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성교육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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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밖에서 놀다가 다쳤으면 병원에 가면 된다. 자녀가 큰 잘못을 저질렀으면 부모는 자녀에게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 무엇인지 가르치면 된다. 이것이 자녀를 위한 부모의 역할이다. 그런데 자녀가 인터넷을 하다 음란물이나 성인 화상채팅앱을 본다면? 불법 유해정보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피해가 늘어나도 대부분 부모는 ‘내 아이는 안 그러겠지.’라는 생각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십대 딸을 둔 저널리스트 페기 오렌스타인은 다르다. 그녀는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평범한 아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성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한 것인 줄 모른다. 청소년 집단 성폭행 사건의 장본인 중 A군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다. 가해 학생 A군의 부모는 아들이 잘 자랄 거라 믿었다. A군은 부모님이 집에 없는 시간에 거의 음란물을 보면서 지냈다. 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친구들은 음란물에서 본 장면을 따라 하고 싶었다. 그들은 여학생을 조용한 장소로 불러내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경찰에 끌려간 뒤에도 A군은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부모는 A군에게 성폭행이 세상에서 나쁜 일이라고 꾸짖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청소년들의 인터넷 음란물 접촉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스마트폰 채팅앱이다. 성인 인증 없이 청소년들도 접속하는 채팅앱은 불법 성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 시대가 변할수록 인터넷 보급률과 소셜 미디어 이용자 수는 급증하고 있다. 십 년 전 청소년들은 컴퓨터로 음란물을 접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아주 손쉽게 음란물을 접한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인이 처음 성생활을 시작하는 연령대는 15세에서 20세 사이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십 대부터 이십 대 여성 70명을 심층 인터뷰하면서 청소년이 경험하는 성문화의 심각성을 확인한다. 미국 십 대 청소년들은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는 ‘훅업(hook-up) 문화’에 빠져 있고, 스마트폰으로 외설적인 메시지나 음란 사진을 주고 받는 ‘섹스팅(sexting)’을 통해 이성을 만난다. 외모 가꾸기에 관심이 많은 십 대 소녀들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핫(Hot) 한’ 면모를 보여주려고 한다. 또래 이성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소녀들은 자신의 외모, 몸무게 등에 지나치게 신경 쓴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외모를 보여주고 확인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와 섹스 코드로 청소년을 사로잡는 대중문화를 십 대 소녀들의 몸을 성적 대상화로 전락하게 만드는 사회적 원인으로 지적한다.

 

미국 청소년들은 임신 위험성이 낮은 오럴 섹스를 선호한다. 그런데 성에 잘못 눈뜬 남학생들은 자신의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여학생에게 오럴 섹스를 하자고 제안한다. 여학생은 상대 이성의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찝찝한 첫 경험’을 하게 된다. 삽입이 없는 오럴 섹스가 어째서 ‘첫 경험’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럴 섹스도 ‘성생활’의 일부이며 남녀 모두 만족스러운 성 생활을 하려면 서로 마음이 일치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청소년의 오럴 섹스는 남녀 간의 애정이나 화합과 무관하며 남학생이 주도하는 반강제적 성행위다. 그리고 ‘찝찝한 첫 경험’을 겪은 여학생은 남성이 주도하는 성행위에 수동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섹스’와 ‘성생활’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부모, 특히 아버지들은 아들이 이성 교제를 막 시작했거나 음란물을 본 사실을 알아차리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우리 아들,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구나. 대견해!”, “너도 야동을 보다니 요 녀석 다 컸구먼.” 이러한 아버지들의 반응에는 ‘남성이 이성을 만나고, 성에 눈을 떠야 어른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욕과 쾌락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반면 딸이 이성 교제를 잘못해서 본의 아니게 임신을 하면 부모는 딸을 꾸짖는다. 여학생을 임신시킨 아들을 둔 부모들은 사건의 책임을 여학생에게 전가한다. 성폭행 피해자가 된 여학생은 주변으로부터 배척당한다. 사람들은 야한 옷을 입거나 남성을 유혹하게끔 대화를 하는 여성의 행동이 성폭행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착각한다. 이러한 잘못된 통념 때문에 성폭행 가해 남학생에 대한 법적 처벌이 미미해지고, 성폭행 피해 여학생은 ‘걸레’, ‘창녀’ 소리를 듣는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부모야말로 바람직한 성행위가 무엇인지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부모는 자녀의 성적 욕구를 이해하고 확인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부끄러워하면 지는 거다. 부모는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나타나게 될 몸의 변화와 남녀 모두 만족하는 첫 경험이 건강한 성생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녀에게 알려줘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올바른 방향으로 성에 눈뜰 수 있도록 늘 지켜보고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방비한 상태의 자녀는 편견과 위험이 도사리는 성문화에 빠져든다.

 

아이가 이성 친구를 만나 첫 경험을 했는지, ‘원 나잇 스탠드’와 ‘데이트 강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은 부모와 자녀 모두 부끄럽게 만드는, 민망한 질문이 절대로 아니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을 ‘자극적인 언어만 난무한 섹스 보고서’라고 했다. 이 책을 읽고도 저자의 성교육 방식이 낯 뜨겁다고 생각한 독자들이 꽤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그들은 구시대적 성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여전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구시대적 성교육을 배우고 있으며 그걸 배우면서 자란 부모는 성에 관련된 현실적 문제를 만나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섹스와 피임만 가르쳐주는 성교육이 전부가 아니다. 성 평등, 동성애, 데이트 강간 등 현실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가르쳐야 한다. 성교육은 아이만 배우는 과목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어른들도 배워야 한다. 성교육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성교육 지도 방식에 주도적으로 피드백해줄 수 있는 학문이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성교육’은 아이, 어른 모두를 위한 교양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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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0 11:4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섹스에 따른 책임 의식을 자녀에게 알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이 정도 말은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하라 2018-01-09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위터에서 어느 뉴스기사로 봤는데 서울 어느지역 고교에서 청소년 피임문제로 콘돔을 나눠 주기로 했다더라구요. 이젠 청소년 성문제도 동서양의 차가 없어진 것 같아요. 야동도 하나의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이고 그와 동시에 성문화의 동서양의 차가 사라지고 문명 간의 차이가 점점 더 사라져가는 것 같네요.

cyrus 2018-01-10 11:44   좋아요 0 | URL
청소년들이 스스로 섹스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콘돔을 착용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전 세계가 소셜미디어에 익숙해지니까 청소년 성문화와 성 문제의 동서양 차이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나온 ‘훅업 문화’와 ‘섹스팅’은 우리나라 ‘원 나잇 스탠드’와 ‘성인 채팅’과 비슷했습니다.

stella.K 2018-01-0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책 읽었구나.
뭐 나름 좋긴 했는데 사례가 너무 많아서
나중엔 어질어질하더군.
그런데 정말 필요한 말도 많이했어. 그지?^^

cyrus 2018-01-10 11:46   좋아요 0 | URL
네. 부모로서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저자의 말이 인상 깊었어요. ^^
 

 

 

 

 

 

 

공포 만화 마니아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1월 5일 일본에 <이토 준지 컬렉션> 1화가 첫 방영 되었다. <이토 준지 컬렉션>은 일본의 만화가 이토 준지의 단편 공포 만화를 토대로 만든 TV 애니메이션이다. 편수는 총 12화로 『토미에』 에피소드, 『소이치 시리즈』 에피소드(1화 방영), 『오시키리 시리즈』 에피소드,『달팽이 소녀』, 『사자(死者)의 상사병』 등이 방영될 예정이다. 1월 13일 밤 11시 30분에 국내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애니박스에서도 볼 수 있으며 28일에 더빙 편이 방영된다.

 

 

 

 

 

 

 

 

 

 

 

 

 

 

 

 

 

 

 

 

 

 

 

 

 

 

 

 

 

 

 

 

 

* 이토 준지 《소용돌이 합본판》 (시공사, 2010년)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1, 2》 (시공사, 2008년)

* [품절] 이토 준지 《공포의 물고기 합본판》 (서울문화사, 2013년)

 

 

 

이토 준지의 만화의 특징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섬뜩한 그림체다. 예상을 뛰어넘은 상상력, 탁월한 연출력은 독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공포심을 낱낱이 끌어낸다. 겁 많은 사람이나 비위가 약한 사람이 보기에 그의 만화는 엽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토 준지의 모든 만화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정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잔혹함의 정도가 강렬하다. 그래서 이토 준지의 만화는 ‘공포’라기보다는 ‘하드 고어(hard gore)’에 가깝다. 이토 준지의 대표작 《소용돌이》와 《토미에》는 영화로 리메이크되었으며 《공포의 물고기》는 OVA 애니메이션(TV가 아닌 비디오나 DVD로 출시되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6 : 소이치의 저주일기》 (시공사, 2008년)

 

 

 

<이토 준지 컬렉션> 1화는 ‘컬렉션 No. 58 소이치의 저주놀이’ 편이다. 아직 이토 준지의 만화를 잘 모르는 분은 애니메이션을 보기 전에 소이치가 누군지 알아두는 것이 좋다. 소이치가 등장하는 『소이치 시리즈』는 소이치의 일상을 그린 만화다.

 

 

 

 

 

 

소이치는 (일본식) 저주와 주술을 엄청 좋아하는 괴짜 소년이다. 12살이라고 하기에 소이치의 정신세계는 상당히 음울하다. 소이치는 여러 개의 못을 입에 우물거리면서 다니는 버릇이 있다. 영화 <영웅본색>에서 바바리코트 자락을 펼치며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쌍권총 솜씨를 보여주는 주윤발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소이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섬뜩한 기행을 일으킨다. 그의 행동, 즉 못을 입에 무는 버릇은 자신 스스로 ‘대단한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한 허세이다. 소이치는 가족과 친구를 골탕 먹이려고 저주를 내리지만 번번이 실패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보다 똑똑하고 외모가 뛰어난 형에 열등감을 느껴 형에게 저주를 내리려는 위험한 생각을 품는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한다. 소이치의 저주가 실패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웃음 포인트이다. 소이치의 겉모습만 보고 살짝 겁먹은 독자들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해서 쩔쩔 매는 소이치의 모습을 보면서 긴장이 완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토 준지의 만화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소용돌이》와 같은 장편 ‘고어’ 만화보다는 『소이치 시리즈』를 먼저 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이토 준지의 만화에는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둠 속에는 ‘웃음’이 있다. 《소용돌이》와 《토미에》를 먼저 접하거나 두 작품의 명성을 들은 사람들은 이토 준지를 ‘괴랄한 그림만 그릴 줄 아는 공포 만화가’로 생각하기 쉽다. 어떤 이는 이토 준지의 만화를 ‘일본식 고어’라고 평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토 준지의 만화는 ‘그로테스크(grotesque)’의 원초적 정의를 충실히 반영한다. 흉측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것. 그게 바로 그로테스크의 정의다. 이토 준지의 만화는 ‘그로테스크 만화’다.

 

‘소이치의 저주놀이’ 편이 끝나면 바로 ‘컬렉션 No. 90 지옥의 인형 장례식’ 편으로 이어진다. 이 에피소드는 초 단편이며 ‘마리에’라는 이름의 소녀가 점점 인형으로 변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9 : 오시키리의 괴담 & 프랑켄슈타인》

(시공사, 2008년)

* 러브크래프트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 크툴루의 부름 외 12편》

(현대문학, 2014년)

 

 

 

이 만화에서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이토 준지는 마리에가 인형으로 변하는 이유 그리고 원인을 알려주지 않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허술하게 만든 작가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기승(起承)’을 과감히 잘라내고 ‘전결(轉結)’만 남은 내러티브는 독자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작가의 친절한 배려이다. 독자는 자신만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에 드러나지 않은 공포감의 실체를 인식하게 된다. ‘전결’만 남은 내러티브는 독자에게 강렬한 공포와 충격을 효과적으로 줄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 방식은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토 준지는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토 준지 컬렉션>은 이토 준지의 만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입문용’으로 제격이다. 이토 준지 만화를 섭렵한(?) ‘강심장’ 마니아 입장에서는 올해 초에 첫 선을 보인 <이토 준지 컬렉션>에 조금 실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토 준지 단편 만화 중 최고로 손꼽히는 『기괴한 아미가라 단층』이 애니메이션 에피소드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기 제작이 확정된다면(아니,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실 생각을 하다니…‥) 『기괴한 아미가라 단층』이 ‘이토 준지 마니아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길 희망하는 단편 에피소드’ 1순위로 거론되지 싶다. 이 단편 만화는 《공포의 물고기 합본판》(서울문화사, 2013)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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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09 12:05   좋아요 1 | URL
이토 준지의 만화에는 절단되고, 비틀리고, 망가진 신체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소용돌이>가 국내에 처음 알려진 시기가 1999~2000년입니다. 이 때 ‘엽기’ 신드롬이 있었고 거기에 맞춰서 알려진 게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입니다. 제가 초딩이었을 때 이 만화가 나왔는데 ‘19세 미만 판매 불가’인데도 몇몇 친구들이 이 만화를 서로 돌려가면서 봤어요. ^^

꼬마요정 2018-01-09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수채구멍으로 끌려들어간 주인공의 언니인지, 동생인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ㅜㅜ 이토준지는 끝까지 찜찜함을 주는데 이게 또 끌린단 말이죠..

cyrus 2018-01-09 13:29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게 바로 이토 준지 만화의 매력이죠. ^^

서니데이 2018-01-09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치 입에 세 개는 뭐지? 했는데, 못이었네요.;;
이토준지 만화보다 애니매이션이 조금 덜 무섭게 그려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실제로 보면 무섭겠...지요. cyrus님,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8-01-10 11:47   좋아요 1 | URL
1화에서는 ‘깜놀한 연출’, ‘끔찍한 묘사’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다음 에피소드부터가 ‘진짜’일 것입니다... ㅎㅎㅎ

카스피 2018-01-0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토준지의 단편만화는 거의 다 일어 보았는데 역시 섬뜻하단 생각이 들어요.애니로 나온다니 보고싶긴 한데 보고나서 잠을 못잘까봐 좀 걱정이 되네요^^;;;

cyrus 2018-01-10 11:49   좋아요 0 | URL
1화는 괜찮았습니다.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연출이 없었어요. ^^
 
초기 그리스 철학 빈틈없는 철학사 1
피터 애덤슨 지음, 신우승.김은정 옮김 / 전기가오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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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를 흔히 서양 문명의 젖줄이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태동했고 올림픽이 처음 열린 곳이니 과언이 아니다. 그뿐이랴. 오늘날 서양 학예의 뿌리는 그리스에 있다. 문학은 호메로스헤시오도스에서 시작되어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로 이어져 내려왔고, 역사학은 헤로도토스에서 시작되어 투키디데스, 플루타르코스로 이어졌다. 철학은 서양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에서 시작되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면서 기초가 다져졌다. 자연과학도 탈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 탈레스는 ‘최초의 과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의학은 히포크라테스에서 체계화되어 갈레노스에게로 이어졌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삶과 철학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이전 서양 철학의 씨앗이라고 할 ‘초기 그리스 철학’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초기 그리스 철학은 대체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 철학으로 분류되는 철학자 중에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인물도 있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 철학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으로 명명하는 것에 어폐가 있다. 초기 그리스 철학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저작은 흔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빈틈없는 철학사’ 첫 번째 시리즈인 《초기 그리스 철학》(전기가오리, 2017)은 덜 알려진 서양철학사의 시작점을 파악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빈틈없는 철학사’는 고대 철학 및 이슬람 철학을 전공한 피터 애덤슨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이다. 방송에 언급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서 저자의 생생한 입맛이 살아 있다.

 

철학과 과학을 흔히 관련성이 적은 개념 쌍으로 여긴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탈레스는 최초의 철학자이자 최초의 과학자이다. 탈레스는 밤하늘만 바라보고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무능한 철학자에 대한 풍자보다는 탈레스의 과학적 성취를 예견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탈레스는 꾸준히 천체를 관찰해 일식을 정확하게 예언하는 데 성공했다. 탈레스가 활동한 시대에 태동한 철학과 과학은 따로 분리된 학문이 아니었다. 철학과 과학의 연관성은 초기 그리스 철학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의학도 과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학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의학자’로 알려진 히포크라테스를 다룬 내용이 있다. 피터 애덤슨은 히포크라테스를 고대 철학과 과학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히포크라테스는 질병을 ‘신이 내린 저주’로 보지 않고, 의학의 신성함을 배제했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본을 탐구한 철학자들이다. 만물의 근원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지적 활동이 시작되면서 과학이 태동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그들은 신에 향한 종교적 경외감을 넘어서지 못했으나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작품 속에 드러난 ‘비이성적인’ 신 관념을 탈피하려고 했다. 크세노파네스는 신을 인간처럼 묘사한 시인의 권위를 처음으로 비판한 철학자다. 그는 인간의 형상을 모방한 신은 인간 본성이 반영된 존재라고 비판했다. 크세노파네스의 생각은 플라톤으로 이어진다. 플라톤은 시인을 부도덕하고 무가치한 것을 모방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서양철학에서 최고의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어떤 문헌이나 기록으로 남긴 일이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초기 그리스 철학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문헌 또한 남은 게 없다. 그러나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이유만으로 서양철학사의 씨앗을 무시한 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라는 이름으로 자라난 고대 철학의 새싹을 본다는 건 철학 공부의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것이나 다름없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활약 덕분에 고대 철학은 ‘인간과 세상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 풍부한 자료와 문헌상의 소중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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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8-01-05 2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탈레스가 우물에 빠진 이야기의 ‘가장 오래된 출처‘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에 따르면)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라고 해서 마침 그 대목만 일부러 찾아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비록 자신이 직접 쓴 문헌이나 기록이 하나도 없지만, 제자인 플라톤의 방대한 저작을 통해서 너무나 자세하고도 풍성하게 알려진 덕분에 도리어 ‘문헌이나 기록이 매우 풍부하게 남아 있는 철학자‘로 볼 수도 있지 싶습니다. 그걸 뒷받침하는 가장 단적인 예가 아마도 다음과 같은 ‘해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 * *
플라톤이 쓴 대화편 가운데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대화편을,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순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테아이테토스》→《에우튀프론》→《크라튈로스》→《소피스테스》→《정치가》→《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작품해설> 중에서

cyrus 2018-01-06 15:20   좋아요 1 | URL
소크라테스를 다룬 플라톤의 책이 뭐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마침 oren님이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

sprenown 2018-01-05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연초부터 수준높은 철학이야기..바람직 합니다
이글을 계기로 앞으로 치열하고,수준높은 철학논쟁,철학베틀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철학 좋아하시는 알라디너님의 가열찬 참여 바랍니다!^^.

cyrus 2018-01-06 15:22   좋아요 0 | URL
제가 철학을 대충 이해하는 것 같아서 독자적으로 공부할 생각입니다. 이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연애 대위법(Point Counter Point). 정말 독특한 제목이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쓴 소설의 제목인데 《크롬 옐로(Crome Yellow, 1921)》,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1932》와 함께 헉슬리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 연애 대위법》 (동서문화사, 2013)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소담출판사, 2015)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1998)

 

 

 

《연애 대위법》은 1928년에 발표한 작품이므로 헉슬리의 초기 문학으로 들어서는 두 번째 관문이다. 첫 번째 관문은 《크롬 옐로》이지만 번역본이 없다. 그동안 국내 독자들은 인문학(철학)과 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헉슬리의 방대한 문학 세계, 과학과 문학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인본주의적 인생관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멋진 신세계》를 읽고 있었다. 《멋진 신세계》를 ‘디스토피아 문학의 대표작’ 정도로 취급받기 일쑤인데 이 작품 하나 때문에 헉슬리를 ‘원 히트 라이터(one-hit writer, 한 편의 작품만 대성공을 거둔 작가)’로 오해하기 쉽다.

 

 

 

 

 

 

 

 

 

 

 

 

 

 

 

 

*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마로니에북스, 2017)

 

 

《크롬 옐로》는 《멋진 신세계》와 함께 피터 박스올(Peter Boxall)이 책임 편집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마로니에북스, 2017)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연애 대위법》은 영국에서 두 차례(1968, 1972년)나 TV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대위법(counterpoint)이란 두 개 이상의 선율이 하나의 곡으로 결합하는 작곡 기법이다. 소설 원제로 알려진 ‘point counter point(점 대 점)’은 ‘counterpoint’의 어원이다. 점은 악보에 있는 음표를 뜻한다. 원래대로라면 소설 제목을 부를 때 ‘대위법’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목에 ‘연애’라는 단어가 붙여졌고, ‘연애 대위법’이 지금도 가장 많이 쓰이는 제목이다.

 

 

 

 

 

 

 

 

 

 

 

 

 

 

 

 

 

 

* 김효원 《올더스 헉슬리 : 오만한 문명과 멋진 신세계》 (살림, 2006)

 

 

 

《연애 대위법》은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선 헉슬리의 세계관, 창작 의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배경지식 없이 《연애 대위법》을 읽으면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다. 《연애 대위법》을 읽기 어려운 소설로 규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소설 속 등장인물의 사변 위주로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은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 인문학, 과학, 예술에 해박한 헉슬리의 백과사전적 세계가 압축된 작품이라서 현학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직업이 작가, 과학자, 음악가, 화가 등이다. 이들은 만날 때마다 과학, 철학, 문학 등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거나 토론을 한다. 그런데 이게 헉슬리식 글쓰기의 특징이다…‥

 

* 헉슬리는 ‘점 대 점’ 형태의 대위법을 글쓰기에 대입했는데 《연애 대위법》은 ‘인물 대 인물’ 형태로 대비된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그러나 소설에 드러나는 ‘대위법적 전개’를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다. 헉슬리가 소설을 쓰면서 설계한 ‘대위법적 전개’를 이해하려면 역자의 충실한 해설을 참고해야 한다. (헉슬리의 생애 및 문학 세계를 심도 있게 다룬 유일한 책이 살림지식총서 No. 247 《올더스 헉슬리 : 오만한 문명과 멋진 신세계》다.)

 

 

사실 헉슬리는 독자에게 불친절한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밝혔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쓰는 주요동기는 하나의 어떤 관점을 표현코자 하는 욕망이었다. 아니, 차라리 분명하게 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나는 나의 독자를 위해 쓰지 않는다. 사실 나는 나의 독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나는 글 자체를 위해 글을 쓰기를 좋아한다. 나는 내가 어떤 재능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내 스스로에게 단지 문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행사하기를 원한다.[1]

 

 

《연애 대위법》은 과거(19세기 빅토리아 시대)현재(과학 기술의 진보를 추구하는 20세기 초)의 시대가 중첩된 1920년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래서 헉슬리는 이 소설을 통해 ‘구세대’로 상징하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보수적인 성향을 풍자하고, 지나치게 진일보하는 현대 문명을 비판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소설가 겸 화가인 마크 램피언(Mark Rampion)은 헉슬리와 친분을 유지한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그는 과학 기술의 진보를 경고하는 입장을 드러내는데 헉슬리의 분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헉슬리의 문명 비판론적 견지는 《멋진 신세계》로 이어진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까치, 2017)

 

 

 

지적으로 뛰어나지만 대인 관계 능력이 부족할 정도로 소극적인 소설가 필립 퀄스(Philip Quarles) 역시 헉슬리의 분신이다. 이 책의 22장은 특이하게도 부제목이 달려 있는데 ‘필립 퀄스의 노트’이다. 22장은 퀄스가 노트에 기록한 내용이 나오는데 《연애 대위법》의 집필 의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장이다.

 

 

소설의 음악화. 분위기의 전조(轉調). 주제가 진술되고, 다음에는 전개되고, 모양이 흩어지고, 눈에 띄지 않게 바뀌어서, 마침내는 여전히 같은 것인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여러 개 변주곡에서 이 과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상 감정의 모든 영역에 걸치면서도 모두가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왈츠곡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것을 소설에 도입하자. 소설가는 상황과 인물을 반복함으로써 전조를 시도한다.

 

소설가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라. 그러면 그가 펼치게 되는 미학론은 적어도 나에게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또한 실험을 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기가 쓰고 있는 소설의 일부를 작품 속 작가를 통해 말한다면 주제의 변주가 될 수 있다. [2]

 

 

헉슬리는 소설에 나오는 작가 필립 퀄스를 통해 ‘소설가의 역할’을 제시한다. 이 ‘소설가의 역할’은 헉슬리가 쓰고 싶은 소설의 방향을 의미한다. 22장은 헉슬리와 필립 퀄스를 중심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연애 대위법》을 쓰는 헉슬리 → 《연애 대위법》에 등장하는 소설가 필립 퀄스는 ‘소설가의 역할(소설가를 소설 속에 등장시키기)’을 언급함으로써 소설을 쓰고 있는 헉슬리에게 지시한다. → 퀄스가 지시한 대로 헉슬리는 필립 퀄스의 모습으로 등장 → 헉슬리는 필립 퀄스에게 ‘소설가를 등장시키는 소설’ 쓰기를 지시한다. 퀄스는 헉슬리가 지시한 내용을 '노트'에 기록한다. → '퀄스의 노트'에 있는 모든 내용은 헉슬리가 쓴 것이다.

 

 

 

헉슬리와 필립 퀄스는 서로가 서로를 지시하면서 결국 자기 자신(헉슬리)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관계 속에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자기 지시’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헉슬리 대 퀄스’의 순환 고리는 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제인 대위법의 구조와 유사하다. 바흐(Bach)는 무한히 상승하는 순환 고리 형식으로 전개되는 『음악의 헌정』을 작곡했다. 『음악의 헌정』은 캐논(canon)이라는 모방 대위법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이 곡은 연주 중에 조바꿈이 일어나며 종반부에는 원래 조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바흐가 의도한 것처럼 헉슬리도 ‘소설의 음악화’를 시도한다. 그 속에 독자를 감탄하게 만드는 ‘이상한 고리’가 숨어 있다.

 

 

 

 

 

[1] 《올더스 헉슬리 : 오만한 문명과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의 생애’ 편

[2] 《멋진 신세계 / 연애 대위법》 ‘연애 대위법’ 편 605~6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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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1-0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이런 류의 책 탐험 에세이 쓰시기 바랍니다.

cyrus 2018-01-05 17:50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헌책방에 산 책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헌책방에 산 절판본의 리뷰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01-05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슬리, 극단을 오가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싸이러스님도 무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8-01-05 17:5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 헉슬리의 한 작품만 읽고 그를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기 쉬워요. 헉슬리 이 사람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 자체가 워낙 복잡해서 뭐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작가입니다.

sprenown 2018-01-05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리뷰! 음악과 미술,그리고 언어.
무한반복...뫼비우스의 띠.

cyrus 2018-01-06 15:24   좋아요 0 | URL
리뷰라기보다는 단상에 가까운 글입니다.. ^^;;

2018-01-05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06 15:26   좋아요 0 | URL
제가 <연애 대위법> 줄거리 소개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 소설이 어떤지 감을 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지만, 만약 미래에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암호 전쟁’이 될 것이다. 암호는 핵무기 다음으로 전쟁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무기다.

 

 

 

 

 

 

 

 

 

 

 

 

 

 

 

 

 

 

 

 

 

 

 

 

 

 

 

 

 

 

 

* 사이먼 싱 《비밀의 언어 : 암호의 역사와 과학》 (인사이트, 2015)

* 박영수 《암호 이야기》 (북로드, 2006)

* [절판] 데이비드 칸 《코드브레이커 : 암호 해독의 역사》 (이지북, 2005)

* [절판] 루돌프 키펜한 《암호의 세계》 (이지북, 2001)

 

 

 

암호 해독은 군사 비밀 정보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적군이 군사 기밀 암호를 해독하면 군 전력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은 나치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완전 해독, 독일 잠수함을 곳곳에서 침몰시켰다. 사이먼 싱(Simon Singh)은 암호의 역사를 “암호를 만드는 사람들과 이를 해독하려는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된 전쟁의 역사”라고 말했다. 암호 속에 의미를 숨긴 자와 그 의미를 밝혀내는 치열한 수 싸움으로 점철된 암호의 세계는 인류 문명사와 깊숙이 맞닿아 있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9)

* 댄 브라운 《다 빈치 코드》 (문학수첩, 2013)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장미의 이름》댄 브라운(Dan Brown)《다 빈치 코드》의 인기 비결은 책, 그림, 유적 속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가정 아래 과거의 수수께끼를 암호풀이로 해독해 가면서 독자의 두뇌를 자극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소설은 종교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바탕 위에 도상학과 기호학 등을 끌어들여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이렇듯 암호는 비밀을 숨기는 것을 좋아하거나 비밀을 밝히고 싶은 인간을 유혹하는 은밀한 언어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까치, 2017)

*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2》 (휴머니스트, 2014)

 

 

 

암호는 음표로 가득한 텍스트에도 적용될 수 있다. 바흐(Bach)는 자신의 은밀한 메시지를 악보 행간에 숨겨놓았다. 『푸가의 기법』은 바흐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만들어진 미완성곡이지만 풍부한 악상의 변화를 간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총 열여덟 개의 푸가(fugue)로 이루어진 모음곡이다. 푸가는 하나의 선율이 또 다른 선율을 모방하는 형태로 연주하는 작곡기법이다. 바흐는 죽기 전에 자신의 능력을 악보에 쏟아 부어 푸가 기법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든 음악의 종결부에 최후의 메시지라 할 수 있는 ‘묘비명’을 넣었다. 바흐가 악보에 새긴 묘비명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의 주요 내용이므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손 안 대고 코 풀 듯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지 않고 당장 바흐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학 오디세이 2》(휴머니스트, 2014)‘4성 대위법’ 편을 참고하시길.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티모시 페레스 외 《지구의 속삭임》 (사이언스북스, 2016)

 

 

 

호프스태터는 우주 외계 문명이 알아볼 수 있는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선 메시지를 저장한 음반을 우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 호프스태터의 책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박여성, 안병서 둘 중 한 분)는 ‘이 부분의 논지 전개는 좀 이상해 보인다’라는 주석을 달았다.[1]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믿지 않는 회의주의자라면 호프스태터의 주장이 황당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정서를 가진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세운다면 외계 생명체는 음반을 해독할 것이다. 호프스태터의 주장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논지 전개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괴델, 에셔, 바흐》가 출간되기 2년 전인 1977년에 발사된 미국의 우주탐사선 보이저 2호에 지구의 다양한 메시지와 소리, 그리고 음악이 담긴 레코드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보이저 골든 레코드’다. (그런데 《괴델, 에셔, 바흐》에 실제로 우주에 쏘아올린 인류의 메시지를 담은 음반이라 할 수 있는 '보이저 레코드'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다. 미국에 태어난 호프스태터가 보이저 호의 역사적인 발사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칼 세이건(Carl Sagan)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이 레코드는 혹시 보이저 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우주 생명체를 위한 인류 최후의 메시지다. 세이건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는 외계 생명체가 인류와 함께 우주에 살고 있어서 둘 사이의 지식에는 공통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레코드의 수명은 10억 년이다. 그 사이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인류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된다. 지구가 파괴되어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후손은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호라티우스는 “언어는 영원에 도전한다.”라고 썼다. 우리가 그의 경구를 기억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옳았다는 증거이다. 보이저호가 방랑을 멈추는 시점에 우리 아름다운 행성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진작 사라졌을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이 레코드판이 칭송했던 목소리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의 부주의 때문에, 혹은 그저 세월 때문에 영영 목소리를 잃었을지, 역시 알 길이 없다. 보이저 호는 우리의 메아리와 이미지를 싣고서 우주를 여행하고 있으며, 머나먼 그 여정만큼 오랫동안 우리를 계속 살아 있게 할 것이다. (앤 드루얀) [2]

 

 

암호도 언어다. 암호는 해독해야 할 가짜 문자와 그 속에 숨겨진 진짜 문자로 이루어진 '비밀의 언어'다. 따라서 앤 드루얀(Ann Druyan)이 인용한 호라티우스(Horatius)의 격언처럼 해독하지 못한 암호는 영원에 도전한다. 언어를 만들고 쓸 줄 아는 인간은 위대하면서도 약한 존재이다. 우주의 역사와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정말 작다. 대자연이 일으키는 재앙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 바로 인류가 일으키는 전쟁이다. 거대한 지구에는 여전히 인류가 밝히지 못한 ‘자연의 암호’가 널려 있다. 우리 몸속에 있는 ‘유전 암호’ 또한 인류가 밝혀내야 할 자연의 암호 중 하나이다. 이 ‘자연의 암호’를 해독하는 사람이 과학자다. 그러나 전쟁에 동원된 과학자들은 적군을 쓰러뜨리기 위해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일어나는 전쟁은 자연을 파괴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도 파괴된다. 만약 미래의 지구가 죽음의 땅이 된다면 보이저호의 레코드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우주에 외로이 떠다니는 인류의 묘비명으로 남을 것이다.

 

 

 

 

 

[1]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 216쪽

[2] 《지구의 속삭임》216~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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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8-01-05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새해 인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심코 연간 통계를 보니, 지난 해 제 서재에 댓글을 가장 많이 남겨주신 분이네요. 감사드립니다.^^

cyrus 2018-01-05 14:1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마립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