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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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을 겪은 사람이 있다. 그 일 후에 그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누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범위는 넓으나 그 맥은 각자의 스펙트럼으로 잡는다. 그런 일이 있었다. 내게는 이유가 중요했는데 타인에게는 결과가 중요한 일. 아니 에르노는 그런 개인의 경험을 글로 쓴다.
 
역사. 객관. 서사. 결과. 이유. 상황. 판단.
에르노의 글은 일기가 아니다.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은 묻지 않는다. 물 바깥으로 끄집어 내어 이미 죽어가는 물고기 머리를 바닥에 계속 패대기치지 않는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패대기치다'의 뜻을 '매우 짜증 나거나 못마땅하여 어떤 일이나 물건을 거칠게 내던지다'라고 정의한다). 에르노는 절제하지 않는다. 그대로 나타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에르노의 글이 '날 것'이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다. '날 것'의 한계 때문이다. 절제하는 감정과 그릇을 담기 위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다른 매체에서 있으나 에르노는 역사를 곧바로 겨냥한다. 슬퍼도 울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파악하는 핵심을 보는 생각하기의 전형이다.
 
아이리쉬의 초록색과 에스키모어의 흰색을 나는 하나의 단어로 바꾸어 쓴다. 내게는 그 한 단어가 전부이다.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 나는 내 감정의 어휘가 부족함을 느낀다. 이것은 마음이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나를 대하는 타인의 다양한 반응에 가변차선로를 적용할 일도 이제 없을 것이다. 가지치기를 했다. 남은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 정격전압. 부러 멋부리지 않고도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글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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