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때문인지 주말이면 잠을 보충하던 습관 때문인지 아침을 먹고는 다시 수면을 청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오늘 벌어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3차전은 최장경기시간 기록을 세웠군). 내주부터는 다시 일상으로(강의가 일상이다) 돌아가야 하기에 강의자료도 만들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가을학기의 후반전을 앞두고 있다고 할까.

자주 다니던 동네 카페에서 익숙한 맛의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다가 어제 적은 ‘김윤식과 그의 시대‘의 연장선상에서 선생의 문학기행과 예술기행을 떠올렸다. 이 분야의 책들로는 독특하지 않았던가 싶다. 주로 해외 한국학학술대회 참석차 떠났다가 미술관에 들러 만났던 그림들과 작가들의 발자취 이야기를 담았다. <문학과 미술 사이>가 내가 제일 먼저 읽은 책이고 가장 좋아한 책은 <낯선 신을 찾아서>였다. 지금은 모두 절판된 상태. 거기에 더하여 <환각을 찾아서>와 <샹그리라를 찾아서> 등의 책들이 이 계열에 속한다(<김윤식 문학기행>이라는 다소 멋없는 제목의 책도 있긴 하다).

공통적인 것은 ‘찾아서‘라는 말이 담고 있는 갈구와 방황의 정신이다. 훼손된 세계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문제적 주인공의 여정이 바로 소설의 형식이라고 루카치가 말했던가. 루카치의 세례를 받은 김윤식 비평 역시 근대와 함께 근대 극복을 동시에 지향한 운동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것은 방황의 여정이지만 <파우스트>에서 괴테가 정식화한 대로 우리는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방황하는 자는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괴테(독일문학)의 계산법이다.

독일문학기행은 내게 그러한 독일문학의 유산을 현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내달에는 문학기행 뒤풀이도 계획하고 있는데 뒤풀이 강의까지는 이 문제도 더 정리해봐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안 그래도 괴테에 관한 책들을 아침에 빼놓았다. 여행을 정리하는 여행은 다시 책속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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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10-2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모두 구해 놓고도 읽질 못했네요.
책속의 그 현장을 찾아가 볼수 없는 저에게
믿을만한 저자가 책을 남겨 주어서 감사할 따름~
빠져들게 만드는 필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더더욱.

로쟈 2018-10-27 21:15   좋아요 0 | URL
매우 드문 열정의 비평가였다고 생각해요.
 

엊저녁에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른가 김윤식 선생(1936-2018)의 부고를 접했다. 위중한 상태라는 소식은 들은 바 있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하던 해 ‘한국근대문학의 이해‘라는 강의를 들은 이후 30년간 선생의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이 배웠다. 러시아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 근대와 근대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강의하고 있는 현재의 일상도 선생의 강의와 책에서 계발된 바 크다. 공저를 포함해 250권이 넘는 저작은 앞으로도 후학들에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질에 있어서도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필두로 한 선생의 한국근대문학사 탐구와 비평은 후학들이 뛰어넘어야 할 산맥이다.

올해 한국문학계는 황현산 선생(1946-2018), 허수경 시 인(1964-2018)에 이어서 소중한 경륜과 자산을 잃었다. 애석한 마음과 함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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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2018-10-26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올려주시는 교수님께 감사드려요
문학의 깊이를 폭넓게 배우고 있고 자극도 됩니다
건강관리 잘하십시오~

로쟈 2018-10-26 23: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평전이 출간돼 ‘묻지마 구입‘을 했다. 도가와 신스케의 <나쓰메 소세키 평전>(AK)으로 이와나미문고본이 원저이므로 가장 대중적인 소세키 평전이 아닐까 싶다. 욕심으로는 문고본보다 더 방대한 분량의 평전이면 좋았겠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평전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희소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로는 역자가 앞서 번역한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AK)도 참고할 수 있다. 역시 이와나미 시리즈로 나온 책이다. 그리고 아내인 교코의 <나쓰메 소세키, 추억>(현암사)도 당연히 추가할 수 있다.

저자 도가와 신스케는 근대일본문학전공 학자로 1936년생이니까 원로다. 대학의 명예교수이면서 현재 일본근대문학관의 고문으로 재직중이라고. 아득히 먼 기억처럼 여겨지지만 지난겨울 일본근대문학기행차 일본에 갔을 때 공사중이어서 일본근대문학관을 보지 못한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대신에 요코하마에 있는 근대문학관에 들렀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필히 확인하고 둘러봐야겠다. 소세키와 일본근대문학 기행의 한 필수코스로. 그때는 소세키 작품에 등장하는 가마쿠라 해변도 가볼 수 있겠다.

일본근대문학 강의를 몇 차례 진행했는데, 현대문학 쪽 강의를 겨울에 진행하고 내년에는 다시 근대문학 주요 작가나 유파에 대한 강의를 기획해봐야겠다. 언젠가는 소세키 전집 강의도 다시 진행하고. 아, 온통 강의와 여행으로 채워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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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1862-1937)의 뒤를 잇는 여성작가는 누구일까란 질문을 던졌는데, 그에 화답하는 듯한 책들이 나왔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1966)의 작가 진 리스(1890-1979)의 단편선 <진 리스>(현대문학)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주나 반스(1892-1982)의 대표작 <나이트우드>(1936)다.

생년은 진 리스가 앞서지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물론이고 출세작 <한밤이여, 안녕>(1939)도 <나이트우드>보다 늦게 발표된 작품이어서 문학사의 자리는 주나 반스가 앞설 것 같다. 그럼에도 거의 동시대를 살았기에(둘다 90세의 수명을 누렸으니 장수한 편이다) 같이 묶어도 되겠다.

‘여성‘작가나 ‘여성‘문학이란 용어를 쓰는 것은 특히 진 리스의 경우 여성 문제에 대한 예민한 자각과 첨예한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이트우드>는 퀴어문학의 고전으로 지칭되는데 여성문학과 퀴어문학의 차이 혹은 페미니즘문학에서 퀴어문학의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진 리스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루었고 강의한 내용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숙제를 더 떠안은 느낌이지만, 이런 부담은 언제나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한다. 그 비명이 앓는 소리와 분간은 잘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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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학기에 20세기 미국문학을 다루면서 드라이저에 이어 이디스 워튼을 읽었다. 두 대표작 <기쁨의 집>(1905)과 <순수의 시대>(1920) 강의가 일단락되었는데, 여유가 있어서 더 다루게 된다면 몇권 더 얹을 수 있겠다. 다행히 주요작들이 모두 번역돼 있는 상태인데, <순수의 시대>와 관련해서 같이 읽어볼 만한 작품들은 <암초>(1912), <그 지방의 관습>(1913), 그리고 <여름>(1917)등이다. <이선 프롬>(1911)역시 주요작이지만(<겨울>이란 제목으로도 번역되었다) 워튼이 즐겨 다루는 ‘옛 뉴욕‘과는 무관한 작품이다.

워튼의 작품들은 뉴욕 상류사회의 풍속도를 보여주는 사회소설(더 정확하게는 ‘사교계소설‘)로서 의미를 갖지만 주제적 차원에서는 여성 문제를 다룬 소설로 19세기초 영국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과 비교된다. 사회 속의 여성의 삶과 그 조건(혹은 굴레)를 두 작가의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데, 워튼이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결혼뿐 아니라 이혼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당장 <순수의 시대>의 여주인공 엘렌(올렌스카 백작부인)은 남편의 곁을 떠나서 이혼소송을 제기하려 한다. 비록 가족의 압력과 악화된 재정상황에 굴복하여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고 말지만 그런 ‘포즈‘조차도 희귀하면서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주체적인 결혼‘이 여성 주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성문학의 주요 주제라면 그에 이어지는 것은 ‘주체적인 이혼‘이다. 이혼 미수가 아닌 이혼을 다룬 워튼의 작품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워튼 자신은 1913년에 28년간 살아온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함으로써 하나의 전범이 된다(그녀는 곧장 파리로 건너가서 1937년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23살에 결혼했던 워튼은 이혼 이후에 24년의 삶을 더 살았다). 100년 전의 사례인데 여성문학의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21세기의 이디스 워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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