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어제 작업할 게 있어서 늦게까지 자판을 두드렸다. 와이티엔 밤 뉴스를 틀어놨는데 책 소개 코너에서 찰스 디킨즈의 저서 소개가 있었다. 찰스 디킨즈야 워낙 유명한 소설가이니, 아직 번역이 안된 작품을 누가 번역서를 낸들 뭐가 이슈가 되겠냐마는..(소설광이 아니라 이런 생각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뉴스의 요지는 찰스 디킨즈가 역사책도 썼다는 거였다. 발굴이 돼서 이제야 번역이 됐다니, 전혀 의외라서 귀가 쫑긋 세워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사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는데, 이 역사책이 당시 영국 초등학교 교과서로 사용되었다니 정말 놀라웠다. 소설가가 쓴 역사 교과서라...정말 놀라운 뉴스다!
둘.
날씨가 너무 추워졌다. 12월 초부터 날씨가 미쳤나부다. 강추위, 비, 눈, 강추위의 순환이 계속되는 듯. 중간에 따뜻하고 괜찮은 날씨가 있었는데, 그땐 하필 중요한 뭔가가 발목을 잡았다.
수트 입고 착장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그럴 결심을 하면..그때마다 비가오거나 눈이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춥다. 젠장이다~ 착장 샷을 올린다고 괜히 약속했나부다. 날씨가 좀 풀리면 입고 나가서 찍어야 겠다.
셋.
최근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보다가 한 책에 필이 꽂혀버렸다. 매달 십 여권을 빌려보는데, 책을 슥슥 넘겨보다가 보석같은 책을 발견했다. 집중해서 몇 페이지를 읽어보니 반드시 소장하고 싶어졌다. 그제 빌려서 빠른 속도로 완독했고, 오늘 아침에 알라딘 중고서점들을 뒤졌다. 있었다!! 그것두 강남점과 신촌점에 있는게 아닌가.
아침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점심 시간이 되기 전에 강남전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다시 검색을 했는데, 아뿔싸 벌써 팔렸다! 할 수 없이 신촌점으로 빽했다. 10분 단위로 검색해가며 도착해서 책을 손에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알라딘에서 급하게 이 책을 손에 넣고 싶었던 건 가격이 반값도 안되는 아주 새책이었기 때문. 신촌점에서 건지지 못했다면 일주일 내에 알라딘에서 새 책으로 구입했었을 거다.
책을 소장하고 싶었던 건 다름이 아니라 책의 내용과 만듦새가 정말 탁월했기 때문이다. 남성 복식사를, 그것도 근대 100년의 역사를 도판과 함께 압축적으로 개괄할 수 있는 책은 이책이 유일했다. 여러 도서관에서 복식사 분야를 자주 기웃거려 봤지만 이 책만큼 남성 복식의 핵심을 짚어주는 책은 보질 못했다. 대부분의 남성 복식사는 여성 복식사의 따라지마냥 또는 부차적으로만 언급될 뿐인데, 이 책은 과감히 그런 입장을 뒤집는다. 근대 복식사에서 여성 복식이 남성 스타일을 얼마나 많이 차용했는지, 남성복의 여러 스타일 화보에 따라 그 특징을 간결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책 구매는 화려한 화보(끝내주는 도판과 화보가 패션잡지를 방불케 한다.)보다는 저자의 서문에 있었다. 단 2페이지로 남성 복식사를 정리해주고 있는데, 이런 포스의 글은 스타일을 다룬 어떤 책에서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복장사 학위를 갖고 있는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미술사 학위도 갖고 있다) 도판을 해설한 간결하고 압축적인 글은 이 책 구매를 부채질 했다. 두고두고 볼 책인 것을 직감하고 구매하게 되었다.
정말 우리나라 스타일 전문가란 사람들이 낸 책을 이 책과 비교해 보면 초등학생들의 장난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수준은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문화사 분야의 중요 자료집으로도 손색이 없다.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보면 아주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겠다. 자기가 현재 입고 있는 옷의 근원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