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처음으로 ‘대구시교육청 작은 도서관’을 방문했다. 이름 그대로 교육청 건물 내부 안에 있는 도서관이다. 공공도서관에 없는 책이 그곳에 있어서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대구시교육청에 몇 차례 가본 적은 있었지만, 도서관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교육청 청사는 상당히 컸다. 그런 곳에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본관 2층에 도서관이 있었다. 조금 긴 복도를 지나서야 도서관이 나온다. 역시나 도서관 내부는 작았다. 안 쓰는 사무실 공간을 도서관으로 마련한 것 같았다.

 

 

 

 

 

도서관 내부를 찬찬히 둘러봤다. 나온 지 오래된 책들이 많았다. 실내등 빛이 잘 들어오지 않은 쪽에도 책이 가득히 꽂힌 책장이 있었다. 그 책장 제일 윗부분에 있는 이름표가 내 눈에 들어왔다. '교육감님 도서', 그 옆에는 ‘부교육감님 도서’ 책장, 각종 통계자료 및 보고서를 보관한 책장이 있었다. 이쪽 책장에만 이름표가 있는 거로 봐서는 교육청 직원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책장일 것이다. 나는 교육감님과 부교육감님의 독서 편력이 궁금해서 한 10분 동안 그곳 주변에 서서 책장을 관찰했다. 교육 및 역사 분야 관련 학술 서적이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나온 통계자료집이나 조사 결과 보고서 같은 교육청 소속 자료들이 책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자료들을 시민들이 찾는 도서관에 보관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교육감님과 부교육감님의 책장은 사람 발길이 드문 구석진 쪽에 있다. 교육청 직원은 필요에 따라 과거에 만들어진 자료를 찾아볼 수는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관료적인 냄새가 짙게 밴 자료들을 꼼꼼히 보지는 않는다. 아니, 그쪽으로 얼씬도 하지 않는다. 장서 관리 측면에서 본다면 공간 낭비다. 경상도 사투리 중에 ‘짱박다’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에는 군대 용어로 많이 쓰인다. 물건을 감추거나 사람이 숨었을 때 ‘짱박다’ 혹은 ‘짱박았다’라고 말한다. 서류로 남은 자료들을 따로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도서관 한쪽 구석으로 ‘짱박아’ 둔 것 같다. 자료들을 그냥 꽂아놓으면 마치 쓸모없는 것들을 보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직원들이 칙칙하고 딱딱한 관료제 냄새를 없애려고 책장에 방향제를 달았다. 그것이 바로 ‘교육감님’, ‘부교육감님’이 들어간 이름표다. 이름표를 붙임으로써 초라한 책장에 확실한 명예의 도장을 찍는다. 책장의 이름표는 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에게 효과가 있다. 교육감님과 부교육감님의 독서 취향을 알리는 동시에 그동안 활동한 내역들을 정리한 자료들까지 공개하여 시민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능력과 업적을 알리는 하나의 홍보 전략이다. 책장의 이름표는 그것을 본 시민에게 강력하면서도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보세요? 교육감은 똑똑합니다. 이런 수준 높은 책들을 읽었답니다. 깔끔하게 모아둔 자료집과 보고서들을 봐주세요. 이렇게 대구의 교육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다음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면 절 뽑아주십쇼!"

 

‘교육감님의 책’이 아무리 좋아도 도서관 장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장서 관리 능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전시 행정의 결과물이다. 겉치레를 위한 장식품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장서 소유자가 아무리 고귀하고 높으신 분이더라도 예의를 갖추기 위해 극존칭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님’을 붙이니까 권위적인 느낌만 더욱 부각된다. 시민들을 찾는 ‘작은 도서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사무적인 느낌이 나는 도서관을 누가 찾겠는가. 차라리 직원들만 이용 가능한 도서관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 교육청 청사를 나오면서 옷에 밴 관료주의 냄새를 빼느라 고생했다. 아득한 분위기라서 책 읽기에는 좋았으나, 시민들에게 보라는 식으로 전시한 책들의 압박 때문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곳에 다시 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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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6-02-12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도서관은 작은 도서관이네요. 구석에 있는 정말 작은 도서관.. 잘 안쓰는 공간 땜방용 작은 도서관..

cyrus 2016-02-13 11:30   좋아요 1 | URL
생각한 것보다 평수가 작았습니다. 자세한 위치 설명을 몰랐으면 찾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오거서 2016-02-12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말로 전시행정 표본이군요.

cyrus 2016-02-13 11:31   좋아요 1 | URL
도서관을 만든 이유가 있었습니다. ㅎㅎㅎ

탕기 2016-02-12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댁으로 가져가서 방에 꽂아두세요, 라고 말하고 싶네요.
뭐 교육청 도서관이고, 교육청은 정치의 공간이니 저희 측에서 피하면 그만 입니다만...

cyrus 2016-02-13 11:32   좋아요 0 | URL
이름표가 있다고 해서 교육감이 실제로 소유했던 책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만 나름 잘 보이려고 어려운 내용의 책을 꽂은 것 같았습니다. 책장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yamoo 2016-02-12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곳까지 왜 가셔가지고...ㅎㅎㅎㅎㅎ
서울시 관악구에는 작은 도서관이 정말 많습니다. 근데, 위와 같은 도서관은 한 권도 없어요..ㅋㅋ 전부 신간 소설과 따끈한 인문학 서적들이 쭉~~꽂혀 있는 곳...시민들의 대출이 활발한 곳...이런 도서관이 작은 도서관이지요..ㅎ

cyrus 2016-02-13 11:35   좋아요 0 | URL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책을 너무 좋아한 죄입니당 ㅎㅎㅎ

원더북 2016-02-1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감님은 똑같은 책을 두 권씩 읽는 습관이 있으시군요! ㅎㅎ

cyrus 2016-02-13 11:36   좋아요 0 | URL
원더북님, 관찰력이 좋으십니다. 있어 보이려고 아무 책이나 꽂은 티가 확 납니다. ㅎㅎㅎ

2016-02-12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3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2-1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글의 내용이 제목이랑 어우러져서 완전 멋져요^^

cyrus 2016-02-13 18:43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02-13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만, 저런 븅신같은 짓을 아직도 하는군요. 교육감이고 부교육감이고 자신이 읽은 좋은 책을 추천한다면 모를까, 누가 저기에서 한 권이라도 뽑아올런지 모르겠네요. 절묘하게도 금년이 병신년이라는 것이 떠오르는 scene입니다.

cyrus 2016-02-14 11:2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교육감님의 책 중에 뽑고 싶은 읽을 만한 것이 없어서 이분이 재출마를 하면 안 뽑으려고요.
 

 

 

 

* MID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과 글입니다.

서평단 신청하실 분은 여기 (링크)를 눌러주세요. (북플 링크 기능 불가)

 

생각보다 신청자가 많습니다. 왠지 이번에 제가 신청하면 선정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라도 서평단에 선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의 서평을 읽고 나서 책을 읽을 건지 말 건지 결정해야겠습니다.

 

 

 

 

 

 

외교상상력_표지입체.jpg



 

"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일본의 우경화, IS의 테러 위협, 중국의 부상 등

커다란 외교 및 안보 이슈가 가득한 오늘날의 한반도에

지난 백 년은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



ddd.jpg

포털 뉴스 메인에도 연이어 보도되고 있어 클릭은 했는데...



asdf.jpg

 

우리나라가 사드 배치를 해야 하는지 아닌지,

왜 배치 문제로 한중 간 갈등 분위기가 조성되는지,

거기에 왜 러시아까지 강경한 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아니, 아예 '근데 사드가 정확히 뭐지?' 하고 있다면?


 

123.jpg

강력추천! 정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이 한 권으로 앞으로 여러분이 외교 뉴스를 볼 때의 이해도가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


작년 한 해를 휩쓸었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외교/국제정세"편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저자인 김정섭 박사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위해

"이론"과 "역사"라는 두 가지 도구를 제시합니다.


국제관계학의 이론과 학창시절 배웠던

1·2차 세계대전, 냉전, 국제연맹 및 유엔의 창립 등 유라시아 역사를 접목시켜

현재 국제관계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외교와 국제관계 관련 직업을 꿈꾸는 학생이나

외교 상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외교 입문서로 추천합니다.


 

 

《외교상상력》은 "외교"라는 키워드가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외교의 기초 지식을 쌓는 책으로

읽기에 부담이 없는 "외교 기본서"입니다.


 


 

123.jpg

MID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외교상상력》으로 외교 이슈 해결을 위한 자신의 상상력을 펼쳐보세요!



서평단 15분을 모십니다.


모집기간은 설연휴를 고려하여

2월 2일 화요일부터 2월 14일 일요일까지이고요.

(설연휴에 많이 홍보해주세요 > <)



서평 마감기한은 2월 26일 금요일까지입니다.


2월 21일 일요일까지 서평을 남겨주신 분 가운데

우수서평자 두 분을 선정하여 MID의 도서 한권을 선물해드립니다.^^


이 글에 댓글로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자세한 신청방법은 아래를 참고해주세요.^^

 





서평단 신청 방법 안내입니다.


《외교상상력》 서평단으로 선정되신 분들은

1) 《외교상상력》의 증정본을 무료로 받으시고

2) 배송받으신 도서를 즐겁게 읽고 서평을

인터넷 서점 (교보문고/YES24/알라딘/인터파크 등) 중 한 곳 이상,

개인 SNS (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 등) 중 한 곳 이상에 남겨주세요.

3) 서평단 발표공지글에 댓글로 서평완료 사실을 알려주시면 됩니다.


서평완료 사실을 알려주시면 엠아이디에서는

1) 우수서평자의 서평을 엠아이디 페이스북, 블로그 등에 노출시키고

2) 우수서평자 중 두 분을 선정하여 감사의 의미로 엠아이디의 도서 1부(선정자가 선택)를 드립니다.



서평단 이벤트를 신청하실 분들은 아래 내용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비회원인 분들은 먼저 회원가입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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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서평자는 도서배송 이후, 2월 21일까지 서평을 완성해 주신 분들을 기준으로 선정합니다. 서평은 2월 26일 금요일까지 완성해주셔야 차후 불이익을 받지 않으니 이 점 숙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서평단은 선착순이 아니라 기존의 서평활동 참가 기록과 지원사유를 잘 적어주신 분들을 기준으로 선정합니다. :)

***엠아이디에 《비욘드 로맨스》의 서평단으로 참가하셨으나 서평을 남기지 않으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이번 서평 이벤트에 참가하실 수 없습니다.

서평단 참여 후 서평기간 (2월 26일) 안에 서평을 남기지 않으신 회원님께서는 차후 서평단 참여가 1회 제한되니 이 점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 권으로 쌓는 외교 기본 상식 《외교상상력》 많은 관심과 응원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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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6-02-12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홋 좋은 책인 것 같아, 회원가입도 하고 서평단 신청했습니다. 뭐 안 되더라도 일단 고고씽~!

cyrus 2016-02-12 19:00   좋아요 0 | URL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
 

 

 

 

 

 

 

왼쪽은 교학사에서 나온 《마더 구스의 노래》, 오른쪽은 팬더북 출판사의 《마더 구즈의 노래》. 교학사의 책은 1991년에, 팬더북의 책은 1996년에 처음 나왔다. 교학사의 책은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잔인한 표현의 문장을 부드럽게 윤색했다. 두 권 모두 절판되었다. 마더 구스 원본을 전체를 옮긴 책은 아니지만, 유아 교육용 마더 구스에서 볼 수 없는 동요들이 많이 수록되었다. 유럽의 미시사를 공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더 구스를 알아보려면 이 두 권의 책, 특히 팬더북 출판사의 책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팬더북의 마더 구스에는 원문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 《마더 구스의 노래》 (교학사, 1991년)

* 《마더 구즈의 노래》 (팬더북, 1996년)

* 《마더 구스》 (북타임, 2010년)

 

 

 

 

《마더 구스의 노래(Mother Goose's Melody)》(약칭 ‘마더 구스’)는 영국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즐겨 부른 전래 동요집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동요를 영국에서는 ‘Nursery rhyme’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왕, 귀족, 성직자들에 대한 풍자부터 풍속, 도덕적 교훈, 수수께끼, 속담, 자장가, 알파벳이나 요일 이름 같은 것을 외우기 쉬운 문장들로 구성되었다. 아이들은 동요를 따라 부른다. 이런 과정에서 영어의 운(韻, rhyme)을 자연스럽게 익혀 언어감각이 향상된다. 그래서 마더 구스는 유아용 영어 교재로 많이 소개되었다. 마더 구스를 따라 부르면 자연스럽게 영미권 아이들의 정서를 이해하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더 구스가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집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 하지만 마더 구스의 일부분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원래 마더 구스가 처음 나왔을 땐 그랬다. 그러다가 어른들이 즐겨 부른 짤막한 민요들도 마더 구스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유아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마더 구스와 마더 구스 원본을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원본에는 비정하면서도 잔인한 표현이 담긴 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그 속에 명랑하고 쾌활한 분위기의 동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동요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어른들의 노래를 불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오늘날 어린이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가족의 일원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는 ‘어린이’가 철저히 역사와 문화를 통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중세 유럽에는 ‘아동기’에 대한 의식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어른과 구별되는 옷을 입히고 놀이를 구분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아동’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은 기껏 17세기에 들어와서야 가능했다. 어린이들은 10대로 접어들면 부모님의 노동을 돕는다거나 돈을 벌려고 도제 생활을 했다. 궁핍하게 생활하는 하류층 부모들은 자식들 양육이 부담스러워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중세 프랑스 사회에서 영아살해는 공공연하게 자행되었으며, 그것이 도덕적인 타락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비정한 사회상의 모습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동요나 동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샤를 페로의 동화 『엄지 동자』는 가난과 기근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일곱 명의 형제들이 등장한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일찍 비정한 현실에 눈을 떴다. 중세의 어린이들은 냉정한 어른들의 세계를 압축한 동요를 즐겨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어른으로 자랐을 것이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난의 늪에 허덕인 서민들은 자신들의 심정을 반영한 동요를 많이 불렀다. 로버트 단턴은 《고양이 대학살》 1장에 마더 구스의 동요를 인용하여 동요가 유행했던 당시 사회의 모습을 유추한다. 관련 내용은 《고양이 대학살》 65~70쪽에 있다.

 

 

신발 속에 사는 늙은 여자가 있었네.

아이가 너무 많아 어찌할지 몰랐네.

 

 

이 동요는 《고양이 대학살》 66쪽에 나온다. 그런데 인용문은 원문의 일부만 발췌한 것에 불과하다. 원문은 이렇다.

 

 

 

There was an old woman who lived in a shoe.

She had so many children, she didn't know what to do;

She gave them some broth without any bread;

Then whipped them all soundly and put them to bed.

 

구두 속에 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 어쩔 줄을 모른다.

죽만 주고, 빵은 하나도 주지 않고,

게다가 호되게 매질하며, 자거라, 이 꼬마들아.

 

(《마더 구즈의 노래》 58쪽)

 

 

 

단턴은 이 동요를 인구 증가의 현상을 노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가족의 일원이 늘어날수록 생계의 부담도 같이 늘어난다. 인구 증가와 함께 가난의 고통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빵 하나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묽은 죽으로 연명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할머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빵을 달라고 떼를 쓴다. 할머니는 절망적인 상황을 폭력으로 해소한다.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아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거리로 나서서 구걸을 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가 오는데

거위는 살이 찌네.

늙은이의 모자에

한 푼만 넣어줍쇼.

 

(《고양이 대학살》 68쪽)

 

Christmas is coming, the geese are getting fat,

Please do put a penny in the old man's hat;

If you haven't got a penny, a ha'penny will do,

If you haven't got a ha'penny, then God bless you.

 

크리스마스가 와요, 거위가 살이 쪄요.

자, 1페니, 할아버지 모자에.

1페니가 없으면 반 페니라도 좋아요.

반 페니도 없다면, 신의 가호를.

 

(《마더 구즈의 노래》 83쪽)

 

 

 

가난의 고통이 지속될수록 정의 온기가 식어간다. 가난한 자들은 도둑이 되어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한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네,

도둑들이 강탈하러 그에게 왔다네.

그는 굴뚝 끝에 올라갔고,

그들은 그를 죽였다고 생각했네.

 

(《고양이 대학살》 68쪽)

 

 

There was a man and he had naught,

   And robbers came to rob him;

He crept up to the chimney top,

   And then they thought they had him.

 

But he got down on the other side,

   And then they could not find him;

He ran fourteen miles in fifteen days,

   And never looked behind him.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

  그를 털려고 도둑들이 찾아왔다.

그는 굴뚝 꼭대기로 기어 올라갔다.

  이제 잡았다, 하고 도둑이 뒤쫓아 갔다.

 

그러나 살짝 저편으로 도망쳐 내려갔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15일 동안 14마일을 달렸다.

  뒤돌아 봐도 이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마더 구즈의 노래》 52쪽)

 

 

 

더 이상 살아갈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절망적인 최후의 선택을 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여 힘들었던 속세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가난은 한 가족을 붕괴시키는 비극을 초래한다.

 

 

세 아들을 둔 늙은 여자가 있었네.

제리와 제임스와 존.

제리는 교수형에 제임스는 익사하고,

존은 사라져 다시 찾지 못했다네.

그것이 세 아들의 종말이었다네.

제리와 제임스와 존.

 

(《고양이 대학살》 66~67쪽)

 

There was an old woman had three sons,

Jerry, and James, and John:

Jerry was hung, James was drowned,

John was lost and never was found,

And there was an end of the three sons,

Jerry, and James, and John.

 

한 할머니와 세 아들이 살고 있었다.

세 아들은 제리, 제임스, 그리고 존이었다.

제리는 목을 맸고, 제임스는 물에 빠졌다,

존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것으로 할머니의 세 아들 이야기는 끝이다.

제리, 제임스, 그리고 존.

 

(《마더 구즈의 노래》 142쪽)

 

 

 

《고양이 대학살》에서는 “Jerry was hung”을 교수형으로 옮겼다. ‘hang’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동요의 전체적 의미 또한 달라진다. 제리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면, 가난을 견디지 못한 아들 두 명은 자살을 한 것이고, 유일하게 살아있는 아들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지로 되었을 거로 추측할 수 있다. 제리가 교수형을 당한 것으로 해석하면, 제리가 제임스를 물에 빠뜨려 죽였거나 존마저 살해한 혐의로 교수형을 받는다는 아주 절망적인 내용이 된다. 제리는 장남으로서 가족들의 궁핍한 삶을 해소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제리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깊은 좌절감에 빠졌고, 자신의 손으로 가족들을 죽이는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것이다.

 

마더 구스 동요 속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앞길이 깜깜한 가난의 동굴 속에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그들은 생전에 돈과 빵을 손대지 못했다. 그들의 삶을 구원해 줄 희망의 빛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 앞에 기다리는 것은 병마 또는 죽음이었다. 솔로몬 그런디의 죽음처럼 이름 없는 삶의 끝자락 또한 너무나도 비참했다.

 

 

Solomon Grundy,

Born on a Monday,

Christened on Tuesday,

Married on Wednesday,

Took ill on Thursday,

Worse on Friday,

Died on Saturday,

Buried on Sunday.

This is the end

Of Solomon Grundy.

 

솔로몬 그런디는,

월요일에 태어나서,

화요일에 세례받고,

수요일에 결혼해서,

목요일에 병이 들어,

금요일에 위독해지고,

토요일에 세상을 떠나,

일요일에 장례지냈다.

이렇게 해서 솔로몬 그런디의

일생은 모두 끝났다.

 

 

(《마더 구즈의 노래》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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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1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1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2-11 18: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더구스도 처음 들었을 때는 동요라고 해서 더 무서웠던 기억이 나요.
cyrus님,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오늘도 좋은 저녁 되세요.^^

cyrus 2016-02-11 19:23   좋아요 1 | URL
무서운 분위기의 동요가 많이 있는데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표맥(漂麥) 2016-02-1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분야엔 제가 젬병이란걸 깨닫습니다. cyrus님은 역시 제가 모르는 부분을 많이 알고 계시군요. 읽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cyrus 2016-02-12 08:58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에 알았어요. 인터넷에 찾아보면 나오는 내용들이에요. ^^

2016-02-12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2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2-12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cyrus 2016-02-12 19:04   좋아요 1 | URL
네,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
 

 

 

 

 

 

우리는 빨간색으로 칠해진 날을 확인하면 마음이 설렌다. 빨간색 날짜가 많을수록 좋다. 황금 같은 명절 기간이다. 일에 지친 우리는 그날에 마음껏 쉴 수 있다. 하지만 명절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이날만큼은 진짜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즐거운 명절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분위기 브레이커’가 꼭 있다. 상대방이 듣고 싶지 않은 말만 골라서 하는 친척이다. 걱정하는 마음에 물어보는 건 충분히 잘 안다. 하지만 취업 준비 잘 되고 있느냐고 물어보는 말은 취업 준비 스트레스에 예민한 친척을 꼼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무시무시한 공격적인 말이다. 아예 그로기 상태로 만들려고 작정했는지 연속 펀치를 날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 아들은 아무나 못 들어간다는 대기업에 다니는데 넌 지금 어디 회사에 다니니?” 유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을 언급하면서 비교를 한다. 연휴 아니면 자주 만나기 힘든 사이인데 조카들 다니는 회사가 어느 정도인지 그렇게나 궁금한가. 은근슬쩍 취업에 성공한 자식 자랑을 한다. 꼭 마치 자기 자신이 자식 취업 잘되도록 키운 것처럼 얘기한다. 자식 농사는 부모가 했어도 취업 농사만큼은 자식이 혼자서 한 것이다. 자식의 노력을 모르고, 자식 자랑을 내세워 자신을 뽐내려는 어른은 밉상이다.

 

젊은 사람들이 덕담 같지 않은 덕담을 하는 어른을 피하고 싶은 것처럼 어른들도 무조건 피하고 싶은 친척이 있다. 자신의 경제적 수준을 과시하는 친척은 화목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의 근황을 스스로 알리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 잘 살면서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을 남김없이 챙기려고 한다. 몸에 좋다거나 맛있는 명절 음식이 남아 있으면 다른 친척에게 나눠 줄 생각도 않고, 자신이 먼저 가져간다. 주방 일에 친척들이 다 같이 분담하면 명절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 그런데 눈치 빠른 며느리는 제일 번거로운 주방 일은 알아서 피한다. 만날 하는 친척만 주방 일을 담당한다. 주방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일하는 친척이 있는 반면에, 거실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 여념이 없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친척도 있다. 이쯤 되면 그들은 친척이 아니라 ‘친적’이다. 친밀한 적. 가깝지만 더욱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존재. 그들이 미워도 대놓고 화를 내지 못한다.

 

명절 때만 되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불편하다. 며칠만 딱 참고 넘어가면 좋겠지만,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 오랫동안 쌓이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명절 때만 되면 극도의 분노에 휩싸인 친척이 평소에 악감정 있는 다른 친척을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전통적인 대가족의 모습이 점차 사라질수록 가족 간의 끈끈한 친밀감은 희미해져 간다.

 

이러한 불상사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운 사람이 있더라도 꾹 참아내며 긍정적으로 대하라는 식의 해결책은 별로다. 그건 대중 앞에 나서고 싶은 땡중이 가장 선호하는 공허한 수사다. 긍정론은 너무 케케묵었고 현실성이 없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려고 상대방에 맞춰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상대방의 단점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 이를 방관하면 오히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심기 불편한 상황을 무덤에 갈 때까지 참아낼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런 사람은 화병과 우울증으로 고생한다.

 

 

 

 

 

 

 

 

 

 

 

 

 

 

 

 

 

칸트는 인간을 ‘뒤틀린 목재(crooked timber)’ 같은 존재로 봤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잘 안다. 다만, 자신의 약점을 잘 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과 무관하다. 약점을 스스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갖춰져 있다. 뒤틀린 목재라고 해서 완전히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제멋대로 말라비틀어진 목재도 훌륭한 안목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잘 다듬으면 멋진 조각 작품으로 변신한다. 이렇듯 약점이 있는 사람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는 데 성공한다. 이런 사람들은 겸손할 줄 안다. 반대로 자신의 약점을 방치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설정한다. 더 이상 약점을 고칠 수 없다고 인정한다. 그들은 약점을 잊으려고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잘못된 자만심은 자신의 존재를 거짓으로 치장하려는 나쁜 결과를 만든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커다란 소 앞에서 자신의 배를 억지로 부풀린 어리석은 개구리와 비슷하다. 결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생각하는 ‘빅 미(big me)’다. 결함을 장점으로 만들려는 사람은 ‘리틀 미(little me)’다. 그들은 결함투성이의 작은 존재임에도 이를 고치려는 삶의 과정 자체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투쟁으로 생각한다. ‘리틀 미’는 ‘빅 미’처럼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지나친 욕심이 낳는 최악의 결과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정직하게 자기 수양에 몰두한다.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우리의 행동이 올바른지 그른지 판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상호 간의 예의와 신뢰가 형성되어야 관계가 돈독해진다. 다만 실천을 못해서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우리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누구나 살다 보면 결함 한 가지씩 생기게 마련이다. 애덤 스미스는 칸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모순을 파악했다. 그리고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고, 남들보다 덜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공정한 관찰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주장한다. 공정한 관찰자는 겸손하다. 그래서 우리의 이기심을 억제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촉구한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즉 우리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항상 완벽한 존재로 보일 수 없다. 자신의 명예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인정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상대방의 관심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빅 미’가 되고 싶은 개구리는 배를 부풀리다가 그만 몸이 터져 죽어버린다. 겸손이 부족한 ‘빅 미’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고집하다가 망신살 뻗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다면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다. 그렇지만 ‘공정한 관찰자’의 목소리를 잘 듣는다고 해서 자만심의 덫을 쉽게 피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냥 분위기를 잘 파악해가면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니까 밉상이 되지 않도록 지나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개념을 밥 말아 먹고 배불러 터진 사람은 어떻게 손 볼 도리가 없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약점이 많다고 했다. 못난 인간들이 알아서 개과천선할 거로 기대하지 않는다.

 

갑자기 내 안의 공정한 관찰자가 나에게 속삭인다. 아는 척하지 말라고. 그렇다. 겸손하지 못한 ‘친밀한 적’을 피하기 위한 정답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기에 ‘이렇게 하면 피할 수 있다’라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런 결론을 내리면 나는 나 자신과 상대방을 기만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말만 하게 된다. 내 안의 공정한 관찰자는 모른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나도 잘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될 친밀한 적을 피하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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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6-02-09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밀한 적... 이 말 너무 공감합니다...^^
고향에서 조금 일찍 올라왔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그저 좀 더 건강하시기만 바란 명절입니다... cyrus님도 내일 마지막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cyrus 2016-02-11 09:09   좋아요 0 | URL
저희 부모님도 일찍 돌아왔습니다. 요즘에는 차례를 다 지내고 난 뒤에 집으로 일찍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고향집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집에서 연휴를 보내는 것이 훨씬 더 나아요. 연휴 마지막 날에 집으로 돌아오면 피곤할 수도 있으니까요. ^^

2016-02-09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1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0 0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1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0 0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것도 이 새벽에...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책 잘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

cyrus 2016-02-11 09:22   좋아요 0 | URL
책이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불후의 걸작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됩니다. 그래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시간 날 때 재미있는 《소설 마태우스》 서평 써주십시오. ^^

transient-guest 2016-02-10 0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0이 넘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을 어디선가 봤습니다.ㅎㅎ 명절에 모인 자리에서 어른들의 지갑은 열리고, 말씀은 좀 덜 하시면 좋을 텐데요.ㅎㅎ 가끔은 내 자신이 남을 불편하게 하는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yrus 2016-02-11 09:30   좋아요 0 | URL
그런 말도 있었군요. 공감합니다. ㅎㅎㅎ  그런데 지갑은 안 열면서 입을 많이 여는 어른들도 있어요. 입만 살아있다고 해야 되나요? 세뱃돈이나 용돈은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신중하게 행동하고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제 친척 중에 이런 유형의 분들이 무려 두 명이나 있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만나면 서로 죽이 잘 맞아서 합동 밉상짓을 합니다. ^^;;

페크pek0501 2016-02-1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읽으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 중 `고상하고 싶은 욕구`에 주목했어요. 인간은 고상한 것을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웃을 돌보고 자선할 수 있다는 거죠. 만약 그런 욕구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기적이고 천박해지는 거죠.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어요. 님의 페이퍼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cyrus 2016-02-11 14:52   좋아요 0 | URL
고상한 욕구가 너무나 강한 나머지 자신의 수준을 모르면서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

clavis 2016-02-2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숭산스님의 평생화두ㅡ오직 모를 뿐.이 생각납니다 좋은 페이퍼 고맙습니다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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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본 관람자들의 시선은 아프로디테의 뒷모습에 제일 먼저 향했을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뒷모습만으로도 관능적인 자태를 뽐낸다. 변태 같다고? 무슨 소리!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아프로디테의 치명적인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우리는 변태가 아니다! 그저 한 장의 누드화를 보고 있을 뿐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아프로디테의 단장(원제: The Rokeby Venus)』 (1648년)

 

 

에로스 : 엄마! 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요? 다리에 쥐가 나요.

 

아프로디테 : 계속 그러고 있어라, 아가야. 거울이 없으면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아.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벨라스케스는 관람자의 마음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관람자들이 아프로디테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도록 의도적인 연출을 했다. 벨라스케스는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이 민망하지 않도록 아주 중요한 존재를 하나 더 그려 넣었다. 거울을 들고 있는 에로스다. 관람자는 이 벌거벗은 여인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런데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 여신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거울이 있는 위치로 볼 때 여신의 얼굴상이 절대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미모를 확인하려고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자신의 뒷모습을 구경하는 관람자들을 관찰한다. 우리의 시선이 아프로디테의 뒷모습을 쭉 훑어보다가 거울로 향하는 순간, 거울 속에 있는 아프로디테의 눈과 마주친다. 마치 관음증적 시선으로 몰래 훔쳐보다가 발각된 느낌이 들지만, 어쨌든 화가의 멋진 연출력 덕분에 우리는 아프로디테의 뒷모습을 실컷 볼 수 있다. 아프로디테의 엉덩이를 뚫어지게 본다고 해서 변태라고 놀리는 사람도 없다. 벨라스케스는 에로스를 그려 넣음으로써 세속적인 여성의 나체를 그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었다. 그를 비껴간 비난의 화살은 수백 년 지난 뒤에서야 벨라스케스를 추종한 프랑스의 화가 마네가 대신 맞았다. 에로스가 없었더라면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분명 마네의 『올랭피아』 못지않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희대의 걸작이 되었다.

 

잠깐만! 아프로디테 이야기에 너무 열중하는 바람에 에로스를 깜빡 잊고 넘어갈 뻔했다. 알고 보면 에로스는 참으로 불쌍한 녀석이다. 자신의 빼어난 미모에 ‘자뻑’에 빠진 엄마 기분을 맞추려고 애쓰는 중이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무릎을 오래 꿇고 있는 에로스가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엄마! 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요? 다리에 쥐가 나요.” 아들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아프로디테는 요지부동이다. 에로스가 거울을 치우면 신성한 몸의 지위는 상실된다. 그러면 관람자들은 더 이상 그녀의 몸을 보지 않는다. 아프로디테는 관람자들의 관음증적 시선을 즐기면서 자신의 매력을 전시하고 싶어 한다. 아프로디테의 나르시시즘이 강화할수록, 그녀의 몸은 벌거벗은 상태로 구경거리가 된다. 이로써 거울에 집착한 아프로디테는 ‘아프로디테 포르네(Aphrodite porne)’가 된다. 음란한 아프로디테. 그녀는 자기 자신의 주체성(신으로서의 자아)을 인식하지 못하고 어설픈 포르노(porno) 여배우 흉내를 낸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나르시시즘을 확인시켜주는 거울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화살을 들고 다니면서 돌아다녀야 할 에로스가 나르시시즘 병에 걸린 엄마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된다.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영혼을 조종해야 한다. 그러니까 에로스의 역할은 아프로디테가 진실한 아름다움, 본인의 주체성을 확인시켜주도록 자극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거울을 든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나르시시즘을 긍정하는 시동(侍童)이다. 아프로디테는 에로스의 타자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성적 대상으로 변질한 나르시시즘을 확인할 때 에로스를 찾는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지배 영역에 포섭당했다. 그는 강한 의미의 타자가 아니다. 하이데거는 사유에 에로틱한 욕망의 불을 붙이는 날갯짓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울을 든 에로스의 날개는 힘을 잃었다. 거울 하나 때문에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는 ‘보여주기’를 위한 대상이 되었다. 에로스가 다시 날갯짓하려면 거울을 파괴해야 한다.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모두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 간의 타자성이 성립되고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아프로디테, 에로스, 나르키소스. 나올 사람은 다 나왔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르키소스를 사랑한 에코(Echo)다. 에코는 어디에 있을까? 에코는 한병철의 책 속에 있다. 2012년 《피로사회》, 2013년 《시간의 향기》, 2014년 《투명사회》, 2015년 《심리정치》 그리고 《에로스의 종말》. 제목만 다를 뿐 한병철의 사상은 메아리(echo) 같이 반복되면서 독자들 앞에 울러 퍼진다. 과잉의 긍정성으로 무장한 성과 주체는 《피로사회》에 먼저 나온 개념어다. 구경거리로 전시된 ‘포르노적 삶’은 《투명사회》에 이미 논했다. 《에로스의 종말》에 나오는 ‘할 수 있을 수 없음(Nicht-Können-Können)’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으면 《심리정치》를 읽어보면 된다. 《에로스의 종말》은 전작들의 내용을 반복하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한병철은 생각의 목소리의 울림을 좋게 하려고 ‘에로스’를 언급해보지만, 그것만 빼면 진부하다. 한병철의 책을 꼼꼼하게 읽은 독자라면 올해 나올 그의 책이 어떤 내용일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일 년 마다 나오는 한병철의 책은 새 책인 듯 새 책 같지 않다. 그의 책이 나올 때마다 '독창적인 사상'이라고 소개하는 언론사 서평을 보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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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2-0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병철 씨가 봐야할 거 같은데 이 페이퍼 :)

cyrus 2016-02-09 20:26   좋아요 0 | URL
저자가 이 글을 보면 기분이 언짢을 겁니다. 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6-02-08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좋은 평 안 하시면서 모든 한병철 책 꼭 읽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ㅎㅎ

cyrus 2016-02-09 20:28   좋아요 0 | URL
악평도 서평입니다. 저처럼 남들이 하지 않은 ‘딴소리’ 늘어놓는 사람도 있어야 재미있지 않습니까? 저는 호응이 많은 책에 단점 하나라도 발견하면 당장 알리고 싶은 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ㅎㅎㅎ

비로그인 2016-02-09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스가 아프로디테때문에 거울을 들고 있어야 하니, 에로스의 타자성이 거세되고 나르시시즘으로 전락했네요. 자아리비도라고 하나요. 리비도가 외부에서 철수할 때 자신으로 향한다는 것, 아프로디테는 대상애의 결핍으로 무료함을 자신의 아름다운 신체로 향한 것 같네요. 어쨌든 생명충동인 에로스가 불쌍해지네요 ^^

cyrus 2016-02-09 20:31   좋아요 0 | URL
거울을 포기하지 못하는 에로스도 나르시시즘의 신호로도 볼 수 있겠군요. 색다른 해석입니다. 의견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16-02-09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설날 잘 보내셨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6-02-09 20:32   좋아요 1 | URL
네, 연휴가 금방 지나갈 정도로 잘 보냈습니다. 내일 마지막 연휴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2016-02-14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2-15 17:29   좋아요 0 | URL
책을 읽어보시고 난 후에 제 감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세도 좋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