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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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완벽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35년 만이라고 했던가전작 <시녀 이야기이후 시퀄이 우리에게 걸린 시간은작년 가을부터 기다려왔다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증언들>이 번역되기만을사실 일반에 공개되지도 않은 책이 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이거 너무하는 거 아냐 그랬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생각은 싹 바뀌어 버렸다너무 당연한 귀결이었노라고.

 

항상 그렇지만 서설이 길다우리는 현대판 베르길리우스 애트우드 여사의 안내로 다시 맹신과 폭력의 저주 받은 땅 길리어드 내셔널 홈랜드로 향한다훌루 드라마와 전작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과 수호자들이 모든 것을 감시하고 종교적 맹신으로 무장한 길리어드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나라인지이 땅에서 여성들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들은 그저 재생산(reproduction)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그들에게는 심지어 읽기와 쓰기마저 가르치지 않는다불임이 만연한 상황 가운데신정국가의 존속을 위해 시녀들을 동원해서 사령관들의 자식을 생산하는 야만을 거침없이 저지른다그리고 그런 파렴치한 사령관을 대표하는 저드는 어린 소녀들에게서 성적 욕망을 채우고어린 아내들을 지속적으로 갈아 치운다마치 전설에 등장하는 푸른 수염처럼.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그런 폭압적인 시스템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이미 우리는 지난 세기에 퓨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의 광기를 보지 않았던가미세한 균열이 보이는 그 지점에 애트우드 여사는 각기 다른 세 명의 여성들 배치해서 어떻게 해서 철옹성 같은 길리어드의 파멸이 도래했는지에 대한 스케치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전작과 드라마에서 길리어드 창설에 있어 뛰어난 활동을 한 리디아 아주머니와 예의 시스템에서 나고 자란 십대 소녀 아그네스 제미마 그리고 길리어드의 무력한 이웃나라 캐나다의 데이지가 증언대에 오른다.

 

이 세 명의 주인공들이 빚어내는 배신과 위선 그리고 궁극적으로 길리어드를 파멸로 인도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정말 통쾌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의 연속이다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목적하는 일에 성공할 수 있을까이 자리에서 시시콜콜하게 소설의 디테일을 밝히고 싶은 마음은 없다부디 <증언들>을 몸으로 느껴 보시기 바란다.

 

리디아 아주머니데이지 그리고 아그네스가 그리는 여성상은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가 바라는 그런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이 아니다각성을 통해 무언가 의미 있는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판이 뛰어든 세 명의 전사들이다가장 위험한 자리에서 사방에서 조여오는 의심을 피하면서 길리어드를 탈출하는 여성들을 돕는 내부 조력자의 역할을 담대하게 수행하는 캐릭터를 필두로 해서출생의 비밀을 안은 이부 자매라는 설정 그리고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빅토리아 아주머니 같은 캐릭터에 반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베카 혹은 임모르텔 아주머니였다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그녀의 숭고한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이 아닐 수 없었다그리고 보니 초중반을 휩싸는 그런 스릴 넘치는 전개에 비해 후반부는 좀 기운이 빠진 그런 느낌이랄까애써 애트우드 여사를 위해 변명을 해보자면 어떻게 이렇게 웅장한 소설이 달려가는 동안 내내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게 쓸 수 있단 말인가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시대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정말 마지막까지 다 읽지 않고는 다른 어느 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그런 어마무시하면서도 압도적인 서사에 감탄했다오랜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었다영화든 드라마든 좋으니 부디 <증언들>의 유려한 영상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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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1-24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레삭매냐 2020-01-25 12: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하나의책장 2020-01-26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천사는 침묵했다 창비세계문학 69
하인리히 뵐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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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의 <천사는 침묵했다>2년 만에 다시 읽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천사의 침묵>이란 제목의 정말 오래전 책을 빌려서 읽었다. 사실 그 때는 대충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나의 독법에 문제가 있었는지 뵐 선생의 서사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이번에 창비에서 새로 나온 <천사는 침묵했다>는 한 번 읽었던 기시감 덕분인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그리고 보다 더 명징하게 만날 수가 있었다.

 

때는 194558. 공식적으로 독일이 패전한 날이다. 우리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가 조용하게 무대에 등장한다. 장소는 쾰른이다. 나치 지도자 히틀러의 망상으로 게르만 민족은 거의 괴멸적인 파괴를 경험하게 됐다. 전 세계를 집어 삼킬 것 같았던 제3제국의 영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 유명한 블리츠크리크로 폴란드와 프랑스를 정복하는 순간이 제국의 절정이 아니었을까.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손절할 수 있는 기회가 수차례 있었지만, 독일 군부는 미쳐 날뛰는 총통을 막을 수가 없었다. 1944년 여름의 총통 폭사 계획은 국가를 파멸로 인도하는 급행열차일 뿐이었다. 다시 한스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한스는 탈영병이다. 미점령군 하에서도 탈영병의 존재는 거북할 수밖에 없었던가. 나치 시절이라면 당장 총살형에 처해질 정도의 중범죄였다. 그리고 한스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빌리 곰페르츠 중사(법무관 서기)는 그를 대신해서 죽기도 했다. 빌리의 유언장을 미망인 엘리자베트에게 전해 주기 위해 한스는 그녀가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병원을 찾는다.

 

한스는 병원에서 가짜 신분증을 구하기 위해 의사 선생과 대담한 거래에 나선다. 그리고 누군가의 외투를 뒤지다가 미래의 연인 레기나 웅어와 조우하게 된다. 한 때 서점 인턴 직원이었던 한스는 종전 직전에 독일군의 기관총탄에 아이를 잃은 레기나와 사랑에 빠진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날 수 있을지조차 모를 그런 절망감 속에서도 청춘남녀의 사랑은 소리 없이 그렇게 타오른다.

 

독일 민족문화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성당들마저 연합군의 가공할 폭격으로 모두 무너져 내리고, 당장의 의식주마저 해결할 수 없는 마당에 미래를 그린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훗날 제발트가 높이 평가한 하인리히 뵐의 폐허문학은 그렇게 <천사는 침묵했다>에서 정확하게 그려진다. 제발트가 비판했던 것은, 나치의 잔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독일의 문인들의 기이한 침묵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지 때문에 연합군의 무지막지한 징벌적 성격의 폭격에 대해서도 입을 닫았다. 그것이 과연 지식인으로서 응당한 일이었을까에 대한 질문은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에 잘 나와 있다.

 

한편, 한스와 레기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석탄 절도와 암거래로 일상의 빵을 구하고 있던 그 절망이 순간에도 나치 당원으로 두 개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던 피셔 같은 이는 오히려 종전 뒤의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인플레이션 상황이 오히려 더 반가울 따름이다. 가톨릭 신앙을 대변하는 사제와 수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신도/민중들의 구원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나치 부역자들은 치부에 정신이 없었다. 혼란을 틈타 수집한 중세의 성상을 가지고 미래의 돈벌이에 열중하는 물질주의자 피셔들의 모습은 전후 독일 사회의 이중성을 여과 없이 폭로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피셔와 엘리자베트의 시아버지는 공모해서 빌리의 유언장을 무효화하고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을 도으려고 했던 엘리자베트의 죽음을 방치한다. 이 점이야말로 시대의 양심이자 지식인이었던 하인리히 뵐 선생이 비난하고자 했던 지식인과 기득권층의 위선이었다고 나는 추정해 본다. 그리고 신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지상의 천사상들은 진창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어떤 종류의 삶이든 한스와 레기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정말 분통이 터지는 건, 전쟁 과정의 모든 결정은 히틀러가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는데 패전의 상처는 왜 한스와 레기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가이다. 부역자였던 피셔에게는 오히려 더 큰 기회를 주지 않았던가.

 

전후에 쓰인 <천사는 침묵했다>는 뵐 선생 사후인 1992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패전의 충격과 경악의 깊이에 시달리던 독일 사람들에게 또다른 전쟁의 트라우마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판단에서 출판이 늦어졌던 모양이다. 그동안 절판되었다가 새롭게 번역되어 나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독일의 대문호의 작품들이 국내에는 그다지 많이 소개되지 않을 것 같아 아쉽다. <천사는 침묵했다>를 계기로 좀 더 많은 뵐 선생의 책들이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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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20-01-10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이 시대 작품들 많이 읽고 있는데... 요거 담아야겠네요.^^

레삭매냐 2020-01-10 14:56   좋아요 0 | URL
어떤 작품들을 만나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
 
번역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19
레일라 아부렐라 지음, 이윤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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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문학을 사랑한다. 특히 제 3세계 작가들의 작품을 사랑한다. 그 책들은 나로 하여금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가볼 수 없는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애버딘과 하르툼이다. 수단 출신 작가 레일라 아부렐라의 <번역사>를 읽으면서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을 출발해서 사하라 사막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나라 수단의 하르툼까지 주파하는 문학적 여정에 나섰다.

 

작년 11월에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해를 넘겨서 읽고야 말았다. 경자년 새해에 내가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주인공 사마르는 영국에서 태어난 아랍인이다. 영어와 아랍어를 능통하게 구사한다. 동시에 그녀는 독실한 무슬림이고, 영국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남편 타리그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들 아미르는 하르툼에서 시어머니이자 고모인 마하센이 키우고 있다. 남편보다 더 사랑했던 고모 마하센은 타리그가 죽은 뒤, 사마르에게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폭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밝혀지게 되지만, 어쩌면 자신이 남편의 죽음에 관련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의미였을까.

 

1부에서는 사마르가 번역사로 일하는 영국 스코틀랜드 애버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는 대학교수이자 중동문제 전문가인 레이 아일의 아랍어 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천식환자인 레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하센은 사마르가 계속해서 영국에서 일하면서 하르툼에 사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대주길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부인 사마르의 개가도 격렬하게 반대한다. 사마르가 자신의 며느리가 아닌 그냥 평범한 조카였다면 과연 그녀는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인간이 우주여행을 꿈꾸고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종속적인 부족주의 전통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레이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다른 서구인들과 달리 해박한 지식과 분석을 바탕으로 뛰어난 통찰과 이해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마르와 레이와의 결합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그렇다 바로 종교다. 독실한 무슬림 신자인 사마르는 불신자인 레이와 결혼할 수가 없다. 1부가 끝나가는 장면에서 레이에게 청혼과 개종을 요구하는 사마르의 직진은 정말 놀라운 변신이 아닐 수 없다. 내내 수동적인 삶을 살던 사마르가 레이와의 관계를 통해 자주적 인격을 지닌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야말로 레일라 아부렐라가 이 소설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본질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샤하다(이슬람의 신앙 고백)를 거부한 레이에게 저주를 퍼부은 사마르는 주저 하지 않고 가족이 있는 하르툼으로 떠나 향수를 달랜다. 아름다운 블루 나일이 흐르는 하르툼에는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다. 서구 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체험한 사마르가 수시로 벌어지는 단전과 단수(바로 옆에 나일 강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너무 역설적이었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버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창공에 빛나는 달과 별들을 보고 행복해 하는 장면은 너무나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너무나 당연시되던 것들이 부재하게 되었을 때, 오히려 평안과 안식을 찾게 된 사마르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걸까 나는 고민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하르툼에 사는 젊은 사람들은 나라에 희망이 없다며 모두 외국으로 나가길 희망한다. 사마르의 동생 왈리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절망이 그들로 하여금 디아스포라를 꿈꾸게 만드는 걸까. 왈리드는 멀쩡한 영국의 일자리를 놔두고, 하르툼으로 돌아와 고작 집안에서 하녀가 일을 하며 돈도 안 되는 문맹 퇴치에 나서는 누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외국살이의 신산함과 은연중에 벌어지는 차별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의 로망이라고 해야 할까.

 

한편 사마르는 레이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서부터 그가 자신과 결혼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무슬림이 될 거라는 믿음. 그녀의 바람대로 아름다운 블루 나일이 한 폭의 그림 같이 흐르는 하르툼에서 두 사람의 무슬림은 결국 해후하게 된다. 상처들은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둘의 모습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소설에는 여러 킬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 본다. 무슬림들이 결혼할 때는 두 명의 증인과 하나의 선물이 필요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그것이 달러와 황금으로 대체되었지만, 선지자 시절 아무 것도 없는 이들은 코란 두 절의 시구를 암송하면 선물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물질주의가 범람한 시절에 대한 아부렐라의 저격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선물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게 그렇게 이해됐다.

 

작년에 만났던 아시아 제바르의 소설과는 또 다른 결이 느껴졌다. 간간히 만나게 되는 제3세계 소설이라 더 반가웠다. 원래 아름다운 블루 나일과 두 사람의 무슬림으로 했던 제목을 막판에 바꿨다.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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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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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 옹의 두 번째 유고집은 그리하야 2019 기해년에 내가 마지막으로 다 읽은 책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어제 책읽기를 시작하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2020 경자년에 다 읽겠구나 싶었는데 아니 이게 왠걸. 너무 재밌었다. 역시나 보네거트 옹이 구사하는 블랙유머는 나의 개인적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 그걸 이미 지난 십년도 전에 알았지만 그동안 멀리하고 있다가 보네거트 옹이야말로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작가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아마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작품들이 이러저러한 사정을 거쳐 다시 출간되고 있고, 유고집들도 꾸준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으로부터 딱 십년 전에 발표된 <카메라를 보세요>에는 보네거트 옹 특유의 촌철살인 블랙유머가 가득 담긴 14개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는 지금은 맛이 갔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놀라운 상상력이 돋보인 개미 나라와 에드옹 웰즈의 스토리를 연상시키는 러시아 개미 연구가들의 중생대 개미 화석 발굴에 대한 이야기가 빛을 발한다. 제목이 뭐였더라 <개미 화석>이구나. 그러니까 모든 문명에 앞서 개미들이 영롱한 문명의 개척자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만적인 집게턱을 가진 개미들이 등장해서(스탈린이 지도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사회 구소련에서는 그들을 자본가라고 명명했다) 원주민 개미들을 몰살시켜 버렸다나 뭐라나. 더 놀라운 건 그들이 재교육 수용소를 세웠다는 것이다. 개미 연구 학자 형제는 입방정을 떨었다가 그만 삭풍이 몰아치는 싸이베리아로 추방당한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에드 루비 키 클럽>에서 보네거트 옹은 예언자로 둔갑한다. 불의가 넘쳐흐르고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알 카포네 밑에서 일하던 갱스터 에드 루비가 지배하는 일리움의 현재는 천조국의 그것과 너무 유사해서 놀랄 지경이었다. 클레어와 하브 엘리엇 부부는 20달러를 들고 평소처럼 자신들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에드 루비 스테이크하우스를 찾았다가 봉변을 당한다. 아니 심지어 진짜 살인범 에드 루비가 쩌 놓은 그물에 걸려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탈주자가 되기에 이른다. 경찰의 추격을 피하는 도중에, 하브 엘리엇은 에드 루비가 촘촘하게 엮어 놓은 일리움에서 모든 이들이 자신의 반대편에서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오히려 피해자를 도우려 했던 자신을 공격하는 장면에 아연할 따름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개입이 없었다면 아마 하브 엘리엇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났으리라.

 

멋진 로맨스 소설을 발표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실제 결혼생활은 파국으로 치닫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저택에 들른 세일즈맨이 목격한 진실에 대한 비꼬기는 또 어떤가. 물신주의가 팽배한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서 위대한 작가의 실체를 몰랐기에 예의 세일즈맨은 성공적으로 덧창을 파는데 성공했다. 다만 문제는 부인 작가가 자신이 등장하는 새로운 소설을 발표했다는 것. 이 서사는 글쓰기 소재에 굶주린 작가들이 공격성을 보네거트 옹 특유의 블랙유머로 멋지게 요리해낸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는 백 모씨의 조언과 조력으로 전국에 방명을 떨치게 된 포방터 돈까스의 버금가는 그런 맛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아무리 맛집이라고 하더라도 몇 시간씩 줄서서 먹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점을 밝힌다. 이미 오래전 군산의 어느 유명한 짬뽕집에서 경험해 보았기에, 사양하련다.

 

뉴욕의 성악가 래리는 돈 많고 자신에게 음악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 제자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너무나 규칙적인 삶을 사는 래리에게 결혼이란 아름다운 구속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연인인지 제자인지 헷갈리는 그들이 말썽을 부리면 래리는 곧 그들을 졸업시켰다. 그래도 구름떼처럼 달려드는 새로운 제자들 때문에 래리에게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일과 성악가로서 직업 그리고 교육인지 연애인지 헷갈리는 비즈니스에서 래리는 그동안 성공가도를 질주해왔다. 버펄로 출신의 호적수 엘런을 만나기 전까지. 노련한 바람둥이 성악가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풋내기 엘런의 복수가 어찌나 통쾌하던지. 복수는 이제부터라는 선언이 더 황홀했다.

 

, 소설집의 초반에 보네거트 옹은 어느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좋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거침없이 직진하는 서사와 깜짝 결말을 준비하라는 조언을 했던가. 모든 글쟁이들이 보네거트 옹의 조언대로만 한다면 침체일로의 문학씬이 다시 부흥하게 되지 않을까. 그냥 나의 엉뚱한 상상이었다.

 

그렇게 놀라운 속도로 책을 다 읽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마 나는 어제 이 책을 집어드는 순간부터, 이제 곧 과거가 될 2019 기해년의 마지막 책으로 보네거트 옹의 <카메라를 보세요>를 마음 속으로 점지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나의 계획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리고 이렇게 휘리릭 리뷰까지 모두 쓰는데 성공했다. 올 한 해도 () 사고, 읽고, 쓰고 기록하느라 수고했다. 아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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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31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조금 있으면 2020년 경자년이 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소원을 이루는 한 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 2020-01-01 08:47   좋아요 1 | URL
넵, 새해에도 우리 힘 닿는 데까지
책을 더 많이 읽어 보아요 :>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요요~~~

초딩 2019-12-31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님~

레삭매냐 2020-01-01 08:47   좋아요 0 | URL
언제나 그렇듯 건강이 쵝오지요.

초딩님도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2020-01-01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01-02 10: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우리 줄기차게 달려 보아요.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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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일찍이 음악은 영원하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괴테가 하는 말이니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지 않을까. 나도 마찬가지다. 지난 천년에 읽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콘트라베이스>는 꽤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고전은 다시 읽는 법이지.

 

<콘트라베이스>는 국립오케스트라단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맡은 화자의 독백이다. 그는 공무원이다. 전쟁이 나도 연주단원들은 제 시간에 모여 연주를 해야 하는 그런 공무원이란다. 어지간해서는 밥그릇이 잘려 나갈 일도 없다고 한다. 다만 그가 사랑하는 성악가 세라 씨에게 52마르크짜리 생선요리를 사줄 정도의 여유는 없는 것 같다. 아니 무리를 해서라도 그녀의 환심을 얻기 위해 그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게 아닐까. 어쨌든 요점은 공무원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벌이는 형편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 짝사랑하는 세라 씨와 파트너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악기이자 밥벌이 수단인 콘트라베이스는 필요 없는 흉측한 물건일 뿐이다. 세라 씨를 위해 피아노 연주자로 변신해야 하는 걸까. 대학에서 작곡을 배우고, 수년 동안 피나는 연습을 한 자신의 운명을 사랑 때문에 바꾸어야 하는 걸까.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결기대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수상까지 참석하는 중요한 연주회가 있는 날, 세라의 이름을 외치겠다는 그의 발상이 짠하지만 하다.

 

<비둘기>에서처럼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불안 심리와 젊고 매력적인 성악가 여성에 대한 짝사랑 그리고 콘트라베이스에 얽힌 음악사로 삼위일체의 이야기를 이룬다. 사실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쥐스킨트 작가는 얼마 전에 읽은 <비둘기>에서처럼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스토리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는 구도의 길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자신이 음악가가 아니라고 자조하는 화자는 독일 문학계의 거성 괴테가 자신 전에는 문학이 없어서 자신이 돋보일 수 있었다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8살 때부터 작곡을 했다는 불세출의 천재 신동 모차르트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당시에 베토벤이나 쇼팽, 슈베르트 같은 작곡가가 있었던가. 괴테와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냐며 모차르트에 대한 신랄한 공세를 이어간다. 게다가 그의 성공의 비결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혹독한 조련에 있지 않았냐고 따지지만, 나는 화자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모두가 훈련과 피나는 연습으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출 수는 있겠지만 남들과 다른 고유한 창작의 영역에서는 실력으로 타고난 재능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자신처럼 정규 과정의 음악훈련을 받은 전문 연주자들에 대한 사회의 대우 또한 한창 인기를 날리는 중년 성악가들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 또한 고민해볼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젊은 화자가 훗날 기득권층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사회에 갓 진출한 신출내기들과 엇비슷한 대접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그는 과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속된 말로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 중인 세대 간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숨 가쁘게 달려온 기해년도 오늘까지 해서 이틀 남았다. 내년 경자년에는 또 어떤 매혹적인 책들과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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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12-30 14:15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 유튜브에 올라 오는 커버
곡들을 듣는 재미에 사는 것 같습니
다.

예전 같으면 플랫폼의 부재로 훌륭
한 연주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어찌 보면 유튜브가 하나의 기회의
장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로 2019-12-30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을 ‘.... 음악은 영리하다고‘고 읽었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암튼 이렇게 매일 리뷰를 올리시는 님 존경스럽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좋은 리뷰 많이 올려주세요! ^^

레삭매냐 2019-12-30 14:15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해요.

맨날은 아니구... 그냥 읽고 쓰고
의 무한반복인 것이죠.

일개 개인의 독서 기록을 봐 주
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