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당신의 무렵.


 그래도 9월이라서 하늘은 구름을 경작하고.

 9월이라서 오늘은, 9라는 이름을 생각합니다.


 그건 마치

 세상을 향해 나올 준비를 마친 아홉 달 태아를 닮았지요.

 10에서 하나 모자란 수라기 보다 

 완성을 향해 가는 가능태.

 미완의 아름다움이 9에는 있습니다.


9로 말하자면 '무렵'이라는 말에 가까운 수죠. 

그러고 보니 9월은 '메밀꽃 필 무렵'입니다.


 9월은 또 여름과 가을의 사이라서

 이 세상의 무수한 '사이'에 대해 생각합니다.

 밤과 아침의 사이, 벽과 벽의 사이,

 당신과 나의 사이......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여름과 가을, 계절의 이 '사이'를 간절기라고도 부르지요. 

 '간절'이라는 말에는 어쩐지 

 건너가려고 하는 간절함이 배어있는 것 같은데요.

 당신에게 건너가려고 합니다.

 이 절룩이는 말들이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은 접속사 같았으면 합니다.


-허은실,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잠을 자다 무언가 편치 않아서 깨는 때가 많다. 아니, 무언가 편해서 깨는지도 모른다. 

 그저 눈을 번쩍 떴다가 다시 잠들기를 한밤에 너덧 번. 이것이 코골이의 흔적인가 싶어 어쩌다 친구나 가족과 같이 잠을 잘 때면 물어보곤 했는데, 늘 그러지는 않는단다. 한 달에 두어 번, 몸이 지독히 녹진 거릴 때만 그런다니 세계 2차 대전 가스실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들어가야 하는 독일군들이 쓸법한 마스크는 쓰지 않아도 될 일. 그러나 늘 잠을 자다 깼을 때 내 옆의 공기가 생경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럴 때면 침대 아래를 슬쩍 내려다본다. 호랑이 무늬 고양이 칼리가 침대 아래에서 조용히 잠을 자고 있다. 고양이들도 잠을 자는 한밤, 뭔가 불편하다. 그럴 때면 조용히 마룻바닥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창밖을 내다본다. 반짝거리는 불빛이 반딧불이처럼 느껴지면 종종 발목에 고양이가 살갑게 꼬리를 슬쩍 스치며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스탠드 불 하나를 켜놓고 책을 읽거나, 작은 소리로 음악을 듣거나 하다 보면 더러는 잠이 오기도 한다. 잠이 온다는 경상도 말투를 나는 참 좋아한다. 어떻게 그것이 내게로 오는 것일까. 

 어릴 적 읽은 커다란 계몽사 동화책에서는 잠의 요정을 찾아 달걀 모양 기구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박사가 나왔는데, 나의 달걀 모양 기구는 책이나 음악인 셈이다. 조용한 소리도 너무 크고 큰 소리는 더욱 조용한 불빛 같은 밤. 






 

 


 허은실 작가의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이 책에 관해 좋은 말, 싫은 말이 많이 생각난다. 이렇게 쉽게 스미는 감성을 지녔다니. 우리 말을 이렇게나 예쁘고 곱게 쓸 수 있다니. 긴 이야기를 짧게 풀어내는 시인의 글씨가 참 부러웠다. 

 그러나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 이렇게 책을 쏟아내는 것에 있어서는 아직 그 성과를 가늠하기가 힘들다는 쪽에 슬쩍 손을 들어 본다. 그것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십만 원짜리 DVD로 풀렸을 때 느꼈던 그런 종류의 마음이었다. 그에 반해 일종의 하드코어 방송을 진행하는 김영하 작가의 경우, 그래. 그 양반 팟캐스트는 설마 오디오북으로 팔리진 않겠지. 정도의 생각을 하는 데서 그쳤달까.





뒤에서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귀지 파주는 것을 좋아한다. 고양이의 관능과 무심함을 좋아한다. 무신경하고 무성의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슬픔과 리듬을 믿는다. 꽃보다 나무, 서슴서슴한 사귐을 좋아한다. 영롱보다 몽롱. 미신을 좋아한다. 집필 오르가슴을 느낄 때 충만하고 잎사귀를 들여다볼 때 평화롭다. 한 생은 나무로 살 것이다. 병이 될 만큼 과민한 탓에 생활의 불편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의 예민함은 스크래치 기법의 뾰족한 칼끝 같은 것이라고. 그것으로 검은 장막처럼 칠해진 어둠을 긁어내는 것이라고 우기며 위로한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지 않지만 상상하려 애써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애쓰는 일로 절반의 삶을 쓰고 싶다. -책 앞날개, 작가소개 글에서.



 


 구부정한 당신의 등, 뒤척이는 밤들, 간신히 있는 것들에게 보내는 이 오프닝. 펼치면 나타나는 앞선 글 중에는 9월에 바치는 글이 있다. 10에서 하나 모자란 수, 무렵으로 존재하는 달. 여름과 가을의 사이. 무수한 '사이'의 글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일은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그 서슴서슴한 말 앞에서는, '그래, 이 사이 당신은 오데를 갈라고 여기에 섰나' 하는 민요의 한 자락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다가 창밖 너머 달님을 본다. 얼마 전 추석 이후 이제 기울어갈 달님. 은희경의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달을 보지 않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 가는 것을 알지?'라고 말했더랬다. 일본 소설 '종이달'에서 달은 늘 초승달. 앞으로 부풀어가고 점점 차오를 그 가짜 달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순간을 남기곤 했다. 그렇다면 지금, 추석도 지나 슈퍼 문이라는 정말 대단해 보이는 그 이름도 지나 보기만 해도 눈이 시리던 그 달이 지금의 이 달과 다를 것은 무엇일까.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하지요? 이상하게 당신과 있으니 이렇게 되어요. 당신에게 말하지 않는 일은 이상하게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 종이달을 지나왔다 생각하는 이가 떠오른다. 구부정한 등, 그의 뒤척이는 밤. 그가 간신히 보아온 것들에게 바쳤던 헌사. 

 이렇게 말하며 비밀을, 과거의 일을, 기억과 추억과 악몽과 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날 그와 나 사이에는 매콤한 호박 맛이 나는 커피가 놓여 있었다. 추출은 더디고 손길은 바쁘다. 단어는 쉴 새 없이 떨어지고 말들은 물결을 이룬다. 그 비밀과 거짓말 앞에서 나는 좀 숨이 가빴던 것도 같다. 언젠가 시차가 적응 안 되어 며칠 잠을 못 잔 상태에서 꽤 무거운 스웨이드 코트를 입어보며 한숨을 내쉬던 때처럼. 비밀은 늘 발성하는 그 순간 가벼워지고 과거는 생각하는 순간 가장 에로틱한 곳으로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젠 누가 내게 비밀을 말해주겠다 하면 말하지 말라고, 혼자 간직하는 편이 더 빛날 거라고 말하는 나이가 되었다. 





 "말하고 싶으면 말해요. 들어줄게요."


속에도 없는 말을 한 대가로 온종일 낱말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결국 허기가 느껴진 그 날은 찬장에서 컵라면을 꺼내 조용히 끓는 물을 붓고 3분을 기다렸다. 이걸 못 기다려서 면이 익었나 확인해보던 날이 있었고 자판기 종이컵을 빼낼 타이밍을 보느라 허리를 숙이고 기웃거리고, 시간 아끼느라 화장실도 못 가던 때가 있었는데...이젠 아주 여유롭게 노래 하나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허기를 달래려 기다린다. 

 그와 나 사이. 컵라면과 나 사이. 그 많은 낱말을 겪고 난 다음, 그는 나와 더 가까워졌다며 안도 어린 표정을 지었다만 나는 왜 컵라면이 더 좋았던 걸까. 매콤하고 단 맛이 어우러진 묘한 커피를 자학의 심정으로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비밀을 건네는 자의 마음은 늘 종이달을 지나간 자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한 사람의 가장 아름다웠던 한때. 단어와 낱말, 목소리와 내음, 그림자와 소나기가 지나가는 그런 풍경. 

 나는 사람들이 슈퍼문이라 부르는 달의 앞면과 내가 그 날 들은 달의 뒷면을 조용히 맞대어 본다. 밤은 흐른다. 어쩌면 몰랐어도 좋았을 뒷면. 그러나 뒷면 없이 있을 수 없는 달의 앞모습. 달도, 그 사람도, 파니 핑크의 오르페오도 다 한통 속. '어쩜 남들은 다 아는데 너만 몰랐어. 어떻게 거길 안 가볼 수가 있니.'라고 말하는, 인생의 어둡고 그럴싸한 공간을 스쳐 지나온 이들의 속삭임. 





 나는 아직 멀었다. 

 9월, 달빛이 밝아 어둠 속에 눈이 부시다. 

 종이달은 아직 멀었다고 달님이 조용히 말해 주었으면. 









How come I'm so alone there?


How come you never go there?


How come I'm so alone there?


I went up to a window
Lightning banging on the cymbals
I ripped into the night
Came storm into your eyes



My horse had worked the fields too long
My bear had lost its innate calm
It's true enough we're not at peace
But peace is never what it seems



Our love is not the light it was
When I walk inside the dark I'm calm
Where we look for where we went
It's only echoes in the melody



How come you never go there?
How come I'm so alone there?

How come you never go there?
How come I'm so alone there?



We waste time on blame and weak revenge
Waste energy and projections
We're living proof, we gotta let go
And stop looking through the halo



We carry on as if our time is through
You carry on as if I don't love you
And so we find the way is out
To cut the heart out of the doubt now



The room's full but hearts are empty
Like the letters never sent me
Words are like a lasso
You're an instrumental tune



How come you never go there?
How come I'm so alone there?

How come you never go there?
How come I'm so alone there?


-feist, 'how come you never go there?'-metals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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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30 17: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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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1 1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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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30 2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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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1 17: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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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1 2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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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4 0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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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2 2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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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4 07: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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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5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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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7 1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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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스포일러 있음.
































시간은 흘렀고, 엔터테이너는 예술가가 되었고 그때의 소녀는 색정광이 되었습니다. 자, 이제 총소리가 들렸으니 웃음을 지을 차례입니다. 그것은 귀찮아서 하지 않으려다 끝내 졸라서 하고야 마는 사정 같은 흔적에 불과하니까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를 보는 일은 늘 도식적일지언정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도그마 선언은 20년 전에 이루어졌고 이제는 원더키드가 그리던 그해가 되었으니 옛일 곱씹는 노인 같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화면을 응시하는 일만 남았어요. 모름지기 비평은 원작의 뒤꿈치를 조용히 따라가는 일. 감상은 작가의 눈을 응시하는 일. 말하지 않음으로써 의견을 말한다는 요즘 애들 사이에서 유난히 늙어버린 눈매를 드러내며 그러나 웃을 때도 종종 있어야겠지? 하고 계산한 듯한 라스 폰 트리에의 스산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네, 당신과 함께 혹은 당신 없이. 안티 크라이스트(2009), 멜랑콜리아(2011), 님포매니악을 라스 폰 트리에의 우울증 3부작이라고 부릅니다만 님포매니악을 그 안에 넣을 수 있을까...... 좀 망설여집니다. 형벌 3부작. 섹스 트리오. 안티 크라이스트 3 명. 그 사이 교집합은 여자입니다. 





 라스 폰 트리에는 늘 빛과 그림자, 현상과 그림자, 깊이와 그림자, 상징과 그림자를 넣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것에 꼭 그림자가 들어가는 라스 폰 트리에의 도식이 재미있어요. 그는 늘 대립 항을 혼란스럽게 하고 상징을 끼워 넣고 은유에 방점을 찍으며 태양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닌 태양 속의 존재로서의 그림자를 이야기합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지? 왜 간첩을 잡아야 해? 왜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하지? 아마 한국에서 그가 유년을 보냈다면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해서 이루지 못하는 목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차례로 익사시킨다며 숫자를 곳곳에 숨겨놓는 피터 그리너웨이와도 그다지 사이가 좋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목표와 생각을 없애버리려고 작정한 사람 같습니다. 이것이 그의 '영화'를 여는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흑점으로서의 그림자는 안티 크라이스트에서는 부모의 섹스 앞에서 떨어져 죽는 아이의 얼굴에 서린 기묘한 미소로 나타납니다. 멜랑콜리아에서는 지구 종말에 앞서 이별을 고하면서 남편이 아내에게 말합니다. '좋게 끝낼 수도 있었는데.' 전자를 보면서는 그 섬뜩함의 정체를 알 수 없어 마음이 멈추었고 후자를 보면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딸꾹질을 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정사 도중 침대에서 나와 베란다로 갑니다. 가는 도중 부모의 정사를 보고(화면은 움직입니다), 눈길을 돌립니다. 아기의 것이 아닌 기분나쁜 미소의 숏이 나옵니다. 이 때 진실은 알 수 없는 침몰한 배와 같이 밝힐 수 있으나 밝히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지와 도식, 은유의 삼위일체를 라스 폰 트리에는 무간도처럼 펼칩니다. 아이의 미소를 읽으려 애쓰는 순간, 님포매니악의 조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너무 상투적이어서 당신 주장에 반박해야 직성이 좀 풀릴 것 같은데 너무 피곤하네요."











 '좋게 끝낼 수도 있었는데'라는 대사 또한 그렇습니다. 지구가 곧 멸망합니다. 과학을 신봉하는 남편이 온갖 대처를 하다 도망치고 자식을 생각하며 절망에 빠지는 아내가 림보에 갇히지만 정작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행성 멜랑콜리아와도 성교를 나눌 수 있는 저스틴만은 의연합니다. 넘치는 노란빛과 푸른빛의 향연 속에서 저스틴은 조용히 말합니다. '지구는 사악해. 우리는 그를 위해 슬퍼할 필요가 없어.' 영화의 마지막은 넘치도록 다가오는 행성 멜랑콜리아와 지구의 키스입니다. 그것을 거대한 종말이라고 보아야 할지 출구라고 해야 할지를 판단하려면 그다음 장면이 나와야 했을테지만 라스 폰 트리에는 다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선과 생명이 사라지고 판단과 가치가 소멸하는 순간. 당연하게도 그 뒤의 시점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후'는 없습니다. '완전히 알든가, 아예 모르든가! 중간 따위 없어요!'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일례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저스틴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만이 멜랑콜리아에서는 온전해 보입니다. 비평과 평론은 모든 것을 알 수도, 아무 것도 모를 수도 없다는 점을 떠올려 봅니다. 멜랑콜리아의 얽히고섥킨 쇼트은 해석에의 비웃음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작품 님포매니악은 어떨까요. 일단 님포매니악은 제목과 달리 색정광 조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실패한 무식쟁이 셀리그만의 이야기입니다. 온갖 것을 다 알며 친절하게 평을 붙이고 이해해주며 재워주고 집어넣으려 하는 셀리그만이 왜 실패한 무식쟁이란 말인가? 오히려 쓰러져 있는 사람 구해왔더니 색정광인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한 번 하자고 들이밀었더니 총을 쏘는 조에가 더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실패한 평론가에 보내는 조소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거친 밤 쓰러진 조에를 셀리그만은 부축해 옵니다. 그의 온갖 성 편력기를 다 들은 셀리그만은 예의 바르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사라지는듯싶더니 다시 돌아옵니다. 조에는 온갖 남자와 다 잠을 자본 색정광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자신의 성적 편력에 관련한 것입니다. 셀리그만은 성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며 지식인, 교양인, 책벌레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몇 시간에 걸쳐 온갖 형상의 성기를 다 구경하기 때문에 이 순간 셀리그만의 발기도 되지 않은 성기를 아무 생각 없이 넘기기는 좀 어렵습니다. 안된다는 조에의 목소리, 무지 화면, '너는 수천 명이랑 섹스했잖아!', 무지 화면, 총소리, 자리를 뜨는 발소리. 죽은 것은 발기도 안 되는 성기를 들이밀다 총 맞아 죽은 늙은 남자 지식인. 아, 한심해서 눈물이......








 


 네, 저는 앞서 '한심해서 눈물이......'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가 슬픈 것은 발기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해석을 갖다 대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신호라고 생각하고 온갖 평론을 들이밀기 때문입니다. 아주 엄청난 성적 표현이 아닌 심술궂은 유머를 시도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본질입니다. 조에는 '사람을 죽이는 게 어렵다지만 내 생각에는 안 죽이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말을 할  때는, 그리고 그 말이 미래와 과거 시제를 아우르며 나왔을 때는 좀 더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대신 셀리그만은 기제, 프로이트, 휴머니즘, 체계 따위를 포장하여 해석합니다. 너무 상투적이어서 반박하고는 싶지만, 지금은 피곤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조심해야 했습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평론가 앞에 라스 폰 트리에는 이렇게 유머로 답하는 듯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고 온갖 용어 뒤에 숨는다 이거지. 그럼 좀 귀찮긴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한 방 쏴줄 테니까 이제 그만하고 이야기나 좀 똑바로 들어.' 물론, 트뤼포처럼 '평론가 따위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라는 말에 관한 반박으로 아주 훌륭하게 영화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트리에처럼 지질한 남자 성기로 유머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감독과 평론의 이 묘한 관계를 보면 '안 죽이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조에의 말이 더 절묘하게 들립니다.





크기와 촉감, 소리와 만족도. 무엇보다도 크고 아름답고 단단하게 일생에 걸쳐 자신을 증명하는 일은 피곤하기 짝이 없지만 태어난 이상,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를 일. 여기서 잠깐,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어떻겠습니까. 스케일과 조명 활용, 이펙트와 완성도. 이 남성성이 영화의 성질로 대치될 때 관객은 이 뻔한 섹스에 희열을, 평론가는 이 스크린 속 모든 도구가 자신을 향해 비웃음의 윙크를 보내는 것을 느낍니다. 이 영화까지 찾아본 관객들은 이미 아기가 베란다에서 추락사하고 자기 음핵을 가위로 자르는 여자도 봤고(안티 크라이스트), 지구가 마지막을 맞는 장면(멜랑콜리아)까지도 보았습니다. 더는 아름다움은 없는 '님포매니악'은 두 전작에 비해서는 파행성이 덜합니다. 셀리그만의 이성과 과학, 지식으로 조에의 색정증과 비이성을 치료하려는 시도 자체가 뻔하니까요. 라스 폰 트리에의 이 '우울증 3부작'은 적그리스도, 우울증, 신성모독, 불경스러움, 자기파괴를 거쳐 이렇게 뒤틀린 유머로 끝을 맺습니다. 물론, 이 유머라는 것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쓴웃음을 남깁니다만. 

 이 삼부작을 보고 난 후,'1Q84'의 남자가 남긴 말이 떠올랐습니다. '설명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설명해줘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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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8-2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은데 뭔가 엄두가 안나는 영화들이네요.
한국어판도 있는건지 우선 검색부터....


Jeanne_Hebuterne 2015-08-26 15:14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어지간하면 안보시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요. 제 지론인데 한국에 김기덕이 있다면 외국엔 라스 폰 트리에가 있다는....님포매니악은 함께 보던 남자가 으억, 하는 비명을 지르며 화면을 꺼버리더라고요. 정말 진심으로 다는 댓글인데요, 어지간하면 보지 마셔요.......

yamoo 2015-08-30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님포매니악의 그 감독이군요! 전 괜찮게 봤습니다만, 찾아서 보게 되는 감독은 아닌 거 같아요. 근데, 진 님의 페이퍼를 보면 한 번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요~
한 번 보고 말겠어요!ㅎ

Jeanne_Hebuterne 2015-08-31 12:52   좋아요 0 | URL
안돼요 안돼요 야무님 복세편살이란 말도 있는데 굳이 저런 걸 찾아봤다가 꿈자리 뒤숭숭해지고..안됩니다. 도그빌 때 까지만 해도 좀 성격이 쎈 엔터테이너 정도로 생각했어요. 니콜 키드만이랑은 둘이 숲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싸우고, 뷰욕은 두번다시 같이 작업안하겠다고 착취한다고까지 말하고..의외로 샬롯 갱스부르와 괜찮게 작업했나봐요. 음...근데 굳이 보시겠다면 님포매니악은 안보셔도 될 것 같기도 해요. 에디팅 작업에 아예 참여도 안했다고 그러고, 찍기만 하고 후반 작업은 아예 손놔버렸다니 라스 폰 트리에의 뜻이 끝까지 반영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멜랑콜리아가 그래도 이 셋 중에 가장 괜찮았어요. 굳이 꼭 보셔야 한다면 그나마 멜랑콜리아를 권해드려요. 영화 초입은 정말 우아하기까지 하거든요!
 


'이도 저도 아니다.' 혼란스럽고 못 올 데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우리 할머니가 쓰는 말이었다. 비행기는 내게 그런 것이었다. 예전에는 하늘에 열네 시간을 떠 있는 동안 내내 샤샤 생각만 하거나 멋진 몸매로 인기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는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긴 시간을 채워 줄 게 아무것도 없으니 진한 크림 맛이 느껴지는 리큐어만 홀짝일 수밖에 없었다. 엘에이도 아니고 멜버른도 아니고, 이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도 아니고, 유명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명도 아니었다. 뚱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날씬하지도 않다. 확실히 성공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패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내 디스크맨에서 너바나의 희귀곡이 흘러나왔다. 커트 코베인이나 나나 엉뚱한 곳에서, 이해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이도 저도 아닌' 신세였다. 커트 코메인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었다. 살아 있을 때도 죽은 후에도 그렇다. '자살을 하면 행복해 질지도 몰라' 라는 가사를 들으니, 자살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더는 이런 끔찍한 경주를 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폭삭 늙어 버리거나 죽을 때가 다 되면 새 시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표지 모델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어쩌면 성공항 배울, 스타로 사람들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절호의 기회를 잡고도 그걸 살리지 못했다. 모든 면에서 남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려고 자신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주다 보니 내 인생은 끝없이 이어지는 장애물 경주가 되어 버렸다. 허들을 뛰어넘으며 허덕허덕 50년을 보내리라는 생각을 하니, 그 경주를 바로 내가 해야 할 거라고 생각을 하니 또 베일리 생각이 났다.







 머릿속이 꼭 수챗구멍같을 때가 있다. 이게 잘하는 일인가, 뒤돌아보게 되거나 하루 종일 햇빛을 받으며 가만히 앉아있는 날들. 날 선 말에 맞받아칠 기운마저 내려놓게 되는 날. 전의를 다지지도, 생각을 정리하지도 않는 날. 바빠야 할 때인데,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괜찮다며 '낭낭하게' 있을 때. 누군가는 욕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자유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살아있다는 건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동네 뒷산을 백 번 정도 오르는 일이라 했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종종 이도 저도 아닌 걸까, 생각하다 읽은 책.





 계속 포샤 드 로시의 사진을 보게 된다. 이 금발과 이 매력적인 눈매의 여자가 써내려간 고백은 거식과 폭식, 성적 주체성과 배우로서의 자괴감과 성취감을 오락가락하지만 사실 읽는 내도록 그가 걱정되지는 않았다. 너무나도 생생하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전달하지도 않고, 옛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지도 않는다. 체념과 머뭇거림도 없다. 오히려 이 책을 가득 채우는 것은 넘칠듯한 강박의 에너지다. 그 에너지가 강렬해서 오히려 젊음이 빛난다. 살을 빼야 한다. 먹어서는 안 된다. 달려야 한다. 더 작은 사이즈를 입어야 한다. 여기에서 그녀의 강박감이 드러난다. 그 관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도 파괴적이고 지배적이어서 그녀는 마침내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마저 한다. 그 절망 속에서 오히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을 때' 마침내 생리가 멈추고, 골다공증 진단을 받고, 관절 통증으로 담배를 피우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마저 힘들어질 때 찾아오는 것이 바로 폭식이다. 거식과 폭식은 마치 나쁜 남자 같아서, 그는 자신을 어르고 달래고 혐오하는 광경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면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거식증 없는 폭식증은 본 적 있어도 폭식 없는 거식증은 본 적 없다. 구토 없는 거식증은 더더욱. 손등에 이빨 자국(토할 때 목구멍 깊숙이 손가락을 넣어야 하는데 이때 손등에 윗니가 닿는다), 멈추는 생리, 빠지는 머리카락. 





 무엇 하나에 매달리지 않고는 숨 쉴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조경란은 '백화점'에서 카드를 긁는 그 찰나의 순간 없이는 살기 힘든 순간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캐롤라인 냅은 친구를 만나기 전 먼저 한 잔 더 하려고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 일찍 약속장소에 나가 있었다는 말을 한다. J는, 한 병을 마시면 한 박스를 다 마셔야만 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모든 걸 다 해보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들에 비하면 극단적이지 못했다.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기에는, 그래도 이루어야 할 것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알량한 핑계지만 그것 역시 자랑의 일종일 것이다. 불행의 비교. 포샤 드 로시, 조경란, 캐롤라인 냅, J, 그리고 나, 이 다섯 명이 서로의 불행을 자랑한다면 누가 이길지를 상상해 본다. 자기 제어의 측면에서는 포샤 드 로시가 이긴다. 거식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칠듯한 자기 제어, 온종일 칼로리만 생각해도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의 강박 없이는 불가능하다. 성취 욕구 측면에서는 누가 이길지 쉽사리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취는 행복일까 불행일까. 1Q84에서 하루키는 '누구든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야.'라고 했더랬다. 하루키 선생의 저 문장이라면 나야말로 부동의 1위. 그러나 1위와 2위, 3위를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라고 불러도 된다면) 우리 다섯 명은 그 강박의 세계 속에서 누구보다도 생생한 삶을 살고 있었다. 





 사는 것이 무엇일까. 행복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생활을 보내는 것이라고 누가 말한다면, 나는 그것이 내겐 반쪽짜리 인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불행이라는 낱말을 뜯어보면, 그것은 단지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행복 본위의 사고가 나는 두렵다. 그것이 정반합 중 합의 상태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성춘향이 괜히 변 사또의 이것을 주랴, 저것을 주랴 하는 말에 '아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라고 말했겠는가. 희로애락에 셋을 더 붙여 칠 정을 느끼는 삶. 자신을 온전히 느끼고 계속 질문하는 삶. 

 그리하여 아주 찰나 떠오르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을 얻는 삶. 제대로 된 결핍을 선택하고 제대로 그 공간을 메우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떨까. 체중계가 40을 찍었을 때, 수입에 비해  지나친 소비를 매일같이 할 때, 술과 수면제를 동시복용할 때에는 그 여자는 너무 바빴다. 종일 음식 생각만 했다. 먹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었다.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때에는 사고 싶지도 않았던 물건을 사들였다. 죄책감에 상표를 그대로 붙여둔 옷과 가방, 구두가 쌓였다. 그다음엔 정신을 잃는 일만 남았을 뿐. 그리고 당시 온갖 정신 나간 실수를 하면서도 결정적인 실수는 하지 않는 상태.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본인 자체가 문제였으니까. 





 지금 그러지 않는 것은 그럴만한 기력이 없기 때문이다. 포샤 드 로시의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그가 당시 얼마나 젊고 또 젊었던가, 하는 것이다. 앨리 맥빌을 찍으러 갔는데 스커트가 꽉 낀다. 운전하려고 앉았더니 뱃살이 접힌다. 로레알 광고를 찍으러 가서는 그 어떤 옷도 맞지 않는 수모를 당하면서, 그는 하루에 1000 칼로리 이하로 섭취하며 죽도록 달린다. 비행기에 타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이 강박적인 거식의 이면에서, 그는 내도록 사랑받고 싶음을, 인정받고 싶음을 말한다. 뱃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책망한다. 39 킬로그램까지 살을 빼고 자랑스러워 한다. '다이어트 지옥에서 탈출한 스타들!'이라는 기사 사진으로 등장하면서 꿈속에서 다이어트 콜라가 아닌 그냥 콜라를 마신다. 그가 정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은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이었다.





울며불며 뱃살 생각만 하다가 그만 촬영을 위해 쓰기로 한 로레알 제품이 아니라 다른 싸구려 샴푸를 써 버렸다. 큰일이다. 눈은 퉁퉁 부었지, 똥배는 툭 튀어나왔지, 머리는 짚단인데 이 꼴로 촬영장에 가게 생겼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로레알 샴푸 신제품을 광고하기로 한 모델이 로레알의 광고 문구를 믿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엉뚱한 샴푸를 쓴 건 아닐까? '나는 소중하니까요'라는 그 유명한 카피 말이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거울로 턱에 난 뾰루지를 보면서, 세상에 대고 자기들은 소중하다고 외치는 지난 로레알 모델들의 말투를 큰 소리로 흉내 내어 보았다. 광고에 나오는 꼭 그런 투로. 좀 웃겼다. 나는 집안을 걸어 다니며 계속 말했다.

 "나는 소중하지 않으니까요." 예쁜 속옷을 찾아보았지만 서랍장에는 보기 싫고 늘어난 속옷밖에 없었다. 촬영을 앞두고 예쁜 속옷을 사 놓을 생각도 안 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소중하지 않으니까요." 중얼거리면서 블랙커피를 마셨다. 아주 날신해서 크림을 듬뿍, 마음껏 타서 마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블랙커피가 너무 진해서 썩은 행주 냄새가 났고 혀도 얼얼했다. 아침은 건너뛰자. 나는 소중하지 않으니까. 





 이 자학의 유머를 보면 오히려 그가 자기 자신을 지금은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진다. 그의 글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내려놓음이 보이지 않는다. 종종 인생의 모든 것이 회색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눈빛을 한 이들의 말을 듣노라면, 그들이 전하는 말에서는 그 어떤 종류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회색이었고, 회색이며, 회색일 것이라는 그 어두운 괴로움 앞에서는 지나간 고통의 시간조차 회색이다. 이때 그들이 전하는 것이 무채색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간을 공간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 또한 그렇다. 포샤 드 로시 역시 그렇다. 어떤 공간에 머무르는가. 어떤 공간에 있어야만 하는가. 어떠한 공간에 머무르는가에 따라서 자신의 성격이 결정된다는 그 압도적 실수. 그리하여 그것이 그 사람의 직업, 상황, 정체성마저 결정짓게 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 우리는 공간이 아닌 시간을 살아내는 사람이 아니던가. 총량이 아닌 결정적 순간을 나는 이해하고 싶었다. 그 시간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고 내가 무엇을 포기하거나 얻을 수 있을지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서 햇빛 아래 미동 없이 앉아있는다. 핸드폰은 방해금지 모드. 음악 없는 적막함. 꿈을 기억하는 얕은 잠. 답을 남기지 않는 작별, 응답하지 않는 이메일, 들추어본 남의 연애편지 같은 속내. 바람은 세차게, 햇볕은 강렬하게. 내가 말하는 그 어떤 것도 진짜이기 힘들 때는 가만히 그리고 멍청히 앉아있는 것이 차선일지도 모른다. 의도를 감춘 채 원하는 바를 상대를 통해 이루려는 것이 수사학이라면, 나는 참으로 눈치가 없는 사람이므로. 이 눈치 없음으로 나 스스로 계속 질문을 해본다. 달의 반대편을 다 보고도 무사히 건너올 수 있을까? 이미 나는 한 가지 중독에서 헤어날 길 없으니, 더는 강박에 쏟을 힘이 남아있지 않다. 이런 나 같은 인간이 다시 강박에 빠져든다는 것은 자폭과 다름없으니, 이제 다시 묻는다. 잘할 수 있을까? 포샤 드 로시가 이 책 내내 깔고 있는 이 질문은 당위가 아닌 존재이다. 확신을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여배우의 폭식증과 거식증 이야기인데, 읽고 나면 그것이 체중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해주는 책.

 당신을 닮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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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7-23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경란의 백화점 읽어 보고 싶어요. 감사해요.

Jeanne_Hebuterne 2015-07-24 13:55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
조경란 작가의 책은 사람에 따라 호오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 같더라고요(배수아 만큼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호`쪽이고, 백화점은 픽션이 아닌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관한 층별 탐구여요. 읽고나면 그 거대한 공간이 담은 사람 이야기가 들어오는 책이랍니다. 몬스터 님의 감상이 궁금해집니다 ^^
 

D.H.로렌스는 타오스 푸에블로에서 어딘가에 도달한 느낌, "어떤 최종적인" 느낌을 경험했다고 한다. 어떤 장소들은 지구상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처럼만 보이는데, 타오스는 "옹이처럼" 단단히 자리잡은 느낌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곳 렙티스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내 발로 들어간 어떤 장소가 아니라, 과거의 꿈의 공간이었다. 나는 '구역' 안에 있었던 것이다. '구역' 안에 있을 때는 다른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다. '구역'안에 있을 때는 다른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다. '구역'이 아닌 곳에 있을 때는 늘 어딘가 다른 곳, '구역'에 가기를 소망한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제프 다이어




 



 아니, 제프 다이어는 물리적인 공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책의 모든 폐허는 궁극적으로 그 자신이었다. 그것은 고대와 현대, 전쟁과 평화를 아우르는 한 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 사람의 마음이란 참 불가사의하다. 언제 어떤 움직임의 바람이 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니까. 






 여행기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줄 거라는 환상은 도로시의 작은 구두 뒷굽 소리만큼이나 황량한 것이 되었다. 우디 알렌이 언젠가 속독법으로 전쟁과 평화를 읽은 다음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났다.'라고 줄거리를 요약한 것과 같이 결국, 여행기도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난 것 이상이 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좀처럼 가기 힘든 장소를, 혹은 아무 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기를, 또는 이렇게 자기 마음 속을 향하는 시선(제프 다이어)을 읽게 되는 것이다. 막상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나는 풍경 사진도, 인증샷도 찍지 않는다. 음식 사진을 찍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빈 접시만 눈앞에 있을 뿐이며 호텔 사진 한 번 찍어볼까 생각할 때 즈음엔 방은 이미 룸서비스가 필요한 바로 그 순간이다. 그러므로 내가 카메라 중의 카메라 아이폰을 들이미는 순간은 





1.증거가 필요해서(이를테면 결혼식장 증거사진같은 하객사진처럼)

2.마음이 너무 격해진 나머지 진정시키느라

3.그 풍경을 꼭 보여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서.

4.그 풍경을 함께 기억해줄 사람이 옆에 없을 때.





1의 경우 평소 참되게 살았다 생각했건만 내가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않는 이에게 증거 사진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서였다. '아니, 내가 지금 튕기는 게 아니고 정말 뉴욕에 있다니까요.'

2의 경우는 내가 내 눈으로도 그 장소에 있다는 걸 못 믿을 때였는데 막상 공항으로 향하는 시티의 택시 안에서 그 사진을 찍었을 때는 이미 때가 많이 늦었다.

 3의 경우는 주로 술을 마시거나 호텔의 룸서비스를 혼자 느긋하게 시킬 때. 새벽 세 시의 술집, 오전 10시 대륙의 아침식사가 주를 이루었더랬다. 그리고 4는, 








4는 내 마음이 텅 비기 삼 초 직전. 내가 가까이하는 누군가가 있을 때는 오히려 사진을 잘 찍지 않았다. 그저 그럴 때는 '지금 참 좋아. 나,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할 거야.'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든다. 그런 다음 몇 달이 지나 그에게 다시 물어본다. 우리가 같이




나란히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셨던 이른 저녁을

한밤의 센트럴 파크를 내려다보았던 때를

광화문 어딘가에서 늦은 아침, 선물받은 새 구두를 신고 좋아서 팔짝 뛰어올랐던 때를 

부산, 해운대 검은 밤바다를 바라보던 때를




기억하는지를 물어보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그런 순간이 365일 24시간 계속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365일 365개의 그림자가 다 다른데, 그 순간은 아주 찰나일 뿐이다. 사람이 옆에 있어도 늘 같지 않고 풍경이 늘 머물러도 늘 반복되지 않으니까. 우리는 어제의 강물에 발을 다시 담글 수 없고 깨진 거울을 붙일 수도 없다. 내 모든 사진이 가난하지는 않지만 애처로운 까닭은 여기 있다. 나중에 네 모습을 기억하려고. 네가 없을 때 네가 있는 거라 마음을 속이기 위해. 언제 내 마음이 변할지, 네 마음이 변할지, 내 사정이 여의치 않을지, 네 사정이 지금과 다를지 알 수 없으니까, 오래오래 보려고. 이런 마음이 없어지면 아마도 그땐 내가 진짜 늙은 것일 게다. 산도르 마라이는 이를 이렇게 잔인하게 증언한다.






 세상만사 답답할 정도로 지루하게 되풀이되거든. 그것도 나이와 관계있겠지. 유리잔은 그저 유리잔이라는 것을 아네. 그리고 인간, 이 가련한 존재도 무엇을 하든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지. 그리고 나서 육신이 늙어가네. 단번에 늙지는 않아. 그게 아니라, 처음에는 눈이나 다리, 심장이 늙네. 단기적으로 늙어간다네. 그리고는 별안간 영혼이 늙기 시작하지. 육신은 늙었을지 몰라도, 영혼은 동경과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기 때문일세. 영혼은 여전히 동경하고, 기뻐하고, 또 기쁨을 희구하지. 기쁨에 대한 동경마저 사라지면, 추억이나 허영심만이 남네. 그런 다음 정말로 영영 늙는다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지. 그런데 무엇 때문에 깨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게야. 하루가 어떠할지 너무 잘 알지. 봄 아니면 겨울이고, 삶의 자질구레한 일들, 날씨, 하루의 일과. 더 이상 놀랄 일이 없어. 예기치 못한 일, 특별하거나 끔찍한 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네. 인생의 모든 화복을 알고,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있고, 좋든 나쁘든 더 이상 알고 싶은 게 없기 때문이지. 그것이 노년이라네. 

-산도르 마라이, 열정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다. 흉터도 마찬가지다.오히려 상처는 더 많이 받아도 상관이 없다. 아픈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아픈 것이 너무 싫지만 잘 참는 것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특기 아니던가. 아니, 달리 말하면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내 특기다. 몇 일을, 몇 달을, 몇 년을 나름의 기억으로 메우면서 금맥을 찾듯 시간을 기다렸다. 하루키가 쓴 1Q84의 아오마메처럼 물론 강인하게 기다릴 자신은 없다. 하지만 강인하게든 연약하게든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그 시간이 쌓였을 때 젊을수록 상처를 많이 받겠지만 늙을수록 상처를 덜 받는다는 것도 명명백백하다. 무엇보다도 상처는 치유할 수 있지만, 후회는 치유할 수 없다는 점이 어릴 때나 지금에나 두려웠다. 지금 읽는 산도르 마라이는 너무나도 담담하고 조용해서 두렵다. 겨울의 어둠, 안개비가 내릴 때 찾아드는 습기. 불을 밝히고 잔에는 따뜻한 글뤼바인을 채우고 촛불까지 켜고 나면, '열정'이라는 덮개 아래 후회와 진실, 사랑과 우정, 사실과 추억이 이야기의 외피를 쓰고 나타난다. 인간은 그 자신에 관해서는 늘 아무것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을 드러낸다는 그의 글을 읽으면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진실을 숨기는 쪽으로 발전해 왔는지가 보인다. 그럴 때 들여다보는 마음속 풍경은 어떤 것인가. 상처와 기다림, 시간과 기억이 뒤덮을 때의 폐허는.





 오든의 시는 "자신만의 풍경을 가지지 않은 자가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1연의 중간쯤 "자기 삶의 지도를 그릴 수 없는 자가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 나는 그릴 수 없다(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이 책은 내 삶의 특정 시기에 겪었던 몇몇 풍경에 대한 조각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지도다. 어떤 일이 생겼거나 생기지 않았던 장소, 내가 보고 싶었던 장소, 혹은 그저 지나쳤거나 마지막에 다다른 장소. 어떤 의미에서는 그 모든 곳이 같은 장소, 같은 풍경이기도 했다. 그 일들을 경험한 사람은 결국, 이런저런 장소에서 생겼거나 생기지 않았던 일들의 총합인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프 다이어, 위의 책.




 이 책을 읽는 내도록 진한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그리 곡진하지도, 강렬하지도 않지만 여러 층위에 걸친 폐허가 향하는 곳은 결국, 제프 다이어의 폐허 같은 마음 속이었다. 그것은 나이, 성별, 인종, 심지어는 안경을 쓰는지 안 쓰는지조차도 뒤로 하고, 한마디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의 폐허이다. 마음에 품었던 무언가를 내려놓을 때 필요한 위로. 수많은 장소와 사람, 시간과 공간의 총합인 그 사람은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이러한 황폐한 시간과 공간에서도 여전히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떠올리게 한다.





 행복감을 느끼는 능력 말고 인생을 판단할 기준이 뭐가 더 있을까? "그들은 뭘 바라는 걸까요? 구역을 찾는 사람들 말입니다." 라고 영화 <스토커>의 작가는 묻는다. "행복이지요, 그 무엇보다도." 스토커가 답한다. 어떤 사람들이 구역에 들어갈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착하거나 나쁜 사람이 아니라 엉망이 되어버린 사람들이요"라고 답한다. 

-제프 다이어, 위의 책.





시간이 이룬 폐허, 사람이 이룬 폐허, 사건이 일으킨 폐허를 둘러보는 그의 글귀는 오로지 시선에서 나온 것임이 분명하다. 행복감을 느끼는 능력이라는 말에서 만져지는 희망은 당위를 벗어난 능력에의 문제가 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신념으로 타인을 피곤하게 만드는 자기계발서적과도 같은 말이 얼마나 많은가. 도덕의 문제가 아닌 이상에야 당위가 인간의 감정까지도 조정하게 내버려두느니 나는 차라리 발륨과 프로작의 손을 잡겠다. 그러나 제프 다이어의 행복에의 능력은 의외로 간단하고 진실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오로지 바라보는 것이라는 통찰은 얼마나 다양성을 품은 것인가. 어느 여행지를 가도 제프 다이어의 기준은 단 하나. 자신이 그 광경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가. 마음이 폐허가 되었다는 이 사십 대 남자의 읊조림은 내도록 황폐함을 노래하지만, 읽고 나면 이상하게 긍정도, 부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모든 판단과 느낌은 자신을 응시할 줄 아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바다를 걸어 들어가 짐을 먼저 실은 다음 긴 배에 올랐다. 잠시 후 배는 나를 싣고 출발했고, 만을 끼고 크게 돌아 핫린으로 향했다. 바람은 없었다. 하늘도 맑았고, 바다는 짙은 바다색이었다.

 작은 배를 타고 어딘가를 떠나는 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물결의 움직임, 엔진이 내는 소리. 삶을 뒤에 남기고 떠나지만, 당신은 여전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그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의 일부는 그곳에 남는다. 죽음도, 최고의 죽음이라면 아마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이지만, 또 모든 것은 확장된 현재 안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제프 다이어,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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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1-27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으네요. 좋아서, 좋아요를 눌렀어요. 이런 표현은 지나치게 단순하지만, 그렇습니다.

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상대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꽤 놀랄 때가 있죠. 그러면 온 몸에 짜릿함이 퍼져가잖아요. 몇 번 만나지 않은 누군가, 내가 그랬듯이, 우리의 메뉴를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에게 말하지 못한채로 한참을 따뜻해했어요. 그랬어요.

오래오래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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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5-01-27 15:2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좋아해주시다니 저도 좋아요! (좋다는 말을 남발하는 중)

1.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상대도 기억하는 일
2.나는 기억하고 상대는 기억 못하는 일
3.나는 못기억하고 상대는 기억하는 일
4.둘 다 기억 못하는 일

1~4를 보완하고 한 톨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일기를 쓰거나 서재에 글을 남기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부분은 당시에는 울컥 했으나 몇 년 후엔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는데 지나고 나서 더 아른거리기도 해요. 이때 모든 풍경은 결국 내 눈 속에 있다는 생각이, 제프 다이어를 읽으면 더 또렷해져요.

좋아요.

다락방 2015-01-2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프 다이어는 저도 사두었어요. 그렇지만 사두기만 했어요. 물론 읽으려고 사두긴 했죠. 네, 그렇습니다. 하아-
또 페이퍼 써줘요, 또.
이런 페이퍼, 읽는 거 참 좋아요.

Jeanne_Hebuterne 2015-01-29 13:52   좋아요 0 | URL
(제 눈에는)작가가 잘생겨서 읽었어요 ㅋ
음, 이런 페이퍼 쓰려면 여행가야 하는데, 좀만 기다려줘요, 다락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