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빌라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2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도착한 책을 집어 들었다. 몰입도가 대단했다. 다 읽지 않고서는 다른 책을 집어들 수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김의 작가가 그려낸 솔희와 해아저씨, 티티 그리고 말랭이의 삶들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에게 동화에나 나올 법한 비상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다.

 

분명 이 작가는 남자일 텐데 어떻게 솔희라는 32세 여성의 고단한 삶을 적확하게 꿰뚫었는지 궁금해졌다. 4년 간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시냇가빌라 2층에 보금자리를 튼 솔희에 대한 이야기는 시신의 핸드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시신이라면 내가 아는 그 시신인가? 아니면 누구의 이름인가. 왠지 모를 폭력의 전조가 얼핏 엿보이는 느낌이다.

 

남편도 일자리도 없는 솔희는 고양이 티티의 집사로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시냇가빌라에서 하루를 보낸다. 돈이 없다는 경제적 고통은 그녀를 옥죈다. 겨울인데 당장 춥지 않은가. 게다가 아래층 여자와 같은 층에 사는 공방여자는 그녀를 못살게 괴롭힌다. 아니 왜 허드렛일은 모두 솔희의 몫이지. 어쩌면 그런 주눅 들은 삶의 단면은 그녀의 실패한 결혼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살갑던 남편은 결혼 즈음해서 변신 로보트처럼 해괴한 변신을 일삼는다. 뒤따르는 가정폭력은 기본이다. 청첩장이고 임신이고 뭐고 그 때 솔희는 결혼을 뒤엎었어야 했다. 게다가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백수가 되어, 자신이 힘들게 가장으로 일하는 동안 한 시절 절친이었던 윤주와 다시 만나 바람을 피운 건 어떤 식으로도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관계가 다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불행의 연속은 어쩌면 정해진 운명의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준 해아저씨와의 썸은 이해가 갔다. 다만 주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솔희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 오고 가는 마음 속에 싹트는 온기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녀가 일하는 인생국수집이 그리고 그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장의 경영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알바를 뛰는 솔희가 아파서 쉬어도 8,500원 시급을 챙겨 주고, 퇴근할 때는 가게에서 직접 빚은 오색만두 봉지를 쥐어주는 그런 따뜻한 마음씨라니. 게다가 술도 팔지 않고, 오히려 장사가 잘되는 겨울철에는 주력 상품인 오색국수와 오색만두의 가격을 내린다. 멋지지 않은가.

 

책쟁이인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장면 중의 하나는 솔희를 폐지 줍는 여자로 착각한 해아저씨가 그녀에개 갖다 주었다는 <내 이름은 빨강> 2편이다. 지난 달에서 사서 오르한 파묵 읽기를 하겠다고 기세 좋게 나서긴 했는데 아직 100쪽만 달랑 읽고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봄이 오면, 진짜 봄이 오면 <내 이름을 빨강>을 읽을 것이다.

 

<시냇가빌라>를 읽다가 그만 너무 솔희에 감정을 이입한 모양이다. 외롭고 슬프고, 처연하다는 느낌이 막 들었으니 말이다. 해피엔딩을 기대했건만 그렇지 않은 결말은 어쩌면 예상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BTS, 아미, <Fake Love> 그렇지 소설은 디테일이다.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지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스트, 웨스트
살만 루슈디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8>

 

이번에는 살만 루슈디다. 재작년에는 이언 매큐언을 그리고 작년에는 로맹 가리와 제발트를 죽어라고 읽었다. 아마 올해에는 나의 애정작가가 살만 루슈디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광대 샬리마르>에 이어 1994년에 발표한 단편집 <이스트, 웨스트>를 읽었다.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좋은 소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소설도 있었다. 대가라고 해서 모두 균질한 작품을 양산해낼 수는 없을 테니까라고 생각한다.

 

<뉴요커> 같은 곳에 실리는 영미권 단편을 읽으려고 해본 적이 있다. 상당히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내가 그들 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령 예를 들어 ‘김수한무 두루미와 거북이’ 같은 고전 유머를 푸른눈의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작가의 유년 시절을 다룬 <코터>에 등장하는 플린스톤 가족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존 굿맨 주연의 영화로 보긴 했지만, 원래 텔레비전 시리즈였는데 그건 미처 모르고 있다. <아이 러브 루시>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좀 이상한 방식으로 시작했는데, 어쨌든 맨 마지막에 배치된 <코터>는 potter를 잘못 발음한 서튼리-메리 아이아 혹은 아야에게서 유래한 별칭이다. 영국으로 이주한 인도인 가족의 신산한 삶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들의 수위 메시어, 작가가 ‘믹스트-업’이라고 이도 마찬가지 신세다. 메리와 일종의 썸을 타게 되는데, 알고 보니 메시어 씨가 전직 체스 그랜드마스터였다는 사실이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아파트 차단기를 빨리 올려 주지 않아 차에서 내려 경비 아저씨를 한바탕 후들겨 패고 났는데 알고 보니 그가 예전에 원자폭탄을 개발하던 핵물리학자였다 정도가 될까.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하라자들의 비행 때문에 칼잡이들에게 대신 두들겨 맞은 메시어 씨의 기사도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고국을 떠난 서튼리-메리에게 심장병이 생긴 건 당연지사인가. 고향으로 돌아가 아무런 문제없이 건강하게 잘먹고 잘 살았다는 썰이 왜 이렇게 와 닿는지 모르겠다.

 

그전에 등장한 <체코브와 줄루>는 커트 선장과 뾰족 귀 스폭이 등장하는 <스타 트렉>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소설이다. 아니 <스타워즈>도 아니고 <스타 트렉>이라니! 오래전 AFKN에서 주말 마다 방영되던 바로 그 텔레비전 드라마 말인가? 조국 인도를 떠나 영국에서 외교관 활동을 하는 주인공들의 삶이 어쩌면 우주를 떠도는 외계인들의 그것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시크교도에게 암살당한 인디라 간디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는구나. 그리고 보니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에도 암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었나?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을 현혹시킨 이탈리아 출신 사기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무어인들의 마지막 거점인 그라나다를 정복하고 에스파냐를 통일하는데 성공한 군주 이사벨라에게 감히 “관계”를 요구한 배짱 좋은 뱃놈 콜럼버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발하기 위해 여왕에게 후원을 요청한다. 이사벨라 여왕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알안달루스의 회복이 아니었던가. 마지막 술탄 보압딜에게 무슬림의 평화로운 거주를 약속하고 그라나다의 성문을 열게 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슬림들은 수백 년 동안 자신들의 영토이자 고향이었던 알안달루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사벨라 여왕의 기사들과 전투를 치러야했을까? 어쨌든 그렇게 무슬림 세력을 몰아내고, 유대인들마저 쫓아내는데 성공한 이사벨라 여왕에게 보인 환영과 계시가 결국 무모한 사기꾼 콜럼버스를 후원하게 만든 모양이다. 영 가망이 없어 보이던 투자가 에스파냐 제국의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그 때만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단편을 연상하게 만드는 <좋은 충고는 루비보다 드물다>는 파키스탄을 떠나 영국행 비자를 받으려는 멋쟁이 아가씨 레하나의 이야기다. 아디치에 소설의 주인공이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비자를 받기 원했다면, 루슈디의 소설 주인공은 영국행 비자가 필요했다. 이런 일에는 브로커가 끼어들기 마련이다. 자주적인 모습의 아가씨는 굳이 영국에 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 나가 남편의 시중이나 들 팔자라면 나라도 거부하고 싶지 않았을까. 역시 끊임없이 계속되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에게 가장 좋다고 판단되는 걸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9편의 단편 중에서 최고는 ‘이스트’의 <예언자의 머리카락>이었다. 우연히 획득하게 된 예언자 무함마드의 머리카락 유물 때문에 고리대금업자 하심이 갑자기 열렬한 무슬림 신도로 변해 가정의 독재자로 거듭나게 되는 장면을 살만 루슈디는 유쾌하지만 비극적인 터치로 그려냈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광신”이야말로 가장 기피해야 하는 점을 강조한다. 아들은 도둑들에게 예언자의 머리카락을 훔쳐 달라는 부탁을 하러 나섰다가 두들겨 맞아 빈사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번에는 딸 후마가 나서 예의 의뢰를 이어 받는다. 루슈디는 하심의 본업인 고리대금업이 이자를 받으면 안 된다는 무슬림 율법과 어긋난다는 점을 예리하게 꼬집는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고나 할까.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루슈디는 한바탕 소동극을 창조해냈다. 하심이 개과천선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싶었지만, 독자의 바람과 다른 방식으로 소설은 전개됐다. 결국에는 모두가 불행하게 되었다는 결말로 끝난다.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의 행로에 대한 소설적 편린이라고 해야 할까.

 

<광대 샬리마르>는 상당히 버거운 도전이었는데 단편소설집 <이스트, 웨스트>는 또 상대적으로 너무 쉬운 느낌이 들었다. 자 이제 루슈디의 대표작 <한 밤의 아이들>을 읽을 차례가 된 모양이다. 바로 옆에 있으니 집어서 펼치지만 하면 된다. 읽기 시작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해목 2019-03-19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홀 올해는 살만 루슈디가 선택된거군요! ㅎㅎ
<한밤의 아이들> 까이것 2권짜리 금방 읽을 겁니다. ㅋㅋㅋ 화이팅! ^^

레삭매냐 2019-03-19 14:02   좋아요 0 | URL
사전에 두 권을 읽어서 워밍업이 잘된
모양입니다. 진도가 잘 나가네요 일단은~

살만 루슈디의 책들을 가지고 있는 게
제법 돼서 당분간 읽을 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더라는.

moonnight 2019-03-19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께 간택된 영광의 작가네요 ^^ 저도 하고 싶은데 서가 파먹기ㅠㅠ 어째 내도록 사기만 하고 읽지는 않아서. 시무룩 ㅜㅜ

레삭매냐 2019-03-19 14:26   좋아요 1 | URL
제가 최근에 인스타로 해외 책쟁이들의
일상을 엿보니, 어디서나 비슷한 것 같
습니다.

일단 사들이고,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사재기를 끊지 못하는. 물론 독서 속도
는 사재기 속도를 못따라 잡구요.

화이팅입니다!!!

페크(pek0501) 2019-03-19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살만 루슈디의 책은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엔 왜 그리 좋은 책이 많은 겁니까?
이제 겨우 올해에 열중할 작가로 레이먼드 챈들러, 레이먼드 카버, 그리고 장편으로만 만났던 톨스토이의 단편집을 모조리 찾아 읽기, 를 계획해 놨습니다. 단편 소설의 매력에 빠져 지내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단편집 리뷰를 올려야지, 하고 있어요. 시간은 적고 책은 많고... 그렇습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레삭매냐 2019-03-19 19:05   좋아요 2 | URL
서양 책쟁이들의 인스타에도 어김
없이 등장하는

so many books, so little time...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

저도 오르한 파묵을 읽어 보겠노라고
결심했으나 불과 한 달만에 어그러져
버렸습니다 뉴뉴

감사합니다.

카스피 2019-03-20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선 스타워즈보다 오히려 스타트렉의 열성팬이 더 많을거란 생각이 듭니다.스타워즈는 1970년대 후반에 영화로 나왔지만 스타트렉은 이미 60년대부터 TV방송을 했기에 열성팬이 더 많을 거에요^^

레삭매냐 2019-03-20 17:33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

예전에 즐겨 보던 미드 <빅뱅>에 보면
정말 열혈팬들이 <스타워즈> 팬에 비해
더 많은 것 같다는.

지인 결혼식장에 가서 사진 촬영하는데
하객 중의 한 분이 스톰트루퍼 헬멧을
쓰고 계셔서 정말 깜짝 놀랐더라는.
 
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7> 

 

드디어 살만 루슈디와의 첫 번째 만남을 끝냈다. 다시 카슈미르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낙원이라 불리는 카슈미르는 과연 어떤 곳일지 궁금해졌다. 지난 주말 인천집에 갔다가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살만 루슈디의 <광대 샬리마르>란 책을 집어 들었다. 어떻게 해서 내가 이 책을 갖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읽지 않았다. 읽기 시작했는데 카슈미르가 등장하더라. 이런 놀라운 인연이 다 있나 그래.

 

600쪽이 넘는 <광대 샬리마르>를 읽으면서 제각각 다른 세 개의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장소부터 모두 다르지 않은가. 천사들의 도시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 지상의 낙원이라는 카슈미르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지역이었던 스트라스부르가 그곳들이다.

 

시작은 천사들의 도시다. 시간적 배경은 1991년, 24세 인디아 오퓔스가 첫 번째 주자다. 사실 첫 번째 챕터는 잘 소화가 되지 않았다. 저명한 그녀의 아버지 막스 오퓔스가 어새신(암살자)에게 처참한 모습으로 암살당했다. 도대체 누가 베스트셀러 작가에, 항동 레지스탕스, 하늘을 나는 유대인 그리고 주인도 미국 대사였던 미남자 막시밀리언 오퓔스를 죽였단 말인가. 아니 이 정도로만으로도 시작이 충분했던가.

 

살만 루슈디는 다시 시절을 되돌려 이번에는 지상의 낙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카슈미르로 계곡으로 이동한다. 카슈미르 파치감이라는 마을에 무슬림 청년 샬리마르 노만과 힌두소녀 부니(부미) 카울이 살았다. 자, 그들은 운명적 사랑에 빠지게 되고 종교 때문에 격심한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운명은 지금까지도 갈등이 지속되는 카슈미르의 숙명 같은 게 아니었을까? 마라하자가 지배하는 다수 무슬림들은 정치적으로 인도나 파키스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카슈미르인들을 위한 카슈미르라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세상을 원했다. 어쩌면 그런 이상이 수십 년간 계속되는 불화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파치감은 전통 예술공연과 60여 가지에 달하는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법한 연회 요리로 유명한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파치감에서 샬리마르는 줄타기의 달인이었고, 십대 소녀 부니는 아나르칼리를 연기하는 절세의 무희였다. 이질적 종교의 결합 사이에 자라나기 시작한 미세한 삶의 균열은 훗날 등장해서 부니를 앗아간 사악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신 유대인 미국 대사 막스 오퓔스로 촉발된다. 문제는 부니의 선택이었을까. 지루한 시골 마을을 탈출하기 위해 부니는 막스와 자신의 육체로 거래에 나선다. 사랑 없는 육체관계가 과연 오래갈 수 있었을까?

 

당연히 오쟁이진 젊은 남편 샬리마르는 분노와 증오에 젖어 복수를 다짐한다. 부니와 막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재앙의 씨앗인 카슈미라까지 모두 없애 버리겠다는. 한편 잠무 카슈미르를 장악한 힌두 인도군은 카슈미르에 사는 무슬림들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자치를 원하는 카슈미르 무슬림들에게 지울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당연히 이에 분노한 카슈미르 청년들은 해방전선에 가입해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도군의 진압에 대항한다. 자살폭탄 테러를 비롯한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한 때 지상의 낙원이었던 카슈미르는 이제 지상의 지옥이 되어 버렸다.

 

다음 무대는 소설 <광대 샬리마르>의 또 다른 주인공 막스 오퓔스가 사는 유럽의 복판 스트라스부르다. 프랑스의 영토이기도 했다가 보불전쟁의 패배로 독일제국의 땅이 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등 그야말로 카슈미르 버금가는 복잡한 역사를 가진 스트라스부르에 막스 오퓔스를 배치한 점도 살만 루슈디의 혜안이 번뜩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레지스탕스 영웅 막스 오퓔스가 과연 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 정 만으로 목숨을 건 저항운동에 나선 것이었을까라는 의문에 작가는 냉철하게 분석을 제시한다. 억울하게 강제수용소에서 의학실험의 대상으로 죽어간 부모의 죽음에 대한 복수, 그리고 어쩌면 불의에 대한 투쟁이라는 낭만적 요소가 더 강렬한 유인책이 아니었을까. 막스 자신이 한 때, 테러리스트로 활동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막사의 테러와 샬리마르의 테러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에 모든 테러는 나쁜 것인가? 아니면 누구의 테러는 옳고, 또 다른 누구의 테러는 옳지 않다는 건가? 분노와 증오의 파도가 다시 한 번 넘실거리는 시절에 테러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살만 루슈디의 <광대 샬리마르>를 통해 미지의 세계인 카슈미르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소설적 장치로서 분열과 갈등보다 더 좋은 소재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거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사랑과 전쟁” 그리고 복수라는 양념까지 추가되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이후의 서사 전개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막스의 아이를 낳은 부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한 때 자매 같았던 친구들의 농간으로 그녀의 아버지 요리사이자 철학자 판디트 피아렐랄 카울마저 그녀의 죽음을 공인한다. 막스의 뚜쟁이 에드거 우드는 부니를 씹는 담배와 마약 그리고 폭식으로 길들였다. 부니가 호색한에게 제공한 쾌락의 여운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부니와의 관계가 스캔들로 비화되면서 미국 대사는 문자 그대로 추락했다. 부니의 귀향 소식을 들은 샬리마르를 바로 행동에 나서려고 하지만, 반드 파테르의 수장 아버지 압둘라 노만과 판디트 피아렐랄의 만류로 부니의 운명은 유보된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 겉껍데기만 남은 샬리마르의 미래도 결정난 게 아니었을까. 산으로 들어가 해방전선의 사령관으로 활동하던 형 아니스 노만과 합류한 샬리마르는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테러활동에 온전하게 투입하고, 뛰어난 암살자로 거듭난다.

 

지상 낙원이었던 카슈미르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보여준 작가는 마지막으로 막스 오퓔스 대사가 암살된 미국으로 다시 무대를 이동시킨다. 미국대사 막스 오퓔스로 대변되는 미국의 어중간한 태도도 세계의 화약고로 변한 카슈미르 파괴에 책임이 있다는 게 아닐까. 더 나아가서는 세계화에 발맞춰 상품과 재화의 자유로운 이동만큼이나 분노와 증오가 실린 폭력의 세계화에도 미국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래서인지 막스를 암살한 샬리마르가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미국출신 변호사가 구사한 ‘주술사 전법’이 허무맹랑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자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탈옥에 성공한 샬리마르가 인디아 아니 이제는 카슈미라 오퓔스가 된 자신의 의붓딸과 마주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처음 만난 살만 루슈디는 <광대 샬리마르>로 나에게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지난 주말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멍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서로 다른 세 권의 연작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지난주에 그의 대표작 <한 밤의 아이들> 상권을 사들였다. 집에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리고 어제부터 9개의 단편 소설이 실린 <이스트, 웨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훨씬 더 가벼운 느낌이다. <무어의 한 숨>도 재출간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레스트 검프
윈스턴 그룸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놈의 초콜릿 상자!

그래 포레스트 검프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소설책으로. 아주 오래 전에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봤다. 기대했던 것처럼 재밌었다. 포레스트 검프 역을 맡은 탐 행크스의 연기도 좋았고. 정말 오래전 일이로구나. 그런데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인지는 어제 처음 알았다. 역시 갠춘한 영화에는 좋은 원작이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런데 소설로 만난 <포레스트 검프>는 영화와 아주 많이 달랐다. 영화에서 검프가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그런 인물로 그려졌었는데 소설에서는 그런 부분을 많이 덜어냈다. 물론 그래도 대통령 LBJ를 만나고, 핑퐁외교팀의 일원으로 중국에 건너가 마오 주석을 익사의 위기에서 건져내는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말이다.

 

실제로 베트남 파병 근무를 했다는 저자의 경험치에 의거해서인지 검프의 에피소드는 베트남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모빌, 앨바매바 출신 백치 소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풋볼 러닝백으로 일약 스타가 되면서 시작된다. , 그전에 검프의 평생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제니 커런을 만난 이야기도 빼먹으면 안되지. 한국 드라마에서 애정 라인이 빠질 수 없듯이 검프 스토리에서도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앨라배마 대학까지 진학하는데 성공한 검프는 대학에서 훗날 자신의 사업적 성공의 기반이 되는 새우 사업의 꿈을 자신에게 불어 넣어준 친구 버바를 만나게 된다. 영화에서 버바는 흑인이었던 것 같은데, 소설에서는 인종이 달라 보인다. 그리고 룸메이트로 포악한 커티스도 등장하고. 오렌지볼에서 우승에 실패한 검프는 대학에서 낙제하는 바람에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징병되어 끌려 가게 된다. 그는 자신이 백치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그가 가는 곳은 죄다 백치들 투성이라 별 문제가 안된다고 한다. 대학 풋볼팀이 그랬고, 군대가 그랬다.

 

군대에 간 검프는 평생기지라고 할 수 있는 버바와 다시 만나고, 자신에게 삶에 대해 반추하게 해준 상이용사 댄 소위를 만난다. 잘못된 전쟁에 참가한 젊은이들의 국(gook)들과의 전쟁에서 손발을 잃고 심지어 죽기까지하는 장면은 정말 안타까웠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인사들은 징병기피를 해서 그런 똥더미 같은 전장을 피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영화에서처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동료 병사들을 구한 용감한 행위로 군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 명예인 의회 명예훈장까지 검프는 받는다. 그리고 자신 역시 엉덩이에 부상을 당한 상이용사가 되어 전국을 돌며 전쟁 본드 판매에도 나서게 된다. 이 장면에서는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가 연상되기도 했다. 군병원에서 탁구도 배우고.

 

영화에서는 그 유명한 딴따라 엘비스와 대통령 케네디와도 만나는 장면이 나오지만 소설에서는 LBJ와 만나서 미스터 프레지던트에게 엉덩이를 들이미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미군 탁구 챔피언을 박살낸 검프는 당시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한 죽의 장막을 걷어내기 위한 핑퐁외교 사절로 중공을 방문하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커트되었지만, 장강을 건너는 마오 주석을 익사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물론 같이 갔던 인사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 다음에 제대한 검프는 첫사랑 제니를 찾아 하버드 대학이 있는 케임브리지로 가서 걸출한 하모니카 연주로 제니와 밴드 활동을 하기도 한다. 반전시위대로 몰렸다가 NASA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우주비행에 나선다. 이 부분이 소설에서 가장 황당해 보이는데(사실 스토리의 전개가 전반적으로 황당의 연속이긴 하지만), 다른 여성 우주인과 오랑우탄 수와 함께 뉴기니 정글에 추락해서 4년간 식인종의 포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 부분은 영화에서 전체적으로 걷어내졌다.

 

다시 사회에 복귀해서는 댄 소위와 만나 레슬러로 활약하기도 한다. 그렇게 쇼비즈니스 업계를 경험한 검프는 비로서 싸나이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한탕 거하게 땡겨서 전장에서 전사한 버바의 꿈대로 루이지애나로 가서 새우 사업 밑천을 벌겠다는 검프의 꿈은 제니가 그의 곁을 떠나면서 일장춘몽이 되어 버린다. 그제서야 검프는 홀로 남은 엄마를 찾으러 나섰던가. 암튼 이번에는 뉴기니 정글에서 배운 체스로 캘리포니아로 가서 체스 대회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 다음에는 버바의 아버지를 찾아가 드디어 새우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의 새우 사업이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그리고 나선 버스킹을 하기도 하고 블라 블라...

 

소설 <포레스트 검프>는 영화에 비해 여전히 황당한 전개이긴 해도 흥미로 가득하고, 무엇보다 재밌다. 신속한 전개에, 끝없이 변신하는 검프의 캐릭터를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다만 반전 메시지 같이 좀 더 진중한 컨텐트에 대해 좀 더 다루지 않은 점이 아쉽긴 했다. 영화는 아마 속편 <검프 회사>의 내용까지 더해서 나온 것 같은데, 속편은 저작권료 분쟁으로 영화화되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최고였노라고 말하고 싶다. 재밌으면 그만이지 뭘 그래.


[뱀다리] 아 그런데 표지하고 소설하고는 미스매칭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합중국을 달리는 검프 이야기는 나오지 않거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3-14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3-14 09:17   좋아요 0 | URL
얼마 전에 영화를 빨리 보기로 해서 보았는데
참 재밌더라구요.

올디 벗 구디인가 봅니다. 90년대 갬성으로.

노래도 멋졌습니다.

설해목 2019-03-14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표지가 안타깝네요. ^^;;
영화는 몇 번을 봤는데..... 소설은 영화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고 하니 우선은 담아두지만
저 표지라면 선듯 데려오기가.....ㅎㅎㅎ;;;;

레삭매냐 2019-03-14 16:45   좋아요 1 | URL
소설이 영화보다 쫌 더 전개가 황당하고,
영화는 영화대로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책도 읽는 동안 매우 흥미진진했답니다.

다만 표지는 좀 아쉽네요...

moonnight 2019-03-14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볼 때마다 눈물이ㅠㅠ 레삭매냐님 평을 믿지만 소설을 읽게 되지는 않을 듯. 포레스트 검프는 그냥 영화로 간직하고 싶어요^^ 표지 문제가 크네용-_-

레삭매냐 2019-03-15 09:38   좋아요 0 | URL
느낌상, 아무래도 영화는 속편이라는 <검프 회사>
하고 짬뽕 콜라보로 만든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영화 좋지요 ~~~

cyrus 2019-03-15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구판은 김영사에서 나왔어요. 역자는 개정판과 비슷할 것입니다. ^^

레삭매냐 2019-03-15 18:13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소설이
있는지도 몰랐답니다.

판권이 아마 다른 출판사로
넘어간 모양입니다.
 
광신의 무덤
볼테르 지음, 고선일 옮김 / 바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위대한 인문주의자였던 볼테르의 신랄한 그리스도교 비판서인 <광신의 무덤>을 읽었다. 내가 보기에 무신론자 볼테르의 주장은 기독교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테르의 비판은 모세오경, 그러니까 구약 시대로부터 출발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신화는 기존에 존재하던 전승과 설화의 영향을 다분히 받았다. 창조적 변형의 과정을 거쳐 유대인들의 경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득 20년 전에 이미 길가메쉬 신화가 성경 기록 이전에 존재했다는 이야기로 반박을 하던 지인의 논박이 떠올랐다. 유대인들의 숙적인 페니키아인(블레셋 혹은 필리스타인 사람들)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선택받은 민족이 여타 민족을 약탈하고, 이집트를 탈출해서 광야에서 도적질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민족을 잔혹하게 멸족시키는 장면도 종종 등장한다.

 

믿음의 조상이자 위대한 유대왕국의 건설자 다윗이 범한 실수에 대해서도 냉철한 저술을 이어간다(49쪽). 볼테르에 따르면 자신을 환대한 아키스 왕과 동맹을 맺은 부족들을 약탈하고 학살했다. 왕위를 찬탈하고, 사울 왕의 후손들을 죽였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의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 언급을 피하자. 그의 아들 솔로몬의 수많은 축첩행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떤 것들은 구약 시대의 유대 풍습도 지금까지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회의 십일조다), 또 어떤 것들은 현재와 맞지 않으니 지키지 말아야 한단다. 그렇게 현명했던 솔로몬의 타락으로 결국 유대왕국의 분열과 멸망의 길로 접어들지 않았던가. 솔로몬이 지은 외설스러운 <아가>에 대해 교황파 신학자들이 갖다 붙인 해설은 정말 최고였다.

 

신성모독에 가까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정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되어 결국 거대한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그리스도교의 광신성에 대해 볼테르는 비판의 방점을 찍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황당무계한 주장으로 점철된 전승으로 무장한 그리스도교가 다신교 세계인 로마 제국의 하층부에 서서히 침투하면서 세를 불려 나갔다. 유일신 종교 특유의 불관용은 궁극적으로 다른 종교와의 충돌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 사후, 그리스도교의 세계화의 결정적 공헌을 한 바울에 대해서도 횡설수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볼테르는 그가 로마 시민권자라는 주장을 반박하는데, 그 어떤 유대인도 로마 시민권을 획득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지적한다. 이 사실은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놀라웠다.

 

볼테르는 또한 그리스도교 초기 등장했던 다수의 복음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정경(캐논)으로 인정받은 현재의 복음서의 기술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이에 열성적인 유신론자 파스칼은 그것은 “합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복음서의 위작설에도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무게를 싣는다. 가령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 시절에 교회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후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에클레시아’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결말에 등장하는 대로 과연 진리가 우리에게 늘 이로운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스도교가 유대 지방을 벗어나 그리스 플라톤의 이원론과 결합하면서 발생한 삼위일체론에 도달해서는 아직까지도 명쾌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나의 본질에 어떻게 세 개의 다른 위격이 존재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교부 철학자들이 매달려서 합리적 논리를 제시하려고 했으나 아직까지도 해결이 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저 믿으라는 말만 하니 답답하다. 그전에‘ 트리니티’에 대해 질문하니 도돌이표처럼 맴도는 답변만 돌아오더라. 삼위일체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초기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었던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의 사제 클레멘스와 그의 제자 오리게네스는 호교자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자들과 치열한 논박을 벌였다. <광신의 무덤>을 읽다가 도서관으로 달려가 오리게네스의 <켈수스를 논박함>을 빌려 오기도 했다. 다만 자그마치 8권이나 되는 책의 축약본이라는 점이 좀 아쉬웠지만 말이다. 언제 다 읽게 될 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바로 이런 구원에 이르는 비밀의 지식을 추구하는 영지주의자들과의 싸움의 역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에세네파, 마니교, 알비파(카타리파) 등이 대표적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아닌 이교도에 대한 불관용(볼테르는 이것이 광신의 특성이라고 역설한다)은 필연적으로 기존 종교를 믿는 이들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도교 초기 로마 제국의 박해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전승이 당시 어마어마한 박해가 있었다고 하는데, 볼테르는 이것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시한다.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 어떤 카이사르가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볼테르가 적시한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절 박해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 바오 출판사는 친절하게도 각주로 설명을 대신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초대 기독교 황제로 떠받들여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화에 대해서도 볼테르는 신랄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전혀 기독교 황제답지 않은 행동을 일삼는 포악한 군주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후, 제국의 영화는 오래 가지 못했고 북방의 야만족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는 역설은 또 어떤가. 그리스도교 내의 분열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이다. 당시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을 두고 도나투스파와 키프리아누스파로 나뉘고,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우스, 아타나시우스와 유세비수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초기 기독교에 대해서는 상당한 분량을 들여 비판한 볼테르는 중세시기 권력 자체가 된 교황권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한 논박을 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억압한 사실에 대해서도 비판하지만 처음의 결기는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어쨌든 볼테르의 비판을 읽으면서 현재 교회의 모습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스스로 정치세력화된 일단의 목사들은 돈과 권력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입으로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면서도, 거대한 메가처치 성전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세상의 권력을 얻게 되자 초대 교회 시절, 교회라는 건물도 필요없다고 한 주장을 번복한 중세 교부들처럼 예수 그리스도 대신 맘몬을 더 가까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진리가 과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 볼테르는 283년 전의 저술로 우리에게 묻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