읽었고 나중에 스페인어로 번역된 것도 읽고 또 읽었다. ······

yamoo 2014-12-15 23:54   좋아요 0 | URL
네, 쇼펜하워 자신도 그렇게 말했지요. 한 번 읽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고, 적어도 2번 이상 정독하라구요. 내용이 심오하여 한 번 읽어서 이해 안되는 부분이 분명이 있어요. 사상서 중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은 그런 부분들이 많다는 것 인정합니다. 학부 초년생 시절 노자 도덕경 1장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의 해석부분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아 되풀이 해 읽고 또 읽어도 모르겠어서 그냥 덮은 적이 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어려움은 엉터리 같은 번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용 자체가 심오해서였습니다.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라는 해석본은 문장이 난삽하고 비문이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아니라 그 사상의 심오함에 있었습니다. 논리적인 면도 그렇구요.
하지만 현재 서구 사상의 번역본들은 이런 사상적인 난해함이나 논리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그 심오한 사상적이고 논리적인 면을 우리말로 제대로 표현해 주지 못하는데서 오고 있습니다. 문장이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것과, 명확하지만 논리적인 깊이 때문에 이상하게 이해하여 번역기 돌린 문장과 같은 번역을 하여 어려운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제가 계속 번역이 거슬려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번역자들이 명확한 우리말 구사를 못해 가독성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렌님도 이해가 안된 부분을 여러번 읽으셨다고 하셨는데, 그게 바로 올바른 우리말 문장을 사용하지 못해서 입니다.

항상 좋은 인용과 댓글로 제 서재를 빛내주셔서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오랜님의 이런 댓글 나눔은 알라딘 서재의 댓글 문화를 한 차원 높여주는 것 같아 존경스럽습니다!^^

그렇게혜윰 2014-12-1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댓글을 달만큼의 지식이 없어서 댓글 달기도 민망합니다만 철학사책 읽다보면 쇼펜하우어 궁금하더라구요.어려운 책들이니만큼 좋은 번역이 중요한 것 같아요. 번역가분들 성함을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yamoo 2014-12-15 23:57   좋아요 0 | URL
지식이 있어야 댓글을 다나요?^^ 저도 지식이 없기는 헤윰님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철학사에서 쇼펜하우어는 매우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한 철학자들 중 한 사람입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그의 책 <인생론>을 읽어보세요. 매우 쉽고 평이합니다. 이 책으로 소펜하우어 사상의 진수를 어느 정도 맛볼 수 있습니다. 꼭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니 헤윰님의 리스트에 올려두었다가 시간 되시면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오쌩 2015-01-04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지만,입문서 위주로 읽은지라,개괄적 지식밖에 없고,저는 주로 정치철학 쪽에 관심이 생기더군요.

야무님 글 읽으니,쇼펜하우어에도 관심이 생기네요, 전 예전에 친구랑 쇼펜하우어 중화이론 가지고 키득거리던게 생각나요
`네가 사랑에 실패한건 상대의 생에 대한 의지가 이상적인 상대로 인식되지 않은것 뿐이야. 너와 결합되었을떼 좋은 아이를 가지지 못할꺼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거지`하면서 패배자들 끼리 서로 개똥철학자 흉내내던게 생각나네요ㅎ

알라딘에 오니,좋은 책을 소개해주시고
책과 연애하는 분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올해가 다가기전에 쇼펜하우어
즐독하고싶네오ㅎ 좀 늦었지만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yamoo 2015-01-04 20:13   좋아요 0 | URL
오쌩님 반갑습니다! 오쌩님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입문서 위주로 여러 권 읽으면 원전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쇼펜하우워 입문은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부터 봐 보세요. 쇼펜하워가 자기 책에서 자기 책 읽는 순서를 알려주는데, 자기 철학의 핵심은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녹아 있으니 이거부터 읽으라 하네요. 김미영 역자의 번역아 아주 좋습니다. 이 책으로 입문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ㅎㅎㅎ 2017-12-2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을유문화사 꺼 읽고 있는데 술술읽히는 부분은 좋으나 간혹 우리말로 이해하려해도 무슨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는 것 같아서 짜증을 참고 여러번 읽고 있습니다
글쓰신 내용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독서광 2021-10-25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김미영님 번역이 안 나온 건가요 ㅠ ㅠ 2019년도 을유문화사본으로 보려고 하는데 홍성광 역자님이 얼마나 업그레이드하셨을지 감이 안 오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우연히 화재의 서재글에 올라온 야나님의 글을 읽다 발견한 부분이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덧붙이겠는데, 나는 야나님에게 어떠한 엇가심정도 없고, (전혀~!) 내가 본 야나님의 글을 비방하기 위해 이 페이퍼를 쓰는 것도 아님을 밝혀두는 바이다.

 

이런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 내 관심 영역 중 하나가 논리학, 심리학 그리고 경제학의 하위 분과에서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는 '생각의 오류'를 바로 잡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오늘 알라딘 신림점에서 <생각의 오류>를 사서 펼쳐 읽는 와중에 눈에 띄어 읽은 글이라 쓸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글을 말이다.

 

 

어쨌거나 포인트는 어긋났지만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드라마가 참 문학적이다_였다. 시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희곡 같기도 하고.

 

엄태웅이 친 대사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것,

 

"고전은 대부분 막장이야." 왜 그러냐는 이시영의 말에_

"인간 본성이 막장이니까."

 

 

캬, 그렇지, 인간 본성이 막장인 게지, 소주를 부르는 대사로다. 혼자 허벅지를 치면서 감탄했다.                             

                                        <일리있는 사랑_아줌마들의 수다 중에서>  by야나

 

 

일단 야나님께서 캬~ 하고 감탄을 하게 한 엄태웅의 대사를 보자. 이 대사를 치게 한 장본인이 누군가? 바로 드라마 작가다. 드라마 작가는 대부분 여성이고,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 제1의 목적이기에 저런 대사를 의도적으로 짜내기도 한다. 드라마뿐이겠는가 광고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

 

어쨌든 걸리는 부분은 두 가지다. 먼저 '드라마가 참 문학적'이라는 야나님의 생각. 이건 아마도 이런 것일 거다. 광고를 보고 있는데, '광고가 참 문학적이다'라는 거. 광고는 문학이 아니다. 이건 초등학생도 안다. 그래서 '광고가 참 문학적'이라는 말은 광고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거와 비슷하다. 스토리가 있고 매우 감성적인 면이 부각된 광고일 경우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드라마도 엄연히 문학에 포함된다. 드라마 대본은 내가 알기론 일종의 멜로드라마다. 관객의 오락을 위해 쓴 통속극이기에. 고등학교 때 배웠던 문학 이론에는 희곡 단원에 시나리오와 비교하면서 하위 종류로 레제드라마나 멜로드라마 그리고 소극에 개념이 나온다. 따라서 드라마의 대사는 명백히 문학의 하위 영역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참 문학적'이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심각한 건 엄태웅의 대사다.

 

 "고전은 대부분 막장이야." 왜 그러냐는 이시영의 말에_ "인간 본성이 막장이니까."

 

이 부분은 아마도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고전(문학)은 대부분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 (숨은 전제)

인간의 본성은 막장이다.

--------------------------------------

따라서 고전(문학)은 (대부분) 막장이다.

 

'인간의 본성'을 매개념으로 한 그럴듯한 3단 논법이다. 하지만 타당하지 않다. 두번째 전제가 자의적으로 정의한 것이기에 드렇다. 이건 명제도 아니다. 참거짓을 확정할 수 없는 진술이기에. 결론 역시 이로부터 연역되었기에 부당하다. 고전문학이 대부분 막장인가? 어떤 작품이 그렇지? <제인에어>?, <주홍글씨>? <안나 카레리나>? 결론 역시 참거짓을 확정할 수 없는 진술이다.

 

막장이라는 단어는 매우 애매한 단어다. 막장이 뭔가? 불륜의 끝? 아니면 콩가루 집안? 뭘 말하는지 매우 모호하다. '막장 드라마'라고 회자되니 아마도 인간성이 갈때 까지 간 끝판을 의미하는 내용인 것 같긴한데, 이게 고전문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통 모르겠다. 사랑을 주제로 한 고전문학이 막장(인간성의 끝판을 내용으로 하는 거)인가?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언급도 문제가 심각하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환경의 결과로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 인간이 막장이라는 것(악하다는 것)은 결과론적인 거다. 인간 본성에 대한 성선설과 성악설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도올의 <중용, 인간의 맛>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다.

 

아, 진짜 엄태웅과 같은 드립은 짜증난다. 말같지도 않은 걸 문학적으로 포장해서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으려는 수작이 괘씸하다. 언어유희라면 너무도 유치한 수준이다.

 

그럴듯해 보이고 시청률이 나온다고 얼치기가 수준높은 문학이 되는 건 아니다. 감탄하기 전에 과연 그런지 의심해 보는 습관을 가져보자. 엄태웅의 저 드립은 감탄이 아닌 시청자게시판에 쓸 비판이어야 한다. 순간적으로는 감탄할 수 있을지언정~.

 

정말 오류는 힘이 센거 같다. 시청한 사람들을 감탄까지 하게 만드니~

 

[덧]

<생각의 오류>를 들춰보는 와중에 읽은 야나님의 글이라 본의 아니게 <생각의 오류>의 저자가 역설하는 방향으로 글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이건 야나님에 대한 비난이 아님을 거듭 알려드리오며, 만일 부아가 치미신다면 <생각의 오류>저자에게 퍼부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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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12-1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선 야무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야무님 엄태웅의 대사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 들이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 드라마 보고 있는데요, 엄태웅이 그런 대사를 친 건 그 전에
이시영이가 카스타디바가 뭐냐고 물어보는데서 기인하죠.
그래서 카스타디바가 정결의 여신인가 뭐라고 설명하면서 모르겠으면 검색해 보라고 합니다.
검색해 봤더니 이름의 뜻과 달리 불륜, 막장 뭐 그런 거에 이시영이 놀라죠.
그래서 김에 나온 말이 그런 대사였습니다.
물론 고전이 다 막장은 아니겠습니다만, 작가는 또 그렇게 보았나 보죠.
그리스 로마 신화만 봐도 그렇고, 성경도 막장 같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거든요.
며느리가 시아버지하고 동침하고 그러잖아요.
막장은 그런 것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다소 민망하고 충격적이긴 하지만그런 것에서 일명 카타르시스를 느끼니까 막장을 보기도 하고 그런가 봅니다.
말 한마디란 게 전체를 대변하진 못하는 것이고 그 순간만큼은 어느 한 면만을 얘기하는 거라 한 입 가지고 두 말하는 뭐 그렇고 그런.... 암튼 그런 거 아니겠어요?
누가 알겠습니까? 엄태웅이 저렇게 얘기하고도 딴데 가선 고전은 좋은 거라고 얘기할지. 끙~

전 그냥 보고 넘길 수가 있는데 야무님은 그럴 수 없으신가 봅니다.
하지만 야무님의 이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혹시 기회되신다면 그 드라마 함 보세요.
문제의 눈으로 보자면 문제작이긴 해요. 아내의 불륜을 연애로 바꿔서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남편의 시선 뭐 그런 건데 뭐 꼭 그것만 다루겠습니까? 그것을 통해 남자가 모르는 여자의 연애를 다루는 뭐 그런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드라마가 예뻐요. 연출이 원래 영화감독인데 잘 만들 거든요.
원래 드라마는 할 얘기가 풍성하죠. 물론 거의 대부분 뒤돌아서면 잊어버릴 이야기지만. 가볍게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 이거 괜히 얘기했다 긁어 부스럼 만든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의 생각은 그렇다는 정도로 봐주시길...3=3=33

yamoo 2014-12-14 15:06   좋아요 0 | URL
저는 이 드라마를 안 봐서 뭐라 드릴말씀은 없습니다. 근데, <생각의 오류> 책을 보는 와중에 글을 본지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지향하는 바를 구현하다 보니 이런 글이 나왔네요..^^;;

그나저나 스텔라님 올만입니다!~

oren 2014-12-1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음을 자아내는 말들이 언뜻 듣기엔 참 그럴 듯하지만, 그 속에 담긴 `생각의 오류`를 파고 드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은데, yamoo님께서 참으로 쉽고도 명쾌하게 설명해 주시네요. ㅎㅎ

yamoo 2014-12-14 15:07   좋아요 0 | URL
아이구, 오렌님 이런 글도 명괘한 설명을 봐 주시니 감읍드립니다. 좀더 쉽고 명쾌하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

 

갑자기 다음 검색어 1위에 핑거스미스가 보였다. 뭐지? 하면서 클릭했더니, 박찬욱 감독이 셰라 워터스의 원작 <핑거스미스>를 리메이크 하여 작품을 만드는가 보다. 타이틀은 <아가씨>로 정해진 거 같은데, 좀 뜨악한 느낌이 없지 않다. 원작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박착욱 감독은 <아가씨>의 시대적 배경을 1930년대 한국과 일본으로 설정한 듯.

 원작의 상속녀는 김민희가, 소매치기 소녀는 김태리, 백작은 하정우 등을 캐스팅 했다고....뉴스에서 알려준다.

 

 원작 소설이 워낙 빼어나서 <아가씨>의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각색한 영화를 먼저 봤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결말에 홈런을 치던데...퀴어영화제 초대작이라 해서 작품성만 높은 영화로 생각하고 보았는데, 이건 본질이 스릴러 였다. 얼마나 재밌게 봤는지 나중에 원작 소설까지 찾아 읽게 되었다. 원작이 영화보다 훨씬 몰입도가 높았다. 두꺼운(700페이지를 가뿐히 넘었다) 페이지가 어느새 바람처럼 넘어가 있었다!

 

 <아가씨>의 흥행 관건은 아마도 박찬욱 감독의 연출력에 달려있을 듯하다. 워낙 원작의 스토리가 탄탄하여 자칫하면 <핑거스미스>의 아류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2.

 

 

어제 맥스무지 할인권으로 조조 영화 <퓨리>를 보았다. 아, 브레드 피트는 나이들면서 연기의 완숙도가 무르익어 가는 것 같다. 네이버 평점에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점수를 주는 사람들은 영화를 발로 본 모양이다. 이 정도 퀄러티의 전쟁영화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사실성을 모두 잡았다고 생각하는 수작이라 생각한다.

 

특히 타이거 탱크와 퓨리가 접전하는 씬은 정말 탁월했다. 전차 싸움을 이리도 탁월하게 연출한 감독은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이 처음이지 않을까 한다. 카메라 앵글의 현란함은 이 영화의 최고 씬이지 않을까 한다.

 

전쟁의 사실성을 담담히 보여주는 씬과 적재 적소에 배치된 성경 구절은 절묘했다. 개인적으로 전쟁영화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고 싶다.

 

 

3.

 

 

 

개봉 영화를 보고 온 날, 잠들기 전 모 p2p사이트에 가니 문제의 고발영화인 <카트>가 뜬게 아닌가. 이틀 전 9시 뉴스에서 <카트>에 대한 영화 소개를 보고 볼 결심을 했는데, 오~ 제때 뜬 것이다. 닥치고 감상했는데....결론적으로 빡쳐서 잠을 설쳤다. 19세기 맨체스터 노동자들과 21세기 우리나라 마트 노동자들은 별반 다를게 없었다.

 

모든 시스템이 있는 놈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약자는 항상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역겨웠다. 누구 말마따나 정치인들이 이들과 같이 1주일 동안만 같이 생활해 보면 현실적인 정책 대안들이 줄줄 쏟아질텐데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안철수 씨는 이런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나보다. <4천원 인생>을 보는 와중에 영화를 봐서 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400만도 넘지 못하고 있다던데....안타깝다. 나부터도 <퓨리>를 봤으니...에휴~ 여기 출연한 배우들이 출연료를 거의 받지 않았다는데, 여기 주연으로 나온 염정아, 문정희, 이영애, 김강우 등은 아름다운 배우들이다. 이들의 열연에 경의를 표하며 2번 봤다.

 

이런 고발영화는 널리, 널리 보여지고 회자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바뀌고 마트나 식당에 가서 투명인가 취급하는 4천원 노동자들을 인간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착취하지 않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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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1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거스미스]는 책장에 꽂혀있기만 몇 년인데요...그렇게나 재미있단 말입니까? 이제는 저도 봐야겠어요. 불끈!

yamoo 2014-12-11 12:10   좋아요 0 | URL
네, 꼭 보시길~ 좀 두껍지만 정말 재밌습니다. 소설 좋아하시는 다락방님께서 이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다는 것이 의외입니다. 보시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지난 번에 남성 수트에 대한 페이퍼를 올렸었다. 의외로 이곳 서재에서도 호응 해 주는 분들이 계셔서 내친김에 맞춤 수트에 대한 것도 올려 볼까 한다.

 

우선 개인적인 맞춤 수트의 경험을 토대로 경제적이고 질 좋은 나만의 수트를 장만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고, 어떻게 입는 것이 수트를 제대로 입는 것인지 부가해 보기로 한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처음으로 수트를 맞췄습니다. 잡지책을 보다가 너무도 멋진 수트 사진이었기에 핸펀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맞춤 양복점에 가서 그 사진과 최대한 비슷한 원단을 골라 될수 있는한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잡지에서 본 수트는 네이비 핀스트라이프 더블 브레스트 수트였습니다. 브랜드는 팔질레리였고, 잡지책에 나온 정가는 250만원 짜리 수트였습니다.

 

첫 맞춤 정장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하지만, 저는 그래도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양복점의 사장님은 약간 사이비 기질이 있었는데, 그걸 간파하지 못한 것이 유일한 흠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단갖고 장난칠 분은 아니었고, 시청 내에 있는 양복점이었기에 어느 정도 믿음은 있었지요. 당시 제일모직 vip원단으로 맞춤 수트를 한 가격은 46만원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안 사실이, 나름 꽤 경제적으로 맞춤 수트를 장만했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2년 후인 2011년 12월.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원단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원단이 있길래 어디꺼냐고 물으니, 팔질래리 신상이라고 합니다. 양모 90에 캐시미어 10의 혼용율을 보인 원단은 겨울 원단 중 색감과 디자인 면에서 발군이었습니다. 당시 그 많은 원단 중에서 제 눈을 사로잡은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가격도 두루마기 하나(3마 반)25만원 선이었습니다. 원단집 사장님이 좀 싸게 준 거 같았습니다. 저는 거기서 2만원을 깍아 23만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게 바로 아래 사진입니다.

 

왼쪽 위에 보이는 택이 원단의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원단이 어디에서 왔으며 혼용율과 넓이 등 원단의 상세 스펙을 담고 있는 택

 

 

이 원단으로 몇 곳의 맞춤 하는 곳을 알아보다가 그냥 예전에 맞춘 양복점에 가서 맞춤을 했습니다. 마지막 한 곳과 저울질을 하다가 예전 하던 곳에 갔다 줬는데, 이게 제일 후회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고민하던 곳은 완전 비스포크식으로 맞춤해 주는 곳이었거든요. 공단비는 똑같았습니다. 이전 사장님에게 제가 속은 것이죠.

 

그곳은 반맞춤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반맞춤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기계식으로 맞춤을 해 주는 곳이었지요. 당시는 몰랐습니다. 라펠을 젖혀 보면 비스포크는 수많은 바느질 자국이 나 있습니다. 기계식은 아주 매끈하지요. 여튼 저 좋은 원단이 기계식으로 맞춤이 되어 속이 많이 쓰리다는 걸 뒤늦게야 알아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뭐, 어쨌거나 제게 맞는 수트는 만들어 졌습니다. 평면적인 원단이 입체의 수트가 된 느낌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원하던 대로 베스트가 나오지 않아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당시에는 원단이 입체화된 사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때라 완성된 수트가 모든 단점을 커버했습니다. 위의 원단으로 재단된 수트입니다.

 

 

 

당시 몇번 입고 나갔다 온 후의 사진이라 암홀 있는데가 쪼금 구겨져 있습니다.

 

원단으로 볼 때와 수트로 입체화 되었을 때의 미적 차이는 완전 천양지차였습니다. 입체화된 원단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도톰하고 따뜻하니, 영하 5도까지는 수트만 입어도 하나도 안추웠습니다. 캐시미어의 위력이 느껴졌다 할까요..ㅎ

 

맞춤을 한 1년 후, 백화점 팔질레리 매장을 가서 보니, 저 원단으로 기성복이 나와 있더군요. 쓰리피쓰가 아닌 투피쓰였고 디자인도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소매버튼도 리얼버튼으로 했습니다.ㅎ 거기 수트 매장 직원이 제가 입은 수트를 보고 어디서 샀냐고 묻더이다. 매장의 택 가격은 350만원이었습니다.

 

저는 원단비 23만원에 공단비 35만원을 줬으니 총 58만원에 질 좋은 팔질레리 수트를 장만한 셈이 된 것이죠. 당시 팔질레리 최고가 라인의 수트였으니 백화점에서 사는 것보다 맞춤을 하는 게 어느 정도 경제적 이점이 있는지 알고도 남을 겁니다.

 

사실 백화점 가격의 1/5가가 정상가임을 감안하면 백화점 수트 가격은 비싸도 너무 비싼거 같습니다. 어쨌든 제일모직 최고급 원단이라는 슐레인 급으로 맞춤을 해도(팔질레리 원단은 슐레인 급 아래) 100만원 안 쪽에 맞춤을 할 수 있으니, 타임 옴므나 시스템 옴므에서 비싼 돈 주고 수트를 사는 것은 낭비 중 낭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몸에 꼭 맞는다는 보장도 없구요.

 

제 개인적인 맟춤 수트 경험을 언급한 이유는 수트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사안을 알려드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수트를 입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꼭 맞게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1600만원 짜리 키톤 수트를 입고 있어도, 그 옷이 자기에게 꼭 맞지 않는다면 폴리에스테르로 자기 몸에 꼭 맞게 재단된 수트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자 수트를 입을 시 종종 간과하는 사실입니다. 브리오니, 휴고 보스, 아르메도 질도 제냐...다 필요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원단으로 자기 몸에 꼭 맞는 수트를 입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명품 수트 스타일이 될 수도 있고, 후질근한 수트 스타일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몸에 꼭 맞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네, 이게 좀 까다롭습니다. 바지는 밑단 통이 20센티를 넘으면 안되고, 바지 끝단이 구두 위에서 접히면 안됩니다. 구두 위로 칼날같이 딱 떨어져야 합니다. 그도 아니면 발목이 보일 정도로 짧은게 접히는 것 보단 낫습니다.

 

상의를 입었을 시 셔츠 목 부위가 1(2센티도 무방)센티 정도 나와야 하고, 팔 부분도 셔츠 소매가 2센티 정도(1.5센티도 무방) 나와야 합니다. 수트 소매가 손등까지 내려오면 절대 안됩니다. 그러니 좀 짧다 싶을 정도로 수선을 해야 셔츠 소매가 보일 겁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자켓들은 소매가 기형적으로 길게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드시 셔츠 소매가 보여야 제대로 입는 게 됩니다.(맞춤 수트를 할 시 반드시 소매에 리얼버튼을 추가하시길)

 

어깨는 딱 맞아야 합니다. 수트의 생명이 어깨선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허리에 착 하고 감겨도 어깨가 1센티라도 크면 그 수트는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물론 어깨를 줄일 수는 있습니다. 이 때에는 그 수트가 정말 원단이 좋고 아울렛에서 정가 대비 80%정도 싸게 산 경우입니다.

 

어깨 수선은 맞춤 양복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 맡기면 그래도 수트의 완성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선할 수 있습니다. 해 봐서 아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10만원 이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매우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수선을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계속 상의 얘기를 하겠습니다. 입었을 시 등에 가로 줄이 간다면 자신에게 작은 사이즈라는 신호입니다. 입었는데 등에 새로 줄이 간다면 자기 몸보다 한 칫수 큰 것입니다. 모두 사서 입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백화점 기성복 직원들은 큰데도 불구하고 잘 맞는 거라는 구라를 칩니다. 그러니 사는 고객 입장에서는 편안하게 입는 옷이 잘 맞는 옷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실은 자기 칫수보다 한 칫수 큰 약간 벙벙한 수트인데도요.

 

상의 수트의 단추를 잠궜을 시 등에 주름이 없고 앞 단추 옆으로 약간의 가로 줄이 가는 것이 몸에 가장 잘 맞는다는 표시입니다. 간혹 수트 디자인에 따라 싱글 브레스트의 경우 역V자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는 상의가 작아서 그런게 아니라 디자인 자체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역V자가 생기는 디자인이 그렇지 않은 디자인보다 세련되고 활동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역V자가 생기지 않는 수트는 좀 고루한 느낌이 강합니다. (고로 요즘 대세는 역V자가 선명한 디자인 입니다.)

 

그리고 상의는 반드시 엉덩이를 덮어야 합니다. 물론 키가 작은 분들은 수트 상의의 길이를 좀 짧게 하여 키가 커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때에도 엉덩이의 반 이상은 덮어야 합니다. 그래야 클래식 수트입니다. 엉덩이가 드러나는 수트는 일명 삐끼들이 입는 '삐끼 양복'입니다. 품위를 내기 위해 입는 수트가 경박함의 극치를 보여주게 됩니다.

 

광택이 나는 수트도 피해야 합니다. 캐시미어나 실크가 섞여서 윤이 흐르는 광택이 아니라 은갈치식 광택이 나는 수트가 있습니다. 이런 수트도 피해야 합니다.

 

제대로 입는 클래식 수트는 네이비, 그레이, 브라운 계열 중 하나의 색상을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트를 여러 상황에 맞게 믹스 매치할 수 있습니다. 비싸게 구입한 수트를 회사 출근할 때에만 입는다는 건 너무나 아까운 처사입니다.

 

얼마든지 캐주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차후에 기회가 되면 쓰기로 하고, 여기서는 클래식 수트에 어울리는 구두와 허리띠 그리고 가방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이 청색 계열이나 회색 계열의 수트를 맞췄다면 브라운 계열이나 블랙 계열의 옥스포드 레이스업 슈즈를 선택하도록 하십시오. 이게 비즈니스의 정석입니다. 쉽게 말해서 끈달린 구두를 말합니다.

 

끈 없는 구두는 로퍼라고 해서 캐주얼적인 면이 부각되는 구두입니다. 단, 몽크 스트랩이라는 버클이 달린 구두가 있습니다. 끈이 없지만 유일하게 클래식 수트에 어울리는 구두입니다.

 

가방은 토트백이 정석입니다. 요즘 보면 수트에 어울리는 백팩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클래식 수트의 정석은 토트백입니다. 일명 브리프케이스라는 드는 가방말입니다. 수트 어깨에 가방을 매면 수트 어깨가 손상되고 변형됩니다. 절대 어깨에 걸치거나 매지 마십시오. 수트를 입었을 시 남자의 가방은 언제나 손에 들여 있어야 합니다.

 

이상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제 말이 아니라 수트 입는 정석을 알려주는 책들에 그대로 나와 있는 공통분모들입니다. 월간 GQ난 아레나에서 이전에 부록으로 주는 책자들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내용들이니 허튼 소리는 없을 겁니다. 단지 사진을 곁들이지 못한 점이 좀 아쉬울 뿐입니다.

 

어쨌든 자신의 몸에 맡는 수트를 입으세요. 그게 정석이고 서양 수트를 제대로 입는 방식입니다. 백화점에서 수백만원을 주고 명품 수트를 사는 우를 범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명품 기성 수트 보다 훨씬 좋은 원단으로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수트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명품 값의 1/3도 안되는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말입니다.

 

만일 자신이 50-60 만원 선에서 기성복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맞춤 수트를 시도해 보세요. 수트에 대한 이해와 수트를 보는 눈을 넓힐 수 있을 겁니다. 예, 저는 이걸 확신합니다. 적어도 맞춤옷을 입으면 옷에 대한 생각이 확실히 바뀔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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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쭈니 2014-12-05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션전공인데 좋은글 잘 봤습니다

yamoo 2014-12-06 15:15   좋아요 1 | URL
오~~패션 전공이시군요. 좋은 글이라고 봐주시니 쓴 보람이 있습니다.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시길~^^

blanca 2014-12-05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왠지 야무님은 멋쟁이일 것 같네요. 이런 세계는 또 처음 접하네요. 좋은 원단으로 맞춰 입는 게 경제적이고 자기 체형에도 잘 맞을 것 같은데 원단을 구입해서 맞추는 과정이 좀 번거롭겠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yamoo 2014-12-06 15:19   좋아요 0 | URL
오, 블랑카님 올만입니다! 흠...멋쟁이일거 같다는 추측만으로도 감사합니다..ㅎ

남성 수트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깊이가 끝이 없습니다..ㅎ 욕심도 되게 많이 나구, 그에 비례해서 비용도 많이 깨집니다..ㅎ

원단을 구입해서 맞추는 과정이 좀 번거롭습니다. 근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번거롭지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단에 관심이 생기면 원단 둘러보는게 정말 재미있거든요~

원단 보는 눈만 생기면, 아니 그냥 좋아보이는 거 원단 시장가서 추천받아 그 원단으로 신랑이나 아버님 또는 지인에게 선물하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잘잘라 2014-12-05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진짜 진짜 멋진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yamoo 2014-12-06 15:2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메리포핀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런 글로다가 메리님을 댓글로나마 뵙게되는군요!

멋진 글이라니, 글을 쓴 보람이 있습니다.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4-12-0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등학생 졸업하고 나서 처음으로 양복을 맞췄고, 군 전역 후에도 양복 한 벌 더 구입했어요. 저는 양복을 입을 때 조금이라도 크게 느껴지면 오히려 약간 맞춘 듯한 사이즈가 좋다고 권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뻥인 것 같아요.

yamoo 2014-12-06 15:23   좋아요 1 | URL
네...뻥이 맞는 거 같습니다. 사이러스님 몸 스펙을 알려주시면 그에 맞는 브랜드를 추천드릴게요~ 앞으로 꼭 한 벌은 장만 하셔야 할 듯하니...맞춤을 하시든, 기성복을 구입하시든 예산 알려주시면 그 범위 내에서 최선의 수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반드시 매장을 방문하셔서 입어보시고 구매하시기 바랍니다~

oren 2014-12-0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단 사진을 보자말자 예전에 봤던 `홍대앞 멋쟁이 야무님` 모습이 떠오르네요. 혹시 그때 입었던 그 수트 아닌가요?

yamoo 2014-12-06 15:26   좋아요 0 | URL
아, 그때 홍대 앞에서 입었던 건 수트가 아니었어요. 그땐 바지와 자켓을 따로 입는 일명 세퍼레이트 룩이었습니다. 감청색 블레이저에 타탄체크 치노 바지 차림이었지요. 제가 위 팔질레리 원단으로 맞춘 수트를 입고 사진을 찍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기념샷으로 한 방을 찍어 볼까 합니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렌님^^

곰곰생각하는발 2014-12-06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대단하네요. 양복 입은 샷 하나 부탁드립니다.

yamoo 2014-12-06 15:27   좋아요 0 | URL
헐~ 대단하지 않아요. 네...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않그래도 샷 한방 찍을 예정이었습니다. 찍은 다음 이곳에다가 올려보겠습니다. 그때 댓글하나 부탁드려요~ㅎㅎ 욕은 하지 말아주세요...^^;;

세실 2014-12-0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멋진 샷 기대하겠습니다^^
얼굴도 꼭 보여주세요~~
패셔니스트, 야무님!

수이 2014-12-0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글을 읽으니까 꼭 인증샷 보고싶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4-12-07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증샷 ! 인증샷 ! 인증샷 !

kame 2014-12-2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처음으로 정장을 살려고 하는 30살 남자입니다.
제가 지금껏 해왔던일이 정장 입을일은 없고
항상 캐주얼만 입어서요..ㅜㅜ
어렸을때 장례식갈려고 급하게 샀던 검은색정장 하나있네요..ㅜㅜ
근데 이제 나이도 있고 해서 제대로 된 정장 하나 살려고 하는데
어떤 브랜드가 괜찮을까요??
아니면 맞춤이 괜찮을까요??
밑에 글도 읽으면서 많은것을 배워갑니다.
아 참고로 제 키는 183에 몸무게는 살이많이쪄서 88입니다.
가격대는 벌당 50~70만원정도 생각하구요.
2벌정도 살려고하는데 싱글 하나(베스트 포함)
더블 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색상은 네이비 계열로 살려고 하는데 혹시 추천 좀 해주수실수 있을까요??
아 참고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회사를 다니면서
슈트입는 일은 없쓸것입니다..^^
그리고 맞춤을 할시 어디가 좋은지..잘 아시는데 있으면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면 원단시장 원단사는곳이나 어디가서 맞춰야하는지..아무것도 몰라서요ㅠ
제가 너무 물어보는게 많네요..ㅜㅜ

yamoo 2014-12-23 15:37   좋아요 0 | URL
맞춤을 하면 좋겠습니다만...맞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거 같아 그냥 기성복을 구입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예산이 5-~70만원에 두벌을 장만하신다면 아울렛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30살이시고 두고두고 입으려면 캐릭터 정장이 아닌 신사복 계열에서 구매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갤럭시, 마에스트로, 캠브리지멤버스, 팔질레리 브랜드에서 고르시구요..
가산동 아울렛 중 패션아일랜드 2층에 가시면 30만원대 정도로 괜찮은 이월상품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만일, 맞춤 지식이 없어도 맞춤을 하시려면 광장시장에서 40정도에 맞출 수 있습니다만...전 비추입니다. 맞춤은 자신이 수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할수록 완성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울렛에서 기성복을 2벌 장만할 것을 강력히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jaemoon38 2014-12-2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감사합니다^^제가 생각하는건
한벌당 50-70 정도 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맞춤보다는 매장으로 가는게 괜찮다는
말씀이신거죠??
제가 너무 많은걸 물어보네요ㅠ

yamoo 2014-12-24 10:06   좋아요 0 | URL
한벌당 50-70정도면 제일모직 공장 직영점에서 구입하세요. 팔질레리가 30만원대 정도밖에 안합니다. 두벌에 70정도되도.. 꽤 좋은 거 건질 수 있으니...반드시 아울렛 매장 가서 입어보고 구매하세요. 183-88정도의 몸 스펙이면 제가 말씀드린 브랜드 매장에 가면 맞는 치수 많을 겁니다. 맞춤 보다는 말씀드린 브랜드에서 구매하길 강추드립니다~

그리고 일반매장에 쓰리피스 있구...아울렛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수트가 쓰리피트로 나오지 않는 것도 있으니 주의하시구요..매장에서 쓰리피쓰 보러 왔다고 하면 베스트 있는 상품들 위주로 보여줄 겁니다.

사실 한벌 당 50-70이면 백화점에서 사도 괜찮은 거 고를 수 있습니다. 요즘 배화점 세일기간이라 더반 매장에 보니, 50%세일 하더이다. 여튼 저는 아울렛 매장 추천드리며 한 벌당 30만원대를 강추드리는 바입니다~^^

kame 2014-12-24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참 그리고 일반매장에도 쓰리피스가 있나요???

yamoo 2016-01-15 17:09   좋아요 0 | URL
네, 있습니다. 투 피스보단 좀 비싼 게 흠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투 피쓰를 산 다음 최대한 비슷한 원단과 색상의 베스트를 구매하는 편입니다.

sfmeden 2016-01-15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제가 가진 원단으로 옷을 짓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일반 테일러샵은 원단따로 진행 안된다고 하던데요..

yamoo 2016-01-15 17:10   좋아요 0 | URL
동대문이나 광장 시장에 가면 됩니다. 가격도 일반 양복점보단 쌉니다. 단, 재단사에게 주문을 아주 많이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옷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확률이 좀 있어요.

2016-04-04 0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5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6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18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3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3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생님 2016-09-02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후반 직장인입니다. 글 정말 유익하게 잘 읽었고, 어떻게 맞춤을 해야하는 지도 잘 배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질문이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정장과 모자를 항상 입으시는 것을 보고 정말 멋있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할아버지는 딱 붙거나 슬림한 정장을 입으신 것도 아니었고, 키도 작으신 전형적인 할아버지 였습니다. 아무리 잡지에 나오는 슬림하고 길쭉한 모델들이 딱 붙는 정장을 입어도 저희 할아버지처럼 멋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여, 저도 그런 옛날풍의 정장을 입으려고 합니다. 옛날 개화기 사람들과 같이 낙낙한 핏 말입니다.
그런데도, yamoo님께서 말씀하신 `정석`이나 어떠한 조건등을 지켜야하나요? 이 것들이 현대 정장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여 질문합니다. 감사합니다.

yamoo 2016-09-03 18:41   좋아요 1 | URL
흠....오래 전 글도 검색해서 읽는 분이 있네요. --;;
요즘 나오는 수트 디자인들, 그러니까 몸에 딱 붙는 스타일은 이탈리아 나폴리 스타일을 많이 가미한 것이죠. 몸에 맞게 입되, 어떤 디자인을 입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에 달려있습니다.

개화기 때 우리나라에 소개된 수트는 미국 수트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메리칸 스타일이죠. 1900~1930년대까지 미국에서 유행한 스타일이 할아버지가 입으신 스타일 이듯합니다. 그렇게 입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조건을 세세히 따지면 입을 게 별로 없습니다^^;; 멋진 선택이겠습니다!ㅎ

안녕하세요 2016-09-16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혹시 추천할 만한 테일러가 있는지요? 광장시장이라고 하면 20년된 양복들 전시해놓은 나이 지긋한 테일러들 느낌이라... 그분들을 지지고 볶는다고 요즘 핏이 나올지 의구심이 드네요. 조만간 속는셈 치고 한번 가볼 생각입니다. ;)

yamoo 2016-09-17 16:19   좋아요 1 | URL
동묘 부근에 3대손바느질 양복점이라고 있습니다. 완전 비스포크 맞춤이지요. 주문을 잘 하면 좋은 옷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고 템테이션 급으로 20만원 대에 맞춤 하시려면 광장시장에 가시면 됩니다. 단, 이때 몸에 최대한 잘 맞는 매일 입는 옷을 본으로 가져가 그대로 재단해 달라면 거의 비슷하게 나옵니다. 확실히 말해두세요. 똑 같이 나오지 않았을 때 나머지 잔금은 없다고요...그럼 2-3번 고쳐줍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