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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22년 11월
평점 :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두 번째 책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었다. 위키피디아로 검색해 보니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파울은 찾을 수가 없었고, 대신 1차 세계대전에서 한쪽 팔을 잃은 피아니스트이자 그의 형 파울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가 있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1967년, 가슴을 절개하고 폐의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화자 베른하르트(아마도 저자로 추정된다)는 빈 서쪽에 위치한 바움가르트너회에 종합병원의 헤르만 병동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논리철학논고>로 그 유명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이자 자신의 친구인 파울이 정신병동인 루트비히 병동에 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기제조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유대계 비트겐슈타인 가문 출신의 파울은 정신병으로 병원을 드나 들어야 했다. 정신분석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 의사들도 파울이 앓는 정확한 병명을 진단하지는 못했노라고 저자는 의사들의 무능함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삼촌이 자신의 사유를 출판해서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다면, 조카는 광기를 ‘실천’에 옮기면서 미치광이가 되었다고 했던가. 베른하르트는 자신의 친구 파울이 천재 삼촌보다 더 천재적이었다고 기술한다.
그 많은 재산을 자선사업으로 탕진한 파울은 오페라광이자 경주용 자동차광이었다. 날이 갈수록 건강이 안좋아지고, 가난한 상황에서도 트리스탄 공연에 가서 6시간 동안이나 오페라 관람을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오페라에 대한 사랑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카라얀의 천재성을 인정했지만, 친구 파울은 나치 당원이었던 베를린 필의 독재자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 나 역시 라벨의 <볼레로>로 클래식 음악에 입문시켜 준 그런 지휘자였지만 파울의 생각에 동조한다. 파울은 누구보다 칼 슈리히트를 높이 평가했는데, 클래식 음악 좀 들었노라고 자부하지만 또 새로운 지휘자여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했다. 오토 클렘페러나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까지는 따라 갈 수 있었지만 슈리히트는 정말 넘사벽이었다.
자전적 소설 <비트게슈타인의 조카>의 후반부에서 베른하르트가 고백하고 있듯이, 이 소설은 파울이 죽기 전까지 장장 12년에 걸친 저자의 회고록이다. 소설에는 자신이 혐오하는 조국 오스트리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한가득이다. 장정일 작가가 비판한 대로, 문학상을 받는다는 의미에 대한 냉소는 정말 최고였다. 신문 한 부를 사기 위해 오스트리아 국토를 절반이나 종횡으로 누비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프로이트와 비트겐슈타인 같인 선구자들이 조국에서 예외 없이 푸대접 받는 현실에 대해서도 저자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호텔 자허를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 상류 사회에 대한 에피소드도 한 가득이다. 병자에서 정상적인 인간으로 복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군대 시절에 수도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다가 자대에 복귀해서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짓을 벌였던 고참들이 바로 연상됐다.
저자에게 루트비히 병동에서 남작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파울은 삼촌을 능가할 만한 그런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인재였다. 비록 만성적 신경과민에 시달리긴 했지만 철학적 사색은 물론이고, 능숙한 관찰자로서 음악 특히 오페라에 대해서라면 전문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페라 가수 애인을 좇아 전 세계를 누빈 에피소드는 천재적 재능과 광기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선보인 기인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지난번에 읽은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를 읽으면서 글렌 굴드를 재발견하게 되었다면, 이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에서는 또다른 연주자와 지휘자들을 배우게 되었다. 특히 칼 슈리히트는 한 번 들어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좀처럼 구하기가 쉽지 않구나. 미켈란젤리는 운좋게 만날 수가 있었고, 오래 전부터 듣고 싶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모노로 레코딩된 전중녹음도 들을 수가 있었다. 호텔 자허의 그 유명한 자허토르테까지는 아니지만, 치즈케익으로 아쉬움을 달래보련다. 언제고 빈에 다시 한 번 가게 되면 꼭 먹어 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