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셜록 : 시즌 2 (2disc) - 본편 + 부가영상
폴 맥기건 감독, 마틴 프리먼 외 출연 / KBS 미디어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밤을 샌 날이 아니라면 으레 느지막이 일어나는 셜록 홈즈가 식탁에 앉아 조반을 들고 있었다. 사실 그가 밤을 새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나는 벽난로 앞의 깔개 위에 서서 전날 밤 우리를 찾아왔던 손님이 남겨두고 간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것은 손잡이가 뭉툭하게 불거진 놈으로 묵직한 고급 나무로 만들었으며 '페낭 로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느 지팡이였다. 손잡이 바로 밑에는 폭이 3 센티미터는 좋이 될 듯한 넓은 은관이 붙어 있었다. 그 위에는 '1884'라는 숫자와 함께 '영국 외과 의사회 회원인 제임스 모티머에게, C.C.H의 친구들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구식 개업의가 지니고 다닐 듯한 품격과 견고함을 갖춘 바로 그런 지팡이였다.
 "여보게 왓슨, 그걸 보고 무엇을 알아냈나?"
-셜록 홈즈, 코난 도일.(황금가지판 셜록 홈즈 전집 3)

 

 

 
 네, 저는 방금 어떤 텍스트를 발췌 인용했습니다만 실은 저 텍스트는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어떤 사건의 전조, 인물의 묘사보다는 무대의 공기와 분위기에 집중한, 말 그대로 여는 글일 뿐입니다. 저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몇 가지 되기는 합니다만 저 인용문이 마음에 들었거나 당신의 마음 어느 한구석을 자극했다면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신이 바로 홈시언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주제에 집중하고 골몰하며 팬이 되는 단계를 거쳐 마침내는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트레키와 셜로키언, 홈시언들입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특정 중독자들이 있습니다만 이들에게는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스타트렉에 열광하는 이들을 부르는 트레키는 한없는 경멸의 의미가, 셜로키언과 홈시언은 코난 도일의 작품 셜록 홈즈에 열광하는, 스스로 울타리를 곧추세워 등골까지 221B의 일원이 된 이들에 관한 존중의 의미가 있다는 것. 빅토리아 시대를 시작으로 1892년 '페그람의 수수께끼'부터 2010년 나온 BBC 방영작 셜록까지, 홈즈는 꽤 다양하게 변주되고 반복됐습니다. 물론 루시 리우가 나온 미국판이 더 최근입니다만, 작품의 완성도를 볼 때 이 작품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2000년대 셜록 홈즈 변주곡의 시작은 2009년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였습니다. 근육질의 셜록이 예쁘장한 왓슨을 데리고 온갖 액션을 선보였더랬지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양한 셜록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나왔다 하면 인기가 있기 때문에?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마약 중독에 소시오 패스, 두뇌 회전이 빠르며 연애에는 관심 없는 사설탐정이 빅토리아 시대의 정보망을 이용하여 평범한 의사 왓슨과 함께 모험하는 것이 그 줄거리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사건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모험에 뛰어드는 인물이에요. 시각, 촉각, 후각과 화학, 생물학, 지질학, 역사(와 기타 등등)를 바탕으로 한 본인의 직관을 이용하여 평범하지 않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사람입니다. 군더더기는 생략하고 필요한 것만 취하며 타인의 고통에도 어느 정도 무감각합니다. 이 캐릭터 하나만 봐도 정신의학계는 약 오 분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신기한 것은 이 다양한 결함과 장점이 하나의 세계를 이룩한다는 데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가상의 공간 221B는 현실의 공간이 되고 엘러리 퀸부터 스티븐 모펫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자신의 셜록을 만들어냈지요. 한마디로 셜록 홈즈는 워낙 그 개성이 뚜렷하고 토대가 굳건한 작품입니다. 그러면서도 변주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셜록을 재해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국적인 사건에 집중한다면 인디아나 존스를, 추억에 집중한다면 셜록 홈즈 앤솔로지(앨러리 퀸)를, 액션에 집중한다면 셜록(가이 리치)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나옵니다. BBC의 셜록이 여기에 왜 필요한 것인가? 칠십여 명의 셜록 중 하나를 보태었는데, 죽지 않고 산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지요.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셜록은 BBC에서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입니다. 회당 90여 분이며 한 시즌당 세 편, 2013년 초 현재까지는 시즌 2가 나왔으며 올해 말 크리스마스 특별편이 방영되고 시즌 3이 아직 남았어요. 감독과 각본을 맡은 모팻과 게티스는 이미 영국 텔레비전 드라마 '닥터 후'에서 함께 일했고 마침 닥터 후의 촬영으로 함께 탄 카디프행 기차에서 둘 다가 홈시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함께 작업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팬심으로 만든 팬픽인 셈입니다. 이 텔레비전 드라마의 다른 일면을 살펴볼까요. 방영 시간대는 닥터 후가 저녁 7시였고 셜록의 경우 저녁 8시였습니다. 9시 이전 시청 시간이 영국의 가족 드라마 방영 시간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셜록은 처음부터 유혈낭자한 섹스 난투극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군다나 주연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틴 프리먼입니다. 저는 캐스팅과 각본 구상이 BBC 드라마 셜록의 성공을 좌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완벽한 변주이자 현대화였으니까요.
 
 
 감독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캐릭터와 최대한 닮은 인물을 뽑는 것과 캐릭터와 최대한 비슷하게 행동하는 인물을 뽑는 것. 예를 들자면 전자는 한국 영화 '왕의 남자'이고 후자는 BBC의 텔레비전 시리즈 '셜록'입니다. 하나도 닮지 않은 외양, 홈즈의 재현이라 일컬어도 될 법한 행동양식입니다. 저는 여기서 컴버배치의 외모에 대해 평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스틸 컷만 보아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대신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구글 지도, 아이폰 앱, 클라우드 서비스 활용의 비빌 번호 추적, 단체 문자, 맥북 페이스 타임, 아우디 새 모델, 747 좌석 번호, 언록 시스템, 핸드폰 스캐닝. 이것이 바로 셜록이 이용하는 기기입니다(아우디는 마이크로프트). 그는 아편 대신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경찰 기자회견장의 기자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냅니다. 가끔 왓슨을 대신 보내 페이스 타임으로 현장을 둘러봅니다. 다른 면을 한 번 볼까요. 모리어티가 교도소 문을 개방하고 은행 금고를 여는 동시에 왕관 유출(은 아닙니다만 정확히는)을 시도할 때 흐르는 음악은 로시니, 홈즈가 법정 출두를 할 때 흐르는 음악은 니나 사이먼입니다. 이것은 007의 최첨단 무기가 라디오 수신기인 반면 홈즈의 활용 기기는 스마트폰으로 역주행함을 엿볼 수 있는 단면입니다. 윌리엄 터너가 그렸던 국회의사당과 함께 있는 빅 아이를 보듯 스티븐 모펫과 마크 게티즈는 빅토리아 시대 픽션의 현대화를 해낸 셈입니다.

 

 

 이는 곧 현재란 어떤 모습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이지요. 과거에서 흘러나왔으되 변하고 있는 것. 우리는 지금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을 보며 가장 탄탄하게 현대화된 셜록을 보고 있습니다. 정점을 찍되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 것. 이것은 제작자로서의 욕심과 홈시언으로서의 까다로움이 만나 이루어낸 새로운 시대의 홈즈입니다.
 
 
 
 
#1.DVD에는 40분 가량의 부가 영상이 있습니다. 좀 더 길었어도 좋았을 걸 그랬어요.
 
#2.영화에 비해서는 결정이 빠른 드라마 시리즈를 선택한 편이 나았다고 봅니다. 이전에야 드라마는 비디오로 촬영하고 영화에서는 35mm로 별도 작업했다지만 최근에는 드라마 쪽이 의견 반영도 빠르고 자본도 덜 들어가니까요.
 
Sherlock (2010– )
 
Creators:Mark Gatiss, Steven Moffat
 
Series cast summary:
  Benedict Cumberbatch  ...   Sherlock Holmes (7 episodes, 2010-2012) 
  Martin Freeman  ...   Dr. John Watson (7 episodes, 2010-2012) 
  Una Stubbs  ...   Mrs. Hudson (7 episodes, 2010-2012) 
  Rupert Graves  ...   DI Lestrade (6 episodes, 2010-2012) 
  Louise Brealey  ...   Molly Hooper (6 episodes, 2010-2012) 
  Mark Gatiss  ...   Mycroft Holmes (5 episodes, 2010-2012) 
  Andrew Scott  ...   Jim Moriarty (4 episodes, 2010-2012) 
  Vinette Robinson  ...   Sgt Sally Donovan (3 episodes, 2010-2012) 
  Tanya Moodie  ...   Ella (3 episodes, 2010-2012) 
  Jonathan Aris  ...   Anderson (3 episodes, 2010-2012) 
 
Country:UK
Language:English
Filming Locations:North Gower Street, London, England, UK
 
Production Companies
•Hartswood Films
•BBC Wales (for)
•Masterpiece Theatre (as Masterpiece) (in co-production with)
 
Runtime:90 min
Sound Mix:Dolby Digital
Color:Color
Aspect Ratio:1.78 : 1
 
http://www.johnwatsonblog.co.uk/
(존 왓슨 블로그)
 
http://twitter.com/WatsonJW
(존 왓슨 트윗-팬이 운영한답니다)
 
http://twitter.com/SherlockSH
(셜록 홈즈 트윗-팬이 운영한답니다)

 

리뷰는 셜록 시즌 2 링크이며 유튜브 영상은 시즌 1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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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2-0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에서 읽으면서 홈즈에 대한 각인이 머리 속에 너무나 강하게 찍혀버렸는지,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영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저 정도로는 안돼...' 이러면서요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경우엔 만족스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더 심했어요.
앞으로 또 어떤 버젼의 홈즈가 나올까요. 기대가 되기도 하고, 별로 기대가 안되기도 하고, 그렇네요.
그러고 보면 영국 사람들은 홈즈를 비롯해서 추리물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영화뿐 아니라 먼저 TV 드라마부터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요. 말씀하신 것처럼 방영 시간도 꼭 매니아 층만 볼만한 시간대도 아니고 말이지요. mysterious한 성향을 반영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열심히 쓰신 페이퍼를 읽고 나면 저는 한동안 글 올리기가 망설여집니다 ㅠㅠ)

Jeanne_Hebuterne 2013-02-06 08:03   좋아요 0 | URL
온갖 종류의 홈즈를 다 보았는데 저의 경우 가장 최악은 루시 리우가 왓슨 역을 맡은 미국 버전이었어요. 슬쩍 보아도 (물론 수많은 셜로키언들과 홈시언들은 왓슨이 여자였을 수도 있다지만) 적응이 안되었어요. 물론 그 시리즈를 보기 전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이 최악이었습니다. 홈즈의 액션을 부각시키려 한 점은 알겠지만(원작에서 취미로 권투를 했지요) 그는 액션 영웅이 아니라 추리 탐정이니까요! 뇌가 근육보다 섹시한 남자에게 뭐하는 짓인가 탄식만 절로 했더랬습니다. 전부 다 만족스럽지가 못했어요.

영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애니팡과 차차차에 미쳐들듯 자국의 문화유산 시리즈에 탐닉하는 경향이 강한 듯 합니다. 물론 한국인이 무엇에 스미는 그 정도보다 꽤 은근히 지속된다는 점이 다릅니다만, 그들이 무인도에 가져갈 책 1위로 오만과 편견을 꼽았다는 것과 셜록 홈즈의 수많은 개정판을 만들어내는 것만 보아도 그래요.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영국의 성공한 시리즈를 건들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일하는 시간 일하기 싫다는 열정을 셜록 덕후질로 보내다 보니 이렇게 주절주절 리뷰가 양산되었습니다. 너무 놀고 싶어서요 ㅜㅜ)

다크아이즈 2013-02-0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뷔테른님, 전 셜록 홈즈 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글에 뭔가 코멘트를 남기기는 힘들어요. 다만 님의 글쓰기 방식에 언제나 감탄하기 때문에 추천만 날리고 갑니다. 이 많은 추천 수도 저 같은 맘으로 날리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짐작이...
그나저나 일 할 시간에 눈치껏 이런 고급한 리뷰를 올릴 수 있는 님의 내공에게도 찬사를^^*

Jeanne_Hebuterne 2013-02-06 13:43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이렇게 칭찬해주시니 너무 좋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팜므느와르님의 칭찬은 제 부족한 부분을 좀 더 돌아보게 하는 힘까지 지녔어요.
사실 일 말고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고(=놀고 싶었고), 그와중에 최근 DVD로 홀로 시청한 셜록이 아른거려서 저야말로 팬심으로 쓴 리뷰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지금도 업무시간이군요!)
내일은 더 추워진대요. 옷 두껍게 입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