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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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전에 도착한 책을 바로 읽기 시작했다. 15쪽 정도 읽었나. 잠시 책을 내려놓았었다. 읽을 책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욘 포세의 신간 <아침 그리고 저녁>을 버스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보는 노르웨이 작가의 책이라고 하는데, 신선했다. 어부 올라이와 마르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요한네스의 탄생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그의 죽음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소설의 내용이다.

 

출생과 죽음,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아니었다. 모든 것에는 알파와 오메가가 존재하는 법이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욘 포세는 그런 중간 단계를 모두 생략하고 수영을 하지 못하는 평생 어부 요한네스의 출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그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우리 인간에게 죽음 곧 소멸은 숙명이다. 어쩌면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순간도 죽음을 향한 하나의 단계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알면서도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주제가 바로 죽음이 아니던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난 요한네스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이미 자신의 아이들을 일곱이나 낳아준 아내 에르나는 세상을 떠났고, 평생지기 페테르 역시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의 주인공 요한네스 할아버지가 언제 돌아 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참 손자가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고 하셨던가.

 

복지천국 노르웨이에서 사시니 연금생활자로 살이가 버겁지도 않다고 한다. 다만 엄청난 세금이 부과된 담배 가격에 대한 불평 정도. 그는 독특했지만 평생 타인에게 자애롭고 선했으며, 남에게 빚지고 못사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막내딸 싱네는 기억한다. 그렇다, 죽음이 소설의 하나의 축이라면 또 하나의 축은 바로 기억이다.

 

죽은 페테르와 조우한 요한네스는 자신이 사모하는 안나 페테르손에게 연애편지를 쓴 기억 그리고 어떻게 해서 아내 에르나를 만나게 되었는지 회상한다. 친구 페테르와 서로 이발을 해주면서 평생 돈을 아낀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기억으로 환산되고 타인의 기억 속에 적립된다. 내가 죽은 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 책에 환장한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그 많은 책들은 어떻게 처분하지. 죽은 뒤에 그게 다 무슨 의미겠냐 싶지만 말이다.

 

욘 포세는 고상한 죽음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뱃사람이자 어부로 평생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요한네스의 마지막 여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들려줄 따름이다. 잠을 자다가 천수를 누리고 조용하게 죽은 친구를 저 세상으로 데려 가기 위해 페테르가 잠시 육신을 빌어 요한네스의 곁으로 왔다지.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지 싶다. 그런 축복이자 특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단숨에 읽은 <아침 그리고 저녁>을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의 감정은 참 슬프다였다. 리뷰를 마무리 지으면서도 눈가에 촉촉하게 소금기가 맺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세상을 자애롭고 선하게 살다간 사람에 대한 애도의 감정일까? 아니면 언젠가 돌아올 우리 모두의 차례가 두려워서일까.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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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06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도 너무 예쁜데요.... 슬픈 예쁨 같은 게....

레삭매냐 2019-08-06 20:59   좋아요 0 | URL
뭔 내용인지 모르고 읽었다가
말미에 지인한 감동을 먹었답니다...
 
나무의 모험 -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
맥스 애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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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에 이 책이 호프 자런의 <랩 걸>처럼 나무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쓴 책인 줄 알았다. <나무의 모험>의 저자 맥스 애덤스는 과학자가 아니라 고고학자였고, 자칭 숲사람이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숲에 들어가 살았다지.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2년 있다가 아내와는 헤어지게 되었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인류에게 꼭 필요한 포도당의 분자식이 C6H12O6라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나무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유용한 지 그리고 나무를 대체할 그 어떤 유기체도 없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산소와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보고와도 존재가 아니던가. 나도 당장 가을에 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들을 그냥 줍기만 할 게 아니라, 영국의 미래를 예견하고 도토리를 심으러 다녔다는 콜링우드 제독처럼 쇠막대기로 땅을 파고 도토리를 심어야 하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아주 잠시 들었었다. 물론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나무의 모험>이라는 제목도 한 번 잘 뽑았다는 생각이다. 원제인 <나무의 지혜>라고 그대로 번역했다면 무언가 명상을 위한 에세이처럼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숲사람을 자처하는 맥스 애덤스로부터 정말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 목선반이라고도 불린다는 갈이틀로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도구의 손잡이를 만들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프로에(froe)라는 도두는 하도 생소해서 결국 유튜브로 검색해서 어떻게 생긴 도구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대한 도영상도 봤다. 생각보다 간단한 도구였는데, 아직까지도 숲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전통 도구라니 신기했다.

 

저자는 다른 자연주의자와는 다른 각도에서 우리에게 숲의 유용성을 알리는데 노력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보다 적극적으로 숲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우리 호모 이코노미쿠스들은 숲이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무조건적인 남벌이 아니라 숲을 지속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산림 조성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예를 든 대로 인도의 비하르 주에서는 주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고, 홍수나 범람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하루 만에 무려 천만 그루나 되는 나무를 심었다고 하지 않은가.

 

화석연료를 이용한 에너지 사용에 있어도 저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나무 연료를 사용한 에너지 활용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이다. 게다가 적절한 나무때기를 위한 팁도 제공한다. 작년 캠핑에 가서 불멍을 하면서 느낀 감정을, 저자는 정말 인문학자답게 탁월한 문장력으로 풀어내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맞아, 나도 그랬었지. 적당히 건조된 나무를 태우는 청각적 효과, 어둠 속에서 일렁거리며 타오르는 불꽃 너울은 정말 유사 이래 우리 인류의 어둠과 추위 그리고 동물들로부터 보호해준 하나의 로망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하기도 했다.

 

끝없는 책의 소유욕에 시달리는 책쟁이(오늘도 새달의 첫날을 맞아 제스민 워드의 신간을 주문했다)에게 분명 나무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책 구입에 대한 죄책감을 더는 데도 크게 한몫했다. 종이와 성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숲이 필요하다. 예전에 자연 보존에 대해 무지했을 때는 마구잡이 벌채를 했겠지만, 어디 요즘에도 그런가. 숲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책을 사라고 하니, 이건 축복이다 축복.

 

이런 축복과 더불어 맥스 애덤스는 우리에게 어쨌든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무의 모험이 들려준 긴 여정을 마무리짓는다. 토종 보존이나 생태계 순환 혹은 포리스트 가든 같이 복잡한 이슈는 잘 모르겠다. 저자의 가르침대로 인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무와 공존하는 삶을 배우게 될 것이고, 우리의 친절한 나무 친구들은 기다려 줄 거라는 점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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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8-02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숲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책을 사라는 말은 듣기 좋은데요.^^
오늘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레삭매냐님,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8-02 17:56   좋아요 1 | URL
너무 더워서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날 판이네요...

책 때문에 숲이 죽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역발상이 참신했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시원한 주말이 되시길 바라
겠습니다.
 
너는 알고 있다
엘리자베스 클레포스 지음, 정지현 옮김 / 나무옆의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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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작가 엘리자베스 클레포스의 <너는 알고 있다>를 읽었다. 표지에는 어린 소녀의 우측 사진이 등장한다. 아마도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찰리/샬럿 캘러웨이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목에 나오는 는 누구를 의미하는 걸까.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책 읽기에 돌입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찰리 캘러웨이의 엄마 그레이스는 10년 전에 자취를 감춘다. 뭐가 부족해서 억만장자 남편 앨리스테어와 사랑하는 두 딸 찰리와 세라피나를 두고 사라져 버린 걸까. 타인의 불행과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엄마 그레이스 부재 가운데 찰리는 아버지 앨리스테어가 졸업한 놀우드 오거스터스 사립학교에 재학 중이다.

 

소설의 한 축에 불가사의한 그레이스의 실종이 있다면, 놀우드에서 찰리가 비밀클럽 에이스에 가입하기 위해 수행하게 되는 미션은 소설의 한 축을 담당한다. 예전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에서 아마 부유층들이 다니는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다룬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미국내 사립학교의 모습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명문대 진학이라는 학벌 시스템과 자신들만의 이너써클을 구축해서 권력을 향유하는 모습을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구축해 온 것이다.

 

찰리는 외삼촌 행크가 자신을 찾아와 엄마 그레이스의 사진을 찾았다는 말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레이스가 남편 앨리스테어를 만나기 훨씬 전에 놀우드에서 잉태된 비극은 캘러웨이 가족이 겪게 되는 파국의 진원지였다. 소설 <너는 알고 있다>를 읽으면서 인간의 운명은 결국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버지 시대 때부터 존재했던 비밀클럽 에이스의 그릇된 유전자는 자식들의 세대에까지 이어지고, 찰리는 어머니의 실종의 단서를 캐가던 과정에서 모두가 숨겨왔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사건일 수도 있는 내러티브는 찰리와 앨리스테어 그리고 그레이스가 교차로 등장해서 자신들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스토리라인을 좀 더 흥미롭게 진행된다. 초보 작가가 이런 장르 소설을 이 정도 수준으로 촘촘하게 구성했다는 점이 놀랍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핍진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앨리스테어와 그레이스가 갑자기 사랑에 빠져, 결혼식까지 치르고 나서 앨리스테어가 막 결혼을 앞둔 약혼녀 마고에게 이별 선언을 하는 장면이었다.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빨리 결혼이 진행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한편, 놀우드에서 에이스의 미션을 수행하던 찰리는 절친 드루가 재정상의 이유로 경쟁에서 고의로 탈락하고 기존의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지면서 갈등하는 장면은 하나의 클리셰이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균형 잡힌 작법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스 가입을 위해 도를 넘은 미션에 저항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들만의 이너써클에 들어가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야 하는 고민을 하는 장면도 멋진 설정이었다.

 

초반의 백쪽 정도를 읽고 나서 잠시 멈춰 서 있다가 오늘 아침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반나절 만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그 정도로 뛰어난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너무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했다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 정도로 마무리지어야겠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이방인일 수도 있다는 작가의 문구는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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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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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이제야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 유명한 가가 교이치로 형사 시리즈에 입문하게 되었다. 히가시노 작가는 정말 다작을 하면서도 그렇게 일정한 수준의 작품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지 구궁금하다. 보통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들쭉날쭉한 게 사실이 아닌가 말이다.

 

엔딩에 가면 가가 교이치로 형사 시리즈 가운데 이 작품이 가장 로맨틱하다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다. 나도 조금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예상한 비극으로 치닫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건은 다카야나기 발레단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미모의(왜 항상 미모라는 표현이 필요한지 나는 궁금하다) 발레리나 사이토 하루코가 사무실에 침입한 괴한을 화병으로 쳐서 죽인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에 오타와 우리의 가가 형사가 투입되고, 발레에 운명을 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적나라하게 공개된다. 모든 전문 분야에서 다 그렇듯이, 발레리나 역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혹독한 연습과 체중 조절 그리고 심지어 사랑마저도 자제해야 한다고 한다. 다른 것에 관심을 둘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다.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그들의 삶은 현실과 사뭇 달랐다. 세이부 라이온즈의 아키야마와 기요하라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80년대 말 혹은 90년 초반의 상황이지만, 발레리나들의 삶은 팍팍하지 그지없다. 발레단을 대표하는 프리마발레리나라도 된다면 모르겠지만 수많은 조연을 자처하는 발레리나들의 삶은 신산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꿈을 버리고 않고 최선을 다해 매진한다. 히가시노 작가는 바로 그 점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폐쇄적인 그네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남자의 신원이 화가 가자마 도시유키라는 것이 밝혀지고 얼만 되지 않아 이번에는 발레 마스터 가지타가 니코틴 중독으로 살해당한다. 설상가상으로 발레 단원들의 뉴욕 행적을 밝히려던 발레 단원 야나기 역시 니코틴 중독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널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한다. 도대체 누가 범인이란 말인가.

 

작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프리마발레리나 다카야나기 아키코와 그녀 보다는 못하지만 역시나 뛰어난 실력을 가진 미오를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대비시킨다. 무언가 실마리들이 곳곳에 있지만, 우매한 독자는 치밀하게 작가가 고안해내고 창안해낸 덫 속으로 한 발짝씩 들어갈 뿐이다. 대개의 장르 소설 전개에서 독자는 속수무책으로 작가의 설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었던가. 작가보다 뛰어났다면 바로 누가 범인인가를 알아냈겠지만, 나 같은 수동적 독자에게는 기대 난망한 태스크이리라. 그저 작가가 준비한 대로, 숟가락으로 떠주면 냉큼 받아먹는 거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리인 가가 형사는 특출한 육감이나 뛰어난 추리 능력 대신 일상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을 잘 유추해서 결론으로 독자들을 몰고 간다. 테니스 공기주입기 같은 아이디어나 뉴욕 유학을 떠난 발레리나가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점도 그리고 누구나 그렇지만 십대의 체형과 성인의 체형이 달라진다는 점도 평범하지만 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지 않았던가.

결국 모든 것의 배경에는 치정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가가 형사의 눈을 흐리게 만든 것도 바로 미오에 대한 가가 교이치로의 연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댄서의 순정이라고 리뷰 제목을 달고도 싶었지만 너무 신파스러운 것 같아, 소설에 나온 한 구절을 패러프레이즈해서 써봤다. 이번에 현대문학에서 가가 형사 시리즈 7권이 출간되었는데, <잠자는 숲>은 그 중에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조금 더 선선해지면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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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7-29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가 시리즈 중 <붉은 손가락>만 읽어봤는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이번 개정판 세트 정말(!)탐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9-07-29 20:16   좋아요 1 | URL
셋트 구성이 참말로,,, 지름신이 강림
하게 만드는 느낌이랄까요...

다른 책들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습니다.
여름엔 역시 장르물 -

카알벨루치 2019-07-29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게이고도 읽으시는군요 역쉬!

레삭매냐 2019-07-29 22:14   좋아요 1 | URL
그것은... 가끔 먹는 불량식품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요 ㅋㅋ

희선 2019-07-30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데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서는 가가가 발레리나한테 마음이 기울기도 했어요 그래도 형사니 사건을 해결해야겠지요 첫번째는 가가가 대학생일 때 이야기예요 일곱권에서는 두 권 빼고는 다 봤는데, 일곱권 다음에 본 세 가지가 더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앞에 건 일본 추리소설을 알았을 때 본 거기도 하군요 드라마를 봐서 그런지 가가 하면 아베 히로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희선

레삭매냐 2019-07-30 10:21   좋아요 0 | URL
현대문학 7권 외에도 가가 형사
시리즈가 더 있는 모양이네요...

진화하는 캐릭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드라마로도 있는 모양이네요 :>
 
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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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이렇게 류시화 작가의 책을 꾸준하게 읽다간 그의 팬이 되어 버리겠는걸.

 

그동안 읽은 아마 우화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번에는 인도 여행기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에 바라나시 만원 여행을 진행한 유투버의 방송을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영화에도 나왔다는 뭄바이의 세계 최대의 슬럼가 구경도 했었지. 나에게 인도라는 여행지는 신비에 쌓인 곳인 동시에, 가난과 더러움 그리고 박시시를 외치는 걸인들의 천국으로만 인식되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류시화 작가의 <지구별 여행자>를 읽으면서 그런 편견들이 수정되기 시작했다.

 

우린 여행에서 무얼 찾고 싶어 하나. 가장 기본적인 건 아마도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일 것이다. 매일매일이 나의 일상과 같다면 뭘 하러 비용과 시간을 들여 여행에 나서겠는가. 그리고 여행에서는 될 수 있다면 편안함을 추구하게 되겠지. 그런 이들에게 인도는 전혀 해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작가는 아주 자주 인도를 찾는 모양이다. 그 여행길에서 만난 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사두들과의 대화는 좋은 글감이 될 것이다.

 

일찍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 여러 기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작가는 노트에 볼펜으로 기록을 했단다. 그런데 어느 사두가 그렇게 글로 적은 글 말고, 가슴에 새긴 글을 쓰라는 말에 저자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나의 가슴에 새겨지지 않은 글들이 타인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전혀 아닐 것이다. 문학에서 기발한 착상을 보고는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다만, 누군가는 나보다 앞서 그런 생각을 글로 옮겼을 것이도 또 누구는 그러지 못함의 차이가 아닐까. 최근 발표된 박상영 소설가의 소설 줄거리를 보고 바로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사두를 빙자해서 어떻게든 외국인 여행자의 돈을 뜯으려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또 정말 선의로 나그네를 도우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보면, 그 모두에 신의 섭리가 깃들여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다. 요즘에는 인터넷과 구글맵의 도움으로 그럴 일이 없겠지만 지난 세기에 여행을 떠났을 적만 하더라도 그런 건 기대할 수가 없었다. 유난히 쑥스러워 하는 나그네는 타인에게 길을 묻는 대신(언어 탓도 있었다) 홀로 길을 찾겠다고 하다가 무진 고생을 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신이 모두 예비하신 거란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지름길로 인도해 준다는 거지. 무려 35백만이나 되는 힌두 신들이 보우하사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정되어 있는 만남을 가지고, 길을 헤매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사두들을 만나 신박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어때 듣기만 해도 당장 비행기표를 사서 인도로 달려 가고 싶지 않은가.

 

류시화 작가의 글에는 무위의 무언가가 잔뜩 내포되어 있는 느낌이다. 인도에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라. 그저 바람 가는 대로, 그리고 발걸음이 인도하는 대로 인도를 여행하라. 또한 다른 사람을 찾고 인생의 조언을 구하는 대신 짧은 인생에 반추해 보고 충실하라. 그게 바로 <지구별 여행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그러다 보면 숱한 에피소드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어느 여배우와 동행한 인도발 네팔행의 인도자 바부 이야기는 가히 최고였다. 익스트림 여행을 원하는 나그네라면 인도에서 차를 몰아보라고 작가는 말한다. 히말라야로 향하는 도중에 심한 감기에 걸려 코냑 메디신 처방을 받은 바부는 그만 자신의 차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죽음 타령을 하던 여배우는 이제 인도에 완전 적응이 되어 이미 꿈나라에 든지 오래다. 그렇다면 운전은 누가 한담? 긴머리 핑크 바지 저자가 과감하게 운전대를 잡는다. 읽는 이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독서의 여정이었지만 실제 저런 일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눈앞이 캄캄할 것이다. 나의 나폴리 노숙과는 차원이 다른.

 

어쨌든 <지구별 여행자>를 읽고 나서 인도 여행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건 사실이다. 나라면 유투브에서 본 것처럼 빈대가 들끓고, 어떻게 해서든 외국인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그들의 상혼에 어떻게 맞설지 궁금하기도 했다. 저자처럼 너른 마음으로 인도을 감싸안고, 매순간을 즐기며 생을 춤출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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