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 권오숙 옮김 / 기린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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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책에 대한 정보수집의 주된 루트는 인스타그램이다. 예전에는 싸이월드나 페북이 인기였다면 이제 대세는 인스타다. 거의 모든 정보의 총집합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리고 책쟁이들도 다수 인스타에서 활동 중이다. 넘쳐 하는 정보의 바다 항해는 언제나 그렇듯 정겹다. 책을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어제 두 권을 샀다. 하나는 인스타를 통해 알게 된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 그리고 다른 하나는 테리 이글턴의 책이었다. 후자의 경우는 읽지도 않으면서 꾸역꾸역 사대고 있구나.

 

<살로메>는 오스카 와일드가 1891년에 프랑스 어로 쓴 희곡이다. 어, 오스카 와일드는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프랑스 어로 희곡을 쓸 정도였단 말인가. 놀랄 노짜로다. 기린원에서 11년 전에 나온 책은 지금 절판이다. 나같은 절판 사냥꾼의 아주 좋은 사냥감이 아닐 수 없다. 어제 달려가서 냉큼 사왔다. 성서에 등장하는 헤로데와 살로메 그리고 세례 요한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일본 회화 스타일인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제작했다는 오브리 비어즐리의 그림 또한 희곡 <살로메>를 도 다채롭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다. 간결한 선으로 비극을 재구성한 스타일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사람의 아들’(the son of god) 예수 그리스도에 앞서 지상에 와서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한 세례 요한은 헤로데의 궁전에 투옥되어 있는 상태다. 갑자기 생각난 건, 로마에서 파견한 유대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엄연하게 존재하는데 헤로데 왕의 존재는 또 무언가. 유대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속주가 아니었던가? 어쨌든 헤로데는 세례 요한의 예언을 믿는 것으로 보인다.

 

왕궁에서 헤로데는 바리새 인과 사두개 인 그리고 다수의 유대인들이 등장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와 사마리아 각처에서 이적을 행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는다. 다른 이적들은 모르겠으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만은 못하게 하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기독교 구속사에서 영생과 구원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부활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교리가 아니던가. 지난주 설교에서 목사님이 ‘메멘토 모리’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어쩌면 헤로데 역시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뭐 이 정도가 당시 시대상에 대한 간략한 소개라면 곧 이어 등장할 팜므 파탈 살로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살로메는 관능적인 아름다움으로 병사들까지 현혹시킬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진 유대 공주다. 그녀의 어머니 헤로디아는 원래 헤로데의 부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헤로데의 형수였다. 그래서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헤로디아와 자신을 유혹하려는 살로메를 바빌론(70년간의 유수생활로 유대인들에게 바빌론은 타락의 상징으로 보인다)의 창녀라는 폭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헤로데의 자신의 의붓딸에 대한 관음적 태도는 뭇 사내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이미 눈치를 챈 헤로디아는 살로메를 그만 쳐다보라는 핀잔을 준다. 헤로데는 살로메에게 자신을 위해 춤을 춘다면 왕국의 절반 아니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준다고 제안한다. 살로메는 이 제안을 덥썩 받아들이고, 왕이 흡족할 만한 춤으로 보답한다. 그리고 그녀의 소원은 바로 세례 요한의 목이었다. 좀 엽기적이지 않은가?

 

그나마 좀 의식이 있었던 헤로데 왕은 그것은 들어줄 수 없다며, 카이사르로 갖지 못한 큰 사이즈의 에메랄드, 50마리의 공작새, 진주, 사파이어 등등 각종 보석으로 살로메의 요구를 철회하려고 하지만 공주는 요지부동이다. 헤로디아까지 나서서 자신을 모욕한 광야의 예언자의 죽음을 요청한다. 어쩔 수 없이 헤로데는 공주의 소망을 들어주고, 세례 요한의 목은 은쟁반에 담겨 공주에게 전달된다. 죽은 세례 요한에게 죽음의 키스를 하는 장면 정말 이 희곡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삽화를 맡은 비어즐리를 두 장을 이 장면에 할애한다.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죽여서라도 소유하겠다는 걸까. 네크로필리아적인 성향마저 보인다.

 

결국 헤로데는 살로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병사들이 그녀를 잡아가는 것으로 희곡은 끝난다.

 

원조 팜므 파탈로서 살로메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유대 공주라는 고귀한 신분의 여성이 한낱 광야의 선지자에 지나지 않는 세례 요한을 사랑한다는 설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에게 관음적 시선을 보내는 의붓아버지 왕의 앞에서 요사스러운 한 춤을 추질 않나, 그 대가로 여느 공주처럼 자신의 품격을 높여줄 보석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다고 고백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하니 말이다. 이 한 컷만으로도 살로메 에피소드는 숱한 회화와 문학의 타깃이 되어왔다.

 

그런데 오스카 와일드가 이 작품을 발표하던 빅토리아 시대는 세계를 제패한 영국 사교계의 교조적이고 정숙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브람 스토커의 고딕 소설 <드라큘라> 같은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트란실바니아 출신 드라큘라 백작이 영국의 숙녀들을 유혹해서 날카로운 이빨을 그녀들의 목덜미에 박아 넣는 장면도 살로메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관능적 유혹과 다르지 않다. 정숙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뒤틀린 성적 욕망에 대한 리포트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에피쿠로스의 출중한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오스카 와일드 역시 한 숟가락 얹은 것 같다.

 

짧지만 강렬한 역사상 최고의 팜므 파탈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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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15 11:42   좋아요 0 | URL
다른 이야기에서 보면 구박받는 공주들도
많이 등장하던데, 살로메는 그런 공주들에
비하면 자의식이 굉장히 강한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Falstaff 2019-01-15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른 거 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쳐도, 반짝이는 은쟁반에 담긴 요한의 대가리를 들고(그게 생각보다 무겁거든요) 죽어 창백한 입술에 입 맞추는 거, 근데 이때 살로메의 나이가 열네 살? 열여섯 살? 하여간 소녀적 순진함과 팜므 파탈적 요소를 다 갖춘 여자를 골라 캐스팅하려면 캐스팅 담당자의 골은 또 얼마나 뽀개지겠습니까. ^^;

레삭매냐 2019-01-15 11:45   좋아요 1 | URL
적어주신 바에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

연극 무대나 혹은 영화화된다고 하면
어떤 스타일의 배우가 과연 캐스팅될
지 궁금하네요.

언급해 주신 씨퀀스는 정말 상상만 해도
쏘름이 쫙 끼치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9-01-15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이트 밀렛의 <성 정치학>에 와일드의 <살로메>를 분석한 내용이 있습니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서 참고할 만한 해요. 저도 오랜만에 <살로메>를 읽어보려고 해요. ^^

레삭매냐 2019-01-15 14:27   좋아요 0 | URL
시상에 알라딘에서 <살로메> 검색해
보니 싸이러스님의 글들만 주루룩
뜨더라구요 ㅋㅋㅋ

페미니즘의 대가시니 참고하도록 하
겠습니다.

유부만두 2019-01-15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플로베르의 살로메 이야기도 읽어보세요. 설화가 새롭게 읽혀요. ‘세가지 이야기’ 단편집으로 나와 있어요.

레삭매냐 2019-01-15 14:30   좋아요 0 | URL
오홋 마지막의 <헤로디아>가 아마
살로메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네요.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아까 치누아 아체베의 책 빌리러
가기 전에 알았다면 바로 빌려다
봤을 텐데... 아까비입니다.

cyrus 2019-01-15 17:26   좋아요 0 | URL
To. 유부만두 // 레삭매냐님 어깨 너머로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

stella.K 2019-01-15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판 사냥꾼이시군요.ㅎ
참 사람이 묘하더라구요.
평소 같으면 나중에 사지 하다가도 절판이 붙으면
괜히 사고 싶더라구요. 저도 그래서 꽤 샀는데
요즘엔 조금 자제하고 있습니다.
쌓아놓은 책이 많아서.ㅋ
이 책이 절판이라니 좀 아쉽군요.
저도 오래 전에 성경의 그 부분이 하도 흥미로워서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연극으로 올린 적이 있는데
이 책이라도 읽어보고 올릴 걸 그랬나 봐요ㅋ.

레삭매냐 2019-01-15 14:36   좋아요 1 | URL
책이 팔리지 않다 보니 점점 더
초판으로 찍는 책의 수량이 줄어
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5천부 정도였었는데
이제는 2-3천부 정도라고 하네요.

절판본을 구하는 재미가 쏠쏠한
것 같습니다. 쌩쌩할 때 사두는 것
도 좋지만, 모든 책들을 다 그럴 수
없으니깐요.

나중에 구하는 재미도 갠춘합니다.

과연 교회 연극에서는 어떻게 구현
되었을 지 궁금합니다.

stella.K 2019-01-15 14:55   좋아요 1 | URL
아, 그거요...
예수님 탄생이 순탄치는 않았잖아요.
요한이 그렇게 목이 잘리고,영아 박해가 있었고.
정확히는 연출한 형제가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에
제가 쓴 대사를 쓰자고 해서 뮤지컬로 올렸습니다.
괜찮은 작업이었죠. 그 대본 쓴지 무려 3년만에 이루어진
성과였습니다.ㅋ

2019-01-15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15 16:50   좋아요 1 | URL
다양한 채널의 확산 환영하는 바입니다 !!!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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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3>

 

이 책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성경만큼이나 인기가 있다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드디어 읽었다. 사실 4년 전에 열린책들에서 새로 나온 책을 사두고서도 명성과 두께 때문에 읽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새해 나의 프로젝트인 서가파먹기의 세 번째 책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니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어렵지 않더라. 명성과 조금 두툼한 두께 때문에 지레 먹은 겁이 문제였다.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면서 왜 이 책이 미국 학교에서 거의 교재처럼 사용되는지 알 수가 있었다.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항시적이던 1933~35년 앨라배마 메이콤이다. 소설의 화자는 깜찍한 8세 소녀 진 루이즈(스카웃) 핀치다. 왜 작가 하퍼 리는 어린 소녀를 화자로 삼았을까?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다. 스카웃의 어머니는 소녀가 2살 때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한부모 가정 출신이다. 변호사와 주의원 일로 바쁜 아버지 애티커스를 대신해서 가사를 돌보는 건 흑인 캘퍼니아 아줌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작가는 소녀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독자를 뜨거워지는 여름날의 메이콤으로 인도한다. 그런 점에서 <앵무새 죽이기>는 성장소설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진 루이즈와 이웃집 계절친구 딜 해리스 그리고 오빠 젬(제러미)은 삼총사다. 그들은 어린 에피쿠로스 추종자들로 하루하루를 재미난 일거리를 찾는 데 소비한다. 이웃에서 칩거하는 은둔자 아서 “부” 래들리 아저씨의 소문을 꼬마들로 하여금 그를 집밖으로 유인하는 동력이다. 무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이기는 못하는 삼총사들은 계속해서 소동을 벌인다. 나이 먹은 아빠 애티커스는 변호사고, 미혼의 삼촌 잭은 의사다. 애티커스는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딴 사람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변호사라는 직종은 지금처럼 그런 돈 많이 버는 그런 직업이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 소설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톰 로빈슨의 변호처럼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앵무새 죽이기> 1부는 핀치 집안 주변의 이러저러한 일들에 대한 소개다. 1930년 미국 남부의 평화로운 정경이 그대로 전달된다. 대공황이 가시지 않은 시절, 모두가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시골 마을 특유의 정이 있다고 해야 할까. 이웃 모디 아줌마네 집에 불이 났을 때, 마을 사람들은 마치 자기 집에 불이라도 난듯이 달려와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다. 2월의 광견병 사건 때는 애티커스가 좋지 않은 시력에도 불구하고 숨겨둔 명사수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듀보스 할머니가 아버지를 모욕하자 격분한 미스터 젬이 그녀의 꽃밭을 엉망으로 만들자, 아버지는 젬에게 듀보스 할머니에게 사과하고 한 달 동안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 드리게 한다. 갈등과 편견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애티커스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배우게 하고 있었다.

 

소설의 진짜 위기는 백인여성 메이엘라 유얼을 강간한 혐의로 고소된 톰 로빈슨의 변호를 애티커스가 맡으면서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공정한 재판을 기다리는 대신 린치를 가하기 위해 톰이 갇혀 있는 메이콤 감옥으로 몰려든다. 그를 지키기 위해 감옥 앞에서 신문을 읽으며 기다리던 애티커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 때 그녀의 딸 스카웃이 나서서 특유의 기지로 위기를 넘긴다. 스카웃은 과연 당시 상황이 얼마나 험악했는지 알고도, 사랑하는 아빠를 위해 분연히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었을까?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은 1962년 동명 영화에서는 8살 소녀 스카웃의 시선으로 톰을 지키고 있는 아버지를 따라가는 카메라 워크가 돋보였다. 아이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위협하는 패거리를 헤치고 당당하게 나서는.

 

무대는 이제 법정으로 향한다. 소설의 핍진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8세 소녀가 이 모든 과정을 묘사한다는 설정이다.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다른 시선으로 처리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린 소녀가 법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전달한다는 건 무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리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독학으로 글을 깨우쳤다고 하지만, 12명의 배심원이 등장하고 법률적인 전문용어들이 등장하는 재판정의 모습을 어린 소녀의 시각으로 전달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 애티커스는 법정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친다. 무능한 유얼 집안의 가장 밥과 피해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메이엘라의 법정 증언을 무력화하는 뛰어난 변론으로 톰 로빈슨의 무죄를 입증할 거라는 기대를 부풀린다. 사실 앨라배마에서 성폭행을 저지른 흑인에게는 무죄 아니면 교수형이라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과연 핀치 씨는 전원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진실이 언제나 승리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린 스카웃과 달리 동생보다 좀 더 조숙한 젬은 불합리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조용한 남자로 성장해 간다. 위기상황은 모두 가시지 않았다. 얼마 뒤,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상급 교도소로 이송된 톰 로빈슨이 탈옥을 시도하던 중에 17발이나 되는 탄환을 맞고 사살되었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기고만장한 밥 유얼은 다음 차례는 애티커스가 될 거라고 공언해 마지 않는다. 물론 모두가 밥 유얼의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당시 미국 남부의 분위기가 그랬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할로윈 즈음해서 또 하나의 결정적 사건이 화끈한 엔딩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퍼 리의 유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앵무새 죽이기>는 정말 다양하면서도 논쟁적인 주제들을 품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불완전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핀치 씨처럼 자신이 원하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들을 묵묵하게 수행해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톰 로빈슨처럼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감옥에 갇힌 ‘깜둥이’를 린치하겠다고 나서는 월터 같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젬과 스카웃처럼 양심적인 이들에게 배심원 자격을 부여했다면 불일치로 톰 로빈슨이 풀려났을 거라는 핀치 씨의 예리한 지적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제도를 운영하는 인간들이 문제란 말인가.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실제 삶에는 적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백 년 전에는 엄연하게 존재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간은 그렇게 우리를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니 우리의 양심도 시대에 맞게 개선되었을 거라고. 바로 그 점을 나는 회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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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11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전국 독서 모임 중에 이 책을 안 읽은 독서모임은 없을 거예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9-01-11 18:19   좋아요 0 | URL
아마 달궁에서는 너무 알려져셔
안한 것 같습니다만.

전 인제사 읽었네요 -
 


 

꽤 오래 전 독일 여행을 갔었다. 그전에 들른 빈 베스트반호프 부근의 민박집에서 만난 동생을 며칠 뒤 야밤의 잘츠부르크에서 다시 만났고, 그 때부터 짧은 동행으로 여행길에 나섰더랬다. 디즈니 캐슬에도 같이 갔었고, 뮌헨까지 동행했다. 그 친구는 아마 프라하로 넘어 가는 길이었었는데 뮌헨의 그 유명한 뢰벤브로이 호프를 찾았다. 술을 실컷 마신 기억이 난다.

 

션한 비루 생각이 나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동네슈퍼로 향했다. 역시나 만원에 네캔하는 행사가 있었다. 500ml 짜리 뢰벤브로이 2깡 그리고 버드와이저 2깡을 사서 전리품 마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지금 콸콸 붓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는 마냥 비루를 마실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런 자유조차 사라져 버렸다. 오늘 아침에 친구가 사는 낙이 없다고 하던데, 난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자조하면서 마신다. 하지만 친구에겐 나도 사는 낙이 없다고 구라를 쳤다. 친구가 죽상을 하고 있는데, 나는 살맛 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제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2탄으로 에라스무스를 읽었다. 싸이러스님의 츠바이크 전작읽기 썰에 혹해서 집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는 츠바이크의 책들을 시선이 쫓기 시작한다. 일단 예전에 읽었지만 리뷰로 기록을 남기지 못한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를 핍박한 독재자 칼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다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와 소설 <초조한 마음>이 눈에 띄었다. 전자는 무지 열심히 읽은 모양이다. 포스트잇이 수두룩하게 붙어 있는 걸 보면.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초조한 마음>은 처음에 조금 읽다만 모양이다. 책갈피가 10쪽에 가서 꽂혀 있다.

 

어제는 기분 드러운 일이 하나 있었다. 네이버에 올린 <신의 대리인, 메슈바> 리뷰가 멍청교회 세습을 거론했다는 이유(개인적 추정)명예훼손 (게시물로 인해 피해를 주장하는 단체로부터 게시중단 요청 접수)” 때문에 게시중지되었다는 것이다. 나 원 참, 살다 보니 별 거지 같은 일을 다 겪는구나 그래. 블로그 개설 이래 활동 중에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그런데 세습에 대한 비판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나 같은 일개 블로거의 글까지 집요하게 추적해서 막는 걸 보면. 다행히 알라딘에서는 게시중지를 먹지 않았다. 아직 그들의 마수가 뻗치지 않았나. 혹시라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링크를 걸어 본다.

 

[신의 대리인 메슈바] http://blog.aladin.co.kr/723405103/10373973

 

500년 전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의 반박문을 걸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수백년의 시절을 지나 한국땅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당시 교황과 기득권 계층이 나무장작으로 자신과 반대편에 서 있는 인간과 그 인간의 생각 그리고 책을 태워 소멸시킬 수 있다고 착각했다면, 한국의 메가처치들은 랜선 시대에 보잘 것 없는 일개 블로거의 글을 게시중지라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대중으로부터 차단을 원하는 모양이다.

 

구시대적 검열로 자신들의 부끄러운 짓거리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네들의 깜찍한 생각이 얼마나 웃긴지 모르겠다. 술이 술을 부르는 밤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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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9-01-09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건 좋아요가 아니라 화나요를 눌러야할 거 같아요. 가서 리뷰를 읽어보니 뭐가 명예훼손이라는 거죠? 명성교회 세습에 대해서는 온 나라가 다 알고있는데 말이죠. 블로그 글 그것도 책 리뷰인데 그거를 게시중단 하는 걸로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참 정말 어이없네요

레삭매냐 2019-01-10 09:09   좋아요 0 | URL
종교를 앞세워서 이익집단으로 변질
해 가는 모습이 그저 아쉬울 따름입
니다.

세습한 사실이 그래도 부끄러웠던 모
양입니다. 기를 쓰고 재갈을 물리려고
하는 걸 보면.

2019-01-09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10 09:12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가 저술한 대로 상대방이
<다른 생각을 가질 권리>를 인정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원죄고요.

집행자들도 그저 불쌍할 따름입니다.

2019-01-10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10 09:14   좋아요 0 | URL
그동안 사재끼기만 했지 안 읽은
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하야 신년에는 사재기는 좀
자제하고 사둔 책을 좀 읽자 프로
젝트를 가동하게 되었습니다.

명칭은 서가파먹기 !

검열로 진실을 가리려는 행태가
그냥 안쓰러워 보입니다.

설해목 2019-01-10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이버는 갈수록 마음에 안들어요.
정말이지 다음과 점점 비교가..

오늘 아침 문득 이렇게 평생 사는 걸까 하는 생각에 좀 울적했는데 사는 낙이 없다는 친구분 기분이 이해가 가네요.

아침부터 비루가 느므 땡깁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9-01-10 09:16   좋아요 1 | URL
다음은 활동을 잘 안해서 모르겠
는데... 네이버는 아주 대응을 신속하게
하는 것 같더군요. 분쟁은 사전에 차단
하자 뭐 그런 주의?

사는 것이 모두에게 별반 다르지 않을
듯 합니다. 젊어서는 무언가 아싸라한
그런 라이프를 기대했지만, 살다 보니
그런 건 존재하지 않더라는...

그런 삶을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모두
넉넉해야 하는데 핫하 둘 다 없네요.

비루는 사랑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종교의 광기에 맞서 싸운 인문주의자, 아롬옛글밭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 아롬미디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2>

 

종교개혁의 기수 마르틴 루터 이전에 가톨릭 개혁가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에라스무스다. 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은 우리에게는 그저 <바보 예찬>을 지은 가톨릭 신부로 알려져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초의 세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에라스무스의 진면모를 파헤친다. 기이하게도 번역을 맡은 정민영 씨는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쓰고 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읽다 보니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현대인 츠바이크가 어떻게 에라스무스의 흉중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겠는가. 여기저기 파편처럼 남아 있는 르네상스 최고의 지식인의 흔적들을 찾아 맞추는 일종의 퍼즐 게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부와 하녀 사이에서 사생아로 출생한 에라스무스는 어머니를 페스트를 잃고, 아버지의 돌봄도 없이 홀로 성장할 운명이었다. 1487년 스테인에 위치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학교에서 엄격한 훈육과 지도 아래 성장했다. 기존 종교에 대한 생래적 반발은 아마도 이 교육 과정에서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해에 사제 서품을 받은 에라스무스는 다음해, 라틴어에 발군의 실력을 바탕으로 카브레 주교의 라틴어 비서관이 되었다.

 

에라스무스의 삶은 방랑자의 그것이었다. 카브레 주교의 후원으로 파리에 유학에 나선 에라스무스는 지극히 교조적인 스콜라 철학에 회의를 느꼈다. 이후에는 영국에서 토머스 모어와 교류하기도 한다. 로마와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톨릭의 타락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영국에 와서 <바보 예찬>을 발표한다. 사실 츠바이크의 평전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아는 사실이라고는 에라스무스가 로테르담 출신이라는 점과 그 유명한 <바보 예찬>의 저자라는 점 뿐이었다. 물론 <바보 예찬>은 아직 읽어 보지 못했다. 평전을 읽으면서 동시에 <바보 예찬>에 도전했는데 잘못된 번역서를 골라 낭패를 봤다. 좀 더 쉽게 번역된 책을 골라야 했나 보다.

 

내가 보기에 기회주의자인 에라스무스는 평생 평화주의자이자 보편 인간(uomo universale)으로서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 그가 가장 배격하는 것은 바로 모든 종류의 광신이었다. 훗날 쇠망치는 든 종교혁명가 루터와의 대결에서도 보여지듯이 신교와 구교를 가리지 않고 맹목적 광신을 가장 혐오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바야흐로 유럽 사회에 서적을 통한 지식이 전파되고 사상을 교유하는 르네상스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루터와 더불어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이 바로 에라스무스가 아닐까 싶다.

 

에라스무스의 약점 중의 하나는 바로 지식인 위주의 사고가 아니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문맹이던 시절 모국어도 아닌 라틴어로 쓰인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싶다. 라틴어의 대가였던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훗날 그의 사도이자 라이벌이었던 루터 역시 에라스무스가 쓴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든 예술이 종교 권력의 시녀이던 시절, 교황과 군주들 그리고 지식인들에게 에라스무스와의 교류는 우월한 지식인 세계로 입장권을 의미한 모양이다. 그 이전에 어떤 지식인도 에라스무스와 견줄 만한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가톨릭 사제였던 에라스무스는 절제의 미덕을 고수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농부 출신 격정가 루터와는 달리 허약한 자신의 육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죽음은 평생 그를 따라 다니는 그늘과도 같은 존재였다. 회피는 어쩌면 에라스무스를 특징 짓는 성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자 이제 드디어 마르틴 루터가 등장할 차례다. 그동안 읽은 어떤 종교개혁에 대한 책에서도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루터가 종교와 신을 인간에 앞에 두었다면, 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가톨릭 신부라는 자신의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강조한다. 루터가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전쟁을 불사할 태도를 보인다면, 에라스무스는 평온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존재 이유라며 어떠한 형태의 폭력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구교와 신교 세력 모두는 에라스무스를 자신들의 편에 세우기 위해 전력투구에 나선다. 하지만 우리의 교활할 정도로 중재와 화합에 뛰어난 지식인 에라스무스는 한쪽 편에 서길 거부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종교개혁의 시대에 중립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에라스무스에게서 최근 대선불출마를 선언한 어느 리버럴리스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이 위대한 지식인은 결국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 나는 모르겠다. 그가 과연 토마스 뮌처를 비롯한 농민혁명의 불길 대신 군주들의 편에 섰던 루터의 편을 들어야 했는지 말이다.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를 종교개혁 시대의 패배자로 규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에라스무스가 루터의 주장을 무시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전형적인 회의주의자(skeptikus)답게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면서 하나의 줄타기를 시도했다. 그는 줄곧 루터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 잽만 주고받던 당대의 두 스타는 자유의지에 대한 구원론의 문제에서 결별선언을 도달한다. 개인적으로 에라스무스는 광신적이고 열정에 찬 루터의 거친 행동에 그리고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서로 참을 수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종교개혁의 시기는 혼돈 그 자체였다.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던 선구자들은 시대정신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맞지 않는 생각을 가진 이들과 때로는 타협해야 했고 때로는 격렬하게 맞서 싸워야 했다. 그 가운데 인간정신의 해방을 꿈꾸며,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군주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꾼 세계주의자 에라스무스에게 열린 공간은 너무 협소했다. 자유사상가로 그렇게 좋아하는 저술에 전념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시절은 그가 조용하게 살도록 놔두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았던 에라스무스는 라이벌 루터처럼 맹렬하게 자신의 주장을 대중에게 설파할 능력도, 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그는 평온한 삶을 원했을 뿐이다.

 

번역을 맡은 이가 왜 <에라스무스 평전>을 소설이라고 썼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츠바이크는 걸출한 전기작가답게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역사의 빈 공간의 채웠다. 간혹 가다가 독자가 이거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 삶의 궤적을 쫓는 여정은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츠바이크의 다른 전기들도 만나보고 싶어졌다.

 

[뱀다리] 아 그리고 이 책은 최근에 나온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 등장하는 시퀀스를 보고 바로 읽을 결심을 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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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09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우주지감 독서모임 12월 선정도서가 츠바이크의 소설입니다. 제가 딴 책에 정신 팔리지 않는 이상 츠바이크 전작 읽기에 도전하고 싶네요. 지금 상황을 봐서는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9-01-09 19:2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나
섣불리 선언을 하지 못하겠네요...

게다가 절판된 책들도 많고설라무네.

일단 가지고 있는 츠바이크의 책들부
터 읽어야지 싶습니다.

stella.K 2019-01-09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는 어느 출판사에서 전집으로 내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기해년 서가 파먹기 프로젝트라. 좋은데요?
저도 가급적 그러려고 하는데 감히 프로젝트까지는 생각 못했습니다.
암튼 시작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응원합니다.^^

레삭매냐 2019-01-09 19:30   좋아요 1 | URL
이 책 재밌는 것이... 판권 등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답니다.

해적판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더라구요. 아니면 저작권이 풀려서
아무나 책을 내도 되는 건지 궁금하
네요.

말씀해 주신 대로, 전집으로 구성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출판사들이 책을 내서 통일성이
좀 없는 느낌도 들구요...

서가파먹기 응원, 감사합니다 -

Falstaff 2019-01-09 2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위 스텔라 님의 의견에 백퍼 동의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평전, 전기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판권 등의 정보가 없는 책들은 대강 일본책 중역한 거라고 보시면 맞습지요. ^^;

레삭매냐 2019-01-09 22:10   좋아요 1 | URL
그랬군요 - 한 수 배웠습니다.
요즘 책 같지 않다 싶었더니만 그런 비밀이.

1934년에 이런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는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1-09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20대에 읽었는데...기억이...설익은 서평이 있을래나

레삭매냐 2019-01-09 22:19   좋아요 1 | URL
제법 연식이 된 책이라 ㅋㅋㅋ

저는 늘그막에 읽었습니다만.

카알벨루치 2019-01-09 22:21   좋아요 0 | URL
97년도 출판된 책이네요 98년도에 읽었네요 제가 쓴 리뷰를 보고 있네요 기억을 상쇄하려면 레삭매냐님 리뷰를 참고해야겠습니다 ㅎㅎ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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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1>


어젯밤에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 작가의 <알릴레오>를 봤다. 보수우파들의 공간이 되어 버린 유튜브를 평정하겠다는 선언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열렬한 호응이었다.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수상한 시절에 진실을 알리겠다는 유 작가의 발랄한 선언보다 그의 정치 재개 뉴스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항상 달보다 손가락만 보게 되었구나 싶다.

 

무려 5년 전에 산 책을 이제야 읽었다. 그것도 해를 넘겨 가면서 말이다. 나의 새해 결심 중의 하나인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1호로 당당하게 기록되었다. 유시민 선생의 <나의 한국현대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하고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어느 리버럴리스트의 자전적 기록이다. 그렇다, 자유주의자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통제를 참을 수 없어한다. 그가 성장하던 시절은 바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독재자로 남을 어느 대통령이 지배하던 때였다. 독재자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기묘한 방식으로 민주화 대신 산업화를 택했고, 그의 대한민국 백성들을 가난과 배고픔에서 구해냈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대학 시절, 절친한 과 동기 녀석이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게 된 게 다 그 독재자 덕분이 아니냐는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재벌 몰아주기 산업화 덕분에 작금의 빈부격차가 더더욱 벌어지고, 1970년대에는 유효했던 성장추구 전략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고용 없는 성장 시대가 되지 않았느냐는 따위의 말은 이제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는 너무 어리고 무지해서 제대로 된 논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술을 마실 게 아니라 책을 더 많이 읽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가 된다.

 

어쨌든 3선 개헌 후에 세 번째 대선에서 승리한 독재자는 당시 라이벌이었던 정치인의 말대로 종신 총통으로 영구집권을 획책했고, 1972년 10월 유신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 전형적인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수 경제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중화학공업 위주의 산업화를 특유의 “라면 된다” 식의 군바리 정신으로 밀어 붙였고,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패자가 부활하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아닌가. 특히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권리는 철저하게 유린되었고, 조국의 산업역군으로 희생해야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19세기 일본에서 있었던 메이지유신 스타일의 근대화가 강제되었다.

 

전 세계 청년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1968년, 한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반공정책의 시행으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당장 조국이 등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무슨 놈의 한가한 시대정신 타령이냐는 것이었을까. 전 세계를 뒤흔든 흐름이 왜 한국에서는 없었나에 대한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민주화와 산업화가 한국처럼 대결구도로 간 나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영국가를 운영하는 위정자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들었다. 그것에는 사상과 문화 그리고 음악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엄격한 도덕률을 적용한 것도 아니었다. 작년 말에 읽은 조너선 스펜스의 <반역의 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사 이래 사상 통제가 가능한 적이 있었던가? 유시민 작가 같은 자유주의자에게 병영국가를 통치하는 독재자의 통제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일시적인 통제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 뒤에 이어진 1980년의 봄 그리고 1987년의 민중항쟁에서 보듯이 억눌린 민중의 힘이 폭발하는 순간, 어떤 수단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걸 역사가 확인해 주었다.

 

그나저나 그렇게 어렵에 쟁취한 87체제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지만, 결국 신군부의 2인자였던 노태우가 양김의 분열 때문에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던가. 한 때 민주투사였던 YS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보수의 주가 되어 꿈이 그리던 대통령이 되었지만, IMF사태로 국가를 결딴 낸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다. 그 뒤 이어진 진보정권 집권 10년으로는 분단이래, 한국을 지배해온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공고한 기득권 카르텔의 반격을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의 적폐청산 작업은 단기간 내에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는 동안 보수언론과 야당은 지속적으로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87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선거구제가 민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나? 절대 아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가장 민의를 대변하는 합리적인 선거제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밥그릇이 날아갈 지도 모르는데 어느 국회의원이 그런 선거제 개편에 동의하겠는가? 게다가 국회의원들의 특권이 너무 많다. 그런 특권을 파격적으로 줄이고 의원수를 늘인다면 대찬성이지만, 특권은 줄이지 않고 국회의원수를 늘이는 것에는 반대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것을 고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울러 유시민 작가가 지적하는 국가적 차원의 인구감소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이제 저임금 노동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서구사회처럼 인간이 수행하는 노동의 대가가 정당한 대접을 받는 시절이 곧 도래할 것이다. 그 때가 와도 최저임금이 과도하다는 타령을 지금처럼 해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시대의 의식을 가지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을 길을 가려니 버거울 수밖에. 유시민 작가가 지적한 에너지 가격 상승 역시 문제다. 중국과 인도의 수많은 잠재적 중산층의 에너지 수요가 폭발하면 기존 화석 에너지 수요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에너지 가격이 급상승할 게 뻔한데 에너지 생산을 위한 원유에 수입에 전량 의존하는 한국으로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전시작전권 반환과 검찰 개혁이 불가역적일 것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보수정권 시절 감당할 능력도 없이 논하던 흡수통일 대신, 독일식 합의통일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유시민 작가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워진 남북한 간의 대화를 통한 화해 분위기를 종언선언까지 이어가고,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을 미국이 해준다면 그동안 북한의 핵개발로 시작된 일촉즉발의 위기들은 해소될 것이다. 또한 최근 조국 민정수석의 말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검찰의 권한조정이라는 궁극적 개혁과제를 위해 법적 테두리를 위한 시민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하다. 또 다시 검찰의 정권 타고 넘기 전략을 그대로 용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오고 갔는데 막상 리뷰로 담아내려니 역부족이다. 어쨌든 어두웠던 병영국가 시절을 벗어나 이제는 시민 모두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인이 되는 광장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주인의 뜻과 어긋난 ‘통치’를 한다면 대통령이라도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입증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한국현대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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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07 17:42   좋아요 1 | URL
상생으로 가지 않고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위기라는 인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면 뭘합니
까 소비할 사람들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
이 없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득과 소비의 선순환되는 경제 생태계
를 조성해야 하는데, 당장 눈 앞의 돈벌
이에 어두워 약탈식 경제를 추구하니
큰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