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뉴라이트가 벌이는 원한의 정치


오호. 9장은 매우 흥미롭고, 역시나 열받는 내용 투성이다. ㅋㅋ 페미니즘은 열뻗침과 함께합니다. 

대놓고 여성의 권리에 반대하는 게 어려우니 오히려 '여성해방'의 용어를 가져다 쓰면서 여성들에게 '진정한 선택권'을 준다는 - 뜯어보면 결국 그 선택이란 건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지만 - 궤변을 외치는 방식은 앞서도 저자가 누누히 말해왔다. 하지만 이 장에서는 정치적으로 뉴라이트라는 집단이 어떻게 '가족 친화적', '모성 친화적'이라는 등의 용어로 자기들 이미지를 세련되게 포장했는지 보다 자세히 알려준다. 

뉴라이트 여성들이 얼마나 페미니즘에 유해한지 생각하면 아찔하고 씁쓸하다. 이들 중에는 '마슈너'라는 사람처럼 진심으로 여성이 능력만 있으면 차별받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화려한 성취로 여성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이 누린 기회들을 처음부터 박탈당한 이들도 있다는 점을 외면하고 그냥 "하면 된다"라고 외치며 여성들에게 명예 남성이 되길 권한다. 자신은 아주 적극적인 외부활동을 펼치면서도 여성은 가족의 품에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은 "사적으로 페미니즘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이들이 페미니즘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게 막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악의적이다. 


읽다가 궁금했던 점, "오웰식 말장난"이 뭘까? 조지 오웰일텐데. 오웰이 이런 말장난을 즐겨했던 걸까?



* 인용문



오늘날의 반격에 출생지가 있다면 아마 이곳 뉴라이트 집단 속일 것이다. 바로 여기서 반격은 처음으로 분명한 이데올로기적 의제를 가진 운동으로 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의 대표 주자들은 여성평등은 여성의 불행을 낳는다는 반격의 핵심 주장을 만들어 낸 최초의 인물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가장 널리 인용되지만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죄, 도덕적 가치보다 물질주의를 더 드높이는 (그러니까 여성들을 탐욕스러운 여피로 만드는) 죄와 전통적인 가족지원 시스템을 뒤흔드는(그러니까 여성들을 생활 보조금에 기대 사는 엄마들로 전락시키는) 죄를 저질렀다며 페미니즘을 비난한 최초의 집단이기도 했다. 주류에서는 이들의 과열된 비유와 지옥불의 이미지를 거부했지만 이들의 핵심적인 정치적 메시지는 살아남아서 미디어의 ‘트렌드‘로 변질되었다. 362,363


정치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과 얼람은 현대 미국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이런 주기적인 현상을 연구하면서 ˝반격의 정치는 자신들의 중요도,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집단에 의한 반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전적인 보수 세력과는 달리 이런 ‘사이비 보수층(이는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e Adomo가 이런 현대의 우익 운동 세력을 지칭한 표현이다)‘은 스스로를 현 상태의 수호자가 아니라 사회적 외톨이라고 인식한다. 이들은 지배 질서를 옹호하려 하기보다는 철이 지난 질서나 상상 속의 질서를 복원하려 한다. 363

이는 뉴라이트의 이상을 상징하는 최초의 법안 발의였다. 이들은 이 법안을 가족보호법Family Protection Act이라고 불렀지만 결국 이들이 1981년 의회에 소개한 법안은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는 무관했다. 사실 이 법안의 목표는 단 한 가지, 여성운동의 거의 모든 법적 성취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 법안에서 제안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남녀 평등 교육의 근간이 되는 연방법들을 없애고, ˝모든 스포츠나 여타 학교 관련 활동에서 남녀가 섞이는 것˝을 금지하고, 결혼과 모성이 여학생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하고, 비전통적인 역할을 맡는 여성을 담은 교과서를 사용하는 모든 학교에 연방의 자금을 중단시키고, 구타당한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보호하는 모든 연방법을 폐지하고, 낙태에 대한 조언이나 이혼을 원하는 모든 여성에게 연방의 자금으로 법적 원조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것. 이 법안은 전체적으로 무언가를 금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 기나긴 금지 목록에서 유일하게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한 것은 기혼 여성이 아이를 낳고 집에서 지내도록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세금 인센티브 뿐이었다. 369,370

뉴라이트는 여성들이 새롭게 획득한 출산에 대한 권리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 생명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여성들이 새롭게 포용한 성적 자유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순결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그리고 여성들의 대대적인 직업 시장 진출에 적개심을 표출하면서 여기에 ˝모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 마지막으로 뉴라이트는 그들 자체, 그러니까 여성의 권리 신장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퇴행적이고 부정적인 태도에 ˝가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 과거 남녀평등헌법수정안에 반대했던 집단인 이글포럼은 자신들을 공식적으로 ˝여성해방의 대안'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980년 선거 이후 이들은 자신들의 수식어를 “1972년부터 가족 친화적 운동을 선도하고 있는˝으로 바꿨다. 과거 웨이리치는 자신의 적을 ‘여성해방‘이라고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웨이리치는 자신의 원수를 ‘반가족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그였고, 페미니스트들이 그의 프로그램에 반발할 차례였다.
이런 오웰식의 말장난은 뉴라이트 지도자들을 수동성이라는 궁지에서 꺼내 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날로 증가하는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 이들의 분노를 감춰 주는 기능도 해냈다. 이는 성공적인 마케팅 수단이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라는 깃발 아래 행진할 경우 이들은 언론으로부터 더 많은 공감을, 그리고 대중들로부터 더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373

마슈너는 그 모욕을 잊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개인적인 상처를 다독거릴 줄 알았다. 스스로를 ‘여자애‘의 하나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그 테이블의 반대편에 앉아 여성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명예 남성 중 한 명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순전히 재능만으로 그곳까지 갔다. ˝난 한 번도 직업 시장에서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난 모든 걸 내 능력을 통해서 얻었어요.” 그녀는 여성에게는 공적인 영역에서 성공할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다는 법칙에서 ‘예외‘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은 ˝아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어차피 실력이 있으면 성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건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381

그녀를 비롯한 다른 많은 주부들은 ˝상당히 형편없는 자아상˝과 ˝수동성˝, 그리고 ˝열등감˝에 시달렸다. 그녀는 자기주장을 가지고 ˝장점˝을 발휘하고 싶었지만 교회에 도전하거나 남편을 위협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는 만일 자신이 ˝영적인 힘˝만을 추구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기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권위에 대한 갈망을 ˝성령의 힘에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틀에 끼워 넣으면 용인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의 야망이 종교의 테두리 안에 있기만 하면 복음주의 공동체 내의 그 누구도 그녀의 야망에 반대할 수 없었다 388

뉴라이트 여성들은 어떤 면에서는 반격의 소용돌이에 갇힌 좀 더 진보적인 ‘여피‘ 자매들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습이었다. 주류 직장 여성들이 내부적으로 반격이 만들어 낸 자기 의심과 비난에 맞서면서 페미니즘의 원칙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편이었다면, 뉴라이트 여성들은 여성운동의 메시지를 내면화하고 자기 결정과 평등, 선택의 자유라는 여성운동의 교의를 자신의 사적인 행동에 말없이 녹여 내면서도 반페미니즘 관점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396,397

미국을걱정하는여성모임의 활동가들은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나가 보고를 하고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언론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서도 절대 모순을 느끼지 않았다. 이들은 개인적인 자유와 성 정치에 대한 공적인 입장을 분리시킴으로써 공식적으로는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개탄하면서도 사적으로는 페미니즘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들이 실제로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던 건 다른 모든 여성들이 자신들과 같은 기회를 누리지 못하게 저지하는 일에 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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