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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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수년, 수십 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 아직 나무 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Zu der Zeit, als ich noch auf Baeume klettertelang, lang ist's her, viele Jahere und Jahrzehnte, .... 


 


 오래전, 수년, 수십 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 아직 나무 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하늘은 낮게 깔리었던 늦은 오후, 나는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손에 넣었다. 

 내 주먹보다도 작은 청회색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고 야옹, 하고 울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찌익 짹 꺄앙 하고 우는 작은 아기 고양이였는데 그것이 내 손에 들어온 계기는, 길에 혼자 앉아있어서였다. 우연과 우연의 조합이건만 우주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을 것이었다. 필연이라고 추측한 나는 마음대로 새끼 고양이를 쓰다듬고 따뜻한 수건에 싸서 잠을 재우려다 마침내는 어머니에게 꾸지람과 온갖 잔소리를 듣고서 본래의 장소에 되돌려 놓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기 고양이는 아마 어미 고양이가 꽁꽁 수풀 속에 숨겨둔 것이었을 것이고 동물의 습성에 대해 몰랐다고 하는 것조차 지금은 제대로 된 변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었으며, 하물며 당시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어미 고양이는 아기를 숨겨둔 채 사냥을 나갔다가 자기 냄새가 아닌 낯선 인간 냄새를 갖춘 자기 아기를 버려두고 떠났을 수도 있고, 다행히도 새끼로 인지하고 데려갔을 수도 있지만 이러나저러나 나는 잘못을 저질렀다. 잘못했다는 이 간단한 말을 간결하게 내뱉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조용히 지켜보고 숨죽인 채 듣다가 마지막에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고 끝까지 억누른 채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그 한마디를 위해 수없이 변죽을 울리고서야 기필코 하고야 말게 되는 사건도 있으니, 좀머 씨 이야기가 그렇다.





 오래전의 더 오래전, 키와 신발 사이즈와 날 수도 있었을 만큼 가벼웠던 몸을 이야기한다. 쥐스킨트의 묘사는 독일어의 전형이다.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 이 실오라기 하나 더 입히고 덜 입힌 사람의 마음과 현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독일어만큼 적합한 언어가 없으리라 생각한 적이 있다. 

 비유, 은유, 직유를 거치지 않는 낱말 하나의 무게를 쥐스킨트는 철로 된 공으로 만들어 가볍게 공중에서 떨어뜨리니, 이 모든 것이 낱말과 쉼표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엔 좀머 씨의 느낌표 하나로 끝맺는 짧고 강한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악수가 비위생적이어서 하지 않으며 누구든 자기 거처와 근황을 조금이라도 누설하는 자와는 연락을 끊고 낡은 풀오버를 계속 걸치고 사는 작가, 심지어 입술에 손가락을 댄 사진마저도 초판본에 실렸다가 아마도 작가의 요청으로 쇄를 거듭하면서는 삭제한 저자, 인터뷰를 위해 헬기를 타고 가서 사적인 모든 것은 극비로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제한된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소설.





 재독의 긴장감. 또렷한 기시감과 줄거리를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는 여유, 묘사를 더 즐길 자유. 

 이것을 누리며 바람이 휘몰아치는 오전, 멀리서 선물 받은 수국 커피를 내리고는 첫 장을 펼쳤다. 





 이야기는 어떻게 말을 걸까?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를 이야기하는 빔 벤더스의 계보를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날지는 않은 아이의 설명으로 시작한다. 나무타기를 즐기고, 몸이 가볍고, 아버지와 빗길을 뚫고 경마장을 간다. 짝사랑하는 아이가 월요일에 집이 가자는 말을 한 것으로 그 아이에게 보여줄 것을 계획하고, 두근거리며 마음 설레하다가 불발되자 풍경이 마치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았다고까지 말한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은 또 어떠한가. 아직 자기 몸에 맞지 않고 익숙지 않아 자전거를 타려면 좌우 앞뒤에 아무도 없어야 하고, 지나가기만 해도 사납게 짖는 테리어도 조용히 있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에게 역경이 닥친다. 

 아홉 살 소년에게 닥친 역경은, 어른에게 평화로운 오후이면 족하다. 산책하는 사람들, 앞에 뭔가 지나가면 짖는 개, 그저 시간에 맞추어 와서 완벽한 연습물을 내보이는 교습생을 원하는 미스 풍켈, 그리고 하필이면 건반에 들러붙은 코딱지! 





 그러나 이것은 어떨까. 

 지팡이를 메트로놈처럼 땅에 부딪히며 쉴 새 없이 어디론가 떠밀려 가는 좀머 씨가 있다. 

 그는 아버지와 소년이 폭우와 우박 속에서 마주친 사람이고, 짝사랑에 빠진 소년이 풀이 죽었을 때 규칙적으로 또 그 소리를 들려주며 조그마한 점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행인이다. 일곱 살에서 아홉 살이 자살을 감행하려 할 때 하필 그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무언가를 먹고 마시다가 얼른 일어나 다시 걸어가 버린 사람이며, 마지막엔 호수 속으로까지 걸어 들어간다. 

 한마디로, 그는 언제나 소년이 겪는 가장 극심한 질풍과 노도의 순간에 등장하여 무심히 떠밀려 간다. 죽자. 죽어버리자. 하고 가장 고뇌에 찬 고민을 할 때에 나타난 그는, 아마 아무도 본 적이 없었을 사람 같은 광경까지 보여준다. 즉, '내'가 '나'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사람, 객관화를 시켜주는 이야기 속의 타자이다. 읽어가며 이런 멋대가리 없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이 책이 굳이 1992년 한국에 번역본으로 나왔다가 2020년 다시 예쁜 장정으로 다시 나올 이유는 이것 말고도 더 있지 않을까?





 소설책이 세상에 나오는 덧없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로서는 자성과 자각이 있지 않을까. 

 여러분, 책을 읽읍시다. 반성 좀 합시다. 그리고 우리 좀 더 사람답게 살아봅시다. 라고 마음에 1밀리미터도 와닿지 않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침을 좀 더 세련되게 당의에 싸서 내어놓는 일. 그것이 소설가가 하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평화로 덧칠된 행복한 유년 속 역경을 떠올리며 섬세한 묘사에 감탄할 수도 있고, 상뻬의 능란한 삽화에 반하며 훑을 수도 있다. 작가의 펜을 떠난 단어들은 그 자체로 유기체가 되어 물고기의 밤 노래를 하게 되니까. 즉, 읽기와 감상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진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아름다운 풀숲 속에 숨겨둔 지팡이 하나 정도는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이 이야기가 누릴 수 있는 지복이 아닐까. 





 숨어 있는 죽음 하나. 

 화자의 아버지는 좀머 씨에게 외친다. 

 Sie werden sich den Tod holen!

 당신 그러다 죽겠어요!

 그러고는 그 유명한 한마디가 나오나니,

 Ja so laßt mich doch endlich in Frieden!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아직도 숨겨진 죽음 둘.

 Mann ... der sein Leben lang auf der Flucht war von dem Tod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좀머 씨가 사라지기 전 드러나는 세 번째.

 Schau, da geht Herr Sommer. Er wird sich den Tod holen!

 저기 좀머 아저씨 간다. 저러다가 죽겠다!




 이 책 속에서 좀머 씨의 이름이 반복되고 그의 기이한 걸음걸음이 다양하게 변주되는 동안, '나'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말이 길어진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이유를 만들어주는 일, 시간의 정황상 그는 전쟁의 광휘에 휘말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타당하다. 변죽을 울려야만 짤막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 억누르고 있는 마음 속 진실을 풀어놓는다는 것마저도 아니라고 말해야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임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한 번 또렷하게 반복될 때, 다시 선연히 그 외침이 침묵으로 다가온다. 

책 읽기가 주는 기이한 공감각. 읽는 자와 읽히는 글자의 대화. 





그리하여 그를 보는 순간 걸음걸음마다 '나'의 호흡은 사실 극적인 비일상, 실망, 비애였다가 마지막에는 하나의 정물처럼 무관심이 될 때 호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 남자를 무엇이라 보아야 좋을지는, 읽는 사람마다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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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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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여기 모이신 분들 모두 가내 평안하시고 건강하시지요? 

 사실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겉보기에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 같지 않아 보인다고요? 멀쩡하고 건강해 보인다고요? 아니오. 하나도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부러 앞에 선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요. 그래서 왔어요. 허허. 시작하기 전 글 하나 읽고 가실까요.






처참하게 뭉그러진 환자들을 목격한 그는 죽음에서조차 계층 차이가 존재한다며 한탄했다. 김기태가 내게 말했다.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를 건조하게 응시하다 대답했다.
-원래 세상이 이런 건데요.
김기태는 말이 없었다. 지옥 같은 한 해가 앞이 보이지 않는 채로 저물고 있었다. 

-골든 아워, 이국종





 인용은 골든 아워구요, 오늘 이 책은....그러니까 이 책은 임계장 이야기입니다. 책 제목이 임계장 이야기인데 무슨 말이냐고요? 거기 앉아계신 보라색 티셔츠 입으신 분, 임계장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임 씨 성을 가진 계장 이야기...네, 아닙니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여부른 거랍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할 때 '그런 말도 있어요? 처음 듣네요.'라는 반응이 제일 싫어요. 처음 들을 수 있죠. 저도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있었어요. 누구나 처음 뭔가를 접할 때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듣고는 저 말이 왜 있는지 생각하느라 '아, 그런 말이 다 있네요'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그 말을 들을 이유가 없고 알 필요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람?'이라고 생각해서 말하는 것은 느낌이 달라요.  계란도 그래요. 계란,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저는 이 책이 나온 출판사의 다른 책 '웅크린 말들'에서 처음 들었어요. 에스로 시작하는 모 기업의 에어컨 설치 및 수리 기사들이 스스로 부르는 말이에요. 

 부활하냐고요? 예수 재림이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사실은 에어컨을 수리하거나 설치할 때 안전장치도 하고 거드는 사람도 필요한데 그게 없이 외벽에 매달려서 일해야 하거든요. 추락하면 반반이죠. 다치거나 죽거나. 둘 다 이러나저러나 깨져 죽는 건 마찬가지니까 네, 그래서 계란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공기업에서 평생 일하시다가 퇴직 이후 계약직으로 일하는 저자가 쓴 글이에요. 노동의 현장에서 실제 겪은 일을 썼는데..오탈자도 없고 읽기에 깔끔합니다. 제가 발견한 오탈자는 '금세' 하나뿐이었는데 개정판이 나오면 고쳐지리라 믿어요. 

 그러나 그보다는.....읽는데 제 옆에서 누가 물어봐요. 뭐 읽는데 얼굴을 오만상을 다 찡그리고 있냐고. 그래서 말했죠. 멀쩡한 사람이 똥물 속에서 뒹구는 이야기인데 이게 실화라고. 그 사람은 내가 비유를 하는지 알았나 봐요. 사실 이 책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진짠데. 





 여러분, 일을 한 번이라도 무엇이라도 해보신 분들. 왜 일하셨어요? 왜 지금은 일하고 계신가요? 

 버틀란트 러셀이 그랬다지요. 일은 적성에 맞지 않다.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라고.

 그런데 피곤해 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치고 부러지고 으스러지거나 죽으면 어떨까요? 저는 위에 이국종 교수의 골든 아워를 인용했는데 그분이 강연에서 그러셨어요. 대충 제가 기억하는 대로 옮기자면....'외상센터에서 일하면 대부분 보는 분들이 말 그대로 중증외상을 당해 위급히 실려 오십니다. 그리고 보통은 공사장에서, 마트에서, 길에서 일하다가 오세요. 위험한 일들을 하시니까요. 지금 이것 듣고 계신 분들, 무슨 생각 하세요? 나는 그런 데서 일 안하니까 다행이다? 그런데 어쩌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네, 저의 소회를 밝히자면...저는 '그런데 어쩌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저 부분에서 너무너무 부끄러웠어요. 이 책을 읽다가도 그랬어요.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책을 덮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혀 평안하지 못하다고 앞서 말씀드린 거에요. 이 책은 읽기가 고통스러워요. 책장이 더디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계속 마음을 추슬러야 읽을 수 있었어요. 이 책이 쉬우셨다면......글쎄요, 거리두기를 상당히 잘 하시는가보다, 이외에도 많은 생각이 들지만 그건 그냥 제 느낌이니까 굳이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저는 앞서 일을 왜 하시냐고 물었었죠. 이 말에 대한 답에 저는 계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슬로의 욕구 이론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자아실현은 모든 욕구 충족 이후 최상위 단계 피라미드에 있어요. 많은 임계장들이 사실 젊은 시절의 성실함과 무관하게 생계에 직면해서 일합니다. 아파트 경비  하시는 분들, 청소하시는 분들, 택배나 공공근로 하시는 분들이 젊었을 때 게을러서 당장 나오신 게 아니에요. 지금 코로나 사태로 더 여실히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당장 경기가 나빠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겁니다. 로또나 유튜버 말고는 답이 없다면 그것이 과연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일까요? 나는 노후자금 벌고 있고 유산도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네, 사실 제가 그에 입찬소리 할 입장은 아니지요. 





 단지 저는 우리 사회의 절벽이, 돌부리가 너무 많은데 그에 비해 안전망은 너무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도 요즘은 재난기금도 나오고 공공근로도 있고 일자리센터도 있으니 살만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건 그럼 어떻게 생각하세요. 의사 부부인데요, 개원을 둘 다 앞두고 서류상 무직 상태였어요. 부인은 아기를 낳았어요. 그래서 복지 혜택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공무집행상 허점을 노린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응당 가야 할 돈이 가야 할 곳으로 간 겁니다. 그러나 세 모녀가 돈이 없어 라면 하나로 몇 끼를 나눠먹다가 미안하다며 동반자살을 했어요. 이들은 방법을 몰랐고 많은 비슷한 사람들이 막상 서류 신청에서 아주 근소하게 자격이 미달되어 지원을 못받아요. 이건 불합리한 거죠. 이런 그림자가 참 많아요. 그리고 임계장의 업무는 그림자투성이다 못해 아주 암흑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행정상의 허점이 아닌 근로계약상의 돌부리가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것 뿐일까요. 이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분이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실 당시, 음식물 쓰레기통을 수돗가에서 씻는데 뒤에서 누가 호통을 쳤대요. 그리고 이랬답니다.




 "어이, 경비! 이 새끼, 너 전에 공기업에 근무했었다며? 거기서 국민 세금을 마구 쓰던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군!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을 펑펑 써? 이 새끼, 당장 잘라야 할 놈이네. 네가 버린 수돗물 값은 네 월급에서 까게 해주마. 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


 "이거 먹고 기죽지 말고 일 잘해. 내 말만 잘 들으면 오래 일할 수 있게 해줄게."




네에....그렇습니다. 동일 인물이고요, 두번째 말은 나중에 '껍질이 쭈글쭈글하고 일부는 상해 있었던' 사과를 내밀며 한 말이랍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일로 민원을 받고 이런 대목이 나와요.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더니 내 눈에 우울함이 잔뜩 서려 있었다.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들은 내게 했던 일들을 모두 잊었을 텐데 나 혼자 잊지 못하고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저, 정직하게 일해서 돈 받고 그 돈으로 생계도 꾸리고 자식들 학교도 보내고...그게 그렇게 큰 바람이 된 세상이 있어요. 저 대목에서 부끄럽지 않다면 그건 저는 방관자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태도죠.




 구청 직원, 지원센터 관계자, 구의회 의원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여러분은 고령자가 일하는 모범 사례이십니다. 집에서 따분하게 노는 것보다 일을 하시니 건강에도 좋고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좋아 죽겠네요.(웃음) 저는 여기서 다른 나라의 책이 생각났어요. 바버라 애런라이크가 쓴 '노동의 배신'인데 저자는 청소 도우미 일을 합니다. 그런데 저자의 청소 일을 지켜보던 고용자가 한마디를 해요. '이렇게 몸을 움직이시니 운동도 되고 돈도 버시고 참 좋으시겠어요' 

 전 그 대목을 읽다가 '그렇게 좋으면 네가 하든가'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요, 네, 일이란 건 앞에서 이국종 교수님의 말에서 가져왔듯이, 누군가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겁니다. 

 

 단, 제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건 하납니다. 누군가 언젠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기왕이면 기본을 지키고 원칙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간단해요. 휴게시간 정확히 주고, 휴게시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쉬게 하고. 방한복 작업도구 지급하고 존대말 하고, 일하다 다치면 치료비 시간 지원해주고요. 

 워라밸, 주 40시간 근무, 큐오엘, 다 좋아요. 모든 좋은 것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고 봐왔으니까. 그런데 터미널 고속의 경비원 숙소가요, 공중화장실 앞에 있어요. 잘 때도 무전기 켜고 자야 해요. 그리고 까는 침구 덮는 침구 세 개씩인데 공동으로 쓰는 거고, 세탁 한 번도 안 해서 벌레와 곰팡이와 냄새가 쏟아져요. 거기서 어떻게 자냐고요? 글쎄요. 다들 마스크하고 손 소독 하고 사회적 거리 유지하시는데, 그곳은 아직도 그럴는지......





 솔직히 저는 이런 일자리들만 더 늘어나고, 거기에도 지원자가 수두룩 모일 수밖에 없는 세상이 겁나요. 이제 4차 산업혁명이 닥치면 많은 업종이 사라지겠죠. 그럼 사람은 기계보다 못해질거에요.  그럼 어때요, 사람은 이제 더 막 대해도 되는 존재가 될겁니다. 그래서 굳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책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게 해달라고, 그저 '어머, 이런 일이 다 있네!'하고 책꽂이에 꽂아놓고 잊어버리지 말라고. 많은 이가 제각각 다양한 곳에서 일하고 있고, 지금 당장 내가 등 따시고 배불러도 영원히 그러란 법 없고요, 그리고 그저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우리가 지금껏 사람 갈아 넣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그러란 법은 없잖습니까?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면 좋겠어요. 최소한으로 라도요.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모두 가내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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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5-2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신문에서 이 책 저자분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Jeanne님 글을 마주치고 놀랐네요. 얼마전 극단적 선택 하신 경비분 사연에 남 일이 아니란 생각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하시는데 참 마음 아팠어요. 극소수의 독하고 나쁜 사람들이 문제지만 대다수인 방관자에 나도 속하겠지 싶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월급주는 사람이니까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어요ㅠㅠ;

Jeanne_Hebuterne 2020-06-03 02:06   좋아요 0 | URL
달밤님!
이 책은..그러니까 이 책이 다른 책들 아래 쌓여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었어요. 가끔, 준 사람은 잊는데 왜 받은 사람만 아파야 할까 싶습니다. 아직도 마음의 생채기들을 생각하면, ‘나의 힐링에는 사람이 없어야 해!’라고 말하는 이수정 교수의 말이 떠올라요. 타인도 나랑 비슷할거라는 기본값 때문에 사기치는 사람들한테 넘어가는거라는 친구 말도 떠올랐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계속 이런 상황들을 넘기지 않는 것, 그것이 출발이 아닐까 하는 거친 생각이 남아서 좀 거칠게 쓴 리뷰였어요. 언제나 조용한 제 서재에 와주셔서, 계속 여기 있어주셔서 고마워요, 달밤님.

Jeanne_Hebuterne 2020-06-03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붙이기-‘금세’는 제가 잘못 알고 있었고, 옳은 표기라고 어느 분께서 친절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제가 잘못 알았고, 출판사 글이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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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에 책 한 권이 있다. 4285라는 숫자, 삶, 희망, 기록, 이것만으로도 아...하고 고개를 젓게 되는데, 뒷표지를 보면 더하다. 인생 기록, 오프라 윈프리, 뉴욕 타임스, 피플, 보스턴 글로브. 이 책에는 빌 게이츠와 버락 오바마는 없지만, 일단 빌 게이츠와 버락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이 세사람의 추천이라면 나는 일단 피하고 본다. 

 각각의 이름이 주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면서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미리 강조하자면 한 번도 그 쇼를 보지 않고도 몇십년을 살다 보니 주워들은 풍문에 의하면, 일단 금전이나 건강, 각종 문제를 겪는 호스트가 나온단다. 모두가 그의 불행을 듣고 이런저런 위로를 하고나면 나오는 말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라, 내지는 당신은 더 소중한 사람이다, 같은 처방과 함께 산더미 같은 선물들이 쏟아지는데, 그 규모가 음료 교환권이나 숙박권 등의 범주를 넘어 자동차 같은 고가의 선물까지 아우른다는 말을 듣고나니 아, 나도 방청객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호스트의 고민은 잊게 되고 '내가 뭘 본거지?하는 느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힘들 때마다 김연아의 밴쿠버 경기영상을 돌려보고 카모메 식당을 보는 친구 하나가 몹시 힘들 때면 이 책을 한번씩 펼쳐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길 잃었다는 이름의 이 저자의 책을 펼쳐보았다. 아마도 더 큰 불행, 더 큰 힘을 지녀서 업계 판도를 바꾸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살다 보면 다양한 얼굴과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특정한 나이의 어떤 기회가 있기 마련이라면 셰릴 스트레이드의 방황은 적절한 때에 펼쳐졌고 알맞은 시기에 매듭을 지었다. 그것이 술이든, 인생의 미친짓이든, 여행이든, 나는 인생의 총량, 내지는 일정량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 쪽인데 이것을 세상에서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고. 셰릴 스트레이드는 매 맞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 함께 대학을 다녔고, 하필 그 학교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에 있는 데다가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였다고. 

 하버드나 예일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고 갈 생각도 못 했으며 혹시나 생각했다 하더라도 합격 못했을 거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는 대목을 보았을 때, 자기를 사랑해주는 아버지의 느낌 자체를 떠올릴 수 없었다고 말할 때, 에스키모인들의 얼음 지옥과 적도인들의 불지옥이 떠올랐다. 현실은 얼마나 상상력을 제약하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가까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모 프랑스 전 대통령의 말을 떠올리기도 전에, 그저 현실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이 여실해진다. 




 거칠게 말하자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오리건까지의 여행으로 자기에게 닥친 일들을 좀 해결해보고자 우연한 기회에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사람의 이야기. 그러나 우리의 여행을 돌아보면, 풍경과 환경,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며칠만 지나도 우리는 동행인들과 우리 아버지는..우리 어머니는..내 친구들은..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데 저자는 마침 혼자 떠나 혼자 매듭짓는 와중 계속해서 자기 마음속의 라디오 주파수를 찾듯 생각을 이어나간다. 

 그러다가 아버지 생각에서는 '나는 그런 일을 상상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런 광경을 떠올릴 수가 없었고 사랑이나 안전함, 확신, 혹은 누군가에게 속해 있는 감정 따위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나를 제대로 길러내는 데 실패했다'라고 하다가 바로 다음 장에서 '그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을 듬뿍 주는 어머니였다'라고 한다니, 이것은 오락가락인가 아니면 주마등처럼 스치는 생각인가...싶다가도 떠오르는 말 한마디가 있으니, '마음은 상태일 뿐이다'라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신임하는 심리상담가의 조언. 얄궂지만 맞는 말이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컨디션, 그날의 기분, 이런 것들은 불안정한 대기처럼 늘 바뀌고, 저자는 어떤 롯지에서는 미리 보내둔 보급품에 돈을 잘못 보내는 바람에 거의 무일푼이 되고, 캠핑장에서 무임으로 몰래 머무르려 하다가 쫓겨나고(몰인정하다고 뒤끝 작렬로 써놨는데 돈이 없으면 나가는 것이 인지상정), 곰이나 여우를 보면 꼭 곰이다! 내지는 여우다! 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PCT에 가보고 싶지만, 그것은 무모하니까 애팔래치아 트레일 정도면 되지 않을까? 마음 정리도 좀 할 겸...'이라는 말에 지인은 '그 정리는 꼭 애팔래치아까지 가야 되는 거냐'라고 반문하여 곧바로 수긍했는데, 어쩌면 인생의 총합을 한 번 정도 내기로 한 이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상상의 근거지를 바꾸는 일, 내 주머니 속 밑천을 꺼내어 모두 살펴보는 일, 결국, 스스로 해야 할 일. 어떤 이에게는 마약, 술, 도박, 쇼핑중독, 일 중독, 기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일들을 셰릴 스트레이드는 혼자 하는 PCT로 실행한다. 가끔, 어떤 자리에서 다른 지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물리적 고행, 여행, 고난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런 결론을 내린다.




우리 아버지. 내게는 아버지가 아닌 남자. 그 사실이 언제나 나를 놀라게 했다. 다시, 그리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언제나. 온갖 일이 다 있었지만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아버지의 잘못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PCT에서 어두워지는 대지를 바라보며 나는 더이상 아버지 때문에 놀라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그보다 놀라운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글쎄....세간에 유튜브로 많은 돈을 버시는 크리에이터들은 자존감을 채워라, 남이 준 감정 쓰레기는 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 당장 내다 버려라, 여러가지 말들을 하는데 적어도 이 사람의 대단한 장점은 여기에서 빛이 난다. 그는 휘둘리지 않고 방황이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었든,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사람이다. 결론을 자기 안에서 찾을 줄 아는 사람. 이 점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결국 내 인생의 가장 어두웠던 순간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상담사를 찾아갔다. 이 도보여행을 시작하기 1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신뢰나 믿음 같은 건 없었다. 나는 빈스가 알려준 다른 상담사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내게는 그런 사람들이 풀어줄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아, 내게는 그런 사람들이 풀어줄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니. 저자가 별로 힘주어 쓰지도 않고 지나가는 문장을 보면, 일단 그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할 줄 알고, 그것을 풀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스스로' 자기 확신을 끌어내는 힘. 그래서 역설적으론 나는 이 책을 읽고도 내 마음속 온갖 궂은일들의 해결 실마리는 조금도 얻을 수 없었다. 이 책 자체가 '물은 셀프'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르듯 저자의 상황과 나의 상황이 다름도 자명했기에.





 그럼에도 잘못된 판단으로 말이 최악의 고통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볼 때, 척추가 부러진 연필심처럼 내려앉은 어머니를 볼 때, 맞지 않는 신 때문에 죽은 발톱을 뽑을 때, 그리고 침묵 속에서 머릿속이 텅 비어 머리 전체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노래가 떠올라 미칠 지경이라는 말을 할 때, 순간의 점들을 저자는 입체감 있기 연결해 낸다. 이 수많은 순간을 유기적으로 정리해서 내어놓는 글 전체를 끌고 나가는 리듬감을 느끼며 이 책을 읽는 것은 말하자면....힘든가요? 나는 더 힘들었어요. 라고 말하는 수련자를 보는 마음이랄까. 

 잘 짜인 로드무비는 불행의 총합이 아니며 책 한 권이 될 수 있는 이야기는 그 자체의 리듬을 지녀야 한다는, 잘 쓰인 논픽션의 전형. 550쪽이 마치 50 페이지라도 되는듯 읽는 이의 눈을 붙들고 자기 마음을 담담하게 쓰는 능력을 지닌 작가이다. 물론, 마지막 몇페이지를 보면 오프라 윈프리가 좋아할 만하겠다.....라는 내 머릿속에서는 딱히 긍정적인 느낌으로 분류하기에는 머뭇거려지는 생각이 떠오른다. 뭐, 내가 젊은 도전정신의 미국인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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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2-25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로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여서^^; 그렇게까지 열광적으로 환호할 정도인가 싶었어요. 재미있다는 건 인정^^ 늘 고급스러운 글 잘 읽었습니다♡

Jeanne_Hebuterne 2020-03-19 03:5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달밤님!! 뭐랄까 뜰 여지는 충분히 있고 왜 인기있었는지도 알겠으나 나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요! 술술 넘어가기는 했어요 ㅎㅎ 그리고 칭찬에 너무 기뻐 혼자 댓글 보며 막 좋아하고있습니다. 서재 오랜만에 와도 좋은건, 이렇게 익숙한 모습들이 보여서인것 같아요. 늘 있어주셔서 고마워요, 친절한 달밤님♡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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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 Mother Mary and Joseph!


우리, 그러니까 조이스와 나는 간단히 뭔가를 만들어 먹고 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것저것 준비하길래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물은 게 화근이었다. Can you do these onions? 양파 손질 좀 해줄 수 있어? 라길래 뭔지도 모르고 양파를 썰었다. 나는 사과를 깎을 때 감자 껍질 벗기는 칼이 필요한 사람이어서, 하필이면 그날 아침 호박과 새우, 양파를 넣은 된장찌개를 먹은 날이어서.
 내 머릿속에 있는 된장찌개 속의 양파 모양으로 양파 하나를 손질했다. 이윽고 조리대를 본 조이스가 한 말이었고 난 잠깐 이 인간과 절교할까 망설였다. 햄버거를 만들 거란 걸 나한테 말도 안해줬는데 내가 궁예도 아니고 어찌 알았겠는가. 된장찌개 속 양파도 잘 넣으면 되지, 넌 그럼 양파 없이 먹든가! 속 좁고 뒤끝 있고 기억력 좋은 데다 양파 앞에서 망연자실해 본 이가 나 혼자만은 아니란 걸 줄리언 반스의 책은 까칠하게 이야기한다.




 양파와 관련해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용어로는 slice와 chop이 있는데, 이 단어들은 논리상 서로 다른 방식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slice는 절반으로 자른 양파를 다시 가로로 얇게 자른다는 말이다. 그러면 반원형 양파가 어수선하게 흩어진다. chop은 절반으로 자른 양파를 세로로, 즉 꼭지에서 뿌리쪽으로 여러 겹 흩어지지 않게 벤 다음 가로로 자른다는 말이다. 그러면 잘게 잘린 양파가 수북이 쌓인다. slice는 finely로, chop은 finely와 roughly로 수식할 수 있다. 따라서 '썰다'라는 말은 다섯 갈래로 나뉘는데, 어느 쪽을 택할까 고민하느라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지 못한다. 물론 거꾸로 생각해서 이런 합리적인 자문을 해볼 수 있다. 즉 "내가 식탁에 음식을 받아놓고 '이 음식은 양파를 다르게 잘랐으면 좋았을 텐데'또는 '그랬어야만 하는데'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라고 물으면 물론 대답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이다. 그러나 부엌의 현학자가 내리는 결론은, 양파 자르기가 실패할 수 없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레시피를 열심히 잘 따랐기에 결과가 좋았으리라는 것이다. 


 

 양파 손질은 채썰기인가 다지기인가 세로 썰기인가 어슷썰기, 깍둑썰기, 혹은.... 이런 생각이 들게 하다가 결국, 책에 나온 조리법을 읽고 그대로 순서대로 따르되 단어 하나하나를 까칠하게 짚고 넘어가는 사람, 바로 줄리언 반스다. 
 1946년생, 영국 중부, 옥스퍼드 대학, 사전 증보판 편찬, 평론가, 작가, 메디치상, 구텐베르크상, 페미나상, 세 번의 슈발리에 훈장, 이외 다수 수상, 그러나 내게는 언제나 '팻에게'라는 헌사와 함께 책을 내는 작가. 이번 책은 '그가 요리를 해주는 그녀에게'라는 헌사가 있다. 책의 첫 번째 속지에는 2003이라는 숫자가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의 아내이자 영국의 전설적인 문학 에이전트, 팻 카바나가 뇌종양으로 쓰러져 숨진 시기는 2008년. 그러니 이 책 출판 당시 줄리언 반스는 주방에서 팻 카바나를 위해 요리하고 팻이 초대한 작가들과 식탁에 앉았을 것이다. 
 그 후 그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고 'Levels of Love'를 출간했으니, 시간은 이렇게 사무치고 과거는 이렇게 다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다르게 행동한다. 




 그 과거의 주방에서 줄리언 반스는 한 사람의 pedant가 된다. 이 책에서는 현학자라고 불리지만 실제 의미도 다르거니와 부엌에서 움직이는 반스의 느낌도 현학자라기보다는.....요리책 사진과 단어 하나하나에 편집자처럼 집착하면서도 좀 그대로 따라 해 보려고 노력하는 깐깐한 조리사에 가깝다. 이 단어에 대한 역자 주도 책 안에 있고, 조리법도 간혹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번역도 간간이 보인다. 마음에 걸리지 않는 부분이 전혀 없는 역작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손이 가고,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고, '맞아, 나도 이랬어'라고 생각하게 된다. 
주방에서 요리책을 들추어보는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하되 여전히 까칠하게 1, 2, 4 항으로 구성된 요리책을 보면 '내 요점은 출판사의 실수로 3번이 누락된 게 아니냐는 거고, 그렇다면 그 누락된 내용이 뭐냐는 거에요. 3번이 4번으로 잘못 인쇄된 건지도 모르지만요.'라고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는 깐깐함을 보인다. 즉, 줄리언 반스의 글에는 요리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겪는 상황이 보편적으로 녹아있다. 




바질 페스토를 만들기 위해 말린 바질을 쓰는 경우(조리법 오독), 어쩐지 요리책에 사진이 실린 요리부터 해 보고 싶어 하는 경우(나는 제이미 올리버가 아니다), 어쩐지 자애로운 안주인이 여전히 어디선가 린넨 수건을 표백하고 집안을 어루만질 것 같은 환상(비턴 여사의 살림 교본), 감정이 부엌을 압도하는 경우(줄리언 반스가 요리하는 동안 팻에게 연정을 드러내는 제독의 목소리가 들려버렸다), 'fresh'란 낱말이 들어간 재료가 더 좋을 것 같은 착각(프레쉬 파스타와 슈퍼마켓에 파는 건면 파스타가 용도에 따라 다를 뿐, 어느 한쪽이 낫다는 게 아니다)......이런 환상, 착각, 경우의 수, 오독의 바다를 지나 독자가 마주치는 저녁 식탁의 한 장면.



...그리고 언제든 포미안의 암시대로 애피타이저나 디저트, 또는 둘 다 케이터링 서비스나 제과점에서 쓰면 된다. 프랑스에서는 그런 걸 예사로 여긴다. 이제는 영국에서도 다양한 애피타이저와 그럴듯한 과일 타르트를 사는 게 비교적 용이하므로, 그렇게 안 할 이유가 없다. 이 문제를 이렇게도 논할 수 있다. 손님들이 오기 직전까지 노예처럼 일해서 지친 주인, 그리고 지극히 분별있는 지름길을 택하고 생기 넘치는 주인. 당신이라면 그중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물론 그러려면 우리는 잔존하는 청교도 정신을 극복해야 한다. 상점에서 산 것을 우리가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속임수라는 생각을 억제해야 한다. 한편 그걸 우리가 만든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그건 그저 속임수일 뿐이다.


 
 이쯤 되면 인용과 샘플링의 차이가 주방에서 크로스오버하는 상황이 떠오르는데, 언젠가 생업으로 타르트를 만들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케이터링 주문을 받았는데, 너무 예쁘게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열 명 분량의 디저트로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제철 과일로 적당히 못생기되 성의 있어 보이는 타르트를 주문하는 마음이 바로 저런 것이리라. 샘플링과 인용을 살짝 접어 나빌레라....줄리언 반스도 그러했다. 그는 직접 애피타이저, 디저트를 만들고 메인 요리는 델리에서 포리치니 라자냐를 본인의 집 식기를 가져다주고 당일 그 식기에 받아온다. 요리사의 스트레스 없는 좋은 저녁을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첫 번째 코스를 두고 뭐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좀 분하다). 디저트도 마찬가지였다(괘씸한 것들). 그러나 라자냐를 말할 때는 모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이 라자냐 맛이 기가 막힌데!"
 "다행이군." 내 대답에 흔들림은 없었다. 그것으로 무사히 넘어간 듯했다. 




 그러고는 초대로 왔던 한 손님이 그에게 조리법을 묻고는, '실제 해보았는데 자네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맛이 없더군'이라고 소식을 전한다. 우리 인생의 엑스 팩터는 이런 게 아닐까. 실상과 다른 요리, 디너 파티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저녁 초대, 요리책들이 보여주는 환상, 레스토랑은 집이 될 수 없다는 사실 같은 것.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오늘도 맛집을 찾겠지만, 우리 중 일부는 요리책을 '판타지' 장르로 분류하지 않고 '라이프, 리빙' 장르라고 생각하며 영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 도움을 받기 위해서 뒤적이고, 장을 보고, 주방의 조리대 앞에 설 것이다. 
 그리고는 요리책의 사진과 내가 만든 요리가 런웨이 모델이 입은 옷과 내가 입은 옷 태 만큼이나 다르다 해도 또 요리책을 뒤적일 것이다. 살다보면 자기만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몇가지 요리법 정도는 숙지하고 있는 것, 그리고 주방이 열악하다 해도(난 내 오븐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내다버리고 싶다) 그 또한 아래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줄리언 반스의 'hand to mouth'. 





꿈이란 원래 다 그렇다. 나는 아마 코르뉘 가스레인지는 커녕 내게 확실히 필요한 보조 오븐도 갖지 못할 것이다. 그가 요리를 해주는 그녀 역시 가끔 열망하는 장작 오븐을 갖지 못할 것이다. 부엌에서는 또 무언가 소소한 문제가 계속 생길 것이다. 싱크대 배수구가 막히고, 그 아주 기발한 듯해도 바보 같은 구석 찬장의 문이 빙 돌아 열릴 때 뒤쪽에 놓인 갖가지 물건들이-다행히 주로 과일 티백이-여전히 계속 떨어져도 몇 달 지나도록 사라진 것도 모를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요리에 들이는 노력에 대한 넓은 의미의 은유로 여기도록 해보겠다. 요리는 있는 것(주방 설비, 재료, 솜씨 수준)을 가지고 때우는 것이다. 그것은 작은 성공 하나하나가 가급적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고 실수도 할 수 있는 하나의 절차다. 만일 실제로 꿈의 부엌을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자. 우리가 하는 요리는 그런 부엌에 걸맞아야 할 테니, 그 가중되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하겠는가. 요리를 망쳐도 예의 그 모든 확실한 변명거리에 의지할 길이 없는 것이다. 최소한 지금 이 상태라면, 데이비드 여사 덕분에 새로 발견한 변명거리를 활용할 수 있다. "요리가 생각대로 안 나와서 이거 참 어떡하지. 어떤 멍청한 인간이 냉장고를 가스레인지에 딱 붙여놔서 말이야."


 

 자, 이제 이 책을 다 읽었으니 난 오늘도 텃밭의 토마토, 바질, 딸기, 호박, 당근, 옥수수, 양파에 물과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을 것이다. 그러고는 일찍 수확한 꼬마 딸기와 벌꿀 향이 나는 밀맥주를 마시며 저녁 메뉴를 생각해 볼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언젠가 마주했던 쉐프의 어느 레스토랑을 떠올리며 내 부엌에 요리책과 함께 서 보기. 적절한 작업지시가 없어 양파로 하느님을 찾게 만든 사람도 모름지기 먹어야 하니까. 
 이 책은 줄리언 반스가 요리의 신에게 보내는 조그만 쪽지, 요리책을 읽는 독자에게 띄우는 메시지. 다 읽고 나면 부엌의 요리책을 다시 들춰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수필이다. 






그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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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17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싶어 담아놨는데 쥬드님, 벌써 읽었네요!

Jeanne_Hebuterne 2019-05-17 14:26   좋아요 1 | URL
네 다락방님! 줄리언 반스, 앤 타일러, 권여선, 아고타 크리스토프..이런 작가들은 이름만으로도 구매욕을 팔랑팔랑!! 중간에 번역이 왜 이런 것일까 하는 부분이 좀 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다락방 2019-05-17 14:27   좋아요 1 | URL
쥬드님, 사진에 와인잔도 너무 좋아요!
 
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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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끊임없이 분위기를 띄우려 하고, 다른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는 걸까.





살다보면 여러 번 바뀌는 날씨를 보기 마련이다. 어떤 날은 내가 버젓이 있는데 은근슬쩍 내 옆에 섰다가 슬슬슬 새치기하는 엑스엑스를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마트 냉장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앞으로 쓱 지나가는 사람이 '실례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대한 사건을 제외하면, 사람의 일생은 작은 습관과 그가 제어할 수 없는 타인들의 예측할 수 없는 날씨로 이루어졌다. 




어떤 순간의 서늘함과 후덥지근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날씨. 어떤 구름 뒤에 해가 있을지는 모르니까 그런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나는 더 가만해졌던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를 생각하는 순간, 그냥 그렇게 물 밑으로 가라앉아버렸을 사건이 수면 위로 떠 오르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가만한 나날'은 보여준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재미와 소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마음을 느끼게 해준 소설집. 




1987년 목포 출생, 국어국문학과, 서사창작, 제 9회 젊은작가상, 이런 글귀가 책날개에 적혀있다. 그리고 넘기면 지하철을 갈아타고 약속 장소로 가는 연승의 초조한 기색,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여자친구 진아의 얼굴 가득한 물음표가 보인다. 그들은 연승이 몹시 존경하는 선배를 만나러 가는데, 연승은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제 막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몇편의 작품, 공모전 출품, 그러다 들어간 대형 할인점 체인의 유통 분야, 그러다 그는 이제 영화를 만들려고 하고, 그보다 먼저 다큐 작업을 하는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려 한다. 

작가의 시선은 이들이 곧 만나게 되는 이상하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딱히 예상했다고 말하기도 힘든 선배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연승의 여자친구 진아도, 중한 선배를 좋아하는 연승도 예견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앉을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조그만 공간, 너무나도 작고 천장마저 낮은데 그곳에서 태어난 아기 이야기에서부터 산부인과 이야기 같은 것, 요컨대 제각기 모두가 처음부터 과녁을 맞출 생각이라고는 없이 던져진 화살들같이 같은 지점을 통과하는 상황, 혹은 마음속에서는 알레르기가 올라오는데 하필 마지막으로 다녀온 곳이 뷔페여서 대체 무슨 음식에 내가 이러나, 말하기도 뭣한 상황. 친구와 약속을 잡아놓고서도 내심 '이 친구가 오늘 일이 있어서 못만난다고 문자 한 통 보내줬으면'하고 생각하며 외출 준비를 하는 순간.





 이런 순간의 물밑 흐름을 김세희는 잡아낸다. 그리고 이 작가의 단편을 읽다 보면, 세상에 소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잡아채거나 가르치거나 막아서지 않는 글씨들. 그런 다행스러움은 표제작 '가만한 나날들'에서 담담하고 조용하게 드러난다. 





첫 출근을 앞둔 일요일, 나는 대학로에서 우연히 재화 언니를 만났다. 구름 끼고 쌀쌀한 바람이 불던 오후였다. 그때 스물여섯이던 나는 출근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한답시고 종일 원룸에 혼자 있다가, 괜히 잡생각만 가득해지고 점점 압박감이 들어서 집 밖으로 나갔다. 마로니에 공원 쪽으로 좀 걷다가 아이쇼핑을 할까 싶었다. 밤에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지.




이 스물여섯의 '나'는 블로그 마케팅으로 제품 홍보를 하는 회사에 입사하여 가상의 인물 '채털리 부인'을 만들어 블로그를 꾸민다. 첫 출근을 하며 마음 속으로 재화 언니가 말해준 것처럼 '나는 프로다'라는 말을 주술처럼 되내이던 '나'는 가상의 채털리 부인이 되어 열심히 성과를 자기 눈으로 확인해간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개인 경험은 아주 생생하게 구체적인데, 이러한 구체성은 김세희 작가의 모든 단편 전반에 나타나 있다. 





주민등록번호도 있고, 금요일 밤이면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와 영화를 보며 마시고,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면 딸기와 롤 케이크를 사서 가는 그런 사람들. 김세희의 소설 속에는 멀리 있는 엄마의 잔소리에 넌더리를 내는 원희(현기증)가 있고, 저 아이가 저런 모습이었나 싶어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진아(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거야)가 있다. 첫직장에서 사수로부터 폴더를 만드는 법, 다이어리에 그날그날의 업무를 기록하는 법까지 배우던 선화(드림팀)가 있고, 처음 가본 동네에서 거대한 전기장판을 옆에 놓고 낮에 맥주를 마시는 루미(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가 있다. 



 

이 여자들은 자기가 직접 화자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타인의 눈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이 여자들의 공통된 모습은 버거운 공기에 숨을 참다가도 가볍게 숨을 틔울 줄 아는, 이제 막 자라 어미 새의 둥지를 떠나는 어른의 모습이다.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가 보는 것이 거울 표면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사람의 모습, 한마디로 부끄러움을 배워나가고 이별을 예감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할 줄 아는 여자의 모습. 이렇게 말하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사실 오랜 시간 한국 소설 속의 여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던가를 생각하면, 조경란과 정이현의 인물들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신선함이 다시금 느껴진다. 





어떤 종류의 경험은 소설로밖에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신선함이 순간의 경쾌함으로 그치지 않는 동시에 개인의 경험을 넘어 보편적인 묵직한 잔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의 균형 감각이다. 한 세계에서 일어난 어떤 거대한 사건 앞에서, 그 사건과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의 예리한 날 선 감각, 균형을 잡는 힘. 브레이크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놓치지 않는 흐름을 보노라면 소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한 나날' 속의 경진과 채털리 부인의 목소리 같은 것이.





채털리 부인은 신생아부터 6세까지 사용가능한 '3단계로 변형되는 프리미엄 토들러 침대'에 아기를 재우고, 토요일 밤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개 샴푸계의 샤넬' 제품으로 개를 목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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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업무를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낸 날에는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남아 일상 게시글을 작성했다. 개인 블로그로 보이기 위해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려야 했고, 직원들은 가족과 친척들, 그 반려동물들 사진까지 활용했다. 이웃 수를 유지하려면 이웃을 맺은 블로그를 방문해 댓글도 남겨야 했다. 




라식수술, 치아교정 광고를 교묘히 허위로 만든 블로그에 거짓으로 작성하며 경진은 잠시 이래도 될지 망설이기도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의 결과물에 만족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나아가서는 일을 못 해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예린을 살짝 깔보기도 한다. 한 사람을 만들어나가고 채우는 작은 계단들이 있다면, 경진의 걸음은 계단 어느 즈음에서 층계참을 지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던 순간 이런 브레이크가 걸린다.




블로그 이웃이라는 여자였는데, 그 여자는 자신을 B기업의 뿌리는 살균제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두 아이 중 갓난아기를 잃었고, 다섯 살 아이는 폐가 손상돼 평생 산소 호스를 끼고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이 B기업의 뿌리는 살균제 '뽀송이' 때문이라는, 그 안에 포함된 독성 물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채털리 부인님이 올린 후기를 보고 구매해서 쓰기 시작했거든요. 날마다 사용한다고 했는데 괜찮으신지......아무 일 없으시길 바라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있었다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경진의 엑셀러레이터가 잠시 멈추고 브레이크를 밟게 되는 순간, 그 멈춤에 스스로 답하는 순간, 그리고 내린 첫눈의 대목은 소설을 읽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시간을 통과하고, 그것을 인정한 다음 느끼는 죄책감과 부끄러움. 이러한 부끄러움이 사회의 경험과 개인의 이야기로 겹쳐질 때, 오르한 파묵이 말한 '서로 어긋나는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능력'이 빚어내는 소설 읽기가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나의 첫 직장, 나는 그곳에서 26개월간 일했다. 스물여섯 봄부터 스물여덟 여름 무렵까지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얼굴에 확 와 닿던 건조한 공기며 흰 책상들이 놓여 있던 모습이 선명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은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첫 회사가 화제에 오를 때면, 작은 광고대행사에 다녔다고만 대답한다.

 하지 않는 말들은 그것 말고도 또 있다. 별것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 그곳을 나온 이후 나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책장에 꽂혀 있으나 어쩐지 펼쳐 볼 마음이 일지 않는책. 나는 어디에서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 0과 1 이후의 진심을 보았던 사람. 엄중한 회초리의 사설이 아닌 경진 개인의 경험으로 회자하는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독자. 날씨는 내 옆 사람 탓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마트나 백화점 앞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날씨 때문에 공기가 후덥지근하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주 준엄하게 모든 사건의 시비를 가릴거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김세희의 단편 묶음은 독자에게 어떠한 결심을 하게 만들지 않고 그 자체의 구조 안에서 의문을 가지게끔 만든다. 비슷한 얼굴들 속 다른 얼굴이 보이게끔 하는 작품집이다. 




-따옴표 글은 책속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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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03-2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좀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쟌느님의 페이퍼때문에라도 이 책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말씀처럼 ˝어떤 경험은 소설로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게 읽어서 비로소 정리되고 이해되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Jeanne_Hebuterne 2019-03-24 06:04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너무 오랜만에 알라딘 서재에 와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기분이었는데 블랑카 님 이미지를 보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너무너무 반가워서요!!
이 책은 뭔가 쎄하고 꽁기한데 말하면 내가 소인배같아보이고..근데 기분은 또 그게 아니고 그런 포인트를 너무 잘 짚어내서 읽다가 그 생생함에 놀랐어요. 결국, 시인과 소설가는 더 잘 느끼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읽다가 정이현의 삼풍 백화점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잘 지내시지요? 새해엔 서재에서더 자주 보아요, 반가운 블랑카님^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