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바게트
실키 지음 / 현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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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같이 어울리던 동네 친구가 있었다. 그는 만화를 그렸다. 나중에 연락이 끊긴 다음에, 앙굴렘 만화축제에도 참가하고 그랬다고 했던가. 그는 교육 만화 그리기를 정말 싫어했었는데,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만화를 그려야 했다고. 지금은 뭘하고 사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자취를 쫓아 보니 작년 11월에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구나. 실키 작가의 <김치바게트>라는 책이 기억의 저장고에서 불러낸 친구의 추억이었다네.

 

주간행사로 일요일마다 도서관에 간다. 그전에 빌린 책들을 반납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책들을 빌리기도 한다. 다음달 마지막 주에 예정된 달궁 책인 <사악한 목소리>도 빌리고, 바로 읽을 수 있는 그래픽노블도 한 번 찾아 본다. 그러다 만나게 된 책이 실키 작가의 <김치바게트>.

 

처음에 제목만 보고서는 음식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책일 줄 알았다. 바게트에 김치를 끼워 먹는 이야기인가? 나의 오바였다. 프랑스의 웹진에 소개된 프랑스에 사는 실키 작가의 체험담을 소재로 삼은 그래픽노블이었다.

 

어딜 가나 그놈의 지긋지긋한 칭챙총 스토리는 빠지질 않는구나. 요즘 독일에서 한창이라는 AfD 반대시위의 거대한 물결 생각이 났다. 그동안 침묵하던 다수가 나서서 점점 더 오른쪽으로 향하는 극우정당의 인종차별에 대한 시민적 저항을 인스타 중계로 보고 있다. SNS의 긍정적 영향이 아닐 수 없다. 나와 다른 것이 나쁜 게 아닐진대, 끝없는 혐오로 치닫는 시대에 깨어 있는 시민 의식 교육에 대한 효과가 유럽의 중앙부인 독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도 못지 않은 똘레랑스의 나라라고 들었는데, 아직도 먼 모양이다.

 

얼마 전에 회사 중국인 동료의 비자 발급을 받으면서, 다른 나라에 취업을 하고 사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최종에 가서는 대표이사가 보증을 서고서야 법무부 장관이 발급하는 취업비자를 받았다. 그전에 서류 작업을 하면서 행정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실키 작가 역시 코로나 시절에 경찰(?)이 발급하는 체류허가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보면서 절절한 느낌을 공감했다. 남의 나라에서 사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구나 역시.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수 있는 각종 민원서류 발급의 난이도에 대한 에피소드는 또 어떤가. 오늘도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서 알지만, 모바일로도 각종 민원서류들을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정부의 위력을 새삼 체감한다. 바로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무조건 서류와 팩스 타령을 해대는 건 기본이 아닌가. 관공서에 가서 무슨 일을 처리하려면 한나절은 기본이 아닌가. 물론 그 이면에는 모든 시민들을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개인에 대한 고유 식별이 가능한 '빅 브러더'를 연상시키는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만 무언가를 쉽게 얻기 위해서는 또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 다음에 또 무슨 이야기가 있더라. 이틀 전에 읽은 그래픽노블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리뷰를 쓰는 게 쉽지 않네. 이래서 보통 리뷰는 책을 읽자 마자 바로 써야 하는데 말이지. 아 친구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김치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지 않았나. 오늘 점심에도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김치야말로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흔하게 먹을 수 있을 적에는 굳이 찾지 않지만, 또 막상 먹기 쉽지 않을 적에는 생각나는 게 김치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자취생활을 해봐서 김치만 있으면 또 해먹을 수 있는 게 많으니깐. 요리 재료로서도 만능 치트키라고나 할까.

 

실키 작가가 코로나 록다운 시절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읽다 보니, 그런 시절이 언제였나 싶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전면적인 록다운을 실시하지는 않지 않았나. 그러면서 얼마나 의료시설이나 사회 시스템이 그런 팬데믹에 대처할 수 없었으면, 록다운을 실시했나 싶다. 그 시절에도 우리는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회사로 출근하지 않았나. 언제 그랬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평소에 있지도 않은 국뽕이 차오르는구나 그래.

 

내친 김에 도서관에서 실키 작가의 다른 책도 빌렸는데 그 책은 <김치바게트>만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지금의 어떤 스타일에 도달하기 위한 습작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간단하게 코로나 시절, 프랑스에 사는 엑스페이트리어트의 삶에 대한 스케치를 살펴봤다. 아주 오래 전, 파리에 도착해서 뤽상부르 공원에서 뜯어 먹던 바게트 생각이 났다. 그냥 뭐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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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4-01-24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순간 ‘김치바게트라니 맛있겠다‘ 생각했는데 아니군요?
정말 김치 만한 치트키가 없죠.
우동 좋아하는데 계란을 곱게 풀어넣고 묵은지나 새로 담근 김치를 넣어도 참 훌륭합니다.^^

파리에 갔을때 아끼려고 바게트랑 빵 위주로 줄곧 사먹던 기억이 납니다.ㅎㅎ

레삭매냐 2024-01-24 15:55   좋아요 1 | URL
저는 파리 민박집에서 아침 저녁으로
밥을 너무 잘해 주셔서 만날 민박집
밥을 먹느라 그만 ㅋㅋ

그래도 푸와그라 샌드위치 먹은 기억
은 나네요.

김치 우동 크하~~ 배 고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