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러더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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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은 읽을 때가 따로 존재하는 모양이다. 수년 전에 나온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빅 브러더>를 아마 신간으로 샀던 것 같은데 이제야 읽었다. 지난달에 집어 들어서 28쪽을 읽고 나서 묵혀 두었다가 이틀 전부터 읽기 시작해서 하루 만에 다 읽었으니 나의 집중력도 대단했고, 슈라이버 작가의 필력은 그 이상이었다. 냉정하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저자의 서사에 그만 반해 버렸다. 아마도 슈라이버 작가의 팬이 될 것 같다. 그전에 읽다만 그녀의 책들부터 찾는 게 먼저 아닐까 싶지만.

 

소설의 주인공 판도라 할프다나르손(스웨덴 조상이다)은 원래 출장 뷔페 사업을 하다가 말하는 인형제조업으로 대박난 사업가다. 그녀는 원래 사람들의 주목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사업의 성공은 그녀를 다수의 인터뷰로 이끌었던 모양이다. 남편 플레처는 가구 자영업자인데, 판도라와 달리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다. , 이제 판도라의 오빠 플레처가 등장할 차례인데 뉴욕의 재즈씬에서는 한 자락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모양이다. 소설의 주된 갈등 구조는 바로 플레처와 판도라의 오빠 에디슨 담당이다.

 

뉴욕에서 당분간 지낼 거처가 없다는 하소연에 혈육을 외면할 수 없었던 판도라는 당분간이라는 단서로 플레처를 설득해서 에디슨 오빠의 아이오와 뉴홀랜드 행을 유도한다. 그리고 시더래피즈 공항에서 4년 만에 에디슨 오빠를 만나는 순간 판도라는 경악에 빠진다. 내가 꼽은 소설의 결정적 순간 중의 하나다. 물론 그전에 슈라이버 씨는 공항 승객들의 대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마음의 준비를 시킨다. 아니 그 해당되는 사람은 판도라였던가. 75kg의 날씬한 체중으로 어려서 엄마가 돌아가신(아마 자살로 추정) 이후 십대 소녀 판도라의 우상이었던 오빠 에디슨이 무려 175kg의 초고도 비만이 되어 등장한 것이다 짜잔! 자 이제 독자들은 소설의 제목이 왜 <빅 브러더>인지 바로 알게 된다. 조지 오웰은 잊어버리시라.

 

갈등은 에디슨이 먹어 치우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뿐만이 아니다. 꽤 오래 먹을 수 있는 판도라가 커피에 타먹는 하프 앤 하프 우유를 한 끼에 처치했다고 했던가. 사사건건 에디슨과 펠트치(플레처의 새로운 별명)는 부딪히고 싸운다. 모든 생활의 방식과 습관이 맞지 않는 것이다. 뭐 이 정도 갈등이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아빠 트래비스 씨가 한 때 끗발 날리던 시절 찍은 유사가족 <공동 친권>에 나오는 드라마가 아니라, 누군가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는 점이다. 에디슨 오빠가 과연 이런 초고도 비만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까? 수면 무호흡증을 필두로 해서 당뇨 및 심장병 외에도 다수의 합병증이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자신이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플레처가 데리고 온 두 자녀 태너와 코디에 대해서도 판도라는 어머니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야 한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나설 준비를 하는 태너는 세상을 우습게 여기면서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꾼다. 그나마 코디는 좀 나은 편으로 에디슨 새삼촌에게 피아노 레슨도 받으면서 집안 분위기를 그나마 누그러뜨리는데 진심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어디 세상 일이 그런 노력들만으로 해결 가능했던가? 절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판도라는 자신의 결혼이라는 큰 판돈을 걸고 뚱보 오빠 살리기 프로젝트에 나선다. 여기가 바로 소설의 터닝 포인트다. 자신은 여전히 남편 펠트치와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가혹한 외동아들 출신 남편은 자신이냐 아니면 오빠냐며 다그친다. 그리고 별거를 선언하지. 354일 동안 자그마치 78만 칼로리를 태워야 하는 지상 최대의 다이어트 작전을 시작한다. 일단 번영을 구가하는 판도라의 말하는 인형사업 덕분에 재정 상태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의 사업에 자신이 없었던 판도라는 이 사업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다.

 

나는 여기서 펠트치의 속마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포이어바흐 집안에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에디슨 애팔루사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이 하는 사업이(사실 취미생활에 가깝다) 아내 판도라의 그것에 비해 형편없다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아이오와 사람들에게 그의 수제 가구보다는 정형화되고 착한 가격의 천편일률적인 가구들이 좀 더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는 것을 그가 진짜 몰랐을까. 그래서 가구 제조와 자전거 타기는 그에게 하나의 탈출구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에일리언이었던 에디슨의 존재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 가정을 파괴하는 이질적인 존재였을 테고.

 

하나의 가족 서사 가운데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줄 알았나 싶다. 그래서 슈라이버 작가를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일단 새로운 형태의 미국 중서부 지방의 가족을 토대로 이런 저런 갈등 구조를 배치한다. 부부간의 경제적 불균형 상태도 좋은 선택이었다. 돈벌이에 무능력한 남편에 상대적으로 돈 잘 버는 사업가 아내. 세상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십대 아들 태너는 결국 학교도 때려치우고 새삼촌의 뒤를 이어 캘리포니아로 튄다. 아내는 오빠를 돌보겠다고 결혼을 판돈으로 걸고, 새살림을 차린다. 그리고 오빠를 돕는다는 핑계로 자신감 회복을 위해 자신도 다이어트에 나선 동생은 동포 뚱보들에 대해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어쩌면 이 비만이라는 문제가 단순하게 순간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그런 멋진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미국 사회를 뒤덮은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무한 리필로 제공하는 탄산음료들이 모두 옥수수당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무한의 소비를 위한 생산이 아메리칸 동포 뚱보들을 양산해 내는 사회적 이유가 아닌지에 대해서도 한 자리 거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상하게도 판도라 가족의 위기가 산으로 갈수록 에디슨 오빠 구하기 프로젝트는 성공 가도를 달린다. 일 년 만에 102kg을 감량하리라고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아마 가장 부정적인 인간은 바로 펠트치였으리라. 결국 성체중식이라 불린 요란한 파티에서 에디슨 애팔루사는 다이어트 성공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멋진 성공이 아니었냐고. 또 다른 추락은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빅 브러더>는 나의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다. 한동안 즐겨본 미드 <모던 패밀리>의 그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 미국식 가정의 한 단면을 쪼개서 그 안을 다양한 재료의 소스와 패티로 채운 성찬이라고나 할까.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막상 책 읽을 때의 감정과 그 감정을 리뷰로 옮길 때의 그것에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그런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유는 아마도 나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탓으로 돌려야지 싶다. 슈라이버 작가의 <빅 브러더>는 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 아디치에의 <보라색 히비스커스> 다음으로 손에 꼽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좋았던 책은 이제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는 카를로 레비의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가 될 것이다.


[뱀다리] , 표지는 정말 기가 막히게 뽑았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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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8-08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모던 패밀리> 같은 그런 책이군요?! <보라색 히비스커스> 다음으로 손에 꼽는다니, 메모해두겠습니다. 그나저나 표지는 정말 장난 아닌데요? ㅋㅋㅋ 표지때문에 책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레삭매냐 2019-08-08 13:23   좋아요 0 | URL
<모던 패밀리> 같은 책은 아니고,
예의 미드에서 보여 주는 가족의 진화
를 엿볼 수 있는 그런 소설이라고나
할까요.

슈라이버 작가가 구사하는 냉소적
유머는 진짜 일품이었습니다.

원서 표지보다도 더 주제에 부합하는
그런 느낌이지요...

물감 2019-08-08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와 좀처럼 연이 없다하시더니 드디어 읽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ㅎㅎ

레삭매냐 2019-08-08 13:24   좋아요 1 | URL
<내 아내에 대하여> 그리고 <맨디블 가족>
모두 읽다 말았거든요.

<빅 브러더>로 기운내서 다른 책들도 마저
읽어 보려고 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설해목 2019-08-08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저뿐인 걸까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가족사는 끈끈한 동양이나 널널한 서양이나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어느 집안이나 문제 없는 집안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

레삭매냐 2019-08-08 17:43   좋아요 1 | URL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대학 친구에게 가족이 원쑤라는 말을
듣고는 조금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

완벽한 가족에 대한 신화를 해체해야
하는 시간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표지는 근 10년 간 나온 책 중에 최고
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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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망주 작가 중의 하나라는 말은 들었지만 제스민 워드의 실력은 이번에 출간된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로 알게 됐다.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미국 사회의 인종주의를 정면에 내세운 책이다. 그렇다면 결국 세그리게이션이야말로 해결책이라는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니겠지. 제스민 워드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환상으로 격상시킨다. 그래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처럼.

 

소설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는 세 명의 화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13세 소년 조조와 그의 어머니 레오니 그리고 조조와 비슷한 나이의 유령소년 리치. 조조와 그의 여동생 케일라(미카엘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각각 아빠와 엄마라고 부른다. 암에 걸려 병상에서 죽어가는 엄마는 레오니의 모성 없음을 손자에게 경고한다.

 

조조와 케일라의 아버지 마이클은 백인이고, 지금은 악명 높은 파치먼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마이클의 아버지이자 조조와 케일라의 할아버지 빅 조지프는 흑인 손자 손녀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미시시피라는 동네에 사는 백인들의 특징일까. 5년형을 받고 수감 중인 마이클이 38개월의 형을 살고 조기 석방된다는 소식에 아이들과 직장 동료 미스티와 함께 로드트립에 나선다. 조금 클리셰이가 아니냐고?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사실을 빅 조지프에게 알리러 갔다가 라이플을 들고 있는 모습에 레오니는 질겁하고 도주한다. 레오니는 그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필로폰 상습복용자에 이번에도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마약배달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편 레오니 집안에는 죽은 사람을 보는 환시 능력이 유전되는 모양이다. 그녀는 억울하게 죽은 오빠 기븐을 그리고 조조는 아빠 리버와 함께 지내던 리치를 각각 보게 된다. 현실과 환시를 넘나드는 제스민 워드의 서술 속에서 뿌리 깊은 미국 남부의 인종주의의 면모들을 넘실거린다. 그리고 환상을 가미한 저자의 문장들은 매혹을 뛰어넘어 강렬한 아우라를 발한다. 군데군데 메모를 하고 포스트잇을 붙였지만 막상 인용하려니 귀찮다.

 

오래 전 리버와 리치가 수감되었던 그리고 백인 아빠 마이클에게는 현재진행형인 파치먼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다. 죄를 지었으면 교정시설에 들어가 죄의 대가를 치르라는 것이다. 다만, 리버와 리치가 무슨 죄로 그런 가혹한 형을 살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이클의 죄는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내가 소설에서 꼽은 두 가지 결정적인 장면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파치먼에서 나온 마이클이 운전을 하다가 도로에서 경찰에게 수색을 당하게 되는 장면이다. 운전면허도 없는 마이클이 운전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다량의 필로폰을 가지고 있는 게 더 문제다. 지금 막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이 마약소지죄로 경찰에게 잡힌다면 어떻게 될까. 두 명의 백인, 한 명의 흑인여성 그리고 아이들이라는 기묘한 조합에 경찰이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걸까. 다급한 마음에 필로폰을 삼킨 레오니의 위기는 아직 아이지만 어른 같은 모습의 조조는 경찰에게 당하게 되는 수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빠가 준 부적을 주머니에서 꺼내려다가 경찰에게 오해를 사는 바람에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 <겟 아웃>에서 흑인 남자 주인공이 백인 경찰의 심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장면이 순간 떠올랐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현실이라고 제스민 워드는 소설로 증명한다. 뭐 그렇다고 해서 마이클과 레오니를 두둔할 생각도 없지만 말이다.

 

다음 컷은 빅 조지프를 찾아간 마이클 가족의 수난이다. 레오니는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마이클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들이 환대를 받았을까? 천만에 말씀. 그나마 마이클의 어머니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이라도 먹이자는 의견이지만 빅 조지프는 마이클과 난투극을 벌인다. 자신이 가진 인종주의에 대한 의식을 전혀 바꿀 생각이 없는 이들의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제스민 워드는 그렇게 미국 사회에 내재된 갈등이 이런 식으로 언제라도 터질 수 있다는 점을 바로 이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에게 확실하게 전달한다. 언제든 도화선에 불만 당기면 그 다음은 잘 알 것이다.

 

후반에 저자가 치밀하게 준비한 리치의 죽음에 대한 놀라운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개의 결정적 장면에 비하면 좀 약하지 않나 싶다. 너무 센 주사를 연달아 맞으니 서사의 힘이 좀 빠졌다고나 할까. 이어지는 서사 부분이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러티브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하늘이 복숭앗빛으로 물들어도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를 다 읽고 나서, 어쩌면 미국 인종주의 소설은 흑인 작가들의 전유물이 아닌가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백인 작가가 쓴다면, 흑인 작가의 그것만 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테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논쟁의 씨앗이 될 지도 모르겠다. 흑인 작가는 “N” 단어도 마음껏 쓸 수 있지만 백인 작가는 그럴 수 없다는 말을 우리 브렌던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지 아마. 어쨌든 제스민 워드 작가는 미국 사회가 품고 있는 인종주의 문제의 기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다루면서도 동시에 환시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해석해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만족하는 중립적인 글을 짓기란 역시 쉽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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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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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전에 도착한 책을 바로 읽기 시작했다. 15쪽 정도 읽었나. 잠시 책을 내려놓았었다. 읽을 책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욘 포세의 신간 <아침 그리고 저녁>을 버스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보는 노르웨이 작가의 책이라고 하는데, 신선했다. 어부 올라이와 마르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요한네스의 탄생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그의 죽음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소설의 내용이다.

 

출생과 죽음,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아니었다. 모든 것에는 알파와 오메가가 존재하는 법이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욘 포세는 그런 중간 단계를 모두 생략하고 수영을 하지 못하는 평생 어부 요한네스의 출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그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우리 인간에게 죽음 곧 소멸은 숙명이다. 어쩌면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순간도 죽음을 향한 하나의 단계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알면서도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주제가 바로 죽음이 아니던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난 요한네스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이미 자신의 아이들을 일곱이나 낳아준 아내 에르나는 세상을 떠났고, 평생지기 페테르 역시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의 주인공 요한네스 할아버지가 언제 돌아 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참 손자가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고 하셨던가.

 

복지천국 노르웨이에서 사시니 연금생활자로 살이가 버겁지도 않다고 한다. 다만 엄청난 세금이 부과된 담배 가격에 대한 불평 정도. 그는 독특했지만 평생 타인에게 자애롭고 선했으며, 남에게 빚지고 못사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막내딸 싱네는 기억한다. 그렇다, 죽음이 소설의 하나의 축이라면 또 하나의 축은 바로 기억이다.

 

죽은 페테르와 조우한 요한네스는 자신이 사모하는 안나 페테르손에게 연애편지를 쓴 기억 그리고 어떻게 해서 아내 에르나를 만나게 되었는지 회상한다. 친구 페테르와 서로 이발을 해주면서 평생 돈을 아낀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기억으로 환산되고 타인의 기억 속에 적립된다. 내가 죽은 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 책에 환장한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그 많은 책들은 어떻게 처분하지. 죽은 뒤에 그게 다 무슨 의미겠냐 싶지만 말이다.

 

욘 포세는 고상한 죽음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뱃사람이자 어부로 평생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요한네스의 마지막 여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들려줄 따름이다. 잠을 자다가 천수를 누리고 조용하게 죽은 친구를 저 세상으로 데려 가기 위해 페테르가 잠시 육신을 빌어 요한네스의 곁으로 왔다지.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지 싶다. 그런 축복이자 특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단숨에 읽은 <아침 그리고 저녁>을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의 감정은 참 슬프다였다. 리뷰를 마무리 지으면서도 눈가에 촉촉하게 소금기가 맺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세상을 자애롭고 선하게 살다간 사람에 대한 애도의 감정일까? 아니면 언젠가 돌아올 우리 모두의 차례가 두려워서일까.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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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06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도 너무 예쁜데요.... 슬픈 예쁨 같은 게....

레삭매냐 2019-08-06 20:59   좋아요 0 | URL
뭔 내용인지 모르고 읽었다가
말미에 지인한 감동을 먹었답니다...
 
나무의 모험 -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
맥스 애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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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에 이 책이 호프 자런의 <랩 걸>처럼 나무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쓴 책인 줄 알았다. <나무의 모험>의 저자 맥스 애덤스는 과학자가 아니라 고고학자였고, 자칭 숲사람이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숲에 들어가 살았다지.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2년 있다가 아내와는 헤어지게 되었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인류에게 꼭 필요한 포도당의 분자식이 C6H12O6라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나무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유용한 지 그리고 나무를 대체할 그 어떤 유기체도 없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산소와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보고와도 존재가 아니던가. 나도 당장 가을에 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들을 그냥 줍기만 할 게 아니라, 영국의 미래를 예견하고 도토리를 심으러 다녔다는 콜링우드 제독처럼 쇠막대기로 땅을 파고 도토리를 심어야 하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아주 잠시 들었었다. 물론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나무의 모험>이라는 제목도 한 번 잘 뽑았다는 생각이다. 원제인 <나무의 지혜>라고 그대로 번역했다면 무언가 명상을 위한 에세이처럼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숲사람을 자처하는 맥스 애덤스로부터 정말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 목선반이라고도 불린다는 갈이틀로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도구의 손잡이를 만들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프로에(froe)라는 도두는 하도 생소해서 결국 유튜브로 검색해서 어떻게 생긴 도구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대한 도영상도 봤다. 생각보다 간단한 도구였는데, 아직까지도 숲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전통 도구라니 신기했다.

 

저자는 다른 자연주의자와는 다른 각도에서 우리에게 숲의 유용성을 알리는데 노력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보다 적극적으로 숲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우리 호모 이코노미쿠스들은 숲이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무조건적인 남벌이 아니라 숲을 지속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산림 조성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예를 든 대로 인도의 비하르 주에서는 주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고, 홍수나 범람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하루 만에 무려 천만 그루나 되는 나무를 심었다고 하지 않은가.

 

화석연료를 이용한 에너지 사용에 있어도 저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나무 연료를 사용한 에너지 활용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이다. 게다가 적절한 나무때기를 위한 팁도 제공한다. 작년 캠핑에 가서 불멍을 하면서 느낀 감정을, 저자는 정말 인문학자답게 탁월한 문장력으로 풀어내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맞아, 나도 그랬었지. 적당히 건조된 나무를 태우는 청각적 효과, 어둠 속에서 일렁거리며 타오르는 불꽃 너울은 정말 유사 이래 우리 인류의 어둠과 추위 그리고 동물들로부터 보호해준 하나의 로망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하기도 했다.

 

끝없는 책의 소유욕에 시달리는 책쟁이(오늘도 새달의 첫날을 맞아 제스민 워드의 신간을 주문했다)에게 분명 나무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책 구입에 대한 죄책감을 더는 데도 크게 한몫했다. 종이와 성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숲이 필요하다. 예전에 자연 보존에 대해 무지했을 때는 마구잡이 벌채를 했겠지만, 어디 요즘에도 그런가. 숲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책을 사라고 하니, 이건 축복이다 축복.

 

이런 축복과 더불어 맥스 애덤스는 우리에게 어쨌든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무의 모험이 들려준 긴 여정을 마무리짓는다. 토종 보존이나 생태계 순환 혹은 포리스트 가든 같이 복잡한 이슈는 잘 모르겠다. 저자의 가르침대로 인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무와 공존하는 삶을 배우게 될 것이고, 우리의 친절한 나무 친구들은 기다려 줄 거라는 점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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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8-02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숲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책을 사라는 말은 듣기 좋은데요.^^
오늘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레삭매냐님,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8-02 17:56   좋아요 1 | URL
너무 더워서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날 판이네요...

책 때문에 숲이 죽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역발상이 참신했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시원한 주말이 되시길 바라
겠습니다.
 
너는 알고 있다
엘리자베스 클레포스 지음, 정지현 옮김 / 나무옆의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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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작가 엘리자베스 클레포스의 <너는 알고 있다>를 읽었다. 표지에는 어린 소녀의 우측 사진이 등장한다. 아마도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찰리/샬럿 캘러웨이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목에 나오는 는 누구를 의미하는 걸까.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책 읽기에 돌입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찰리 캘러웨이의 엄마 그레이스는 10년 전에 자취를 감춘다. 뭐가 부족해서 억만장자 남편 앨리스테어와 사랑하는 두 딸 찰리와 세라피나를 두고 사라져 버린 걸까. 타인의 불행과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엄마 그레이스 부재 가운데 찰리는 아버지 앨리스테어가 졸업한 놀우드 오거스터스 사립학교에 재학 중이다.

 

소설의 한 축에 불가사의한 그레이스의 실종이 있다면, 놀우드에서 찰리가 비밀클럽 에이스에 가입하기 위해 수행하게 되는 미션은 소설의 한 축을 담당한다. 예전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에서 아마 부유층들이 다니는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다룬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미국내 사립학교의 모습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명문대 진학이라는 학벌 시스템과 자신들만의 이너써클을 구축해서 권력을 향유하는 모습을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구축해 온 것이다.

 

찰리는 외삼촌 행크가 자신을 찾아와 엄마 그레이스의 사진을 찾았다는 말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레이스가 남편 앨리스테어를 만나기 훨씬 전에 놀우드에서 잉태된 비극은 캘러웨이 가족이 겪게 되는 파국의 진원지였다. 소설 <너는 알고 있다>를 읽으면서 인간의 운명은 결국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버지 시대 때부터 존재했던 비밀클럽 에이스의 그릇된 유전자는 자식들의 세대에까지 이어지고, 찰리는 어머니의 실종의 단서를 캐가던 과정에서 모두가 숨겨왔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사건일 수도 있는 내러티브는 찰리와 앨리스테어 그리고 그레이스가 교차로 등장해서 자신들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스토리라인을 좀 더 흥미롭게 진행된다. 초보 작가가 이런 장르 소설을 이 정도 수준으로 촘촘하게 구성했다는 점이 놀랍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핍진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앨리스테어와 그레이스가 갑자기 사랑에 빠져, 결혼식까지 치르고 나서 앨리스테어가 막 결혼을 앞둔 약혼녀 마고에게 이별 선언을 하는 장면이었다.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빨리 결혼이 진행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한편, 놀우드에서 에이스의 미션을 수행하던 찰리는 절친 드루가 재정상의 이유로 경쟁에서 고의로 탈락하고 기존의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지면서 갈등하는 장면은 하나의 클리셰이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균형 잡힌 작법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스 가입을 위해 도를 넘은 미션에 저항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들만의 이너써클에 들어가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야 하는 고민을 하는 장면도 멋진 설정이었다.

 

초반의 백쪽 정도를 읽고 나서 잠시 멈춰 서 있다가 오늘 아침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반나절 만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그 정도로 뛰어난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너무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했다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 정도로 마무리지어야겠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이방인일 수도 있다는 작가의 문구는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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