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행복한 12시, 김현주입니다] 바로가기
해가 바뀌기 전에 많은 것들을 정리했는데, 또 많은 것들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위에 링크한 것 같은 소식들. EBS 에서 정오에 하는 라디오라는데, 저걸 들은 친구가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가 나온다며 보내준거다. 들어보면 12월 29일 2부 초반에 독서공감에서 한 부분을 읽어준다. 디제이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낭독에 힘이 실린다. 라디오에 소개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저걸 듣고 친구가 내게 바로 알려준 것도 너무나 고마웠다. 내 친구니까 가능한 게 아닌가. 저걸 들은 사람은 한 두명이 아닐텐데 '이걸 알려줘야지'라는 생각은 내 친구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해가 바뀌는 마지막 날 듣게 되어 너무 좋았다. 좋은 소식이었고, 친구에게 고마웠다.
그런데, 내가 쓴 글 누가 읽어주니까...좀... 오글 거리긴 했어.... ㅋㅋㅋㅋㅋㅋ
해가 바뀌기 전에는 나의 여행친구 D를 만나 영화를 보았고 술을 마셨다. 너무 맛없는 스테이크를 먹어서 좀 짜증났지만 ㅋㅋㅋ 그래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한 해동안 함께 했던 것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는 친구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같이 강의 들으러 간 것도 너무 좋았고, 강의 들으러 가지 않을래? 물을 때 기꺼이 가겠다고 해준 것도 고맙다고. 무엇보다 나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 친구이다. 이 친구가 언젠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아니라 동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마도 기울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에 대해 얘기하다 나온 것 같은데, 친구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니 좋았다. 또한 우리의 여행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때, 우리가 프라하에 갔을 때, 일정은 짧았고 나는 속이 좀 안좋아서 한식을 먹고 싶어했다. 오후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에 프라하성을 가고 한식을 먹는 일정 두 개를 넣었는데, 초행길인 우리가 낯선 길을 걷다보니, 시간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이 걸리는 거다. 프라하성과 한식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 나는 밥을 먹고 싶기도 했지만, 프라하에 또 언제 온다고 프라하성을 안보나, 하며 두 가지 중에 뭘 선택하지 고민했는데, 사실 밥이 더 끌리긴 했다. 프라하에 갔다고 프라하성을 보란 법은 없지 않나.. 하면서. 내 여행이라는 것은 관광과는 거리가 머니까. 그러나 프라하에 처음 와보고 또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내 친구의 입장도 나랑 같으리란 법은 없었다. 아마도 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라하성을 가자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 친구는 프라하성을 가는 대신 김치찌개를 선택했다. 세상 누가 프라하까지 가서 프라하성과 김치찌개중에 김치찌개 손을 들어줄까.... 백 명중에 한 명 있을까말까 한 그 경우가 바로 내 친구였다. 그때, 프라하성을 보자고 안하고 김치찌개를 선택해준 거 고마웠다고, 나 그때 한식이 절실했다고, 그렇게 말했다. 친구는 자기도 먹고 싶었다고, 가는 길이 몹시 좋았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우리는 프라하성을 보지 못했지만, 유명하지 않은 곳의 한식집을 찾아가는 길, 그 골목골목이 너무 예뻐서 자꾸만 감탄했던 거다. 게다가 거긴 사람들도 없어서 걷기에도 좋았고. 그 길을 걷는동안에는 너무 좋아서, 나 여기에 와서 살까, 막 이렇게도 얘기했던 거다.
그래서 친구랑 그런 얘기도 했다. 우리가 여행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일정대로 되지 않았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뀐 상황에 대해서 그 나름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여행은 그런 사람들에게 적절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대부분의 것들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여행지에서라면 달라진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대신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며 즐거워 하는 거다. 친구와 내가 계획대로 되지 않을때도, 그런데 이런 게 좋잖아? 하며 좋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고마웠다. 그리고 고마운 건 고맙다고 말해야 하지. 친구에게 고마웠다고 술잔을 부딪히며 말했다.
연말엔 회사에서도 일이 많았고 그와중에 사고를 치고 수습을 했다... 이때 멘탈이 잠깐 나갔다 들어왔는데, 이것에 대해 트윗을 하니 내 트윗을 본 소중한 친구 한 명이 따뜻한 핫초코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사고 친거 수습하느라 고생했다고 따뜻하게 마시라고. 내 주변에 왜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많지? 고마워라.
토요일에 영화 [두개의 사랑]을 보러 갔는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다른 영화들의 예고편을 보게됐다. 그 중 하나가 [원더풀 라이프]의 예고였는데, 그 예고편에서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지'를 묻고 거기에 대해 답을 하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나는 내 어린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말을 하더라.
그 예고편을 보면서 자연스레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지? 하고. 그런데 별 고민없이 '지금'이라는 답이 나오는 거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30대가 시작되던 무렵부터 였던 것 같다. 내 삶에서 20대는 들어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그 시절의 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러나 그 때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때는 내 선택도 별로 좋지 않았던 것들로 가득했던 것 같아.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책읽기는 계속 해오고 있는데, 책 읽기가 좀 더 깊어지고 글 쓰는 걸로 연결되는 것도 30대 부터 였던 것 같다. 그전에도 글은 꾸준히 썼었지만, 뭐랄까, 본격 글쓰기는 30대부터 라고 해야할까.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랬다. 내 인생에 가장 좋은 사람들은 30대에 만난 사람들인 것 같다. 내가 나의 의지로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게 된 사람들. 나는 30대를 보내면서 더 나은 관계를 가졌고, 더 나은 생각을 하게 됐고, 더 나은 삶을 살게된 것 같다. 그래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은 거다. 30대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나에겐 가장 좋네, 라고 말할 수 있다니, 이런 자신이 또 너무 좋은 거다. 앞으로도 계속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지. 그래서 또다시 '너의 삶에 있어서 언제가 좋았어?'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면, 30대부터 지금까지, 라는 답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2017년에 [제2의 성]을 완독하지 못한 나는, 2018년의 시작을 역시 [제2의 성]과 함께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만 하지 읽지는 않고 있어. 독서 뭘까? 자꾸 다른 책이 읽고싶어지는 나를 어쩌면 좋지?
그렇다면 일단 떡라면을 끓여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