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강의의 마지막 과제 가운데 하나가 동남아문학 강의다. 꽤 오랜기간 세계 각국과 각 지역의 문학을 읽어왔지만, 동남아문학은 이제껏 다루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한데, 베트남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도 번역본이 현저하게 부족해서다. 특히나 세계문학전집판으로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는데, 지난주에 태국 현대소설이 처음 나왔다. 씨부라파의 <그림의 이면>. 1937년작이다. 
















태국어가 낯설고(우리로선 발음도 표기도 어렵다) 영어자료도 별로 없어서 접근이 어려운데(위키피디아의 태국문학 항목을 보면, 현대문학, 곧 20세기 문학에 대해선 댓줄 정도의 소개만 나온다), 씨부라파라는 필명도 그렇다. 본명은 꿀랍 싸이쁘라딧(1905-1974)이다. 여러 필명을 썼는데, '씨부라파'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라고. <그림의 이면>은 로맨스 소설로 나이와 신분 차이가 나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고, 태국에서는 두 차례 영화화되고 현재까지도 많이 읽히는 작품이라 한다. 


작품이 더 번역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유일하게 강의에서 다룰 수 있는 태국 현대문학 작품이다. 앞서 지난 1월에 '동남아시아문학총서'로 나왔던 아깟담끙 라피팟(1905-1932)의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1929)은 벌써 절판되었기에.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은 태국 최초의 현대 장편소설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라고 하고, 작가 아깟담끙 라피팟은 '왕족 작가'다. 연보를 보니 24살에 쓴 작품이고 27세에 요절했다. 


절판된 지 오래 되었지만, 또다른 태국문학 작품으로는 찻껍짓의 <무지에 의한 단죄>(1981)다. 작가는 1954년생이고 아직 현역이다. 작품도 40여 년 전에 출간됐지만, 앞의 두 작품에 비하면 최근작에 속한다. 한국어판은 1995년에 나왔다. 

















그밖의 작품으론 제인 베자니바(1963-)의 <카티의 행복>(2003)이 있는데, 2009년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우리말로도 번역본이 나왔다. 현재는 절판. 영어판은 작가가 직접 영어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내가 조사한 범위에서는 이 네편이 우리에게 소개된 태국 현대문학이고, 그나마 유일하게 절판되지 않은 작품이 이번에 나온 <그림의 이면>이다. 현대 태국문학이 빈곤한 것인지, 역자가 없는 것인지, 여하튼 상황 자체는 그렇다. 그나마 한 작품이라도 강의에서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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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대문학의 대표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솔 벨로(1915-2005)의 <오늘을 잡아라>(1956)가 다시 번역돼 나왔다. 몇년 전 솔 벨로 강의 때 번역본이 절판돼 다루지 못했었다. 대표작 <허조그>와 함께 과제로 넘겼던 작품. 솔 벨로는 60년이 넘는 창작기간에 <허공에 매달린 사나이>(1944)부터 <라벨스타인>(2000)까지 14편의 장편소설을 썼다(거기에 단편소설집과 논픽션이 각각 4편, 희곡 한 편이 더해진다). 이들 작품으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 그리고 세 차레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세 차레 수상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국내에도 번역본이 제법 나왔었지만 거의 품절되거나 절판된 상태다. <오늘을 잡아라>가 ‘리스타트‘의 출발점이 되면 좋겠다(개인적으론 유대문학 작가로 분류되는 솔 벨로와 필립 로스의 성취를 음미해보고 싶다). 주요작 가운데 <험볼트의 선물>(1976년 퓰리처상 수상작)과 <허조그>(1964년 전미도서상)는 새 번역본이 나온다고 한다. 첫번째 전미도상 수상작 <오기 마치의 모험>(1953)부터 <험볼트의 선물>(1975)까지가 소위 전성기의 작품인데(6편이다) 이 정도까지는 다시, 혹은 새로 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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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목요일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2020년의 루이즈 글뤽, 그리고 지낸해의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이전까지의 수장자는 대개 강의에서 다루었다(트란스트뢰메르와 밥 딜런이 예외다). 지난 10년간의 수장자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가를 꼽으라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벨라루스)와 올가 토카르추크(폴란드)를 꼽겠다. 















다행히도 두 작가의 작품은 국내에 꽤 소개된 편이고, 지난주에도 토카르추크의 에세이 <다정한 서술자>(2020)가 번역돼 나왔다(영역판도 아직 안 나온 걸로 보인다). 토카르추크의 책으로는 최신간이다. 겸사겸사 국내에 소개된 토카르추크의 작품을 정리해본다. 토카르추크의 주력은 장편소설로 현재 9권을 발표했고(영어로는 지난해에 <야쿱의 서>가 다섯번째 번역서로 나왔다. 9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2권의 단편집, 1권의 시집, 5권의 에세이집, 1권의 아동문학(그림책)이 더해진다(단편도 하나 번역돼 있다). 이 가운데, 한국어로는 4권의 소설과 그림책에 이어서 이번에 에세이집이 추가된 것. 

 

장편소설의 목록은 이렇다(한국어판이 없는 경우는 영어판을 넣었다).


1993 <책의 인물들의 여정>


1995 <E.E.>


1996 <태고의 시간>



1998 <낮의 집, 밤의 집>



2004 <최후의 이야기>


2006 <세계의 무덤 속에 있는 안나>


2007 <방랑자들>

















2009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2014 <야쿠프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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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엘리엇의 사중주 네 편

3년 전 페이퍼다. 올해는 <황무지> 출간 100주년이기도 한데 아직 엘리엇과 관련한 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새번역의 <황무지>나 시론집(에세이)가 기다리는 책이다. 조이스의 새번역 <율리시스>는 12월경에 나온다니 엘리엇도 구색을 맞춰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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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의 대표작 The Sound and the Fury(1929)의 새 번역본이 나왔다. 오랫동안 <음향과 분노>라는 제목으로 불리다가 문학동네판과 함께 <소리와 분노>로 안착되는가 싶었는데 이번에 나온 열린책들판 <고함괴 분노> 때문에 다시 경합이 이어지게 되었다.

알려진대로 맥베스의 대사에서 제목을 가져온지라 번역은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맥베스>의 번역에서 sound는 ‘소음‘으로도 많이 번역하기에 <소음과 분노>도 가능한 선택지다(˝인생은 백치가 들려주는 이야기,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찼을 뿐 아무 의미도 없다.˝)

맥베스의 대사에서 sound는 사람이 내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비분절적인 소리를 가리킨다. 곧 voice에 대립하는 말이다. ‘음향‘이란 번역의 짝은 그러니까 ‘음성‘이다. 음성이 아닌 소리라는 뜻. 마찬가지로 ‘소리‘는 ‘목소리‘에 대응한다.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의 대립이다. 반면에 ‘큰소리‘란 뜻의 ‘고함‘은 ‘분노‘와 연결된다. ‘소음‘은 짝이 없이도 무의미한 소리를 가리킨다.

내가 읽은 <소리와 분노>(<음향과 분노>도 갖고 있지만 <소리와 분노>만 세번 읽었다)에서 제목은 ‘백치‘ 벤지(벤저민)가 내는 소리와 관련되는데 그가 내는 소리 내지 반응은 ‘웅얼거림‘과 ‘울부짖음이다. 의미는 그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제목으로 삼기에는 어색하다. 무의미한 ‘사운드‘를 의미로 고정시키기가 어렵구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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