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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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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여기 모이신 분들 모두 가내 평안하시고 건강하시지요? 

 사실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겉보기에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 같지 않아 보인다고요? 멀쩡하고 건강해 보인다고요? 아니오. 하나도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부러 앞에 선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요. 그래서 왔어요. 허허. 시작하기 전 글 하나 읽고 가실까요.






처참하게 뭉그러진 환자들을 목격한 그는 죽음에서조차 계층 차이가 존재한다며 한탄했다. 김기태가 내게 말했다.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를 건조하게 응시하다 대답했다.
-원래 세상이 이런 건데요.
김기태는 말이 없었다. 지옥 같은 한 해가 앞이 보이지 않는 채로 저물고 있었다. 

-골든 아워, 이국종





 인용은 골든 아워구요, 오늘 이 책은....그러니까 이 책은 임계장 이야기입니다. 책 제목이 임계장 이야기인데 무슨 말이냐고요? 거기 앉아계신 보라색 티셔츠 입으신 분, 임계장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임 씨 성을 가진 계장 이야기...네, 아닙니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여부른 거랍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할 때 '그런 말도 있어요? 처음 듣네요.'라는 반응이 제일 싫어요. 처음 들을 수 있죠. 저도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있었어요. 누구나 처음 뭔가를 접할 때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듣고는 저 말이 왜 있는지 생각하느라 '아, 그런 말이 다 있네요'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그 말을 들을 이유가 없고 알 필요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람?'이라고 생각해서 말하는 것은 느낌이 달라요.  계란도 그래요. 계란,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저는 이 책이 나온 출판사의 다른 책 '웅크린 말들'에서 처음 들었어요. 에스로 시작하는 모 기업의 에어컨 설치 및 수리 기사들이 스스로 부르는 말이에요. 

 부활하냐고요? 예수 재림이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사실은 에어컨을 수리하거나 설치할 때 안전장치도 하고 거드는 사람도 필요한데 그게 없이 외벽에 매달려서 일해야 하거든요. 추락하면 반반이죠. 다치거나 죽거나. 둘 다 이러나저러나 깨져 죽는 건 마찬가지니까 네, 그래서 계란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공기업에서 평생 일하시다가 퇴직 이후 계약직으로 일하는 저자가 쓴 글이에요. 노동의 현장에서 실제 겪은 일을 썼는데..오탈자도 없고 읽기에 깔끔합니다. 제가 발견한 오탈자는 '금세' 하나뿐이었는데 개정판이 나오면 고쳐지리라 믿어요. 

 그러나 그보다는.....읽는데 제 옆에서 누가 물어봐요. 뭐 읽는데 얼굴을 오만상을 다 찡그리고 있냐고. 그래서 말했죠. 멀쩡한 사람이 똥물 속에서 뒹구는 이야기인데 이게 실화라고. 그 사람은 내가 비유를 하는지 알았나 봐요. 사실 이 책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진짠데. 





 여러분, 일을 한 번이라도 무엇이라도 해보신 분들. 왜 일하셨어요? 왜 지금은 일하고 계신가요? 

 버틀란트 러셀이 그랬다지요. 일은 적성에 맞지 않다.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라고.

 그런데 피곤해 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치고 부러지고 으스러지거나 죽으면 어떨까요? 저는 위에 이국종 교수의 골든 아워를 인용했는데 그분이 강연에서 그러셨어요. 대충 제가 기억하는 대로 옮기자면....'외상센터에서 일하면 대부분 보는 분들이 말 그대로 중증외상을 당해 위급히 실려 오십니다. 그리고 보통은 공사장에서, 마트에서, 길에서 일하다가 오세요. 위험한 일들을 하시니까요. 지금 이것 듣고 계신 분들, 무슨 생각 하세요? 나는 그런 데서 일 안하니까 다행이다? 그런데 어쩌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네, 저의 소회를 밝히자면...저는 '그런데 어쩌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저 부분에서 너무너무 부끄러웠어요. 이 책을 읽다가도 그랬어요.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책을 덮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혀 평안하지 못하다고 앞서 말씀드린 거에요. 이 책은 읽기가 고통스러워요. 책장이 더디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계속 마음을 추슬러야 읽을 수 있었어요. 이 책이 쉬우셨다면......글쎄요, 거리두기를 상당히 잘 하시는가보다, 이외에도 많은 생각이 들지만 그건 그냥 제 느낌이니까 굳이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저는 앞서 일을 왜 하시냐고 물었었죠. 이 말에 대한 답에 저는 계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슬로의 욕구 이론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자아실현은 모든 욕구 충족 이후 최상위 단계 피라미드에 있어요. 많은 임계장들이 사실 젊은 시절의 성실함과 무관하게 생계에 직면해서 일합니다. 아파트 경비  하시는 분들, 청소하시는 분들, 택배나 공공근로 하시는 분들이 젊었을 때 게을러서 당장 나오신 게 아니에요. 지금 코로나 사태로 더 여실히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당장 경기가 나빠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겁니다. 로또나 유튜버 말고는 답이 없다면 그것이 과연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일까요? 나는 노후자금 벌고 있고 유산도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네, 사실 제가 그에 입찬소리 할 입장은 아니지요. 





 단지 저는 우리 사회의 절벽이, 돌부리가 너무 많은데 그에 비해 안전망은 너무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도 요즘은 재난기금도 나오고 공공근로도 있고 일자리센터도 있으니 살만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건 그럼 어떻게 생각하세요. 의사 부부인데요, 개원을 둘 다 앞두고 서류상 무직 상태였어요. 부인은 아기를 낳았어요. 그래서 복지 혜택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공무집행상 허점을 노린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응당 가야 할 돈이 가야 할 곳으로 간 겁니다. 그러나 세 모녀가 돈이 없어 라면 하나로 몇 끼를 나눠먹다가 미안하다며 동반자살을 했어요. 이들은 방법을 몰랐고 많은 비슷한 사람들이 막상 서류 신청에서 아주 근소하게 자격이 미달되어 지원을 못받아요. 이건 불합리한 거죠. 이런 그림자가 참 많아요. 그리고 임계장의 업무는 그림자투성이다 못해 아주 암흑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행정상의 허점이 아닌 근로계약상의 돌부리가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것 뿐일까요. 이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분이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실 당시, 음식물 쓰레기통을 수돗가에서 씻는데 뒤에서 누가 호통을 쳤대요. 그리고 이랬답니다.




 "어이, 경비! 이 새끼, 너 전에 공기업에 근무했었다며? 거기서 국민 세금을 마구 쓰던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군!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을 펑펑 써? 이 새끼, 당장 잘라야 할 놈이네. 네가 버린 수돗물 값은 네 월급에서 까게 해주마. 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


 "이거 먹고 기죽지 말고 일 잘해. 내 말만 잘 들으면 오래 일할 수 있게 해줄게."




네에....그렇습니다. 동일 인물이고요, 두번째 말은 나중에 '껍질이 쭈글쭈글하고 일부는 상해 있었던' 사과를 내밀며 한 말이랍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일로 민원을 받고 이런 대목이 나와요.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더니 내 눈에 우울함이 잔뜩 서려 있었다.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들은 내게 했던 일들을 모두 잊었을 텐데 나 혼자 잊지 못하고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저, 정직하게 일해서 돈 받고 그 돈으로 생계도 꾸리고 자식들 학교도 보내고...그게 그렇게 큰 바람이 된 세상이 있어요. 저 대목에서 부끄럽지 않다면 그건 저는 방관자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태도죠.




 구청 직원, 지원센터 관계자, 구의회 의원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여러분은 고령자가 일하는 모범 사례이십니다. 집에서 따분하게 노는 것보다 일을 하시니 건강에도 좋고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좋아 죽겠네요.(웃음) 저는 여기서 다른 나라의 책이 생각났어요. 바버라 애런라이크가 쓴 '노동의 배신'인데 저자는 청소 도우미 일을 합니다. 그런데 저자의 청소 일을 지켜보던 고용자가 한마디를 해요. '이렇게 몸을 움직이시니 운동도 되고 돈도 버시고 참 좋으시겠어요' 

 전 그 대목을 읽다가 '그렇게 좋으면 네가 하든가'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요, 네, 일이란 건 앞에서 이국종 교수님의 말에서 가져왔듯이, 누군가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겁니다. 

 

 단, 제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건 하납니다. 누군가 언젠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기왕이면 기본을 지키고 원칙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간단해요. 휴게시간 정확히 주고, 휴게시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쉬게 하고. 방한복 작업도구 지급하고 존대말 하고, 일하다 다치면 치료비 시간 지원해주고요. 

 워라밸, 주 40시간 근무, 큐오엘, 다 좋아요. 모든 좋은 것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고 봐왔으니까. 그런데 터미널 고속의 경비원 숙소가요, 공중화장실 앞에 있어요. 잘 때도 무전기 켜고 자야 해요. 그리고 까는 침구 덮는 침구 세 개씩인데 공동으로 쓰는 거고, 세탁 한 번도 안 해서 벌레와 곰팡이와 냄새가 쏟아져요. 거기서 어떻게 자냐고요? 글쎄요. 다들 마스크하고 손 소독 하고 사회적 거리 유지하시는데, 그곳은 아직도 그럴는지......





 솔직히 저는 이런 일자리들만 더 늘어나고, 거기에도 지원자가 수두룩 모일 수밖에 없는 세상이 겁나요. 이제 4차 산업혁명이 닥치면 많은 업종이 사라지겠죠. 그럼 사람은 기계보다 못해질거에요.  그럼 어때요, 사람은 이제 더 막 대해도 되는 존재가 될겁니다. 그래서 굳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책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게 해달라고, 그저 '어머, 이런 일이 다 있네!'하고 책꽂이에 꽂아놓고 잊어버리지 말라고. 많은 이가 제각각 다양한 곳에서 일하고 있고, 지금 당장 내가 등 따시고 배불러도 영원히 그러란 법 없고요, 그리고 그저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우리가 지금껏 사람 갈아 넣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그러란 법은 없잖습니까?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면 좋겠어요. 최소한으로 라도요.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모두 가내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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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5-2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신문에서 이 책 저자분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Jeanne님 글을 마주치고 놀랐네요. 얼마전 극단적 선택 하신 경비분 사연에 남 일이 아니란 생각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하시는데 참 마음 아팠어요. 극소수의 독하고 나쁜 사람들이 문제지만 대다수인 방관자에 나도 속하겠지 싶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월급주는 사람이니까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어요ㅠㅠ;

Jeanne_Hebuterne 2020-06-03 02:06   좋아요 0 | URL
달밤님!
이 책은..그러니까 이 책이 다른 책들 아래 쌓여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었어요. 가끔, 준 사람은 잊는데 왜 받은 사람만 아파야 할까 싶습니다. 아직도 마음의 생채기들을 생각하면, ‘나의 힐링에는 사람이 없어야 해!’라고 말하는 이수정 교수의 말이 떠올라요. 타인도 나랑 비슷할거라는 기본값 때문에 사기치는 사람들한테 넘어가는거라는 친구 말도 떠올랐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계속 이런 상황들을 넘기지 않는 것, 그것이 출발이 아닐까 하는 거친 생각이 남아서 좀 거칠게 쓴 리뷰였어요. 언제나 조용한 제 서재에 와주셔서, 계속 여기 있어주셔서 고마워요, 달밤님.

Jeanne_Hebuterne 2020-06-03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붙이기-‘금세’는 제가 잘못 알고 있었고, 옳은 표기라고 어느 분께서 친절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제가 잘못 알았고, 출판사 글이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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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끊임없이 분위기를 띄우려 하고, 다른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는 걸까.





살다보면 여러 번 바뀌는 날씨를 보기 마련이다. 어떤 날은 내가 버젓이 있는데 은근슬쩍 내 옆에 섰다가 슬슬슬 새치기하는 엑스엑스를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마트 냉장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앞으로 쓱 지나가는 사람이 '실례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대한 사건을 제외하면, 사람의 일생은 작은 습관과 그가 제어할 수 없는 타인들의 예측할 수 없는 날씨로 이루어졌다. 




어떤 순간의 서늘함과 후덥지근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날씨. 어떤 구름 뒤에 해가 있을지는 모르니까 그런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나는 더 가만해졌던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를 생각하는 순간, 그냥 그렇게 물 밑으로 가라앉아버렸을 사건이 수면 위로 떠 오르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가만한 나날'은 보여준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재미와 소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마음을 느끼게 해준 소설집. 




1987년 목포 출생, 국어국문학과, 서사창작, 제 9회 젊은작가상, 이런 글귀가 책날개에 적혀있다. 그리고 넘기면 지하철을 갈아타고 약속 장소로 가는 연승의 초조한 기색,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여자친구 진아의 얼굴 가득한 물음표가 보인다. 그들은 연승이 몹시 존경하는 선배를 만나러 가는데, 연승은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제 막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몇편의 작품, 공모전 출품, 그러다 들어간 대형 할인점 체인의 유통 분야, 그러다 그는 이제 영화를 만들려고 하고, 그보다 먼저 다큐 작업을 하는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려 한다. 

작가의 시선은 이들이 곧 만나게 되는 이상하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딱히 예상했다고 말하기도 힘든 선배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연승의 여자친구 진아도, 중한 선배를 좋아하는 연승도 예견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앉을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조그만 공간, 너무나도 작고 천장마저 낮은데 그곳에서 태어난 아기 이야기에서부터 산부인과 이야기 같은 것, 요컨대 제각기 모두가 처음부터 과녁을 맞출 생각이라고는 없이 던져진 화살들같이 같은 지점을 통과하는 상황, 혹은 마음속에서는 알레르기가 올라오는데 하필 마지막으로 다녀온 곳이 뷔페여서 대체 무슨 음식에 내가 이러나, 말하기도 뭣한 상황. 친구와 약속을 잡아놓고서도 내심 '이 친구가 오늘 일이 있어서 못만난다고 문자 한 통 보내줬으면'하고 생각하며 외출 준비를 하는 순간.





 이런 순간의 물밑 흐름을 김세희는 잡아낸다. 그리고 이 작가의 단편을 읽다 보면, 세상에 소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잡아채거나 가르치거나 막아서지 않는 글씨들. 그런 다행스러움은 표제작 '가만한 나날들'에서 담담하고 조용하게 드러난다. 





첫 출근을 앞둔 일요일, 나는 대학로에서 우연히 재화 언니를 만났다. 구름 끼고 쌀쌀한 바람이 불던 오후였다. 그때 스물여섯이던 나는 출근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한답시고 종일 원룸에 혼자 있다가, 괜히 잡생각만 가득해지고 점점 압박감이 들어서 집 밖으로 나갔다. 마로니에 공원 쪽으로 좀 걷다가 아이쇼핑을 할까 싶었다. 밤에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지.




이 스물여섯의 '나'는 블로그 마케팅으로 제품 홍보를 하는 회사에 입사하여 가상의 인물 '채털리 부인'을 만들어 블로그를 꾸민다. 첫 출근을 하며 마음 속으로 재화 언니가 말해준 것처럼 '나는 프로다'라는 말을 주술처럼 되내이던 '나'는 가상의 채털리 부인이 되어 열심히 성과를 자기 눈으로 확인해간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개인 경험은 아주 생생하게 구체적인데, 이러한 구체성은 김세희 작가의 모든 단편 전반에 나타나 있다. 





주민등록번호도 있고, 금요일 밤이면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와 영화를 보며 마시고,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면 딸기와 롤 케이크를 사서 가는 그런 사람들. 김세희의 소설 속에는 멀리 있는 엄마의 잔소리에 넌더리를 내는 원희(현기증)가 있고, 저 아이가 저런 모습이었나 싶어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진아(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거야)가 있다. 첫직장에서 사수로부터 폴더를 만드는 법, 다이어리에 그날그날의 업무를 기록하는 법까지 배우던 선화(드림팀)가 있고, 처음 가본 동네에서 거대한 전기장판을 옆에 놓고 낮에 맥주를 마시는 루미(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가 있다. 



 

이 여자들은 자기가 직접 화자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타인의 눈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이 여자들의 공통된 모습은 버거운 공기에 숨을 참다가도 가볍게 숨을 틔울 줄 아는, 이제 막 자라 어미 새의 둥지를 떠나는 어른의 모습이다.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가 보는 것이 거울 표면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사람의 모습, 한마디로 부끄러움을 배워나가고 이별을 예감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할 줄 아는 여자의 모습. 이렇게 말하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사실 오랜 시간 한국 소설 속의 여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던가를 생각하면, 조경란과 정이현의 인물들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신선함이 다시금 느껴진다. 





어떤 종류의 경험은 소설로밖에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신선함이 순간의 경쾌함으로 그치지 않는 동시에 개인의 경험을 넘어 보편적인 묵직한 잔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의 균형 감각이다. 한 세계에서 일어난 어떤 거대한 사건 앞에서, 그 사건과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의 예리한 날 선 감각, 균형을 잡는 힘. 브레이크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놓치지 않는 흐름을 보노라면 소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한 나날' 속의 경진과 채털리 부인의 목소리 같은 것이.





채털리 부인은 신생아부터 6세까지 사용가능한 '3단계로 변형되는 프리미엄 토들러 침대'에 아기를 재우고, 토요일 밤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개 샴푸계의 샤넬' 제품으로 개를 목욕시켰다.

...

리뷰 업무를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낸 날에는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남아 일상 게시글을 작성했다. 개인 블로그로 보이기 위해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려야 했고, 직원들은 가족과 친척들, 그 반려동물들 사진까지 활용했다. 이웃 수를 유지하려면 이웃을 맺은 블로그를 방문해 댓글도 남겨야 했다. 




라식수술, 치아교정 광고를 교묘히 허위로 만든 블로그에 거짓으로 작성하며 경진은 잠시 이래도 될지 망설이기도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의 결과물에 만족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나아가서는 일을 못 해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예린을 살짝 깔보기도 한다. 한 사람을 만들어나가고 채우는 작은 계단들이 있다면, 경진의 걸음은 계단 어느 즈음에서 층계참을 지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던 순간 이런 브레이크가 걸린다.




블로그 이웃이라는 여자였는데, 그 여자는 자신을 B기업의 뿌리는 살균제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두 아이 중 갓난아기를 잃었고, 다섯 살 아이는 폐가 손상돼 평생 산소 호스를 끼고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이 B기업의 뿌리는 살균제 '뽀송이' 때문이라는, 그 안에 포함된 독성 물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채털리 부인님이 올린 후기를 보고 구매해서 쓰기 시작했거든요. 날마다 사용한다고 했는데 괜찮으신지......아무 일 없으시길 바라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있었다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경진의 엑셀러레이터가 잠시 멈추고 브레이크를 밟게 되는 순간, 그 멈춤에 스스로 답하는 순간, 그리고 내린 첫눈의 대목은 소설을 읽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시간을 통과하고, 그것을 인정한 다음 느끼는 죄책감과 부끄러움. 이러한 부끄러움이 사회의 경험과 개인의 이야기로 겹쳐질 때, 오르한 파묵이 말한 '서로 어긋나는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능력'이 빚어내는 소설 읽기가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나의 첫 직장, 나는 그곳에서 26개월간 일했다. 스물여섯 봄부터 스물여덟 여름 무렵까지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얼굴에 확 와 닿던 건조한 공기며 흰 책상들이 놓여 있던 모습이 선명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은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첫 회사가 화제에 오를 때면, 작은 광고대행사에 다녔다고만 대답한다.

 하지 않는 말들은 그것 말고도 또 있다. 별것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 그곳을 나온 이후 나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책장에 꽂혀 있으나 어쩐지 펼쳐 볼 마음이 일지 않는책. 나는 어디에서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 0과 1 이후의 진심을 보았던 사람. 엄중한 회초리의 사설이 아닌 경진 개인의 경험으로 회자하는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독자. 날씨는 내 옆 사람 탓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마트나 백화점 앞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날씨 때문에 공기가 후덥지근하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주 준엄하게 모든 사건의 시비를 가릴거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김세희의 단편 묶음은 독자에게 어떠한 결심을 하게 만들지 않고 그 자체의 구조 안에서 의문을 가지게끔 만든다. 비슷한 얼굴들 속 다른 얼굴이 보이게끔 하는 작품집이다. 




-따옴표 글은 책속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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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03-2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좀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쟌느님의 페이퍼때문에라도 이 책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말씀처럼 ˝어떤 경험은 소설로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게 읽어서 비로소 정리되고 이해되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Jeanne_Hebuterne 2019-03-24 06:04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너무 오랜만에 알라딘 서재에 와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기분이었는데 블랑카 님 이미지를 보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너무너무 반가워서요!!
이 책은 뭔가 쎄하고 꽁기한데 말하면 내가 소인배같아보이고..근데 기분은 또 그게 아니고 그런 포인트를 너무 잘 짚어내서 읽다가 그 생생함에 놀랐어요. 결국, 시인과 소설가는 더 잘 느끼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읽다가 정이현의 삼풍 백화점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잘 지내시지요? 새해엔 서재에서더 자주 보아요, 반가운 블랑카님^0^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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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따뜻했고 희미한 먼지 냄새가 났다. 그녀는 젖은 옷과 양말을 벗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컵에 담긴 양초에 불을 붙이자 길쭉한 심지가 타들어가면서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장작 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득히 먼 곳에서 터지는 폭죽 소리 같기도 했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마른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문질렀다. 찬비가 끝없이 내리는 낯선 숲속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와 쉴 수 있는 그녀만의 따뜻하고 보송한 공간이 있다는 게, 그래, 나쁘지만은 않아, 하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녀는 가방을 열어 옷과 책을 정리하고 커피잔에 소주를 부어 천천히 마셨다. 소주를 다 마시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두어 페이지도 못 읽고 잠에 빠져들었다. 자세를 바꾸느라 잠시 깨었을 때 그녀는 한두시간 뒤면 식당에서 따뜻한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자 휘진 몸에 따스한 쾌감이 온천수처럼 잔잔하게 퍼져가는 걸 느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몹시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역광





 책장을 펼치면 술 냄새가 오를 것 같은 까닭에 읽는 내도록 술을 마시며 읽었던 책이 있다. 짧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대학원생과 사귀다 헤어지기도 하고, 환영을 보기도 한다. 또는 가까이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멀리 있는 것을 보기도 하고, 남동생의 도박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집에서 나와 자기만을 위해 살아내기를 결심하거나 작정했다는 듯 술을 마시다 알코올성 치매에 걸리거나 어느 날 헤어지지 않고 헤어진 남자친구가 왜 사라졌는지를 술을 먹다 알게 되기도 한다. 

 소설 속의 대부분의 고전적인 서사는 사람들 삶의 어떤 질서가 무너지고, 이야기는 그 질서를 되찾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권여선의 단편에서 어떤 질서는 조금씩 인생의 악희를 통해 더 나빠지는 방향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어떤 단편에서는 그 모든 것이 환영이었음을 종이를 찢듯 보여주기도 한다. 필연을 찾으려는 인간은 인생이 건네는 농담 앞에 얼마나 무력한가. 이 소설집의 일곱 편의 단편은 그런 면에서 삶과 닮았다.




삶 속의 물음을 이 책 속의 사람들은 조심스레 건넨다.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층




 일상적이지 않았던 통화를 하필이면 그 여자가 엿들었을 때, 하필이면 '미친년'이라고 욕설을 할 때, 그것은 그의 탓도, 그녀의 탓도 아니었다. 반듯하다고 생각했던 남자의 폭력성을 오인하기에 충분한 우연이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 남자가 욕설할 때 전화통화를 엿듣게 된 것은 그 여자의 탓이 아니다. 그 남자가 하필이면 그때 욕설을 한 것도 그의 탓은 아니다. 오히려 지적장애 누이가 있다는 것부터가 지독한 우연이었는데, 우리 생의 어떤 단면에서는 '하필'이 필연처럼 펼쳐진다. 

 이런 비극은 삶의 질서를 흔들어 위태롭게고 불안하게 만든다. 롤러코스터가 높이 올라갈수록 위치 에너지가 증가하듯 높이와 에너지가 비례한다고 믿었던 때가 젊은 날이었다면, 이제는 그 롤러코스터는 양의 에너지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음의 에너지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때가 온 것이다. 그것은 의지가 아닌 성격의 영역일 수도 있으며 인간은 삶의 농담을 견뎌내기에는 종종 그 껍데기가 너무 얇다. 

 이를테면 쇠심줄처럼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라 닳은 밧줄처럼 너덜너덜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뭘까...... 나를 살게 한...... 그 고약한 게......

-이모





 그 너덜거리는 마음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버티려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모'이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가장 노릇을 해왔지만 서른아홉 살에 남동생의 도박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었던 사람, 이후 오십이 되자 더는 자신을 찾지 말라며 원하는 대로 살기로 했던 사람.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지도, 기대게 해주지도 않겠다고 결심했으나 살아가는 일은 죄책감과 불가해성, 무례함과 성가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한마디로 내가 들였던 노력이 반드시 내게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어떤 우연한 사건이 필연이 될지 우연으로 끝날지도 알 수 없음이 '이모'의 일생을 통해 드러난다. 마침내는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대학 1학년 때 귀찮다는 이유로 무신경하게 자기를 좋아했던 남학생의 손바닥에 담배를 비벼 끈 일을 기억해낸다. 

 어느 겨울날의 무례한 이웃들, 짜증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보낸 시간이 어쩌면 자기 앞의 생과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이대로는 안 된는 전언에 가까운 결론에 스스로 놀라게  되기까지, 그 사람은 얼마나 긴 둘레길을 걸었을까. 




 가까스로 다다른 통찰.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이런 얘기 해도 되나?

-실내화 한 켤레





 그러나 어떤 삶의 부분은 그 얼굴과 뒷면이 예상 밖으로 심술궂다.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기운이 있다면 이러한 종류의 전언이다. 또한 전언을 전하는 자의 심술궂음, 카산드라의 미소. 결국,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일부러 한 박자 늦게 꺼내는 악희는 우리 삶의 저변에 의도치 않게 깔린 안개 같다. 그래서 비누 거품 같았던 인간은 어느새 제각각의 성격, 혹은 제각각의 결함을 지닌 채 이에 대항하려 하지만 어떤 이는 그것을 우연히 피해가고, 어떤 이는 맞서야만 한다. 그게 내 탓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게 뭐였을지를 생각해 내야 하고, '이런 얘기 해도 되나?' 하는 삶의 심술궂음에 애써 스스로 다잡아야 하는 삶. 어쩌다 열린 술판 같은 자리. 맨정신이었다면 들을 일이 없었을 다른 이의 비밀, 볼 일이 없었던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우연히 얻어걸린 어떤 사건들. 

 '실내화 한 켤레'의 세 사람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의 모진 수업을 견뎌내려 만나게 되고, 어른이 되어 우연히 만나 술자리를 갖는다. 그러나 알면서도 일부러 발설하지 않다가 그날 만난 남자가 지독한 성병에 걸렸다는 말을 하는 선미의 얼굴은 심술궂은 인생의 우연 같다. 그래서 그 남자와 잤을 것으로 추정되는 혜련에 대해 선미가 '혜련이가 너무 걱정돼, 경안아. 아직 애도 없는데.'라고 말할 때, 실은 우리가 가졌던 술자리는 찰나의 진실이 아닌 어젯밤의 차악이 되기도 한다. 






 우연히 가게 된 술자리, 내 옆에 누가 앉을지는 나도 모를 일. 술자리에서 나는 주로 먼저 집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고 은근슬쩍 사라지곤 한다. 인생에서도 그러고 싶으나 나의 차악, 나의 물음이 다른 사람이 건네는 농담, 공감과 적절히 만날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술자리에서 슬쩍 빠져나와 이 책이 건네는 농담과 위로를 읽고 있자니, 내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바닥에 깔린 내가 은근슬쩍 술을 따라주는 느낌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비에 흠뻑 젖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사무실 여직원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왜 이렇게 젖으셨어요? 전화를 주셨으면 모시러 갔을텐데요."

 그녀는 여직원이 내미는 수건을 사양하고 그가 언제 오는지를 물었다.

 "어느 분이시라고요?"

 그녀가 그의 이름을 말하자 여직원은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분은 안 오시는데요."

 근는 그의 이름이 적히지 않은 화이트보드를 뚫어져라 보았다. 여직원이 책상 서랍에서 서류철을 꺼내 뒤적였다.

 "그런 분은 올해 아예 입주 신청도 안하셨어요."

 그녀는 열쇠를 받아 사무실을 나왔다. 1층 로비를 지나 문을 열고 나와 계단으로 향했다. 비가 들이치는 실외 계단을 올라가 2층 9호 처마 밑에서 열쇠로 문을 열려다 그녀는 등 뒤에 어떤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맞은편 공용 발코니에는 아무도 없었다. 발코니 앞 단풍나무가 영원한 작별의 불가피성을 안다는 듯 젖은 손바닥 모양의 나뭇잎을 은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역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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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7-12-16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았죠? 저나 쟌느님이나 다 어떤 상승, 삶의 기쁨 뒷면의 무게를 가늠하게 되는 나이가 되어버렸나봐요.

Jeanne_Hebuterne 2017-12-22 06:15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술마실 때면 꼭 펴놓고 읽게 되는 본격 주정문학입니다. 작가의 의도도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싶어요. 요즈음엔 한국말의 맛이 새롭게 다가와서 엊그제 한국 소설책을 주문했습니다.
십여년 전의 감정들이 강렬하고 날카로웠다면 지금은 약간의 한숨을 쉬며 먼 곳을 바라보려고 해요. 제대로 되지는 않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7-12-16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2 0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6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2 0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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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 씨, 딸 정지원 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 씨는 IT 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 씨는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원 양은 돌이 막 지난 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 동안 다닌다.


 나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지역에 사는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도 같다. 이때 소설은 작은 반사판이 되는 것 같다. 도시 생활자라는 별명이 붙은 정이현 무렵부터, 서울이나 대구, 부산, 혹은 다른 친숙한 지역 출신의 작가들이 조금씩, '지금, 여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 이전 작가들은 그러지 않았던 것일까? '그게 이상하게도, 그렇게 됩니다.'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정이현이 '삼풍백화점'을 통해 냉면을 먹고, 백화점에서 어떤 무늬 다이어리를 살까 고민하고, 정장 바지 코너에서 친구라기에는 낯선 그를 만나는 이야기를 그려낸 그 시점이 하나의 갈림길을 만든 때라고 생각한다. 대도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나가고, 커피를 마시거나 쇼핑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 이상하게도 그 전에는 소설 속에서 조금은 보기 힘들었던 이야기들.



 1978년생, 사회학을 공부하고 PD수첩, 불만 제로 등의 작가로 10년간 일했다는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제목이 많은 정보를 준다. 82년생, 그러니까 지금 삼십 대 중반, 한국에 사는 여자. 1982년, 여아 낙태 통계 그래프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고 그 이후 99년, 워렌 버핏은 금융위기를 맞은 한국을 돌아본 다음 경구피임약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 여성인권이 낮았다가 당시 그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으며, 90년대 후반부터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과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낮은 혼인율과 출산율. 이것이 그가 예상한 대한민국의 미래였다. 
 결코 원금을 잃지 않는다는 이 주식 전문가의 의견과 맞물리는 82년생 김지영 씨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쉬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쉽다는 것은 어떤 일이 행해지는 데 그다지 많은 수고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야기의 속도감이 상당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나는 외려 이 '쉬움'이 나로 인한 것임을 안다. 한 치의 틈이 없이, 내가 잠시 82년생 김지영이었으므로. 그래서 나와 이 글의 간극이 긴밀하여 마음이 급해질까봐, 그 점이 저어된다.



"원래 애 낳고 나면 마디마디가 다 약해져. 모유 먹이면 약도 편하게 못 쓰는데. 물리치료 받으러 올 수는 있어?"
 김지영 씨는 고개를 저었다.
 "손목 많이 쓰지 말고 잘 쉬어. 어쩔 수 없지 뭐."
 "애 보고 빨래하고, 청소하고.......손목을 안 쓸 수가 없어요."
 김지영 씨가 푸념하듯 낮게 밀히지 할아버지 의사는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 보기는 한 걸까.
 의사는 모니터에 뜬 김지영 씨의 이전 치료 기록들을 훑어본 후, 모유 수유를 해도 괜찮은 약들로 처방하겠다고 말하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다.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김지영 씨가 하는 대가 없는 노동, 까닭 없는 힘듬이 과연 대가를 측정할 수 없고 까닭이 없이 일어나는 일일까? 왜 김지영 씨의 말이 새롭게 들리고, 할아버지 의사의 말은 너무 많이 들어 당연한 것이 되었을까? 왜 그는 언어에 대한, 단어에 대한 선택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것인가?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왜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없을까? 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해야 할까?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다지만 그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와 누구의 귀로 들어가는 것일까? 많은 틀린 일을 하는 이들은 자기 행동에 그 어떤 반성도 자각도 없건만 왜 페미니스트들은 자기검열을 거쳐야 하며 다른 모든 방면에서 조심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아직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이야기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서, 'her'로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여자이며, 화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책과 어떤 음악은 지독한 여성혐오자가 남긴 것일 때도 있다. 나는 짧은 드레스를 입는 것을 즐기고, 하이힐도 좋아한다. 그 하이힐이 내 엉덩이를 치켜올려주고, 남자들로부터 시선을 받는 것을 즐긴다는 것과는 다른 뜻이다. 왜 내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는 것이 남자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라고 재단하는 것일까?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없는 것은 그 물건이 무거워서이지, 내가 남자처럼 힘을 길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유와 당위를 헛갈리는 것은 어리석은데, 왜 김지영 씨는, 김지영 씨의 주변 사람들은 이 덫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을까? 




 "남자애들은 쉬는 시간 10분 동안도 가만히 안 있잖아. 축구든, 농구든, 야구든, 하다못해 말뚝박기라도 한다고. 그런 애들한테 어떻게 와이셔츠 목까지 닫아 입고 구두 신고 다니라고 하겠어?"

 "여자애들이라고 싫어서 안하는줄 아세요? 치마에 스타킹에 구두까지 신겨 놓으니까 불편해서 못하는 거라고요. 저도 국민학교 때는 쉬는 시간마다 말뚝박기하고 사방치기 하고 고무줄놀이 하고 그랬어요."



 그 그물망이 너무나도 촘촘하고 엄밀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이것이 전 사회의 암묵적인 동조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 지금이 아무리 여자가 대학을 가고, 판사도 하고, 이전과는 다름을 강조하여도 그것은 전과의 다름이지 남자와 같은 자유를 누린다는 뜻은 아니다. 씨네 21의 이다해 기자가 말하였듯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는 질문에는 '그럼 당신은 남자와 여자,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라고 되받아치는 것이 적절하다. 적절한데, 문제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감히 '나치'라는 단어를 붙인 '페미나치'라는 조어를 만드는 시대에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모욕을 모욕이라 말하기 힘들 때가 있고, 내가 느꼈던 이상한 감정을 상대에게 설명하여야만 할 때도 있다. 내가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해서 누군가가 내 자동차를 들이박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왜, 유독 여성 범죄에 관해서, 여성이라는 특질에 대해서는 원인과 당위가 뒤바뀌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조남주의 소설은 조용하다. 지나치게 앞서나가거나 뒷걸음질 치는 법 없이 김지영 씨의 시간을 연도별로 훑는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통계자료나 당시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 자료는 김지영 씨의 이야기에 간결한 힘을 싣는다. 

 이것은 일어나지 않았던 일, 허구가 아니라 지하철 어느 역에서 네 옆자리에 앉았던 어떤 여자의 이야기라고, 집회에 나가 함께 촛불을 들고, 무엇이 떳떳하고 옳은 일인지,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무엇보다도 너와 다를 것이 없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어쩌면 좀 과할 수도 있는 소설 끝 진료 부분에 이르러서는, 좀 과장됐어. 그런데, 그게 그렇게 과장된 것도 아니고 다시 보면 실제 있는 일이잖아? 하는 자조적인 헛웃음이 나온다. 길가며 무심결에 바라본 누군가의 모습이 사실은 거울에 비친 나였음을 자각하는 순간 나오는 표정과 같은 색깔의 웃음. 나는 이 헛웃음이 아무 성과 없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거리를 유지하기 힘들었던 책.



 *따옴표 글은 모두 책속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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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6-12-12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냥이와 잘지내시죠?

Jeanne_Hebuterne 2016-12-28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개님!
삼남매 모두 잘 있습니다! 요즘은 사료 고민이 많아요ㅠㅠ 제가 먹이는 사료가 괜찮을까 싶어서 조리식을 시도중인데 이게 삼남매가 먹어야 먹일 수 있으니까요...홀리스틱 급 캔푸드를 주문했는데 이곳도 얘들이 잘 먹을까 조바심중입니다. 냥이들 소식 전해주셔요^^

2017-01-03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5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8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0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이없게도 국수 - 인생의 중심이 흔들릴 때 나를 지켜준 이
강종희 지음 / 비아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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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식사로는 국수가 좋다

영혼이라는 말을 반찬 삼을 수 있어서 좋다


퉁퉁 부운 눈두덩 부르튼 입술

마른 손바닥으로 훔치며

젓가락을 고쳐 잡으며

국수 가락을 건져 올린다


국수는 뜨겁고 시원하다

바닥에 조금 흘리면

지나가던 개가 먹고

발 없는 비둘기가 먹고


국수가 좋다

빙빙 돌려가며 먹는다

마른 길 축축한 길 부드러운 길

국수를 고백한다


-이근화, '국수' 중에서.



 


 편안한 옷, 오래 걸어도 아프지 않은 신. 선글라스도 없이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맨피부가 햇살에 눈부시게 빛난다. 어디를 가나 바람이 춘삼월 봄바람처럼 부는 곳에 와있다. 골목 모퉁이마다 다른 방향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친다. 언제나 떠났던 곳. 그림자가 또렷했고 커피는 진했고 무지개빛이 선명하다. 햇빛과 바람을 온 피부로 받고 싶다. 이제 이곳에 당분간 뿌리를 내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이어리를 펼치면 연필 대신 모나미 153으로 볼펜 잉크를 닦아가며 쓴 메모. 꽃노래도 한철이어라. 이제는 몇 번을 들여다본 남의 일기장이 더는 궁금하지도 않을 지경이 되었을 때 들려오는 고백 따위, 무슨 상관이람. 그래서 이곳의 바람을 온 피부로 받으며 스쳐 보내고 싶었나 보다. 




 몇 번 들렀던 편지지와 카드 따위를 파는 가게에 들어간다. 고양이 그림이 있는 카드를 구경하다 문득 집에 있을 고양이들이 생각난다. 궁금함과 그리움이 아니다. 그들이 내게 해주었던 곡진한 위로, 웃음 그 자체의 웃음, 격렬한 감정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온종일 공기만 들이마실 때 내 옆에 종일 누워있던 그 털 뭉치. 맹렬하게 뛰어가다 문에 박치기 하던 슬랩스틱. 조금 전까지 내게 뽀뽀, 골골이, 꾹꾹이를 해대며 애정을 표현하다가 내가 억지로 잡아챌 때 드물게 하던 하악질. 그 작은 털 뭉치가 고양이가 되고 그 작은 비누거 품이 단단한 그림자가 된다. 




 그들에게는 완벽한 일체의 감정이 없다. 좋아 죽겠는 순간에조차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다. 너는 너의 일을 했고, 나는 나의 일을 했어. 이 말이 이렇게 완벽히 성립하는 관계가 오랜만이다. 그간 얼마나 이 선을 등신처럼 못 그어서 전전긍긍, 많은 검은색을 희게 칠했나. 사실은 아직도 등신이고 앞으로도 바보 천치일지도 모른다. 속을 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 속이 내 속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이것은 죽은 정자와 죽은 난자가 만나 죽은 아이를 잉태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의 열망이다. 최선을 다하여 미쳤던 시절 찾아낸 최선의 미친 모습을 아직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니. 결코,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으로 고리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지쳤고 나의 사랑은 늙었다. 지침과 늙음을 상쇄하기 위해 이렇게도 거리를 없애려 기를 쓰고 또 쓰다가, 결국, 그것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내 사랑이 제멋대로 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니,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려 애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는 나의 사랑이 지닌 것 이외의 모든 것이다. 나는 흰 피부로 햇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삶에 대한 비관적인 낙관이 가득하다. 그럴 리가 없다는 불신, 닫고 절대 열지 않는 서랍을 가진 주제에 다른 서랍을 넘본다. 사랑 그 뒤의 쓸쓸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뒷모습까지 알아챘을 때 나는 더 무섭고 대담해졌다.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헤더가 그리 말했듯, 비밀을 고백하는 것은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이다. 나는 결코, 내 비밀을 고백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걸어서 이번엔 다른 가게를 찾는다. 





 작은 골목 안에 숨은 더 작은 골목에 그 국숫집이 있었다. 벽에 붙은 메뉴에는 그저 2인분, 3인분, 4인분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식당 안에는 휠체어를 탄 여인을 데려온 가족 한 팀이 있었고, 외국인 노동자 한 명이 어색하게 낀, 아마도 고용주인듯한 남녀 일행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테이블 네 개가 고작인 작은 식당이 꽉 찼다. 다들 막걸리에 소주까지 반주를 하는 눈치였다. 나도 그때는 정말 술 생각이 났다. 아쉽지만 아이를 데리고 몸을 못 가누는 형편이 될 수는 없으니......사이다와 2인분을 주문했다.

 10여분을 기다린 끝에 커다란 양푼에 담긴 국수와 김치 한 보시기가 나왔다. 마그마처럼 붉고 뜨겁게 끓어오르는 국물을 훌훌 저어가며 국수를 양껏 대접에 퍼 담았다. 한눈에도 매운탕이나 어탕 국수에 더 가깝지 않을 까 싶게 걸쭉한 국물과 제법 튼실한 생선 토막들이 눈에 띄었다.

-책속에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분위기가 길마다 많이 다르다. 아무렴 그 국숫집은 명품샵이나 고급스러운 호텔 옆에 있지 않았다. 좀 많이 허름한 간판, 들어가면 와글와글 각국어로 외치는 소리. 강한 타이 억양은 목소리를 한층 더 높게 만든다. 한 명, 먹고 갈 거에요. 이렇게 말하면 주로 바 자리를 내어준다. 벽을 마주하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창밖의 한무리 사람들이 보인다. 구중 구월 생활처럼 그들은 자주 오는 사람을 보고도 아는 체하지 않아 좋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달구는 것은 온갖 해산물 볶음, 생숙주의 향, 고수, 향신료 냄새. 내 왼편의 여자는 내 그릇을 흘깃 보더니 뭔가를 길게 이야기한다. 채식주의자가 먹을만한 국수를 주문한다. 오른편의 여자는 자기 앞에 놓인 국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찰칵, 소리를 내고는 한 입 후후 불어먹기 시작한다. 오늘은 뭐 먹느냐는 문자에 가끔 나도 사진을 보내기도 했고, 국수를 먹는다고 말하기도 했다만 주로 이 가게에 와서는 이제 그러지 않는다. 책도 잘 읽지 않고 그저 내 앞에 나온 국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국물을 삼킬 뿐. 






 




 언젠가는 잔치국수를 해먹고 싶어 애호박, 표고, 국물용 멸치, 시금치, 당근, 양파, 새우, 오이 등을 사 온 적이 있었다. 때마침 집에 새로 냉장고와 냉동고 기능을 겸한 기기를 장만했다. 사용설명서가 없었고 다이얼을 2로 맞추어 놓았더니 당근이 야구 방망이로 변했다. 다이얼을 5로 하자 이번엔 포도주병이 터졌다. 그 뒤로 다시 장을 봐와서 국수를 삶아 먹으면 그만이었겠으나 나는 대장금처럼 경합과 역경을 딛고 스스로 재창조해나가는 인간이 아니었던지라 그때 냉장고에 기분 상한 그 마음은 아직도 회복되질 않고 있다. 대신 내게 위로를 건네고 싶거나 따뜻하게 내가 나를 안아주고 싶다......싶을 때. 정신 차리고 보면 나는 그 국숫집에 가서 앉아있다. 이 따끈한 국물을 삼키고 면을 훌훌 불어 젓가락으로 감아 입에 밀어 넣는다. 국수는 참 바쁘고도 고즈넉한 음식이다. 뜨거운 국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국물이 뜨거울 때 삼키고 싶어 국물을 마시다 보면 면이 불어난다. 쫄깃한 면을 먹다 보면 국물이 조금씩 식는다. 혀를 델 만큼 뜨거운 통각, 몸을 녹이는 샤워, 그 뒤 머리카락을 말리며 마시는 따끈한 검은 커피. 살다 보면 이런 것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콩나물, 그 날 들여온 생선, 기계로 뽑은 납작한 칼국수 면을 고춧가루 듬뿍 풀어 끓여낸 모리국수는 원래 고된 뱃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을 위해 만들어주던 음식이었다. 국물이 시뻘개지도록 투하한 고춧가루도 그렇지만 마늘이 듬뿍 들어간 데다 생선과 국수의 전분으로 걸쭉해진 국물이 칼칼하고 든든했다. 거기에 2인분이 웬만한 3~4인분에 해당할 만큼 그 양이 푸짐했다. 마늘이 잔뜩 들어간 김치는 생선을 넣은 개성 강한 칼국수와 함께 먹기에 적당한 맛이 들었다. 

-책속에서




 스물아홉 개의 국수 이야기를 담은 책.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많이 흘려 국수 국물이 넘치는 느낌이 좀 아쉽지만, 그런대로 국수를 먹고 싶어서 국수 대신 흘깃거린 책. 야근의 밤을 넘어가며 동료와 함께 들이키는 두부 국수. 아이와 함께 먹는 모리 국수. 엄마와 함께하는 명동 칼국수. 





 미각은 기억이며 음식은 추억이다. 박찬일의 요리 이야기는 쉐프의 부엌을 보여준다. 용윤선의 커피는 눈물을 삼킨다. 카모메 식당이 품은 따뜻한 마음, 바베트의 만찬이 펼치는 우정. 강종희의 국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간은 생존을 위해 먹다가, 막상 생존을 위해 먹는다는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각종 조미료를 뿌리고 더 많은 재료를 찾고 다른 맛을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장면의 달콤한 캐러멜 소스가 주는 기억. 누군가 내게 차려준 스파게티의 느낌. 애써 품고 온 팟타이의 아삭한 숙주의 식감. 오빠와 동생이 같이 먹는 한밤의 라면, 지글지글 불판 위의 고기를 구우며 원시 부족처럼 동지애를 다진 다음 먹는 열무 냉국수. 계속된 야근의 끝에 고기를 불판에 굽다가 마지막 순간, '밥 할래, 냉면 할래?'라는 물음을 받고, 총무는 밥은 몇 명, 냉면은 몇 명...되내이며 주문을 하던 밤. 그 와중에 '소주 하나 더요'라는 목소리가 옆에서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그렇게까지 갉아먹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 길게 살다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일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천만의 말씀. 불판의 열기를 느낄 때가 있고, 냉면의 냉기를 속에 들일 때가 있다. 






누군가가 그랬다. 생선은 낯설고 잔인하다고. 육지의 생명인 나와 다른 세계, 비밀의 바다에서 온 생명을 먹는 나라는 존재의 생존을 직시하는 행위다. 낯설과 원초적인 바다의 존재, 생선이 그득한 국수 냄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했던가.

 버텨.' 불과 수시간 전에도 넘치는 생명력으로 바다를 헤엄쳤을 아귀가 소근, 내게 던진 귓속말은 이랬다. '날 먹고 버텨봐. 길게 가늘게 이어지는 국숫발처럼 그렇게 버텨. 괜찮을 거야.'

-책속에서




 강종희의 기억과 인물이 화려한 만큼 국숫집의 정보는 맛 기행 블로그를 넘지 않을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이 어느 한쪽으로 더 나아가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함이 슬쩍 스민다. 웃음이나 눈물을 더 채웠더라면. 혹은 지도나 좌표를 더 찍었더라면. 어떤 책은 스스로 위치를 더없이 확실하게 해주어 명쾌함을 더한다. 론리 플래닛의 여행 시리즈가 그렇고 이케아 카탈로그가 그렇다. 반대의 명쾌함을 주는 경우는 김영하와 김연수의 에세이가 그렇다. 여기서 적당한 타협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 거란 짐작을 다시 한 번. 임원직을 맡은 워킹맘의 고단하고 치열한 마음이라는 개인의 경험이 국숫발에 그대로 녹아들기는 조금 힘들었나 보다. 

 모름지기 햇빛을 향해 줄기차게 뻗어 나간 나뭇가지를 자르기란 힘든 노릇. 쓰는 자와 읽는 자의 틈, 벽은 이럴 때 조금씩 자라난다. 쓰는 자는 하나이지만 읽는 자는 여럿이므로. 읽는 이가 걷는 평행우주, 이해하면서도 비교하고 추억하는 저울질을 감당하기에 저자의 목소리 힘이 조금 강하고 높게 느껴진다. 재료 하나를 두고 떠올리는 깊은 통찰과 보편성 대신 야트막한 언덕과 누군가의 다이어리를 잠시 엿보는 느낌을 대신 택한 책. 제목만큼은 그러나 분명하고 당연하며 지당하다. 어이없게도 나를 지탱시켜준 국수. 국물과 면발을 홀홀 들이키고 싶은 날 불현듯 생각난 책.



 





끝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우린 이미 알고 있었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걸
이것이 마지막 잔이라는 걸

눈빛을 나누고 건배를 하고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내 마음 속에 버려두었던 사진기를 꺼내 찍는다

'찰칵' 울림이 없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서 얼마나 걸었던가
'찰칵' 이제는 무엇을 따라
또 얼마나 걸어가야 할까

마시자 마시자 마시자
서라벌 호프에 우린 사라지겠지만
서울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시자 마시자 마시자
서라벌 호프는 다시 오지 않겠지만
서울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시자 마시자 마시자
서라벌 호프에 우린 잊혀지겠지만
서울의 꿈은 이제부터,
우리들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아립, 서라벌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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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1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2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터 2015-07-21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Jeanne Hebuterne님, 저도 지난 달에 아기 고양이 입양해서 함께 살고 있는데 고양이는 처음이라 여러가지로 낯설고, 예쁘고 , 신기하고 그래요. 개와는 정말 많이 다른 생명체더라구요. 에너지가 많은 건지 , 제가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그런건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제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늘 후다닥 후다닥이거나, 뭔가를 가지고 혼자 놀거나 그래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잠깐 반겨주고 , 식사때 되면 가까이와서 살살 비벼대는 것이 전부인 너무나 독립적인 녀석과 살고 있어요. 제가 일하는 동안 필요한 잠을 다 자는 듯 해요. 세 녀석을 들이기 쉽지 않으셨을 듯 싶은데 , 녀석들 행운이네요.

Jeanne_Hebuterne 2015-07-22 09:10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

어므낫, 냥이 집사시로군요! 저도 냥이 셋을 지켜보다 보니 정말 정말 정말 신기한 생명체 같아요. 소설가 김영하도 그러더라구요. 고양이는 인간보다 훨씬 작고, 약하고, 빨리 죽는데 한없이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낯설고 예쁘고 신기하다는 말 정말 동의해요. 그 많은 이들이 집사가 되고나서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냥이로 도배하는 것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고, 2년 전 죽은 고양이 이야기를 하며 우는 친구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고.

식사 때 살살 비벼대는 것이 전부, 잠깐 반겨주는 것이 전부. 그 구분이 명확한 이 생명체가 참 좋습니다. 사람이 제각각이듯 고양이도 제각각이어요. 제 곁에 있는 님부스는 제가 다른 고양이들 등을 만져주면 꼭 `냥!` 하고 소리를 내며 빤히 쳐다보고서는 천천히 다가와요 셜록은 슬랩스틱의 대가죠. 칼리는 얼마나 새침한지요. 다들 사료 앞에서 야옹거리며 펄쩍거리는데 칼리는 늘 물그러미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있어요. 칼리가 사료 앞에서 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죠. 지금은 셋이서 챔피언스 리그 나간 것처럼 소리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습니다만, 고참 집사들에게 물어보니 이 우다다는 성묘가 되면 그리 많지 않을거라고들 하더라구요.

캣닙 줄까? 하고 물어봤을 때에도 `그 당시는 여러가지로 미친 시기이므로 좀 더 커서 늘 식빵굽기만 할 때 주어도 된다`라는 답변도...

코코 잘 있죠? 아, 이제 다른 고양이들도 궁금해지는 시기!

덧-냥이는 넷이었는데 차마 넷은 감당 못하고 한 마리는 입양 보냈어요ㅠㅠ

아무개 2015-07-2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짬뽕, 우동, 라면 등등
면 요리를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이 책을 보관함에 넣어 두었었는데,
쟌님의 페이퍼로 읽은 셈 치렵니다. ㅎㅎㅎ

Jeanne_Hebuterne 2015-07-22 09:16   좋아요 0 | URL
아무개 님
면 요리 정말 좋죠! 밀면, 잔치국수, 막국수, 평양냉면, 자장면, 짬뽕, 우동, 라면, 비빔면! 비빔면은 하나는 약간 부족한 것 같고 늘 두 개는 좀 많은 것 같고..아, 그러고 보니 간짜장도 떠오르고..제가 살던 곳에서는 꼭 간짜장에 계란을 같이 얹어서 줬는데 다른 지역에서 시켜먹을 때 계란이 없어 놀랐던...문화충격이 떠오릅니다. 뭐! 간짜장에 계란이 없어! 뭐! 순대에 장이 안나오고 소금만 나온다고! 뭐! 소고기전을 안해먹는다고!! 종종 어떤 문화충격은 먹는 것으로 더 격하게 다가와요.

사실 이 책은 기대가 꽤 컸는데, 저자의 화려한 경력과 바쁜 일상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까, 하는 의문이 살짝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이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것이고 특수성을 띠지요. 그가 백수든, 학생이든, 사장이든, 의사이든 자기 일상에 대해 깊이 이야기할 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전문성으로 치자면 막상막하일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훨씬 낯설고 생명스러운 러시아 이야기, 통역하며 일어난 일들이 오히려 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펼쳐졌던 것을 떠올려 보면, 이 일말의 차이는 글쓴이가 얼마나 상대를 덜 의식하고 쓰는가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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