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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재의 공식 오프닝은 2012년 3월 21일이었으나, 서재 주소의 날짜는4월 27일이지요.

한 달 후 일 년 후를 과연 기약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일주년 기념 선물을 보내주셔서, 이에 화답하느라 궁색하게나마 일 년을 돌아봅니다. 남들처럼 그럴싸한 말을 하는 재주가 없어서 간결한 집계로 대신합니다.

 보잘것없고 게으르고 오락가락하지만 그럼에도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이곳에 흔적을 남긴 것이 일 년. 지켜보아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짧게나마 남깁니다.  

 

 

 

 가장 리뷰가 많은 폴더 : A

 

D : 2편

180일의 엘불리

근대회화의 혁명

 

K : 2편

Westminster Legacy - Chamber Music Collection [59CD] [세계 최초 한국 1000조 한정반]>

극장전

 

B : 4편

폴 스미스 스타일

셜록

어두운 기억 속으로

Coldplay

 

F : 5편

집착

한 달 후, 일 년 후

철학자의 디자인 공부

폴리나

고통

한 여자

 

R : 1편

무도회가 끝난 뒤-러시아

 

A: 6편

선셋 파크

드링킹

케빈에 대하여

진화심리학

올리브 키터리지

모든 날이 소중하다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리뷰

너는 모른다-케빈에 대하여(2012) : 추천수 96

http://blog.aladin.co.kr/0427/5810750

 

 

가장 추천를 많이 받은 페이퍼

20120826 : 추천수 54

(대학살의 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http://blog.aladin.co.kr/0427/5814498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리뷰

한 달 후 일 년 후 : 댓글 8

http://blog.aladin.co.kr/0427/5979998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페이퍼

suede :댓글 19

http://blog.aladin.co.kr/0427/6165526

 

 

 

 

 

 

 

 

고마워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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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4-1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생일이라고 선물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까, 쟌님? 와- 대단해요!
언제나 고마운, 그런 사람이 있다니 말이지요.
:)

Jeanne_Hebuterne 2013-04-18 13:09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제가 잊었거나 인식하지 못한 것을 깨우쳐 주는 이의 축하가 정말 고마워서 이렇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답니다. 저는 생일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일정 기간을 두고 무언가를 돌아보기에는 기념일이 좋지요.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더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hnine 2013-04-17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디서 이런 음악을 찾으셨어요? 정말 기발하네요.
0427이 그래서 0427이었군요 ^^
서재, 장수시키세요! ^^

Jeanne_Hebuterne 2013-04-18 12:51   좋아요 0 | URL
이 음악, 그럴싸하지요? HAPPY BIRTHDAY VARIATION인데 제목에 걸맞게, 생일에 참 적합한 음악입니다. 여러 음악가 풍의 음악을 들으면 그 작곡자들의 특징을 짚어낸 감각이 재미있게 느껴지지요. 제가 진득하지 못하고 뒤죽박죽 한 면이 있어서 조바심이 납니다만 그래도 일 년이라는 시간을 넘었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꾸려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다크아이즈 2013-04-1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왕 부럽습니다.^^*
열흘이나 앞서 추카해주는 센스하며,
초콜릿과 텀블러라뇨...
왠지 아주 가까이 계신 분 같아요.
것도 부럽습니다.


Jeanne_Hebuterne 2013-04-18 15:51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자세히 보시면 포스트잇에 정성껏 편지도 써서 보내주셨다는 자랑을 덧붙입니다. 무엇보다도 끈기 없는 성정의 제가 이렇게나마 리뷰와 페이퍼를 조금씩 남겨온 데에는 이러한 격려가 큰 힘이 되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이렇게라도 남기고 싶었답니다. 저는 무심하여 제때 무언가를 제대로 축하하는 데 서투른데, 종종 이렇게 친절한 선물을 받으면 더 고마워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긴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제대로 인사를 한 것인지도 헛갈리곤 해요. 팜므느와르님도 여기 오래오래 있어요!

테레사 2013-04-1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늘 궁금했습니다. 왜 서재가 이 숫자일까?..그리고 이 분은 직업적 평론가가 아닐까? 음악, 미술 또는 .....장방형으로 뻗쳐있던 관심사와 깊은 통찰력...무엇보다 최근들어 긴글을 써 본 적 없는 저로서 부러울 수밖에 없는, 길고 호흡이 긴 글들....그럼에도 1년밖에 안되었군요....정말이지 부럽습니다..축하드려도 되는 거죠? ^^

Jeanne_Hebuterne 2013-04-18 13:04   좋아요 0 | URL
서재 나름의 생일, 저 나름의 작은 기념일이랍니다. 누구나, 특히 이곳을 활용하시는 분들은 책, 영화, 음악, 미술 작품 등을 감상할 테고, 그러다보면 자기 생각을 짧게나마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소개하거나 의견을 묻고 싶어질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저 읽을만한, 시간 낭비가 되지나 않을 그런 감상을 남기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인데 테레사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엉키지 않는 긴 호흡, 바스러지지 않는 굳건한 토대, 다른 무언가를 뽑아내는 의미, 이런 것들을 일주년이 된 지금 더 지향하게 되었어요. 일 년밖에 되지 않았고 남긴 글은 더 얼마 되지 않아 집계 내기가 상당히 쉬웠답니다. 아쉬운 대로나마 좋게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뵈어요 :)

blanca 2013-04-1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텀블러군요! 저는 언제나 여기에 계셔 주시는 님이 고맙답니다. 제가 여기에 글을 쓰기 전부터도 jeanne님을 기억하지요. 특유의 그 느낌, 이미지. 우아, 그런데 추천수가 어마어마하군요!

Jeanne_Hebuterne 2013-04-18 13:55   좋아요 0 | URL
네, 블랑카님! 스타벅스에 관련한 블랑카 님의 글을 읽으니 이상하게도 반가워져서 블랑카님의 서재에도 자랑했었지요? 전 종종 이런 종류의 반가움을 감추지 않고 와락 달려드는 순간이 있어요. 그럼에도 부담스러워하시지 않고(?) 계속 있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블랑카님의 칭찬은 늘 듣는 이를 잘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답니다. 그만큼 블랑카님 자신만의 통찰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축하 고마워요, 블랑카님!

추천 수,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외계인의 일이 아닌가 의심 중입니다.

Jeanne 2013-07-28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은 제 영어이름이 jeanne라서 같은 이름 우연히 보고 서재 구경왔는데 0427이어서 순간 놀랐네요 제 생일이거든요... ㅎㅎ 그래서 이렇게 인사하고 갑니다

Jeanne_Hebuterne 2013-07-29 17:27   좋아요 0 | URL
늦었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 라는 댓글을 달게 만드는 인사 :)

Jeanne 2013-07-28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이셨군요 글보면서 짐작했었는데 맞네요 잘 지내셨어요?

Jeanne_Hebuterne 2013-07-29 17:28   좋아요 0 | URL
조용히, 없는듯, 있는 듯, Jeanne님, 잘 있었지요? 가는 길을 잊었는데 찾아갈 수 있어 다행입니다. 보고싶었어요:)
 



I've made up my mind, 이제 결정했어.
Don't need to think it over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어.
If i'm wrong, i am right 만약 내가 틀린건지 맞는건지
Don't need to look no further, 더 볼 필요도 없이,
This ain't lust 이건 욕망이 아니야.
i know this is love 나는 이게 사랑이란 걸 알아.
But, if i tell the world 그렇지만 내가 온 세상에다 대고 말한다 해도
i'll never say enough 충분하지 않아.
'cause it was not said to you 왜냐하면 너한테만은 말을 못했으니까.
And that's exactly what i need to do 바로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인데
If i end up with you 만약 내가 너랑 끝까지 간다면


Should i give up, 내가 포기해야 할까.
Or should i just keep chasin' pavements? 아니면 계속계속 이 길을 걸으면 될까?
Even if it leads nowhere 이 길이 무의미해도
Or would it be a waste 괜한 짓이라 해도
Even if i knew my place 설령 내가 갈 곳을 안다 해도
Should i leave it there 그곳을 가야만 할까
Should I give up, 내가 포기해야 하는건지
Or should I just keep chasin' pavements 아니면 그저 계속 이 길을 걸으면 되는건지
Even if it leads nowhere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다 하더라도.

i build myself up 갈피를 잡았어.
And fly around in circles 그리고 주변을 빙빙 돌다가
Waitin' as my heart drops 내 심장이 떨어질 때 까지 기다리다가
And my back begins to tingle 그러다 등이 아릴 때
Finally, could this be it 마침내 그렇게 되겠지.


Or should i give up 아니면 내가 단념할까.
Or should i just keep chasin' pavements 그냥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하나
Even if it leads nowhere 그 길이 무의미해도
Or would it be a waste 괜한 짓이어도
Even if i knew my place 내가 갈 곳을 내가 안다 해도
Should i leave it there 그곳으로 가야만 할까


Should i give up 내가 포기해야 하나.
Or should i just keep chasin' pavements 아니면 그저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어야 하나
Even if it leads nowhere 그 길이 무의미해도
Or would it be a waste 괜한 짓이어도
Even if i knew my place should i leave it there 갈 곳을 알아도 그곳으로 가야 하나
Should i give up 내가 포기해야 할까
Or should i just keep on chasin' pavements 아니면 이대로 계속 걸어야 하나
Should i just keep on chasin' pavements 그저 이대로 계속 이 길을 따라 가야 할까

 

-Adele, Chasing pavement. from "19"

 


















 

 


2008년 1월 29일, 이 노래가 담긴 이 음반이 발매된 날짜.

2011년 9월 22일, 링크의 저 공연이 있었던 날짜, 로열 앨버트 홀.

2013년 3월 21일로 넘어가기 직전의 20일 밤. 지금 이 시각. 봄을 시기하는 겨울이 건재함을 알리는 시기. 봄눈이 내리고 기온이 하강하고 기압도 떨어지고 빗방울이 눈송이가 하지만 마침내 햇빛에 사라지는 날. 


 


 

높은 건물의 창가에 기대어 손에 뜨거운 머그잔을 들고 안에 든 무언가를 마시며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누군가 무단횡단을 한다. 도넛 배달을 하는 트럭 지붕에는 커다랗게 도넛 그림이 있었고 멀리 검은빛 새가 날았다. 낮게 깔린 하늘을 배경으로 누군가는 길을 가리키고 누군가는 길을 물었다. 저렇게 해서 알 수 있을 정도의 길이 적당했을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질문과 그것을 답해주는 이의 목소리가 적당히 정답기를 바랐다. 세상은 다채로웠다. 

 

 


 사람은 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고 그 시간은 길지 않다. 

 급히 묶었던 신발 끈.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내며 닫았던 문. 그럴 필요 없었던 모질었던 순간.  그 시간에는 길잃은 자의 의지가 있었다. 무언가를 더듬어서라도 문을 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아델의 목소리는 그런 목소리이다. 무언가를 결심하기 전 마지막으로 망설이는 사람의 그림자이다. 이제 결정했다는 문장 뒤를 잇는 모든 문장 속 주어 I는 모두 다 소문자였다.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던 목소리인데 끝없이 질문할 때에는 그렇지가 않다.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이 있을까. 아니면 나만 이럴까. 죽도록 우물을 파다 우물 속으로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할까. 너무 큰 소리를 내며 닫아버려서 이제 그 문 뒤에서 히키코모리가 되는 건 아닐까. 급히 뛰느라 어디를 뛰는지 몰랐는데 어느 순간 마녀 유바바가 나타나면 어쩌나. 모든 것에 확신이 없어질 때 질문을 하는 자도 자신이어야 하고, 질문을 받는 자도 자신이어야 한다. 나이도 잠시 잊고, 국적도 잊고, 인종도 잊고, 그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비로소 아델이 보인다. 주어를 모두 다 소문자로 써야 했고 확신은 하는데 말할 수 없고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 사람이 보인다. 

 

 



 그 이전의 찬란했던 기대가, 설렘이 불안으로 바뀐 아델의 검은색 앨범, 19가 보인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구르다가도 어느새 길을 걷게 된다. 길잃은 자들의 송가, 방향을 찾는 자의 나침반. 그것은 당시 아델의 경험대로 사랑일 수도, 사랑 이외의 모든 어떤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고 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으며 질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지 시간이 무척 짧다는 것. 때로는 서두를 수도, 때로는 지체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끝이 언젠가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혹은 설렘 탓에 우리는 '끝없는 듯한' 이라는 케케묵은 문구를 종종 불안하게 떠올린다. 그래서 다시 길을 걷는다. 그 길이 어떤 길일지, 어떤 갈래가 될지, 돌아보거나 내다보려 하면서. 

 

 

 

 강렬한 기대, 헛헛한 결과. 

 자신에 대한 실망, 남는 것 없는 시간.

 내가 정작 가장 끝없이 강력히 지금까지도 싸워오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내가 가장 나중 지닌 것을 떠올릴 수도 없는 순간. 

 나는

 그러니까

 이를테면



 길잃은 개를 보고 불쌍해서 안고 회사 사무실까지 데리고 들어가 우유를 주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날개를 다쳐 길에 떨어진 나비가 불쌍해서 화단에 옮겨준 다음 그 다음 날 그 길을 지날 때 다시 확인해 보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나무에서 야옹거리며 울기만 하는 작은 아기 고양이를 꺼내어 주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정기적으로 지구 건너편의 누군가를 후원하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밤마다 어느 배우의 음성을 밤새 들으며 자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뜀틀을 가볍게 넘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아침마다 노란 원형 통에 든 물고기 밥을 물고기에다 주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폭풍우 치는 밤, 연못에 있는 물고기들은 어쩌나 걱정은 되는데 무서워서 나가보질 못하던 그 사람이 그리웠다.

 즉, 나는 모든 내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돌아오겠다고 말하는 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라고 말한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 꼭 고을의 원님들은 한밤중에 혼자 호롱불빛 아래 앉아있다 묘령의 넋을 만나나. 그것은 인생의 지리멸렬한 클리셰였다. 얘야.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이 나쁘단다. 숙제를 게을리해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어.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그리웠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모든 목소리가 나는 그리웠다. 내가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이 끝도 없는 길을 계속 걸어야 할까. 이제 마음 좀 잡았는데, 내 심장이 땅에 떨어질 때까지, 내 등이 아플 때까지 이러다 보면. 이렇게 노래하는 아델이 그리웠다. 나는, 이라고 계속 말하고 싶었다. 주어를 강렬히 살리고 틈을 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말하고 싶은 경우가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늘 그 말을 꼭 들어야 할 사람은 듣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추측에 그칠 뿐인 허무하고 완벽한 날들.


 


 그 모든 측은지심은 어디로 갔나. 다른 무언가를 누군가를 애타게 걱정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생각한 주제넘은 욕심은 어디로 갔나. 모두 다 나였다. 그러나 모두 다 내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나는 그리워하고 애태우다 아직도 내가 나에게 뭔가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을 부적처럼,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트럼프 여왕의 미소처럼 지닐 수밖에. 그러면서 꼭 신발 밑창 아래 천 원짜리 한 장 숨긴 거지처럼 살아있다. 시인의 섬세한 관찰력, 끊이지 않는 노력의 결실을 읽으면 세상은 그래도 아름다운 구석이 더 많으며 그걸 망치는 건 오로지 나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메리 올리버는 그 무엇도 쉽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의 시는 간결하다. 아는 체 하지 않는다. 젠체하지도 않는다. 어떤 무엇을 모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메리 올리버는 자기 자신을 척도로 삼는다. 천천히 들여다본다. 함부로 손내밀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옆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잠시 부는 바람이 아니다. 끝을 짐작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대양에 이르는 강물처럼 그녀의 시는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목소리를 잃지 않는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섹션의 스티브 도빈스가 평했듯 그녀의 시는 기분전환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문학이다. 이러한 은유와 환원, 관찰과 노력은 친절하고 다정한 안내이다. 길을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고 끝없는 깊은 잠에 빠지고 싶을 때면 나는 메리 올리버의 시를 읽고 싶어질 것 같다. 문학은 이렇게 기댈 어깨를 내어준다.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문 열쇠구멍으로 기어 들어왔어. 난 거미를 조심스럽게 창문에 올려놓고 나뭇잎을 조금 줬어. 그녀가(만일 암놈이라면) 거기서 바람의 그리 부드럽지 않은 말을 듣고, 남은 생을 계획할 수 있도록.


거미는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었어. 밤에 어떤 모험을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낮에도 움직일 수가 없었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잠든 것이었는지, 모르겠어. 


 이윽고 거미는 작은 병 모양이 되더니, 방충망에 위아래로 줄 몇 가닥을 만들었어.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떠나 버렸어.


 무덥고 먼지 낀 세상이었어. 희미한 빛이 비치는, 그리고 위험한. 한번은 작은 깡충거미가 현관 난간 위를 기어가다가, 내 손에 들어와, 뒷다리로 서서,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초록 눈으로, 내 얼굴을 빤히 모았어. 너는 그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진짜로 그랬어. 따뜻한 여름날이었어. 요트 몇 척이 항구 주변을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항구는 뻗어나가 대양이 되지. 세상의 끝이 어디인지 누가 알 수 있겠어. 열쇠구멍의 작은 거미야, 행운을 빈다. 살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살아라. 


-메리 올리버 산문시, '괜찮아?'


 

 

 


 

 




 

















 


 

 



 그러다 잠시 떠올려 본다. 내가 낮에 갔던 그 길은, 그 장소는, 내가 잡았던 머그잔은.




 지금 어둠 속에 가만히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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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3-2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쟌님.
인용해주신 산문시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읽은 기억이 없어요. 분명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는데 말이지요. 이 책에 이런 시가 있었던가? 왜 나는 몰랐지? 하고요.

22쪽에서 왜 생각났는지 알겠어요? '날개를 다쳐 길에 떨어진 나비가 불쌍해서 화단에 옮겨준 다음 그 다음 날 그 길을 지날 때 다시 확인해 보던' 쟌님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아귀가 다시 바닷속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쟌님이 생각났어요.

Jeanne_Hebuterne 2013-03-25 09:5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그 사람은 사라졌어요. 그래서 잠시 그리워했지만 없는 것을 다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크아이즈 2013-03-2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뷔테른님, 노랫말 빼고 일곱 째 단락 자화상 묘사 부분 넘흐 좋습니다.
저도 이런 글 쓰고 싶어요. 절대 쓸 수 없겠지만...
이래서 님 글이 무조건 좋다는^^*
(좀 말이 안 되나? 이유가 있는데 무조건 좋다고 말하니 ㅋ)

Jeanne_Hebuterne 2013-03-25 10:04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측은지심을 몽땅 잃어서 저런 사람이 없어져버린 것이 아주 조금 안타까웠어요. 아마 그 안타까움이 2% 가량 남아있어서 팜므느와르님께서 그 부분이 좋다고 생각해주셨지 싶습니다.
없는 걸 끄집어낼 수 없는 노릇이지만 좀 끄집어내려고 노력하면 일말의 희망이 보이려나, 생각해본 월요일입니다. 한 주 잘 보내시길 바래요!
 

                           PAT 

           I'm married!

                          TIFFANY
           So am I!

                          PAT
           What the fuck are you doing? Your husband's dead!

                          TIFFANY
           Where is your wife?

                          PAT
           You're crazy!

                          TIFFANY
           I'm not the one that just got out of that hospital in Baltimore.

-Silverlinings Playbook의 대사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쳤다고 말하는.

 

 

 

 

 

 Silverlinings Playbook은 그 발걸음이 심상치 않은 영화입니다. 네, 저는 저 괴상한 대사로 서두를 대신했지요. 얼마나 난장판 코미디인지를 제대로 보여 드릴 길이 없어서이기도 했습니다. 몇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는 이 영화는 전반부와 중반부의 출중함을 후반부의 구태의연함으로 한순간에 날려버려도 가까스로 그 축을 잡아끄는 몇몇 시사점 때문에 다시 생각하게 되는 묘한 작품입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행복한 미국 가족의 영화입니다. 크로니핀, 트래저딘 등의 약품을 이야기하던 남녀가 서로 걸레, 미친놈(저도 고상한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만 인용은 제대로 해야지요)으로 몰아붙입니다. '앞으로 순탄하게 잘 살 거야. 아가씨 같은 사람은 사주 보러 올 필요 없어' 라는 점술인의 말을 들은 다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이 년을 보내는 것과 같은 일이 이 영화에서는 줄줄이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대책불능의 미친 스크루볼 코미디이며 후반은 그저 그래서 마지막 오 분 정도는 안 보고 그냥 나와도 영화 감상에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아마 안 보고 나오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가로와 세로로 이어진 지그재그의 축에서 이 영화는 참신하게 살아납니다.

 

 

 

 

 

1.가로

 

 

 

 

 

 

 

 

 

 

 

 

 

 

 

 

 

 

 

“당신이 필요해요, 팻 피플스. 젠장, 죽을 만큼 필요하다고요!”
그녀는 내 목에 부드럽게 키스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내 살갗에 떨구었다. 보통 여자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과는 사뭇 달랐지만, 분명 솔직한 말이었다.-책 속에서

 

 

 

 

 원작이 태초에, 각본은 그다음에. 각색이 모든 곳에. 헐리우드의 모토일 겁니다. 배우로 활동하던 맷 데이먼이 감독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것도, 마카로니 웨스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랜토리노로 돌아오는 것도 어쩌면 각색과 제작의 분업화에 다름 아닐 겁니다. 이야기가 있었다면 카메라가 그것을 바꿉니다. 각색은 원하는 숨결의 강도를 조절하지요. 이를테면, 네, 육두문자를 남발해 가면서요.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절망적으로 거리를 달리면서요.

 

 

 

 

 당신 미쳤어! 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볼티모어의 정신병원에 있었던 건 당신이야. 라고 말하는 여자. 나 결혼했어요! 라는 말에 나도요! 라고 말하는 여자. 스크루볼 코미디가 간단하게 관객을 끌어들이는 가장 편한 방법을 감독은 택했습니다. 등장인물 전부를 미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전 재산을 스포츠 게임에 거는 아버지, 아내와 역사 선생의 샤워 섹스 장면을 목격하고 역사 선생을 죽기 직전까지 구타한 다음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와서도 여전히 아내를 되찾으려 전전긍긍하는 팻, 남편이 죽은 다음 남녀 불문하고 회사 사람 전부와 섹스를 해서 해고당한 티파니, 업무 스트레스와 홈 홈 스윗 홈을 외치는 아내 사이에서 질식사 할 것 같은 친구까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등장인물 중 제정신인 사람은 팻의 어머니 돌로레스 밖에 안보입니다. 이쯤되면 이 영화는 미친 사람들의 코미디가 아니라 미친 미합중국 국민의 자화상이라 보아도 좋을 정도예요.

 

 

 

 

 '파이터'에서부터 미친 가족을 보여주었던 데이비드 O.러셀은 이번에는 각도를 좀 따스하게 틀었습니다. 본인은 아니라 하겠지만 어떤 장면은 미국의 또 다른 잘 짜인 로맨틱 코미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떠올리게도 했어요. 쥴스는 마이클을, 마이클은 키미를 보고 죽도록 뛰는 장면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서로의 등을 보고 뛰는 사람들입니다. 짝사랑을 한눈에 보여주던 그 장면이 이번에는 팻의 등을 보고 뛰는 티파니로 변주됩니다. 처음 저녁을 먹기로 할 때에서야 우리는 티파니의 등을 보게 됩니다. 앉아있거나 정지해 있는 스윗 홈의 베로니카와는 달리 티파니와 팻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올려다 보게되지요. 언뜻 보면 평범하지만 이 감독의 시선은 참 자상하고 친절해요. 나서지 않고 길을 안내해주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모든 감독이 지닌 당연한 자격사항이라 오히려 우리에겐 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2.세로

 

 

TIFFANY

What meds are you on?

PAT
Me? None. I used to be on Lithium and Seroquel and Abilify,

but I don't take them anymore, no.

They make me foggy and they also make me bloated.

TIFFANY
Yeah, I was on Xanax and Effexor, but I agree, I wasn't as sharp,

so I stopped.
PAT
You ever take Klonopin?

TIFFANY
Klonopin? Yeah.

PAT
Right?

TIFFANY
Jesus.

PAT
It's like, "What? What day is it?"
How about Trazodone?

TIFFANY
Trazodone!

PAT
Oh, it flattens you out. I mean, you are done. It takes the light
right out of your eyes.

TIFFANY
God, I bet it does.


I'm tired. I wanna go.

VERONICA
No. No, no, no, no. We haven't, we haven't even finished the salad
yet, or the duck. I made the Fire and Ice cake.

TIFFANY
I said I'm tired. (to Pat) Are you gonna walk me home or what?

PAT
You mean me?

TIFFANY
Yeah, you. Are you gonna walk me home?

PAT
You have poor social skills. You have a problem.


TIFFANY
I have a problem? You say more inappropriate things than
appropriate things. You scare people.

PAT
I tell the truth. But you're mean.

TIFFANY
What? I'm not telling the truth?

RONNIE
Um, maybe I should drive them home separately?

VERONICA
You can drive them both home. Now.

TIFFANY
Stop talking about me in third person.

VERONICA
You can take Tiffany home first.

TIFFANY
You love it when I have problems.
You love it, Von, because then you can be the good one. Just say it.

VERONICA
No.

VERONICA

I don't. I don't. I just wanted to have a nice, I just wanted to
have a nice dinner.

TIFFANY
Oh, God.

VERONICA
What is your problem?!

TIFFANY
Nothing's my problem! I'm fine. I'm tired and I wanna go.

Come on, are you ready?

VERONICA
You really, you really wanna go right now?

TIFFANY
Yes, I really wanna go! It's been great.

RONNIE
Okay, guys, the baby is sleeping!

TIFFANY
Sorry. I don't wanna wake up the baby. Bye.




 

 팻은 티파니에게 예의가 없고 심술궂다고 말하고 티파니는 팻에게 부적절한 말을 엉뚱한 자리에서 꺼내 사람들을 언짢게 한다고 말하지요. 저는 이 비비 꼬아대는 개성이 데이비드 O. 러셀의 각색에서 왔다고 생각해요. 책은 영화보다 더 친절하고 은근한 방법을 택합니다. 눈빛이 얽히고 증오의 불꽃이 튀는 미친 남녀의 마음을 실버라이닝적 시점에서 슬쩍 풀어내고 있거든요.

 

 

 

 

 데이비드 O. 러셀은 윈터스 본의 전사 제니퍼 로렌스를 불안증에 걸린 연약한 여자로, 차가운 바람둥이 남자 브래들리 쿠퍼를 재기하려 안간힘을 쓰는 루저로 만들어놨습니다.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팻은 그 패배감이 구두 밑창에 숨겨둔 천 원짜리처럼 숨겨져 있어서 그가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뛰는 장면에서는 Beck Hansen의 Loser가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았어요. 브래들리 쿠퍼는 날을 드러내고 제니퍼 로렌스는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나는 이제 막 시작이다'는 데이비드 O.러셀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헐리우드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선댄스 키드의 힘이에요. 이야기가 포화상태입니까? 거기서 거기일까요? 하려는 말은 모두 뻔할까요? 이것은 각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한 가지 이야기, 혹은 천만 가지 이야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선댄스 출신의 감독들은 분명 열세 번째 이야기를 할 겁니다. 베드로가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도, 선댄스에서조차 외면당하는 것도 그들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 이후 더한 거대 자본과 시스템을 만나 참사를 겪거나 토머스 빈터베르그 감독이 헐리우드에서 유명무실한 영화를 만들었던 그런 일이 미국 인디 영화 감독들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 잡담

Best Picture: "Argo."
Actor: Daniel Day-Lewis, "Lincoln."
Actress: Jennifer Lawrence, "Silver Linings Playbook."
Supporting Actor: Christoph Waltz, "Django Unchained."
Supporting Actress: Anne Hathaway, "Les Miserables."
Directing: Ang Lee, "Life of Pi."
Foreign Language Film: "Amour."
Adapted Screenplay: Chris Terrio, "Argo."
Original Screenplay: Quentin Tarantino, "Django Unchained."
Animated Feature Film: "Brave."
Production Design: "Lincoln."
Cinematography: "Life of Pi."
Sound Mixing: "Les Miserables."
Sound Editing (tie): "Skyfall" and ''Zero Dark Thirty."
Original Score: "Life of Pi," Mychael Danna.
Original Song: "Skyfall" from "Skyfall," Adele Adkins and Paul Epworth.
Costume: "Anna Karenina."
Documentary Feature: "Searching for Sugar Man."
Documentary (Short Subject): "Inocente."
Film Editing: "Argo."
Makeup and Hairstyling: "Les Miserables."
Animated Short Film: "Paperman."
Live Action Short Film: "Curfew."
Visual Effects: "Life of Pi."

 

 

 

 

 

 네, 그저 그렇습니다. 저의 예상과는 달리 링컨이 상을 휩쓸지도 않았고 레 미즈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지도 않았어요.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당연한 결과였지요. 라이프 오브 파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아카데미는 권위보다는 젊어지려는 발버둥을 하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온갖 부문에서 후보작들을 남발하는 것은 기회균등보다는 하향 평준화의 달성일 뿐입니다. 이것은 권위 있는 시상식, 그 나라의 영화적 전통을 만드는 틀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인지도 낮은 누군가가 나와서 pc에도 어긋나는 재미도 없는 농담으로 시작해서 퍼스트 레이디의 이미지 변신의 무대로 이어진 다음 그저 그런 수상 결과만 낳는 쇼가 되지 않는 대신에요.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제니퍼 로렌스의 여우주연상 수상입니다. 작년은 '대처'의 메릴 스트립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카데미의 참신해지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기는 합니다만 상대는 제시카 체스테인, 에마뉘엘 리바, 퀴벤자네 월리스, 나오미 왓츠였지요. 후보들 중에서는 발군이며 제니퍼 로렌스의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럴 법 했지요. (속닥-그러나 그럼에도 뭔가 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리고 이 챕터는 아카데미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의 작은 교집합에 관한 잡담일 뿐입니다. 이 영화에 관한 잡담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상까지 타니, 이 정도면 꽤 그럴듯한 꼬리표 아닙니까?

 

 

 

 

3.날실과 씨실

 

 

 

 

 

 

 

 

 

 

 

 

 

 

 

 

 

  • 1-1. Silver Lining Titles - Danny Elfman
  • 1-2. My Cherie Amour - Stevie Wonder
  • 1-3. Always Alright - Alabama Shakes
  • 1-4. Unsquare Dance - The Dave Brubeck Quartet
  • 1-5. Buffalo - Alt-J
  • 1-6. The Moon Of Manakoora - Les Paul / Mary Ford
  • 1-7. Monster Mash - CrabCorps
  • 1-8. Goodnight Moon - Ambrosia Parsley / Elegant Too
  • 1-9. Now I'm A Fool - Eagles Of Death Metal
  • 1-10. Walking Home - Danny Elfman
  • 1-11. Girl From The North Country - Bob Dylan
  • 1-12. Silver Lining - Jessie J
  • 1-13. Hey Big Brother - Rare Earth
  • 1-14. Maria - Dave Brubeck / The Dave Brubeck Quartet 
  •  

     

     

     

     사운드트랙입니다. 대니 엘프만,데이브 브루벡 쿼텟, 밥 딜런을 축으로 하겠어요. 그러고는 살짝 알라바마 쉐이크와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을 군데군데 뿌리고, 타이틀곡이 하나쯤 필요하니 Jessie J를 영입한 것이겠지요. 그렇기는 해도 Jessie J의 뮤직비디오는 영화 홍보와 싱글 판매를 동시에 노린 모양인데, 좀 중구난방인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네, 그저 제 생각일 뿐이지만 아이 엠 러브처럼 비범하지도, 그렇다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처럼 괴상하지도 않고(이 사운드 트랙 들어보신 분은 제 기분을 아실 겁니다), 아델의 스카이폴처럼 주제를 한순간에 녹여내지도 않는 그저 그런 평범한 리스트입니다.

     

     축이 있기는 합니다만 비율을 알기 어렵게 혼용되어 약간 번잡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이 영화가 도그마 필름도 아니고(음악은 극중 라디오나 주인공이 듣는 음악이 아닐 시에는 별도 삽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지요), 기왕 넣을 바엔 아주 마음대로 넣겠다는 고집이 엿보이는 의지의 선곡입니다. 하긴, 그것이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힘이기도 했어요. 물론 그만한 패기가 있는지는, 다음 영화를 지켜보아야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아직 이 감독은 본인의 말대로, 이제 막 시작입니다. 우리는 포스트 마틴 스콜세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마 케네스 듀란도 십 년 전 그것이 궁금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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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3-01 0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1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두침침한 하늘, 대낮에도 낮게 깔린 구름, 하루 사이 조금씩 변해서 햇빛과 바람, 비와 구름, 역무와 습기, 건조함과 축축함이 번갈아 나타나다가 마침내 흡혈귀들의 낮과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지금은 사라진 목소리들을 떠올립니다.

     

     

     

     

     멤버간의 불화, 사운드의 고갈, 밴드 내에서의 불균형이 밴드의 해체 요인이라면 런던 스웨이드는 두 번째 정규 앨범 dog man star에서 그 불균형을 가장 아슬아슬하게 감지해냈던 밴드입니다. 사실 이 밴드는 앨범 발표 전 싱글 the drowners로 이미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데뷔 앨범은 영국 차트 1위로 시작했었지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성별이 불분명한 두 사람이 키스를 하는 이미지로 시작한 첫 정규 앨범의 스웨이드, 약물과 술, 파티, 샐러리 데이를 새터데이에 바치는 젊은이들의 밴드, 예쁘장하면서도 바이 섹슈얼한 이미지의 멤버로 구성된 이 밴드, 지금은 해체된 이 밴드가 영국 팝 씬에서 갖는 위치는 무엇일까요? 양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목소리는 이미 pet shop boys가 일구어냈습니다. 일렉트릭 역시 마찬가지이죠. 글램 록은 데이빗 보위였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목소리는 오외이시스라 발음하고 오아시스라 일컫는 갤러거 형제들이 해냈습니다. 영국 차트 1위의 기록을 깬 것도 오아이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스웨이드에게는 비틀즈만큼의 혁신도, 오아시스와 블러로 대표되는 양자 대립의 구도도, 라디오헤드와 같은 모던함도 없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밴드 결성 당시 데이빗 보위 아류라고 불렸고 보위와 스미스를 적당히 섞은 듯한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첫 번째, 두 번째 정규 앨범에서 기타리스트 버나드 버틀러는 the smiths의 기타리스트 Johnny Marr의 영향을 받았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그렇다 하여 그들이 적당히 편한 길을 평화롭게 여행한 것은 아닙니다. 경계에서 그것을 그들만큼이나 잘 활용하는 밴드도 드물었을 겁니다. 밴드의 라인업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저는 브렛 앤더슨(보컬)-버나드 버틀러(기타)의 라인업에 가장 주목했더랬습니다. 퍼즈톤의 기타, 스물한 살이 되었냐고 묻는 보컬(스물한 살은 영국에서 법적 동성애가 가능한 나이입니다), 그루브감과 어쿠스틱, 신디사이저의 틈을 피아노와 드럼이 가끔씩 비집고 나옵니다. 이들의 첫 앨범은 감각적이고 패셔너블했으며 그 자체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한마디로 새로웠지요. 헤밍웨이의 길잃은 세대가 나이 먹어 이미 늙어버린 1993년, 스웨이드는 한마디로 새로웠습니다. 그들은 브릿팝 최초의 스타 밴드이고, 모든 것을 휘감던 얼터너티브에 대한 대항이었으며, 글램 록과 글리터 록, 브릿팝과 얼터너티브를 아울렀지요. 다양한 장르를 조금씩 취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달까요. 이들이 1993년 첫 앨범으로 머큐리 음악상을 받은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앨범 자켓에 대한 논란에 관해 브렛 앤더슨은 '나는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마약 우리가 구설수에 오르고 싶었다면 앨범명을 '난 개하고 성교한다(I fuck dogs)라고 지었을 것이다.'라고 했답니다.-위키백과

     

     

     

     

     

    Won't someone give me a gun?
    Oh, well it's for my brother
    Well he writes the line wrote down my spine
    It says "Oh do you believe in love there?"
    So slow down, slow down, you're taking me over
    And so we drown, Sir we drown, stop taking me over
    Won't some one give me some fun?
    (and as the skin flies all around us)
    We kiss in his room to a popular tune
    Oh, real drowners
    So slow down, slow down, you're taking me over
    And so we drown, Sir we drown
    Stop taking me over

    -drowners

     

     

     

     

     

     

     

     

     

     

     

     

     

     

     

     

     

     밴드는 늘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밴드가 있다면 그들이 하는 음악을 전 의심해 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웨이드의 팬들은 간단한 질문으로 그들의 계급을 나눕니다. 별 대단한 것은 아니에요. 그저 스웨이드의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뭔지를 묻는 것인데, 대답은 주로 dog man star와 coming up으로 나뉩니다. 아실 겁니다, 당신도. 'coming up이 제일 좋습니다.'라고 답하는 순간 경멸의 눈빛 87%와 한탄의 눈빛 12%, 대체 넌 뭐냐고 묻는 한숨 1%가 당신에게 쏟아진다는 것을. 저의 경우에는 coming up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쾌하고 밝고, 그러면서도 허무하고 슬픕니다. 남는 것 하나 없는 클러빙 후의 일요일 늦은 밤 같은 느낌입니다. 간결하고 끈적이지도 않습니다. 깔끔한 복고풍까지 집어넣었다면 이해하실까요? 그에 반해 dog man star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몰락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장대하고 거대해서 '어셔 가의 몰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라는 생각마저 들어요.

     그들은 데뷔 앨범의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데뷔 앨범 drwoners가 약간 칭얼대는 느낌에 정돈이 덜 된 앨범이었다면 두 번째 앨범은 저음부를 확대하고 고음은 깔끔하게 끊어냈습니다. We are the pigs는 정규 앨범의 두 번째 곡이며(첫번째는 introducing the band) 여섯 번째 싱글이기도 합니다. 이 곡은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초기 스웨이드의 모든 것입니다. 대립하는 기타와 보컬, 간단하고 알아듣기 쉬운 가사, 영국 밴드들에게는 저는 두번째 앨범 징크스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보다 단단해지고 발전하는 사운드를 그들이 낼 수 있는 것은 기획사 체제가 아닌 밴드 멤버 중심의 사운드 양성 시스템이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스미스, 커모션스, 보위, 펫 샵 보이스 지향의 런던 근거지로 활동하는 밴드에서 젊은 기타리스트를 구합니다.'라는 광고를 보고 모인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밴드 멤버 구함. 보컬, 기타, 드럼, 베이스. 기획사에서 몇시부터 오디션'이라고 쓰인 광고를 보고 모인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브렛 앤더슨과 버나드 버틀러의 녹음은 이 정규 두번째 앨범이 끝이었으며 실황은 첫 앨범 발매 이후가 마지막이지요. 미디어에 친근하고 센세이셔널한 자세가 스웨이드의 정체성이라면 이는 곧 브렛 앤더슨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깁슨 ES355를 사용하며 전통적인 영국 팝 씬의 기타 사운드를 구현하며 정통적인 태도, 열린 접근, 이는 곧 두번째 앨범 전반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오케스트레이션을 사용하고 폭넓은 사운드를 구현했지요. 펑크와 브릿팝, 실험적 사운드는 패셔너블 글리터 록과 스웨이드를 구분하는 하나의 축입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장대하고 아름다운 몰락을 보여주었습니다.

     

     

     

     

    I know a girl she walks the asphalt world
    She comes to me and I supply her with Ecstasy
    Sometimes we ride in a taxi to the ends of the city
    Like big stars in the back seat like skeletons ever so pretty

    But where does she go?
    And what does she do?
    And how does she feel when she's next to you?
    And who does she love in time-honoured fur?
    Is it me or her?

    I know a girl she walks the asphalt world
    She's got a friend, they share mascara I pretend
    Sometimes they fly from the covers to the winter of the river
    For these silent stars of the cinema
    It's in the blood stream, it's in the liver
    I know a girl, she walks the arse felt world

    But where does she go?
    And what does she do?
    And how does she feel when she's next to you?
    And who does she love in time-honoured fur?
    Is it me or is it her?

    With ice in her blood
    And a Dove in her head
    Well how does she feel when she's in your bed?
    When you're there in her arms
    And there in her legs
    Well I'll be in her head

    Cos that's where I go
    And that's what I do
    And that's how it feels when the sex turns cruel
    Yes both of us need her, this is the asphalt world

     

    -The asphalt world

     

    덧붙이는 이야기-아스팔트 월드는 내 하루하루의 삶 그대로를 표현한 것입니다.-브렛 앤더슨

     

     

     

     

     

     

     

     

     

     

     

     

     

     

     

     

     

     

     

     

     스웨이드의 가사에 개, 말, 돼지 등 동물이 많이 등장한다면, 그보다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약물일 겁니다. ecstacy, speed, drug, pills, chemical smile, chemistry between us 등 약물에 관한 직간접적인 은유가 상당하지요. Living dead에서는 돈은 마약 사는 데 다 썼고, 우리는 하늘도 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coming up에서는 스웨이드는 런던을, 마약을, 젊음의 절망을, 제임스 딘의 스피드를, 조지아 오키프와 루돌프 누레예프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노래들은 리처드 오크스, 닐 코들링(드러머 사이언 길버트 사촌이라는데 키보디스트입니다)과의 공동 작업임이 확실합니다. 버나드 버틀러가 사라진 이후의 음악은, 밝고 경쾌해요. 매끄럽고 쏙 들어가는 사운드입니다. 이펙트를 활용했고 모던한 팝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죽을 만큼 열심히 지치게 일하고 금요일 밤, 토요일 밤을 계절을 잊은 파티 드레스를 입고 누군가를 만나지만 아무 것도 채울 수 없다는 허무함을 이야기한 이 앨범은 펄프, 소닉 유스와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했을 겁니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데릭 저먼(DJ라는 이니셜로 등장합니다), 랭보, 모리씨, 토마스 만 까지도 다다를 수 있을 겁니다. 순서대로 안개 낀 런던, 런던(모리씨 노래), He's dead(베니스에서의 죽음에의 성적 함의) 등을 떠올리면 그렇다는 겁니다. 어쨌든 세 번째 정규앨범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브렛 앤더슨은 아직 지나친 흡연에도 목소리가 괜찮았고, 닐 코들링은 무심했고, 밴드는 다시 한 번 더 현대적인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들의 진정한 sophomore jinx는 그 다음이었지요.

     

    "it's always important that when people see you, they see something of the music in you. It's always kind of disconcerting when you see an artist and they've made a record that you like, and you look at them and you wonder how they could have made the record. For me, I just try to look good. I've always dressed the same way."-Brett anderson, NY Times interview, 1995.

     

     

     

     

    Maybe, maybe it`s the clothes we wear,
    The tasteless bracelets and the dye in our hair,
    Maybe it`s our kookiness,
    Or maybe, maybe it`s our nowhere towns,
    Our nothing places and our cellophane sounds,
    Maybe it`s our looseness,
    But we are trash, you and me,
    We`re the litter on the breeze,
    We`re the lovers on the streets,
    Just trash, me and you,
    It`s in everything we do,
    It`s in everything we do
    Maybe, maybe it`s the things we say,
    The words we`ve heard and the music we play,
    Maybe it`s our cheapness,
    Or maybe, maybe it`s the times we`ve had,
    The lazy days and the crazes and the fads,
    Maybe it`s our sweetness,
    But we`re trash, you and me,
    We`re the litter on the breeze,
    We`re the lovers on the street,
    Just trash, me and you,
    It`s in everything we do,
    It`s in everything we do
    instrumental break
    But we`re trash, you and me,
    We`re the lovers on the street,
    We`re the litter on the breeze
    Just trash, me and you,
    It`s in everything we do,
    It`s in everything we do
    ah you and me,
    We`re the lovers on the streets,
    We`re the litter on the breeze,
    ah you and me,
    It`s in everything we do,
    It`s in everything we do.......
    ah you and me...

     

    -trash

     

    덧붙이기-닐 코들링은 나의 도리언 그레이입니다.-브렛 앤더슨 인터뷰에서.

     

     

     

     

     

     

     

     

     

     

     

     

     

     

     

     

     

     

     

     

     9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는 1999년 head music, 2002년의 new morning을 남기고 해체를 맞이합니다. 아, 물론 그전, 1997년의 sci-fi lullabies도 있습니다만 이 앨범은 싱글의 b-side 곡들을 모은 앨범이었지요. 한국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싱글이 이 앨범에 다 수록되었는데 특이할 만한 것은 이 앨범 수록곡인 Saturday night은 닐 테넌트가 함께 하기도 했다는 것. 라디오헤드의 블러 커버라든지 블러의 오아시스 커버, 콜드플레이의 브리트니 스피어스 커버 등은 지금 들어도 재미있듯이 이런 소소한 재미는 꼭 잡지 부클릿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러나 헤드뮤직에서 밴드 역사상 가장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면, 밴드 역사상 가장 결속력이 떨어지는 앨범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는 뉴 모닝의 강한 어쿠스틱 사운드, 차분해진 보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스웨이드의 마지막은 아쉬운 감이 있었어요. 3년 만의 컴백이 허스키로 이어진 다음에는 팬들에게 남은 길은 90년대의 음반들입니다. 뉴 모닝에서 그들은 차를 살 수도, 모든 걸 가질 수도, 하늘을 뚜벅뚜벅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벽을 바라보고만 있어. 난 이제 가야 하는데. 라고 말합니다. 정말, 이제 가야겠습니다.

     그러나 2013년 3월, 그들의 신규 bloodsports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한 지금, 아마 drowners와 dog mans star를 듣고 beautiful ones를 흥얼거리던 팬들의 마음이 살짝 걱정으로 덮힌 채 설레지 않는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겁니다. 지금의 라인업은 다섯 번째 정규 앨범 키보디스트 알렉스 리가 탈퇴하고 다시 닐 코들링이 돌아온 라인업. 즉, 커밍 업, 헤드뮤직의 그 라인업입니다. Drowners의 그들은 이제 거의 50이 다 되었고 그들을 듣던 팬들도 지금 앞자리 숫자가 달라졌겠습니다만, 1993년부터 2003년까지, 그들의 음악은 분명 제네바, 맨선, 스트레인지 러브(한국에는 데이드림) 등의 밴드에 영향을 주며 살아남았어요. 이제 앞으로의 앨범을 들어볼 일입니다. 그래야 더 명확해지겠지요.

     종종 궁금합니다. 이들을 기억하고 아직도 drowners와 so young, flimstar를 듣는 이는 나 혼자인지. 그때 이 음악을 함께 듣던 이들은 지금 무엇을 듣고 있을지.

     

     

     

     

     

     

     

    (이곳에는 아직 예약이 걸려있지 않아 아마존에서 발췌)

     

     아티스트란 아이디어를 통해 재창조하는 사람이다. 모방과 오리지널의 경계를 구분지을 수는 없다. 모두 의혹일 뿐이다. 누구라도 순수하게 오리지널일 수는 없다. 만약 자신이 완전한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완전한 거짓말쟁이거나 허풍쟁이이다. 언제나 관건은 어떻게 자신이 영향받은 것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가의 문제다.-브렛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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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거핀 2013-02-17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Suede에 대한 글이니 댓글을 안 달수가 없네요. 스웨이드하면 그저 꽃미남밴드라고 불리기에는 뭔가 아쉬운, 90년대를 대표하는 목소리같은 이미지가 있었어요. 예전에 카페같은 데 가면 단골로 흘러나오던 노래가 이들의 노래이기도 했고..예를 들어 그 유명한 Beautiful Ones의 처음 흘러나오는 그 비프음 같은 것은, 어떤 삐삐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때 버나드 버틀러 내한한다고 했을 때 PC통신에서의 소동들이 생각이 나는군요.

    신보를 내다니. 뭔가 좋으면서도 그냥 넣어둬요,하고 말하고 싶은 복잡한 심정이군요.

    Jeanne_Hebuterne 2013-02-18 09:19   좋아요 0 | URL
    실은 아무도 기억 못하는 게 아닐까 조바심에 글 길이도 대폭 줄이고(관심도 없는데 누가 읽겠어), 더 자세한 정보도 조금 생략하고(안그래도 잊었는데 누가 읽겠어) 올린 글인데 이렇게 맥거핀 님께서 댓글로 흔적을 남겨주시니 무척 반갑습니다. 저는 이들이 새로이 태어난 길잃은 세대의 목소리를 다시 내어준다고 생각했어요. 전쟁도 경제불황도 신분격차도 이전에 비할 바 아니지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이 허무함이 이들의 목소리를 빌어 다시 나오는 듯한 느낌이오. 약간 촌스러우면서도 귀에 쏙 꽂히는 드럼 비트를 시작이로 이들을 생각하면 앨범 자켓 속의 약간 낡은 속지가 함께 떠올랐습니다. 버나드 버틀러는 일본 갔다 한국 잠시 들리면서 길가다가 홍대 클럽에서 연주를 한 전설같기도 하고 로또 당첨과도 같은 일화가 떠올랐어요. 버틀러와 앤더슨은 티어스로 다시 활동을 하기도 했고 각자 개인 앨범을 더 내기도 했는데, 제각각의 개성이 워낙 달라 이 둘이 dog man star까지 함께 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저역시 그래요. 신보를 내다니. 설레임과 걱정이 교차합니다.

    덧-역시 브렛 앤더슨의 목소리는 그의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염색 풀어서 천만다행이에요.

    2013-02-18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음악전문지의 기사 같은 페이퍼예요. 이 페이퍼를 읽은 저의 반응이 공감!아닌 발견!이란 게 아쉽지만요. 스웨이드를 잘 몰라도 마치 90년대를 그 음악과, 또 그 음악을 즐긴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것만 같은 감흥에 젖었습니다. 이 글과 두 분의 댓글 읽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 글- 간추림과 생략 없었어도 좋았을 거라고 넌즈시 귀뜸해 봅니다~.^^)

    Jeanne_Hebuterne 2013-02-19 08:52   좋아요 0 | URL
    섬님, 그건 당연한 것일 거에요. 지나간 날의 노래를 공감하기는 운명이라 착각하는 첫사랑처럼 그저 운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스웨이드, 블러, 라디오헤드 등의 브릿팝을 듣는 이들 대부분은 먼저 그 음악을 듣다 살짝 소개해준 벗들을 함께 떠올리기도 해요.
    90년대는 참 이상한 시기였어요. 세기말의 비엔나 같은 흥분도 없이 조금 차갑고 불안하게,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었던 시기였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때에 한탄과 자조로 살짝 감상적이 되었다가 사람을 찌르는 스웨이드를 들었던 제 기억이 떠올라 팬심으로 써내려간 페이퍼인데,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실은 더 많았어요. 데릭 저먼, 프리다 칼로, 오스카 와일드, 펄프와 버브, 루돌프 누레예프 등등 스웨이드는 뒤로 갈수록 가사에 좀 더 많은 것을 실었으니까요. 거기다 미디어에 친화적이어서 자료도 많이도 쏟아냈지요(잡지 사느라 바빴습니다). 언젠가 제 마음대로 좋아했던 음악 이야기를 더 하게 될 것도 같습니다만, 제 취향이 워낙 잡다해서 놀라실 것 같기도 합니다. 화요일이에요. 그러다 보면 saturday night(suede)과 sunday sunday(blur)를 거쳐 monday morning 5:19(rialto)이 되겠지요. 그럼 하루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2013-02-18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3-02-19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고상한 에뷔테른 님과 스웨이드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저 지금 트레쉬 듣고 있는데, 중독성 있네요. 아마 님이 올린 곡이라서 그렇겠지요.^^*)
    들을수록 님과 묘한 조화를 이룰 것 같아요. 신새벽을 그냥 났는데 진작에 이 음악 틀어놓았더라면 기가 소진되는 걸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눈비 흩날려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또 어울리는 스웨이드네요. 제 청춘에서 멈춘 음악은 데이빗 보위 정도까지만 기억하는 걸요. 즐감하고 가고, 무엇보다 평론가들 다 숨어서 지금 아침 먹을 것 같아요. 님한테 기죽어서요. 흐흐~~

    Jeanne_Hebuterne 2013-02-19 09:32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좀 엉뚱한 말이지만 데이빗이란 이름은 참 괜찮은 듯 싶습니다. 데이빗만 구글링해도 보위, 핀처, 린치가 나란히 뜨는 걸 보면 이름값을 하긴 하는건지, 혹은 미스 코리아는 늘 서울에서 나오는건지(즉 흔하고 좋은 이름이니 위인이 날 확률도 높은 건지), 하는 더더욱 엉뚱한 생각이 들어요. 데이빗 보위의 경우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 시기별로 따로 생각하게 되는 듯 합니다. 얼마전엔 폴 스미스 관련 책을 읽었는데 그곳에도 보위가 등장하더군요. 그의 글래머러스(달리 표현할 길이!)함을 생각하면 당연한지도 몰라요. 뭔가 치렁치렁 주렁주렁이 아닌 절제된 화려함, 줄무늬 토끼같은 엉뚱함이 떠오르는 스타니까요. 데이빗 보위 한 사람에게서 나온 음악의 다양한 가계도를 생각하면, 보위 한 명만 들어도 팝의 1/4은 들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이쯤에서 보위 만세를 외치며 기사 작위 수여를 강력히 주장)

    마지막 음악 링크, 대중적이면서도 좀 시원시원하고 흥겹지요? 저 탬버린 볼 때 마다 브렛 앤더슨은 한국 노래방 오면 신나겠군,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막상 링크하면서도 이걸 과연 누가 들을까, 생각했는데 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국에서는 저 노래 전후로 브릿팝이 좀 팔리기 시작하면서 스웨이드 음반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드러나지 않았던 밴드가 입소문을 탔다면 한국에서 대중적이 된 본격적인 계기이자 스웨이드 빅뱅의 마지막 음반이 되는 참사를 빚었달까요 흐흑.

    마지막 말씀은 더 열심히 들으라는 칭찬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듣고 읽고 보고 쓰겠습니다. 고마워요, 팜므 느와르님!(아침 드셔야죠!)

    망고 2013-02-1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스웨이드 포스팅 정말 반갑네요^^ 전 더티얼스 내한공연도 브렛 내한공연도 다 갔었지요 히힛~ 한때 스웨이드 빠xx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의 열정이 거의 사라졌네요. 나이먹어서 그런거겠죠^^;;;; 아무튼 반가워요. 오랜만에 스웨이드 글을 읽으니 새록새록 추억도 생각나고 좋네요

    Jeanne_Hebuterne 2013-02-19 19:00   좋아요 0 | URL
    반갑다니 제가 더 반갑습니다. 아, 버틀러와 앤더슨 듀엣을 그리도 보고 싶었는데, 그곳엘 가셨다니 더할나위 없이 부럽군요. 브렛 앤더슨의 경우 쇼맨쉽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지라 현장 분위기가 궁금하기도 했었거든요.

    아마 열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에너지로 전환된 것일 거에요.

    덧-이게 벌써 추억이라는 늙은이스러운 한탄이 절로 나옵니다. 다행인 것은 그들도 함께 나이먹는다는 것. 저는 50이 다 된 그들의 브릿팝이 지금도 궁금해요. 라디오헤드가 아직 건재함을 넘어서서 혁신적인 것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시간과 무관하게 반짝이는 듯 싶기도 합니다.

    라로 2013-02-20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웨이드에게 바치는 오마쥬군요!!!
    예전 님의 퍼스나콘이 브렛 앤더슨이었죠!! 저 은근 좋아했었는데;;;
    건 그렇고 이 글을 읽으니 참 마음이 따뜻해요, 믿음이 남아 있다고 해야 할까요???
    누군가는 정말 사랑하는 것을 변치 않고 소중히 지키는구나;;;뭐 그런,
    저도 스웨이드 팬이라고 자부(?)했었는데 님의 사랑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Jeanne_Hebuterne 2013-02-20 10:10   좋아요 0 | URL
    네! 많은 이들이 coming out이라고 잘못 읽었던 coming up 앨범 당시의 사진, 맞습니다. 부클릿에도 들어갔던 사진이구요. 기억해주셔서 몹시 반가워요, 나비님.

    오랫동안 스웨이드는 제가 근 10년간 들어오던 음악의 일부였어요. 물론 제가 스웨이드만 들은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 별 어려움 없이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그것을 내가 왜 좋아했던가를 (신보 소식을 앞두고) 생각하다 팬심으로 써내려간 페이퍼였습니다. 그당시 들었던 그들의 음악이 다양한 갈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지금도 놀라워요.
    수요일입니다, 나비님. 스웨이드가 부르던 새터데이 나잇까지는 세 밤을 더 자야 되어요.

    oh, whatever makes me happy on a saturday night.하던 그 목소리.
     

    담배도 동아줄도 아닌 무엇인가를 끊을지 이을지를 생각해왔다. 하나이기도 하고 여럿이기도 한 무엇. 무례하거나 타당하거나 비겁하거나 정의롭거나 하는 잣대를 나는 찾기가 어려웠다. 대상을 읽는다는 것은 한 음반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귀 기울여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것과도 같았다. 종종 핸드폰 메모 어플에 뭔가 적거나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하는 것과는 달랐다. 왜곡된 기억과 굴절된 마음을 잡기가 어려워서.

     

     


     그래서 일찍 일어나 꼬리뼈까지 의자 깊숙이 붙이고 책상에는 진하고 검고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두고 천천히 조금씩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병 아래까지 숨어있던 인스턴트 커피 알갱이들은 굳이 스틱으로 젓지 않아도, 뜨거운 물을 붓고 머그컵을 좌우로 흔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스르륵 녹았다. 잔을 꼭 잡으면 뜨거운 기운에 손 전체가 싸르르해지는데, 종종 그걸 어떻게 잡느냐고 신기하게 보던 이가 가끔 생각나기도 한다. 그런 날들이 누구에게나 있겠지. 하얀 백지는 떠오르는 태양같이 눈 부신데 떠오르는 태양은 도리어 커피처럼 캄캄했다.

     

     

     언젠가 비슷한 문제로 자주 괴로움을 겪는 친구와 이야기하던 중 '우리는 왜 이럴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서 돌아온 답은 '너는 왜 그럴까?' 였다. 각자의 문제가 달랐지만, 대뇌 변연계가 왜곡된 반응을 이끌어낸 모양이다. 역설적으로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원하면서도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것을 찾는다. 모진 학대를 당하며 살아온 여자가 폭력적인 남자와 데이트를 계속 하는 역설이 생겨나는 뇌의 신비롭고 이상한 행동. 너는 그런 적이 없었느냐, 물어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모든 것에 끝이 있고 언젠가는 사라진다면 우리는 왜 지금 이렇게도 무언가에 골몰하는가. 한 마리의 치타가 살다 죽는 거나 내가 살다 죽는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도리어 친환경 생태 지향적인 치타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아름다운 가죽이라도 남기지 않는가.

     

     

     

     그러던 찰나 떠오른 이들은 아니 에르노와 움베르토 에코였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 작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 기호학자. 자,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나도 여기에다 내가 겪은 것, 혹은 감히 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쓴다. 하필이면 그런 까닭과 무지몽매함으로 현재 장안의 화제인 도서정가제에 관해 한 마디도 보태지도 덜지도 못하고 있다. 에르노와 에코의 글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좀 더 범위를 넓혀보자. 그 글은 왜 다른가? 그들이 쓴 글을 왜 읽는가? 독서와 텔레비전 시청이 다른 건 무엇인가. 책 읽는 사람과 텔레비전 보는 사람, 신문 읽는 사람과 시 읽는 사람, 잡지 읽는 사람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애독하는 이가 각자 무엇이 다를까?

     

     

     

     천 권에 가까운 책과 몇백 개에 가까운 비디오 테잎과 DVD를 진열해 두고 나날이 쌓이는 먼지를 닦으며 바쁘다고 칩거하던 시절, 어떤 이는 `와, 책이 정말 많으시네요.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시나요?'라고 물어온 적이 있다. 에코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아니오. 그냥 장식용으로 진열해둔 겁니다.'라고 말해야 했다. '그럼 내가 뭐하러 그 책을 다 갖고 있겠는가? 서가를 장식하려고?'하는 그의 음성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사는 것에 지칠 무렵 경험은 글씨를 덮었고 기억은 글씨를 지웠다. 며칠 전엔 SNL에 나온 다니엘 크레이그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모든 이미지를 뒤틀고 비꼬아 일구어낸 새로운 가치 창조였다. (차마 링크는 못하겠다.) 한마디로 그는 확실하게 망가졌으니 그의 팬이라면 모름지기 다니엘 크레이그 편을 보고 감복할지어다. 그것은 글씨가 주는 감동보다 직설적이었으나 더 편안하고 안온한 길이었다. 글씨 앞에서 하던 애꿎은 노력이 필요 없었다.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도, 주인공의 긴 이름을 다시 외우려 앞장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보기만 하면 된다. 기억은 자료화면이 대신한다. 그리고 어차피 사람에 관련한 일인데, 문체와 영상이 왜 다른 것일까? 옳고 그름의 정언명령은 둘째치고,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있으면 모름지기 효율적인 길로 가는 것이 효과적인 일 아닌가. 그런데도 왜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책 읽는 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한단 말인가? 애초에 대설이 아닌 소설이라면, 시간을 보내는 작은 이야기, 있음 직한 꾸며낸 이야기에는 차이가 없다. 인간에 대한 이해, 타인을 판단하는 척도는 오히려 환경과 경험의 산물이다. 논리력과 주관은 인문학을 접하는 정도와 학력, 직관에서 나온다. 결국, 모든 것이 아닐지라도 어떤 것은 결국 받아들이는 개인의 문제이다.

     

     

     

     

     

     

     

     

     

     

     

     

     

     

     

    미래의 관광객들은 우리 시대의 그 교수형가마리들을 구경하기 위해 돈을 낼 것이다. 다만, 옛날의 해적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건, 드레이크, 올로네, 플린트 선장, 키다리 존 실버따위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만, 미래의 공연에 등장할 해적들에 대해서는 성급한 거명을 피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현재 피의자로서 조사를 받고 있을 뿐 아직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영국인들이 무인도에 갖고 가고 싶은 책 1위인 '오만과 편견'에 관해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그 묘한 틈을 찾아낸 적이 있다. 이 뒤에 무슨 일이 생길지 감질나게 이야기를 따라나가던 기억이 일치했을 때 우리는 손뼉을 쳤고 미스터 다아시가 호수에 뛰어드는 장면에서는 다아시 팬클럽 창단의 열기가 타올랐다. 그때였다. 친구가 이 말을 한 것은. 나는 독자였고 그는 시청자였다.

     

     '콜린 퍼스 그 장면 찍을 때 컷이 마음에 안 들어서 몇 번을 반복했대.'

     

     그는 나보다 방대한 지식을 자랑한다. 독일제 칼 진품 구별법과 날다람쥐의 생태, 우크라이나 여행 시 주의할 점 등. 자, 이쯤 되니 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는 내 독서가 소설에 치우쳤으며 철학은 시도도 못 했고 미학은 슬쩍 들여다보기만 했으며 시를 읽는 스펙트럼은 부재하고 아예 어떤 분야는 관심 없음을 이유로 본 적도 없었다는 점을 시인한다. 건물에 있는 문의 위치와 용도보다는 문의 장식과 색상과 손잡이의 견고함에 집중했다. 미남 미녀의 실루엣에 두근거렸다. 늙어가는 이의 허심탄회한 웃음을 엿보았다. 서로 잃은 이들의 손짓을 애타게 따라갔다. 익사한 아이가 수면에 떠올라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가라앉는 순서를 따라갔다. 고래 같은 집이 흥하거나 망해가는 순서를, 내가 태어나기 전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의 풍속을 엿보는 것으로 나는 만족했다.

     

     

     

    결국, 내게 독서는 소설 읽기였으며 그것은 타인에 관한 관심이 아닌 나에 관한 관심이었다.

    나만 그랬다.

     

     

     

     다시 한번 돌이켜본다. 움베르토 에코가 일 베리에 연재한 짧은 칼럼 모음집도 몇 페이지를 훑는다. 에르노와 에코, 두 사람 다 각자 할 수 있는 생각의 깊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같은 작업을 해오고 있다. 어떻게 사실이 환상으로 엇나갈 수 있는지를 경계하며 살아가는 일에 지쳤을 때 거리 두기를 통해 생각의 깊이를 이끌어낸다. 경검과 가치를 환원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역사를 들춘다. 독서는 깊이에의 경험이다. 책 읽는 자라는 자부심을 위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닌 읽는 자로서의 이해력과 객관성 확보의 문제이다. 보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다른 까닭은 여기서 나온다. 나는 여전히 원조 SNL의 확고한 팬으로 그들이 망가지는 모습에 환호하며 유튜브 검색까지 할 자세가 되어있으나, 손에서 책을 완전히 놓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가 닥칠 수도 있다. 문제는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자의 자세다. 쿡쿡 찌를 것인가, 완전히 잘라낼 것인가. 흔적을 남길 것인가, 완전히 말라버릴 것인가. 이어나갈 것인가, 끊어버릴 것인가. 태어난 이상 치타로 변이할 수도 없고 유전자가 다른 이상 에르노나 에코가 될 수도 없으니 충직한 메아리로 남되 십 년 전과는 조금은 다른 울림을 내는 일에 골몰하기로 했다. 그 울림은, 십 년 뒤에는 또 다른 것이기를 바란다. 자기 위안은 그만, 이제 안 해왔던 일을 할 시간이 왔다. 나 스스로 하는 이해가 더 중요한 시기.

     

     

     

     그래서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곤 했다. 빗속에서도 땡볕 속에서도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물론 SNL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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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 2013-01-3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근데 SNL 이 뭐에요? 제가 지금 구글에 넣어봤더니 Saturday Night Live 라고 나오는데, 토크쇼를 말하는건가요?

    2. 나에 대한 관심을 쓰기로 표현하는 건 어때요? 아니 에르노는 그것을 '쓰기'로 했고 쟌 님은 그것을 '읽기'로 했다면, 또 '쓰기'도 덧붙이는거죠. 물론 쟌 님도 지금껏 그래왔다는 걸 알지만, 좀 더 자주 일순 없는지를 묻는겁니다.

    Jeanne_Hebuterne 2013-01-30 18:25   좋아요 0 | URL
    1.네, 토요일밤의 라이브인데 온갖 사람들이 다 나와서 망가지는 쇼입니다. 저급하고 저속한 저의 취향에 딱이에요.

    2.제가 너무 게으르고 황제병이 하늘을 찌르는 바람에 그랬다간 알라딘 마을에서 쫓겨날걸요! 히힛

    금요일 즈음엔 다시 추워질거란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SNL을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겠지요!

    다크아이즈 2013-01-3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뷔테른님 묵직한 하루 출발하셨네요.
    에르노 그림자만 봐도 님이 떠올라요.^^*
    남자의 자리는 신간은 아니겠지요.

    SNL을 맘껏 볼 수 있는 님의 열린 귀도 몹시 부럽지요.
    다니엘 크레이그가 그렇게 망가지던가요? 상상이 잘 안 되어요. ㅋ
    읽기, 쓰기, 보기, 듣기를 깊이하는 님 서재 행차할 때 저도 깊어지는 착각이 든다는...

    전 에뷔테른님이 에르노식 글쓰기를 언젠가는 하기를(아니, 어쩌면 하고 있을지도) 바라는 걸요.^^*

    Jeanne_Hebuterne 2013-01-30 18:30   좋아요 0 | URL
    에르노 찬양을 제가 여기 좀 많이 했어야지요! 남자의 자리는 십여년 전에 나왔다가 재출간된 책이어요.

    SNL을 어차피 열린 소통과 다양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열린 마음만 있으면 된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남장여자에게 열광하는 기둥서방 연기, 무식하게 힘만 좋은 참을성 없는 스타 연기, 영화 속에서 자기가 죽인 사람들 숫자 헤아리고 변명하는 만담 연기 등을 선보이며 보이는 족족 무너졌습니다. 콜린 퍼스, 주드 로, 조셉 고든 레빗, 앤 헤서웨이 등이 나와 망가진 전설의 SNL!

    에르노 글쓰기의 일억분의 일 즈음은 가능할 듯도 한데......그 거리가 지구와 달만큼 아득하여 감히 헤아리기가 힘들군요.

    덧-통장 잔고가 묵직했다면 좋았을텐데...

    레와 2013-01-3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니엘 크레이그가 SNL에 출연했단 말입니까?! 와우..........

    Jeanne_Hebuterne 2013-01-30 18:10   좋아요 0 | URL
    네! 조셉 고든 레빗은 옷 찢으면서 춤췄구요, 주드 로는 '난 너무 잘생겼어. 어느날 거울을 봤는데 너무 완벽한 얼굴이 있어서 다시 봤더니 그게 바로 나' 라고 노래 불렀어요(마무리는 헤이 주드로 하는 센스). 앤 헤서웨이는 샹송 불렀고, 콜린 퍼스는 미국 억양 흉내내다 망가지는 삼류 연극배우 흉내였어요.

    제 저급하고 저속한 말초적인 취향이 드디어 만천하에 드러나는군요. 어쩌겠어요, 태생이 이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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