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불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체사레 파베세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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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체사레 파베세의 유작 <달과 불>을 읽었다. 너무 큰 기대를 해서였을까? 아니면 며칠 전에 읽은 시바타 쇼의 소설처럼 나에게는 늦게 도착한 탓인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 <달과 불>의 배경은 작가의 실제 고향인 피에몬테/쿠네오 지방의 산토스테파노벨보다. 그리고 주인공이자 화자는 20년 간 고향을 떠났다가 성모축제에 즈음해서 고향에 돌아온 안귈라(뱀장어)다. 주인공의 이름부터 벌써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의미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의 과거 행적을 돌아볼수록 안귈라가 고향에 어떤 미련을 두었을까 싶다. 사생아로 태어난 안귈라는 어려서는 오 리라를 받으며 가난과 싸우며 이부누이들과 파드리노 밑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좀 자라서는 모라 농장의 하인이 되어 그저 먹고 자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랬던 안귈라가 군입대를 시작으로 해서 인근 대도시 제노바를 거쳐 미국의 태평양 바다 끝까지 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자수성가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안귈라는 자신이 부재한 시간 동안 엄청나게 바뀐 현실을 목도한다. 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빨치산 투쟁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고, 지주들은 몰락했다. 다만 종교계를 대표한 주임신부는 건재해서 파시스트 스파이로 처형된 이들의 죽음을 위로한다. 물론 그가 빨치산 투쟁을 했던 이들에게 똑같은 대우를 하지는 않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시인으로 출발해서 소설가, 문학비평가 그리고 공산주의 반파시스트 혁명가였던 체사레 파세베가 그리는 현대 이탈리아의 역동적인 역사의 흐름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독자의 그런 기대와 달리 <달과 물>은 이탈리아의 시골마을과 미국을 부유하는 한 오디세우스의 유랑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토리노, 산토스테파노벨보, 카넬리, 알레산드리아 그리고 제노바 같이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 지도 모르는 낯선 지명들이 주는 이물감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성공을 구가하며 떠난 미국에서 이방인이었듯이, 고향 산토스테파노벨보에 와서는 안귈라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부재한 동안 고향을 지켰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유쾌한 음악가 그리고 목수인 누토를 통해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의 궤적을 안귈라는 추적한다. 모라 농장의 하인이던 시절, 자신의 갈라테아였던 눈부신 이레네와 실비아에 대한 회상은 그의 발목을 잡는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급한 욕망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레네 자매 역시 백작 부인의 저택에 초대받지 못해 안달하는 장면에서는 욕망의 본질은 결국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시절 안귈라와 누토에게는 가미넬라 언덕이라는 공간이 그들의 전부였지만, 안귈라는 그 너머 카넬리와 제노바를 거쳐 미국이라는 미지의 세계까지 탐험하고 결국 성공해서 지주가 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이런 금의환향이야말로 그네들의 궁극적 삶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역설적으로 고향에 남아 소작을 부쳐 먹던 발리노 삶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발리노의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와중에 살아남은 절름발이 소년 친토가 상징하는 건 어쩌면 세계대전의 전화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탈리아 국가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호모 폴리티쿠스 독자는 자꾸만 정치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전후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공산주의 세력의 활동이 왕성한 나라였다. 파시스트 두체 무솔리니와 독일군에 맞서 조국해방을 위해 싸운 빨치산 그룹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당장 총선을 치르면 공산당이 승리할 판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빅 브라더 역할을 하던 미국이 이것을 용인할 리가 없다. 그리스에서는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고, 이탈리아를 철의 장막에 내줄 수 없었던 미국이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 가톨릭을 포섭해 우익 정부의 탄생을 도왔다. 그 결과, 산토스테파노벨보에 살던 사람들의 운명은 전쟁 전과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모라 농장의 막내 산티나의 운명적 삶이야말로 이런 혼란이 정점에 달한 시절을 묵직하게 타격하는 결말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산티나는 이상한 놈팡이들과 꼬여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언니들과는 달리 자주적인 신여성의 모습에 도전한다. 그녀는 파시스트 본부에 일하는 동시에 빨치산에도 협력하는 이중적인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그리는 동시에, 전후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산티나는 과연 부역자였을까? 아니면 명예로운 빨치산 전사였을까?

 

내가 과연 체사레 파베세의 <물과 달>을 세세하게 이해했을까? 아마 그건 아닐 것 같다. 나에게는 그런 능력도 의지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냥 글가는 대로 읽고 싶었는데 역시나 나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대고 있구나.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의 문학적 시원을 이룬다는 시집 <피곤한 노동>이 읽고 싶어졌다. 아쉽게도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그의 시집이 없더라. 그만큼 인기가 없다는 방증이겠지. 언제고 헌책방에서라도 다시 만나게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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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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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신형철 씨의 소개로 알게 된 책이다. 언제나 출간이 되는지 기다리다가 결국 망각해 버렸다. 그리고 작년 말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처음 팟캐에서 들었을 때만큼 땡기지가 않아서 그냥 말았다. 아마 그 때라면 사서 읽었겠지만. 도서관에 입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게으르게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말에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55년 만에 만나게 된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의 주인공은 도쿄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후미오 군이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도쿄여대 출신의 세쓰코와 약혼하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의 삶은 지루하고 나른하게 진행된다. 불같은 사랑의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의 시대처럼 들린다.

 

후미오가 헌책방 순례 중에 한 질의 H전집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 같은 책쟁이를 위한 책인가 싶다. 헌책방에서 나도 이미 많은 사연을 만나지 않았던가. 콜롬비아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마르케스의 책을 샀다고 했던가. 지인에게 애써 선물한 책이 헌책방을 부유하는 것도 목격했다.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잡설이고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세쓰코를 통해 자신이 헌책방에서 산 전집의 원래 주인이 사노라는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면제를 먹고 죽은 사노가 남긴 유서에 따르면 한 때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혁명을 꿈꾸던 청년은 시위 도중에 동지들을 배신했다는 사실로 괴로워했다. 육전협의 평화주의 노선 채택으로 그동안 자신들이 추구해 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청년은 일체의 운동을 접고 기득권층이 원하는 올바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간부인 부사장의 눈에 들어 데릴사위 후보가 되기도 하고, 전도유망한 엘리트 취급을 받으며 미래의 간부의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것 따위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의 본질은 ‘배신자’가 아니었던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비판적으로 바라본 지점은 바로 사노의 생각이었다. 그는 너무 순수해서 세상과 타협하는 걸 몰랐던 걸까? 자신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던 이데올로기와 동지들이 자신의 미래를 담보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미처 몰랐던 것을 마냥 사노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좀 그렇다. 그런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방법 말이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후미오의 주변에는 그런 허무주의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후미오가 아는 고지식한 미래의 교수 후보는 세쓰코를 통해 자신이 곧 결혼하게 될 여자의 뒷조사를 부탁한다. 소설이 배경이 되는 시절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같아서는 참 거지같은 발상의 소유자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게다가 그 아가씨는 자신의 지도교수님과 불륜에 빠지지 않았던가. 과연 그들의 비밀은 지켜질 것인가.

 

후미오 주변에는 왜 그리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심지어 세쓰코조차 지하철역에서 넋을 잃고 있다가 중상을 당하지 않았던가. 후미오와의 결혼을 서두르던 세쓰코는 이런저런 사실들을 알고 난 뒤 지독한 고독감에 빠지기도 하고, 결국 무사안일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시골 마을로 가 자신의 알량한 영어 지식을 바탕으로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소설의 진행에 지금은 좀처럼 볼 수 없는 편지들이, 그것도 속달이라는 방식으로 전달되어 결정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 낯설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이메일이나 카톡 같은 메시지와는 다른 결이겠지. 젊은 날의 후미오는 자유로운 사상의 소유자라며 육체의 향연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안정을 찾아 세쓰코를 찾지 않았던가. 우리의 젊음은 모든 방종을 용인하게 만들어주는 만능 치트키 같은 것일까 과연.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기도 한다. 소멸 뒤에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심각한 고민을 해봤을까? 인생의 가장 절정기에 죽음을 두고 고민한다는 점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시바타 쇼 작가의 데뷔작 <록탈관 이야기>에 나오는 발칙한 라디오 마니아 중학생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실 왜 이 단편이 뜬금없이 등장하는가 싶었지만 작가의 시원을 밝힌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수록이지 않았나 싶다. “코리안 워”니 “레드 차이나” 같이 소년이 조립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에 먼저 눈이 간다. 왜 이 소년들은 그렇게 라디오의 세계에 열광했을까? 라디오 조립이라는 새로운 세계, 회로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신세계야말로 그들에게는 하나의 해방구로 작동한 게 아닐까.

 

패전 후,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 기업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신의 축복으로 극적인 부활에 나서게 된다. 배터리만 하더라도, 미군들이 엄청난 재고 물량을 소진하는 전쟁특수를 맞게 된다. 이웃나라에서 전쟁이 나건 말건 그렇게 애타게 가지고 싶어 하던 진공관의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던 소년들의 마음을 산산 조각내 버린다. 아니 트랜지스터도 아닌 진공관에 대한 이야기라니 놀랍다 놀라워. 한편, 전쟁 투입을 앞둔 미군들은 쾌락을 즐기기 위해 몰래 빼돌린 진공관을 간다 거리의 암시장에 내놓기도 했단다. 주인공 소년은 우연히 얻어 걸린 고가의 록탈관을 200엔에 사들여 희희낙락한다. 문제는 나중에 그가 발견한 미세한 균열이었다. 그렇게 희망은 록탈관의 균열과 사라져 버리고...

 

아마 내가 청년이었을 때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읽었다면 다른 감성으로 만나게 되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 만난 청춘 소설에 대한 감상은 솔직히 말해 심드렁했다. 나에게는 너무 늦게 도착한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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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3-05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책은 언제 어떤 상황에 읽느냐가 중요한가 봐요.
청춘일 때 이 소설을 읽었다면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구요.
이는 달리 말하면 이 소설이 전 세대를 아우를만한 명작은 아니란 생각도 들구요.
운명같은 소설과의 만남을 꿈꿔봅니다 저는 오늘도..^^

레삭매냐 2019-03-05 17:18   좋아요 1 | URL
이제 더 이상 청춘이 아님을 슬퍼해야
하는 걸까요 ㅋㅋㅋ 뭐 그렇게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짜 청춘일 적에는 술 퍼먹고 사느라
책 읽을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쪼록 운명 같은 책들을 연달아 만나
게 되시길 기원해 봅니다.

카알벨루치 2019-03-05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아디가 여기 떡 나오니 기분이 새롭네요 ㅎㅎ 전 이 소설 넘 좋아요! 시기상조인 것도 있지만~사람이 사람을 물리적으로 가까이있어도 외롭게 한다는 것을 보곤 마음이 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3-05 17:20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후미오 군이랑 세쓰코 양이 그렇게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외롭고 고독
하고 그런 감정을 느꼈다니 쫌 안타
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혁명
을 꿈꾸던 이들이 사회에 적응해서
이제는 꼰대가 된 시절이 지금이라는
생각을 하면 갑갑해집니다.

syo 2019-03-05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포에는 요놈이 서가에 꽂혔군요. 대구(중 제가 다니는 몇 군데 도서관)에서는 요놈이 대출과 예약과 예약과 예약의 연속으로 도무지 서가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읽으신 분들 평이 너무 떡떡 갈려서 차마 사보기는 그렇고 빌려서 보려 했는데 저는 아직도....ㅠ

레삭매냐 2019-03-06 10:33   좋아요 0 | URL
사실은... 저도 저희 동네 외딴 곳에
있는 도서관에 예약도서로 신청을 헷 -

서가에서 데려온 녀석은 아니랍니다.

제 스탈의 책은 아닌 것으로.
 

 

 

이달에는 23권의 책을 읽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책을 많이 만난 달로 기억될 것 같다.

 

인생책으로 꼽을 만한 시배스천 폭스의 <바보의 알파벳>을 필두로 해서, 애타게 찾던 멤포 지아르디넬리의 <뜨거운 달>, 놀라운 발견이었던 구드룬 파우제방 작가의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쥴퓨 리반엘리의 <살모사의 눈부심> 그리고 알라 알아스와니의 <시카고>까지.

 

권수는 많지만 사실 그 중 반절 정도가 만화다. 로맹 위고 작가의 그래픽 노블들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단박에 읽어 버렸다. 한 권이 더 남았는데 그 책은 도서관에 없더라. 다른 곳에 가서 빌려다 읽어야 하나.

 

이사를 하고 나서 사들이는 책이 늘어난 모양이다. 지난 가을에 제법 많이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책방에 책이 마구 쌓여 가는 꼴을 보니 좀 답답하다. 예전에는 책을 하나하나 비닐로 쌓고 낙서도 하지 않고 그랬는데 언제부터인가 2B 연필을 죽죽 그어가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전 책들을 보면 정말 컨디션이 좋더라. 이제는 중고책으로 팔지도 못하고 그냥 동네 곳곳에 포진해 있는 거리문고에 슬그머니 책을 놓아둔다. 아침에 넣으면 저녁 정도엔는 휙 사라져 버린다. 하도 책동네라고 선전을 해대서 그런지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책 욕심을 덜어낼 수 있을까. 사무실에도 계속해서 책이 쌓인다. 작년에 책 때문에 사쪼에게 욕도 먹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걷어 내고 그랬었는데. 1층 창고에 두 상자는 짱 박아 두었다. 더 욕먹기 전에. 집에도 가져 가지 못하고. 그 상자 속에는 어떤 책들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3년 전에 사무실 늘릴 적에 가둬 놓은 녀석들인데. 오늘 그 상자나 한 번 까볼까나. 필요 없는 녀석들은 팔던지 기증하던지 해서 치우던지 해야지. 이것도 말로만일까.

 

지난번에 갔던 중고서점에 또 가보고 싶어졌다. 연말정산으로 용돈이 좀 생겨서 말이지. 도끼 선생의 <죄와 벌> 걷어 오고 싶다. 그리고 다시 읽고 나서 이번에는 리뷰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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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28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위고의 그래픽노블 나가리 먹었네요 내용이 그렇다고...아~아쉽네요! 2월에도 수고하셨어요👏👏👏

레삭매냐 2019-02-28 10:10   좋아요 1 | URL
아직 못 읽은 로맹 위고의 책은 <엔젤 윙스>
네요. 요것도 재밌어 보이던데...

감사합니다.
쉬엄쉬엄 읽는다고 했는데도 마음 대로
되지 않았네요 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2-28 10:24   좋아요 1 | URL
<엔젤윙스>만 읽었네요 ㅎㅎ

레삭매냐 2019-02-28 10:34   좋아요 1 | URL
아놔 나가뤼...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참말로
기적이었나 봅니다.

선뜻 희망도서 신청을 못하겠습니다
정말 !

카알벨루치 2019-02-28 10:38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이 읽은 로맹위고의 다른 그래픽노블의 내용이 어떠했는지, 청소년관람불가급이라는 이야길 하시는데 제가 할말이 없던데요 그래도 매냐님은 독서에 대한 만화기에 성공하셨나보네요 자꾸 나가리당하면 신청할때도 위축되는데 ㅋㅋㅋㅋ그래도 계속 해야지 ㅎㅎㅎㅎ

초딩 2019-02-28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옷~ 저 칼랜도는 어떤거에요? 서비스가 있는 거에요?

레삭매냐 2019-02-28 10:11   좋아요 1 | URL
아, 그건 인터넷에 떠다니는 엑셀
파일 잡아다가 제가 임의 대로 만들
어서 사용하는 거랍니다 :>

100% 수작업이지요.

설해목 2019-02-28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월의 발견도 기대하겠습니다. ㅎㅎㅎ
그나저나 날수가 적은 2월에도 저렇게나 많이 읽으시다니!!!
그 사장에는 정말이지 무슨 책이 있을지 제가 다 궁금합니다. 언능 공개해주세요! ㅋㅋ

레삭매냐 2019-02-28 10:12   좋아요 0 | URL
저도 놀랐습니다.
결산하고 나니 지난 달보다도 더 많이
읽었다니...

읽다만 책들도 마무리 지어야 하는디.

빡스는 오후에 한 번 뜯어 보겠습니다.

꽃핑키 2019-03-03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록달록 책 달력 너무 예쁘게 채우셨네요~ 넘나 부럽습니다~!!!
저도 몇 년 전만해도 1달에 7권 정도는 읽었는데요; 나이 들면서 책 읽는 근육도 확 늙어 버렸는지? 이제 1달에 1권도 못 읽겠어요 ㅠㅠㅠ
상쟈 개봉샷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당!! ㅋㅋㅋㅋ
 
뜨거운 달
멤포 지아르 디넬르 / 도서출판 대경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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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량의 스포일러가 첨가되어 있으니 유의해 주세요.

 

도대체 어디서도 이 책을 만나볼 수가 없었다. 중고서점에도 그리고 도서관에도. 언제나 그렇지 않은가. 욕망은 채워지지 않을수록 갈급하게 된다는. 인스타에서 알게 된 아르헨티나 레시스텐시아 출신 작가 멤포 지아르디넬리의 책 <뜨거운 달>은 그렇게 나를 애가 타게 만들었다. 결국 책바다 서비스를 통해 어제 입수해서, 기갈 하듯이 그렇게 책을 읽었다. 물론 책을 수중에 넣기 전에 인터넷을 뒤지고, 구글링을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얼마나 읽고 싶었으면 아마존에서 영어 번역판을 구하려고 했을까.

 

어느 해외 리뷰에서는 나브코프의 <롤리타>와 카뮈의 <이방인> 그리고 도끼 선생의 스멜이 난다고도 했다. 얼마나 그런지 한 번 읽어보자는 속셈으로 책을 펴들었다. 모두 4개의 장과 마지막 에필로그로 구성된 <뜨거운 달>은 1977년 11월 그러니까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의 폭압이 최고로 치닫던 시기를 시간적으로 배경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지아르디넬리의 고향 레시스텐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의 주인공 라미로 베르나르데스 박사는 폰타나에 있는 선친의 친구 의사 테넨바움 씨의 집을 방문했다. 8년간의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법학박사가 되어 귀국한 라미로는 노르데스테 교수 임용을 앞둔 그야말로 미래가 창창한 청년이다. 그런데 테넨바움 씨의 13세 딸 아라셀리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중독이 되어 대사를 그르치는 잘못된 선택을 연달아 하게 된다. 아니 처음부터 아라셀리가 라미로를 유혹했던가? <롤리타>의 짙은 향기가 피어오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번역을 맡은 송병선 교수님은 <뜨거운 달>의 두 가지 요소로 에로티시즘과 탐정 소설을 꼽았는데 첫 주제인 에로티시즘이 여과 없이 남반부 레시스텐시아의 열대야를 뜨겁게 달군다.

 

친구 후안 고물카에게 빌린 구식 포드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았던 게 결정적 원인이었을까. 하는 수 없이 라미로는 테넨바움 씨네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무더위와 야릇한 갈망 때문에 라미로는 잠을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리고 8년 만에 만난 그놈의 달빛 덕분에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아라셀리를 범하고 만 것이다. 그것도 폭력적인 방식으로. 아라셀리가 죽었다고 생각한 라미로는 그대로 도주를 결심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라셀리의 아버지 테넨바움이 자기와 함께 술 한 잔 더하자는 권유를 하고 라미로의 차에 오른다.

 

그 다음부터 소설은 탐정 소설의 계보를 따르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는 라틴 아메리카 동지 로베르토 볼라뇨가 떠올랐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야만스러운 탐정들>이다. 끈질지게 달라붙는 테넨바움 씨를 혼절시키고 결국 자동차에 실어 수장시키는 플랜을 가동한다. 처음에 자신을 “가벼운 살인자”라며 자위하던 라미로는 이제는 진짜 살인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 와중에 경찰 검문에 걸리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트레일러 운전사에게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자신의 흔적을 곳곳에 뿌린다. 자 이제 궁금하지 않은가? 도대체 라미로 박사는 어떤 방식의 알리바이를 제시할지 말이다. 테넨바움 씨와 마지막까지 있었던 사람이 그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살인자도 피로와 긴장을 이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와 수면에 빠지는 그를 누가 찾아온다. 그건 바로 아라셀리였다. 아니 이럴 수가! 그녀가 죽지 않았단 말인가? 소설은 이 지점부터 스릴러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남성우월주의자 라미로는 여성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자신의 유약한 성격을 숨기기 위해 그런 행세를 했던 건 아닐까.

 

욕망의 대상에서 언제고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는 존재로 변신한 아라셀리는 라미로에게 뜨거운 성애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아니 팜므 파탈이라고 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걸까? 지아르디넬리 작가는 아름다움과 뇌쇄적 매력을 지닌 아라셀리를 이용해서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에로티시즘을 극한으로 밀어 붙인다. 놀라울 정도다. <뜨거운 달>에서 아라셀리 테넨바움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욕망을 갈구하는 메피스토펠레스적 욕정을 상상 그 이상으로 발휘한다.

 

자 이제 소설의 위기가 등장할 차례겠지? 알미론 형사와 알시데스 카를로스 감보아 보셰티 중령/경찰서장은 라미로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살인 용의자로 규정하고 감방에 가두어 버린다. 전도유망한 청년이 살인자가 되어 감방에 갇히게 되는 과정이 정말 초현실적이지 않은가. 더 무서운 사실은 군부가 이미 라미로를 “비축 인력”으로 점찍었다는 점이다. 보셰티 중령으로 대표되는 군부 세력은 사회질서의 지속이라는 이유로 엘리트 계급을 포섭해서 자신들의 명분없는 통치를 영속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에로티시즘과 탐정 소설의 궤도는 이 지점으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보셰티 중령은 뚜렷한 테넨바움 씨 살인에 대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라미로의 자백을 강요한다. 미래의 부역자로 낙점된 라미로는 영리하게도 같은 진술을 번복한다. 그러자 보셰티 중령은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 그들이 원하는 자백을 얻어낼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방식이 고문이라고 지레 짐작한 라미로의 공포는 극한대로 돌입한다. 그의 숨을 멎게 만들 정도로 위협적인 장면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그의 완벽해 보이는 알리바이를 깰 수 있는 그를 히치하이킹해준 트레일러 운전사의 등장이다. 자, 과연 우리의 주인공 라미로 베르나르데스 박사는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멤포 지아르디넬 리가 그리는 라미로 베르나르데스란 지식인의 초상은 위선의 태양 그 자체다. 해외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얻어낸 학업의 성취를 엄정한 조국의 현실을 위해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군부와 결탁할 궁리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꼴 보기 싫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아랫도리에 일어나는 욕망도 자제하지 못한 채 어린 소녀를 겁탈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들끓는 욕망이 발각되자 소녀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말았지 않은가. “가벼운 살인자”가 진짜 살인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군부가 내전에 “전염”되지 않은 엘리트 라미로를 그들의 주구로 점지하고 미래의 부역자로 내정해 두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테넨바움 씨는 “망할 나라”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 망할 나라에서 시골 의사가 맨 정신으로 살기는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자발적 알콜중독자의 길을 걷지 않았을까. 그를 살해한 라미로가 자살로 사건을 몰고 가려고 하지만, 오히려 반란군을 언급하는 장면에서는 당시 아르헨티나 국가가 얼마나 비정상이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소설 <뜨거운 달>을 다 읽고 나서 그야말로 소름 끼칠 정도의 전율이 일었다. 아니 도대체 멤포 지아르디넬리란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플롯과 스릴 넘치는 전개 그리고 열대야의 원초적 욕망을 치솟게 만드는 ‘뜨거운 달’ 같은 에로티시즘을 창조해낼 수 있었단 말인가. 물론 작가가 맨 마지막에 준비한 대망의 엔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련다. 궁금하시다면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시라. 그리고 나와 같은 전율을 경험해 보시길 바란다.

 

[뱀다리] 아니 2019년 2월에는 어쩌면 이렇게 멋진 책들을 연달아 만날 수가 있는지 나도 놀랄 지경이다. 앞으로 나의 인생책으로 꼽을 만한 <바보의 알파벳>도 그렇지만, 파우제방 작가의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도 알아 알아스와니의 <시카고>도 그리고 멤포 지아르디넬리의 <뜨거운 달>도 정말 뜨거웠다. 대박이다.


[뱀다리2] 멤포 지아르디넬리의 다른 책들도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세상은 넓고 아직 읽지 못한 작가들의 책이 이렇게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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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2-27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표지의 포스만 봐도 저 책은 정말 구하기 어려워겠네요.
저도 정말 찾다찾다 못찾아서 책바다 서비스를 이용한 책이 한두권 있긴한데....
책바다 서비스를 이용해서 읽은 책이라하니 더욱 소장하고 싶지만...
레삭매냐님이 소장 못할 정도였으면 저는 포기합니다. ㅎㅎㅎㅎ
써주신 리뷰로 만족할게요.~

레삭매냐 2019-02-27 11:52   좋아요 1 | URL
언제고 헌책방에서 만나게 되면 냉큼
업어올 거입니다.

심지어 보존서고에 있던 책이더라구요.
다른 곳에서는 제적 처리가 되어 있어
서 책바다 서비스 이용하는 데도 한참
시간이 걸리더라구요 ㅠㅠ

소설이 다루고 있는 컨텐츠는 정말 최
고였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난 라틴
아메리카 소설 중의 최고였다고나 할
까요.
 
살모사의 눈부심 - 문학세상 외국소설선 1
쥴퓨 리반엘리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세상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작년 달궁 독서 모임에서 아민 말루프의 <동방의 항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미 절판되어 살 수도, 그렇다고 도서관에서도 빌릴 수가 없는 책이었다. 오늘 중고서점에서 사서 단숨에 읽어 버렸다. 17세기 폐위된 광인 술탄 이브라힘에 대한 이야기를 쥴퓨 리반엘리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터키 작가가 소설로 발표했다. 나에게는 생소한 작가지만 책을 읽으면서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서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천년제국 동로마제국의 보석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메흐메트 2세 이전부터 터키 궁정에서는 왕위 계승자가 술탄의 자리에 오르면 형제들을 모두 죽이는 풍습이 있었다. 어쩌면 권력투쟁을 위한 골육상쟁의 씨앗을 아예 차단하려는 계획이 아니었을까. 소설의 주인공 아비시니아 출신 흑인 환관장 슐레이만은 어려서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거세된 뒤, 노예시장을 거쳐 술탄의 궁정에 들어오게 되었다.

 

세계의 1/4을 지배한다는 신의 대리인 아니 거의 신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는 술탄의 최측근으로 슐레이만은 3명이나 되는 술탄을 모셔 왔다. 아무리 최절정의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술탄의 명으로 목이 날아가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가 모시는 현 술탄의 형이 오스만 제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시절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술탄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염이 허연 제국의 대신들이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으니 말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핵심 사건은 바로 술탄의 폐위였다. 아니 도대체 누가 쿠데타를 일으켜 신에 버금가는 권력을 지닌 술탄과 애첩 귤베덴(장미 몸매를 의미한다)을 함께 궁정의 벽에 가두었단 말인가. 천국으로 가기 위해 결여된 신체의 소유자 슐레이만은 타인의 신체 한 부분을 병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제국을 흔든 대지진과 함께 그 병이 깨진 징조는 불길하게 다가온다. 술탄에 대한 그의 충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지만, 우선 쿠데타의 주범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이 순서다.

 

리반엘리 작가는 연대기적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 대신 과거와 현재를 무시로 오가는 구성을 선보인다. 슐레이만이 모시는 술탄 역시 형이 즉위하던 시절, 살해당할 뻔한 위기를 넘겼다. 그것이 트라우마로 작용하면서 슐레이만이 모시는 술탄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형이 죽고 나서 그가 술탄이 되었을 때,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바로 복수였다. 다음에는 누구를 죽일까라는.

 

“부족한” 67세의 인간 슐레이만은 권력의 속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세르비아인 총리대신 바요 소콜로비치가 술탄이 폐위된 뒤, 처참하게 죽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도대체 누가 술탄을 폐위시켰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술탄의 모후인 베네치아 출신 황태후였다. 권력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의 속성을 다시 한 번 저자는 터키 궁정에서 벌어지는 정쟁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낸다. 황태후는 자신의 아들을 폐위시키고 대신 7살 난 손자를 대율법사의 승인 아래 왕위계승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새로운 술탄은 할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술탄의 할머니는 다시 한 번 출혈과다로 소년을 죽이려는 음모를 진행했다가 발각된다. 도대체 인간의 권력욕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신의 뜻”이라는 미명 아래 지난 8년간 제국을 다스려온 술탄을 권좌에서 끌어 내리고, 이번에는 새로 등극한 소년 술탄마저 저승길에 보내려는 시도라니.

 

매력적인 사피예를 자신의 노예이자 스파이로 만들어 궁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염탐하는 데 동원한 슐례이만의 능력도 대단하다. 결국 자신을 지하 감옥에서 구출하는데 일등공신도 역시나 사피예였다.

 

슐레이만은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메브라나교의 수도승 포스트니신 선생에게 세속적 물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충고를 듣는다. 하지만 오스만 궁정에서 사는 환관장에게 그게 가당키나 한 주문이었을까. 슐례이만은 그 누구보다도 더 황실에서 부는 바람이 어디로 향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대사도 반했다는 술탄의 하렘에 기거하는 미녀들에 대한 이야기며, 술탄을 매혹시킨 아르메니아 출신 애첩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살모사의 눈부심>에는 넘쳐흐른다. 한 마디로 말해 독자를 혹하게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프랑스 니스 출신 귤베덴/베로니카를 그야말로 살아있는 천사와 성녀 혹은 천상의 꽃으로 묘사하는 슐레이만의 심정은 또 어떤가. 어쩌면 그가 결정적으로 술탄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든 이유가 바로 귤베덴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가질 수가 없기에 더 애타게 갈구하는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견딜 수 없는 두통을 이기기 위해 쥐옷을 만들며 소일하던 귤베덴을 사랑한 환관장의 이어지는 고백은 참으로 슬픈 비가였다.

 

스포일은 여기까지만 하자. 과연 폐위된 술탄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 보시라. 짧은 호흡으로 딱딱 끊어지는 간결한 문장이 일품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구성의 중심에는 미스터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양념으로는 술탄이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도 적재적소에 잘 준비되어 있다. 터키 궁정의 하렘이라는 에로틱한 요소도 한 몫 단단히 한다. 이 모든 요소들이 마술사 리반엘리의 손에서 조화의 과정을 거쳐 <살모사의 눈부심>이라는 걸작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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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2-26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 어제 동네 중고서점에서 이 책 득템했어요!!!!!
절판에 도서관에도 없어 속상했었는데 2900원에 데꼬왔어요. ㅎㅎ
저도 곧 읽을거에요. ^^

레삭매냐 2019-02-26 20:22   좋아요 1 | URL
이제 책도 수중에 넣으셨으니...
힘껏 달려 주세요 :>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는군요.

왜 좋은 책들은 그리도 빨리 절판
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빨강앙마 2019-02-27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이 그리 유명한가요? 개인적으론 첨 들어보는 작가고 제목인지라.. 설해목님도 막 중고로 들이셨다고 하니 더 궁금해지네요^^

레삭매냐 2019-02-27 10:24   좋아요 0 | URL
아민 말루프-쥴퓨 리반엘리 그리고
오르한 파묵까지 요즘 터키 작가들
의 책을 달리는 중이랍니다.

리반엘리 책이 국내에 소개된 다른
책이 없어 아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