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댓 맨 이즈
데이비드 솔로이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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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us love what is eternal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지난달엔가 이달에 데이빗 설로이 작가가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예전에 사두었다가 지금껏 펴보지 않았던 설로이 작가의 <올 댓 맨 이즈><스프링>을 펴들었다. 곧 이어 <올 댓 맨 이즈>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과연 설로이 작가가 방한하기 전에 책이 나올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지난 주말이 시작되기 전에 책을 주문해서 받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분량이 제법 되긴 했지만 고대해 마지않던 책이라 그런지 기대감으로 금방 읽었다.

 

우선 <올 댓 맨 이즈>는 장편인가 아니면 단편소설집인가. 형식으로 보면 아무래도 후자에 가깝다. 4월부터 12월까지 모두 9편의 남자 주인공들(제목이 말해준다)이 차례로 등장해서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어쩔 땐, 주인공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면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을 매개로 설로이 작가는 21세기 유럽의 풍경을 담아낸다. 무언가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지길 바라며 유럽의 각처를 여행하는 17세 소년 사이먼과 퍼디낸드가 첫 번째 세그먼트를 장식한다. 우연히 만난 지인의 거처를 찾아 기식하는 그네들의 모습에서 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식민주의자들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내가 오래 전에 찾은 베를린의 모습은 우중충하고 추운 5월의 어느 날로 기억될 따름인데. 내 사진을 찍어 주려다 자신의 카메라를 떨어뜨린 여학생도 있었지. 생각이 좀 다른 친구 간의 여정이 내게는 좀 아슬아슬하게 다가온다.

 

프랑스 릴에 사는 베르나르의 사이프러스 행은 또 어떤가. 학교를 중퇴하고 외삼촌에 호의에 기대야 함에도, 다짜고짜 휴가를 요청하는 철부지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 걸 보면 나도 꼰대인가 보다. 나도 베르나르처럼 같이 호주 배낭여행에 가기로 했던 후배가 사정으로 가지 못하게 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타의에 의해 나홀로 여행에 나선 베르나르의 처지가 절절하게 이해가 됐다. 그리고 광고와 달리 전혀 쿨하지 않은 호텔에 묵게 된 베르나르의 여행 동료가 되다시피 한 샌드라와 샤미언 모녀 사이에 벌어지는 일대 사건은 라틴 남자가 지닌 남성성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로맨스를 꿈꾸는 이십대 청년의 발칙한 상상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중세 연구를 하는 카렐이라는 청년은 자신이 폴란드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고급 SUV를 배달하는 도중에 접촉사고로 도장비를 물어 주어야 하는 사고를 친다. 그건 곧 합류한 여자친구가 던진 폭탄선언에 비하며 아무 것도 아니다. 임신이라니... 아마 카렐이라는 친구의 미래에는 임신이나 결혼이라는 계획은 들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 한 차례의 불장난으로 그는 생각했던 모양이다. 당장 직면한 문제보다 천 년 전, 중세 어원 연구에 정력을 쏟는 이상주의자는 현실적 해결책을 여자친구에게 제시해 보지만 결과는 답답하기만 하다.

 

어떤 남자는 런던에서 매춘을 하는 고향 출신 여성에게 연정을 품고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고객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자신이 엑스팻(expatriate)으로 거주하는 크로아티아에 갔다가 현지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남자도 등장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네덜란드인 한스피터르는 버젓하게 애인도 만나고 네덜란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그에게는 친구 하나 없다. 자신의 운에 마가 끼었다는 말에 그는 푸닥거리에 능하다는 무당 혹은 점쟁이를 찾아가 들으나마나 싶은 이야기를 듣고 50유로를 뜯긴다. 그러니까 되는 놈은 무얼 해도 되고, 안 되는 놈은 무얼 해도 안 된다는 말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가고, 그들에게 닥친 문제들도 십대의 그것과는 결을 달리한다. 덴마크에 사는 황색언론 종사자인 크리스티안은 장관의 스캔들을 어떻게 폭로해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회사에 긍정적인 돈벌이로 만들 것인지 고민한다.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조건보다 더 나은 조건을 만들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로전에 나서야 한다는 게 크리스티안의 속마음이다. 그런데 자신 역시 비슷한 처지가 아니었던가. 팩트 체크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소송 전에 휘말리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방패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크리스티안은 오늘도 스캔들을 향해 돌진한다.

 

중반을 넘으면서 소설은 <올 댓 맨 이즈>의 주인공들을 비로소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것도 설로이 작가의 설정이었을까. 한 때 세계에서 철의 남자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을 거둔 알렉산드르는 심각한 소송전의 패배로 이제 파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니 이미 그는 파산한 상태다. 현재 자신의 쌍둥이 자녀의 어머니인 동거녀는 결별을 선언하고, 파산한 배우자의 재산의 상당 부분을 요구한다. 사실 알렉산드르는 언제 자살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태다. 마지막 여행일 지도 모르는 지중해 코르푸 섬을 찾아, 자신의 전담 변호사로부터 현재 재정 상황을 보고 받는다. 보통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생활 유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이 보장되는 자산이 있지만, 그에게는 무의미할 따름이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 되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다. 알렉산드르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영국 귀족은 파산한 그가 식사 값을 내길 바랄 따름이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 이제 이야기는 돌고 돌아 마지막 세그먼트의 주인공 토니 파슨을 만날 차례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구성의 소설인가. 토니는 첫 번째 세그먼트에 등장한 사이먼의 할아버지다. 토니 역시 영국을 떠나 이탈리아 아르젠타의 별장을 찾은 엑스팻이다. 손자 사이먼이 쓴 시를 감상하고, 나홀로 여행을 즐긴다. 그가 받았다는 기사 작위도 심장수술과 불의의 교통사고라는 현실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렇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토니는 체험한다. 지난 이십년 동안, 부부라기보다 동반자 같은 존재였던 조애너가 뉴욕에서 야간비행기로 토니를 간호하기 위해 찾아온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들이 별거하게 된 원인 제공자가 토니가 아니라 조애너였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래 맞아 살아 보니 인생은 농담이 아니더라. 과연 이런 성찰을 십대 소년이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나도 그 시절에는 영원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점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또 역설적으로 미래의 엘리트로 옥스퍼드에 입학한 사이먼은 자신의 시에서 영원한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그리고 존재의 질감에 몰입하는 무아지경의 순간에 대해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세대를 초월한 영원에 대한 갈구라고 해석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 속에서 페리투라(덧없음)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에테르나(영원)를 추구할 것인가. 이에 대해 삶에 대한 정답은 없다는 가치중립적인 명제만이 떠오를 따름이다.


유럽의 곳곳을 도는 9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데이빗 설로이의 <올 댓 맨 이즈>는 과연 매력적인 독서 체험의 시간들이었다. 단순해 보이는 십대들의 욕망으로부터 시작해서, 성장통을 겪는 청년의 기묘한 나홀로 여행, 연정으로 폭력을 휘둘러 일자리를 잃게 되는 남자, 여자친구의 폭탄선언에 충격 먹은 중세 연구자, 파산 위기에 내몰린 거부 그리고 이제 죽음을 앞둔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그런 내면의 이야기들이 내뿜는 아우라는 황홀했다. 이번 방한과 <올 댓 맨 이즈>의 출간에 힘입어 그의 다른 작품들도 계속해서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최근작인 <터뷸런스>가 기대된다. , 이제 오늘 작가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가서 무슨 질문을 할까, 행복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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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0-07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께서는 세계문학작품을 정말 폭넓게 읽으십니다. 문학작품을 많이 접하지 못했는데 레삭매냐님 덕분에 대리만족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19-10-07 11: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그저 이러저러한 경로로 알게 된 작가
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줄기차게 읽고
있답니다.
 
갈라파고스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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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아이필드에서 나온 <갈라파고스>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다윈 진화론의 발생지인 갈라파고스 제도를 앞세운 한 때 나의 최애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기발한 상상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완독하지 못했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그리고 수년이 흘러 다시 새롭게 에프출판사에서 출간된 <갈라파고스>와 만나게 되었다. 잠시 <고양이 요람>과 헷갈렸지만 바로 궤도를 바로 잡을 수가 있었다. , 이 책이 내가 예전에 읽다가 실패한 <갈라파고스>구나!

 

화끈하게 스포일러로 소설을 시작해 보자. , 그렇다면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등장해서 백만 년 뒤의 이야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내러티브의 화자는 누구일까? 꾸준하게 읽을 독자라면 알게 되겠지만 그는 바로 커트 보네거트의 문학적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저명한 SF작가 킬고어 트라우트의 아들 레온 트라우트다. 그가 어떻게 해서 갈라파고스에서 새로운 현생 인류의 조상이 되는 무리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갈라파고스>를 읽어 보시라. 후회하시지 않을 것이다.

 

시간적 배경은 1986년 에콰도르의 과야킬 항구. 공황인지 경제위기 때문인지 에콰도르 경제는 파산이 났고,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 굶주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엘도라도 호텔에 머물고 있던 6명의 여행객들은 갈라파고스 제도행 호화유람선 바이아데다윈호에 탑승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네거트는 친절하게도 모든 이들이 갈라파고스에는 가지 못할 거라는 예언과 함께 곧 죽을 이들의 이름 앞에 별표를 붙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인류의 진화가 그렇듯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잇달아 벌어지면서 때로는 물고기를 잡아먹는데 특화된 뇌조차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줄어든 현생 인류의 모습과 비교해 가며 재미진 썰을 줄창 풀어낸다. 한편, 레온 트라우트는 미 해병대의 일원으로 참전한 베트남에서 자신의 동료들을 수류탄으로 죽인 베트남 할머니에게 총질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여전히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던지는 저자의 일관된 주장 앞에 숙연해진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 뭐 그런 것 때문에 레온은 스웨덴으로 정치적 망명을 감행하고, 우리에게도 <말뫼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진 말뫼에 가서 바이아데다윈호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다. 물론 그도 거기에서 죽었다. 그러니까 반유령 같은 존재로 보네거트가 소설에서 계속해서 언급하는 내세의 파란 터널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이야기를 택한 멋진 사나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는 거지.

 

헌팅턴 무도병이라는 희귀 질병의 유전 보인자를 가지지 않은 동생 대신 바이아데다윈호의 무능한 선장 아돌프 폰 클라이스트가 살아남은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고작 백년도 못하는 인류가 백만 년 뒤의 일까지 어떻게 걱정한단 말인가. 다만, 커트 보네거트가 계속해서 소설에서 언급하듯이 우리 인류가 지구별에 사는 동안에는 오염을 막을 수 없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반전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이웃 페루와의 전쟁 그리고 잇달아 벌어진 에콰도르 민중들의 폭동으로 엘로라도 호텔은 물론이고 신판 노아의 방주라고 할 수 있는 바이아데다윈호 마저 약탈당하고 만다. , 그렇다면 이렇다 할 장비나 변변한 자원도 없이 설상가상으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 아돌프 선장의 지휘 아래 노아의 방주 시즌 2에 올라선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세기 최고의 SF작가 중의 한 명이라고 불릴 만한 커트 보네거트는 신판 노아의 방주에서 인류 진화 과정에서 우연이라는 강력한 요소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광의의 의미에서 진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꼭 선의가 좋은 결과를 빚어내는 것도 아니고, 실수가 파멸적 결과를 초래하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보네거트는 다소 비관적인 견지에서 미래를 예견했지만, 그 미래세대인 우리는 여전히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보네거트 선생, 내세의 파란 터널에서 언젠가 우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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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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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다 읽고 나서 북글을 쓰기 전에 두 가지를 하고 싶었다. 하나는 1989년에 코스타 가브라스가 발표한 <뮤직 박스>라는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른 하나는 최근에 출간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평전을 읽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전자는 가능했지만, 후자는 시간 부족으로 미처 하지 못했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와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데뷔작 <저지대>를 통해 그녀의 작품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았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가장 최신작인 <숨그네>를 만났다. 보통의 독서 속도라면 금세 다 읽으리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깨져 버렸다. 그녀의 글에 담긴 숨결의 무거움을 탓이었을까? <숨그네>를 읽는 동안, 나의 책읽기 진도는 여느 때와 비교해서 현저하게 느려졌다. 짤막한 이야기가 빚어내는 편린을 긴 호흡으로 읽어야 했다.

 

<숨그네>의 주인공은 헤르타 뮐러와 공동 작업을 하던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문학적 페르소나 레오폴드 아우베르크다. 히틀러의 충실한 파시스트 동맹국으로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루마니아는 2차 세계대전 말기, 서쪽으로 맹렬하게 진격하던 러시아에게 점령당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살던 독일계 주민을 모두 러시아 수용소로 이송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겨울바람이 그렇게 매섭게 불던 어느 날, 레오를 포함한 일단의 작센족들은 가축 화차에 실려 러시아의 모처로 끌려간다.

 

그리고 앞으로 5년간 레오는 배고픈 천사심장삽을 벗 삼아, 할머니의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곱씹으며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선다. 한창 자랄 나이의 청소년에게 목숨을 겨우 연명할 정도의 빵과 양배추 수프는 턱없이 부족한 음식이었다.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분신인 레오는 허기를 이기지 못해, 음식쓰레기를 뒤져 감자껍질을 집어 먹는다. 아마 그는 한 개의 감자조각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기꺼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아넘겼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가졌던 허기를 달래기 위한 욕망은 절박했고, 어떤 방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크기에 비례해서 그의 절망은 커져만 갔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지상과제는 그들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향수마저도 사치로 치부해버린다.

 

먹는 것만큼이나 생존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던 입성 또한 레오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차례로 죽어나가는 사람의 옷을 벗기는 데 추호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인간성 말살의 현장을 헤르타 뮐러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들에게 닥친 걱정은 시체가 사후경직을 일으키기 전에 신속하게 쓸 만한 옷가지를 챙기는 것이었다. 도대체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작가는 생생한 육성으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런 비참함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은 점점 더디어져 간다.

 

한편, 생존을 위한 어떤 기술도 가지지 않은 레오는 수용소의 기계적인 노동을 자신이 그리는 판타지 속의 예술로 승화시켜 나간다. 그런 판타지야말로, 권태와 무료가 지배하는 수용소 생활을 맨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을까? 이제는 친근해진 배고픈 천사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위를 맴돌고 먹는 것과 추위를 피하기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만이 악다구니를 부리는 수용소라는 폐쇄적 공간이 주는 공포는 종종 한밤중에 간수에게 불려나가 담벼락에 서는 섬망(譫妄)으로 이어진다. 가족이라는 희망의 끈은, 어느 날 어머니가 보내준 대리형제의 사진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갓 태어난 자신의 대리형제가 가족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거라는 망상이 레오를 괴롭힌다. 과연 이런 참혹한 수용소의 현실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고향으로 복귀하더라도 과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오랜 교정 생활 끝에 출소한 늙은 재소자가 사회를 등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궁금하게 했던 것은, 레오와 다른 작센족들이 과연 아무 죄 없이 러시아로 끌려갔을 까라는 의문이었다.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이었던 쿠르트 발트하임, 현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좋은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귄터 그라스의 과거에 드리워진 나치의 그림자가 버티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더더욱 <숨그네>의 북글을 쓰기 전에 코스타 가브라스의 <뮤직 박스>를 보고 싶었다. 자신의 가족에게마저 자신의 끔찍한 전쟁범죄를 철저하게 위장한 어느 파시스트 전범의 이야기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나에게 전후 억울하게러시아의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의 고통을 당한 무고한 양민들에 대한 동정심과 더불어 나치 군대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을 위해 부족한 노동력을 벌충하기 위해 점령국 주민들을 강제 동원한 러시아에 대한 이해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도 17세 레오가 체험한 5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단순하게 시대의 비극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짊어져야만 했던 버거운 삶의 무게가 그대로 전이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숨그네>를 다 읽고 나서, 자꾸만 미뤄오던 숙제를 다 마친 것 같이 후련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헤르타 뮐러는 귄터 그라스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German writer)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왠지 그녀의 조국 루마니아가 휘발해 버린 느낌이 들어서 아쉬운 마음이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작가의 정체성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독일 작가로 귀결이 되었던 것 같다. 숨그네, 심장삽, 볼빵 같이 그녀가 구사하는 독일식 조어(造語)가 과문한 독자에게 원전 그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 작가의 책임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역시나 어렵다.


[뱀다리] 9년 전에 노벨상의 후광으로 그녀의 작품들이 연달아 5권 소개가 된 뒤, 저자의 신간이나 구간 출간소식이 들리지 않아 아쉽다. 그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후자의 경우에는 신간이 계속 나오는 데도 소개가 되지 않아 더 그렇다. 창비에서 올 12월에 대작 <까떼드랄에서의 대화>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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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9-10-02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지대‘를 읽었는데 딱히 기억나는 내용이 없네요. 제 독서가 워낙 깊은 읽기가 부족해서 늘 아쉽습니다. 지난 주말에 읽은 ‘그날의 비밀‘을 보니 직접적인 학살이나 유대인말살정책에 관여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전범‘들이 집유로 풀려나서 잘 살았더라구요. ‘작센족‘들의 유무죄에 대한 의문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레삭매냐 2019-10-02 09:27   좋아요 1 | URL
작센 족이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러시아 수용소로 끌려 가게 되었다
고 하는데...

안슐루스나 나치의 체코 병합 당시
연도에서 환호하던 독일계 주민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헤르타 뮐러의 책들은 역자가 모두
달라서인지 몰라도 같은 작가가 쓴
책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남쪽바다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 지음, 안금영 옮김 / 사람과책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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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솔직히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다음에 읽어야 할 책들이 줄지어 서 있고, 또 읽다만 책들도 순서대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지금 독서를 와중에도 하는 마당에 그런 고민이 끼어들 틈이 없다. 게다가 읽던 책에서 새로운 미지의 작가나 책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바로 점프를 감행한다. 지난주에 만난 산티아고 감보아의 <밤 기도>에서 나는 스페인 출신 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을 알게 됐다. 아니 어쩌면 그전에 볼라뇨를 통해 알게 되었을 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에 소개된 책이 두 권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23년 전에. 한 권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지만 다른 한 권은 절판된 책이었다. 그리고 바로 중고로 주문했다. 어제 내 손에 들어왔고, 바로 읽기 모드로 돌입했다. 몬탈반의 1979년작 <남쪽 바다>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시작은 바르셀로나의 어느 악당들의 폭주다. 짧은 추격전은 끝나고,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된다. 저명한 재벌급 인사 스튜어트 페드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프랑코의 죽음으로 기나긴 독재가 끝나고 바야흐로 스페인 민주화가 시작된 직후로 보인다. 고인의 미망인 미마와 변호사가 사립 탐정 페페 카르발로(진짜 주인공이다!)를 찾아와 사건을 의뢰한다. 그런데 그들은 카르발로에게 살인사건의 원인이나 이유가 아닌 스튜어트 페드렐이 지난 죽기 전 1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느냐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다. 시작부터 기묘하다.

 

비스쿠테르라는 기가 막힌 리오하 요리를 만들 줄 아는 조수를 둔 카르발로는 반 프랑코 운동 전력 때문에 아메리카에서 20년 간 망명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그의 도덕적 경력에 대해서는 검증 완료. 아마도 중년으로 보이는 카르발로의 주변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를 흠모하는 여성들이 끊이질 않는다. 고인의 딸 예스/예시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 한 가지 더, 더럽게 재밌는 책을 불태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카르발로를 친구들은 분서광이라고 부른다. 책쟁이로서 다 읽은 책을 그것도 더럽게 재밌다는 책을 주저하지 않고 불태우는 느낌은 어떨지 조금 궁금해졌다. 이건 중고로 팔거나 나눔하는 것보다도 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닌가. 도발적이다.

 

스튜어트 페드렐의 전적을 조사하는 와중에 카르발로는 고인이 부유한 색정광이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러면서도 동시에 남쪽 바다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였다는 점도. 그가 남긴 남쪽 바다에 대한 메시지가 담긴 쪽지를 단서로 스튜어트 페드렐의 행적을 추적하는 장면은 역시나 당대 스페인 최고의 작가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간에 빵구를 낼 듯이 마셔대는 블랑 데 블랑 같은 포도주에 대한 탐닉과 자신에게 오는 여자들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유능한 사립 탐정 카르발로를 규정하는 어떤 상징과도 같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푸스테르와 함께 독서광이자 교수 세르지오 베세르의 집에 가서 양파를 곁들이지 않은 정통 발렌시아식 빠에야 요리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스튜어트 페드렐이 남긴 단서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장면은 정말 멋졌다. <황무지>는 독서광에게 쉬운 편이었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남쪽 바다의 운율까지 들먹이며 1959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살바토레 콰시모도의 시까지 연결하는 장면에서는 살짝 전율하기도 했던 것 같다. 참고로 콰시모도의 작품은 국내에 번역된 게 없다.

 

그렇게 소설의 절반 정도를 노닥거리며 보낸 카르발로는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 그런데 정작 이 소설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누가 스튜어트 페드렐을 죽였는가라는 탐정소설 방식의 추적이 아니다. 내 진짜 관심은 스페인내전에서 승리한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철권통치를 끝낸 스페인의 민주화 과정이다. 프랑코 치하에서의 강제된 금욕주의는 찬하의 바람둥이 카르발로의 엽색으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연 정치가 들끓는 개인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남쪽 바다라는 이상향으로 가고자 했던 스튜어트 페드렐 역시 카르발로와 다를 바가 없는 색정광이었다. 다만 전자가 자제력을 가졌다면 후자는 전혀 그러지 못했고, 결국 비참하게 누군가의 칼을 맞고 죽은 것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바르셀로나 그중에서도 지금은 쇠락한 산마힌 지구의 개발은 주도한 것이 바로 스튜어트 페드렐, 플라나스 그리고 문트 후작 악당 삼총사였다. 프랑코 시절 경제성장 신화는 우리가 현실에서 목격하기도 했던 날림공사, 부동산특혜로 점철된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노라고 몬탈반 작가는 카르발로의 입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산마힌을 비롯한 대다수 대중들은 원조 파시스트 프랑코 치하가 좋았다는 흘러간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사회 정의나 복지 혹은 공정한 분배 따위는 모르겠고 그저 오늘의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식의 논의가 이미 그 시절에도 대중들이 나누는 어젠다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주인 없는 땅이었던 공유지 개발로 한몫 챙겼던 악당들이 이번에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20년 만에 다시 산마힌을 노리고 있었다. 자유시장경제주의를 신봉하는 기업가 행세를 하는 악당들에게 민중들은 오래된 착취의 대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대를 이어 그래도 프랑코 시절이 좋았지를 노래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왜 그렇게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바탕 소동을 겪고 카르발로는 사건을 해결한다. 모두가 원하는 방식으로. 어차피 소설에 나오는 사건은 해결되게 되어 있지 않던가. 에타(ETA) 조직원 행세를 하는 빵집 주인의 바람난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가외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이재에 밝은 인간 같으니라구. 몬탈반 작가가 슬쩍슬쩍 흘리는 카르발로의 과거도 흥미롭다. 한 때 교사로도 활약하기도 하고, 수형생활도 한 것으로 추정되고 프랑코 반독재 운동의 경력을 가진 캐릭터 설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프랑코 독재정치를 찬양하는 이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도망친 운명의 귀결이 어떠했는지 보여 주면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렇게 말끔하게 사건을 처리한 카르발로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작은 비극을 마주한다. 아무래도 몬탈반의 다른 작품인 <문신>도 읽어봐야겠다. 왜 이렇게 좋은 작가의 책들은 소개가 되지 않는지 그저 아쉬울 뿐이다.


[뱀다리] 소설에서 누군가 1977년 선거에 투표했냐는 질문이 등장하는데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만한 그런 선거가 아니었다. 유럽의 마지막 파시스트 프랑코가 죽은 뒤, 무려 41년 만에 스페인에서 최초로 치러진 민주주의 선거였다. 노력한 만큼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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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9-26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작품이 꽤 많은거 같은데 국내엔 단 두 권 뿐이라니 아쉽습니다. 범죄소설이 문학상까지 받고 꼭 읽고 싶은데 구할 수가 없네요. 일단 중고알림을 신청했네요. 늘 보석같은 책 알려주시니 감사해요.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9-09-26 13:3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제가 위키피디아로 검색해
보니 어디서는 16편의 소설에 또 어디
서는 자그마치 25편의 소설의 주인공
으로 등장한다고 하네요.

1972년부터 2004년까지 페페 카르발
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나
왔다고 합니다.

암튼 프랑코 사후 스페인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사회파 소설로도 충분히 가치
가 있었습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밤 기도
산티아고 감보아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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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송병선 교수의 초역으로 콜롬비아 보고타 출신 산티아고 감보아의 <밤 기도>가 소개됐다. 나는 다시 한 번 세계는 넓고 내가 모르는 괜찮은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밤 기도>는 그동안 10편의 소설을 발표한 감보아 작가가 지난 201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감보아 작가와 한국의 인연은 3년 전에 그가 문학 수다를 위해 서울국제문학축제에 참석한 것으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당시 <시인과 비행사>라는 짧은 에세이가 소개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출판사들에서 사전에 준비해서 책이라도 출간했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2009년에 발표한 <네크로폴리스>라는 작품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감보아 작가의 작은아버지가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우리와 인연이 있는 작가가 아닐 수 없다.

 

<밤 기도>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이다. 두바이에서 방콕을 거쳐 도쿄로 가려던 콜롬비아 출신 27세 청년 철학자(국립대학 박사 과정) 마누엘 만리케가 태국 경찰에 의해 마약 소지죄로 체포된다. 지난 24년 동안 작가이자 외교관으로 유럽에서 활동해온 델리주재 콜롬비아 영사는 대사관계가 없는 태국의 자국 교포를 구하기 위해 정부의 명령으로 방콕으로 향한다. 사건을 맡은 태국 검사는 처음부터 까놓고 섹스관광과 그 이상을 위해 자국을 찾은 외국인들에 대한 경멸을 감추지 않는다. 어쨌든 방쾅 교도소에 갇힌 피의자 만리케는 자신의 죄를 법정에서 인정하면 비교적 관대한 30년형을 아니면 사형도 선고 받을 수 있다는 말을 영사는 전해 듣는다.

 

소설의 진행은 영사, 만리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전환 수술자로 보이는 세 명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패멀라 앤더슨처럼 되고 싶어하는 세 번째 인물에 대한 정보는 모호하기만 하다. 영사의 진술이 현재 태국 교정시설에 구금된 만리케를 구하는 데 집중된다. 영사는 만리케와의 첫 대면을 통해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청년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닫는다. 반면 만리케의 진술은 자신의 성장과정과 별 볼 일 없는 은행원으로 식탁의 독재자이자 콜롬비아 대통령이자 우파 민병대의 지도자였던 알바로 우리베를 지지하는 아버지 알베르토에 대한 회상으로 가득하다. 아슬아슬한 콜롬비아의 평범하고 아슬아슬한중산층 가정 출신의 소년 마누엘에게 삶은 무의미해 보일 따름이었다. , 여기서 중요한 인물에 대한 소개가 하나 빠졌군. 마누엘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자신의 누나 후아나. 그녀 때문에 마누엘은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외부로 발산하는 그라피티 예술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후아나는 국립대학 사회학과로 진학하면서 파시스트 아버지와 개인적 전쟁을 시작한다.

 

후아나가 거침없이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아버지는 그녀를 게릴라로 간주한다. 이것을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으로 보아야 할까. 다시 영사가 개입해서 마누엘의 스승이었던 자신의 친구 구스타보의 도움으로 마누엘의 과거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마누엘의 과거는 정말 클린 그 자체였다. 그는 몇 년 전 실종된 누나 후아나를 찾기 위해 그야말로 세계의 절반을 가로지르는 모험을 시작했고, 방콕에서 횡액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누엘은 왜 다음 기착지였던 도쿄로 가려고 했는지 궁금해진다. 감보아 작가는 희미하지만 강력한 단서라는 떡밥들을 통해 <밤 기도>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구성한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바로 후아나의 실종이었다. 후아나가 실종된 것은 200811월 그리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실종이라는 죽음과 삶의 경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은 희망고문이라는 지옥을 경험해야 한다. 후아나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그녀가 게릴라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장녀의 실종에 절망한 알베르토는 비로소 우파 정권의 실체를 알게 되고, 근본적인 변신을 하게 된다. 마누엘은 그런 아버지를 난생 처음 존경하게 되지만, 어머니 베르타는 그런 남편을 조롱한 기회만을 노린다. 개인의 정치적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감보아 작가는 만리케 가정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다.

 

3년 만에 실낱같은 단서를 추적해 가던 마누엘은 누나 후아나가 도쿄에서 에스코트 서비스를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키토와 상파울루, 두바이, 방콕을 거쳐 도쿄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을 후아나가 했다는 사실에 독자는 마누엘 역시 비슷한 코스를 밟으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27세 청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일견 무모해 보이는 누이 찾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소설 <밤 기도>의 진짜 주인공이 마누엘 만리케가 아니라 어쩌면 작가 출신 외교관인 델리 영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외교관들에게 콜롬비아 영사 같은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을까? 나는 왠지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직접 경험해 봐서 잘 알지만 말이다. 자신을 파산으로 몰아넣을 지도 모를 도쿄행을 감행하고, 대사관계가 없는 이란에서 다른 목적을 지니고 이동대사관 서비스를 하겠다는 명목으로 테헤란으로 건너가는 그의 열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울러 마누엘이 아주 결백한 사나이가 아니라는 점도 동시에 깨닫게 된다. 도대체 내가 간과한 진실은 무엇이고, 마누엘의 부탁으로 후아나 구하기에 나선 영사는 목적을 이룰 것인가.

 

나는 감보아의 책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별이 된 로베르토 볼라뇨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일찍이 볼라뇨가 자신의 작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감보아 역시 무수한 내가 전혀 들어 보지도 못한 숱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을 소개한다. 대표 주자는 스페인 출신 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이었다. 나는 순전히 감보아 덕분에 그의 책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호르헤 볼피의 이름을 책에서 발견하는 순간, 너무나도 반가웠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자신이 번역하고 싶은 책을 우선적으로 번역한다는 역자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 구원은 존재하는가. 내가 타인을 구원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나 스스로의 구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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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23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는 넓고 내가 모르는 괜찮은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는 일이 레삭매냐님이 알라딘에서 맡은 바 역할 같아 보일 때가 많아요. 오늘도 한 건 하시네요.

전 처음에 감보아를 김보아로 읽고, 송병선 쌤이 한국어를 스페인어로 초역한 건가보다 생각했지 뭐예요 ㅋㅋㅋㅋ

레삭매냐 2019-09-23 09:48   좋아요 0 | URL
역시 우리의 비어 아니 호프
시오님의 센스란... 김.보.아. 따악

그나마 영미권 작가는 어줍잖은
영어로 더듬더듬 한다지만,
그외 문화권에 대해서는 정말 노답
이지요.

순전히 출판사와 역자에 의존해야
하는 시츄가 참 거시키하지요.

겨울호랑이 2019-09-25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는 이들에게 인정받기는 쉬워도, 가까운 이들에게서 인정받는 이는 극히 드문 것처럼, 타인에 대한 구원보다 자신의 구원이 어려움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레삭매냐 2019-09-25 10:00   좋아요 1 | URL
성경에 나오는 문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선지자/예언자가 오히려 자신의 고향에서
는 인정받지 못한다였던가요...

본질적으로 삶이라는 게 자신의 구원을
위한 길일 지도 모르는데, 나를 구원하는
일에 너무 무심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
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