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연주했던 것과 똑같군요. 당신 기억나요? 우리는 저기에 있었죠. 똑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저 음악가도 같은 곡을 연주하고 있어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나 보죠. 하기야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조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실 다른 쪽 끄트머리에 있는 자크를 바라보았다. 베르나르가 그녀의 시선을 뒤쫓았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잡고 잠시 힘을 주었다.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가 말했다. 

 "조제, 이건 말이 안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조제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186,187 페이지



 


 


 

 




어떤 작가는 작품만큼이나 선연하게 떠오른다. 스피드광, 마약중독, 도박광이면서 돈을 다 잃었을 때에도 '본래 돈이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고 마약 소지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자신을 변호한 사람. 연이은 이혼, 신경 쇠약, 노이로제, 수면제 과용, 정신병원 입원. 프랑스 내 도박장에서 5년간 출입을 금지하자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도박 원정을 갔던 사람. 그녀는 지드를 읽고, 카페에 출입하여 담배를 피우고, 소르본에서 교양과목 시험에 떨어지자 두 달간 은둔하며 쓴 작품(슬픔이여 안녕)이 당선되자 인세로 재규어, 모피 코트, 뒤셀도르프의 별장을 사들이고는 누구에게나 되는 대로 술을 사고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바로 버리고 새로 사들였던 사람, 프랑수아즈 사강. 



 모호하고 교묘했다. 안개처럼 닿는 글. 잡으려 하면 닿을 수 없는 글. 경험한 적 없으며 알 수 없는 것은 글로 쓸 수 없다는 (아니 에르노가 떠오른다) 사강의 글은 의지도 신념도 계획도 없다. 그 어떤 빛도 어둠보다 어둡고 그 어떤 어둠도 빛보다 밝다. 그 젊은 날들이 그런데 꼭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고 중얼거리는 작은 음성. 통속이 따로 없다. 감정의 격랑이 휘몰아친다. 희극인 듯한 비극, 비극인 듯한 희극. 너저분하지 않고 이야기 전반을 관통하는 예리한 시선이 느껴진다. '한 달 후 일 년 후'의 이야기 전반에 드러나는 것은 이들의 연애이다. 니콜이 베르나르를, 베르나르가 조제를. 에두아르가 베아트리스를, 베아트리스가 졸리오를. 



 사강의 글이 가진 힘은 바로 수면 아래 물고기의 마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조금씩 흔들리는 물결의 움직임, 가끔 떠오르는 기포를 이야기하는 듯한 모호함에 있다. 그녀는 결코 심리적 안정과 개인의 굳건한 심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흔들리는 마음, 사형선고를 내리는 듯한 마음으로 헤어지자고 말할까 망설이는 사람의 입술을 이야기한다. 한 여자를 사랑해서 파리 시내에 존재하는 길이라고는 그녀에게 가는 길밖에 없는 청년이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은 평범한 사람의 마음에 깃든 불안에서 나온다. 사랑받을 수도, 사랑할 수도 없어 고독을 택하지만 이로 생긴 슬픔을 조용히 책임지는 것은 개인일 뿐이다. 사강의 지성은 곧은 날을 뽐내지 않는다. 대신 삶이 우리에게 주는 문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사강의 지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습관에 의해' 행복할 것이고 예의바를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간다는 것의 행복은 "죽는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이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사물의 무지막지함"과 모든 것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권태를 좌절시킬 만큼 충분히 강하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만약 삶이 '어떤 미소'의 도미니크가 느끼는 것처럼 "긴 속임수" 라면, 그 소임수는 너무나 고독한 나머지 길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임수는 순진한 사람들과 계속해서 게임을 할 것이다. 순진한 사람들은 규칙에 따라 게임에 임하면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이보다 더 자연에 반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우리 모두 기분전환 거리 없는 고독한 왕이 아니겠는가? -필리프 바르틀레.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이면서 다른 이의 도덕을 오락거리로 삼지 않는 문체. 자신이 경험한, 익히 아는 사람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는 구조 속에서 사강이 드러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인물에 대한 이해이다. 인물의 생각과 작가의 말, 과거시제와 현재시제, 대화와 생각, 시공간의 이동, 이 모든 것이 사강의 글 속에는 뒤섞여 있다. 낭만주의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자신의 세계에 솔직해지는 순간, 사강의 글은 인물들을 비판하지 않고 이해하게 한다. 그녀가 뜻했던 대로 설득하지 않고 매혹하게 되는 글. 부드러운가 하면 딱딱하고 찰나인가 하면 영속적이다. 지금 이 순간이라고 생각하던 과거가 미래가 되고 오지 않은 미래는 소용없음을 말한다. 양면성과 이중성, 자신이 자기 자신을 모방하는 데에서 오는 권태와 영광과 좌절을 한 번에 관통하는 시선. 사강의 글은 행복해지고 싶지만 그러지 않은, 혹은 않았던, 않을 모든 이의 찰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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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1-2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이름 만으로도 프랑스와 마르셀 프루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프랑수아즈 사강.
참 오랜만에 Jeanne님의 글을 통해 그녀만의 글과 이미지를 다시 보게 되는군요.
한 달 후, 그땐 일년 후가 된다고 '그런 식으로' 생각할 때도 되었는데, 사강의 소설책 한 권이 그런 생각에 강력히 대항하라고 부추기는군요. ㅎㅎ

Jeanne_Hebuterne 2012-11-28 17:55   좋아요 0 | URL
시간은 끊이지 않는데 사람은 그것을 끊어 생각하는 것이 신기했어요. 한 달 후, 일 년 후,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의 불안함을 짚어내는 사강의 문체, 사물을 다루는 그녀의 도덕적 내재율에 감탄했어요. 감탄한다는 뜻은 곧, 나는 그리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부러움에서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달 후의 일 년 후부터는 어떤 날들이 이어질까요?

치니 2012-11-27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었을 때, '어휴, 사강은 역시 힘들어' 라고 제껴놨던 저의 무감성이 부끄러워지는 리뷰입니다.

Jeanne_Hebuterne 2012-11-28 17:56   좋아요 0 | URL
치니님, 감성은 예민한데 공감능력은 사이코패스같은 저는 어쩌란 말입니까!

blanca 2012-11-2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강의 헤어스타일이 젊을 때랑 거의 같잖아요. 나이든 얼굴, 손을 보면 청춘이라는 게 얼마나 찰나이고 허무한 것인지.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어린 시절 읽었던 그 '슬픔이여, 안녕'의 상큼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조제'란 이름이 참 독특하고 낯익네요. 불어로 이런 발음이 가능할까요?

Jeanne_Hebuterne 2012-11-28 17:57   좋아요 0 | URL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까워요. 사강의 이미지를 구경하다 블랑카님이 (당연히) 떠올랐어요. 불어 발음이 저도 무척 궁금해집니다. 불어를 하는 지인에게 전화로 들려달라고 해야겠어요. 조제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조제, 호랑이, 그 영화도 떠오릅니다. 많은 이들이 그 링크를 타고 이 책을 읽기도 하더군요!)

blanca 2012-11-2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 너무 아깝다,는 말이 너무 좋아요. 정말이에요.

Jeanne_Hebuterne 2012-11-29 12:26   좋아요 0 | URL
blanca님, 제가 아니라 조지 버나드 쇼의 말입니다. 출처를 밝혔어야 했는데, 이런 ㅜㅜ 이 분은 묘비명'오래 살다 보면 결국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를 마지막으로 칼같은 말들을 남기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