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강의차 아주 오랜만에 읽는다. 그 사이에 전집(전8권)도 나왔지만 여러 여건상 단편선 정도에서 만족하려 한다. 한데 이것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읽어볼 작품들이 분산돼 있어서다.

독서가의 물음은 ‘무엇을 읽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다. 작가의 대표작을 읽느니 마느니 하는 단계가 있다면, 그 다음 단계 독자부터가 내가 동지애를 느낄 만한 독자들이다. 동지들끼리는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느냐고 묻지 않는다. <소송>까지도 필독서 범주에 속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서로의 감상을 물어볼 수 있는 건 <실종자>나 <성> 정도부터다. 그리고 <일기>와 <편지>에 대해서는 애환과 고충을 나눌 수 있다.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요?˝

아쿠타가와가 사숙한 스승이기도 한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련님>이나 <마음>을 읽었다면 교양독자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재미있었다거나 지루했다거나 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으리라. 한데 동지들끼리는 <플베개>와 <갱부>에 대해서, <행인>과 <명암>에 대해서 질문한다. 번역본들 간의 차이에 대한 소감까지 나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고는 소세키의 <문학론>과 <문명론>에 대해서 근심어린 표정이 된다.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요?˝

아쿠타가와의 첫 창작집 <라쇼몬>을 읽었고 구로자와의 영화 <라쇼몽>이 ‘라쇼몬‘과 ‘덤불 속‘을 각색한 영화라는 것까지 안다면 교양독자다. ‘인식론적 상대주의‘까지 들먹인다면 맞춤하다. 독서가가 되는 것은 그의 첫 신문연재소설 <희작삼매>나 유서에 해당하는 <어느 바보의 일생>을 읽고자 할 때다. 그러면서 <아쿠타가와의 중국기행>을 놓고 표정이 굳어진다.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요?˝

독서가의 질문이면서 문학강사가 매주 던지는 질문이다. 물론 주어진 시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일주일은 7일에 불과하기에, 책만 읽기에도 인생이 길지 않기에 부닥치게 되는 질문이다. 아쿠타가와의 <어느 바보의 일생>을 읽어보려고 책을 주문하려다(전집이나 <쓸쓸함보다 더 큰 힘이 어디 있으랴> 등에 수록돼 있다) 든 상념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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