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녀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데이지도 톰도 심지어 개츠비도 아니고 닉 캐러웨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자 그 인상은 배로 더 강해졌다. 그는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닉이 바로 이야기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인물, 유일하게 자기 외부를 볼 줄 아는 인물이다.

 -본문 15 페이지

 

 


 저녁의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것도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텅 빈 것도 아니어서 그곳에서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가족, 친구들, 소소한 일, 생각, 말. 그것은 각자의 이야기였다. 모든 이야기는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었으나 때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애매함은 줄고 명확함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귀 기울이면 늘 무언가를 원하거나 꿈꾸고, 열망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 소리는 종종 봄비처럼 조용히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만나 강풍과 비를 뿌리듯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폴 오스터의 소설 '선셋 파크'는 이런 요란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간다. 사람들이 서둘러 떠난 빈집을 치우며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물건 사진을 찍는 마일스 헬러가 있다. 그가 사랑하는 어리고 똑똑한 소녀가 나타난다. 그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열망하는 것 없이 시간을 꾸려나간다. 그리고 안개 속에서 무언가 또렷하게 점차 모습을 드러내듯 사람들이 드러난다. 그의 부모, 우발적 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 선셋 파크의 빈집을 무단점거하여 사는 빙, 앨리스, 엘라. 세상은 무대이고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각자의 배역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셰익스피어의 명제를 충실히 지키듯 이들이 하는 각자의 역할을, 폴 오스터는 전지적 시점을 통해 우리는 볼 수 있다. 논리적인 흐름을 걷어내고 우연에 의존하였던 포스트모던의 폴 오스터가 이번에 택한 것은 정반대의 무엇이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다. 장광설과 과장, 왜곡과 은폐, 포커스와 줌 인, 줌 아웃을 이 소설에서 찾기란 불가능하다. 폴 오스터는 읽기와 쓰기, 이야기를 듣는 자와 하는 자의 규칙을 조금씩 변형시키는 작가가 되어 돌아왔다. 관습이 바뀌고 사건의 이유가 생겼다. 일상이 배경으로 자리잡은 무대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조금씩 경계를 허문다. 그리하여 폴 오스터의 이야기를 읽는 나에게 폴 오스터가 제시한 길은 곧장 핵심으로 다가가는 방법이었다.

 


 소설 속에 언급한 위대한 개츠비의 등장인물 캐러웨이는 일종의 전달자, 기록자였다. 그는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선셋 파크의 마일스는 쓰레기를 치우며 남들의 흔적을 기록한다. 유일한 취미는 소설 읽기. 오스터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이런 모습으로 등장한다. 낯설지 않은 익숙함이 이야기 속에 천천히 스민다. 그는 치유하고 싶은 마음도, 재활에의 의지도 없는 중독에 탐닉한 남자. 이유가 있어 도망친 사람.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부부싸움을 하던 남자가 실수로 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때마침 자살하던 아들을 총알이 맞힌다. 그는 추락사가 아닌 총상으로 사망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구원투수 도니 무어는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투구를 했다. 3년 후 그는 아내와 세 아이들 앞에서 아내에게 세 발의 총을 쏜 다음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사망자는 아내가 아닌 그 자신이었다. 우연 끝에 결국 오스터가 다다른 곳은 필연이었다. 어느 곳에 꼭 다다르기를 열망하는 것은 아니나,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선셋 파크였다.

 


 무대와도 같은 선셋 파크의 다양한 인물의 심중까지 이야기하는 폴 오스터의 시선은 의외로 어느 한 인물도 예사로 내버려두지 않고 그 시선은 마지막까지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 마일스와 필라의 사랑은 필라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완전함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곳곳에 안전장치가 있다. 선셋 파크의 빙, 엘런, 앨리스. 집이 없는 이들이 불법 무단 점거로 집을 얻는다. 사랑받고 싶고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엘런은 포르노그라피를 보며 화첩을 채우고 옛 남자친구, 새 남자친구를 얻는다. 무관심한 관계에 고심하며 스스로 뚱뚱해서 자존감마저 낮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앨리스는 살을 빼고 남자친구와 헤어진다. 마일스는? 마일스는 미성년인 여자친구가 열여덟이 될 때까지 선셋 파크에 있기로 한다. 20일까지만, 22일까지만. 하루만 더. 지금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 혹시 이 시선이 엇갈린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의 여지를 폴 오스터는 단숨에 걷어낸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차츰 무언가를 원하게 되는 과정을 폴 오스터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핵심으로 다가서노라면 소설은 마치 요약본을 제시하듯 챕터와 인물, 사건을 늘어놓는다. 그새 어느 한 사람도 소홀하거나 멀어지지 않는 것은 폴 오스터가 그만큼 선셋 파크의 허술한 문과 벽돌, 집 안의 계단에까지 그 눈길을 오래도록 주었다는 뜻이리라. 자신의 관습을 스스로 파괴한 작가는 독자에게 인위적인 즐거움 대신 새로운 얼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혼란이 가득하고 하루를 보내면 지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다 보니 현재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안개 속의 풍경.

 


 이 안개 속을 걷노라면 독자로서는 '그래서 핵심이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부딪히게 된다. 이것은 모든 애매함을 없애고 확실함과 직설적인 어조, 명확한 이유와 또렷한 근거를 자신의 새로운 작법으로 선별한 폴 오스터가 만든 조각 이불이다. 아니, 그보다는 조각조각 떨어져 있지만, 어느 한 페이지 소홀하지 않은 화첩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초기 작품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우리가 보았던 우연이 우리의 등을 세게 후려치지는 않는다. 물론 노스탤지어에의 열망, 야구 사랑, 소수만이 열광하는 오래된 취미 같은 직업, 기록하는 자가 만나는 거대한 벽과 같은, 폴 오스터가 자주 그의 작품 속 배경과 사건으로 골랐던 필터는 여전하다. 이러한 필터는 아마 십 년 후에도 그의 문체와 독특한 공기로 계속 남아 그 모양을 더욱 굳건히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독자를 의식하는 단편적 노력 대신 스스로 한계를 생각해 보고(아마도 그의 기존 팬들은 좀 싫어할지도 모르겠으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그의 노력은 '선셋 파크'의 그 모든 흔적처럼 또렷이 남을 것이다. 선셋 파크의 모든 발자국은 제각각 자국으로 남아, 우리가 뒤돌아 보았을 때 그 모양이 공기 중에 흩날려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In Studio: Paul Auster reads Sunset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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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7 0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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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8 1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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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3 06: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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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3 1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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