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을 썼다. 한 여자가 나오고 한 남자가 나오는 글이었다. 여자와 남자는 갈등의 시간을 보냈고 오해를 풀어내고 있었다. 볕이 좋았고,빛이 좋았고, 빨래가 말라 남자는 개고 있었다. 그들은 오해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여자도, 남자도 그랬다. 제목을 정하지 않고 일필휘지로 써내려오다가, 마지막 말을 썼고, 마지막 말을 쓰면서, 제목은 <좋은 나라>로 해야지, 생각했다. 글을 다 썼고 제목을 쓰고 저장을 누르기 전에,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단편소설을 쓰지 않았다. 꿈이었다. 꿈에서 쓴 것이었다. 눈을 뜨고 너무 아쉬웠다. 현실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어떤 이야기인지 잘은 기억안나지만, 내 소설이 그려내는 분위기는 눈에 선했다. 그 얘기를 내가 진짜로 쓴 거였다면 좋았을텐데. 너무 아쉬웠다. 잘 쓴 소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하나의 단편소설을 완성했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아쉬웠다.
내가 이런 꿈을 꾼 건, 토요일에 영화 [패터슨]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버스 운전기사인 '패터슨'은 틈틈이 노트에다가 시를 쓴다. 자신의 아내가 시 속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성냥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그는 운전일을 시작하기 전에 시를 쓰고, 집에서도 시를 쓰고, 점심을 먹고 나서도 시를 쓴다. 늘 노트와 펜을 가지고다니며 계속 시를 쓴다. 아내는 그런 그에게 '당신의 시는 매우 아름다우니 제발 부탁인데 복사본을 만들어두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시들을 다른 사람들이 읽을 일은 없다며 계속 미룬다. 그는 출판도 하지 않고 복사본도 만들지 않고, 단조로운 일상들 속에 틈틈이 계속 시를 쓴다. 늘 비슷한 시간대에 눈을 뜨고, 옆에서 잠들어 있는 아내의 벗은 어깨에 입을 맞추고-때로는 입에, 때로는 등에- 씨리얼을 먹고 출근을 하고 운전 시작전 시를 쓰고, 운전을 하고, 아내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먹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 퇴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아내가 만든 저녁을 먹고, 함께 사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늘 가는 펍에 가서 맥주를 한 잔 하고, 그렇게 집에 돌아와 잠을 자고, 그리고 또 비슷한 시간에 깨고...
그런 시간 틈틈이 아내는 집에서 자신의 옷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꾸고, 커텐의 모양을 그리고,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남편에게 줄 저녁을 만들고, 컨트리 뮤직을 배우고 싶어서 기타를 주문하고, 주말 장터에 내다 팔 컵케익을 만들고, 배송온 기타로 연주와 노래를 연습하고, 남편의 시를 응원하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입을 맞춘다.
이 일상들은 매일 반복되고 그래서 단조롭게 느껴진다. 영화가 처음에는 좀 졸립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특별할 것도 없어서 지루하다. 그러나 월요일이 화요일이 되고 수요일이 되고 그 일상이 비슷하게 반복되면서, 그 일상은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의 것과 같지 않은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예술을 곳곳에서 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패터슨이 시를 쓰는 것처럼, 빨래방에서 한 남자가 아무도 없는데도 랩을 연습하는 것처럼, 엄마랑 외출한 소녀가 시를 쓰는 것처럼, 아내가 기타를 연주하는 것처럼, 우리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각자 자기만의 예술을 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패터슨에게 시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겐 랩이 되고, 누군가에겐 기타가 되는 것들.
패터슨은 일터에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고 조용히 퇴근한다. 매일 반복되는 퇴근길을 화면상으로 보던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좀 더 잘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했다. 내가 너무 내가 되어서 일상을 살아서, 일터에서도 나는 너무 나만의 기준이 있어서, 그래서 내가 그토록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닐까. 나에게 필요한 건 나를 또다른 나와 분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진 거다. 패터슨이 일을 할 때 그러하고 퇴근할 때 그러하는 것처럼, 내가 일터에서 조금 더 무심해져도 좋지 않을까. 내가 무심해져야 하는 건 아닐까. 내가 무심해진다면, 그렇다면 나도 지금보다 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패터슨은 아내와 사이가 좋다.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는 남편이 쓰는 시를 응원한다. 그를 격려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표정을 살피는 사람.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였다. 패터슨은 아내의 부탁에 '주말에 시를 복사하겠다' 라고 말은 했지만 아직 복사하지 않았고, 그의 시가 가득 적힌 노트를 개가 다 찢어놓는다. 이 일에 아내는 안타까워하고 패터슨을 위로한다. 그녀는 그동안 복사본을 만들어두라고 말했었지만, 이렇게 그가 그의 정성과 영혼이 들어간 시노트를 잃었음에도 '거봐, 내가 뭐랬어, 복사본을 만들어 두라고 했잖아!'라는 식의 원망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한 그의 앞에 다정하게 앉아서 혼자 있고 싶은지 물어보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해준다. 그들의 일상이 이렇게 서로가 하는 행위나 순간의 기분에 서로 소중히 대해줘서, 그래서 내가 꿈에서 단편 소설을 썼던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패터슨이 노트를 복사하기 전에 잃은 것처럼, 나 역시 등록전에 잠에서 깨버린 걸지도. 내가 진짜 쓰지 않은 소설에 대해 등록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데, 노트를 가득 채운 패터슨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리고 책을 읽었다.
베켓 형사는 파트너인 엘리자베스를 소중히 생각하지만, 아내가 가장 소중하다. 그에겐 너무나 소중한 아내다.
"괜찮은 거야? 안색이 좋지 않은데."
"물이 뜨거워서 그래."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
"샤워 때문이라고 했잖아!" 그의 목소리에 캐롤이 멈칫했다. 베켓은 바로 사과했다. "너무 힘들었던 하루여서 그래. 미안해. 화낼 생각은 아니었어.
"괜찮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침 식사를 준비해줄까?"
"10분 있다 먹을게."
"난 주방에 가 있을게."
베켓은 샤워를 끝냈다. 면도를 한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거울로 얼굴 표정이 괜찮은지 확인했다. 그런 뒤에 주방으로 가서 아내를 찾았다. 캐롤은 아름다웠다. 지난달보다 살이 약간 찌고, 주름이 조금 더 생겼으며, 지쳐 보였지만 말이다. 베켓은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나한테 왔을까?" (p.402)
베켓이 얼마나 아내 캐롤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에게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왔는지 감사하는 부분. 그러나, 나에게 어떻게 이런 사람이 왔을까 감탄하는 베켓은 어떤 사람이었나. 순간순간 어떤 결정들을 내렸나.
사랑은 뭘까. 일상을 함께 하는데서 서로 위로를 받고 또 격려를 해줄 수 있다는 것, 함께 침대에 눕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어제 당신에게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고 말을 하는 것들은 그 순간순간 얼마나 소중한가. 내가 일을 하러 가고 또 그 일터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면, 그래서 해서는 안될짓을 하게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것을 그래도 계속해서 사랑이라 불러야 하는걸까.
어디에서 본건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 더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그 관계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우리는 상대로 인해서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해서 더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좋은 면들이 상대로 인해 발현되어야 하고,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해서,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나로 인해 당신 역시 그렇게 되는 것. 우리가 그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내게 왔을까'를 온전히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아, 구원의 길을 읽었더니 너무 힘들다.
지루할지도 모를 반복되는 일상을 매일 무리없이 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구원의 길 때문에 너무 우울해 ㅠㅠ
책장 앞에서 뭔가 웃을 수 있는 다음 책을 골라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