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슈트라우스(Strauss)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웅장한 선율과 함께 인류 역사의 새벽을 보여준다. 인류의 조상은 주변의 사물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문명을 만들어 간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Nietzsche)의 철학을 음표로 풀어낸 곡이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책세상, 2000)

* 아서 C. 클라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황금가지, 2014)

* 아서 C. 클라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황금가지, 2017)

* 세스 S. 호로비츠 소리의 과학(에이도스, 2017)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작곡가 이름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이 슈트라우스라서 왈츠의 왕으로 알려진 요한 슈트라우스 2(Johann Strauss II)로 오해할 수 있다. 소리의 과학을 쓴 저자 혹은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도 작곡가 이름을 혼동했다(소리의 과학초판 23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작곡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성이 같을 뿐 혈연관계가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교향곡으로 잘못 소개하는 글을 종종 보게 되는데 교향시가 맞다. 교향곡과 교향시 둘 다 관현악곡이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 교향곡이 다악장 형식의 기악곡이라면, 교향시는 단일 악장으로 구성된 표제음악이다.

 

 

 

 

 

소리의 과학》 초판 262빈센트 프린스(Vincent Prince)’라는 미국의 영화배우 이름이 나와 있다.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빈센트 프린스는 공포영화 연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런데 빈센트 프린스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영화배우는 없다.

 

빈센트 프린스는 빈센트 프라이스(Vincent Price)’의 오식이다.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서 특유의 목소리와 광기가 느껴지는 눈빛을 가진 프라이스는 공포 영화 전문 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명곡 스릴러 뮤직비디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라이스는 뮤직비디오 중반부(유튜브 영상 6분 32초부터)에 나오는 나레이션을 맡았다.

 

 

 

 

 

 

 

프린스하면 마이클 잭슨과 함께 80년대 미국 팝 음악을 주름 잡은 프린스로저스 넬슨(Prince Rogers Nelson)을 빼놓을 수 없다. 프린스는 소울 음악을 대중화시킨 천재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이왕 프린스얘기가 나온 김에 그의 대표곡 퍼플 레인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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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2 15:32   좋아요 0 | URL
‘빈센프 프린스’를 보고나서 책 읽기를 잠시 멈추고, 프린스의 <퍼플 레인>을 들었어요. 그 날 저녁에 비가 내리고 있어서 프린스의 곡이 무척 반갑게 느꼈습니다.

stella.K 2018-01-22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아직도 못 본 1인이다.

몇년 전 교회 청년부 홈커밍데이에서 친구를 만난 적이 있어.
거의 20년이 넘었지. 물론 남자고.
그런데 옛날 모습이 거의 없는 거야.
목소리로는 알아 보겠더군.
그 친구 목소리가 부드러운 중저음이었거든.
거기 모인 사람도 목소리 여전하단 칭찬만 자자하더군.
그때 알았어.
사람은 시각에 민감한 것 같아도 실은 청각에 더 예민하지 않을까?
외모는 변하더거든. 목소리는 그거에 비하면 느려.
못 생겨도 목소리 좋고 예쁜 말 쓰면 사람은 끌리게 되어있는 것 같아.

근데 오늘 글은 제목 먼저 생각하고 쓴 글 같다.ㅋㅋ

cyrus 2018-01-23 14:34   좋아요 1 | URL
저는 중저음인데 경상도식 사투리와 험한 말을 써서 그런지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군대에 있을 때 선임이 제 말투와 목소리를 처음 듣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선임 입장에서는 사투리 심한 말투와 중저음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 나쁘게 느꼈던가 봐요. 그 이후로 목소리 톤을 부드럽게 하고, 사투리를 안 쓸려고 노력했어요. ^^

제목을 정하느라 나름 고민했어요... ㅎㅎㅎ

stella.K 2018-01-23 15:00   좋아요 0 | URL
ㅎㅎ 그 친구는 목포 사람이야.
거의 안 쓰긴하는데 간혹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있지.
남자가 중저음은 낼 수 있지만 부드럽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
그게 또 보면 성격이나 인품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좀 성직자 같은데가 있었는데 교육자 집안이더군.
그제서야 이 친구를 이해하겠더군.
물론 그 친구는 교육자는 아니고 사업해.
독특하긴 하지?ㅋ

cyrus 2018-01-23 15:05   좋아요 0 | URL
목소리는 좋은데 사투리가 심하면 확 깨요. 저처럼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01-2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센트 프린스 읽고는 이거 혹시 프라이스 말하는 거 아니야.. 했는데 바로 지적하시네요...
ㅎㅎ 프린스라니...

cyrus 2018-01-23 14:35   좋아요 0 | URL
오식 덕분에 프린스의 명곡을 듣게 돼서 기분 좋았습니다. ^^

비연 2018-01-2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 책 흥미로와 보려고 머리맡에 두었는데... 오타 수정되었기를 ㅜㅜ

cyrus 2018-01-23 14:37   좋아요 0 | URL
출판사 직원이 이 글을 확인하고 오류를 수정했으면 좋겠어요. ^^

레삭매냐 2018-01-24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보다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를 더 좋아합니다.

예전에 빈 필의 비엔나 신년 음악회를 즐겨
들었었죠. 요새도 하나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엠제이보다 프린스가 더 나은 가수
라고 생각합니다.

<퍼플 레인>도 좋지만 국내 금지곡이었던
<Let‘s Go Crazy>나 처음 들었을 땐 변태같다고
싫어했던 <Kiss>야말로 프린스가 가진 똘기를
더 대변하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키스의 가사는 정말 저질스럽다고 할 정도로
노골적이라서요 ㅋㅋㅋ

아,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프린스의 최고
곡은 <U Got the Look>입니다.

cyrus 2018-01-24 16:36   좋아요 0 | URL
프린스의 곡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프린스의 곡을 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라서 선뜻 무슨 곡부터 들어야할지 몰랐어요. 다른 분들이 추천하는 곡 위주로 들어보려고 해요. ^^
 
소리의 과학 - 청각은 어떻게 마음을 만드는가?
세스 S. 호로비츠 지음, 노태복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언어는 대체로 시각과 청각에 의존한다. 대개 사람들은 청각보다 시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각만큼이나 청각은 훨씬 더 중요하다. 청각은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다. 청력이 손상되면 단순히 못 듣는 것 이상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청력이 떨어져서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귀가 어두운 노인들은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켜 마음의 상처를 받기 쉽고, 이들을 모시고 사는 가족들은 대화할 때 크게 소리를 질러야 한다.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소리는 공기를 비롯한 매질이 진동하고 그 진동이 음파로 고막에 전달돼 뇌에서 감지하는 현상이다. 귓바퀴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알고 그 소리를 모아 고막 쪽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소리가 잘 안 들릴 때 손바닥으로 귀를 살짝 모으는 행동은 그런 작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고막은 귀로 들어온 소리의 파동을 효과적으로 울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귀는 어떻게 소리를 듣는 신체기관으로 발달할 수 있었을까?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세스 S. 호로비츠(Seth S. Horowitz)는 ‘청각의 생물학’과 음향 지식을 총동원하여 청각의 진화 과정 파헤친다. 물고기들은 몸통의 측선을 통해 물의 진동 자극에 반응하면서 소리를 듣는다. 인류의 청각은 물고기의 감각기관 측선과 비슷하다는 것이 진화론적 입장이다. 물속에 살았던 초기의 척추동물은 머리에 위치한 반고리관과 이석 기관을 이용하여 진동을 감지했다. 동물들은 복잡한 주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감각 기관을 진화시켰고, 듣기 능력이 향상되자 동물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자는 소리를 내는 동물들의 첫 등장이 진화 역사를 바꾼 ‘위대한 도약’이라고 말한다.

 

동물과 인간의 청각은 주위의 배경 잡음에 놀랍도록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새는 짝을 찾거나 천적의 위협을 동족에게 알리기 위해 소리를 낸다. 소리가 짝이나 동족에게 잘 전달되려면 새는 배경 잡음 이상의 주파수 영역에 가까운 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대화할 때 특정인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특정인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보다 작더라도 우리는 배경 잡음을 무시하고 그 사람의 소리에만 집중한다. 심리학에서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를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원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보고자 하는 것만 눈에 보이며 듣고 싶은 것만 귀에 들린다. 여기까지는 칵테일 파티 효과를 설명하는 심리학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칵테일 파티 효과를 진화생물학 관점으로 분석한다. 초기 인류의 청각 시스템은 언제나 24시간 켜져 있는 경보 시스템과 같다. 초기 인류는 주위 환경이 갑자기 변하거나 적이 출몰하면서 생기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소리의 출처가 낯선 것인지 아니면 친숙한 것인지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특정인의 목소리가 유독 잘 들리는 반응은 진화의 산물이다.

 

오감 중 청각이 감정 유발 효과가 가장 크다. 청각은 인간의 감정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감각이다. 마케팅 기법의 하나인 ‘징글(Jingle)’은 기업이나 상품의 이름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소리나 광고 음악이다. 쉬운 멜로디에 무조건 브랜드명만 반복해 읊조리는 CM 송, 즉 중독성, 또는 세뇌 효과를 노린 CM 송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소리의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영화 <조스(Jaws)>의 배경음악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영화음악으로 회자된다. 이 배경음악은 물속에서 식인상어가 서서히 등장할 때 흘러나온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서서히 조여 오는 긴장감 넘치는 연출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듣고 두려운 감정을 느낀다. 이처럼 소리는 감정을 일으키는 강력한 자극이 된다. 그리고 영화를 보지 않고, <조스> 배경음악만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어가 인간에게 다가오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떠올린다. 친숙한 소리만 들려도 정서적 연상 작용이 생긴다.

 

신생아는 엄마의 젖을 빨거나 그저 가만히 안겨 있는 동안 자궁의 끊이지 않는 박동 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인생은 소중하다는 것을 느껴진다. 우리는 자신의 심장이 멈출까 봐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이 침묵할까 봐 두려워한다. 청각은 살아남기 위해 진화된 뛰어난 감각이다. 그러니 청각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라. 우리는 청각을 통해 이 세상뿐만 아니라 좋든 나쁘든 간에 소리를 듣고, 느끼고, 인식한다. 청각은 이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이어주는 ‘귀로 듣는 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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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0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0 19:29   좋아요 0 | URL
저는 음악이 좋으면 반복 듣기를 합니다. 질릴 때까지요. ^^

2018-01-20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1 09:08   좋아요 0 | URL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제 성격상 경청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경청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어요. ^^

수이 2018-01-2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빌 에반스 오빠 듣는 맛에 사는데 청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있다오. 요즘 그대는 어떤 음악 즐겨 듣는지 궁금하오~

cyrus 2018-01-23 14:39   좋아요 0 | URL
저는 기분 내키는 대로 음악을 들어요. 최신 노래보다는 8, 90년대 국내가요, 팝송 위주로 들어요. 요즘 아바 노래가 제 귀에 꽂혔어요. ^^
 

 

 

 

1863년 마네(Manet)「풀밭 위의 점심」을 살롱에 출품했을 때 이 작품은 ‘역겨운 졸작’으로 평가받았다. 살롱이 외면한 그림은 낙선전에 전시되었다. 그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일상의 광경에 뻔뻔하게 끼어든 옷 벗은 여인에게 야유와 조롱을 보냈다. 마네는 새로운 예술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나중에 인상파를 형성하는 젊은 화가들이 모여들자 그는 새로운 예술의 지도자적 존재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기존의 회화 방식에 저항하는 반란자들의 시대를 지켜본 증인들이 있었다. 보들레르(Baudelaire)에밀 졸라(Emile Zola). 그들은 인상주의 미술에서 ‘현대성의 출현’을 감지했다.

 

 

 

 

 

 

 

 

 

 

 

 

 

 

 

 

 

 

 

 

* 보들레르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은행나무, 2014)

* 보들레르 《화장 예찬》 (평사리, 2014)

*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현대 생활의 화가》 (인문서재, 2013)

 

 

 

보들레르의 비평문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1863년에 발표한 글이다. 이 글이 발표된 1863년은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을 선보인 역사적인 해이다. 언뜻 비평문 제목만 봐서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가 누군지 짐작하기 힘들다. 보들레르의 후광을 입은 마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마네가 아니다. 콩스탕탱 기스(Constantin Guys)[1]라는 신문 삽화가를 가리킨다.

 

기스는 그림을 그렸으나 전업 화가로 보기 어렵다. 그는 종군기자로 활동하여 그리스 독립전쟁, 크리미아 전쟁 현장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기스는 전쟁 삽화뿐만 아니라 제2제정기 파리 사회 풍속을 소재로 한 삽화들도 그렸다. 나폴레옹 3세 치하의 제2제정기 파리는 대대적인 도시개발 사업으로 세련된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보들레르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를 통해 기스의 그림들을 옹호하면서 ‘현대성’의 의미를 주장했다. 보들레르가 말하는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현시대의 유행과 풍속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들레르는 기스를 ‘관찰자’, ‘소요객(flâneur, 플라뇌르)’, ‘풍속화가’, ‘현상(現狀)의 화가’라고 부른다. 번역하기 까다로운 프랑스어 ‘플라뇌르’는 한량, 산책자를 모두 합친 말인데, 주로 ‘산책자’로 번역된다.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에서는 ‘소요객’으로 번역되었다. 말 그대로 소요객은 마음대로 도시의 거리를 거니는 익명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기스는 자신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의 익명성을 존중한 보들레르는 자신의 비평문에 기스를 ‘G.씨’라고 썼다.

 

기스를 옹호한 보들레르의 비평문은 마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헌인가? 그렇다. 마네는 동시대의 삶을 그대로 묘사한 ‘현대 예술가’다. 그는 자신이 본 것, 즉 시대의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마네의 시도는 벌거벗은 여신이나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을 그리던 고전주의 화풍에 도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보들레르는 ‘현대성’이 충실히 반영된 마네의 그림을 호평했다.

 

 

 

 

 

 

 

 

 

 

 

 

 

 

 

 

 

 

* 에밀 졸라 《예술에 대한 글쓰기》 (지만지, 2012)

 

 

 

졸라는 보들레르보다 마네를 열렬하게 지지한 사람이다. 그가 쓴 『나의 살롱』이라는 비평문집에 ‘마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마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조명한 전기 『마네』까지 쓸 정도로 마네의 진면목을 세상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마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졸라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프랑스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추도문을 쓰기도 했다. 졸라가 폴 세잔(Paul Cézanne)을 옹호했다가 나중에 그와 사이가 멀어진 작가로 알려졌으나 마네와 졸라와의 친밀한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예술에 대한 글쓰기》는 『나의 살롱』, 『마네』 일부를 발췌하여 편집한 책이다. 완역본은 아니지만, 마네의 예술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비평 선집이다.

 

졸라는 그림의 주제를 찾기 위해 애쓰고 분석하는 비평을 반대했다. 보수적인 살롱 심사위원은 고전적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도 그 속에 교훈을 읽을 수 있는 그림들을 선호했다. 살롱 심사위원이 보고 싶은 교훈은 ‘그림의 주제’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화가들은 ‘옛 것’을 선호하는 심사위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신화와 전설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았다. 그런데 졸라는 옛 것을 답습하는 틀에 박힌 그림과 그것을 감상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졸라는 환상적이면서도 과장된 신화와 전설이 아닌 ‘진실한 삶의 현장’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작은 기교들,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아부성 주제들, 교훈적이거나 대중과 친밀해지려는 의도가 농후한 작품들, 어느 유명인의 위업을 강조하기 위한 역사적 과장이나 또는 지나치게 미화된 몽상 등과 같은 작품들을 가장 경멸한다. 반면 나는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들, 독창적이고 힘찬 손에서 태어난 작품들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나의 살롱』 ‘예술의 시점’ 편, 56쪽)

 

 

졸라가 말하는 ‘개성 있는 작품들’이란 동시대 삶의 진실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담은 그림들이다. 마네와 인상파 화가들은 일상생활 범위 안에서 만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과 풍경을 즐겨 그렸다. 인상파 화가들은 동시대인들의 평범한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이 그림을 감상하면서 특별한 주제나 의미를 찾는다는 건 난센스이다.

 

 

 

 

 

 

 

 

 

 

 

 

 

 

 

 

 

* [절판] 줄리 마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 (다빈치, 2002)

* 아르망 푸로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글항아리, 2009)

 

 

 

여성의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즐겨 그린 베트르 모리조(Berthe Morisot)는 보들레르와 졸라의 예술관 모두에 부합하는 화가이다. 보들레르의 '현대성'과 졸라의 '세상의 진실'이라는 예술적 관점에서 모리조의 그림을 본다면 개성이 넘치고 정감이 가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모리조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현대성, 즉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는 동시대 여성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또 그녀는 그림의 소재가 되지 못했던 여성의 가사 노동에 주목했다. 마네, 모네(Monet)가 새롭게 변모하는 ‘도시의 세련미’를 발견했듯이 모리조는 남성 인상파 화가들이 주목하지 못한 ‘일상의 소박미’를 발견했다.

 

 

 

 

 

 

 

 

 

 

 

 

 

 

 

 

 

모리조는 대단한 일이 아닌 것들도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실한 삶의 현장’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아주 사소한 일상, 어머니가 잠자는 아기를 바라보는 장면 같은 것도 그림의 소재가 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주 사랑스러운 ‘삶의 진실’이다.

 

 

 

 

 

 

 

 

 

 

 

 

 

 

 

* 제프리 마이어스 《인상주의자 연인들》 (마음산책, 2007)

 

 

섬세하고 난해한 모리조의 작품은 페미니즘 평론가들에 의해서만 과대평가되었고, 나머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되었다. 역사적인 맥락이나 극적 긴장, 서사적 의미 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마네의 작품보다 더 심했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그림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게끔 보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다. (제프리 마이어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상주의 연인들》을 쓴 제프리 마이어스는 인상파 그림, 특히 모리조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상파가 지향하는 예술관인 ‘현대성’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보수적인 평론가들은 모리조를 과소평가했다. 보들레르와 졸라가 눈여겨본 인상파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모리조가 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하는 화가인지 알 수 있다.

 

 

 

 

 

[1] 어떤 책에서는 ‘콩스탕탱 기’라고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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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01-19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밀 졸라의 <나나>를 너무 어려서 읽어서 줄거리만 따라가는 수준이었는데, 이렇게 미술사에서 세잔과 얽혀서 소개되거나 에밀 졸라를 이야기한 글들 보면 정치의식이 특별했던 작가인가보네요. 늘 좋은 글 배우며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8-01-19 17:34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제 글에 배울 게 1도 없습니다. 그냥 ‘이런 내용이 있구나’하고 보셨으면 합니다. 졸라가 유태인 드레퓌스의 누명을 벗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졸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

2018-01-19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9 17:37   좋아요 0 | URL
가까이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삶의 교훈이 틀린 말이 아니에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깐도리 2018-01-2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나나를 읽었는데, 그 이후 에밀졸라의 생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되었어요...

cyrus 2018-01-20 19:35   좋아요 0 | URL
졸라의 생애를 다룬 전기나 평전이 있을 텐데 국내에 번역되지 않아서 아쉬워요. 졸라와 작가들(모파상, 위스망스)와의 관계를 자세히 알고 싶어요.
 
땅과 집값의 경제학 - 우리 삶의 불평등, 그 시작은 땅과 집에서 비롯되었다
조시 라이언-콜린스.토비 로이드.로리 맥팔렌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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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가 날갯짓하면 다음날 미국 워싱턴 상공에 거대한 폭풍이 생긴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z)는 예측 불가능한 연쇄반응의 결과를 나비효과로 표현하면서 카오스 이론을 만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나비의 날갯짓과 폭풍이 아무 관계없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혀 쉽지 않은 변화가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은 인생사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땅과 집을 소유한 사람(‘사유재산권을 가진 자’, ‘주택소유자’, ‘토지소유자’ 등으로 다양하게 부를 수 있다. 고전주의 경제학에서는 개인이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땅과 그 위에 세워진 집을 개인의 재산으로 본다. 이 글에서는 집과 땅을 소유한 사람을 ‘토지소유자’로 부르겠다)이 늘어나는 현상과 청년 실업률 증가. 이 양자의 현상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업률 증가는 토지소유자 증가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부동산 증여와 투기, 2008년에 터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인 미국의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 1% 소수 기득권에 소득이 몰린 불평등 현상 등은 땅을 독점하는 토지소유자들이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지나친 ‘지대 추구 행위’의 나비효과로 볼 수 있다.

 

영국 출신 경제학자 3인이 공동으로 집필한 《땅과 집값의 경제학》(사이, 2017)은 토지소유자들만이 혜택을 점유하는 비효율적인 지대 추구 행위의 폐해를 보여준다. 우리가 늘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서민들은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살림살이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일까. 부자들은 뭘 했기에 재산을 축적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 《땅과 집값의 경제학》 속에 있다. 근면하고 검소한 서민들이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부동산 부자들이 지대 추구 행위를 해오면서 사회적 부를 끊임없이 획득했기 때문이다.

 

사유재산권은 이윤 추구를 강조하는 자유 시장경제의 기본 조건이다. 이윤추구에 대비되는 개념이 지대 추구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대란 기회비용을 초과하는 수익을 가리킨다. 이윤은 부가가치의 창출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지대와 구별된다. 지대는 인구 증가, 산업 발달,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으로 토지의 가치가 증가하는 데서 발생한다. 강남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지대가 높아지면 지가(地價)도 상승한다. 현실적으로 지대의 형성과 정치 권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토지소유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부가 계속 나오는 ‘화수분’ 같은 땅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행사한다. 땅은 처음부터 주어진 자연이기 때문에 단지 토지 등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생산에 기여한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토지소유자들이 지대를 수취하는 것은 그 지대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의와 공평에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부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십중팔구는 땅과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부자들이다.

 

그런데 자유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땅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토지소유자가 몽땅 얻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지대 추구 행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입장은 ‘신고전 경제학’에 가깝다. 신고전 경제학은 시장 만능주의를 표방하는 경제학파다. 그런데 시장경제가 알아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라고 믿었던 학자와 관료들은 지대 행위가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들은 ‘교과서 속 시장경제’의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고, 정치적 · 사회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땅의 경제적 기능’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주류 경제학’이라는 자부심에 눈이 먼 신고전 경제학파는 지대 행위에서 비롯된 불평등 문제에 대응하는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장 근본적인 생산수단인 땅이 기득권층에 의하여 독과점이 된다면 땅 이용의 대가인 지대를 불로소득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세월이 갈수록 더 높아진다. 이러면 서민들의 소득과의 격차는 확대되어 갈 수밖에 없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는데 소득을 얻는다면 시장경제의 원리가 아니다. 《땅과 집값의 경제학》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근거로 토지불로소득을 사유화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비판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사유재산제를 비판한다고 해서 사유재산제를 지향하는 시장경제를 깡그리 부정하는 ‘좌편향 책’이 절대로 아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헨리 조지(Henry Georgy)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면서도 토지에서 나오는 이득의 사유화에 반대했다.

 

헨리 조지는 ‘지대 행위의 덫’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지대 소득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무겁게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헨리 조지의 대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적 주장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지대 추구 행위의 문제점을 외면한 채 헨리 조지의 대안이 ‘사회주의’에 가깝다는 궤변을 내세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지대 행위의 덫’을 치울 생각이 없다. 토지불로소득을 토지소유자가 독식하는 체제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의 주거의 자유가 침해된다. 지상자유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자유’란 ‘땅과 집을 소유한 사람들의 자유’인 것일까. 실업자와 구직 청년들이 집값, 땅값이 높은 지역에 있는 일을 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땅과 집만 가지고 있으면 장땡으로 아는 세상 풍조는 한탕주의 환상을 부추긴다. 이대로 두면 ‘도덕과 인간’이 무의미한 비정상적 시장경제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 ‘옮긴이의 말’, ‘참고 문헌’, ‘색인’이 없다. 경제학 서적치고는 구성이 허접하다. 이 책의 역자는 심리학을 전공한 ‘바른번역’ 소속이다. 만약 이 책을 경제학 전공 역자가 맡았으면 영국 경제학자 3인의 주장을 보충 설명하는 해제(解題)가 딸린 수준 있는 경제학 서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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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9 08:27   좋아요 0 | URL
토지 공개념이 헨리 조지가 주장한 대안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토지가격 상승에 대한 문제점은 잘 드러나지 않고, 주류경제학자들이 (의도적으로) 놓치는 문제점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8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리 조지가 자유주의자였군요. 몰랐습니다. 전 당근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cyrus 2018-01-19 08:29   좋아요 2 | URL
예전에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헨리 조지의 사상이 잘못 알려졌어요. 진보주의자들이 헨리 조지를 재평가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이 헨리 조지를 외면하는 상황이라서 헨리 조지의 사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사회주의자로 오해하기 쉬워요.

transient-guest 2018-01-19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곳에서 발견되는 땅문제와 사회/부의 불균형을 보면 고려나 조선시대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특정계층이 모든 토지를 점유하고 갈수록 자영농민의 숫자가 사라져서 결국 세금을 내고 국가의 근간이 되는 중산층이 사라지면서 국가도 쇠락한 상관관계를 많이 이야기하는데요, 요즘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땅은 국가소유로, 건물소유주는 이 땅을 길더라도 특정한 시간을 두고 개인이 임차하는 형식으로, 그리고 불로소득에 대한 높은 세금을 매겨야 하는데,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부자라서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cyrus 2018-01-19 08: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지역이기주의, 부동산 투기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토지소유자들의 권력 사유화입니다. 그들이 부를 축적하면 자연스럽게 권력도 따라오게 됩니다. 그들은 기득권층이 되어 자신들이 불리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반대해요.
 
고양이를 읽는 시간 - 처음 만나는 고양이 세계문학 단편
에드위나 스탠턴 밥코크 외 지음, 지은현 옮김 / 꾸리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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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허다고? 아따 그거스로는 이루 다 말헐 수가 읎제.

그놈은 요물이랑께!”

 

(마크 트웨인의 『딕 베이커의 고양이』 중에서, 181쪽)

 

 

 

개와 고양이는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키우는 동물로 애완동물의 차원을 넘어 사람의 가족인 반려동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와 고양이는 습성이 전혀 다르다. 개는 서열과 복종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주인으로 인식한다. 반면 독립생활에 익숙한 고양이는 자아개념이 강해 함께 사는 사람을 주인이 아닌 동등한 입장으로 인식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고양이는 인간 옆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고양이만큼 애정과 혐오의 경계가 뚜렷하게 갈리는 동물도 없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신성한 존재로 여겼지만, 기독교가 유럽에 뿌리를 내리면서 고양이는 기피 대상이 되었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는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강화했다.

 

올해가 무술년 ‘황금 개의 해’라서 고양이의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는 장르를 불문하고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장화 신은 고양이’는 애니메이션, 뮤지컬로 만들어질 정도로 오랫동안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일곱 차례나 수상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톰과 제리>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다. 한때 톰은 생쥐 제리를 괴롭히는 악랄한 고양이를 상징한 캐릭터였으나 현재 톰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오히려 제리에게 당하는 톰을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예술가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고양이는 특유의 매력과 신비로움으로 작가, 화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엘리엇(Thomas S. Eliot)은 아들에게 고양이의 매력을 알려주기 위해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라는 시집을 썼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는 그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오랜 준비 끝에 뮤지컬 <캣츠(Cats)>를 제작했다.

 

국내에선 고양이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이 드문 편이다(혹시나 있으면 알려 달라). 그래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세계 문학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고양이를 읽는 시간》(꾸리에, 2017)고양이를 좋아하는 애서가들이 보면 좋아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 속 고양이들은 도도한 매력을 지닌 영리한 동물로 묘사된다. 찰스 더들리 워너(Charles Dudley Warner)『캘빈-품격 탐구』는 친해지기는 쉽지만 고급스러운 매력을 가진 고양이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단편소설이다. ‘캘빈’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최후를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차분한 자세를 유지한다. 인간은 동물보다 우세한 존재라고 생각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캘빈의 모습은 죽음의 공포에 민감한 인간의 모습과 대조된다.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동물에 대한 소유욕’이다. 소유욕과 사랑은 다르다.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는 유기동물은 귀여운 동물을 가지고 싶은 소유욕이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빗속의 고양이』에 나오는 미국인의 아내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새끼고양이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녀는 고양이를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건’으로 인식한다. 동물은 고통에 둔감할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동물은 고통을 숨긴다. 에드위나 스탠턴 밥코크(Edwina Stanton Bobcock)『어느 고양이의 일기』를 읽으면 하루하루 처절한 삶을 이어오는 유기 고양이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Lovecraft)『율타르의 고양이』는 초자연적 힘이 부여된 고양이가 등장하는 환상소설이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생명경시 풍조를 경고한다.

 

영국의 유머 작가로 알려진 P. G. 우드하우스(P. G. Wodehouse)는 동물보호구역 설립을 위해 거금을 기부했던 동물애호가다. 그가 쓴 ‘웃기는 고양이들 이야기’ 네 편은 국내 초역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딕 베이커의 고양이』, 프레데릭 스튜어트 그린(Frederick Stewart Greene)『대나무 숲 고양이』는 미국 사투리를 사용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마크 트웨인은 미국 남부 사투리 영어로 글을 쓰곤 했다. 번역가는 원작의 미국 사투리 영어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인물 간의 대화를 전라도 사투리로 옮겼다. 전라도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 다른 지역 독자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미국인의 대화’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인물의 대화는 소설의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원문의 의미는 그대로 살리되, 원문을 강렬하게 표현한 번역‘초월 번역’이라고 한다. 전라도 사투리로 ‘초월 번역’한 『딕 베이커의 고양이』를 꼭 한 번 읽어보시라. 정말 재미있다.

 

《고양이를 읽는 시간》은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며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존재만큼은 아니어도 사람과 가까워진 동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더라도 잠시 《고양이를 읽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남 눈치 보지 않고 느긋하게 자기만의 행복한 시간을 즐길 줄 아는 고양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 Trivia

112쪽에 미국의 소설가 헨리 슬레사(Henry Slesar)의 간략한 연보가 있다. 그의 첫 소설 <회색 플란넬 수의>‘1958에 발표되었다고 잘못 적혀 있다. 1959에 발표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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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1-1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러고 보면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아.
그런데 넌 개나 고양이 키울 생각 없니?
책 읽느라고 그딴 거 키울 시간 없어요라고 달 것 같으면
굳이 안 써도 돼.ㅋㅋ

이게 또 안 키우면 모르겠는데 한번 키우기 시작하면
안 키울 수가 없어.ㅠ

cyrus 2018-01-18 08:18   좋아요 0 | URL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반려동물보다 책이 더 좋아요. ^^

2018-01-17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8 08:21   좋아요 0 | URL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동물도 감정이 있고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껴요. 반려동물이 외롭지 않게 잘 보살펴주고 애정을 주는 것이 키우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