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엔가 훌루에서 제작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시리즈를 봤다. 충격 먹었다. 뭐 이런 거지 같은 나라가 다 있나 싶었는데, 길리아드의 모습이 괴상한 대통령이 나라를 통치하는 현실과 그것과 정말 많이 다르지 않구나 싶은 생각에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하도 이상한 일들이 잇달아 벌어지는 나라에 살다 보니 그런 일 정도는 대수롭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몇 명의 커맨더들이 종교적 신념으로 여성들을 억압하고, 통제 감시하는 나라가 바로 길리아드다. 가임기의 여성들은 모두 국가의 재산으로 간주되어, 커맨더들에게 분배되어지고 커맨더들의 집안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재생산(re-production)에 투입된다. 기묘하게도 커맨더들의 아내들은 하나 같이 임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녀들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도 멀쩡한 자신들의 와이프가 보는 앞에서. 기괴한 장면에 그만 압도되어 버렸다.

 

미니시리즈에서는 오프레드의 준 시절을 회상하며 모든 것이 자유로웠던 시절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다 직장에서 여성들이 퇴출되기 시작하고, 은행계좌가 동결되고 남편 아래 종속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이조 육백년으로 되돌아간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미니시리즈 <시녀 이야기>에는 시리즈 각본에도 참가한 원저자 마거릿 애트우드가 등장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사실 시즌 1만 보고 2는 보지 않았다. 시즌 1이 방영 중일 때는 나오는 대로 영어 자막으로 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었는데. 그리고 나서 원작 소설을 만났다. 아무래도 영상이 주는 충격 때문이었는지 어쨌는지 소설은 복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 그 때쯤 마거릿 애트우드가 속편을 쓰고 있는 소식이 들려왔다. 환장할 노릇이군 그래. 그리고 책이 본토에서 출간되기도 전에 부커상 롱리스트와 숏리스트에 올랐다는 더욱 기묘한 뉴스가 들려왔고 마침내 책이 나온 모양이다.

 

원서로 책을 읽을 실력이 전혀 되지 않기에 그저 <가디언> 지에 신속하게 실린 리뷰를 훑어봤다. 출간 전에 배포된 책의 내용에 대해 엄격하게 비밀엄수를 하라는 조건이 붙었었다고 어느 유투버가 자신의 방송에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정도라는 말이지. 아마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는 <시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노후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망상이 들기도 했다.

 

전작의 주인공이 시녀 오프레드/준의 시점에서 전개된 이야기라면 이번에는 모두 세 명의 젊은 여성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앤트 리디아, 길리아드에서 자라 커맨더와 결혼할 운명의 아그네스 그리고 캐나다에 사는 데이지 이들이 주인공이라고 한다.

 

자그마치 35년을 기다린 팬들에게 <시녀 이야기>의 시퀄 <테스타먼츠>는 과연 전작에서 풀리지 않은 이야기들에 대한 시원한 사이다가 될 것인가. 전작으로부터 15년이 지난 뒤 길리아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전작이 완전히 암울한 다크 디스토피아의 전형이었다면 속편은 좀 더 희망적인 면이 있다고 했던가. 아주 조금.

 

 

아무래도 <테스타먼츠>가 번역되어 출간되기 전에 <시녀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어야지 싶다.

 

이웃 단발머리님의 전격 피드가 제 날림 프리뷰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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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9-20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의 초기작 <떠오르는 집(Surfacing)>이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소설이 페미니즘 문학을 논할 때 종종 거론되거든요. 예전에 번역된 적이 있는데 절판되었고, 절판본의 중고가격은 비싸요.

레삭매냐 2019-09-20 11:49   좋아요 0 | URL
벽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좋은
책들이 많은데, 전혀 재출간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책이네요 역시 책사
냥꾼답습니다.

단발머리 2019-09-20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10쪽 남짓 읽은 저로서는, <시녀 이야기>를 미리 읽어두지 못한 스스로를 얼마나 자책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그 책이 <8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였는데 말이지요.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느니 다시 읽는 게 나을 것 같기는 합니다.

출간되기도 전에 문학상 후보가 되는 건 어떤 일일까요. 그냥 마거릿 애트우드의 이름만 보고서도, <시녀 이야기>의 프리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까요. 아, 역시 마거릿 언니.
여담입니다만,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가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 때, 아쉬워했던 사람이 저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앨리스 먼로를 싫어한다는게 아니라, 마거릿 애트우드를 너무 좋아한다고 할까요.

저의 피드가 레삭매냐님께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레삭매냐님 페이퍼에서 제 닉네임을 만나니
전격적으로 기쁘네요. 기쁩니다. 하하하.

레삭매냐 2019-09-20 14:23   좋아요 0 | URL
제가 알기로는 아마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기 전에 책에 대한 내용에 대해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는 특급 엠바고
를 걸어서 관계자에게 배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투브를 검색해 보니 지난 9월 10일
런던에 있는 13개 극장에서 마거릿
애트우드 라이브 인 시네마즈라는 타
이틀로 책에 대한 썰을 풀었던 모양
입니다. 세상에... 팬들이 극장 티켓을
다 사서 간 모양입니다. 대단한 정성
이더라는.

가디언 리뷰 읽고 나서 날림으로 작
성한 피드입니다 쿵야.


Falstaff 2019-09-20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녀 이야기>도 재미있는데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눈 먼 암살자>가 더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근데 <눈 먼 암살자>는, 제 주제에 오역 운운하는 게 아니라, 역자 차은정의 우리말 문장이 버벅거려서 좀 애를 먹기는 하더라고요.
이 양반이 쓴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 마음 먹었었는데 어째 생각만 그렇지 진짜 읽게는 되지 않는군요. 이 글을 계기로 또 시도를 해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19-09-20 21:24   좋아요 0 | URL
독서에 좋은 기억이 있다고 하시니...
또 한 번 구해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드네요 :>

나중에라도 헌책방 돌아 다니다
눈에 띄게 되면 업어와야겠습니다.

번역에 대해서는 제가 문외한인지라...
 


드디어 데이빗 설로이가 온다

 

다음달 세계작가축제인가 뭔가 하는 행사에 데이빗 설로이가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마침 부커상 숏리스트에 오른 그의 작품을 쓰담쓰담하고 있었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어디서는 <남자의 모든 것>이라고 해석을 했던데.

일단 비어 드링킹에 피곤하기도 해서 자세한 썰은 내일 다시 풀기로 하자.

 

108일이면 평일이잖아. 그럼 퇴근 하고 DDP로 달려가야 하나 어쩌나.

문동에서 <올 댓 맨 이즈> 출간 계획이 있는 모양인데, 과연 그 전에 책이 나올지 모르겠다.

 

올해 나온 <터뷸런스>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뭐 순차적으로 나올 모양이지. 좀 더 자세한 리서치와 유투브 서평을 본 다음에 내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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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15, 인스타에 올린 글)

 

1974년에 출생한 캐나다 몽레알 출신의 영국 소설가다. 가족 배경 만큼이나 복잡한 가계를 지닌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어머니는 캐나다 사람, 아버지는 헝가리 사람. 설로이라는 이름부터 동구권 출신이 아닌가 싶었는데.

 

설로이 가족은 베이루트로 이사갔다가 레바논 내전으로 레바논을 떠나 이번에는 런던으로 이주했다. 옥스퍼드 대학을 다니던 설로이는 런던에서 다양한 판매 업종의 일을 했다고 한다. 설로이는 벨기에의 브뤼셀을 거쳐 작가가 되기 위해 헝가리의 페치로 이사했다. 설로이는 현재 부다페스트에서 부인과 두 명의 아이들과 살고 있다. 뭐 이 정도라면 세계인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예전에 산 <All that man is>는 아직 읽어 보지 못했다. 장편이라고 생각했는데 9편의 단편소설집이라고. 작년엔가 새로 나온 <터뷸런스>도 단편집이라고 하더라. 지금 북디파지터리에서 세일 중이라 <터뷸런스>를 살까 생각 중이다. 영국에서만 나오고 아직 미국에서는 나오지 않은 모양인데, 왠지 표지는 미국 버전이 더 땡기네.

 

설로이는 BBC 라디오 드라마도 썼는데, 2008년에 발표된 신작 <터뷸런스>BBC 라디오 415분짜리 원작으로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21세기 가족과 친구들의 세계화를 탐구하는 내용이란다. 세계를 도는 비행기에 탑승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12편의 이야기다.

 

그 외에도 설로이는 3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그의 책들이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다. , 첫 번째 소설집에서도 그랜타가 선정한 영국 소설가라는 선전 문구가 있더라. 그랜타의 파워가 대단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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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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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모 토울스의 데뷔작 <우아한 연인>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발표된 포이즌의 <폴런 에인절(Fallen Angel)>의 뮤직 비디오 생각이 났다. 작은 마을을 떠나 성공을 꿈꾸면서 LA로 떠나온 어느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말이다. 작가의 두 번째 소설 <모스크바의 소설>을 읽었으니 당연히 첫 번째 소설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작가의 고급스러운 취향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보스턴에서 태어나 예일대와 스탠포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토울스는 21년 동안 월스트리트에서 투자전문가로 활약했고 지금도 맨해튼에 살고 있다고 한다. 소설에 드러나는 그의 취향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이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데뷔작의 제목부터 젊은 조지 워싱턴이 일찍이 발표한 사교 생활을 위한 110가지 행동 규칙에서 따왔다. 그리고 <우아한 연인>에 등장하는 1930년대 맨해튼의 카튼 클럽을 비롯한 그 유명한 재즈클럽과 나이트클럽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에 대한 리서치의 결과는 정말 대단했다. 어느 비평에서는 <우아한 연인>1938년을 무대로 한 <섹스 앤 더 시티>라고 하는데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소설은 1966년 모마(MOMA)에서 기획한 워커 에번스의 사진전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남편과 전시회를 찾은 54세의 케이티 콘텐트는 사진전에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남자 팅커 그레이의 사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기나긴 29년 전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백이 시작된다. 룸메이트이자 절친 이브 로스와 비서로 일하던 케이티는 1937년 퍼스트 나잇에 그리니치 빌리지의 2류 재즈 바에서 운명의 남자 팅커 그레이와 만난다. 하루하루의 노동으로 대도시 생활을 즐기던 그녀들에게 팅커 그레이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청년이었다. 학력이면 학력, 집안이면 집안, 훌륭한 교양까지 갖춘 팅커의 매력에 이브와 케이티 모두 빨려 들기 시작한다.

 

내러티브가 묘한 삼각관계로 진행되려던 순간, 팅커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전복사고를 당하면서 세 주인공들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한다. 심각한 사고 후유증을 겪고 그 아름다웠던 얼굴이 상하게 된 이브를 팅커는 그야말로 신사도를 발휘해서 보듬으려고 한다. 어쩌면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겠다는 시골 처녀 이브 로스 양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갑자기 23각 경기에서 튕겨져 나온 화자 케이티는 나름대로의 꿈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뉴욕의 갑부라도 된 듯이 고급 의상실에 가서 멋진 드레스에 돈을 펑펑 쓰고, 홀로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술과 식사를 즐기고, 자신을 승진시켜 주겠다는 법률사무소의 제안을 뒤로 하고 무모해 보이는 출판사 편집자 조수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발진시킨다.

 

오리지널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는 캐리 브래드쇼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당돌한 여성 케이티의 일대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들이 작성하는 서류나 타이핑하는 일에 도무지 만족할 수 없었던 케이티의 모습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른 채 러시아를 떠나 신대륙 미국에 상륙한 케이티의 프롤레타리아 계급 아버지의 도전정신이 연상됐다.

 

그런데 이브가 올라탄 성공의 사다리는 불안정, 그 자체다. 남녀 간의 애정이라기보다 신사의 책임감에서 시작된 이브와 팅커의 관계는 미세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 관계의 종착점은 과연 어디일까? 겨울에서 시작되어 봄과 여름이라는 계절의 변화와 시간을 거치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난관에 빠진 이브의 연애전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티의 모험은 계속된다. 부유한 제지사업가 월러스 월코트와 만나 썸을 타기도 하고, 때마침 스페인에서 터진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월러스가 떠나자 이번에는 팅커가 월러스의 공백을 채우기도 한다. 그 와중에 미국 문학적 전통을 과시하기 위해 소로우의 <월든>에 등장하는 나만의 북극성을 찾으라는 조언도 나오고, 빗시와 약속시간에 앞서 시간 때우려고 들어간 헌책방에서 자기네 나라 국부(國父)가 청년 시절에 쓴 사교생활을 위한 행동 규칙에 대한 책을 단돈 15센트에 건지기도 하는 장면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아한 연인>의 주인공 케이티 콘텐트 양이야말로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불러야 하나. 주변에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부유한 청년들이 그야말로 줄지어 등장하질 않나, 그들의 도움으로 보통 사람 같으면 언감생심으로 보이는 상류 계급 인사들과 교류가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케이티 콘텐트는 캐리 브래드쇼의 전생 같아 보인다. 다만 400달러짜리 마놀로 샌달을 신고 50달러짜리 브런치를 즐기며, 일상의 수다와 파티에서 만난 남자 아니면 미스터 빅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시절이 다를 뿐.

 

데뷔작으로 보기에는 기대이상으로 세련되고, 스타일이나 고전들을 인용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은 나무랄 데가 없는 듯 싶다. 내러티브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관계의 묵직한 한 방도 준비되어 있다. 다만 <모스크바의 신사>에서도 그랬듯이 지나치게 귀족 취향적이고,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동경이 나에게는 좀 불편하게 다가왔다. 어딘가에서는 피츠제럴드와 커포티의 재현이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아쉽게도 두 작가 모두 잘 읽어 보지 않아서 그런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도 내릴 수가 없었다. 맹목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추종하는 것도 배격하는 편이라서 말이다.

 

그냥 쉬어 가며 읽어 보려고 폈던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책들을 집을 수가 없었다. 단 두 편의 소설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에이모 토울스의 문학적 재능과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 꼭 들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글쓰기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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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9-15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를 1/3쯤 읽다 덮었는데, 이 작가의 작품을 다시 도전해봐야 겠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문제가 있었나 싶네요.

레삭매냐 2019-09-15 19:38   좋아요 1 | URL
미국 고급문학의 선두 주자라고나 할까요.

고급진 개인의 취향이 아주 잘 드러나는
그런 작품들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
다.

1/3이나 읽으셨다니 아쉽습니다. 좀 더 분
발하시면 에이모 토울스 문학의 고갱이를
접수하시리라 믿슙니다 넵.

coolcat329 2019-09-15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가보네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너무 좋았던지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지금도 쓰고 있네요^^ 늘 좋은 소설 알려주시니 감사해요 ^^

Falstaff 2019-09-15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어째 이 글을 못 봤을까요.
토울스의 새 책이 나왔는데 아직도 뭉개고 있었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ㅋㅋㅋㅋ

레삭매냐 2019-09-17 16:3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나온 책인데, 이번에 새단장
을 하고 출간된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 디자인으로 가는가 보네요.

stella.K 2019-09-17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 읽은 사람들은 이 책을 궁금해 하던데 절판이라고 아쉬워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쁘게 잘 나왔군요.
조지 워싱턴의 책이 미니북으로 끼어 있다는데 그걸 토대로 썼나요?
저도 고급 취향 좀 거시기하긴 하지만 궁금하긴 하네요.
모스크바 신사 첨 나왔을 때 출판사에서 한 권 보내주겠다는 걸
정중히 거절했는데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ㅠ

레삭매냐 2019-09-17 17:07   좋아요 1 | URL
원래 판권이 은행나무에 있던 것을
현대문학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가 반응이 좋아서 내친
김에 데뷔작도 달린 것으로 추정됩
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에는 미니북이
없어서 확인이 안되네요.

아니 그런 좋은 오퍼를 왜 왜 왜
거절하셨던 가요 ㅋㅋㅋ accept !

stella.K 2019-09-17 18:30   좋아요 1 | URL
그땐 베스트셀러가 될 줄 몰랐죠.ㅠㅠㅋㅋㅋ
 


지난 주말에 내가 사들인 책들 8

 

책쟁이로서 나의 고민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읽으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가 아니다. 집에 사놓은 책 중에서 어떤 책을 골라서 읽지가 고민이다.

 

그런데도 책 사모으기 열병은 멈추지 않는다. 여름과 태풍 링링 아니 광풍이 모두 지나가 버렸는데도 말이다.

 

자신만의 책읽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책쟁이는 신문에 소개되는 책 소개도 빠지지 않고 지켜본다. 아무래도 신간 위주다. 이번 주에 한겨례에 소개된 어떤 책에 실린 일러스트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정작 그 책의 제목도 모른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 책에 소개된 책 중에서 호기심 가는 책들이 있다는 게 중요할 뿐.

 

지난 토요일날 주문한 중고서적 네 권이 오늘 오후에 도착했다. 어제 아침에는 부지런히 인근 램프의 요정을 매장을 털러 갔다. 바버라 킹솔버의 <포이즌우드 바이블>과 제니퍼 이건의 <>이 타겟이었다. 후자는 분명 그전에 사둔 것 같았는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산 것으로 추정된다. 그게 문제냐.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는 무려 세 권이나 산 것을. 종교, 아프리카 대륙 콩고에서 생활 정말 내가 혹할 모든 요소들을 두루 갖춘 소설이 아닌가. 아니 어찌 이 소설의 존재를 지금까지 몰랐는지 모르겠다. <>은 순전히 최근에 읽은 제니퍼 이건의 <맨해튼 비치> 때문에 역주행을 위해 산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선 순위에서 조금 밀린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파스칼 키냐르의 책 두 권을 데려왔다. 프랑스어의 기원을 추적한다는 <눈물들>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거 자못 흥미진진하다. 프랑크 제국의 샤를마뉴 그리고 투프-프아티에 전투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염통이 벌렁대기 시작한다. 중세 최고의 기사 롤랑의 전사 부분에서는 정말... 말을 말자. 탁탁 치고 나가는 기술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r장황한 서술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감동을 먹일 수가 있구나 싶어진다.

 

앤 패칫, 절판된 마이클 셰이본의 책 두 권 그리고 천개의 파도. 한겨레 일러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들의 책 몇 권을 저렴한 가격에 업어왔다. 나의 책탑은 나날이 쌓여가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들은 정리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결정장애는 계속된다. 도대체 누굴 버리고, 누굴 데려 간단 말인가하는.

 

일단 추석 시즌에 책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아마. 부디 더 사지 않게 되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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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9-11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쉬 멋찌다 레삭매냐님 추석잘 보내시고 건강 잘 챙기세욧!

레삭매냐 2019-09-11 17:41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

무더운 추석이네요.

카알벨루치님도 건강한 추석되세요.

서니데이 2019-09-11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내일부터 추석연휴예요.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9-11 21:43   좋아요 1 | URL
이제 슬슬 명절 기분이 나네요.

날이 좀 더 선선해졌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초딩 2019-09-12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석매냐님 행복한 추석 되세요~ 항상 서재 방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19-09-13 08:53   좋아요 0 | URL
초딩의 방문도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일본 제국 패망사 - 태평양전쟁 1936~1945 걸작 논픽션 17
존 톨랜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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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15일은 일본 패전 74주년이었다. 자신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거부하고 있는 전범국가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새로운 동아시아 패권을 위한 경제전쟁을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는 기존의 1965년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태평양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통사적으로 다룬, 1970년에 발표되어 이듬해 미국 퓰리처상에 빛나는 존 톨랜드의 대작 <일본 제국 패망사>(원제는 떠오르는 태양”)의 출간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전쟁국가의 망상을 저버리지 못하는 아베 정권의 기원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톨랜드의 논픽션은 정확하게 짚어낸다.

 

톨랜드 저자는 1936225게코쿠조라고 명명한 장에서 일왕(천황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고 싶지 않다) 지지한다는 일단의 젊은 황도파 청년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으로부터 태평양전쟁의 기원을 추적한다. 사실 전쟁은 1931년 만주사변이라는 이름으로 만주 주둔 일본 관동군 출신 이시하라 간지의 주도 아래 진행 중이었다.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 내항 이래, 일본은 탈아입구라는 구호 아래 근대화를 추진했다. 메이지 유신은 부국강병이라는 기치로 군국주의 일본의 탄생을 예고했다. 조슈번과 사쓰마번이 연합한 삿초동맹으로 토막에 성공한 근대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연이은 승리로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특히 러시아와의 전쟁은 페르시아 전쟁 이라 옥키덴트에 눌린 오리엔트의 기념비적인 승리로 꼽을 만했다.

 

독일 히틀러의 나치가 레벤스라움이라는 이름으로 동방 진출을 도모해서 슬라브 민족의 노예화 그리고 러시아 정복이라는 대망을 꿈꾸었다면,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의 꿈은 한반도를 넘어 중국 대륙 진출이라는 센고쿠 시대 오다 노부나가의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황도파 청년들은 이미 일본 정국을 장악한 군부의 실세들이 좀 더 강력한 제국주의 정책을 실시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서 쿠데타를 기획했다. 군부의 일부 세력들은 그들의 대의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대세는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황도파의 쿠데타 당시, 3, 5대 조선 총독을 지낸 총리 출신 사이토 마코토가 청년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보다 강력한 군국화를 주장하는 황도파들을 제압하고 간신히 사태를 수습했지만 1년 뒤, 중국의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한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를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 초반의 형세처럼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을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난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들을 잇달아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항복을 거부하고 충칭으로 임시수도를 옮기고 지구전에 돌입한다. 이른바 용과 사무라이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어쩌면 이때부터 일본의 패전은 확정된 게 아니었을까.

 

대전쟁(1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제국의 뒤를 이어 세계제국으로 태평양 경쟁에 뛰어든 미국은 자신들의 미래 시장으로 점찍은 중국이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전략적으로 원하지 않았다. 일본의 명분 없는 전쟁을 비난하면서 비밀리에 장제스 정부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히틀러의 나치 부대가 블리츠크리크로 폴란드 전역을 석권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40년 구데리안과 로멜이 이끄는 독일 기갑부대가 프랑스를 패배시키자, 일본은 재빠르게 힘없는 프랑스 비시 정부의 인도차이나 식민지들을 접수했다. , 과연 미국은 그런 일본의 팽창주의를 허용할 것인가?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한 때 일본의 후원자였던 미국은 경쟁자를 넘어 가상의 적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운명의 1941622, 독일은 마침내 불가침조약을 맺은 러시아를 침공한다. 파죽지세로 서부 러시아를 휩쓴 독일 전쟁기계의 빼어난 활약에 고무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연전에 맺은 삼국동맹에서 자신들만 소외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일본 해군의 지미파들은 미국의 압도적인 생산력을 잘 알고 있기에 미국과의 전쟁을 가능하면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고착된 중국전선 상황을 타파하고 싶었던 일본 육군 지도자들은 미국 정부의 가혹한 평화협상 조건에 경악한 나머지 물불 가리지 않고 개전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내 일본 자산 동결 조치, 전략물자 수출 제한 그리고 막판의 석유 금수조치가 최후의 결정타가 아니었을까. 톨랜드에 따르면 일본 군부는 미국 정부에 상당한 양보를 할 의향이 있었지만, 중국에서 일본군의 전면 철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한편으로는 평화협상을 진행하면서도 동시에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이미 일본군의 암호를 대부분 해독하고 있었던 미국 지도자들은 일본의 이런 이중적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개전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다만 언제 그리고 어디냐는 문제만 남았다.

 

사실 개전까지 상당한 부분을 톨랜드 저자는 할양하고 있는데, 일본 제국의 흥망사에서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전쟁 자체에 관심 있는 나같은 독자가 아니라면 쉽사리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대성공이었다. 다만, 훗날 미해군의 주축이 되는 항공모함을 격침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흠이긴 했지만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관과 나구모 강습부대가 이룬 전과로 미 태평양함대에 상당한 타격을 가하고, 일본은 그동안 동남아시아에서 그들이 원하던 침략전쟁을 수행할 시간을 버는데 성공했다.

 

개전 초기 일본군의 주공은 세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마무라 히토시의 자바 공략, 혼마 마사하루의 필리핀 진공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말레이 반도와 싱가포르 진격이었다. 사실 전쟁 초기 일본군이 상대한 적군은 식민지 질서유지를 위한 2선 부대가 전부였다. 영국은 본토 방위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동양의 진주라 불린 요새이자 전략 거점인 싱가포르를 방위할 여력이 조금도 없었다. 대영제국에게 싱가포르 함락은 어쩌면 또 다른 제국의 몰락을 상징했는지도 모르겠다. 필리핀 총독이었던 맥아더는 꼴사납게 자신의 책임을 다른 웨인라이트에게 떠넘기고 호주로 도주해 버렸다. 아무리 봐도 맥아더의 군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실제와 너무 다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비교적 자유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지휘관이었던 혼마 장군이 바탄의 죽음의 행진 때문에 전후 교수형을 당한 장면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전범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

 

초반에 일본에게 한 방 먹은 미국은 손 놓고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둘리틀 특공대를 조직해서 도쿄 공습에 나선다. 개전 이래 연전연승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미국의 복수전이었다. 진주만 기습의 성공으로 자신감에 고취된 일본 해군은 이번에는 거의 도박에 가까운 작전에 나서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태평양전쟁의 변곡점이 된 미드웨이 해전이었다. 역사가 언제나 그렇듯, 간발의 차이로 엇갈린 행운의 여신이 보낸 우연 그리고 일본군의 동태를 정확하게 판단한 미군 정보부대의 활약으로 일본군의 다음 목적지가 미드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미군은 19426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벌어진 전투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 해군에게 항공모함 아카기, 히류, 소류 그리고 카가 4척 격침이라는 궤멸적 타격을 가했다. 미 해군을 미드웨이로 유인해서 격멸하겠다는 야마모토 사령관의 작전은 실패하고, 역으로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기도부타이휘하 항공모함들을 적에게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더 치명적인 사실은 진주만 기습을 경험한 유능하고 숙련된 함재기 조종사들을 잃었다는 점이다. 함재기와 조종사의 손실, 모두 일본으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피해였다.

 

미드웨이 해전이 바다 전쟁의 승부령이었다면,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전투는 육지에서의 기점이었다. 일본 대본영에서도 역시나 승세를 잡은 미군의 반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그들이 생각한 최남단의 과달카날(일본명 가다루카나루)에서부터 시작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과달카날 전투는 194287일 시작되었고, 6만에 달하는 미군 병사들이 전선에 투입되었고, 31,000명의 일본군 중에 2만 명이 죽었다. 일본군은 과달카날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고 처음부터 미해병대에게 빼앗긴 헨더슨 비행장을 되찾기 위해 대단위 부대를 투입해서 초전에 승부를 걸었어야 했는데, 미군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소규모 부대를 투입해서 소모시켜 버렸다. 그동안 미군은 계속해서 병력을 증원하고 산더미 같은 보급물자로 일본군을 압도했다. 결국 그들은 중기관총 같은 화기로 무장한 미군 진지로 야간에 훗날 반자이 돌격으로 알려진 무모한 진격을 시도하다 결국 일패도지해 버렸다. 중국 전선에서 작전의 신으로 칭송받은 쓰지 마사노부 중좌가 작전에 참가해서 연속된 오판으로 1만 명의 장병의 목숨을 헛되게 만들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을 괴롭힌 적은 미군뿐만이 아니었다. 말라리아와 부족한 보급 물자로 일본군은 녹색 지옥에서 사방에서 날아드는 미군의 포탄과 총탄 뿐 아니라 굶주림과도 싸워야 했다. 보급 문제는 태평양전쟁의 모든 전선에서 고질적 문제였다. 일본군의 주식은 밥이었는데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곳으로 미군의 포화가 작렬했으니 말이다. 현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작전 참모들은 그놈의 세이신(정신) 타령을 했지만, 맨손과 허약한 육신으로 잘 쉬고 잘 먹은 미군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과달카날 3차전에서는 만주에 주둔 중이던 관동군 정예 2사단까지 동원했지만 패배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더 슬롯으로 알려진 수송로에서 미해군에게 격침당하는 수송선의 피해도 일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승리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속히 손절하고 퇴각해야 했지만, 도쿄의 대본영은 패전 사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는 것에만 연연했다. 망하는 조직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한편, 미군 역시 일본의 해군과 육군처럼 전쟁의 향방을 정하는데 있어 이견을 보였다. 맥아더로 대표되는 미육군은 방어가 두터운 뉴브리턴의 라바울을 건너뛰고 뉴기니를 거쳐 맥아더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위해 필리핀 진공을 주창했다. 대신 해군은 개구리 뜀뛰기 전법(leapfrog)이라 명명된 작전으로 솔로몬 제도를 제압하고 마셜 제도, 길버트 제도 그리고 마리아나 제도를 거쳐 타이완으로 가는 주공을 원했다. 1942년 미영소 연합군은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엘알라메인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리고 미드웨이와 과달카날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전세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여전히 유럽 대륙에서 제2전선을 열어 소련에 대한 독일의 압박을 줄여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태평양전쟁을 도맡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맥아더의 공력 루트보다 태평양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공력 루트가 훨씬 더 합리적이고 적은 피해로 일본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뉴조지아 그리고 부건빌을 제압하는데 성공한 니미츠 부대의 다음 목적지는 길버트 제도 타라와 환초의 베티오섬이었다. 베티오섬의 수비 사령관 시바자키 케이지 소장은 토치카와 벙커 그리고 참호로 잘 무장된 채, 미군의 상륙에 대비했고 미군 해병대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항복을 수치로 여기는 일본군은 죽는 순간까지 미군에 저항했고, 미군 지휘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병력 손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계속되는 사이판, 오키나와 그리고 이오지마 전역에서 미군은 더욱 강력한 일본군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일본과 미국이 맞붙은 태평양전쟁은 끝없는 소모전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선박이 격침되고, 숱한 함재기들이 수장됐다. 총동원 체제에 돌입한 미국의 가공할 만한 생산력을 일본은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과달카날 이래 일선의 병사들에 대한 보급은 고질적 문제였다. 뉴기니 전역에서도 그리고 뒤이은 필리핀 전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설사 보급할 물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해권과 제공권을 미군에게 모두 빼앗긴 상태에서 수송선을 띄우는 일은 거의 자살행위였다. 군부 주도 아래, 제 아무리 민간 수요를 억제하고 오로지 전쟁을 위한 생산에 박차를 가해도,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엄청난 생산력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본 해군은 처음부터 개전에 반대했던 게 아닐까.

 

한편, 일본이 동남아시아 제국을 침략하면서 내세운 대동아경영권의 허실은 곧 드러났다. 각국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일본은 해방자로 자처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구미 식민제국을 대신한 새로운 지배자였을 뿐이었다. 개전의 이유가 미국의 각종 금수 조치를 타개하고, 천연자원 획득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일본 제국의 본질을 깨달은 현지인들이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협력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나마 일본이 승기를 잡았을 때는 잠잠했겠지만, 각지에서 일본군이 연달아 미군에게 패배하면서 그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선전한 아시아 민중에 의한 대동아경영권은 처음부터 일본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위장하기 위한 선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전쟁의 무대는 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이었다. 사이판마저 미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제국의 심장부 도쿄까지 보잉사에서 새로 개발한 슈퍼포트리스 B-29 폭격기의 공습권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절대방어선을 주창하던 일본군의 저항이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판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 미군의 침공에 대비하겠다는 일본 대본영의 전략은 수송작전의 참담한 실패와 원래 사이판에 투입되기로 되어 있던 중국 대륙의 관동군 부대가 국민당 부대의 선전으로 중국 전선에 묶이게 되면서 빈약한 병력으로 7만 명에 달하는 미군 상륙부대를 상대하게 되었다.

 

타라와 전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군은 막강한 육해공군력을 동원해서 철저하게 일본군 진지를 포격 및 폭격해서 저항하고 저항을 누른 뒤 상륙거점에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는 미군을 상대로 그다지 의미 있는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옥쇄 돌격이 이어진다. 그리고 진주만 강습부대를 이끌었던 나구모 주이치 중장을 비롯한 수비대 고위 지휘관들은 자살한다. 다른 전역과 달리 사이판에는 당시 25,000명 가량의 일본 민간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동안 일본 정부의 미영귀축이라는 선전에 속아 집단자살이 이루어지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톨랜드는 당시 생존자의 증언을 논픽션에 담아, 사실성을 극대화시켰다. 사이판 실함으로 도조 히데키 내각이 붕괴되고, 역시 조선 총독을 지낸 군인 출신 고이소 구니아키가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제 일본은 별다른 반전 역시 패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한편 육군의 대표선수 맥아더는 전략적 의미를 가지지 못한 필리핀 공략으로 개인적 복수전에 나서게 된다. 민다나오와 레이테 그리고 루손을 해방시키겠다는 맥아더의 전략은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연합군 수뇌부가 최종 목표로 설정한 추축국의 무조건 항복이라는 대전략 차원에 판단해 볼 때, 무의미한 작전이었다. 태평양의 모든 제해권과 제공권을 미국이 장악한 마당에, 필리핀 주둔 일본군이 미군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래 전, 히틀러가 현지 사수를 고집하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낭패를 당했던 것처럼 일본의 군 지휘부 역시 비슷한 오류를 필리핀 전선에서 범했다. 그리고 자그마치 33만 명이나 되는 일본군이 1944년과 1945년 필리핀 전역에서 죽었다.

 

어쨌든 필리핀을 사수하기 위해 대본영에서는 말레이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맹장 야마시타 도모유키를 필리핀 방면 사령관으로 파견한다. 총리대신 도조와의 불화로 싱가포르 함락 이후, 소련군의 남하를 대비한다는 핑계로 만주에 가 있던 야마시타 대장은 그렇게 사지로 들어갔다. 2-26사건을 일으킨 황도파의 중심인물 중의 하나가 야마시타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도조가 그를 기피한 것도 황도파 쿠데타의 주역이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전쟁이 끝난 뒤, 야마시타는 마닐라 대학살의 책임을 물어 교수형 당했다.

 

뒤이은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1억 총옥쇄 본토결전을 주장하는 대본영은 자신들의 무능력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이오지마는 슈퍼포트리스 B-29의 폭격 기점으로 일본 본토 공격에 꼭 필요한 전략거점이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일본 역시 19446월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중장을 수비대 사령관으로 파견해서 미군의 내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달부터 이미 미군은 폭격과 함포 포격으로 침공을 준비한다. 한편, 상륙군의 교두보 확보 시점을 가장 취약하다고 판단한 해군은 구리바야시의 상륙군을 최대한 내륙으로 유인해서 일인십살(一人十殺)하겠다는 기존의 일본군의 방어계획과 전혀 다른 전술에 격렬하게 반대한다. 그리고 세 개의 비행장 수비와 바다 위에 떠 있는 미군 함정에 대한 공격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는다. 구리바야시는 함께 수비에 나서야 하는 해군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어서 타협을 하면서도 토치카와 벙커, 참호 그리고 지하 교통로를 건설해서 그야말로 이오지마를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과달카날 이래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일본군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옥쇄 돌격도 수비대 사령관은 금지했다. 1945219일부터 한 달 정도 진행된 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과 미군의 사상자는 총 5만 명에 달했다.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원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지 미군 지휘부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막대한 사상자를 낸 미국은 결국 일본의 조기 항복을 유인하기 위해 유럽 전선을 끝낸 소련에게 대일전쟁에 참전할 것과 신형 폭탄의 사용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미군 지휘부가 194511월로 예정된 규슈 상륙을 감행했을 시, 미군 피해가 백만 명에 달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에 놀란 나머지 TNT 폭탄 2만 톤에 달하는 위력을 가진 원자폭탄을 일본의 8번째 큰 도시이자 군항이 위치한 히로시마에 투하하기로 결정한다. 히로시마에서만 무려 2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 뒤이어 당시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마지막 원자폭탄을 나가사키에도 투하했다. 결국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일본 군부는 포츠담 회담에서 결정된 무조건 항복을 수락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인데, 일왕의 항복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단의 근위사단의 청년 장교들이 다시 한 번 궁정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상명하복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던 일본 군부가 이끌었던 태평양전쟁이 하극상으로 시작해서 하극상으로 끝났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일본 제국 패망사>에서 아쉬운 점은 임팔 작전으로 알려진 일본군의 버마 침공 작전이 상대적으로 너무 간략하게 다뤄진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10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대륙에 묶어둔 중국 전선에 대한 부분도 태평양 전선의 기술에 비해 부족한 점도 눈에 띈다.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전쟁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했다는 비판은 오류다. 만약 중국 대륙 전체를 일본군이 장악해서 불필요해진 병력들이 필리핀 전선이나 솔로몬 제도의 격전지에 투입되었다면 맥아더나 니미츠의 승리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의 원폭이 전쟁을 종전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정작 일본 군부를 원폭보다 더 심하게 압박한 것은 만주 전선에서 소련군의 개입이었다는 진술도 유의미한 역사적 사실의 발견이었다. 소련군은 딱 일주일 싸우고,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비롯한 숱한 전리품을 챙길 수가 있었지 않았던가. 아마 역대 전사에서 이보다 남는 장사는 없었을 것 같다.

 

오래 전 소설 <대망>으로 유명한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태평양전쟁>(5)을 읽었다. 일본 종군기자 출신 극우 인사가 쓴 거의 소설에 가까운 내용이라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태평양전쟁 전개의 대강의 흐름과 디테일에 대해 파악할 수가 있었다. 이번에 다시 만난 존 톨랜드의 <일본 제국 패망사>는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과 달리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비교적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일본 제국의 패망을 추적한다. 서방에서 승승장구하는 독일이 세계정복이라도 하면, 자신들에게 떨어질 떡고물이 하나도 없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에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사로잡혔다. 그래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미국관의 전쟁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시작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기회주의적 모습에서 태평양전쟁의 실체가 보였다. 패전 74년이 지나 다시 평화헌법을 버리고 전쟁국가로 거듭나려고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군국주의의 유령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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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05 1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 되게 잘 찍으셨어요. 진짜 책에서 연기나는 느낌인데요??

리뷰 잘 쓰신 거야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레삭매냐 2019-09-05 11:46   좋아요 0 | URL
사진은 아침에 출근 하기 전에 막찍...

워낙 책의 분량이 방대해서 잊어 버릴
까봐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리뷰를 작성
했네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19-09-05 15:27   좋아요 1 | URL
앗, 정말요! 책에서 불난 줄 알았어요.ㅋㅋㅋ
근데 전 못 읽을 것 같습니다.ㅠ

2019-09-05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9-05 13:10   좋아요 0 | URL
분량이 아주 방대합니다 ~
속으로 이거 물량작전으로 퓰리처상
을 받은 게 아니야 할 정도로 말이죠.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9-05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유럽/아프리카 전선과 태평양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리라는 계산도 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들이 동으로는 태평양, 서쪽으로는 중국 내륙, 남으로는 미얀마, 북으로는 만주에 걸쳐 전선을 확대시켜 고립되었음을 생각해본다면, 레삭매냐님께서 지적하신 강박관념과 오판 그리고 탐욕의 결과가 일본 군국주의자 스스로를 묶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레삭매냐 2019-09-05 13:13   좋아요 1 | URL
아주 명징한 지적이십니다 !

감당할 수도 없는 전선의 무리한 확대
가 결국 일본 패망의 원인이었다고 생
각합니다.

주변에 우호적인 나라들은 하나도 없
고 오직 적들만 쌓아 두었으니 이기
는 게 더 이상했을 것 같습니다.

초란공 2019-09-05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무모한 전투를 개인적인 복수의 기회로 삼았던 맥아더는 <모비 딕>의 에이해브 선장 같단 생각이 드네요.^^;;

레삭매냐 2019-09-05 13:26   좋아요 1 | URL
재작년엔가 내 <모비 딕>을 읽어
보겠노라고 생각하고 기세 좋게
시작은 했지만 정작 다 읽진 못했
더라는.

맥아더는 정말 문제적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