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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카스 2006 / 존 라세터

 

요즘 꼬맹이에게 보여줄 애니메이션 구하기에 바쁘다. 그 중에 제법 연식이 된 영화 픽사의 <카스>(2006)를 감상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영어자막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더빙판으로 보게 되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픽사는 피스톤컵 처녀 출전에서 우승을 노리는 잘난 레이싱카 라이트닝 맥퀸의 흥망성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벌써 12년이나 되었는데, 픽사의 애니메이션 기술은 완성에 이른 듯하다. 이야기면 이야기, 캐릭터면 캐릭터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그렇게 잘 만들어내니 전세계 팬들의 열광을 받을 수밖에. 다만, 후속편은 좀 엉망이었다고 하는데 1편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피스톤컵 레이스에서 공동 3위를 하는 바람에 66번 도로를 달려 캘리포니아에 가서 재경기를 치르게 된 라이트닝 맥퀸. 이동 트레일러 카가 깜빡깜빡 조는 바람에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진 라이트닝 맥퀸. 래디에이터 스프링스라는 쇠락한 마을에서, 경찰과 판사 그리고 변호사의 작당으로 과속에 신호위반이라는 죄목에 잡혀 도로포장이라는 노역형을 치르게 된다. 물론 당장 캘리포니아로 가서 피스톤컵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도주도 감행해 보지만, 아무리 시골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맥퀸의 도주를 예상하고 미리 기름을 빼둔 덕분에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잡혀오게 된다.

 

서사는 치기 어린 선수가 숨은 고수를 만나 비전을 전수받게 된다는 중국 스타일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고수는 너 혼자가 아니란다 꼬맹아. 왕년에 피스톤컵 3연패에 빛나는 닥 허드슨(폴 뉴먼 목소리 연기)과 경주를 벌이기도 하지만 패기만 가지고 왕년의 레이싱 챔피언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게다가 캘리포니아에서 잘 나가던 변호사로 활약하던 포르쉐 샐리와의 만남도 점점 미래의 챔피언 맥퀸이 마을에 정을 붙이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작동한다. 아, 그리고 사이드킥으로는 고물 뻐드렁니 견인차 메이터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 아니 자동차라면 누구나 친구가 필요하지 않은가. 외딴 마을에서 군소리하지 않고 묵묵하게 도로 까는 일을 하는 맥퀸에게 메이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성공의 단맛에 취할 수도 있었던 맥퀸이 심성 좋은 자동차들이 사는 래디에이터 스프링스에서의 유배생활을 통해 비로소 실력만 갖춘 레이싱 챔피언이 아니라 인성까지 갖춘 진정한 챔피언으로 태어나게 되는 과정을 픽사/디즈니는 그려내고 있었다. 뭐 항상 현실세계에서 그런 정공법이 통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미디엄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불가능한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시 평가할 만하지 않은가 싶다.

 

마지막 레이스에서 우승을 앞두고, 피스톤컵 우승을 라이벌에게 양보하는 점이 시사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한 번 실패하던 다시 일어설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없는 그런 점이 아니었을까. 물론 기본 조건은 라이트닝 맥퀸이 이번 기회를 놓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의 부여 그리고 누구 못지 않은 실력이었으리라. 물론 맥퀸이 그런 걸 노리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감동적인 스토리야말로 감성에 메말라 버린 시절에 뉴스와 대중이 환호할 수 있는 기가 막힌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았던가. 이렇게 축적된 자산을 지니게 된 맥퀸은 자신에게 훨씬 더 좋은 기회와 부를 선사해줄 다이노코 사와의 후원 계약 대신 어려운 시절 자신을 후원해온 러스티 사와의 계약을 유지할 거라는 선언을 한다.

 

디즈니 사의 창업주 월트 디즈니의 탐욕스러운 비즈니스 정책과는 사뭇 다른 맥퀸의 선택이 낯설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꿈을 그리고 어른들에게 동심으로의 회귀라는 전략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해서, 박스오피스에서 어마어마한 실적을 내고 있는 거대 영화사로 거듭난 디즈니의 전통 서사가 보여주는 보수적 가치야말로 우리가 지켜야할 훌륭한 유산이라는 식의 감동 섞인 지도가 나는 탐탁지 않게 느껴진다.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렌더링 작업을 어떻게 했을까, 실사 같은 감정이 묻어나는 캐릭터들의 표정 설계를 어떻게 했을까 같은 기술적 질문들보다 전통서사에 입각한 낡은 가부장 질서야말로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생각들일 터인데 그것을 고집하는 디즈니 경영진의 고집에 두 손 들어 버렸다. 그러고 보면 좋은 게, 모두에게 다 좋은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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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8-06-21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회가 새롭네요~^^
이 영화를 무려 극장에 가서 아들과 함께 낄낄거리고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때 자동차라면 꿈뻑 넘어가신다는 삼성 이건희 회장님도 겹쳐지고 그랬었어요.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꾸벅~(__)

레삭매냐 2018-06-22 10:36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픽사 애니 모두 챙겨 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영화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네요...

자유롭게 영화 볼 날을 꿈꿔 봅니다.

취미는 취미일 뿐, 절대 사업으로 하면
안된다는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곧, 주말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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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의 제목 <, 주말>이라고 해서 다가오는 주말에 대한 직장인들의 기대 뭐 그런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시바사키 토모카의 소설집은 나의 예상하고는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소한 일상에 대한 스케치라고나 할까.

 

감기에 걸려 연초를 보내다가 느닷없이 일박을 하겠다고 거의 쳐들어오다시피 집으로 들이닥친 회사 선배. 그런데 난 왜 그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이 주식으로 먹던 고기우동 그리고 하와이로 가족여행을 갔다는 선배의 신랑이 자기 와이프를 재워 줘서 고맙다는 뜻에서 무슨 선물이 받고 싶냐고 했을 때, 주인공이 대답했던 코나 커피와 마카다미아 땅콩만 생각난다. 하긴 후자의 경우에는 어느 재벌가의 회항 사건으로 이름을 날려서 더더욱 기억에 남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듣자하니 일본 사람들은 민폐를 극도로 혐오한다고 들었는데, 상황이 급하게 되면 그렇게 타인의 신세를 지게 되는 게 인지상정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한 때 잘 나가던 아이돌이었다가 한물가서 얼토당토 않은 줄거리의 <여자 조폭 2> 같은 엽기물에 출연하게 된 여성 스타에 대한 이야기도 아티스트라기 보다 산업화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소모품이 된 스타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살짝 엿볼 수 있다.

 

히메지나 산노미야 같이 나도 언젠가 한 번 가봐서 익숙한 지명이 등장하는 <제비의 날>도 간이 안밴 비빔국수 같지만 역시나 흥미롭다. 여성 동지 세 명이서 의기투합해서 오사카에서 히메지 여행에 나선다. 일본 소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로드무비 스타일이라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호기롭게 출발한 그네들의 여정은 자동차에 이상이 생기면서 바로 위기에 봉착한다. 수리비로 10만 엔이 들지나 않을까 하는 소시민스러운 걱정은 뒤로 하고, 휴게소에서 파는 먹거리들을 보면서 역시 난 스테이크가 먹고 싶더라. 치즈포테이는 생각만큼 맛있지 않았다는 둥 하는 전개가 왜 이렇게 익숙한 걸까. 나도 다음 주에 짧은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길에서 만나게 될 먹거리들이 모두 다 맛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어쨌든 고장난 자동차를 끌고 가는 정비공 아저씨가 동향이라 누구 누구를 아냐며 수배하는 장면도 재밌었다. 하늘을 나는 제비들이 먹이를 잡는 과정도, 그 제비들이 느닷없이 죽기라도 하면 집에서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도 모두 여행길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출근길에 만난 제비들의 안위에 대해 누가 그렇게 걱정을 할까. 피로에 쩐 내 한 몸 걱정하기도 바쁜 마당에 말이다.

 

지인들과 마츠리 구경을 나갔다가 예전 과외를 하던 부부와 만나 과거를 회상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재밌다. 집에 돈이 좀 있는지 골동품 사냥을 하는 중년 부부. 지난 밤 라이브 공연에 참가했다가 귀가 벙벙거리는 이명 현상에 시달리면서 기타 연주는 끝내 줬다고 했던가. 어쩌면 우리네 삶은 그렇게 무언가를 얻으면 반대급부로 또다른 무언가를 내주어야 하는 삶인 지도 모르겠다. 과외 클라이언트 가족과 식사를 하러 차를 얻어 타고 나갔다가 운전 부주의로 사고를 당한 경험 때문에, 이번에는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한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잘 정리도 하지 않는 연상의 동거인 가나코 짱과 살면서 스케줄이 겹치는 바람에 제법 재력이 있는 이들의 모임에 끌려간 주인공의 푸념 섞인 상념의 바다에 빠져 재미도 쏠쏠하다. 홈파티에 가서 진기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진수성찬을 실컷 먹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애인도 없는 집에서 주말을 홀로 보내기 싫어 부러 라멘집을 찾아가 조우하게 되는 장면에 대한 스케치는 또 어떤가. 하나 마나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커플에 대한 품평, 환영받지 못한 스탭 직원의 등장 그리고 가게 안으로 침투해온 큼지막한 바퀴벌레가 자기까지 오려면 하나마나 커플을 지나야 한다는 안도감 등등. 정리정돈에는 젬병이지만 자기라면 도저히 마련할 수 없을 거주공간을 제공한다는 이유에 대한 상념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렇게 소소한 일상의 디테일들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네 삶의 본질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주말의 절반을 넘긴 나의 일상은 어땠지. 요즘 핫하다는 송도 아웃렛에 가서 지금까지 본 다이소 중에 가장 매장구경을 열심히 했고, 싸구려 물건들을 11,000원 어치 샀다. 그런 다음 가리비와 바지락이 들어있다는 해물칼국수를 먹었는데 가리비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리비가 하나도 없다고 항의는 하지 않았다. 아마 시세가 비싸서 넣지 않았겠지 싶었다. 중고서점에 가서 그동안 눈여겨 보았던 책 두 권을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나서 저녁을 먹었고, 2006년에 발표된 픽사의 <카스>를 감상했다. 전형적인 내러티브의 구사였지만 재밌었다. 그리고 나서 시바사키 토모카의 <, 주말>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썼다. 나의 주말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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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0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0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8-06-10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이 잘 밴 비빔국수와 칼국수가 먹고싶어지는 리뷰에요. ^^

레삭매냐 2018-06-10 13:43   좋아요 0 | URL
그리하야 오늘 점심에 비빔국수와 김밥
을 시원하게 먹고 왔습니다 :>
 

 

[영화감상]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일시 : 2018년 6월 6일 롯데시네마 아시아드

 

*** 사전 경고 :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 <한 솔로>가 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6월 5일을 기점으로 해서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간판이 내려가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먹히지 않는 저주에 사로잡힌 스타워즈 시리즈라고나 할까. 난 과연 언제나 극장에 가서 스타워즈를 보게 될런지.

 

하루만 더 버텨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영화 체인들은 단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고 현충일에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으로 전국의 상영관을 도배해 버렸다. 관객의 초이스를 줄여 벌여 최대한의 이윤을 올리려는 대자본의 막강한 파워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뭐 안 보면 그만이겠지만 또 다가온 찬스를 놓칠 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쥬라기 월드> 감상에 나섰다.

 

제프 골드블럼 아저씨만 제외하고 주인공들을 싹 갈아 치우고 리부트에 나선 <쥬라기 월드>. 이번에는 화산분출로 위기에 처한 이슬라 누블라의 격리된 공룡들을 구하라는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전작에도 크리스 프랫이 주연한 오웬 그래디와 합을 맞춘 바 있는 공룡 보호 협회(Dinosaur Protection Group) 소속의 공룡전문가 클레어 디어링(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분)이 이번에도 주인공으로 열연을 맡았다.

 

이안 말콤 역의 제프 골드블럼은 화산폭발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슬라 누블라의 공룡들을 구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의회 청문회에서 강변한다. 이미 인간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공룡들의 운명을 자연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반해 클레어는 소수의 공룡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일념 아래, 록우드 재단을 대표하는 일라이 밀스(라프 스팰 분)의 권유에 오웬을 리쿠르트해서 랩터 블루 일병 구하기에 나선다. 공룡보호 협회 소속 컴퓨터 너드 프랭클린과 지아 로드리게스와 함께 이슬라 누블라에 도착한 일행은 기존의 폐허가 된 시설에 도착해서 공룡 추적에 나선다. 아 참 영화의 시작은 바다 속에서 백골이 된 안도어쩌구하는 공룡의 뼈다귀 샘플을 채취하는 장면이다. 뼈다귀 채취를 맡은 탐사선은 바다괴물 공룡에게 삼켜지고, 사다리를 타고 공룡의 습격을 피해 달아나던 요원 역시 바다괴물 공룡의 먹이가 된다. 흠, 극장에 아이들이 상당히 많던데 괜찮을 지 모르겠다.

 

록우드 재단에서 고용한 용병들은 모두 11종의 공룡들을 새로운 보호지(생추리)로 옮긴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슬라 누블라에서 생포한 공룡들을 전세계 수요자들에게 밀매하려는 가공할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는 녀석은 바로 ‘블루’라는 이름의 벨로시랩터였다. 오웬은 그저 블루를 생포하기 위해 미끼였을 뿐이었다. 용병대장 휘틀리는 거추장스러운 오웬을 마취총으로 쏘아 버리고, 블루를 포획해서 현장을 떠난다. 뜨거운 용암이 마구 흘러 오는 가운데, 마취에서 덜 풀린 오웬은 간신히 몸을 추슬러서 도주에 성공한다. 한편, 폐허가 된 센터에서 공룡들을 추적하던 클레어와 프랭클린은 포악한 육식공룡의 추적을 피해 오웬과 합류해서 화산폭발이 시작되어 살아남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공룡 대열에 합류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오웬 일행은 이슬라 누블라를 마지막으로 떠나는 배에 가까스로 합류하는데 성공한다. 부둣가에 마지막으로 남은 공룡 브론토사우르스가 울부짖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용암 속에서 최후를 맞는 장면은 어쩌면 리부트된 시리즈의 엔딩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록우드 저택으로 향하는 가운데, 용병들의 총에 맞아 빈사 상태에 빠진 블루를 살리기 위해 티렉스가 갇힌 우리에 들어가 수혈할 피를 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아니 이렇게 인간들이 인도적이었던가.

 

오웬 일행이 그렇게 생존을 위해 싸우는 동안 록우드 저택에서는 또다른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선량해 보이던 일라이 밀스가 사실은 유전과학자 헨리 우와 결탁해서 새로운 유전자 조작으로 인도 랩터라는 괴물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전쟁을 위해 기화(weaponize) 공룡 제작에 나선 것이다. 레이저타게팅과 후각을 이용해서 적을 추적하는 능력은 물론이고 타고난 포악함으로 무장한 공룡이 전장에 투입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이안 말콤의 지적 대로 그야말로 인류에게는 재앙이 되지 않을까.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영화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이 전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록우드 할아버지의 손녀 메이지 역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이 등치되는 것도 놀랍다.

 

결국 권선징악이라는 고대의 율법 대로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었던 일라이 밀스 역시 공룡에게 희생당할 숙명이다. 괴물 인도 랩터와 벌이는 마지막 사투야말로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의 핵심이었다. 공룡 유물 전신관의 정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있던 트리케라톱스의 무지막지한 유골의 쓰임새가 조금 궁금했었는데 엔딩에서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인도 랩터의 무시무시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판에, 전작에서처럼 우리의 영웅 블루가 등장해서 자기보다 배나 큰 사이즈의 인도 랩터와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대단했다. 메지이와 오웬이 메이지의 침대에서 인도 랩터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빨간 모자 같은 베드타임 스토리가 연상되기도 했다.

 

일라이 밀스와 휘틀리는 노골적으로 돈을 추구하는 속물로 나오지만, 일라이가 감옥에 갇힌 오웬과 클레어에게 너희들도 자신과 다를 게 없다며 추궁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최고 씬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새로 단장한 쥬라기 월드, 이슬라 누블라의 공룡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 클레어였고 그곳에서 새롭게 재창조된 공룡 조련사로 활동한 게 바로 오웬이 아니었던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두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신의 영역에 도전한 책임은 모두에게 있지 않냐고 반문하는 일라이 밀스의 당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막판에 록우드 재단의 지하연구소에서 배기장치가 고장나고,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날에는 전형적으로 날씨가 구질구질하다, 사이어나이드 가스가 갇힌 공룡들의 목숨을 위협하게 되자 클레어는 공룡들을 풀어놓았을 때 벌어질 위험을 책임질 수 있냐는 오웬의 말에 폐쇄철문을 여는 버튼 누르기를 주저한다. 그 때 마침 메이지의 결단으로 문이 열리고, 살아있는 생물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결단으로 공룡들이 마침내 세상에 풀려난다. 그렇게 익룡들이 노을 지는 석양을 날아다니고,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을 삼킬 지도 모를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이 펼쳐지게 되는 것일까. 자신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오웬의 제안을 거부하고 자연을 선택한 랩터 블루는 캘리포니아 계곡에 늘어선 어마어마한 인류의 주택단지와 조우하게 된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인류 생태계의 파괴라는 심오한 주제와 더불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공룡들이 스크린을 질주하는 장면을 마음껏 즐기라는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즌의 개막을 알린 오락영화의 신호탄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과연 리부트된 공룡 시리즈의 다음을 기대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휴일 즐길 만한 오락영화로서는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뱀다리] 록우드저택의 공룡경매에서 시제품으로 소개된 인도 랩터에 대해 경매가가 마구 치솟자, 시제품이라며 안파는 물건이라며 손사래를 치던 일라이와 군나르 에버솔 아저씨의 모습이 재밌게 느껴졌다. 경매가가 2,000만 달러를 상회하자 다시 만들면 된다고 했던가. 새로운 존재의 창조까지도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한 힘을 자랑하는 자본 권력의 천박하면서도 막강한 빠워에 다시 한 번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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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레인 - 상 - 영화 강철비 원작만화
양우석 지음, 김태건 그림 / 네오카툰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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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정말 오래 간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한 편 봤다. 예전에 영화 보기가 취미였던 시절도 있었으나 다 오래된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JSA 이래, 분단을 다룬 최고의 영화였다는 평을 마음에 품고 영화를 보러 갔다. 그리고 기대이상이었다. 최근 사이다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정우성이 맡은 북한 최고의 공작원 엄철우의 열연이 특히 돋보이는 그런 작품이었다.

 

최근 미국의 이상한 대통령과 북한 1호의 연이은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웹툰원작을 영화화했다는 영화 <강철비>가 던지는 메시지는 비교적 간단한다. 한민족에게 재앙이 되는 제 2의 한국전쟁은 어떻게든 막아라. 정찰총국장 리태한(김갑수 분)은 북한 군부 쿠데타를 기획 중이라는 호위총국장 박광동(이재용 분)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한때 최고의 정예 엘리트 요원이었던 엄철우(정우성 분)에게 내린다. 마치 마피아들이 그렇듯이 가족들의 안위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엄철우는 개성공단 시찰에 나설 북한 1호를 동반할 예정인 박광동 저격에 나선다.

 

문제는 저격 현장에 박광동은 보이지 않았고, 북한 특수부대원에게 탈취당한 미군 MLRS(Multiple Launch Rocket System)의 폭격으로 시찰에 나선 북한 1호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엄철우는 공화국 수령을 지키겠다는 일념에 나선 북한 처자 두 명과 함께 남쪽으로 향하는 중국 차량 속에 섞여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북한 특수부대 에코팀 소속 최명록(조우진 분)이 이를 그냥 둘 리가 없었다. 총격전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1호의 뒤를 쫓는다.

 

한편 한국에서는 막 대선을 치른 상황으로 현직 대통령 이의성(김의성 분)에서 차기 대통령 김경영(이경영 분)으로의 권력 이양이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서 벌어진 쿠데타에 당연히 국가안보팀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 분)는 긴박하게 전개되는 상황 분석 중에 북한 1호를 호위 중인 엄철우가 자신의 부인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갔을 것이라는 추리에 도달한다. 아, 그 전에 리태한에게 현장 보고를 하고 일산에 머물던 엄철우 일행을 다시 에코팀이 엄습하면서 한바탕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MLRS의 공격으로 두개골에 피탄된 북한 1호의 생사가 불투명한 위기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통령 전쟁불사를 외치는 보수파 이의성은 전국적인 계엄령을 발표하고 우방 미국에 북한 핵폭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어떻게든 전쟁을 막아 보겠다는 차기 대통령 김경영의 의사는 무시한 채 말이다. 미국이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는 핵폭 작전과 파멸적 전쟁을 막기에 주어진 시간은 36시간, 남북한의 철우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민족의 공멸을 부를 수도 있는 전쟁 방지에 나선다.

 

- 이하 영화에 대한 중요한 스포일러들이 다수 포진해 있으니 감안해서 봐 주시길 -

 

참여정부 이래 자주국방과 작전권 회수라는 명제를 가지고 싸워 왔지만, 역시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운명을 타의에 맡겨야 하는 처량한 신세다. 미국의 첫 번째 핵폭 공격이 북한의 요격 미사일(?)에 의해 무력화되고(북학의 미사일 능력이 그 정도나 되었단 말인가) 두 번째 공격을 요청하는 한국 대통령의 나름 절박한 요청에 미국 담당자는 단호하게 거부한다. 사실상 북한 1호를 제거하고 군부 쿠데타를 기도한 정찰총국장 리태한의 음모를 그 유능한 엄철우가 계속해서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아무리 감청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엄철우가 은신해 있는 곳을 에코팀이 기가 막히게 찾아낸단 말인가. 그 정도라면 상대방을 한 번쯤은 의심해 봤어야 했는데, 자기 가족의 생사와 안위를 맡긴 탓인지 엄철우의 판단력이 흐려진 모양이다.

 

선제공격을 받은 북한 당국은 당연히 선전포고를 했고, 우리에겐 잊혀진 존재였던 수많은 땅굴을 통해 15만 특수부대를 남침시켜 미군과 10만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을 인질로 잡고 미국과 협상에 나서겠다는 리태한의 큰소리가 마냥 우스개 소리만으로 들리진 않는다. 어쩌면 선군정치라는 미명 아래 군부를 우대하고 있지만, 핵개발 과정에서 틀어져 나온 불평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일정 정도의 군사적 도발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9년 동안의 보수정권 아래서, 강대강 압박작전으로만 일관해서 결국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북한이 핵개발 능력을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개발시키는데 성공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한 번 DJ의 햇볕정책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위기가 발생한 곳이 개성공단이라는 점이 시사하는 점도 크다. 남북관계 협력의 시발점이었던 개성공단 협력과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마당에, 우리가 북한을 상대로 제재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실질적으로 북한 노동자들의 저렴한 임금으로 이익을 본 것은 북한보다도 우리 기업들이 아니었던가. 어느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북한 1호가 남한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좀 비현실적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사태가 모두 진정된 뒤 북한 1호를 북한으로 귀환시키는 과정에서 북한이 가진 핵무기 절반을 인수 받는다는 것이 황당했다. 아무리 최고존엄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수십년 동안 고난의 행군 끝에 개발한 핵무기의 절반을 우리에게 넘긴다?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신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던 엄철우 동무가 자신을 희생해서 전쟁에 미친 리태한 일당과 동귀어진한 것이 아닐까.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살면서, 한국 주재 외국인들이 북한의 핵실험 뉴스를 듣고 경악했을 때 한국 동료들은 그런 뉴스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올봄에는 어떤 스카프 색깔이 유행일까 고민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계엄령이 선포된 마당에도 한국 시민들은 불야성 같은 서울에서 연말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지 않았던가.

 

다시 한 번 전쟁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된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해주는 영화 <강철비>였다. 아, 그리고 지디(GD)동무는 영화에서도 그렇듯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세계적인 스타이긴 한 모양이다. 케이팝의 위력이 북한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양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김경영 당선자가 보고 있던 빌리 브란트의 책이 국내에 출간되었나 싶어 검색해 보았는데 그런 책은 없었다. 내가 잘못 본 걸까. 다음 웹툰 원작을 잠시 살펴보니, 원작과 영화는 상당 부분 다른 점이 있구나. 무료는 두 편 뿐이라 나머지는 못봤지만, 주인공 청와대 행정관인 박재익이 곽철우로 바뀌었고 대통령의 조카였다. 그리고 웹툰의 스토리라인을 양우석이 맡았는데 영화감독 그 양우석인지 궁금하다. 나무위키 자료를 보니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영화 판권이 넷플릭스에 팔렸다고 한다. 넷플릭스가 대세이긴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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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Kingsman: The Golden Circle (킹스맨: 골든 서클) (2017)(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20th Century Fox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킹스맨 에그시가 돌아왔다. 무엇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그 유명한 대사를 남긴 콜린 퍼스가 어떻게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되는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전편에서 그토록 잔혹한 장면들이 두 번째 인스톨에서 얼마나 완화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에이전트 갤러헤드라는 이름으로 스웨덴 공주님과 심쿵한 연애사를 이어가던 에그시(태런 에저튼 역)는 킹스맨 지원자였다가 탈락한 찰리(에드워드 홀크로프트 분)의 공격으로 죽을 뻔한 위기를 맡게 된다. 역시 처음부터 신나는 액션 씬으로 시작하는구먼. 문제는 에그시의 차량에 남긴 찰리의 의수가 킹스맨 본부에 침투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영속을 가능하게 했던 컴퓨터칩과 살아 남은 기계팔에 대한 시네마틱 오마쥬라고나 할까. 어쨌든 해킹에 성공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당들은 런던의 킹스맨 본부와 에그시가 머물고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안전가옥을 단박에 폭파시켜 버린다. 누구지?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

 

카메라 앵글은 이 지점에서 정글 모처에 자리 잡은 1950년대 미국식 생활양식을 재현한 포피 아담스(줄리 무어 분)의 아지트로 관객을 안내한다. 그리고 마약 카르텔의 무시무시한 두목 포피는 새로운 골든 써클 멤버 가입에 앞서 입후보자에게 조직을 배신한 조직원을 고기분쇄기에 넣어 갈라는 명령을 내린다. 흠 역시 그렇군.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포피 씨는 첨단 로봇개를 등장시키는데, 아마 영화 후반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의수를 잃은 찰리는 두목에게 더욱 강력하고 멋진 새로운 의수를 선물받는다. 그렇게 장착한 팔로 볼링공을 던져 볼링 레인을 쳐부수는 화끈한 장면이 뛰따른다.

 

한편 영국내 모든 킹스맨 조직을 잃은 에그시와 마법사 멀린은(랜슬롯이니 하는 아서 왕 시절의 원탁기사들이 에이전트로 등장하면 장면에서 여전히 우리는 신화시대에 살고 있구나 싶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을 때 프로토콜을 가동시켜, 미국내 친척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테이츠먼 그룹과 접촉을 시도한다. 킹스맨의 사촌격에 해당하는 미국 스테이츠먼이 켄터키에서 위스키 공장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놀랍지도 않다. 윈체스터 장총을 만드는 회사가 아닌 게 어디냐 그래.

마약장수 포피 씨는 마약 합법화를 미국 행정부 대통령에게 요구하며,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마약을 사용하던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에 나선다. 그녀의 희한한 논리는 왜 마약보다 더 무서운 커피, 담배, 총기규제는 하지 않으면서 마약만큼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합법화시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마약산업이 합법화된다면, 자신도 저명한 기업가로 사람들에게 추앙과 존경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설탕을 집어 달라는 찰리에게, 설탕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아냐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마약이 합법화돼서 가격이 낮아지게 되면, 자신의 프라핏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그리고 마약의 유통이 엄격하게 통제되기 때문에 불법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걸까. 어쨌거나 우리 스웨덴 공주님마저 마약에 중독되어 실실 웃거나 푸른 발진이 생기고 요상한 춤을 추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스테이츠먼의 유능한 요원 테킬라 씨도 오락용 마약을 하다가 감염되서 냉동인간이 되지 않았던가. 에그시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포피 씨가 극비리에 제조 중인 해독제를 반드시 구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자, 처음에 질문을 던졌던 해리 하트는 어떻게 컴백시킬 것인가. 그는 분명 전편에서 미스터 밸런타인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죽지 않았던가. 바로 그 지점에서 미국 스테이츠먼들은 알파젤이라는 프로그램을 동원해서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설정을 내놓았다. 좀 황당하긴 했지만, 비슷한 케이스로 해리의 총에 맞은 에이전트 위스키를 살려 내기도 했으니 인정해 주도록 하자. 다만 알파젤 치료를 받은 사람은 퇴행성 기억상실증을 겪기도 한다고 하는데 해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젊은 시절 군에 들어가기 전의 꿈이었던 나비 전문가(lepidopterist)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어려운 영어단어를 다 만나게 되다니. 놀랍군.

 

어쨌든 해리의 에이전트 본능을 깨워 스테이츠먼의 에이전트 위스키 씨와 더불어 해독제를 구하기 위해 흰눈으로 덮인 몽블랑 설산에 올라 한바탕 액션을 시전해 준다. 아직 완벽하게 예전의 에이전트 상태로 복귀하지 못한 해리는 나비 환각에 시달리면서 에이전트 위스키가 적들과 한편이라고 판단하고 그에게 총알을 먹인다. 기겁한 에그시는 알파젤을 사용해서 위스키 요원을 치료한 뒤, 에이전트 진저(할리 베리 분)에게 뒷일을 맡기고 정글에 은신한 포피 씨를 처리하기 위해 떠난다.

 

개인적으로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위대한 속편은 <터미네이터 2>가 유일하다고 생각하는데, 킹스맨 시리즈 역시 원전을 뛰어 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약의 합법화라는 현실세계에서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투쟁에 나선 악당 포피 씨도 그렇지만(하긴 악당들이 원하는 게 언제 합리적이었던가) 군데군데 보이는 영화상의 허점들이 아무래도 전편의 감동 혹은 흥행을 이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던 게 아닌가. 전편에서 해리와 에그시 콤비가 무언가 케미를 만들어냈다면, 속편에서는 그런 점이 없어서 아쉬웠다. 차라리 영국의 킹스맨 에그시와 미국의 스테이츠먼 위스키 씨가 무언가 한 번 해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조금은 빤한 설정이 맥을 빠지게 만들었다.

미국 대통령이 마약에 감염된 자국민들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참에 약쟁이들을 모두 치워 버리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강행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긴 지금 대통령이 트럼프라는 점을 고려했던 걸까. 현실세계도 영화와 별반 다른 바가 없구나. 포피 씨가 인질로 잡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노래를 하게 만든 엘튼 존 경의 발연기도 상콤했다. 그리고 보니 나도 문득 그가 부른 “크로커다일 록”이 들어보고 싶어졌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자, 이제 스웨덴 국왕의 후계자가 된 에그시가 다음 시리즈에서는 바이킹의 후예가 되어 무언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액션을 보여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럼 광전사 베르세르크 에그시로 변신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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