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애니매이션, 특촬영화 및 어린이 대상 위인전에 존재하는 여성 인물 활용방식을 분석하(고 분노하)는 책이다. 


원제목에서 언급하는 "홍일점"은 소년 주인공의 (모험) 애니매이션에 주로 한명씩 끼어 있는 여성 인물들을 이른다. 이들 (십대초반) 여성은 남성들에 비해 능력은 열등하며 잔심부름이나 통신 등을 맡은 주변인 역할을 하면서 온갖 성차별과 성추행을 (흔하게는 속옷 노출, 연애의 표적) 당한다. 하지만 박사나 고위능력자의 딸이기에 그 조직에 들어갔으니 공주의 신분이기도 하다. 반면 이들이 대항하는 악의 무리에는 성인 여성이 나오기도 하는데 강렬하고 남자 부하를 거느리기도 하는등 현대사회의 비혼 전문직 여성을 연상시킨다. 동화 속의 익숙한 마녀 코드가 활용된다. 


소년 모험 애니매이션에서 갈라져 나온 소녀들만의 주인공 애니매이션은 1960년대 '요술공주 샐리'가 시초라고 한다. 소년들이 우주와 역사에서 외부 침략자들을 무찌를 때 소녀는 요술봉과 컴팩트로 자신의 몸을 '변신'시켜서 일상생활의 리듬을 조정하는 무해한 활동을 한다. 이 변신의 과정에 속옷과 나신의 전시가 필수적이다. 소녀들도 소년들 처럼 팀을 (주로 5-7인) 이루기도 하고 성공을 이루기도 하지만 (세일러 문) 그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십대초반이며 그들에게 요술을 제공하는 여성은 멀리 자비로운 어머니처럼 존재한다. 이들이 현실에선 아이돌 여가수들이 된 건 너무 자연스럽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잔 다르크'를 이 여자 주인공들의 선례로 보고있다. 잔 다르크는 요술 소녀처럼 신의 계시를 받고 갑옷을 입는 '변신'을 거쳐 남성들만의 세계인 전쟁터에서 '홍일점'이 되었지만 후에 마녀 취급을 받아 처형당하고 몇백 년이 지나서야 성녀의 자리에 오른다. 여성은 만화 조연이나 주인공, 위인전에서도 쉽게 대상화되고 틀에 갇히게 된다. 여성은 능력보다도 외모나 '덕성'이 먼저 검증되어야 한다. 


책은 많은 자료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매 챕터마다 반복해서 정리를 하는데다 여성 캐릭터 분석도 그리 새롭지 않아서 지루한 느낌이 든다. 


체스 세계에서 분투하는 여자 주인공을 보여주는 '퀸스 갬빗'이나 1890년대 뉴욕 경찰청의 첫 여성 직원을 주인공으로 한 '에일리어니스트'를 보면서 계속 이 책의 홍일점 공식이 떠올랐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그 공식이 변주되고 반격하는 인물들도 적지 않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니까 이제 공주님 소녀는 더 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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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2-07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일리어니스트‘ 재미있어?

유부만두 2020-12-07 06:42   좋아요 1 | URL
쎈 장면이 많고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 있어도 ... 흠.... 그냥 그냥이에요.

일단 어린 여주랑 아자씨들의 썸 타는 게 싫고요
아무래도 홈즈 미국판에 CSI 섞은 느낌이 들어요. 시즌 2도 있던데 그건 1화 보다 껐어요. 시즌 1도 몰아서 며칠에 보니까 범인 프로파일이 엉키고 수사도 엉성해요.
 

<어린이 청소년>

5번 레인, 은소홀, 노인경 그림, 문학동네, 2020


<비문학>

아무튼 연필, 김지승, 제철소, 2020

마침내 일상에 도착했다, 김송은, 컴인, 2020

세번째 뇌, 장 미셀 우그를리앙/임명주 역, 나무의 마음, 2020 

요술봉과 분홍 제복, 사이토 미나코/권서경 역, 문학동네, 2020


<문학>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 마거릿 미첼/안정효 역, 열린책들, 2011


<영화>

금발이 너무해 1

스위트 알라바마

화양연화

중경삼림

신 보보경심

에일리어니스트 (시즌1)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애니)

울고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 

퀸스 갬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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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12-02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드라마를 많이 봤고, 시작한 책도 많았는데, 완독은 적었고
바람이 많이 불었고 마음이 쓸쓸한 11월이었다.

단발머리 2020-12-02 18:15   좋아요 1 | URL
저도 시작한 책은 많았는데 완독은 적었고
수면 양말을 새로 사고 공연히 바쁜 11월이었어요.
 

예고 영상에서 처럼 <퀸스 갬빗>은 여자 아이가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승승장구 하는 이야기이고 그 길은 험난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빌런은 의외로 남자가 아니다. 장면 장면들은 전통적 남녀관계를 희화하고 뒤집는데 가만 들여다보면 남자들은 극복해야 할 한계요 넘어야 할 산으로 나오는 반면 여자들은 적극적인 가해요소로 함정을 파놓아 베스를 위험에 빠뜨린다. 


베스의 인생에서 약물과 알콜 중독을 심화시킨 인물들은, 내면의 갈등이나 허영을 부추기는 건 여자들이고 체스를 가르치고 사회에서 성장할 기회를 주는 건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침입한 당돌한, 게다가 반칙까지 하는 베스를 눈감아주고 끼워주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돕고, 인정해준다. 베스를 롤모델로 삼고 체스 클럽을 만들고 연습하는 건 남자아이들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 민주적 미국이 아닌 소련, 그것도 따뜻한 실내가 아닌 실외 공원, 다수의 할아버지들이 하얀 백색의 코트를 입은 베스를 인정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베스는 챔피언이라기 보다는 무해한 공주님 같다. 남자들이 졌으면 손에 입 맞추는 대신 무릎을 꿇어야 할 것 아니냐.


이 재미있는 7부작 드라마 내내 상투적인 '남성적 폭력'은 비켜간다. K드라마에서라면 아버지의 존재도 부각되었겠지만 그는 멀리 흐릿하게만 스쳐가고 대신 체스를 주신 아버지가 딸의 인사를 받는다. 남자 인물들이 나올 때 마다 혹시가 그가, 그들이 베스를 성적으로 심리적으로 착취할까 겁을 먹었다. 하지만 그들이 베스를 사람으로 대하자 그걸 감사하다고 적었다, 내가. 멍충이 같이. 대신 여성인물들인 어머니, 친구, 원장님과 여성 기자 들이 베스의 인생에 독약을 들여오고 그녀의 마음에 불안 허무 그리고 포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베스가 내내 그리워하고 '복기'하는 친어머니가 시작이었다. 여성들의 연대도 (특히 졸린의 엉성한 캐릭터라니) 헐겁고 작위적이라 남성 조력자 팀에 비하면 걸리적 거릴 뿐이다. 


재미있게 봐 놓고서 다음날 아침에 이렇게 투덜거릴 일이냐 싶지만 난 뒷북이 전문이니까.


드라마 내내 베스는 체스를 해나가며 점점 예뻐진다.


<덧> 어쩐지.... 남자 작가 소설에 남자 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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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26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고아원 친군 러시아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잖아요. 양엄마도 그렇고,,,저는 양엄마가 그녀를 착취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암튼 저는 이 드라마 넘 재밌었어요!!! 재밌게 봤고,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그런 종류의 드라마에요. 저는 왜 이런 스토리에 껌뻑 죽는지!

유부만두 2020-11-26 08:13   좋아요 0 | URL
네 양엄마나 졸린의 도움은 무시할 수 없죠. 그런데 양엄마의 ‘방임’이 너무나 커서 베스가 위험에 빠지는 게 무서울 정도에요. 졸린은 뭐랄까 너무 만들어진 조립식 캐릭터라 다양성에 대한 면피용 같고요. 여성인물들은 베스를 직접 착취하진 않지만 (그들 자신의 비극에 괴롭고) 베스를 중독으로 이끌어서 원망스러워요.

드라마 재미있게 봤어요. 성공 성장, 주제는 기운나게 하잖아요.

psyche 2020-12-07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막 시작했는데 재미있더라고. 유부만두가 지적한 부분 주의깊게 살펴보면서 봐야지

유부만두 2020-12-07 06:46   좋아요 1 | URL
재미는 있는데 여성 인물들의 연대가 없고 남자들이 다 하면서 여자 하나, 흑인 하나 끼워 주는 (캐릭터의 생생함이나 개연성 핍진성 없이) 식이라 좀 싫었어요. 남자들이 너무 다 착해요. 그럴리가 없다는 걸 여자 시청자들이 다 아는데 ‘자 여자 이야기 여깃다, 즐기렴‘ 하는 거 같기도 했어요. 남자가 만든 드라마 라는 게 계속 느껴져요.

아, 그런데 재미 있습니다. (자아분열)

ares 2021-08-03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이 지적하신 부분 다 받고 동의.. 다만 저도 살면서 남자들의 도움을 더 많이 받았던 사람으로서 변명하자면. 현재 사회의 지배자들인 남자들이 간혹 더 포용력있기도 합니다. 극중 베스가 하는 말 있어요 여자냐 남자냐는 나에게 중요치 않다고요. 대부분의 여자가 베스처럼 최강자가 될순 없지만 사회구조적인 어려움에도 모든 걸 극복하는 최강자 캐릭터 베스는 성별을 뛰어넘는 감동과 ‘저런 여자가 존재할까..? 아니 가능할까..?‘ 라는 씁쓸함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유부만두 2021-08-03 22:24   좋아요 0 | URL
네, ares님의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이 영화/시리즈가 주인공을 도구로 써서 남성캐릭터들(의 선행)을 부각시킨 느낌이 들었어요. 다른 여성 캐릭터들은 상대적으로 약/악했고요. 빠른 흐름과 신나는 영상에 매료된 만큼 실망한 기억이 남네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지금같은 사회구조에서 남성들의 도움 없이 앞으로, 위로 나아가는 여성들이 나오기는 어렵겠군요.
 

넷플릭스 드라마 7부작. 

아홉살에 엄마를 사고로 잃고 고아원에 간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의지할 사람도 정을 붙일 물건도 없었다. 이미 아버지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고 삭막한 고아원, 썰렁한 건물 천장에 나만의 다른 '세상'이 그려지고 나서야 아이는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다. 혼자라도 이 '세상'을 버텨낼 수 있다. 체스의 세상이 열렸다. 다만...


약물과 알코올 중독과 승부욕에 더해서 주위 사람들의 비극이 (엘리자)베스를 붙잡고 있어서 7부작 내내 그녀의 성장과 승부를 두손을 쥐고, 안타깝게 (가끔 통쾌) 함께 지켜보았다. 베스의 두 어머니의 비극이 처절한 만큼 그녀의 승리가 아름답지만 불안하고 또 가식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무표정한 베스의 마음엔 얼마나 어두운 이야기들이 갇혀있는지.


나이 많은 아저씨가 소녀를 대할 때, 고아원에서 남자 간호사가 알약을 나눠줄 때, 입양한 가족의 양아버지가 차가운 눈빛을 던질 때, 엘리자베스에게 진 상대 남자 선수가 얼굴을 일그러 뜨릴 때, 예상되는 폭력적인 장면이 이어지지 않아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왜?!! 이런 학습된 공포가 찾아오는지 분하지만)  



체스 드라마 였지만 어쩔 수 없이 이세돌과 택이가 생각났다.  결말은 착하고 귀엽고 어쩐지 응팔같기도 했다. 체스 룰을 몰라도 충분히 경기 장면을 즐길 수 있다. 다만 .... 토마스 브로디생스터, '러브 액츄얼리'의 그 귀여운 꼬마가 키만 크고 수염이 난 애늙으니 모습의 이십대 후반으로 나와서 많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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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괴이하다 싶었는데 그 의미를 알고 나니 기괴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 애니에서 그려지는 여고생은 일정하게 발랄하고 역시나 그렇게 소모적이다. 


외톨이 책벌레 남학생의 사회성 기르기에 소비되는 여학생 사쿠라도, 뜬금없이 여학생이 따라 붙는 찌질한 남학생 (이름도 그 유명한 春樹 하루키)는 더 싫었다. 시한부 여학생, 약속 장소 가는 길에 사고. 정말 끝까지 대환장.


발랑 까진 여학생이 순수한 남학생과 바다로, 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호텔에서 아슬아슬한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 유혹과 우정, 아니면 성장의 그 순간을 남자 어린이 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에서 그리는 애니 '바다가 들린다'도 생각난다. 우리 나라 버전으로는 남이섬에서 일박이일 여행 후 커플이 된다는 칠공팔공 전설의 할아버지 로맨스가 있다. 


이 애니메이션 들은 넷플릭스에 있기에 싱크대 청소하면서 봤다. 짜증이 많이 나서 수세미질을 더 박박 했더니 부엌이 깔끔해졌다. 짜증은 가시질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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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1-25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부엌이 엉망인데 이거 보면서 청소할까? ㅎㅎㅎ

유부만두 2020-11-25 18:30   좋아요 0 | URL
분노의 수세미질을 하실 수 있어요. ㅎㅎㅎ
요즘 잘 지내시나요? Life Goes On 입니다.

잠자냥 2020-11-25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추석 연휴인가에 케이블에서 하는 영화로 봤는데요. 그 영화로 드디어 이 기괴한 제목의 실체를 알게 됐죠... 대체 이 영화 왜 그렇게 인기 많았나 싶었어요. 보면서 계숙 부글부글... 근데 정말 끝까지 대환장. 아 진짜 췌장이 녹는 것 같은 대환장 파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0-11-25 18:31   좋아요 1 | URL
췌장이 녹아버리지요. 어쩌면 일본 영화/애니의 여고생들은 한결같은지요.
지루하다가 안타깝다가 화가 나요.

han22598 2020-12-01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까 잠깐 궁금하긴 했는데, 그런데 알고나면 알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을것 같아서 그냥 지나갑니다ㅋㅋ

유부만두 2020-12-02 14:56   좋아요 1 | URL
....설명을 하지 않을게요.